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용 강정

 

처용 강정



김소연




나는 강정의 고향집 남해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강정의 부모님이 쓰시던 안방에서. 오른 편에는 장롱이 있었고 머리맡에는 문갑이 있었고 왼편 위쪽에는 누군가의 시가 쓰인 붓글씨 액자가 걸려 있었고, 소설 쓰는 선배와 후배 사이에 내가 누워 있었다. 보송보송하게 비누 냄새가 나는 정갈한 이불을 덮고 누워서, 강정이 쏙 빼닮은 강정 엄마의 음식 솜씨에 대해 감탄하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강정 고향집 목욕탕 욕조 안에 있던, 강정 엄마가 담그신 술을 야금야금 빼냈다. 화수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산해진미를 다 음미하려면 그 수밖에는 없었다. 강정이 어릴 때 쓰던 방에서 어릴 때 읽던 누렇게 빛바랜 책들을 만져보며, 책상 유리 밑에 끼워진 깔끔하고 샤프한 어린 강정의 사진을 훔쳐보며, 거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남해의 푸른 바다를 내다보며 그렇게 하룻밤을 보냈다.

 

 

연락도 잘 안 하고 분명코 잘 해주는 것도 없을 텐데, 그 나이가 되도록 장가도 안 가고 있는 건달 아들을 강정의 부모님들은 어여뻐했다.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은근히 배어 있기도 했다. 아들이 데리고 온 이 떨거지들에게도 극진한 대접을 해 주시는 표정에서 그게 읽혔다. 강정은 아침에 나갔다가 들어온 아들처럼 천연덕스럽고 무심하게 굴었다. 되레 우리가 더 자식처럼 살갑게 굴었다.

아침에 길 떠나는 우리에게 강정의 부모님은 고사리밭(강정이 시를 써서 번 돈으로 산!)에서 직접 키운 고사리를 한가득, 직접 담근 오가피주를 한가득, 손에 들려 주셨다. 강정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다. 객지에서 살고 있는 막내아들을 이 알지도 못하는 이들에게라도 ‘잘 부탁하고 싶은’ 마음을 양손 가득 챙겨 들고, 우리는 나머지 유람을 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강정은 부산하고도 남해하고도 어울리지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홍대 앞이 마치 고향인 사람 같기만 하다. 서울이 객지인 사람이 아니라, 홍대 앞에서 커 온 아이 같은 느낌. 그래서 나는 홍대 앞만 나가면 강정에게 문자를 보낸다. “홍댄데.” 그러면 강정은 바람을 머리카락에 묻히고 눈앞에 나타난다. 누구랑 만나고 있었어도 강정을 불러내어 함께 노는 일이 나에겐 제일 편하고 그리고 기분이 좋은 일이다. 강정을 만나는 게 기분이 좋다고 해서 내가 강정과 친한 건 아니다. 강정과 나는 이상한 관계다. 한번은 2차로 자리를 옮기며 홍대 골목을 나란히 걷다가 강정이 내게 말했다. “10년 넘게 한 남자랑 살다니 신기하다……” 내 대답은 이랬다. “10년 동안 그 남자랑 살은 건 너잖아. 난 아냐.” 강정은 낄낄 웃으며 긍정했다. 10년도 더 된 일이다, 강정을 처음 만난 것은. 그때부터 줄곧 나는 강정과 한 남자를 공유하며 살아왔다. 한 남자를 공유한 여자들끼리 갖는 요상한 공모의 전선이 있다면, 아마도 강정과 나에게도 그 마음이 있지 싶다. 함께 그 남자의 흉을 보는 대화에 우리가 가장 화려하게 화합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11년 전에 우리는 같은 날 같은 출판사에서 시집을 냈다. 그때의 강정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잘 나가는 소년의 몰골이었다. 군대에서 갓 제대한 핸섬보이 강정은 그때부터 나에게는 랭보를 꼭 빼닮은, 천재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10년 뒤에 우리는 또 같은 계절에 시집을 냈다. 강정 시집이 나와 축하하는 조촐한 자리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강정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초간단 술상을 차려주었다. 강정이 10년 만에 낸 시집에 대한, 나의 충심 어린 존경의 표시였는데,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나 콩나물국이라도 끓여 먹이고 싶었는데, 눈을 떴을 때 강정은 표표히 사라지고 없었다.


강정은 언제나 그렇게 표표했다. 있는가 싶으면 없고 없는가 싶으면 있었다. 그의 표표함이, 그 정처 없음이 내게는 전혀 불안해 보이지 않는 것은 그가 지닌 순정을 엿보았기 때문이다. 한번은 해가 뜰 무렵 어느 횟집에서 잔뜩 술에 취한 강정이 말했다. “나는 내가 시든 산문이든 쓰면은, 그 여자가 보고 있을 것만 같어.” 10년 전에 헤어진 여자, 정말로 사랑했던 여자. 너무 사랑해서 자기가 죽을 것만 같았단다. 그래서 살려고 헤어졌단다. 그 말에 나는 ‘왜 그랬어’ 따위의 사설은 붙이지 않았다. 이해가 됐다. 어떨 때는 경계와 경계 사이의 담벼락 위를 고양이처럼 우아하고 얄밉게 어슬렁거리는 사람이지만, 어떨 때는 발 아래 강아지처럼 충정어린 몸짓이 배어 나오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의 충정은 그가 쓰는 시가 말해 주고, 그의 우아하고 얄미운 보법은 그가 쓰는 산문이 말해 준다. “어쩌면 너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나게 될 것만 같어”라고 말해 주면 강정의 목소리는 한 옥타브가 올라간다. 말만으로도 아주 그냥 좋아 죽는다. 너무 좋아서 깡충거리며 뛰다가 들고 있던 우산을 부러뜨리고야 만다.

나는 강정의 시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다. 특히 요즘, 물이 오른 듯한 그의 시를 읽으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다. 작위가 없이 쓰여지되 적확한 시어를 꽂아 넣고, 중얼거리며 독백하되 단정하게 선언한다. 강정의 시에는 현대판 처용의 페르소나가 있다. 그 처용의 풍채가 그의 문채가 되는데, 그 지점 때문에 나는 강정의 시를 사모하게 됐다. “시 좋더라!”는 말을 어찌나 자주 했던지, 강정은 내게 팬클럽 회장을 맡으라고 농을 건넨다. 칭찬에 금세 으쓱으쓱 어깨를 들썩이는 천진한 처용은 시로써 바라는 게 없는 인간 같아 보여, 시간만 많다면 팬클럽 회장쯤은 기꺼이 해주고 싶기까지 하다.

 

 

요즘 후배 시인들은 나 같은 시인에게도 자꾸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며, 자기들 세대와 그 밖의 세대들의 경계를 그으려고 한다. 선생님 소릴 들을 때마다 나는 “너 강정한테는 오빠 (혹은 형)라고 그러잖아.” 그렇게 말하고 ‘언니(혹은 누나)’라는 호칭을 쉽게 얻는다. 강정은 어떤 면으로도 전혀 선생님스러운 데가 없는 인간이다. 표표하고 홀연한 인간, 영원한 옵바일 것만 같은 인간.

강정은 여름 내내 목발을 짚고 다녔다. 술 먹고 호기롭게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다가 발뒤꿈치가 부서졌다는데, 부서진 그날 몇 시간을 담벼락 아래에서 멍하니 앉아 누군가가 구해 주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그 얘기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그렇지만 목발을 짚고도 늘 술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을 불러내고 노래방에 끌고 가서는 목발을 휘두르며 춤추고 노래하는 강정의 모습은 유쾌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무심하고 표표하고 홀연하고 영원한 옵바인 유쾌한 강정을, 그러고 보니 이 가을에는 만난 적이 없다. 11월에 남해에 또 내려가 강정 고향집 음식 창고를 거덜 내기로 약속했는데, 절뚝거리는 다리가 다 나았는지 궁금하다. 매일을 술 마시며 살아도, 산을 오를 때는 다람쥐처럼 날쌘 강정에게 꼭 봄이 오기 전에 히말라야를 함께 여행하자고, 남해에서 꼬셔 볼 생각이다. ‘여권’이란 것을 한 번도 만든 적이 없는 강정을 나는, 지난 겨울에도 인도에 함께 가자고 꼬시다가 실패했다. 매일 밤 온 우주를 머리맡에 옮겨 놓는, 풍성한 은닉을 즐기는 이 시인의 마음을 잠깐씩 흔들어 보는 게 이제는 내 취미가 된 거 같다.

 


몸이 기억하는 당신의 살냄새는 이름 없이 시선을 끌어당기는 여린 꽃잎을 닮았다

낮에 본 자전거 바퀴살이 허공에서 별들을 탄주하고

잠든 고양이의 꼬리에선 부지불식 이야기가 튕겨져 나온다

내 몸을 껴입은 그가 밤이 가라앉는 속도에 맞춰

거대한 산처럼 자라나 풍경을 지운다

천체를 머리맡에 옮겨다 놓는 이 풍성한 은닉 속엔

한 점의 자애도 없다 온통 가시뿐인 은하의 속절없는 일침뿐이다

                                                                             – 강정의 시 「불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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