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맘때에는 외 3편

 

문태준

 

 그맘때에는
 가재미
 바닥
 극빈



그맘때에는




하늘에 잠자리가 사라졌다


빈손이다


하루를 만지작만지작 하였다


두 눈을 살며시 또 떠 보았다


빈손이로다


완고한 비석 옆을 지나가 보았다


무른 나는 金剛이라는 말을 모른다


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


그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어디로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여름 우레를 따라 갔을까


후두둑 후두둑 풀잎에 내려 앉던 그들은




가재미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투병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으로 옮아 붙은 야윈 그녀가 운다

그녀는 죽음만을 보고 있고 나는 그녀가 살아 온 파랑 같은 날들을 보고 있다

좌우를 흔들며 살던 그녀의 물 속 삶을 나는 떠올린다

그녀의 오솔길이며 그 길에 돋아나던 대낮의 뻐꾸기 소리며

가늘은 국수를 삶던 저녁이며 흙담조차 없었던 그녀 누대의 가계를 떠올린다  

두 다리는 서서히 멀어져 가랑이지고

폭설을 견디지 못하는 나뭇가지처럼 등뼈가 구부정해지던 그 겨울 어느날을 생각한다

그녀의 숨소리가 느릅나무 껍질처럼 점점 거칠어진다

나는 그녀가 죽음 바깥의 세상을 이제 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한쪽 눈이 다른 쪽 눈으로 캄캄하게 쏠려버렸다는 것을 안다

나는 다만 좌우를 흔들며 헤엄쳐 가 그녀의 물 속에 나란히 눕는다

산소호흡기로 들이마신 물을 마른 내 몸 위에 그녀가 가만히 적셔준다




바닥




가을에는 바닥이 잘 보인다

그대를 사랑했으나 다 옛일이 되었다

나는 홀로 의자에 앉아

산밑 뒤뜰에 가랑잎 지는 걸 보고 있다

우수수 떨어지는 가랑잎

바람이 있고 나는 눈을 감는다

떨어지는 가랑잎이

아직 매달린 가랑잎에게 

그대가 나에게

몸이 몸을 만질 때

숨결이 숨결을 스칠 때

스쳐서 비로소 생겨나는 소리

그대가 나를 받아주었듯

누군가 받아 주어서 생겨나는 소리 

가랑잎이 지는데

땅바닥이 받아주는 굵은 빗소리 같다

후두둑 후두둑 듣는 빗소리가

공중에 무수히 생겨난다 

저 소리를 사랑한 적이 있다

그러나 다 옛일이 되었다

가을에는 공중에도 바닥이 있다




극빈




열무를 심어놓고 게을러

뿌리를 놓치고 줄기를 놓치고

가까스로 꽃을 얻었다 공중에

흰 열무꽃이 파다하다

채소밭에 꽃밭을 가꾸었느냐

사람들은 묻고 나는 망설이는데

그 문답 끝에 나비 하나가

나비가 데려온 또 하나의 나비가

흰 열무꽃잎 같은 나비떼가

흰 열무꽃에 내려앉는 것이었다

가녀린 발을 딛고

3초씩 5초씩 짧게 짧게 혹은

그네들에겐 보다 느슨한 시간 동안

날개를 접고 바람을 잠재우고

편편하게 앉아 있는 것이었다

설핏 설핏 선잠이 드는 것만 같았다

발 딛고 쉬라고 내줄 곳이

선잠 들라고 내준 무릎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겐 없었다

내 열무밭은 꽃밭이지만

나는 비로소 나비에게 꽃마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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