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사람을 만나다

 

과거의 사람을 만나다




길상호




주대 형! 시로 만난 형의 첫인상이 어땠는지 아세요? 사진첩 속에 들어가 앉은 오래된 얼굴이었지요. 시 속의 아버지도, 어머니도, 누이도…… 만나게 되는 사람마다 현재의 모습이 아니었으니까요. 흑백의 시대 막 건너온 풍경들을 펼쳐 놓은 것 같았지요. 하지만 그들이 지니고 있는 표정은 하나같이 너무도 생생해서 그 상한 얼굴이 다 만져졌어요. 편집장을 맡고 있던 저의 고민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었지요. “저 과거형의 얼굴을 현재형으로 바꿔 놓을 수 없을까!”

골격은 크지만 마른 몸, 머리가 덥수룩한 시인을 떠올려 왔는데 형은 정반대의 모습을 하고 나타났지요. 자그마한 체구, 장난기 어린 눈, 젊은 감각의 옷차림……. 그 당혹감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시와 사람이 이렇게도 다를 수 있구나! 생각했지요. 그러나 그것은 겉모습에 불과했어요. 술을 마시면서 오가는 이야기 속에 형은 현재보다는 과거를 살고 있었지요. 그렇다고 오해는 마시길, 과거와 현재를 우열의 잣대로 본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따지고 보면 저 또한 과거 속에서 더 편안한 사람이니까요.

 

 

제가 시집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이야기할 때 형은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수용을 했지요. 하지만 어떤 시인이 자신의 분신 같은 시에 꼬투리를 잡는데 마음 편할 수 있었겠어요. 그것도 까마득한 후배 놈이 그러는데……. 출판사에 속해 있는 저의 입장과 17년의 공백기라는 형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꾹 참고 있었겠지요. 지금에서야 술자리마다 “새까만 후배 놈이, 글쎄, 내 원고를 다시 써 오라고 돌려보냈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지만, 사실 저도 마음이 편했던 건 아니었지요. 아무튼 몇 달 후 새로운 원고가 도착했을 때 저는 다시 한번 놀라게 됐지요. 거기에는 1980년대와 2000년대를 잇는 독특한 풍경이 담겨 있었으니까요. 그 짧은 기간에 저의 가장 큰 고민이 사라져 버린 거죠.

형 시집 제목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요? 사실 제가 전화를 걸어 제시한 제목은 시의 내용 중 한 문장 ‘나의 꽃을 지운다’였지요. 통화 상태가 안 좋았는지 형은 ‘꽃이 나를 지운다’로 받아들였고, 순간 저는 처음부터 그리 생각한 것처럼 “네, 그 제목 어떤가요?” 물었지요. 형은 흔쾌히 받아들였고 나중에 ‘나’를 ‘너’로 바꾸기는 했지만 서로 만족해하던 기억이 있네요. ‘잘못 든 길이 지도를 만든다’는 강연호 시인의 시구(詩句)를 형 시집 제목을 정하면서 다시 한번 떠올렸지요.

우여곡절 그렇게 탄생한 시집, 그때부터 형의 시에 대한 열정은 더 불이 붙었지요. 제가 맡아 작업한 이번 시집이 그 계기가 된 것 같아 저도 덩달아 힘이 나더군요. 전자우편을 통해, 때로는 전화 음성을 통해 전해지는 시들은 사실 저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답니다. 워낙 칭찬에 인색한 놈이라서 매번 지적 사항을 늘어놓았지만, 시마다 형 특유의 서사와 재치가 살아나 있었지요. 그리고 최근 시작한 사진 작업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요. 남루한 풍경 속에서 삶의 빛나는 순간을 포착해 내는 시선, 사진의 형태로든 시의 형태로든 그 시선 닿은 곳마다 밝은 꽃이 필 것을 믿어요. 그러고 보니 시집 제목을 ‘꽃이 너를 피운다’로 할 걸 그랬네요.

시집이 나오면서 형과의 만남도 잦아졌지요. 그 전까지는 후배 놈한테 아부하는 것 같아 싫었다며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술도 사고 밥도 사고. 생각 없는 후배지만 그렇게 얻어먹고 다니는 게 좋을 수만은 없었어요. 내가 아무리 가난해도 술 한 번 살 수 있는 기회는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을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형이 술 취해 잠들었을 때 기회가 온 거지요. 그리고는 며칠 뒤 형은 마음 아픈 이야기를 꺼냈어요. 17년 공백기를 거치면서 그래도 시를 잃지 않으려고 시인들이 모인 자리라면 전화를 받자마자 달려갔다고. 그런데 그곳에서 할 일은 술값을 계산하는 것뿐이었다고. 그런 과정이 반복되면서도 술자리의 전화를 피할 수 없었다고. 그걸 다 알면서 당하다니, 참 바보 같은 사람이다 생각도 들지만, 어쩌면 그런 면 때문에 형이 아직 시를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세상 잘못된 일들 다 따지고 살면 스스로도 삭막해지지 않겠어요?

 

 

말이 나온 김에 이제 술자리도 줄였으면 해요. 이런 말 하면 “너나 좀 잘하세요.” 다 비웃겠지만 이제 건강 챙기셔야죠. 병원 드나드는 일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은데, 그러다 다시 시작한 시 또 버려지면 안 되죠. 저도 잠시잠깐씩 나가 돌아다니는 정신을 잡아 두려고 무지 노력하고 있답니다. 농담처럼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건강한 생활에서 건강한 생각이 나온다는 말을 요즘 절감하기 때문이지요. 내 몸 아픈 게 나 하나의 문제로 끝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아픈 몸이 만들어 내는 부정적인 생각들이 시에 배어들고, 또 그것에 영향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 또한 죄라는 걸 깨달았거든요. 

어제는 형 블로그에 들러 오려 놓은 사진과 글귀들을 오래 둘러보다 나왔지요. 솜사탕을 건네는 할머니, 뻥튀기를 튀겨 내는 할아버지, 포장마차를 지키고 앉아 있는 젊은 남자, 길거리에 누운 사람들……. 사진들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의 시는 저들의 삶을 이용해 배를 불리지 않았나 하는.

손도 없이 발도 없이 다가와서/그늘은/버려진 이들을/아주 오랫동안 안고만 있었다./그리고,/빛을 향해 걸어가는 이들의 뒤에서는/가만히 그들의 등이 되어 주었다.

형이 사진 밑에 남겨 놓은 글귀의 ‘그늘’처럼 ‘가만히 그들의 등이 되어 주’는 게 시의 역할일 텐데, 빛나는 시 한 편을 위해 끙끙댔던 제가 불쌍해지는 밤이었지요. 저뿐 아니라 많은 시인들이 이런 반성을 하면서 시를 쓰겠지요? 자정 작용도 멈춘다면 정말 문제가 심각해질 거예요. 제가 썩는다고 여겨지면 그동안 그랬던 것처럼 죽비 같은 한마디 또 던져 주세요. 시가 되었건 사진이 되었건, 그 말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면 뒤통수를 한 대 갈겨도 좋고요. 반대의 경우라면 당연히 저도 그리할 거니까요.

갈수록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벌어지는 걸 느껴요. 이런 날에는 나를 비롯해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 모두 잡아다가 과거형의 풍경 속에 풍덩 빠뜨리고 싶어요. 그 풍경들이 몸에 깊숙이 배일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는 거죠.

형의 시,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현재를 살더라도 과거형의 그 마음 잊지 않길 빌어요.《문장 웹진/2008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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