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 외 3편

 

김광규

 

 

 춘추

 가을 거울

 이른 봄

 효자손



춘추




창밖에서 산수유 꽃 피는 소리


한 줄 쓴 다음

들린다고 할까 말까 망설이며

병술년 봄을 보냈다

힐끗 들여다본 아내는

허튼소리 말라는

눈치였다

물난리에 온 나라 시달리고

한 달 가까이 열대야 지새며 기나긴

여름 보내고 어느새

가을이 깊어갈 무렵

겨우 한 줄 더 보탰다


뒤뜰에서 후박나무 잎 지는 소리




가을 거울




가을비 추적추적 내리고 난 뒤

땅에 떨어져 나뒹구는 후박나무 잎

누렇게 바래고 쪼그라든 잎사귀

옴폭하게 오그라진 갈잎 손바닥에

한 숟가락 빗물이 고였습니다

조그만 물거울에 비치는 세상

낙엽의 어머니 후박나무 옆에

내 얼굴과 우리 집 담벼락

구름과 해와 하늘이 비칩니다

지천으로 굴러다니는 갈잎들 적시며

땅으로 돌아가는 어쩌면 마지막

빗물이 잠시 머물러

조그만 가을 거울에

온 생애를 담고 있습니다




이른 봄




초등학생처럼 앳된 얼굴

다리 가느다란 여중생이

유진상가 의복 수선 코너에서

엉덩이에 쫙 달라붙게

청바지를 고쳐 입었다

그리고 무릎이 나올 듯 말듯

교복치마를 짧게 줄여달란다

그렇다

몸이다

마음은 혼자 싹트지 못한다

몸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서 

해마다 변함없이 아름다운

봄꽃들 피어난다




효자손




우체국 앞 가로수 곁에

아낙네가 죽제품 좌판을

벌여놓았다 대나무로 만든

광주리와 키와 죽침 따위에 섞여

효자손도 눈에 띄었다 건널목

신호등이 황급하게 깜빡이지 않았더라면

그 조그만 대나무 등긁이를 하나

사왔을지도 모른다

노인성 소양증만 남고

물기 말라버려 가려운 등을

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장난 삼아

간질간질 긁어주던

고사리 같은 손

이 작은 효자손이 어느새 자라서 군대에 갔다

옆에는 나직한 숨결마저 빈자리

어둔 창밖으로 누군가 지나가며

빨리 떠나라고

핸드폰 거는 소리

뒤에서 슬며시 등을 떠미는 듯

보이지 않는 손

벽오동 잎보다 훨씬

커다란 손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부드러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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