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들리는 것은 들리는 대로

  

보이는 것은 보이는 대로, 들리는 것은 들리는 대로




김종훈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부터 『시간의 부드러운 손』(2007)까지 김광규가 상재한 아홉 권의 시집 첫머리에는 출판사의 관행에 따른 것으로 보이는 ‘자서(自序)’ 내지 ‘시인의 말’이 적혀 있다. 보통 이와 같은 글에는 그동안의 감회나 앞으로의 포부가 밝혀져 있기 마련인데, 특이하게도 그는 그 앞에 꼭 창작 시기와 시의 편수와 시집 발간 횟수를 적어 두었다. 『크낙산의 마음』(1986)의 ‘자서(自序)’ 첫 문장은 “1983년 가을부터 1986년 봄 사이에 발표한 작품들 가운데서 61편을 골라 세번째 시집을 엮는다”이고, 『시간의 부드러운 손』의 ‘시인의 말’ 첫 문장은 “2003년 여름부터 4년 동안 발표한 작품 가운데 72편을 골라서 아홉번째 시집을 펴낸다”이다. 그러나 두루 통용되는 사실에 기대 의견을 피력하거나 감정을 펼쳐내는 그의 시들을 염두에 두면 이와 같은 현상은 자연스러워 보이기도 하다.

그의 시에서 감정은 늘 사실에 기대 문면에 드러난다. 이런 까닭에 시의 상당 부분은 자명한 사실에 관한 진술로 채워져 있다. 그는 말을 구부리거나 겹쳐놓아 생겨난 의미에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의 시에 새로운 지각의 영역은, 엇갈린 말과 말의 형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돈된 말과 말의 간격에 의해서 확보된다. 달리 말해 시의 긴장은 구절 안에 담겨 있는 시어들의 짜임에서 생겨나기보다는, 시의 말과 독자의 말, 개인적 말과 일반적 말이 서로 끌어당기며 생겨난다. 초기 시선집 『반달곰에게』(1981)의 해설 「시와 의식화」에서 유종호가 “김광규 시는 행간의 침묵의 공간이 비좁은 대신 작품 전체가 지키고 있는 침묵과 함축의 공간은 넓디넓다”고 말한 맥락이 이와 같을 것이다.

김광규는 나날의 삶과 둘레 세계에 관심의 끈을 놓지 않으며 그것을 쉽고 간략하게 표현하는 시인이다. 많은 평은 일상시, 단순성, 평범함, 산문성 등의 용어로 김광규 시를 요약한다. 그리고 그 안에 비범함, 아이러니, 모호함, 시적인 것 등이 담겨 있다는 의견을 제출하는 것으로 대개 마무리한다. 리얼리즘이나 낭만주의 등 결론이 판이하게 나오기도 하지만 거기에 이르는 과정은 거의 비슷하다. ‘현실과 일상’은 그의 시적 관심을, ‘평이함과 단순함’은 그의 표현 방법을, ‘아이러니와 우화’는 그의 시가 지닌 의미의 진폭을 요약하는 용어들이다.

평이한 시쓰기가 안이한 사고와 바뀔 수 있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막연한 것을 뚜렷하게 하는 노고를 그는 철저하게 시인의 몫으로 상정하고 있는 듯하다. 보편타당한 소통 가능성의 거름망으로 걸러지지 않는 것은 그의 시쓰기 영역 밖에 놓여 있다. 과잉된 감정의 표현과 요설이 이 밖의 영역에 해당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정념이 소통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가늠한 뒤, 범위가 좁을 수 있는 것들의 특수함과 생생함을 끝내 보편화한다. 그는 견고하고 집요한 이성주의자이다.

그의 등단작 중 하나가 「시론」이라는 점은 그의 견고한 이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이다. 「시론」을 제목으로 단 시는 말에 관해 특별한 관심을 지닌 여느 시인들의 시에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감정보다는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을 등단작으로 하는 시인들의 시를 보기는 어렵다. 그는 「시론」에서 언어를 “불충족한/소리의 옷”이라고 한 뒤 “두려워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아무런 축복도 기다리지 않고//다만 말하여질 수 없는/소리를 따라/바람의 자취를 쫓아/헛된 절망을 되풀이한다”고 하였다. 말의 한계를 인식하더라도 김광규는 거기에서 생겨나는 절망감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그는 슬픔과 축복의 감정을 표내지 않고 그것을 시쓰기의 바탕에 둔 뒤, 삼십 년 이상 그 절망을 안고 일상과 둘레에서 생겨나는 감정과 사실을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의 시는 독자에게 감동을 요구하기보다는 동의를 구한다.

한편 다른 초기작 「영산(靈山)」이나 「유무(有無)」는, 그의 나머지 시적 개성을 보여주는 예이다. 두 시의 제목은 ‘신비로운 산’과 ‘있음과 없음’으로 풀이할 수 있다. 김광규는 신비로운 것을 신비롭다 말하고, 있는 것을 있다고 말하고, 없는 것을 없다고 말한다.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이들이 함께 있어 있고도 없는 것을 가리키면 그 뜻이 모호해진다. 김광규 시의 모호함은, 뚜렷하지만 반대되는 뜻이나 말을 병치시키는 데에서 비롯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아이러니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영산」은 어릴 때는 있었으나 성장한 뒤에는 사라진 산을 그리고 있고, 「유무」는 색상표에도 없는 봄비에 젖은 벽돌집 담벼락의 낯선 색깔을 그리고 있다. 이들은 시간의 격차에 따라, 시각의 격차에 따라 보이기도 하고 보이지 않기도 하는 대상들이다.

모호한 뜻을 지닌 대상을 낯선 세계의 것으로 본 시각은 낭만주의를 그의 시의 특질로 제출하고, 합리주의나 상징계의 바깥에 두는 시각은 실재에 기반을 둔 리얼리즘이라는 꼬리표를 그의 시에 단다. 어느 것이건 모두 아이러니의 방법을 거쳐 얻어낸 진단들이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아이러니는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의 의미를 생성하는 주된 기제이기도 하다. 한때는 열정으로 혁명을 논했으나, 이제는 생계를 걱정하는 친구들의 모습을 나란히 보여주는 이 시는 열정과 생계 어느 한 쪽에 쉽게 편들지도 쉽게 욕하지도 못하도록 한다. 시는 그 동감과 비판 가능성이 확보한 아이러니의 간격을 끝까지 유지시켜 의미 해석의 다양성을 열어 놓는다.

보편타당한 소통의 영역을 중시하고 아이러니의 간격을 중시하는 그의 시적 개성은 최근의 시집에도 지속된다. 『시간의 부드러운 손』에서 그는 시간과 자신과의 조화와 소통을 시도한다. 개별적 감각의 소통 가능성을 타진하는 그의 모습은 첫 번째 시 「춘추(春秋)」부터 보인다. 세월의 뜻도 담고 있는 「춘추(春秋)」에는 ‘소리’가 처음과 끝 두 번 등장한다. 처음의 것은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이고 뒤의 것은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이다. 그는 자신이 들은 “창 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가 소통되지 못할 것을 염려하여 “아내”의 입을 빌려 이 표현을 “허튼소리”라고 거두어들인 뒤, 개별적 감각을 보편성으로 확대시키는 과정을 거쳐 마지막에 끝내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가 들린다고 말한다. 처음과 끝을 장식하고 있는 두 번의 소리는 부정되었다 긍정하는 것으로 아이러니의 간격을 유지하고 있는 한편, ‘꽃 피는 소리’에서 ‘꽃 지는 소리’까지 변모하는 과정에 맞춰 감각의 보편성을 얻어 독자도 시인도 들리는 것이 된다.

하지만 『시간의 부드러운 손』에는 이전의 시집과 갈라지는 지점도 나타난다. 몸과 마음의 소통이 흐트러지고 있는 모습과, 소통의 장에서 물러나는 자신의 모습이 종종 시에 보인다. “정신이 멀어져가는 자리에/몸뚱이 혼자 주저앉아 조금씩 안으로부터 무너지는 소리”(「몸의 소리」)를 듣는 장면은 그 모습의 단적인 예이다. 몸의 균형을 잃은 사람의 시선은 둘레보다는 자신에게 주로 향한다. 그는 조화로운 소통의 영역을 믿고 있으나 자신이 점진적으로 그 세계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느낀다. 시간의 손이 그를 떠민다. 그러나 그는 기존의 세계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보편적 소통의 세계에 대한 인식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의 자리를 준비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식 세계 안에서 그 세계의 존속을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는 “주행차선을/양보하고 천천히 갓길로/들어섰다가 인터체인지 진출로 따라/내려”가야 된다고 하며 자신의 빈자리에 타인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한다.(「어둡기 전에」)  

김광규의 시는 한국 현대시의 전통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생겨난 오해에 찬 시에 관한 통념과 대치되는 면이 꽤 있다. 시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가 애초부터 다르고, 시어 하나 하나에 여러 의미가 꽉 채워져 있어야 하고, 그래서 특별한 경지에 올라야만 시를 이해할 수 있다는 통념을 그의 시는 수정하도록 이끈다. 따라서 오해가 생기기 시작한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김광규의 시가 실려 있다면 통념이 쌓여가는 시간은 지연되거나 사라질 것이다.

그의 시가 지닌 평이함과 단순함이 그 이유의 전제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그의 담담하고 평이한 진술은 시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선입견을 불식시킬 것이고, 둘레 세계에 대한 넓은 관심사는 시는 일상에서 유리된 고상한 것이라는 오해를 수정할 것이며, 수수께끼를 싫어하는 그의 명징한 언어는 시어에 밑줄을 치고 해석을 다는 관행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고, 끝까지 단일한 해석을 거부하는 시의 의미는 주제를 한 줄로 요약하려 하는 참고서의 관행을 막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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