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외 3편

 

유홍준

 

 오월

 복숭아밭에서 온 여자

 그의 흉터

 지하급식소

 


오월




벙어리가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마루 끝에 앉아

종달새를 먹는다


조잘조잘 먹는다

까딱까딱 먹는다


벙어리의 어린 딸이 살구나무 위에 올라 앉아

지저귀고 있다 조잘거리고 있다


벙어리가 다시 어린 딸에게 종달새를 먹인다

어린 딸이 마루 끝에 걸터앉아 다시 종달새를 먹는다


보리밭 위로 날아가는

어린 딸을

밀짚모자 쓴 벙어리가 고개 한껏 쳐들어 바라보고 있다




복숭아밭에서 온 여자




새벽열차가 복숭아밭을 지난다 단물 빠진 껌을 씹으며 여자 하나가 올라탄다 화사하다 싸구려 비닐구두를 구겨 신고 있다 털퍼덕, 허벅지 위에 비닐가방을 올려놓고 빨간 손끝으로 떽 떽 검은 풍선껌을 터뜨리고 있다 복숭아, 복숭아 냄새가 난다 저 여자 이내 잠이 들어 군복 입은 사내 어깨에 머리를 처박는다 생면부지 사내의 어깨 빌려 멀고도 먼 꿈을 꾼다 새벽기차표를 끊을 때 군복 입은 사내 곁엔 젊은 여자를 앉히는 이상한 역무원이 있다 몸 섞지 않고도 부부가 되어 종점까지 가는 사람들이 있다 퉤, 침을 뱉듯 아침이 온다 두루마리 비닐 같은 아침햇살이 복숭아밭을 덮는다 깨울 수도 없을 만치 깊이 잠든 싸구려 원피스 볼따구니에 밝고 환하고 고운 햇살 한 움큼이 어룽거리고 있다




그의 흉터




흉터는 뚜껑이다


흉터는 자물통이다


흉터는 그로부터 도무지 떨어지지 않는다


뚜껑중의 뚜껑,

한 인간을 잠그고 있는 흉터는


아무도 열지 못한다


만능열쇠마저 소용없다, 금고털이도 불가능하다


흉터는 외부에서 열지 못하는 뚜껑이다

흉터는 그의 밀실이다

흉터는 바깥에 열쇠구멍이 없다


흉터는 늙은 수리공마저 포기한 열쇠로 잠겨져 있다


흉터 속에 그가

열쇠를 움켜쥐고 들어가 웅크리고 있다




지하급식소




그는 늘 늦은 점심을 먹는다 그는 늘 가장 구석진 자리를 골라 앉아 먹는다 그는 한 번도 고개를 쳐들지 않고 먹는다 그는 늘 깊은 생각을 하며 먹는다 자, 회색 벽에게 한 숟갈- 자, 차갑고 축축한 구석에게 한 숟갈- 자, 누런 서류봉투 너에게도 한 숟갈- 그는 신문을 뒤적거리며 먹는다 그는 자기와 아무 상관도 없는 기사를 읽으며 먹는다 그는 언제나 지난 일자 신문을 읽으며 먹는다 아니다 그는 언제나 밥을 읽으며 글자를 먹는다 한 자 한 자 먹는다 한 알 한 알 먹는다 그는 젓가락 끝만으로 먹는다 이 세상에서 그는 제일로 맛대가리 없이 먹는다 자, 파리에게도 한 숟갈- 자, 바퀴벌레에게도 한 숟갈- 자 그 다음, 낡고 낡은 오버코트 너에게도 한 숟갈- 오늘도 그는 밥을 먹지 않는다


 밥이, 그를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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