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 시간에 대한 예의

취미, 시간에 대한 예의

 

 

박해람

 

 

 

시간에 대한 예의

카페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그야말로 무엇에 집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배웠다기보다는 집중이 자연스레 나를 찾아왔다. 마치 놀러 오기라도 하듯. 나는 그 놀러 온 집중을 잡고 보내지 않는 데 꽤 여러 날을 바쳤다. 이전의 내가 찾아다녔던 거리와 역들과 지명들은 그때서야 하나 둘 나를 떠나기 시작했고 그 무렵, 나는 새로운 것들의 숙주가 되는 것에 기꺼이 찬성했거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에 온 재미를 느끼고 있었다. 문제는 ‘틈’이었다. 집중과 집중 사이에 버릇없이 끼어들어 딱딱하게 굳어가는 틈!

난 나무와 함께 자랐다. 나무에서 아이가 떨어지는 것도, 나무에 매달려 며칠을 흔들리던 동네의 예쁜 누나도. 또 온갖 간식거리를 주었던 것도 나무였다. 바보 같은 나무. 또 나무만이 칼의 각을 받아 낼 줄 안다. 한 칼을 받아 낸다는 것, 그것은 내가 시간이라는 날을 매순간 받아들이면서 사는 것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시간의 양면에 붙어 반짝거리는 예리한 단절. 언제든 잘라 새로운 종류로 만들 수 있다고 노려보는 面(면). 時間(시간)이 칠칠맞은 본성에게 한 칼을 먹이는 것. 문장만 남겨 놓고 발라낸 부스러기들이, 문장을 읽는 눈이 되는 것. 그래서 한동안 집중하던 書刻(서각)은 後日(후일)의 소일로 미루어 두기로 한다. 期約(기약)에 기대어 놓고 물기가 마를 때까지 面에 숨어 있을 문장들. 한 칼의 痛快(통쾌)가 老眼(노안)의 소일이 될 참이므로.

障?木(장애목)과 솟대

사는 것이 一直(일직)에 대항하는 것이라면 그 일직을 깊이 숨기고 사는 이 관절들보다는 휘어짐으로 여분을 두는 나무가 존경스럽다. 휘어진 물길에서 물을 얻어 휘어진 나무들. 허공을 나는 새들만이 바람을 다스릴 줄 아는 것이 아니다. 저 허공의 가지들도 바람을 다스릴 줄 아는 새를 기묘한 부분에 숨기고 있어 웬만한 바람에도 아름답게 비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새가 앉았다 날아간 그 나뭇가지는 새를 닮았다. 물에 그 모습을 두고 마주보며 사는 어떤 나무는 제 몸 구석구석에 물고기들이 돌아다닌다고 말하듯 흔들렸다. 나는 그 나무 밑에서 담배를 피우다 얻어듣게 된 이 말들을 짧은 시간에게 던져 주며 최대한의 게으른 취미를 얻어 낼 작정이다.

산에 가면 모든 나무들이 나무가 아닌 새나 혹, 여러 가지의 생물로 보인다. 한번은 생강나무가 한창 꽃을 달고 있을 시기에 난 꽤 두툼한 가지 하나를 잘라 집에 오자마자 꽃이 붙어 있는 작은 솟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다리를 세워 병에 꽂아 놓고 그 향기 나는 이삼 일의 시간을 보냈다. 새의 꼬리는 다 지고 말았지만 그 후로는 꽃망울이 툭, 터지기 직전의 나뭇가지들을 보면 짧은 봄날에만 살다 가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종의 새나 물고기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생강나무새. 이런 새를 본 적이 있나? 안 봤으면 말을 하지 말어.

새장, 또는 어항

마음의 안식 따위는 내겐 없다. 나에게 가장 큰 안식의 시간이란 오로지 흔들릴 때다. 그것이 무엇이든 흔들리면서 이젠 그만 흔들렸으면 하는 시간에 바람을 가두고 울렁이는 시간을 다독이는 것. 어느 지점에 이르러 손에 물집을 바라보되 그 물집이 터져 굳은살이 안 되게 하는 정도의 기술이 붙었다면 제 몫의 취미가 된 것이다. 다만 그것들을 마음의 안식이라는 곳까지는 절대 데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 만약 안식에 다다른 것들이 있다면 그것들은 두 번 다시 불편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옆집에서 그늘이 깊다고 늙은 향나무를 베었다. 나는 그 아무렇지도 않게 나뒹구는 늙은 몸이 탐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몇 번을 지나치다 결국 나는 그 향나무를 메고 왔다. 쓸모를 생각하고 행한 행동이 아니어서 몇 달간을 본의 아니게 건조의 시간을 지나게 된다. 아내에게 물었다. 무얼 만들면 좋을까? 그때 물고기라는 말이 아내의 입에서 헤엄치듯 흘러나왔고 그 후로 거의 웬만한 허공의 웅덩이를 채울 만큼의 물고기를 만들게 된다.

모든 나무는 역설의 존재들이다. 가지를 따라 헤엄치던 꽃의 송이들이 깊이 숨어들어 각각의 물고기가 되어 있는 한 그루의 나무 또는, 물고기들. 물을 가두고 있으니 어항이 되고 새를 가지에 앉히니 새장이 되는 나무들. 나의 다음 생은 오백 년 정도일 것이고 그 기간에 나는 木手(목수)로 살 것이다.

 

瞻部言(첨부언)

오래 갖고 있지 말기. 때가 타기 전에 버릴 것. 主(주)와 客(객)을 한시에 두지 말 것. 누군가 '취미가 좋으시네요'라고 한다면 치욕으로 여길 것. 손끝에서만 놀게 할 것. 나는 알되 그것은 나를 모르게 할 것. 다음 생에 나만 그를 알아보고 한번쯤 職業(직업)으로 삼을 것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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