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기울어져도 외 3편

 

김해자

 

 

 저는 기울어져도

 

 축제

 불을 피우다


 

 


저는 기울어져도




강 속으로 처박힐 듯 비틀린

포플러 나무, 반쯤 드러난 허연 가랑이 사이로

산뽕나무 몇 줄기 푸르다 곧다


애초에 벼랑에 뿌리내리진 않았겠지

댐이 생기면서 강물은 불어 오르고

흙이 무너져 내리며 발 닿을 길 없는 허공 중

허둥대다 바둥거리다 차츰 물가로 기울어졌겠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리어, 산다는 건

때로 목까지 차오르는 물살을 견디는 일

무량한 강물 위로 몸의 반쪽 엎어지고 포개지며

수많은 낮과 밤을 홀로 버티는 일

    

그러던 어느 날

산뽕나무 씨알 하나 날아왔을 테지

하고많은 땅 다 두고 하필이면 거기에 떨어졌겠지


산다는 건, 알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어 몸을 내주는 일 저도 모르게

얽혀 한 몸이 되기도 하는 일


바람에 헤작이는 푸른 물살 위

굽은 그림자 하나 흔들리고 있다

곧은 살붙이 안은 채 함께 젖어가고 있다 




 




어무이, 

오늘은 혼자 사는 친구 어무이께 살을 보냈십니더

세상에 등 떠밀린 후배가 우렁이와 함께 고이 키워낸 하얀 살

보내고 나니 하얗게 하얗게 눈이 내립니더

청춘의 반나마 쫓기고 갇혀 지낸 불효막심한 친구 어무이께

살을 보내는 것은 내 저지른 죄 한 톨이나마 덜기 위함입니더

아가 아가, 뭐시 묵고잡냐?

핏덩이 손녀딸 우유 먹이고 재우며 끼니때마다

김 모락모락나는 하얀 살밥 고봉으로 퍼담으시던 어무이, 

의료보험증도 통장도 없는 막내딸 몇 달째 산바라지 하다 

살 한 가마 연탄 삼백 장 탑처럼 쌓아두고 울며 가시던 당신이 생각나서입니더

살로 태어나 살 먹고 살 부벼 살 낳으신 어무이,

당신이 빚어놓은 이 살로 이 삶 다하도록 살다

살 다 벗어던져 아픔 없는 세상에서 만냅시더 고마 




축제 




물길 뚫고 전진하는 어린 정어리떼를 보았는가

고만고만한 것들이 어떻게 말도 없이 서로 알아서

제각각 한 자리를 잡아 어떤 놈은 머리가 되고

어떤 놈은 허리가 되고 꼬리도 되면서 한 몸 이루어

물길 헤쳐 나아가는 늠름한 정어리떼를 보았는가

난바다 물너울 헤치고 인도양 지나 남아프리카까지

가다가 어떤 놈은 가오리떼 입속으로 삼켜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군함새의 부리에 찢겨지고

가다가 어떤 놈은 거대한 상어 고래의 먹이가 되지만

죽음이 삼키는 마지막 순간까지 빙글빙글 춤추듯 나아가는

수십만 정어리떼, 끝내는 살아남아 다음 생을 낳고야 마는

푸른 목숨들의 일렁이는 춤사위를 보았는가

수많은 하나가 모여 하나를 이루었다면

하나가 가고 하나가 태어난다면 죽음이란 애당초 없는 것

삶이 저리 찬란한 율동이라면 죽음 또한 축제가 아니겠느냐

영원 또한 저기 있지 않겠는가




불을 피우다




무쇠솥 달구는 장작불도

구겨진 종이 한 장부터 시작한다는 걸

눈보라 치는 아궁이 앞에서 배운다 소리 없이

오래 타는 참나무도 저 혼자는 불붙지 못하나니 

잘 마른 잎과 잔가지들이 몸을 태우고야 

장기전에 들어갈 수 있나니 숱한

불쏘시개들의 분신을 보며 다시 배운다  

아무리 한 구덩이에 들어가 얽혀도

다리 펼 자리는 있어야 한다는 걸 서로

얹고 걸치되 위아래 옆으로 뻗어나갈 틈이 없고서는

서로가 서로를 불러들이지 못하나니 

믿고 기다릴 일이다 조금 더디게 때로 급하게

어떤 놈은 조용히 어떤 놈은 시끌벅적하게

모두 저 생긴대로 어우러져 불꽃 찬란히 타오르나니 

부지깽이 휘저어 함부로 쑤석거리지 말 일이다

허나 잊지 말 일이다 뜨거운 금빛 혀와 풀어헤친

머리카락 사이 푸르게 빛나던 불의 눈물방울을

이미 사그라진 불쏘시개들의 소신공양을




시­·낭송 : 김해자

출전 : 김해자 시집 『축제』(애지, 2007)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