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원(詩源)

 

정재학


 시원(詩源)

 Temple of The King

 微分 ― 낭객

 微分 ― 편지

 

 


시원(詩源) 




태양이 지나다니지 않는 막다른 어둠에서 빛을 들을 때가 있다

어느 쪽 귀가 먼저였는지 알 수도 없이 순식간에 칼이 꽂히듯 내 두 귀를 관통한다 직선적이지만 첫 담배처럼 몽롱하다 그것은


그 순간은 몸 전체가 두 귀 사이에 담겨 있는 것 같다


꽂힌 빛이 뒤틀린다

내 귀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연두색 피를 흘린다

시작점을 알 수 없는 빛, 단지 과정일 뿐 내 귀를 주파해 낸 빛이 어디까지 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모든 소리들 멀어지고

내 목소리만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린다

아니, 온몸에서 울린다

나는 잠시 종이 되는 수밖에

발밑으로 흘러내리는 종소리

아주 잠시 그것을 볼 수 있다




Temple of The King




사원 밖에는 천년 묵은 거대한 나무가 서 있었다. 사계절을 동시에 지닌 은행나무, 끝자락에서 노란 잎이 취할 만큼 나린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색채가 떨어지는 계절의 하류에서 등 푸른 여우 두 마리가 몸 비비고 있었다. 작은 이파리들이 습자지처럼 떨린다. 흩날리는 가을 밑으로 여름, 봄이 경계 없이 섞여 있었다. 팔월의 볕 속에서도 나는 여름을 제대로 살피지 못한다. 빈 가지 아래에는 여우들의 발톱 몇 개만 남아 얼기 직전의 차가움을 내뿜고 있다. 땅속의 온기가 간직한 천 겹의 겨울. 모든 간섭에서 벗어난 전령사, 잠든 바람을 깨워 나르고. 조금 드러난 뿌리만으로도 왈칵 내 눈 얼어붙은 웅덩이로 만들어 그 위를 오래도록 서 있게 하여, 나무가 사원보다도 종교적으로 느껴졌다. 웅덩이 속에는 삼십여 년 된 돌멩이 몇 개.




微分 ― 낭객




말에 거꾸로 올라탄다 철길을 달렸다 나는 나아가고 있던 것일까 손을 흔드는 사람은 멀어졌지만 그림자는 한동안 크게 다가왔다 새 떼가 하늘을 뒤덮을 때면 변명의 모서리 끝에서 나는 타들어갔다 취기 속에서 잠시 정신이 말짱해지곤 했다 그러다가 총성이 들리면 누구에게 쫓기는지도 모른 채 더욱 빨리 달렸다


이 풍경이 십년이 넘도록 반복되었다 

나는 드문드문 있었던 것 같다




微分 ― 편지




검은 면사를 걷어내자 우산을 쓴 뒷모습


이제 너무 늦었으니 눈만 몇 번 깜박여주고 가세요


自爆과 節制, 그 사이에서 정처 없는 모음들


나는 어쩌면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다 해버렸어요


무늬가 증발한 하얀 기린처럼




시, 낭송 : 정재학

출전 : 정재학 시집 『광대 소녀의 거꾸로 도는 지구』, 민음사,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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