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맑은지구'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맑은지구'




   김석범




빵과 우유 대신 꿈과 희망을!


누구든 빵과 우유는 줄 수 있다. 우리는 빵과 우유 대신 꿈과 희망을 주겠다.


문화 예술 종사자들이 주축이 되어 문화 나눔을 직접 실천에 옮기려 결성된 '맑은지구'의 커다란 목표다.

 


올봄 자주 만나 교류하던 문화 예술 관련 몇몇 지인들이 담소를 나누던 중 영상 미디어의 유해 환경에 대한 심각성이 화두로 떠올랐다. 특히 어린이들이 이러한 유해 미디어 환경에 노출된 탓에 벌어지는, 죄의식 없이 행해지는 각종 사건 사고에 한바탕 비판의 목소리들을 높였다. 모였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우리가 직접 나서서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영상 제작 교육을 제대로 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다. 모두들 그 이야기에 공감했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자고 했다. 그날 이후 마치 귀신에 홀린 듯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모두들 내 일처럼 '맑은지구' 홍보에 열을 올렸다. 만나는 사람 모두 우리의 취지에 절대 공감했고 실제 활동에 참여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렇게 사람들과 만나면서 '맑은지구'의 정체성도 분명해져 갔다. 처음엔 구체적인 대상 없이 전국의 초등학교 어린이 대상의 환경 영화 제작에 대한 교육 사업으로 진행했었다. 그러다가 이왕이면 어려운 환경에서 용기를 필요로 하는 대상으로 문화 봉사 활동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중지가 모아졌다. 결국 '맑은지구'는 전국의 문화 소외 지역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 지원 사업인 '환경 문화 캠프'와 환경을 주제로 어린이가 직접 영화를 제작해 상영하게 될 '반딧불 영화제'를 주요한 사업 목표로 설정했다.

 


지난 6개월간 우린 많은 힘을 얻었다. 그리고 삼성생명 본관에서 뜻을 같이한 100여 명의  회원들을 모아 발족식을 거행했다. 사실 처음부터 큰 행사를 갖거나 언론에 노출시키는 것엔 내부적으로 반대가 있었다. 그러나 많은 회원들이 너무 큰 겸손도 자만이 될 수 있다는 지적과 더불어 좋은 일은 오히려 널리 알려서 더 많은 사람들이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는 취지에 좀 거창하지만 삼성생명 국제회의실이란 다소 격에 많지 않는 장소에서 발족식을 거행했다. 반응은 좋았다. 모두들 기회가 되면 참석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많은 분들이 당장이라도 함께하겠다고 성급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우린 1년 365일 중 단 하루만 참여하면 된다고 화답했다.


혹자는 환경 영화라고 하니까 문화 소외 지역 어린이들과 환경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환경 운동은 자연 보호와 같은 일차원적 운동도 아니고 환경 영화 또한 순수한 어린이들을 유해한 영상으로부터 보호하자는 수동적 차원의 영상 교육이 아니라 능동적인 영상 제작 주체로서 스스로 영상 제작 환경을 만들 수 있고 그를 통해 큰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하는 것이다.



아이들과 소통하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겠지만 대상을 물색하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보육원 아이들이었다.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성남보육원이 우리들의 첫 번째 사업 대상이었다. 토요일 이른 아침 강남역 근처에 모인 우리들은 첫출발에 대한 약간의 부담과 흥분이 교차됨을 느끼면서 하나둘씩 차에 올랐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차 안의 공기가 서서히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말을 하진 않았지만 부담을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간간히 농담을 던져 보지만 어느 누구도 봉고차의 무거운 기운을 깨지는 못했다. 장마철이라 잔뜩 찌푸린 하늘은 우리들 마음과 같았다.

 


약간의 과일과 간식을 챙겨 도착한 보육원의 직원들 첫인상은 의례적이다 못해 낯선 방문자들을 다소 경계하는 느낌이었다. 강당엔 이미 50명이 넘는 원아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고 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서둘러 우리들을 소개하는 것을 시작으로 첫 번째 영화 감상 시간을 가졌다. 달변으로 소문이 자자한 모 감독도 긴장한 빛이 역력했다. 사실 원아들의 반 이상은 정서발달장애 아동들로 구성된 탓에 우리들이 조금 긴장한 탓도 있었지만 우리들이 준비한 영상 장비들이 주는 이질감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전달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들은 점점 당황했고 아이들은 반응은커녕 지루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진땀을 빼며 오전 행사를 마치고 점심 식사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먼저 손을 내밀고 식당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당황하던 나는 조그만 손에 잡혀 무작정 끌려가는 형국이 되었다. 그리고 정말 맛있는 식사를 대접받았다. 처음으로 소통을 경험했다.



진정한 환경 영화를 시작하다


식사가 끝나고 본격적으로 카메라를 다루는 시간을 마련했다. 회원들 한 명씩 대여섯 명의 아이들을 한 모둠으로 구성해서 지도를 시작했고, 아이들이 생각하는 가장 소중한 대상을 촬영하도록 했다. 아이들의 시각은 어른들의 그것보다 창의적이다. 정말 잊고 지냈던 경험을 다시 했다. 그동안 아이들의 키 높이에서 세상을 바라본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어른들 눈높이가 아닌 딱 그들 키만큼의 높이로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자 지금까지 보여지지 않았던 세상이 열렸다. 그들이 바라본 대상은 우리가 늘상 바라보던 대상과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들이 잡은 화면 속 대상은 우리들이 늘 바라보던 것과는 또 다른 대상이었다.

 


진정한 교육은 함께하는 것이라고 했던가? 우리가 무엇인가 전해 주는 영상 교육을 한다고 했지만 이 얼마나 큰 오만이었던가? 우린 그보다 더 큰 것을 얻게 된 순간이었다. 어린이는 우리가 지켜야 할 진정한 환경이다. 우린 진정한 환경과 더불어 진짜 환경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그들이 찍어대는 경쾌한 셔터 음에 담긴 영상은 그들의 표정만큼 밝고 신선했다. 아이들이 촬영한 영상을 서로 발표하고 칭찬하고 선물을 주는 시간을 차례대로 갖고 모든 행사를 마쳤다.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차에 오르는 우리들을 향해 하루 종일 수줍게 낯설음을 표현하던 한 여자아이가 조용하게 다가와 물었다. "또 오실 거죠?"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줬다.


돌아오는 봉고차 안은 내려갈 때의 무거움과는 전혀 다른 침묵이 흘렀다. 많은 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뛰어다닌 탓에 피곤도 하겠지만 누구 하나 잠을 청하는 사람 없이 그저 묵묵히 알듯 말 듯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며 긴 생각에 잠겼다. 우린 다시 출발지인 '맑은지구' 사무실 앞에 모였다. 조촐한 첫 번째 사업에 대한 뒤풀이를 시작했다. 한 사람씩 그날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다. 모두들 같은 생각이었다. 우린 그날 내내 행복했다.

 


며칠 후 보육원에서 전화가 왔다. 의례적인 인사말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봉사 단체가 이곳을 찾았지만 이번처럼 즐거운 방문은 처음이었단다. 무엇이 좋았냐고 물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이 생겼어요."

다시 한 번 우린 행복했다.


'맑은지구'는 곧 다문화 가정 아이들과 새터민 아이들을 찾아간다. 우린 다시 긴장할 것이고  낯설어할 것이다. 그리고 또 행복할 것이다.《문장 웹진/2008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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