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나는 피아노를 쳤지

 

한때 나는 피아노를 쳤지




오현종




한때 나는 피아노를 쳤다. 팔 년 동안 쉬지 않고 피아노를 배웠으니 잠깐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다. 벌써 이십 년도 더 지난 일이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는 이른바 ‘절대 음감’이라 불릴 만한 천재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천재의 재능에 환호하고, 클래식의 선율에 빠져든다. 그러면 나는? 나는…… 즐겁지 않다. 나는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르처럼 ‘절대 음감’의 존재 따위 믿고 싶지 않고, 저건 그저 드라마일 따름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꼬박꼬박 <베토벤 바이러스>를 시청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건 어쩌면 자학?

 

 

어느 책의 <작가의 말>에 적었듯이 나는 피아노를 끔찍하게 못 치는 아이였다. 여섯 살 때 엄마가 검정색 피아노를 안방에 들여놓은 뒤로 피아노는 줄곧 애증의 대상이었다. 피아노를 가르치러 방문하던 강사는 건반을 잘못 누를 때마다 모나미 볼펜대로 손가락을 딱딱 두드렸다. 피아노 선생답지 않게 짧고 퉁퉁한 손가락으로 여섯 살 꼬마의 코와 귀를 쭉쭉쭉 잡아당기기도 했다(그럼에도 내 코는 그리 높지 않다).

이후로도 수난은 계속되었다. 두 번째로 만난 피아노 학원 강사는 소나타를 한 번 칠 때마다 꽃 모양을 색칠할 수 있게 연습 수첩을 만들어 주었지만, 나는 수시로 건반을 잘못 눌렀다. 결국 깊이 좌절한 강사는 간절한 음성으로 물었다.

“너는 학교 공부도 못하니? 피아노만 이렇게 못 치는 거니? 응?”

세 번째 강사는 내가 박자를 잘못 맞추든 플랫을 누르지 않든 신경 쓰지 않았다. 매달 교습비가 들어 있는 편지봉투만 또박또박 받았다. 어떤 어른도 나에게 결혼행진곡을 쳐 달라거나 피아노 콩쿠르에 나가 보라고 권하지 않았다. 어떤 교사도 음악 시간 피아노 반주를 맡기지 않았다. 나는 바흐도 체르니도 내 방식대로 자유분방하게 편곡하는 데 남다른 소질이 있었나 보다.

네 번째 강사는 가정집에 피아노를 놓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아주머니였다. 그녀는 나에게 안방 책꽂이에 꽂힌 책들을 한 권씩 가져다 보라고 말했다. 책은 당시 아동 전집으로는 최고였던 전설적인 <에이브 문고>였다. 비싼 돈을 주고 들여놓은 책을 피아노 선생집 세 아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아 아깝다고 했다. 나는 피아노 연습은 안 하고 <에이브 문고>만 꼬박꼬박 읽었다. 빌린 책과 피아노 교본을 들고 오가다 보니 어느덧 중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나에게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는 건 피아노를 그만 쳐도 되는 나이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나는 기쁘다 못해 황홀한 마음으로 악보를 전부 동생들에게 물려주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누군가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거다. “그렇게 싫어하면서 뭐 하러 피아노를 계속 친 거요? 학원에 그만 가면 되잖아?” 하지만 그때의 나는 어린이라면 아침밥을 먹고 등교해야 하는 것처럼 반드시 피아노 학원에 다녀야 하는 거라 믿고 있었다. 나뿐 아니라 동생들도 모두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으니까. 여동생은 말할 것도 없고, 노상 밖에 나가 노느라 얼굴이 새까만 개구쟁이 남동생도 베토벤소나타를 제법 연주했으니까.

내가 심한 음치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음악 시험을 위해 운동장 한구석에서 이중창 연습을 하던 나에게 친구는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현종아, 거기서 반음을 내려. 반음만.”

나는 친구가 무슨 이유로 자꾸 반음을 내리라고 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훗날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하리라곤 미처 알지 못했던 나는, 계속 내 멋대로 노래를 불러댔다가 시험 점수를 받고 나서야 음치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언젠가는 여동생이 라디오로 노래를 듣다가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모습을 보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거 들으면 피아노로 칠 수 있어?”

“어려운 거 아니면 칠 수 있지. 왜? 언니는 못 쳐?”

그래. 나는 어떤 노래를 들어도 피아노로 칠 수가 없다. 난 절대 음감이 아니라, 절대 음치니까! 왜 나만! 왜 나만 이런 거야!

나는 한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한 뒤로도 나에겐 어떤 예술적 재능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음악을 팔 년씩이나 배우고도 음정하나 딱딱 못 맞추는 인간에게 대관절 무슨 감수성이 존재한단 말인가? 문학이란 건 어릴 적부터 예술적인 소질이 대단한 아이들만 선택할 수 있는 특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조심스럽게 무언가 쓰기 시작하게 된 건 남들보다 훨씬 늦은 나이였다. 소설이란 건, 나에게 퍽 늦게 왔다.

 

 

그러면 검정색 피아노는 내 인생에서 쓸모없기만 한 것이었을까. 피아노 뚜껑은 굳게 닫혀 있고, 음치인 나는 노래방에서 매번 약한 모습이지만, 악보를 보던 그 시간이 아무 쓸모없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 시간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알려 주었고, 무엇보다 재능 없는 인간이 가져야 할 겸허함 같은 걸 일러 주었으니까. 아름다운 음악 앞에서, 문학 앞에서, 나는 언제나 부끄럽다. 그리고 그 부끄러움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는 마음이 나를 바로 이곳까지 이끌어 왔다.

마지막으로 고백 몇 마디. 노래 권하는 사회는 여전히 난감하기 짝이 없다. 노래방, 노래주점에서 가수 뺨치는 솜씨를 뽐내는 작가들(특히 시인들), 그들의 노래에 반해 하트를 뿅뿅 날리는 이들, 나는 당신들이 무척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래를 못해서 죽도록 탬버린을 흔들어야 하는 음치의 아픔을 당신들은 아는가? 골방에 외로이 앉은 나는 여전히 질투하고, 고로 쓴다. 나는 노래 대신 이야기로 당신들을 유혹하는 세이렌이 되길 진심으로 꿈꾸고 있으니.《문장 웹진/200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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