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부 작가’ 백 명이 필요하다

 

‘2만부 작가’ 백 명이 필요하다



김성신




최근 한국문학은 큰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 변화의 양상들이 긍정적이라면 좋겠지만 아쉽게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2000년대에 들어와 한국 소설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은 급격히 사라져버렸다.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한국 작가들의 소설은 이제 찾아보기가 어렵다. 잘 팔리지가 않으니 자연 한국 작가들의 작품 생산량도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이는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이윤을 좇아야 하는 출판자본이 한국 소설에 대한 출간을 힘겨워하고 있으며, 어렵사리 출간했다 할지라도 독자들의 무관심 속에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힘을 모으지 못하고 있음을 뜻한다.

한국의 소설문학이 급격한 퇴조를 보이며 내놓은 자리를 일본문학이 채우고 있다. 전체 판매량  면에서도 일본문학은 한국문학을 압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서점에서 판매되는 소설책의 30?40%가 일본소설이다. 출판문화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일본문학은 509종에 발행 부수가 약 153만 부였다. 1백만 부 판매를 우습게 여겼던 10여 년 전 소설시장의 상황에 비해 그리 많은 판매 부수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3만 부만 넘어가도 베스트셀러 목록에 당장 오르는 최근 소설 분야의 전반적인 판매량을 감안한다면 일본문학이 우리의 서점가에서 만들어내는 통계 수치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문학적 저력이 이토록 허약했는지, 어떤 요인으로 한국문학이 판매 면에서 기록적인 쇠퇴를 거듭하고 있는 것인지,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인식하고 파악할 것이며, 과연 타개책은 있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1980년대는 ‘거대담론’의 시대였다. 사회체제의 불합리함에 몸부림치던 시대적 정서는 당대의 문학이 등장시킨 영웅적 인물들과 그들이 펼쳐놓는 거대한 역사적 서사를 통해 심리적 해방감을 느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소설은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다. ‘내면 들여다보기’ 소설이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따라서 인간 내면에 대한 섬세한 심리묘사에서 재능을 발휘한 여성작가들이 크게 각광받았다.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의 박완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와 『고등어』의 공지영,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의 양귀자, 『깊은 슬픔』의 신경숙, 『새의 선물』의 은희경 등 일군의 여성 작가들은 90년대 한국문학을 화려하게 꽃피운 대표적인 소설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가들이 당시 독자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었던 것은 시대적 변화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거대담론만이 문학적 서사로서 인정되던 시대를 관통하며 그 거대함에 눌려 함부로 드러낼 수 없었던 개인의 욕망은 90년대에 들어서자 탈역사적인 방향으로 분출되었다. 90년대의 한국 소설은 독자들의 이런 변화를 적극적으로 반영했다. ‘불륜소설’이네, ‘아파트소설’이네 하는 식자층의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작가들은 당당했다. 90년대 작가들에겐 당대의 욕망에 응답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래서 힘이 있었다. 그들은 거대담론의 전통을 관습적으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이전의 문법을 파괴하고 부정했다. 90년대의 독자들은 당시의 작가들이 펼쳐낸 아기자기하면서도 파격적인 서사들을 소비하면서 동시에 고루하고 오만했던 한국의 문학적 전통이 한 번에 무너지는 짜릿함까지 함께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과 10여 년 사이에 한국문학은 붕괴라는 단어가 언급될 만큼 위축되었다. 90년대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소설가 중에서 공지영을 제외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작품의 출간마저도 극히 위축되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90년대 판매량에 기준이 맞춰진 작가들의 선인세 요구를 출판자본이 쉽게 응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도 작품 생산을 가로막은 무시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어쨌든 2006년 한 해 동안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린 한국소설가로는 『달콤한 나의 도시』의 정이현과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공지영 두 사람뿐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75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자 ‘한국 소설이 1위를 차지한 것이 4년 만에 처음’이라는 기사가 나오며 화제가 될 정도로 한국 소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2006년도에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소설가는 정이현, 김영하, 박현욱, 박민규 등이다. 하지만 이들이 펴낸 책의 전체적인 판매량을 보면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구매욕구가 얼마나 낮아졌는지 알 수 있다.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는 약 12만 부 가량 판매되었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기간을 생각하면 결코 많은 판매 부수가 아니다. 작품이 출간될 때마다 문단과 언론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김영하의 2006년 신작 『빛의 제국』 또한 판매량이 아직 5만 부에 이르지 못했다. 박현욱의『아내가 결혼했다』는 기대만큼 선전했다고 보이지만, 박민규의『핑퐁』은 문단의 높은 평가와 언론의 뜨거운 반응에 비하면 판매량은 적은 편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다. 90년대 한국 소설을 100만 부씩 구입해주었던 독자들의 반응은 ‘정상’이며, 그에 미치지 못하는 오늘날은 과연 ‘비정상’인가 하는 점이다. 문학평론가 황종연은 이러한 관점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현대문학》 2006년 8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영상예술과 공연예술 등 다양한 예술매체들이 비약적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문학예술의 세력이 퇴조하는 것은 불가피하며 당연한 현상”이다. 따라서 “과거 한국문학이 누린 영화는 한국 사회의 저발전이 가져다 준 행운일 뿐”이며, “과거 한국문학이 누린 영광은 비정상이며 지금이 오히려 제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논지는 여러모로 생각해볼 만한 것이다.


지난 10년 간 출판계는 문학 외에도 수많은 주요한 저작들을 펴내며 독자들의 관심사를 깊고 넓게 확장했다. 한동안 각종 역사서를 비롯해 온갖 미시사와 풍속학, 박물학, 예술사, 과학사 등 인문학서들이 출간의 붐을 이루었다. 실제 일어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지식과 깊이 있는 관점들은 섬세하게 삶을 정리해주었다. 독자의 관심과 지식이 잘게 쪼개지면서 동시에 깊어진 것이다. 인문서가 깊이를 추구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다면 자기계발서는 삶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하면서 사회적인 관심의 외연을 넓혀갔다. 오늘날 독자들은 더 이상 어떻게 살 것이며, 또한 살면서 무엇을 할 것인지 따위의 사유를 소설이라는 가공의 현실 속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그러지 않아도 정보와 지식은 충분하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70~80년대 권력이 주도한 고도 성장기를 겪으면서 질보다는 양을 우선하는 사회적 가치관에 염증을 느꼈다. 자연히 90년대는 이전 시대에 대한 반발심이 매우 커질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집단적, 권력적 가치보다는 개인적 삶의 가치가 우선시되는 방향으로 독자들의 관심 영역이 급격하게 이동해 갔다. 양보다는 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90년대 여성소설의 등장과 성장에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에 들어서자 독자들은 다시 삶의 질보다는 양에 대한 관심으로 급격히 돌아선다. 개인의 관심이 정치에서 경제로 이동한 것이 이유다. 정치는 질의 문제이지만 경제는 양의 문제다.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개인적 부의 축적’이라는 화두가 들어섰다. 소설을 읽던 독자들은 인문학을 읽거나 경제?경영서를 보거나 자기계발서와 실용서로 눈을 돌린다. 이런 점은 최근 몇 해 동안 한국소설이 독자를 잃은 주요 원인 중의 하나다.


오늘날의 ‘한국문학 대표작가’들은 90년대처럼 100만 부씩 팔릴 것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지 않는다. 문학평론가 우찬제는 김영하를 두고 “아무리 상을 많이 받고 비평적인 조망을 많이 받아도 그는 ‘2만부 작가’다”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그가 말하는 ‘2만부 작가’는 폄하나 조롱의 의미를 담고 있지 않다. 이 말은 작품을 이해하고 환호하는 2만 명의 확실한 팬들을 위해 스스로 즐거워하며 글을 쓰는 작가에 대해 찬사의 맥락에서 쓴 말이다. 그런 면에서는 박민규의 『핑퐁』도 비슷해 보인다.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문학적 재미를 추구한다는 데 있다. 이들은 소설을 통해 함부로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찾아낸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독자들과 함께 즐기며 나누고자 할 뿐이다. 이런 수다의 장에 100만 명씩 유치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저 2만 명 정도의 독자들만 귀 기울여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오늘날의 한국문학에는 두 명의 ‘100만 부 작가’를 대신할 백 명의 충실한 ‘2만부 작가’가 필요하다. 그런 방식으로 90년대에 발생한 문학 독자의 총수요를 수용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은 대여섯 명의 ‘100만부 작가’를 대여섯 명의 ‘2만부 작가’가 대체한 꼴이다. 한국문학의 위기는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선 우리 출판계가 시대적 변화를 미리 내다보지 못한 탓이 크다. 출판계는 ‘2만부 작가’를 꾸준히 발굴하고 키워내는 작가 양산 시스템을 갖추기보다는, 소설 100만부 판매라는 과거의 영광만 그리워했다. 성실한 ‘2만부 작가’에게 100만 부 판매를 목표로 하는 관습적인 출판마케팅이 종종 추진되었고 이는 곧 실패로 이어졌다. 이는 분명한 출판계의 판단 착오였다.

그러나 이런 실패는 출판계의 실패이지 작가의 실패는 아니다. 예전처럼 팔리는 소설을 왜 쓰지 못하느냐는 식의, 작가만을 탓하는 태도로는 한국문학의 회생을 위한 그 어떤 해법도 찾을 수 없다. 한국문학의 미래는 감각 있고 패기 있는 신진작가들을 출판계가 앞으로 얼마나 많이 발굴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몇 해 동안 한국의 문학 시장을 석권하다시피 한 일본소설들은 여기에 대해 훌륭한 사례를 제공한다.


최근 일본문학은 일단 수적인 측면에서 압도적이다. 서점에서 만나게 되는 일본 작가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하기도 벅찰 정도다.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최근의 베스트셀러 목록만 봐서는 일본소설 열풍을 실감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교보문고에서 집계한 2007년 1월 둘째 주 종합 베스트셀러 50위권 안에서 찾을 수 있는 일본소설은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와 에쿠니 가오리의 『언젠가 기억에서 사라진다 해도』 단 두 권뿐이다. 그렇다면 베스트셀러 없는 시장 석권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이 지점에서 ‘2만부 작가론’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작년 한 해 우리 출판시장에서 발행된 일본문학은 통계가 잡히는 것만 509종에 153만부다. 일본문학은 일종의 작가 공세로 한국문학을 압도한 것이다. 이것은 2만부를 확실하게 팔 수 있는 한국의 작가 80명이 있었으면 충분히 대체가 가능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문학의 부활을 꿈꾼다면 바로 이런 점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선 신예작가들이 양껏 쏟아져 나올 수 있는 시스템부터 구상해야 할 것이다. 그 시스템을 통해 견고한 인문학적 상상력과 정교한 문학적 상상력이 동시에 갖춰진 참신한 작가들을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 정부가 한국문학의 발전을 위해 조성하고 집행한 금액이 100억원 가까이 된다. 기금 조성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다면, 이런 거액의 기금이 신예작가의 발굴과 육성에 좀더 집중되었으면 한다. 우선 작가부터 많아져야 한다. 양질전화의 법칙이다.《문장 웹진/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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