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속으로 난 길 외 3편

천수호

 

  저수지 속으로 난 길

  가마우지 바다

  빨간 잠

  나는 기형이에요

 

 

 

 

저수지 속으로 난 길

 

 

돌 하나를 던진다 수면은 깃을 퍼덕이며 비상하려다 다시 주저앉는다 저수지는 참 많은 길을 붙잡고 있다 돌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나는 같이 아프기로 한다 바닥의 돌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돌을 던지고 반지를 던지고 웃음과 울음을 던진다 그러나 물은 한번 품은 것은 밀어내지 않는다 물 위의 빈 누각처럼 어둡고 위태로워져서 흘러가는 사람들 저수지는 그들의 좁은 길을 따라가지 않는다

삐걱거리는 목어가 둑 아래 구불텅한 길을 내려다보려고 몸을 출렁인다 잉어는 물 위의 빈집이 궁금하여 주둥이로 툭툭 건드린다 잉어와 목어의 눈이 잠깐 부딪친다 마주보는 두 길이 다르다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가 뒤섞여 길을 이루고 있다 떨어진 잎들이 제 이름을 찾지 못한 채 저수지로 흘러든다 길을 끊는 저수지에 나는 다시 돌을 던진다 온몸으로 돌을 받는 저수지, 내 몸속으로 돌이 하나 떨어진다

 

 

 

 

가마우지 바다

 

 

짧고 어두운 순간이 휙, 지나갔다

가마우지 그림자다

 

내 머리 위를 스쳐 그의 머리 위로 날아가는 동안,

새는 내 그림자 한쪽을 찢어다가

그의 머리 위에 툭 떨어뜨린다

 

쭈뼛 솟구치는 머리카락,

가마우지를 올려다보는 그의 얼굴이

금세 캄캄해진다

 

다시 새는 그의 몸 안쪽에서

그림자 한 조각을 꺼내 물고 난바다로 날아간다

모래바닥에 끌리는 찢어진 그의 그림자,

그 자력(磁力)이 끈끈하다

 

(새와 그림자 사이,

자석을 들이댄 책받침처럼

빳빳한 수평선!)

 

수평선을 가운데 두고 사진을 찍는다

검은 바다 한 장이 호치키스처럼

가마우지를 찰깍, 깨문다

 

부리까지도 깜깜한 지독한 그늘이다

 

 

 

빨간 잠

 

 

그녀의 아름다움은 졸음에 있다

 

빳빳 헛헛한 날개로 허공을 가린 저 졸음은

겹눈으로 보는 시각의 오랜 습관이다

 

‘아름답다’라는 말의 벼랑 위

붉은 가시 끝이 제 핏줄과 닮아서

잠자리는 잠자코 수혈 받고 있다

 

링거 바늘에 고정된

저 고요한 날개

잠자리의 불편한 잠은

하마, 꺾이기 쉬운 목을 가졌다

 

아름다움은 저렇게

알면서도 위태롭게 졸고 싶은 것

등이 붉은, 아주 붉은 현기증이다

 

오래 흔들린 가지 끝

저기 저 꿈속인양 졸고 있는

등이 붉은 그녀

 

그녀의 아름다움은 위태로움에 있다

 

 

 

나는 기형이에요

 

 

아이 주먹에 붉은 꽃이 피었다

근친 간 사랑은 이렇게

몸에다 꽃을 피운다

꽃이 몸을 가질 때는

내밀한 근친의 비밀이 씨방에 묻히는 것

겹겹이 싸인 봉오리 오므리며

어느 밤을 기억한다

어둠이 깊을수록 꽃은 더 솔직하다

암술이니 수술이니

갖춘꽃이 난장을 트는 봉오리 속

혀를 빼문 어미가 죽고

징글징글해진 아비가 죽고

홀로 남은 아이는 어쩔 수 없어

두 주먹 불끈 쥐고 필사적으로 꽃잎 벌린다

꽃과 잎과 줄기들

웃을 때마다 안간힘으로 뒤틀린다

 

 

시/낭송 : 천수호

출처 : 천수호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민음사, 2009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