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단풍 외 3편

 

장철문

 

 

 늦단풍

 소주를 먹다

 무릎 위의 자작나무

 참외 꼭지


 

 


늦단풍 




서른두 가마니의 참숯을 들이부었다


뻥 뚫린 풍구다


대장장이의 얼굴이 서쪽으로부터 발그레하다




소주를 먹다




신생아실에서 아이를 데려다 눕혀놓고

만산의, 

두 시간만의 출산이

순산도 너무 빠른 순산이어서

자궁에 혈종이 생겼다는 아내는

요도에 호스를 꽂았는데,

회복실을 빠져나와 끊은 담배를 피웠다

소주를 한 병 사서

어두운 벤치에서 혼자 마셨다

느티나무 가지 흔드는 바람자락에

형이 왔다

와서 

내 어깨를 치고

아이를 들여다보고

아내에게 뭐라고 웃었다

형을 만지고 싶었다

웃음이 환하게 흩어졌다

형, 잘 가!

웃음 한 자락이 남아서 오래 펄럭였다

형, 아프진 않지?

남은 한자락이 마저 흩어졌다


입만 헹군 것이 미덥지 않아서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았다

아내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

술 마셨어?

홍삼 드링크를 한 병 마셨더니, 오르네


아가야, 이 소똥하고 이마받이 한 녀석아!

아빠한테 삼촌이 있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적이

없다

이 물에 불어서 쭈글쭈글한 녀석아!

네가 와서

삼촌이 가셨구나

너를 마중하느라고 엄마가 피를 대야로 쏟았구나




무릎 위의 자작나무




자작나무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다


돋아나고 있다, 가슴에서도

피어나고 있다


두 그루가 마주보고 있다


내 생애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한 번도 채우지 못한

목마름의 샘을

자작나무가 틔우고 있다


자작나무가 나를 보고 있다

내가 자작나무를 보고 있다


자작나무가 자작나무를 낳고 있다


구겨져서 납작하게 눌린 나무가

잎사귀에 피어서

주름들이 지워지고 있다


내가 자작나무의 무릎 위에 앉아 있다




참외 꼭지




여러 날 따지 못했다

때를 놓쳤다

우리 부부는 싸웠고,

참외는 개미가 먹었다

포식을 했다

줄줄 흘러내린 과즙은

까마중이 먹었다

물관과 체관을 지나고

흰 꽃을 지났다

아까 날아오른 두엇은

씨앗 도둑이다

내장으로 가서

곧 항문을 지날 것이다


내 참외를 천지가 먹었다


도둑놈!




시?낭송 : 장철문

출전 : 장철문 시집 『무릎 위의 자작나무』, 창비,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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