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취미는 반항이다

 

내 취미는 반항이다




김사과




나에게 반항하는 인간에 대한 최초의 이미지는 영원히 바위를 굴리는 시지프이다. 다시 굴러 떨어질 게 분명한 바위를 굴려 올려야 하는 저주를 받은 불쌍한 시지프 말이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읽었고, 그게 내 사고를 완전히 변화시켰다. 그 책은 한동안 내 삶의 바이블이었다. 나는 ‘시지프’라는 캐릭터에 완전히 매혹되었다. 그는 인간이라는 한계에 대한 반항 그 자체였다. 고결하고 우아했다. 카뮈는 그런 반항 정신을 몹시 사랑했는지 나중에는 아예 『반항하는 인간』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하였다. 나는 순전히 그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그 책을 샀다.

그래서 그때부터인가, 내가 반항을 내 삶의 모토로 삼은 것이?

그러나 단지 반항만을 일삼는 인간은 되지 말자고 생각했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닌 때라도 말이다. 단지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자유스러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언제나 쇠사슬에라도 칭칭 감긴 기분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것저것 재지 말고 죽도록 반항이나 해봤으면 더 좋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러니 이제라도 사실은 단지 반항만을 일삼는 인간이 돼 보고 싶었다고, 그게 진심이었다고 인정하고 싶다.

그런데 내 반항 정신과 취미 생활이 무슨 관계인가? 사실 나는 정말로 평범하게 나의 취미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누구라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 말이나 덧붙일 수 있는 그런 거 말이다. 사교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을 가벼운 이슈들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 보니 나는 매사에 지나치게 진지한 인간이라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가볍게 즐기는 취미 따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글을 쓰다 보니 일단 독서는 취미에 넣기가 뭐하다. 둘째로 음악은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기 때문에 취미 따위에 넣고 싶지가 않다. 나는 음악을 듣지 않으면 죽는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중단한다고 해서 목숨이 위태로워진다면 그건 이미 취미가 아니지 않을까. 가끔은 산책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것은 공기가 좋고 풍경이 여유롭고 인적이 드물고 벤치가 많은 잘 정비된 외국의 도시에서만 그랬던 것 같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쇼핑이 남는데, 그렇다, 나는 사실 쇼핑에 대해서 쓰려고 처음부터 결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셔츠 한 장을 사려고 네 시간 동안 백화점 세 군데를 왕복하고 원피스 하나를 사려고 한 매장을 두세 시간 동안 헤집는 인간인데 그런 식의 행위는 취미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처절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사실 내가 쇼핑에 대해서 쓰는데 가장 커다란 걸림돌이 뭐였냐면 그것은 바로 며칠 전, 팔월 이십육일 오세철 연세대 명예 교수가 사노련과 관련하여 국보법 위반으로 경찰에 긴급 체포된 사건이었다.

그러니까 취미에 대해서 써야 한단 말이지?

오세철 씨가 잡혀갈 때 내가 뭘 하고 있었냐 하면 시원한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그렇다. 영화 감상도 있다. 영화 감상이 나에게 있어서는 가장 취미에 가까울 것이다. 너무 심심해서 할일도 없고 그런데 책도 읽기 싫을 때 혼자 극장에 가서 할리우드 액션 영화를 보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올해 여름에는 특히 극장에 많이 갔는데, 너무 더워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따위 것들에 대해서 쓸 수가 없다. 아무것도 쓸 수가 없다.


늦은 밤 텅 빈 영화관에서 싸구려 영화를 보면서 낄낄거리는 것에 대해서라면 우리의 경찰은 전혀 뭐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아무것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안전한 것이라면 취미로 적합할 것이다. 한편 나이든 마르크스주의자가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꿈꾸는 것은 그런 안전한 취미에서 가장 먼 것인 것이다. 그것은 아주 위험하다. 이십일 세기 대한민국에서는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 경찰에 긴급 체포당해야 할 정도로 위험하다. 경찰의 존재 목적은 한 사회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꿈꾸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사회에 위험하다는 것인가?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진짜 진지하게 하는 말인가? 그렇다면 나는 그 말에 전혀 동의할 수 없다. 내 눈에는 혁명적 노동자 정당을 꿈꾸는 마르크스주의자보다는 경제 지표를 좋게 만들기 위해 거품이 낀 부동산 시장을 인위적으로 부양시키는 정부 공무원들이 훨씬 더 위험해 보인다. 왜 그들은 잡혀가지 않는가?

노동자를 사랑하는 마르크스주의자가 위험할 정도의 사회라면 그 사회에서 위험하지 않을 것은 없다. 그리고 그건 그 사회의 지배자들이 믿고 싶은 것처럼 그 사회가 지나치게 깨끗하거나 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사회가 지나치게 허약하고 병들어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사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칠 사소한 꽃가루도 병든 사회에는 치명적인 질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덩어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병든 사회는 공포에 잠식된다. 그런 약해빠진 사회라면 한없이 안전한, 쓸데없는 것인 영화 감상도 범죄가 될지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내일 밤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영화를 보다가 잡혀갈지도 모른다. 이유는? 나는 모르지만 그들이라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공포 사회에서 취미 생활이 존재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것에 대해서 쓸 수 없다. 차라리 나는 취미를 거부하겠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다. 내 취미는 반항이다. 나는 이 따위 납득할 수 없는 일을 일으키는 이 사회에 반항하겠다. 그게 나의 유일한 취미 생활이다.《문장 웹진/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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