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사생활

우리들의 사생활

―신해욱

                              

 

 

하재연

 

 

       

광장에서, 그녀와

 

2009년 6월 10일 나는 신해욱 시인과 시청 앞에 있었다. 함께 전철을 타고, 해 지는 광장으로 가 주저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대 가는 산 너머로 빛나는 새벽별도 어두운 뒷골목에 숨죽이던 흐느낌도”라고 나직하게 노래를 부르면서, 나는 지금이 2009년이 아니라 1987년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노래가 울려 퍼지는 광장 뒤로 빌딩들에서 점멸하는 네온사인을 보며 해욱은 말했다. “저걸 보고 있으니까 블레이드 러너의 첫 장면이 생각나.”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은 2019년이고, 거기서 빛나던 자본주의의 꽃, 그 상징으로서의 네온은 2009년 광화문의 빌딩들에서 번쩍이고 있었다. 1987년 또는 2019년, 그리고 2009년의 이 기묘한 초현실적 혼종 속에서 우리는 쭈그리고 앉아서 한곳을 아니 어쩌면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오늘의 맥주

 

그녀는 맥주를 잘 마시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도수가 높은 술을 좋아한다. 나는 맥주를 자주 마시지만 가끔은 소주를 먹고 싶은 적도 많다. 주종 불문이다. 어느 날, 우리는 냄새가 나고 퀴퀴하지만 온 나라의 맥주를 편의점보다 싸게 파는 맥주바에 둘이서 앉았다. “우리 오늘은 안 먹어 본 다른 나라의 맥주들을 다 마셔 보자.” 안주도 하나 없이 한 병씩 시키던 맥주들이 쌓여 가고 그녀와 나는 각각 다른 맥주를 한 병씩 ‘오늘의 맥주’로 선정했다. 그 이후 해욱은 슈퍼마켓에 갈 때 그날의 ‘오늘의 맥주’를 집어 온다고 한다. 나는 그녀가 맥주의 세계에 들어왔다는 것이 기뻤다. 그게 아니라 나의 꼬임에 넘어와 준 것이 기뻤다. 그녀의 방에 가서 술을 마실 때마다, 나의 방에 와서 술을 마실 때마다, 안주도 없는데 소주를 마셔야 하거나 돈도 없는데 위스키나 보드카를 마셔야 한다는 사실에 나는 십 년간 불만을 품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가 아직도 카스나 하이트는 싫어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녀와 함께 오늘의 맥주를 마시기 위해, 돈을 좀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한다.

 

 

해욱에 관해 말할 때 내가 이야기하는 것

 

블로그, ‘에드가 앨런 포우’에 대한 그녀의 편향, 말들에 관한 완벽주의적 태도, 혼자 놀기의 달인, 이상하고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해 내는 기이한 능력.

시, 순수하고 온전한 어린아이의 슬픔.

색깔, 내가 아는 가장 투명한 색. 매달 ‘녹색연합’의 회보를 받지만 채식주의에는 계속해서 실패하는 삶. 처음 만났을 때는 긴 생머리였지만 지금은 까만 커트 머리가 된. 흰 담배 연기를 뿜을 때마다, 나랑은 관계없는 나라로 가 버리는.

러시아, 그녀가 다녀온 나라. 춥고 맑고 빛나는 그녀의 언어.

우리는 술을 마시고 흘러나오는 재즈의 리듬과는 상관없이 함께 춤을 추었지.

 

 

그때에도

 

“나는 오늘도/ 사람들과 함께 있다.// 누군가의 머리는 아주 길고/ 누군가는 버스를 탄다.// 그때에도/ 이렇게 햇빛이 비치고 있을 테지.// 그때에도 나는/ 당연한 것들이 보고 싶겠지.”

 

이것은 신해욱 시인의 첫 시집 마지막에 실린 시이다. 나는 이 시를 읽고 슬프다. 오늘도 사람들과 함께 있는 그녀의 외로움이. 아니 그냥 슬프다. 내 외로움이. 버스를 타고 있으면 덜컹거릴 수 있는 데까지 덜컹거리며 가고 싶은 마음이 된다. 아주 멀리까지 지속되는 이 슬픔. 세상의 끝까지 가도 없어질 것 같지 않은 오래된 슬픔. 누군가의 머리가 긴 것이 누군가가 버스를 타는 것과 무관하듯이. 아니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하듯이. 그렇게 해욱은 오늘의 햇빛 속에 살아가고 있고, 나는 해욱의 시를 읽고 있다. 그녀가 이 햇빛 속에서 사라지고 나면, 그녀의 슬픔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그때에도, 이렇게 햇빛이 비치고 있을 테지.

 

 

오로라

 

나는 해욱과 둘이서 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그녀가 처음 낯선 나라에 갔을 때 해욱은 아무나 붙잡고 “메이 아이 헬프 유?”라고 물었다. 내가 낯선 나라에서 길을 잃었을 때 나는 아무나 붙잡고 “쿠드 유 헬프 미?”라고 물었다. 해욱은 바보 취급을 당했고, 나는 거지 취급을 당했다. 나와 해욱은 광화문의 빌딩들 사이에서도 길을 잃곤 한다. 나는 그래도 길 찾기에는 내 쪽이 더 소질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얼마 전에 만난 다른 한 시인이, 나와 해욱은 같은 오로라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아, 친해 보인다는 말을 저렇게 멋있게 할 수 있구나’라고 감탄했는데 그녀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오로라를 볼 수 있다는 곳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리고 보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녀는 백야가 지속되는 나라에서 꽤 머무른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녀가 오로라를 보았을까? 모르겠다. 그녀는 썼다. “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 지도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문장웹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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