예멘식 작별 인사

예멘식 작별 인사

 

이병률

 

 

 

 

최선을 다해 갔다. 단 그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아무런 상상도 하지 않기로 했다. 열흘 동안 그 나라에 머무는 동안 큰 사고만 없기를 바랐다. 최악의 사고가 번번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최악의 경우를 피하려면 아예 그곳에 가지 않아야 했으나 참아지지 않았다. 평생 가보지 않아도 될 곳이었으나,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다고 생각되었던 곳.

 

여행 짐을 꾸리면서 가방에 넣어둔 음료 하나. 예멘(Yemen)의 사나(Sanaa)에 도착해 며칠 만에 음료수를 싸왔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저녁 무렵, 그것을 들고는 밖으로 나왔다. 산책 삼아 걷다가 어느 기념품 가게 소파에 앉아 음료를 마신 뒤 빈 병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나왔다. 다음 날, 시장 사람들 중 몇 명이 기념품 가게 아저씨가 나를 찾는 것 같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무엇을 두고 와서라고 했다. 기념품 가게에 들르니 병을 두고 간 나를 찾으러 다녔다는 거다. 그것도 아주 한참 동안을. 그것은 빈 병이고 버린 것이라고 말은 못했다.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만 했다. 문제는 그 필요 없는 물건을 왜 하필이면 그곳에 두고 나왔느냐였다. 그 빈 병을 들고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사람을 위하는 방법은 그 빈 병을 도로 들고 나오는 거였다. 하긴 숙소의 쓰레기통에 버린 구멍 난 양말도 나갔다 돌아와보니 숙소 창가에 냉큼 모셔져 있었다. 낯선 물건을 버리는 방법이 예멘에서는 쉽지가 않다.

 

 

 

예멘에서는 낯선 물건을 버리는 일만 쉽지 않을까. 그들이 사용하는 마음의 최선도 쉽지 않다. 그 최선을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다. 시장 구석에 앉아 쉬고 있었다. 마음씨 좋아 보이는 노인이 옆에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노인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사실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친구가 되면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채로, 그 이상의 대화방법이 가능하다) 노인이 차를 마시겠냐고 한다. 나는 고개를 가로 젓는다. 그것도 여러 번이나. 하지만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사라지더니 차 한 잔을 사가지고 와서는 나에게 권한다. 예멘에서는 이런 일이 잦다. 하지만 난생 처음 마주하는 사람으로부터 차 한 잔 대접 받는 일만 어려울까.

한번은 몰래, 시장에 앉아서 건포도를 팔고 있는 아저씨를 카메라로 찍다가 결국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난 웃으며 그 자리를 떠나려 하는데 인상을 잔뜩 쓴 아저씨가 이리 오라며 손짓을 한다. 죽었구나 싶어 가까이 갔는데 내 양손바닥을 모으라고 하더니(자 같은 걸로 내 손바닥을 때리는 줄 알았다) 두 손 가득 건포도를 얹어주는 거다. 주머니에 넣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 씹으면서 그래, 예멘에서는 신기한 것도 뭣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모두가 이토록 극진하고 자연스러우니.

 

사막도시, 사윤(Sayun)으로 가는 버스표를 외국인에게는 팔지 않는단다. 몇 사람은 위험해서라고 했고 몇 사람은 공항으로 여행자들을 몰아 지갑을 열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신기하게도 항공기 이중 창문 틈새에 파리가 살고 있는 비행기를 타고 사윤에 도착했다. 한바퀴 둘러볼 생각으로 숙소 밖으로 나오려는데 숙소 직원이 앞을 가로 막는다. 잠깐 기다리라는 몸짓을 해보이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곧 경찰이 올 거란다. 잠시 후 기관총을 어깨에 멘 경찰이 왔다. 나는 잠시 후 그의 상관에게 인계되었다. 며칠 동안 이곳에 있을 거며, 어디를 다닐 거냐고 물었다. 그리곤 어디를 가든 항상 이곳 경찰서에 신고를 해야 하며 항상 총을 휴대한 경찰이 나를 따라다닐 거라고 했다.

나에겐 그런 경호가 필요 없었다. 그냥 사막에 가고 싶어 온 것인데 ‘나쁜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야한다는 연설을 듣는다. 중동의 다른 나라에서는 그 천사 같던 베두인 족이 이곳에서는 강도가 되기도 하고 늘 대형사고를 몰고 다니는 알카에다를 비롯해 위험 요소가 많은 곳이니 개인행동은 절대 안 된다고 일침을 준다(사실 최근 중동에서 일어난 비참한 사건들의 절반은 예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경호원에게 신세를 져야 한다면 내가 미안해진다. 그만큼 자유롭지도 못할 것이다. 그 드넓을 것만 같던 예멘의 사막은 내 자유로는, 내 계산으로는 갈 수 없는 길 위에 있었다. 혼자 여행할 수 없다니 사막으로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차피 내게는 소나기 정도를 빨아들일 정도로 모래가 있었다. 사막에 나가 그 모래들을 다 부리고 오자는 게 이번 여행의 속셈이었다. 기관총을 든 경찰이 사막까지 나를 따라와도 나는 과연 내 모래를 씻어내는 의식을 감행할 수 있을까(무슬림들은 예배를 드리기 전 손과 발을 씻는데 물이 없을 경우에는 깨끗한 모래로 손바닥을 문질러 세정을 대신하기도 한다).

 

 

 

메일을 확인할 일이 생겨 인터넷이 되느냐고 묻는다. 숙소 카운터에서 된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방에서도 인터넷이 가능하다는 말이 따라 온다. 나는 조금 놀란다. 방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내 방은 6층. 잠시 후, 노크소리가 들려 문을 열어보니 무하메드가 무겁게 감긴 하늘색 전선을 들고 헉헉거리며 서 있다. 나는 잠시 놀란다. 그러더니 그는 창밖으로 그 선을 던진다. 출렁, 선들이 바닥을 향해 떨어진다. 접속은 느리고 노트북은 전선의 무게 때문에 창밖으로 떨어질 듯 창가로 쏠린다. 사람들이 이 푸른 색깔의 전선 때문에라도 내 방에 어떤 사람이 들어 사는지 한눈에 알 것 같다. 여행 와서도 세상의 이런 저런 끈들을 놓지 못하는 아주 한심한 작자가 저기 머물고 있구먼…

 

내가 다른 여행자들처럼 다른 이웃 나라로 떠나는 줄 알았는지 주인 아저씨가 좀 더 있다 가지 그러냐고 했다. 여행이 끝났다고 말했다. 그럼 다시 올 거냐고 물었다. 다시 오겠다고 대답했다. 그럼 언제 올 거냐고 했다. 나는 그가 담백하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눈을 피해 5개월 뒤에나 올 수 있겠다고 말했다. 기다리지도 않을 테지만 기다린대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허망한 대답이었다. 공항까지 바래다 준 그에게 예멘식 작별인사는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왼쪽 뺨에 볼을 한 번 비빈 뒤, 오른쪽 뺨에 가지고 있는 감정만큼 뺨을 비빈다고 했다. 차마 그 실험적인 인사법을 시도할 수 없어 세상에서 가장 경박한 인사를 하고 만다. 멀리서 온 손님에게 헌신적인 그들의 마음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느라 마음이 산란해진다. 그들이 내게 보여준 모든 장면에서 내가 필요한 만큼만 가져오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한다. 그러면 무겁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가운데 첫 번째는 ‘예멘에 온 걸 환영한다’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는 네가 예멘에서 잘 있다 갔으면 정말 좋겠다’였다. 동공이 열릴 정도로 참 찌르르 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는 이 말. 나는 어디선가 들은 적도 있는 것 같고, 또 그 어디에서도 들은 적이 없는 말 같은 그 말에 늘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결국엔 돌아오는 길, 당신들의 호의가 너무 벅차니 나는 여기 오래 머물 수가 없네요, 라는 뜨거운 말은 굳이 하지 않기로 했다.   《문장웹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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