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자 外 4편

 

이정록 

 

       의자

        반달

        물끄러미에 대하여

        더딘 사랑

        쥐눈이별

 



의자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 데다가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반달



                    

이사를 가야 한다


해짧은 겨울저녁

지붕 위에

식구들 운동화를 빨아 널었다


저도 가고 싶었나

뒤꿈치 쪽에 반달 하나씩

얼음으로 웅크리고 있다


날 밝으면 같이 가자

안방 아랫목에 신문지 요를 깔아주자

스르르, 오줌까지 싸버렸다


젖은 몸에

시장기나 앉히고 길마중 나갔나

울상이 된 신문지 위에

생고구마 껍질이 놓여 있다


고구마 껍질에도

눈길 위에도,

새벽 달빛이 서려있다


저도 따라가려고

고구마 한 조각,

앞산 위에 떠 있다




물끄러미에 대하여    



모내기를 마친 논두렁에

왜가리가 서있다,

이 빠진 무논의 잇몸을 오래도록 바라보고 있다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잡으려다

어린 벼 포기를 짓밟은 것이다

진창에 처박힌 벼 이파리의 안간힘 때문에

몸살을 앓는 봄 논,


물은 저 떨림으로 하늘을 품는다

하늘을 따라 키 큰 미루나무가 문안 간다

쇠뜨기도 척추 한 마디를 뽑아 수액을 건넨다


물벼룩과 개구리와 어린 모가

가 닿아야 할 밥의 나라,

세상에 써레질을 마친 논만큼 깊은 것이 있으랴


식도를 접고 벌 받듯 서 있는 외발에게

많이 저리냐? 두렁 쪽으로 물결 일렁인다

어린 순 부러지는 줄 모르고 뛰어다니는

발길 사나운 것이 삶이라서,

늘 배부른 다음이라야 깨닫는 나여


물끄러미, 개구리밥을 헤치고

마음속 진창을 들여다본다

눈물 몇 모금의 웅덩이에 흙탕물이 인다

언제 눈물샘의 물꼬를 열고

깊푸른 하늘을 들일 수 있을까

정처만이 흙에 뿌리를 박는 것,

마음의 바닥에 물끄러미라고 쓴다

 

내 그늘은 얼마나 오래도록

물끄러미와 넌지시를 기다려왔는가?

물꼬 소리 도란거리는 마음과

찬물 한 그릇의 눈을 가질 때까지

나는 왜가리의 발톱이거나

꺾인 벼 이파리로 살아가겠지만,

끝내 무논의 물결처럼 세상의 떨림을 읽어내기를

써레처럼 발목이 젖어 있기를           




더딘 사랑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마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데 한 달이나 걸린다




쥐눈이별


                         


고장 난 보일러를 뜯었다

쥐똥이 수북했다 보일러 돌아가는 소리가

제 심장 박동 소리와 비슷했을까

 

절약 타이머에 맞춰 불길이 멎을 때마다

고 까만 눈동자는 뭐라고 깜박였을까


어미를 우러르는 새끼들의 눈망울도

별처럼 새록새록 젖어 있었으리라


쥐 죽은 듯이란 얼마나 한심한 말인가

작은 창 너머로 그가 물어 날랐을

차가운 양식과 시린 앞 이빨이 떠올랐다


세간의 전부였던 똥 한 줌 남겨놓고

어디로 갔을까 세상 어딘가에 분명

사람 다 죽은 듯이란 말도 있으리라


불씨를 살리고 있는 추운 별들

점검해야 할 것이 하늘뿐일까

파르라니, 작은 눈망울들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