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 손홍규

 

책벌레 손홍규



김종광 




나는 처음엔 그를 두려워했다. 싸움을 잘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긴 모습도 하는 짓도 옛날 시골 부잣집의 머슴 ‘마당쇠’ 같다는 말이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그는, 당연히 주먹도 좀 쓸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말로는 잘 싸워도 주먹은 휘두를 줄 모르며 눈물이 많은 청년이었다.

나는 그가 형님이라고 말해도 좋을, 나이 차이 별로 안 나는 선배들은 물론,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나이 차이 엔간한 선배들에게마저도 과감하게 덤비는 광경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문단 초짜가 저리도 용감할 수 있다니! 그는 선배들의 말이 틀리다고 생각하면 속으로 꿍쳐두고 삭히는 법이 없었다. 정면 논쟁을 통해, 선배를 설복시키든, 자기가 설복당하든 양단간에 결판을 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나 술이 거나하게 들어간?(그랬다. 그도 술이 좀 들어가야 개겼다. 하긴 맨 정신에 문단초짜가 어찌 그리 용감할 수 있으랴. 그래도 대개의 초짜는 선배와 술 마실 적에 자기가 초짜임을 명심하며 가능하면 안 취하려고 노력하고, 취해도 시종 예의바르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려고 취중에도 애쓰는데, 그는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사람들끼리 무슨 정다운 논쟁이 가능하리오. 답답한 선배들은 꽉 막힌 초짜 후배를 강압적으로 설복시키려고 했고, 기어이 자기의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초짜 후배는 강압에 맞서 견결히 맞섰던 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후배가 선배를 이기겠는가? 패배한 그는 자기 울분에 겨워 펑펑 울어버리는 것이었다. 얼마나 분하면 저토록 울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이럴 경우, 그 선배와 문단 초짜는 다시는 상종하지 않거나, 상종하더라도 소 닭 보듯, 닭 소 보듯 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을 여지없이 짓밟으며, 한 번의 대결 후에, 그 선배는 그를 끔찍이 아끼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알게 되었다. 그의 신비하고 놀랍고 무서운 친화력을!

아마도 선배들은 자신의 주장을 지키기 위해 한마디도 지지 않고 벋대는 후배에게 마땅치 않음보다는, 후배 작가다운 패기와 열정을 맛보아서 기쁜 듯하고, 오히려 유약하고 말 잘 듣는 후배들보다 더 사랑하게 된 모양이었다. 마치 자기 젊은 날의 당찬 용기를 다시 만난 듯 말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그러하다는 것을 나 같은 이에게 누누이 들어 열없었던지 술을 안 마시려고, 안 취하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늘 술자리를 흥겹게 하던 친구 하나가 은거에 들어간 것이다.

하여간 나 역시 그런 과정을 거쳐 그와 자주 보는 사이가 되었다. 자주 만나 자주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는 내가 가장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그는 적어도 2년을 거의 날마다 얼굴을 보고 살았다. 내가 작가회의 사무처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할 적에, 그는 작가회의를 ‘잠깐 독서실’로 삼았다. 소설 발표 기회를 얻어가는 만큼 독서를 등한시하고 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책벌레라고 말해도 좋은 자를 만났다. 주위에 책벌레가 드물어서가 아니라, 대개의 책벌레는 사람 안 보이는 데서 독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읍 시골에서 보증금 200만원을 들고 상경한 그는 아현동 산골 동네에서 말 그대로 게딱지같은 방 하나를 얻어 살고 있었고, 그 방은 여름에 독서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조건이었기에, 도서관에서 실컷 읽은 다음, 귀갓길에 작가회의 사무실에 들러서는 또 수십 쪽을 좌르르 읽고 보무도 당당하게 떠나가는 것이었다. 그의 방 형편을 알지만, 나는 처음에 독서를 등한시하고 있는 나를 약올리려고 그러는 줄 알았다. 사실 아직도 그런 의심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그의 독서가 얼마나 탄탄하며 줄기찬 것이었는지는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내가 무려 3년이나 연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대개 그가 말하고 내가 듣는 쪽이었다. 그는 아는 게 너무 많았고 사유도 깊었다. 나는 선배작가로서의 위신을 세우기 위해 설마 이 책은 안 읽었겠지 하며 어떤 책을 거론하면, 곧장 그의 입에서는 내가 거론한 책은 당연한 것이고, 그 거론한 책의 작가가 쓴 다른 책들이 줄줄이 언급되었으며?(그는 책을 읽을 때 작가별로 읽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를 보고 감탄한 다음에 한국에 번역되어 있는 위화의 책을 깡그리 사서 읽는 식이다)?비슷한 경향의 작가들 책까지 조목조목 짚는 것이었다.

나는 부끄럽게도 그가 나보다 아는 것도 많고 사유도 깊음을 인정했다. (뭐, 하지만 괜찮았다. 소설가가 소설만 잘 쓰면 되지 아는 것 많고 사유만 깊어서 뭐하나. 아무튼 내가 아직은 그보다 소설을 잘 쓰니까. 이런 뻔뻔한 자만심도 없다면 선배 체면에 어찌 고개를 들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백기를 든 이후에는 대화 때, 그의 독서 경험을 내 귀에 담아 내 지식을 보강하는 쪽으로 편하게 살게 되었다.

너무 장난스럽게 말한 것 같아서 덧붙이자면, 그의 독서력은 정말 대단한 듯싶다. 나는 감히 우리 연배나 후배 작가 중 그가 가장 책을 많이 읽은 자 중의 하나라고 확신한다. 의외로 그는 할 줄 아는 게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유난한 독서가 가능했던 듯싶다. 우선 술을 거의 안 마시고(그래서 한번 마시면 쉽게 취하는 것이다), 모든 잡기에 숙맥이며(당구를 예로 들 수 있다. 내가 당구 30을 친다. 쿠션을 잘 못 치니 정확히 말하면 30도 못 된다. 내가 당구를 쳐서 유일하게 이겨본?그것도 여러 번?사람이 그다!), 연인은 있는 것 같은데 연애는 젬병이며, 돈이 없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여행도 거의 하지 않으며, 하여간 아주 재미없게 산다. 그러니 책밖에 더 읽겠는가? 

어쨌든 나와 그는 성격이 너무 달라서, 나는 그를 이해할 수가 없을 때가?(실은 그의 소설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많은 독자들이 그의 소설에서 빛나는 에너지를 느끼는 것 같아 기쁘다)?너무 많은데,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 안 가는 것이 있다면, 그가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이다. 마당쇠에게 고양이가 어울리는가?

그의 끔찍한 고양이 사랑을 증명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2년 남짓 키운 고양이를 서울역에서 잃어버렸을 때?그의 입장에서는 잃어버린 것이겠지만 내 생각엔 고양이가 자유를 찾아 탈출한 것 같다?서울역 주변을 5일 동안이나 뒤지고 다닌 바 있다. 끝내 못 찾았다. 한 달을 슬퍼하던?그가 분노하는 모습은 자주 보았어도 슬퍼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그는 새로운 고양이를 시골집에서 데리고 왔다. 또 한 마리의 도둑고양이가 그와 동고동락하고 있는 것이다.

1년 전에 그가 중고차를 구입했을 때 문단 선배들이 경악하던 얼굴이 떠오른다. 돈도 없고 있어봐야 책이나 사는 자가 어떻게 차를? 그 차는?사실 취재용이었는데?그가 책만 읽은 게 아니라 얼마나 열심히 초짜 작가 생활을 열심히 하는가에 대한 증거물일 테다. 그는 책을 두 권 냈으나 거의 팔리지 않았고, 알아주는 사람만 알아주는지 발표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소설쓰기 이외의 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그건 초짜 작가로서 존재하기 위한 숙명적 현상이니 특별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최소 3개월 이후까지 생계가 보장되었다고 여겨지면 과감히 잡일을 사절하고 다시 독서와 소설쓰기에 몰입한다. 언제 일거리가 뚝 그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들어오는 일거리를 거부해본 적이 없는 나를 왠지 부끄럽게 만드는 처사다.

얼마 얘기하지도 않았는데 정해진 분량을 초과해서 급히 마무리 말을 해야겠다. 나는 그가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을 쓰게 될지, 팔리는 책을 쓰게 될지, 문학상이라도 받게 될지 그런 것은 예상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가 앞으로 최소한 십년은 여러 성격적인 괴이함?거의 언급하지 못했지만?에도 불구하고, 궁핍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 스타작가는 못 되겠지만 ‘노력형 작가의 치열한 고군분투, 그 비루한 아름다움’을 계속해서 보여주리라고 확신하다. 소설이 그를 버릴 수는 있어도, 그가 소설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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