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도 문학소녀, 시에 순정을 바치다

 

내일도 문학소녀, 시에 순정을 바치다



대담 천양희(시인)

진행?정리 박성우(시인)

 

intro

별 보고 나간 기차, 시인이 되다

아빠시인, 오빠시인 그리고 사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오다

시야, 넌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야

내일도 문학소녀, 시에 순정을 바치다

비단주머니와 사각 벼랑

구르는 돌은 둥글다

망원경과 현미경

사당파와 죽란시사

애정, 아끼니까 미워 할 거야

그거 알아 괴로운 기쁨
풍경, 팽팽팽 도는 풍경


 


박성우  제가 마로니에에 나와 있는데요. 오늘은 마로니에와 잘 어울릴 것 같은 천양희 선생님을 만나 뵙겠습니다. 선생님을 만나서 문학소녀 시절에 어떤 가슴앓이를 했는지, 시에 대해 어떤 열망을 꿈꾸었는지, 문학 외에 어떤 꿈을 꾸었는지 이런 것들을 들어보겠습니다.



말문 터서 비집고 들어가기


천양희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박성우  선생님을 처음 뵌 게 몇 년 전에 전주 한옥마을이었던 것 같은데요. 막걸리집에서 잠깐 뵌 것 같고. 제가 전주에서 일할 때, 선생님께서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받으실 때였는데, 다른 일 때문에 행사장에 갔다가…….

천양희  꽃다발 맨드라미 줬었는데…….

박성우  그때 다른 행사와 겹쳐서. 실제로는 따로 뵌 건 처음인 것 같아요. 근데 굉장히 오래전부터 봬 온 것 같은 것은 지면을 통해 봐서 그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양희  서로 시를 통해서 느끼고 그러니까.

박성우  먼저 양해를 구하고 싶은 것은 제가 워낙 말주변이 없어서 웅얼웅얼하면 아아 이런 것이 궁금하구나 하고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천양희  저도 마찬가지예요.


 

 

 

 

별 보고 나간 기차, 시인이 되다


박성우  제일 먼저 궁금한 것이 선생님께서 학교 다닐 때 기차를 많이 타신 것으로 아는데 그때 이야기를 좀 해 주세요.

천양희  기차통학을, 시골에서 자랐으니까 한 시오리 걸어가서 그 역에서 타서 기차로 부산까지 한 시간 넘게 가죠. 6년 동안 기차통학을 했어요. 그때 창밖에 보이는 풍경 그런 것들이 내 시 쓰는 데 굉장한 도움을 줬어요. 그 풍경들은 날마다 보는데 날마다 달라요. 자연은 동어반복을 안 하죠. 그게 내 어린 마음을 풍요롭게도 했지만 추억거리이기도 해요. 살아가는 데 힘들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면 마음의 위안을 받아요. 기차통학을 하면서 시도 읽고……, 그때는 시집도 많이 없었어요. 영어단어도 외우고. 기차 통학 6년은 내게 소중한 시간이었어요.

박성우  기차통학을 하면서도 시골길을 걸어다니셨네요.

천양희  집이 시골이니까 역까지 멀었어요. 우리 동네가 사상과 구포 중간이었는데, 주로 구포역에서 탔어요. 그게 조금 가깝고 걸어가기가 좋았던 것 같아요. 겨울에는 새벽에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들어갔어요. 중학교 때는 쬐그만했거든요. 그래서 늘 부모님들이 마음을 졸이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박성우  별 보고 나가고 별 보고 들어오면서 별 볼 때 시 쓰고, 별 보일 때까지 시 쓰시고…….

천양희  여름에는 굉장히 해가 길잖아요. 내리면 6시, 7시라도 굉장히 환하잖아요. 낙동강변, 쭉 내려가면 우리 농장이 있었어요. 포도도 있고 배도 있고 굉장히 풍성했어요. 내 어린 시절은 좀 유복했어요. 강둑에 서서 이렇게 노을을 보면 너무 아름다웠어요. 그때는 낙동강이 오염되기 전이라 흰 돛단배가, 조개잡이 배였어요. 석양이 이렇게 비치는데 흰 돛단배가 지나간다고 생각해 보세요. 너무나 아름다웠어요. 그러다가 강가에 내려가면 모래사장에 물새 발자국들이 이집트 상형문자처럼 찍혀 있었거든요. 그때부터 내가 작은 시인이었지 않나 싶어요.

박성우  같은 풍경이랄까요. 제가 이 질문을 했던 것은 사실 진짜 궁금한 게 하나 있어서예요. 선생님이 그때 문학소녀 시절에 혼자 시를 끙끙 앓으면서 시를 써서 읽으면서 하셨더라고요.

천양희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날마다 시를 썼어요. 그때 시에 관심 있고 문학성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그랬죠. 날마다 시를 쓰는데,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중학교 때는 그냥 지나갔고 고등학교 때부터 앓기 시작했지. 내가 뭘 할 것인가. 초등학교 때는 외교관도 되고 싶고 발레리나도 되고 싶고 많은 것이 되고 싶었는데, 고등학교 가니까 사물이 눈에 보이잖아요. 내가 뭘 할 것인가. 그렇게 생각할 때 내가 병이 나 버리더라고요. 아프면서 내가 많이 컸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시를 써야겠다 하고 별 보고 물새발자국 보고 낙동강물 보고 그런 것이 마음속에 담겨서 분출하지 않으면 견디지를 못했어요. 내성적이어서 누구한테 말도 못하고 끙끙거리면서 교지에 발표했어요. 경남여고 다녔는데, 영어선생님이, 참 낭만적인 분이셨어요. 한 번은 불러서 너 앞으로 시 써도 되겠다, 그러셨어요. 그것이 두 번째 들은 것이고, 처음으로 들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예요. 그때는 옛날이니까 대회 같은 것도 없었어요. 담임이 작문시간에 뭘 쓰라고 그러더라고요. 동시를 썼죠. 제비하고, 내가 동생이 없으니까 동생에 대해 썼는데, 뽑혔어요. 그 많은 학생들 앞에서 ‘너는 시인이 될 거야’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김한숙 선생님이라고 성함도 안 잊고 있는데, 그 뒤론 뵌 적이 없어요. 춘향이 같은 여자였어요. 너무나 예쁘고 머리도 땋아서……. 나는 시인이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죠. 선생님 말씀하시니까 참 훌륭한 사람인가 보다. 그때부터 나는 시인이 될 것이라고 마음먹었는데 중학교 때는 그게 잘 안 됐고, 고등학교 가서 시인이 되겠다고 굳힌 거예요. 그런데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몇 달을 투병하느라고 대학을 바로 못 들어갔어요. 한 3년을 투병하다가 괜찮아져서 그때부터 학원에 다녔어요. 광복동에 <미화당>이라는 백화점이 있었는데, 그 안에 학원이 있었어요. 우리 시절에는 학원이 그것 하나밖에 없었어요. 몇 십 년 전이잖아요. 새벽에 가지 않으면 자리를 못 잡아요. 시골에서 새벽버스를 타고 미리 가서 자리 장만 해 6개월 공부했어요. 국가고시 패스해서 이대 들어갈 때는 또 본고사를 쳤어요. 지금과는 달라서 그때는 여자를 대학 보내면 팔자 세다 했지요. 시집 잘 가면 제일이다 이런 시절이었어요. 다행히 우리 집은 좀 개화를 한 집안이라 딸일수록 공부를 시켜야 세상 살아가는 데 힘이 된다고 해서 다 공부를 시켰는데, 그래서 본고사 쳐서 고향을 떠나게 된 것이죠.

 



아빠시인 오빠시인 그리고 사슴


박성우  제가 선생님에 대해 공부를 하다 보니까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으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아버지가 소리나 시에 많은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천양희  우리 아버지가 한시인(漢詩人)이었어요. 한학을 많이 하시고 당송시에 대해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어요. 사랑채에 한 달에 한 번씩 지방유지들을 모아서 문자를 내면 시를 지어서 즉석에서 창을 하고. 툇마루에 앉아서 들으면 너무 좋았어요. 그때 우리 아버지도 지방유지였으니까 그때 김법린, 옛날에 문교부 장관이었죠, 그분도 우리 집에 다녀가신 기억이 나요. 그때 동래 범어사에서 스님 하신 것 같아. 우리 집이 유학 집안인데 유교는 종교가 아니잖아요. 그런 분들과 교류가 많았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늘 책을 보시고, 할아버지도 그런 데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 할아버지는 불교에 심취해서 출가를 하시려고 했는데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런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오빠가 둘인데 작은 오빠가 문학청년이었어요. 시를 몇 권씩 써 놓고 그랬는데 등단은 못하고 법대를 갔어요. 결국은 시를 못 쓰고 이 세상을 뜨더라고요. 늘 나보고 시를 쓰라고 한 기억이 나네요.

박성우  선생님 뵈면 제가 항상 느끼는 것이 언제 늙으시나, 하는 거예요. 특히 외모로 말씀 드리는 것은 아니고 시로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제 짧은 생각으로는, 그때 이미 많은 것을 극복한 과정이라서 유일하게 그때부터 시가 선생님 마음속에 깊이 들어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데요.

천양희  맞는 말인데요. 어릴 때부터 그런 영향도 있었고, 우리 동네가 큰 학자나 정치가는 나오지 않았지만 풍광이 굉장히 아름다웠어요. 태백산 줄기가 이렇게 지나가고, 온수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신라시대 때부터 있었던 절이에요. 엄마 손잡고 가끔 따라가면 절간 못 가서 괜찮은 폭포도 있고 뒷산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진달래꽃도 만발하고 거기서 숨바꼭질도 하고. 당산에 소나무 숲이 내던 솔바람 소리. 뒷산에 올라가서 멀리 낙동강을 보면 너무 아름답고. 기차가 우리 동네를 지나갔어요. 그 기적소리 이런 게 다 내 시의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어릴 때부터 계속 책도 많이 읽고. 우리 때는 시집이 많이 없어서 소월시 정도, 영랑시 그랬는데 87년에야 백석시집이 나왔죠. 백석을 처음 대할 때 내 어릴 때 이런 시를 봤으면 좀 더 빨리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박성우  선생님 시를 읽다 보면 좋은 것 중의 하나가 ‘쓰라리게 아프고 아름다운 서정시’라는 생각인데요. 방금 말씀처럼 선생님 시를 읽다 보면 그림이 그려져요. 나머지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지지 않나 생각되는데. 그런 시작의 영향에는 문학소녀 시절이 많이 들어가지 않았을까 생각도 드는데요. 저는 좀 늦게 백석을 알았는데, 혼자 키득키득하고 가슴이 저미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백석 시인 시 중에서 어떤 시를 좋아하세요.

천양희  『사슴』이라는 시집, 좋은 것이 많잖아요.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갈매나무 나오는……. 또 있죠. 「정주성」.

박성우  「정주성」이 등단작인 것으로 아는데. 저는 「여승」이라는 시가 좋은데.

천양희  네, 좋지요.

박성우  문청, 문학소녀 시절을 여쭙는 이유 중 하나가, 저도 백일장 심사도 가 보고 문예현상공모도 가 보고 하면 저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대학특기자 전형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거나 이런 것이 아닌 게 많은 것 같아요.

천양희  나도 해봤는데 머리로 쓰기는 잘 써요. 그런데 학습 받은 듯한, 뭔가 비슷비슷한 게, 어느 고등학교는 너무 틀에 박혀 있어요. 선생님들이 어떻게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런 것 볼 때마다 조금 슬픈 느낌이 들어요. 왜 학생들이 그렇게 해야 하며. 백일장할 때도 뭔가 외워 와서 조금씩 말만 바꾸어서 그렇게 하고. 왜 저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니 시 교육에 잘못이 있어요. 너무 왜곡되게 가르치잖아요. 수능 때문에 시를 이해하고 느끼기 전에 분석부터 해 버리고. 시의 전 모습을 가슴속에 담을 겨를이 없는 거예요.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을 그런 식으로 잘라 놓으니까 마음이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만 살아 있는 것 같은, 그런 마음으로 시를 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요즘은 우리처럼 책을 자꾸 보는 것이 아니라 입시에 갇혀서 책을 제대로 볼 시간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기 놀이라는 것이 컴퓨터 앞에서만 이뤄지잖아요. 시를 진정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놀이 하는 듯한. 신춘문예도 좀 그런 경향이 있잖아요. 앞으로 정말 좋은 시인, 작가들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 정도로 걱정스럽죠. 아마 시를 써 본 사람이면 다 걱정하는 문제 같은데요. 우리나라 시 교육이 달라져야 해요. 입시교육이 저런 식으로 안 되었으면 좋겠어요. 외국에는 자기 주관으로 답안지를 쓰잖아요. 이것은 객관식도 아니고 자기가 생각할 겨를을 안주는 거예요. 교육 자체가 무조건 일류학교만 들어가면 된다. 일류학교만 나오면 다 사람 되는 줄 알고, 사실은 그런 것은 아닌데. 전인교육을 시킬 기회가 없는 것 같고 그런 교육을 받을 자리를 마련해 주지 못하는 어른들의 책임도 있는 것 같아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바람과 함께 오다


박성우  대학시절에 박두진 선생님 만나고, 대학 3학년 때 등단하셨죠.

천양희  예. 3학년 때 등단했어요.  우리 시절에는 참 불행하게도 제대로 교과서도 없이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고등학교도 다른 참고서나 정말로 자기 마음에 담을 만한 책을 잘 읽지도 못했지만, 나는 고등학교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7권을 전독했어요. 그게 나는 가장 기억에 남고요. 다른 학교는 잘 모르겠어요. 부산에는 개천예술제 하나가 있었어요. 경남여고가 부산에선 명문이라 햇지만 시를 좀 쓰는 사람은 별로 없었어요. 한둘이라도 개천예술제에 보내면 좀 격려를 받았을 텐데, 국어선생님이 전부 서울사대 출신이었어요. 시 쓰는 데 관심이 없어요. 뭔가 이론을 이야기하고 했는데 하나도 남는 것은 없고. 오히려 영어선생님이 뭐 하나 내주면서 써라, 그래서 저는 오히려 영어선생님을 더 좋아했어요. 국어 선생님 중 좋은 영향을 준 분은 없었어요. 다른 학교에서는 개천예술제 같은 데 갔던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곳에 못 갔어요. 만일에 참가해서 그때 상을 받았다면 시 쓰는 데 도움이 아니라 마이너스가 됐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그때 좋은 기억은 없어요.

박성우  그때 이미 쓴 시들로 《현대문학》 추천을 받으신 것인가요. 아니면 대학 와서.

천양희  아니죠. 대학 와서. 그냥 지금 보면 많이 부족하죠. 하지만, 그게 그때의 나였으니까.

박성우  선생님은 첫 시집을 좀 늦게 내셨잖아요.

천양희  18년 만에. 65년 대학 3학년 때 《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했는데 이런 저런 사정 때문에 못하다가 18년 만에 첫 시집을 내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박성우  첫 번째 시집이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인데, 그 다음부터는 시를 토하듯이 많은 작품들을 발표하셨지요.

천양희  3년 만에, 2년 만에, 4년 만에 그렇게 나왔죠.

박성우  『사람 그리운 도시』 『하루치의 희망』이 있었고, 사실 제가 선생님 시를 깊게 접한 것은 『마음의 수수밭』때 부터였어요.

천양희  다행입니다. 앞 시집들은 별로 내가. 그때 나였으니까 그렇게밖에 쓸 수 없었겠지만 너무 비명 지르고 나 자신에게 벗어나지 못해서 스스로도 답답한 것을 느끼거든요.



시(詩)야, 넌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야


박성우  요번에 공부 좀 하느라고. 첫 번째 시집 이후에 『사람 그리운 도시』『하루치의 희망』『마음의 수수밭』『오래된 골목』그리고 2005년 『너무 많은 입』까지 봤는데 읽으면서 존경스럽고 부러운 것이, 어떻게 갈수록 시가 젊어질 수 있을까, 존경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만큼 마음을 다스렸을 것을 생각하면 아리기도 하고. 그런 시적인 열정, 영감들은 어디에서 오는 것입니까.

천양희  나 자신을 없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이 세상에 내가 살아남아도 될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뭘 하고 이 세상을 살아 왔나 나 자신에게 물어 보니까 아무것도 마음속에 넣을 만한 것이 없더라고요. 너무 울부짖었다고 할까요. 그 상처에서 밖으로 나오지를 못했어요. 그때 내가 배낭을 메고 남쪽의 곳곳을 다녔어요. 강원도에서 전라도로 경상도로 섬에 가기도 하고. 그때까지도 나 자신한테서 벗어나지 못했어요.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세상과 자꾸 불화하고. 그러다 보니 시가 나밖에 없었어요. 넓은 세계가 안 보이고. 여행이 최고의 수업처럼 생각이 들거든요. 그러고 돌아보니까 내가 뚜렷이 보이더라고요. 세상을 버릴까 하던 것도 접고, 내가 죽을 만큼 제대로 살았는가 하니까 그러지 못했어요. 다시 돌아와서 시에 매달렸죠. 그때부터 다시 시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박성우  그때 이후에 나온 시들이…….

천양희  여행하면서 마음속에 넣어두고 눈에 박혔던 것이 시로 된 것이 『마음의 수수밭』이에요. 거의 10년 넘게 고뇌하고 울부짖고 엎드린 후에 시집이 된 것이죠.

박성우  엎드린다는 말이 나오니까 선생님이 시에 대한 정의를 굉장히 특이하게 내린 것을 봤는데.

천양희  내가 뭐라고 그랬죠?

박성우  언어의, 뭐라고 할까요. 절 사 자…….

천양희  시라는 것은 저만 아는 것이 아니고. 시가 말씀 언(言)변에 절 사(寺)자가 들어가잖아요. 언어로 짓는 사원이다, 그렇게 나는 시를 풀이했거든요. 사원은 구도자가 용맹정진하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시인도 득도를 하면 안 되지만 구도자의 자세로 정진해라 그런 뜻으로 이야기를 했어요. 시인은 말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말에 봉사해야죠. 시는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동안에 내 궤적을 뒤돌아 보면 내 시는 내 목숨에 대한 반성문이다, 나만이 생각하는 것이고요. 내가 시를 쓰는 것은 레일 위를 급히 달리는 기차가 아니라 사막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낙타 같은 것이다, 이렇게 풀이하고 싶어요.



내일도 문학소녀, 시에 순정을 바치다


박성우  그런 면에서 선생님이 가장 촌스럽지 않나 생각 들거든요. (아직도 시에 목숨 건 사람이 있다니!) 아직까지 시에 목숨을 걸고 있는 순정파.

천양희  나는 아직 순정을 가지고 있어요.

박성우  문학에 대한 촌스러운 열정, 뜨거움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제가 앞쪽에 건방지게 촌스럽다고 했는데, 시의 수도자 길을 언제까지 가실 건지요?

천양희  수도자라면 너무 건방진 이야기고, 시에 순정을 바치는 것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아요. 순정을 바침으로 해서 내 열정도 들어가고 다른 사람과 생활이 좀 다르니까 나는 시에 내 마음을 걸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말이 나왔는데 다른 일도 할 수 있고 이것도 하고 하면 시에 순정을 안 바쳐도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도 시 잘 쓰는 사람도 있는데 나는 정말 촌스러운 것 같아요. 그러게 시에 대해 순정을 바칠 때 정말로 시가 나를 봐주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시를 놓치고 딴 곳을 보면 시가 나를 ‘왕따’ 시켜요. 절대로 안 봐 줘요. 나는 시하고 늘 같이 생활하면서 내가 살아 있는 한 촌스러운 열정을 안 놓치려고 해요.

박성우  촌스러운 열정을 따르고 싶어서 그렇게 했고요. 다른 장르보다 시라는 장르는 타고나는 장르고, 노력도 있어야 하고.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안 되는데…….

천양희  그 말에 공감하는데, 조지훈 선생이 7의 영감과 3의 노력으로 시가 완성된다 얘기한 것이 있어요. 내가 집안환경도 그렇고 타고나기는 했는데 노력 없으면 타고난 것도 사라지고 말죠. 타고난 것이 많은 것도 좋지만 노력해서 되는 사람도 되더라고요. 근데 그게 노력만 가지고 안 되거든요. 발레리가 아니고 누구죠. 아침에 깨어 보니까 유명해졌다는 것. 사실은 그게 깨어나 보니까 유명해진 것이 아니라 그만큼 노력을 해 왔다는 것이죠.

 



비단주머니와 사각 벼랑


박성우  같은 맥락에서 굉장히 메모광으로 알고 있는데 메모에 관한 에피소드나…….

천양희  메모를 언제부터 하게 됐냐면, 굉장히 오래 전에 책을 읽다보니 이하라는 당나라 시인이 있잖아요. 이하가 가난한 시인이었는데 27세인가에 요절했죠. 그때는 당나귀가 교통수단이었는지 나귀를 타고 집을 떠날 때 나귀 옆구리에 헌 주머니를 달고 갔대요. 가다가 뭔가 떠오르면 멈춰 서서 적어서 넣고. 집으로 돌아오면 손을 씻고. 나도 글쓰기 전에 꼭 손을 씻거든요. 헌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새 종이에 들어서 새 비단주머니에 넣어 놓고 꺼내 보면서 썼다고 그래요. 그때 내가 감명을 받아서 나도 그래야겠다. 그때부터 수첩을 넣어 다니면서, (수십권이 돼요.) 떠오르면 쓰든가 책을 읽다가 좋은 것이 있으면 쓰고. 메모광 비슷하게 되어 버리더라고요. 그런 수첩에 수 십 권이 되는 데, 시 쓰는 데 굉장히 도움이 돼요. 물론 가슴속에 머릿속에 넣어두면 참 좋겠지만 어느 땐가 잊어먹어요. 메모를 들여다보면 그때 광경이나 풍경이 떠올라요. 시골이면 한 번 더 가 보고. 그렇게 하다 보면 시가 완성되기도 하고. 에피소드가 있는데 메모를 하려고 늘 준비를 하고 다니니까 지하철을 타려고 발을 올려놓는 순간에 떠오르더라고요. 그때 안 쓰면 날아가 버리니까 주섬주섬 꺼내서 썼는데 뒤에서 야단야단해요. 그래도 그것을 쓰고 난 뒤에 미안하다고 하고 비껴 주고 한 기억. 계단을 올라가다가 문득 떠오를 때 쓰는 습관은 지금도 남아 있어요.

박성우  지금도 원고지 작업을 하시나요.

천양희  지금도 원고지에 글을 쓰는데 팩스로 보내야 하니까 A4 용지에 옮겨 적어야 하잖아요. 옛날에는 꼭 원고지에 썼거든요. 왜 내가 그걸 고수했냐 하면 기계를 전혀 못해요. 딱 하나 있는 것이 팩스예요. 이메일도 없고. 그랬는데 옛날에 원고지에 쓰다 보면 원고지 사각형 모서리가 진짜 벼랑 같아요. 거기서 안 떨어지려고 매달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시를 쓴 지 30년이 넘어도 그래요. 그런 마음이 나를 시 속으로 몰아넣어요.



구르는 돌은 둥글다


박성우  선생님 시를 읽다 보면 진지한 생물학자 시인, 진지한 과학자 시인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연 이런 것은 얼마나 많은 독서를 통해 알게 된 것인지.

천양희  저는 가진 게 시간밖에 없거든요. 혼자 생활하다 보면 우선 책 읽을 시간이 많아요. 그냥 무료하게 보내는 것을 내 자신이 용서를 못하는데 낮에는 주로 책을 읽거든요. 책을 읽다보면 생태에 대해서 접하게 돼요. 그래서 꽃이나 새나 다른 것들이 내 시에 많이 들어가요.

박성우  저도 사실은 시를 쓰거나 책을 읽다가 무료해지면 두꺼운 어류도감을 읽는데···….

천양희  정약전 『자산어보』 같은 거예요?

박성우  현대 어류도감인데 굉장히 커요. 전북대학교 김익수 선생님 등 몇 분이 만든 책인데 증보판이 칼라로 나와서.

천양희  책방에 나와 있나요?

박성우  주문하시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책을 굉장히 즐겨 봐요. 물론 그 책을 가지고 시를 쓰겠다는 것은 아니고. 모르는 것들을 많이 알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궁금한 것이 하나 생긴 것이 『너무 많은 입』서시격인 첫 번째 시에 나오는 것을 보면, 그게 「구르는 돌은 둥글다」죠. ‘속이 돌보다 단단해 돌을 던지며/ 돌을 맞으며 사는 게 삶이다 돌을/ 맞아본 사람들은 안다···. 단단해진  돌은 언제나 뒤에서/ 날아온다 날아라 돌아’, 이런 구절이 있었고. 첫 시집에 있는 「인연」이라는 시에 보면 ‘누가 너를 향해 / 돌팔매질하고 있다’는 부분이 나오고.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래된 골목』에서 보면 ‘또 돌 하나 집어 힘껏 던진다/ 던진 돌에 맞은 건 강인데 내가 다 아프다/ 모든 돌은 끔찍해 돌 하나로 때론 세상이 끔찍하다/ 돌이란 건 함부로 던지는 게 아닌 거야’···. 선생님의 시에 대한 열정이 날아오는 돌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는 시정신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시집 한 권 한 권마다 그런 이미지들이 있어요.

천양희  잘 보셨네요. 누가 돌을 던져도 나는 그 돌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다시 도전하겠다는 것도 있고. 사사로운 건데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인데도 내가 돌을 맞는 수가 있거든요. 그럴 때 내 아픔, 그 아픔이 나를 더 단단하게 했다는 것. 그래서 아마 시속에 돌이 많이 들어가는 같아요. 나는 돌처럼 단단하고 싶어요. 그게 무생물이긴 하지만.

박성우  『너무 많은 입』에 나오는 그 돌은 굉장히 둥근 돌인데 둥근 돌은 또 얼마나 많은 상처들로, 둥근 돌이 되었을까, 문학이나 삶이나 시에서 이런 것들을 계속 모서리를 깎아내시는 분이시구나, 생각했어요.

천양희  시를 오래 쓰고 그러면 자기 단련을 하게 되거든요. 돌에 모서리가 없어지듯이 둥글게 되고. 웬만큼 못 넘어갈 일은 없는 것 같고 그래서 타인을 바라볼 때 이해하는 눈도 생기는 것 같아요. 시가 옛날보다는 아무래도 부드럽죠.

박성우  소리를 높여서 사물이나 사람을 치는 것이 아니라, 쓰라림…….

천양희  남을 치면 동시에 나를 치는 것과 같잖아요. 방관자는 절대로 아니고 속으로 넣어서 삭히는 것이죠.

박성우  선생님은 유사성, 말 뒤집어 읽기 같은 것으로, 언어의 유희를 많이 하셨잖아요.

천양희  내가 언어유희 할 때는 세상의 모순에 대한 전략이었어요. 그때만 해도 마음을 잘 잡지 못하고 그럴 땐데 말놀이를 하면서 거기서 구원을 받았던 것 같아요. 내가 무료하거나 혼자서 쉬는 시간에 책도 좀 쉬고 싶을 때는 손가락 놀이를 잘했어요. 그게 끝나고 나니까 말 뒤집기, ‘교육’을 ‘육교’로 ‘선생’은 ‘생선’으로 ‘실상’을 ‘상실’로 ‘자살’을 ‘살자’로 뭐 이렇게. 이번에 시에도 들어갔지만 ‘입산금지’를 ‘지금 산에 들어감’으로 바꾸고 말놀이를 하면서 내 무료한 시간, 세상을 깨뜨리는 방법이었죠. 말놀이도 굉장히 잘 쓰면 괜찮아요. 나도 한때는 많이 써서 지적을 받고 지적해도 좋다고 썼는데 요즘 새삼스럽게 말놀이하는 것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박성우  문청시절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시를 막 쓰고자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요.

천양희  릴케가 한 말을 빌려서 할게요. 시를 쓰지 않으면 살아 있는 이유를 찾지 못할 때 시를 쓰라는 엄혹한 말이 있거든요. 옛날에 여고 시절에 문학소녀였고 그래도 다른 것보다는 시에 관심이 있고 잘 쓴다, 시나 써보자고 해서 대드는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어요. 시가 잡초의 다산전략도 아니고 놀잇감도 아니고. 처음에 시작할 때는 시에 목숨을 걸, 운명을 걸 정신이 돼 있을 때 시를 접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어요.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짧으니까 시가 쉬운 줄 알고. 사실은 시가 쉽지 않잖아요.

박성우  이제는 지겨울 정도인데, 문학의 위기다, 특히 ‘시의 위기다’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천양희  나는 별로 걱정이 안 되는 것이 사람도 한번 죽었다 살아난 사람은 다시 태어나 인생을 절대 낭비하지 않거든요. 시의 죽음, 시의 위기야말로 시를 다시 새롭게 태어나게 하는 최고의 질료가 아닐까.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떤 평자가 그렇게 말했더라고요. 시가 한번 죽어 보고 위기를 맞아 봐야 새로운 시가 탄생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는 시의 죽음, 시의 위기에 대해 그렇게 걱정하는 쪽은 아니에요. 시가 죽고 위기를 맞는 것은 시를 죽이는 사회 탓도 있지만 고뇌 안 하고 고독할 줄 모르고 고통 받지 않으려 하고 고민하지 않는 시인의 탓도 분명히 있어요.

박성우  『너무 많은 입』 뒤에 시집 준비하고 계시죠.

천양희  시를 쓰고 있는 중이지만 아직 시집 준비는 안 하고 있어요.

박성우  사실 다음 시집이 굉장히 궁금하거든요. 또 얼마나 단단해져 있을까.

천양희  저도 궁금해요, 뭐가 나올지.

박성우  어제도 잡지에 나온 선생님 시를 봤는데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겠다, 이런 것은 없으시죠?

천양희  저는 의도하지 않아요. 의도하면 도식적인 머리로 써야 하는데. 저는 그냥 항심으로 대합니다.

박성우  앞으로도 계속 생활, 체험에서 직접 상상해서 가슴에서 나오는 것으로…….

천양희  시라는 것은 체험과 상상력의 산물이잖아요. 세계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발견을 전제로 해야 하죠. 시를 쓰려면 끊임없이 위기를 넘겨야 하고 끊임없이 부딪쳐야 하고, 끊임없이 새로워지려는 것이 시인의 자세라고 생각하거든요. 진정한 시를 쓰려면 시에 대해서 순정을 좀 가져야 될 것 같아요.



망원경과 현미경


박성우  얼마 전에 직소폭포 다녀오셨죠? ‘천양희 시인과 함께 하는 직소폭포 문학기행’으로 알고 있는데요. 문학영재들과 같이.

천양희  부산교육청에서 뽑은 영재들하고, 국제신문하고 어떤 문학교실하고 교류에서 문학기행을 갔다왔어요. 「직소포에 들다」배경이 직소폭포잖아요. 직소폭포에 가서 한마디 해달라고해서 영재들이 있으니까 기분이 좋더라고요. 눈이 초롱초롱해서 직소폭포 옆에 개울가에서 듣고 있는데. 내가 그랬어요. ‘시를 쓰려면 망원경과 현미경 같은 두 눈을 가져라. 망원경은 멀리보고 현미경은 가까이 보는데 시를 쓸 때도 그것이 필요하다. 눈은 구경꾼이 되어야 하고 발은 나그네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발품을 팔아야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여러분은 발품을 팔아서 왔는데 많은 것이 보이지 않느냐’고요. 뭘 발견했느냐 하니까 뭐라뭐라 하더라고요. 학생들한테도 그런 것이 참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공부공부……. 늘 교과서만 들여다보고 있으니까 굉장히 재능 있는 애들도 재능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거든요. 문학기행은 잘했다 싶어요. 보들레르가 여행은 떠나는 데 있다고 했잖아요. 그래도 자기는 파리를 딱 두 번 떠났어요. 그래도 파리를 워낙 사랑해서 파리에서도 가서 본 것만큼 보고 또 좋은 시를 썼잖아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달라져서……. 나는 시 쓰기 전에 꼭 산책을 하거든요. 내가 500미터 가면 500미터만큼 보이고 1000미터 가면 1000미터만큼 보여요. 어떤 때는 굉장한 발견을 할 때도 있거든요. 그래서 산길을 걸어 보기도 하고 물가를 가 보기도 하고 발품을 파는 것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아요. 그래서 늘 나그네처럼 발품을 팔라고 했거든요.

박성우  선생님 시를 보면 선생님은 온몸으로 시를 쓰는 것 같아요

천양희  온몸으로 써야죠. 김수영 시인이 그랬죠. 온몸으로 쓰라고.

박성우  요즘 저도 그런 고민 좀 하는데, 만일 소나무에 대해 시를 쓴다고 하면 소나무에 대해 인터넷에 어마어마하게 들어 있어요.

천양희  인터넷 보지 말고.



새까매서, 못물에 빠진 달


박성우  그런 자세가 벌써 다른 것 같아요. 저희는 인터넷에 막 들어가려고 하는데요.

천양희  너무 젊고 바쁘고 다른 공부 하다 보면 발품 팔 시간이 없겠죠. 나는 어릴 때부터 그러더래요. 달이 밝으면 쫙 대문을 열고 나가요. 아버지가 여자하고 그릇을 내놓으면 깨진다고 조심을 시켰는데 나는 중학교 때부터 달이 밝거나 그러면 못 견뎌요. 엄마한테 대문을 열어 놓으라고 하고 밤에 논둑길을 돌아다녀요. 오면 이슬이 온몸에. 우리 동네에 저수지가 있어요. 못에 달이 빠져 있잖아요. 그게 그렇게 기가 막힐 수가 없어요. 나중에 보니까 「못물에 빠진 달」을 썼더니 김현 선생이 나보고 그게 상처래요. 상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표현된다고 해서 깜짝 놀랐어요. 나는 내 예전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박성우  그렇게 나갔다 오셔서 막 시를 쓰고…….

천양희  예. 그나마 막 쓰는 거예요. 시인지 뭔지 모르지만. 우리 농장에 포도가 막 주렁주렁 달리잖아요.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 그래서 내가 어릴 때 대여섯 살 때 어떻게 포도는 저렇게 많은 젖꼭지를 가지고 있을까. 엄마 젖 같잖아요. 새까매서. 그것도 호기심 나고. 참외도 있고 수박도 있고. 청배라는 애 머리만한 배도 있고. 우리 농장이 20만평쯤 됐어요. 그렇게 컸는데, 어디 다 사라졌지요. 우리 동네에 공원이 하나 있어요. 공원에서 소쩍새가 울더라고요. 새벽 3시 20분. 시를 쓰려고 하는데 소쩍새가 울어요. 가만히 귀 기울이니까 우리 아파트가 수락산 끝자락인데 그쪽에서 안 나고 공원에서 나요. 우리 공원 쬐끄만 근린공원인데. 다시 밤중에는 못 가고, 달이 없어서. 아침 일찍 어디서 울었을까 하고 헤맸다니까요. 어떤 사람은 정동진을 TV에서 보고 시를 근사하게 썼더라고요. 나는 보지 않으면 안 돼요. 기어이 가서 봐야 해. 한 번 가지고는 안 돼. 「직소폭포에 들라」도 두 번 갔다 와서 13년 만에 완성을 했거든요. 나는 과작이면서 더딘 사람인가 봐. 어릴 때 재능은 타고 났지만 빨리 시를 못 쓰고 굉장히 늦게 했잖아요. 늦깎이 시인이에요.

박성우  선생님 시를 느끼다 보면 젓갈 같은 깊은 맛이 나잖아요. 또 나중에 맛이 나고. 재료가 좋으니까 발효도 잘 되고…….

천양희  포도주도 그렇잖아요. 푹 익혀야 향내가 나듯이.



사당파와 죽란시사


박성우  요새 만나시는 선배시인이나 후배시인들은 누구인지…….

천양희  동료 시인이 시집을 낸다거나 하면 가끔 만나는데. 가끔 만나는 시인이 따로 있고. 두 달에 한번 한 달에 한번 만나는 시인도 있고. 윤중로에 벚꽃 보러 가서 김사인 시인, 권지숙 시인, 평론하는 임규찬 씨, 옛날에 고형렬 씨도 있었는데 요새 안 오고, 신경숙 그렇게 저하고 벚꽃 구경을 갔어요. 막 벚꽃이 바람에 날릴 때 탄성을 지르고 밤에 반짝반짝하는 불 들고 장난도 치고 풀밭에 앉아서 얘기도 하고. 얼마 전에 신경숙씨 『리진』나와서 만나서 저녁도 먹었는데, 만나면 마음이 편해요. 어떤 얘기를 해도 다 통할 것 같고. 그러면서도 예의는 다 지키죠. 가끔 보는 시인들은 황동규 선생, 김명인 선생. 시집 나오면 놀러갈 때는 문인수 씨도 섞이고 김윤배 시인도 오고. 옛날에 임영조 선생 살았을 때 사당파라고 해서 사당에서 만나요. 최정례 씨도 내가 오라고 하고. 처음에는 여자는 나 혼자밖에 없었는데 평론도 하는 이승훈 교수, 가끔 좋은 책이 나온다거나 김민수 선생이 학장 됐다고, 황동규 선생님 퇴임할 때 그때도 만났고 시집 나오면 한 번씩 가고 그랬는데, 만나면 참 좋아요. 다들 시인들이니까 개성들이 다 있잖아요. 하는 말마다 다 다르니까 배울 만한 것이 있고. 다산 정약용이 ‘죽란시사’라고 정기모임을 만들었죠. 나는 그게 부러워요. 우리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는데 현대는 바빠서 그런지 몰라도, 매화꽃이 처음 피면 한번 모인다, 살구꽃이 한번 피면 한번 모인다, 참외가 익으면 한번 모인다. 연꽃이 피면 한번 모인다. 첫눈이 내리면 한번 모인다. 그렇게 해서 모였더라고요. 문학 이야기 하고 인생 이야기 하고. 나는 그게 그렇게 부러웠어요. 그래서 모임 이름이 ‘죽란시사’예요. 대나무에 난초에 시에……. 우리 문인들도 가끔씩 만나서 남자끼리 술 먹고 하지만 그처럼 아름답게 만나는 것은 부족해요. 술 먹고 깽판 한번 부리고 불온하게도 하고, 젊을 때 한때 괜찮지만 이왕 만나는 것 좀 아름답게 만나서 시인으로서 보탬이 될 만한 그런 모임도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만나는 문인들은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알고 있지만 시간이 안 맞고 ‘죽란시사’ 같은 모임이 안 될 뿐이지 굉장히 좋은 모임이에요.

박성우  현대에 맞는 ‘죽란시사’가 아닌가요.

천양희  그럴지도 모르죠. 안 보면 뜸하면. 그렇잖아도 아침에 권지숙과 통화하면서 알았는데, 정호승 시인이 창비에서 이번 말에 시집이 나온대요. 그래서 자기가 한번 밥 사겠다고 해서 이번 달 말에 한번 보기로 했어요. 아! 정호승 선생 빠뜨렸다. 후배들도 최정례 시인, 이진명 시인, 조용미 시인, 김경미 시인, 황인숙 시인……. 여하튼 여자 시인들 그런 여자시인들도 가끔 만나서 얘기하고 그래요, 요즘 뜸하지만요. 솔직히 말해서 사람 좋고 시도 좋으면 얼마나 좋아요. 두 개 다 가지기는 어렵거든요. 그래도 시인은 시로써 이야기하니까. 시 잘 쓰는 시인들이 예뻐요. 나한테 어떻게 안 해도 시를 잘 쓰고 있으면 마음이 그렇게 좋아요. 시집을 안 보내 줘도 사서 볼 때도 있어요. 후배시집을 사서 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전화를 잘 못 해요. 마음으로 격려를 해 주고. 전화하는 시인이 있기는 있어요. 가끔은 하는데. 남자시인한테는 잘 안 되더라고. 여성성을 벗어나지 못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나이 되고도 전화하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다 꿰고 있죠. 잡지도 많이 보고 시집도 많이 보니까. 누가 어떻게 시를 쓰고 있는지. 좋은 시, 나쁜 시보다는 살아 있는 시 그렇지 않은 시로 나누고 싶거든요. 살아 있는 시를 쓰는 시인들 보면 내가 안 만나도 예뻐 죽겠어. 만나면 한번 안아 주고 격려해 주고 싶고. 그런 시인들이 속속 보이면 굉장히 시인으로 살아갈 보람도 있고 희망도 느껴져요. 아! 이런 시인이 앞으로 시를 사랑하며 끝까지 놓지 않고 가겠구나 싶거든요. 그런 사람들 자기 나름대로 피를 흘리면서 쓰더라고요. 니체가 그랬잖아요. 피로 써라 피로 쓴 것만이 진실이다, 그게 정신이다 그랬잖아요. 잉크로 쓰지 말고 피로 써라. 머리로 쓰는 시인도 잘 쓰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다가 마음을 넣어라 그렇게 말해 주고 싶네요.

박성우  머리로 하면 짜맞추는 것이 많고 하죠.

천양희  그래도 머리로 잘 쓰는 사람도 있어요. 한 가지 진정성 때문에 감동이 줄어들어요. 참 잘 썼다 싶은데, 우리 정서로는 부족하구나 싶더라고. 나는 불편한 시도 좋아해요. 꼭 편하고 쉽게 해석돼야 시인가요? 이게 뭐지 불편하게 해, 그래 실컷 불편하게 해봐라, 그러면서 읽으면 행간이 보이거든요. 시 읽기라는 것이 행간 읽기잖아요. 그 행간에 그 사람 나름대로의 비애도 있고 세계도 있고 다 보이거든요. 그러면 그 불편함이 편안함처럼 돼 버려요. 나는 불편하게 하는 시가 계속 있었으면 좋겠어요. 젊은 시인들이 그런 시가 보이거든요. 잘 쓰고 못 쓰고가 아니라 불편하지만 마음을 끈다니까요. 살아 있다니까. 해독 불가능하고 소통이 아주 불가능한 시는 엽기를 벗어나는 정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지만 그 속에도 말이 있거든요.

 



애정, 아끼니까 미워할 거야


박성우  여담입니다만 선생님은 시를 잘 못 쓰는 선생님은 안 보신다고 하던데 정말 안 보세요?

천양희  인간적으로 참 선량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만나기는 하는데 역시 시를 못 쓰면 자주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박성우  (시가 안 좋으면) 뭐라고도 하세요?

천양희  예. 좀 치열해라. 말하자면 당신은 2% 내지 1%가 모자란다. 왜 그러냐면 책 좀 읽어라. 왜 그렇게 책을 안 읽느냐. 간접경험도 얼마나 중요한데 그것마저도 안 하고 체험도 안 하면 상상력이 어디서 나오느냐. 책에서도 나오는 것인데. 시의 진정한 미래를 열려 있을 때 가치를 실현하는 것이거든요. 근데 자기가 자기를 닫으면서 어떻게 좋은 시를 쓰겠어요? 내가 뭐라고 이야기하면 소통이 안 돼요. 그 좋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시에 더 열정적이고 몸을 바친다면 얼마나 좋은 시를 쓸까 하는데. 그게 그 사람의 한계예요. 그래서 내가 좋은 책을 읽으면 이것도 봐라 저것도 봐라 하고 다음에 만나서 읽었냐고 하면 안 읽었어요. 그러면 다음에 안 만나고 싶어요.

박성우  저 같은 경우도 앓기 시작하면 너무 오래 앓아서 시도 일도 아무것도 못해요. 끙끙 앓기만 해요. 헤맬 때가 있는데. 저도 몇몇 선생님께서 전화를 한번 주세요. 무슨 일 있냐고. 올 봄에 목련꽃 필 때 돌아가신 소설 쓰는 김지우 선생님도 그랬어요. 뒤에서 많이 울기도 했는데……. 어떨 때는 자기만 하도 많이 나무라고 하니까, 주위에 다른 사람을 시켜 대신 전화를 해서 독려하는 거예요. 안상학 선생님이나……. 저에게 전화가 와요. 가만히 생각하면 나를 지켜보고 있는 선생님들이 계시는데 이렇게 시 쓰면 안 되겠구나. 요새도 장마철에 비오고 하면서 힘들었는데, 선배 되시는 분들은 조그만 애정을 주시지만 받는 사람은 수만 배 되는 것 같아요.

천양희  작은 애정이 아니에요. 오히려 받는 사람보다 크게 줄 것인지도 몰라요. 크게 주는 것이 크게 받는 것이에요. 적게 주는데 크게 받는 것이 시인의 마음이지만. 요즘은 자기 살기 바쁘고 너무 힘드니까 남에게 관심이 없고 진정한 어른이 없다고 하잖아요. 나같이 뭐라고 이야기하다가 사실은 내가 진정으로 생각했는데 상처일 수도 있어요. 그걸 느끼고는 말 줄이기를 하자. 옛날에 야단치고 했거든요. 그 사람 나름대로 사정이 있을 거예요. 나는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으로 했지만 그 사람은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는데 가려서 할 필요도 있겠구나. 좀 나쁜 게 있는데도 야단치는 어른이 없잖아요. 인심이 나빠질까 봐서 그러기도 하고 뭔가 좀 그런 게 못마땅했거든요. 하지만 나는 내가 애정을 가진 후배가 있다면 담금질을 시킬 것 같아요.

박성우  기회 되면 저한테도 나중에 담금질을 많이 해주세요.

천양희  뭐 잘 쓰고 있는데요.

박성우  저 자신이 풀어진 것 같아서 다시 다져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거 알아? 괴로운 기쁨


박성우  엄청나게 많은 책을 읽으시는 것으로 아는데요. 평소 독서 습관이나 이런 것을 알려주세요.

천양희  독서도 습관이고 자기 길들이기고 자기단련, 자기 바로세우기, 간접경험하기 이런 것이거든요. 확실히 습관은 습관이에요. 한 권을 제대로 읽고 나면 또 한 권이 눈에 다가오거든요. 안 읽고는 도저히 못 넘어가요. 시내를 넘다가 돌다리 중간에서 끝날 수는 없잖아요. 기어이 넘어가야지 하는 심정이 되고요. 책을 읽으면 굉장히 좋아요. 친구와 같이 있는 것 같고. 중고등학교 빼놓고 대학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책을 많이 읽었어요. 왜냐면 지식에 대한 바라기도 있었지만 괜히 어려운 것을 읽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때 어려운 책들을 읽은 것이 굉장히 도움이 돼요. 요즘 웬만한 것은 넘어가요. 다독을 한 것이죠. 끙끙대면서도 기어이 읽고야 말겠다. 이것 읽지 않으면 절대 안 된다고 읽었는데 그때는 힘들었지만 책읽기도 시 쓰기처럼 괴로운 기쁨이에요. 읽을 때는 괴롭지만 다 읽고 나면 기쁨이 와요. 친구나 똑 같아요. 같이 갈 친구예요.

박성우  《문장》에 문인을 꿈꾸는 문학청년들이나 막 시 쓰기 하는 친구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으로 압니다. 이 친구들에게 이것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권해주고 싶은 책은 있으신지요?

천양희  너무나 많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솔제니친 등 옛날 명작들은 다 알 거예요. 나는 그중에서도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추천하고 싶어요. 그것은 정신의 긴 투쟁 같더라고요. 『이방인』은 한번 읽어 봤으면 해요. 콜린 윌슨의『아웃사이더』, 그리고 최근에 읽은 파스칼 키냐르, <세상의 모든 아침>이라는 영화의 원작자예요. 그 사람이 쓴 『은밀한 생』은 완전히 백과사전 같아요. 그것을 읽으면 말할 수 없는 것을 많이 얻게 돼요. 그 사람은 자기 온몸으로 글을 쓰고 싶었다고 해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들 있잖아요. 『좀머씨 이야기』라든가 『깊이에의 강요』라든가 『콘트라베이스』라든가 『향수』『비둘기』 이런 것, 그 사람 작품이 은근히 괜찮아요. 조금 됐지만 마루야마 겐지의 『물의 가족』 『달에 울다』이런 것은 독특해요. 나는 독특한 사람들 이야기하는 거예요. 까뮈의 『표리』라는 산문집이 있어요. 그것도 괜찮고. 많죠, 뭐.

박성우  선생님이 권하는 책을 듣다 보니 오히려 제 머리가 아파요.

천양희  우리나라 소설도 좋은 것 많잖아요.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는 나는 특강에서도 말하는데 토속적인 우리말이 아니었으면 노벨문학상에 올라갈 만한 작품이다 싶고요. 황석영 선생 작품도 좋고……, 윤대녕 씨 작품도 좋고, 신경숙 씨는 내가 늘 같이 친하고 좋아하는 후배니까. 천운영 작가도 괜찮대요. 윤성희 작품도 괜찮고요. 내가 소설을 많이 읽거든요. 소설 읽고는 거기서 모티브를 많이 얻어요. 「숨은 꽃」이라는 시가 있는데 오래됐지만, 『오래된 골목』에 있는데, 양귀자씨 『숨은 꽃』을 읽고 모티브를 잡은 거예요……. 다 이야기할 수 없는데 우리나라도 좋은 작가들 많아요.

박성우  (막 글쓰기 시작한 친구들이) 말씀 하신 것의 3분의 1만 읽어도…….

천양희  박민규씨의 『핑퐁」은 아주 독특하더라고요. 젊은 감각으로 또 누가 있죠? 잘 생각이 안 나네. 난 젊은 사람들 것 많이 읽어요.

박성우  이 정도만 말씀하신 것도 어마어마한데요.

천양희  거론 안 된 작가들은 섭섭해할지 몰라도 내가 이름이나 단어가 생각 안 날 때가 많아요. 정말 좋은 작가들 많아요. 옛날에는 강석경 씨 작품도 좋았거든요. 대가들의 작품은 거론 안 하려고 해요. 워낙 유명하니까.

김승옥 선생의 『무진기행』, 그것은 60년대 작품으로선 빠뜨릴 수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청준씨 작품, 『잔인한 도시』 등 좋은 중단편이 많아요. 60년대 작가를 뛰어넘을 젊은 작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박성우  감명 깊게 읽었던 시집도 좀 말씀해 주세요. 선생님이 시인이시라 시인 지망생들이 굉장히 관심 깊게 볼 것 같은데요.

천양희  내가 소설가는 말하겠는데, 시인은 말 해 버리면……. 내가 좋아했던 시인들도 분명히 있는데 내가 이름이 생각 안 나서도 말할 수 없어요. 상처받을까 봐. 시인들 상처 잘 받거든요. 말 안 하는 게 좋아요. 시집도 많이 권하고 했는데 특강에서는 하겠는데 여기서는 좀 그러네요.

 



풍경, 팽팽팽 도는 풍경


박성우  저 같은 경우에는 시 쓰는 습관이 초고를 잡으면 방을 빙글빙글 돌아요. 스무 바퀴 서른 바퀴, 소리 내서 계속 읽거든요. 어떤 것 묘사할 때는, 가령 등나무 묘사 할 때는 몸을 꼬아도 보고. 선생님 시 쓰는 습관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천양희  글 쓰기 전에 손 씻는 것 그것도 습관이죠. 어느 출판사 여사장에게 선물 받은 것이 있는데, 책 나왔다고, 풍경 있잖아요. 내가 풍경을 좋아해요. 추녀 끝에 달아 논 풍경에 왜 물고기가 있는지 다 아시죠.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뜨고 자잖아요. 물고기를 보면서 수도자들에게 용맹정진하라는 뜻이래요. 그것을 알고 인사동에 가서 사려고 했는데 딱 선물을 주는 거예요. 그래서 이사하면서 베란다에 달아 놨어요. 무엇이 안 떠오르면 그것을 딱 때리면 딸랑딸랑 거려요. 너 지금 뭐 하니 뭐 하니 하는 것 같아요. 화분이 많지는 않지만 날마다 물 주는데 걔들과 이야기를 해요. 매일 분무기를 뿌리지만 한 3-4일 만에 물을 듬뿍 줘야 해요. 사랑초라는 것은 보라색 꽃을 가녀리게 피우는데, 폈다 졌다 하지요. 내가 작은 걔들 보고 이야기를 해요. 숨이 팍 죽어 있으면, 2-3일 물을 안 줬다고 그렇게 기가 꺾이면 어떡하냐, 야단을 치면서 물을 주면 조금 있으면 살아나요. 너희들도 물을 안 줘서 기가 푹 죽어 있는데 나도 시가 고파서 기운이 떨어졌다 어떻게 하면 되냐. 괜히 걔들하고 이야기를 해요. 말을 하다 보면 떠올라요. 나는 청소기가 없어요. 그래서 무릎이 아팠는지 모르지만 기계로 하는 것은 소리도 듣기 싫지만 나는 내 자신을 낮출 때가 걸레를 들고 바닥을 닦을 때예요. 불교용어로 오체투지라고 하잖아요. 내 온몸을 가장 낮출 때가 절할 때와 바닥을 닦을 때인데. 나는 글 쓸 때 의자에 안 올라가요. 거기는 내가 다른 책과 화분을 얹어놓고. 그냥 교자상 있죠? 낮은데 앉으면 내가 평상심이 되는 것 같아요. 높이 올라가면 내가 땅하고 멀어지고 붕 떠 있는 느낌이고. 교자상에 다가 앉아서 쓰거든요. 아침마다 절 세 번 하고 반야심경 읽고 기도하면서 시작하거든요. 꿇어앉아서 청소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아마 무릎이 더 안 좋았던 것 같아요. 청소해도 안 될 때는 미물들을 생각해요. 하루살이가 하루만 살다가 죽잖아요. 하루살이도 천일은 물 속에서 지내요. 스물다섯 번 허물을 벗고 하늘을 돌면서 짝짓기를 한번 하고 죽어요. 그것을 어디서 읽다가 순간 머리를 치더라고요. 미물도 자기 삶을 태우다 가는데 시인인 너는 뭐하느냐. 내가 해이해지면 그렇게 나를 야단쳐요.

박성우  하루살이 얘기는 선생님 시집에서 본 것 같은데요. 하루살이는 하루에 세상을 다 읽고 간다고.

천양희  본격시집은 아니지만 내가 25년을 하루 하나씩 썼어요. 뭐든지. 그것을 모았더니 누가 잠언 시집이다 해서 내준다고 해서 냈는데. 사실 내가 시로써 쓴 것은 아니거든요.

박성우  다 명상시집으로 읽히던데요.

천양희  예, 다 그렇게 읽히는가 봐요.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써서 그런가 봐요. 날아가는 매가 70년을 산대요. 70년을 살려면 40년쯤 돼서 자기변신을 해야 한대요. 앞으로 30년을 더 살 것이냐. 매가 자기 변신을 하면서 결심을 하게 한대요. 앞으로 30년을 살려고 마음 먹은 매는 절벽 꼭대기에 올라가서 바위에 부리를 으깬대요. 그 부리가 빠지면 그 자리에 새 부리가 나게 한대요. 그리고 새로 난 부리로 휘어진 발톱을 다 뽑는대요. 새 발톱이 나게 한대요. 새 부리가 나고 새 발톱이 나고 새 인생을 시작한다고 해요. 그것을 읽고 시인의 정신이 이래야 한다. 그래서 잊지 않아요. 너무 감동 받았어요. 시를 쓰려고 하는 젊은이들, 학생들은 누구 시를 본받을 것이 아니라 시인의 정신을 본받아야 해요. 내가 이 말을 하는 것도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하는 거예요.

박성우  이런 정신은 아마 선생님 아니면 가지지 못할 것 같은데요.

천양희  아니에요. 대부분 시인들은 시정신을 가지고 있죠. 젊으면 젊은 만큼 나이 들면 나이든 만큼 다 자기 정신을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다들 피로 쓰잖아요. 앓고 앓다가. 팽팽팽 돌고 앓다가 쓰잖아요. 그게 다 시인 정신이지. 심심해서 그러겠어요.

박성우  여행을 많이 하시는데 최근에 기억나시는 곳 있으세요.

천양희  최근에는 건강이 안 좋아서 못 갔고 직소폭포 문학기행한 거 그것밖에 없어요.

박성우  산보 같은 것은 많이 하시죠.

천양희  산보는 내 일과니까 산책 안 하면…….

박성우  전업시인의 일과는 어떤가요.

천양희  그게 전업시인의 일과예요. 내가 직장을 갖고 있거나 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 매일 산책을 하겠어요. 나는 어느 면으로 복 받았어요. 전업시인이 생활하기는 좀 어렵지만 그게 복이잖아요. 내가 걷고 싶으면 걷고 보고 싶은 것 보고 마음에도 넣어 놓고. 산책이 일과인데 산에 가면 숲 소리 듣죠, 바람소리 듣죠, 물소리 듣죠, 그런 게 얼마나 나를 살려주는데. 그래서 학생 시인들은 마음속에 생물을 넣고 지내라고 하고 싶어요. 종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이런 것이 다 살아 있는 소리잖아요. 그 소리가 마음속에 담겨 있을 때 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박성우  하루 일과 중에서 산보하거나 시 쓰는 것 외에 다른 것을 하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천양희  아침에 일어나서 눈 감고 명상을 해요. 명상을 매일 해요. 내 염원 남을 위한 염원을 하고. 삼배하고 반야심경을 매일 읽어요. 그게 내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전에는 천수경이다 뭐다 해서 테이프로 들었는데, 여름에 문을 열어 놓고 있으니까, 혹시 이웃에 불경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요. 자기 종교가 아니면 배척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요. 요즘은 내가 창문을 닫기 전까지는 안 틀고 있어요. 나는 교회 종소리 들어도 괜찮은데. 절에 가지 않아도 마음속에 절이 있으니까. 나한테는 절실해도 소음으로 들릴 수도 있어요. 그리고 맨손체조 하는 것. 운동을 헬스 가고 이런 것 안 하니까. 옛날에 배웠던 기계체조 있잖아요. 목 돌리는 것, 옆구리 운동, 허리굽히기 하는 것이 일과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건강이 유지가 안 되잖아.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육상선수를 했어요. 달리기를 잘해요. 경남여고 때는 선수까지 했어요. 교내 대회 800미터 계주, 두 바퀴를 도는데 스타트는 늦어요. 세 번째를 하다가 다 따라내고 1등을 했잖아요. 중학교 때는 기계체조 뜀틀 7개도 뛰고 했어요. 수영도 하면 했을 텐데 우리 집이 보수적인 집안이라 여자가 무슨 수영을 하느냐고 해서 못 했지요.

박성우  달리기 하면 학교 대표로 나가셨나요?

천양희  대표는 아니고 교내 대회에서. 놀래요, 사람들이 조용히 있을 줄 아나 봐. 운동을 되게 좋아해요. 지금도 축구대회, 야구경기를 좋아해요. 다 봐요. 어제는 볼링 하더라. 할 줄은 모르지만 보고 있으면 재밌어요. 뭔가 카타르시스가 되는 것 같아요. 운동은 정직하잖아요.

박성우  시인과 시인이 아닌 사람을 구별할 때 헬스 가서 하면 시인이 아니고 산보하면 시인이라고 하더라고요.

천양희  난 헬스 같은 것은 하기 싫어요. 난 기계적으로 딱 하고 끝내는 것 못해요. 산책이 얼마나 좋은 건데.

박성우  산책하는 코스는요.

천양희  무릎이 아파서 병원을 한 달 보름 정도 다녔는데, 산을 오르지 말라고 해요. 우리 집에서 5분만 걸어가면 수락산 끝자락 올라가는 데가 있어요. 중간 정도 30분쯤 갔다 오는데 소쩍새 울던 공원만 몇 바퀴 돌아도 괜찮아요.

박성우  선생님 만나기 위해 수락산 자락을 기웃거리는 문청들이 생기지 않을까요.

천양희  사실은 시인이 자연의 서기잖아요. 자연 모르고 어떻게 인간을 알겠어요.

박성우  말주변도 없는 제가 선생님 만나 뵙게 돼서 기쁩니다.

천양희  좋은 젊은 시인과 대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박성우  긴 시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천양희  감사합니다.문장 웹진/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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