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의 ‘그’와 소설 밖의 ‘나’

 

손정수




 

「그와 나」(1972)라는 글을 내가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생 때다. 주홍색 표지인 『위험한 얼굴』(지식산업사, 1977)이라는 제목의 콩트집에 실려 있는 짧은 글이었다. 아마도 그때 대학에 다니던 누나의 책이었던 듯한데, 어떻게 해서 그 책을 읽게 되었는지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분명한 것은 어떤 우연으로 인해 내가 그 책을 읽었다는 것이며, 그 가운데서도 「그와 나」라는 글이 유독 선명하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는 사실이다. 왜 우연은 그냥 스쳐 지나가지 않았던가. 왜 그 짧은 글은 그토록 선명한 형태로 내게 남아 있었던가.


「그와 나」에는 지방 도시 출신의 한 대학생 ‘나’가 등장한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합격 통지서를 들고서 서울로 올라가고 있다. 승객으로 꽉 찬 기차 속에서 그는, 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면 안 될 사람이 근처에 올 것을 두려워하며 잠을 청하는 체 눈을 감고 있다. ‘옆엣사람을 돌보지 않는 악착스런 경쟁과 경쟁에 진 자의 굴종이 스스럼없이 공존하는’ 세계 속에서 그가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가 서울대학교 교복을 유일한 목표로 삼아, 그를 위해 수년 동안 코피를 쏟아가며 수험 공부를 했던 이유 또한 지방 도시의 이와 같은 문화와 윤리에 기인한다. 그런데 대학에 합격하여 상경하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는 두려움과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다. 그 두려움과 긴장의 근원에는 국민학교 고학년 시절의 체험이 놓여 있다. 고향에서 입영을 앞둔 한 장정이 녹슨 쇠못에 발을 찔려 파상풍으로 죽은 사건이 그것이다. 하찮은 ‘녹슨 쇠못’ 하나, 그것은 도처에서 삶을 위협하며 도사리고 있는 보이지 않는 우연의 메타포였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나’는 인생이 극도로 조심스러운 것이라는 무서운 교훈을 얻게 되었고, 그의 삶에서 두려움과 긴장은 이에 습관처럼 익숙해진 결과였다.

그런데 인생의 두려움과 긴장에 대한 주인공의 콤플렉스를 일깨우는 계기가 두 차례 찾아온다. 그 첫 번째는 목표를 성취한 해방감을 경계하면서 잠든 체 앉아 있는 ‘나’에게, ‘양심이 눈꺼풀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고 빈정거리며 ‘그’가 다가온 사건이다. ‘나’는 그 말이 악성 병균처럼 끈질기게 의식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에 적잖이 당황한다. ‘나’는 그 표현에서 자신이 속해 있던 지방 도시의 문화와 윤리가 아닌 ‘대도회의 세련된 문화와 성인 세계의 윤리’를 느꼈던 것이다.

두 번째 계기는 ‘역사적인 데모의 인파’(그것은 4?19가 아닐 것인가) 속에서 다시 ‘그’를 만나게 된 사건이다. ‘나’는 애초에 데모에 참석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 데모란 등록금과 하숙비의 낭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엉겁결에 데모 군중에 휩싸인 ‘나’는 다른 학생의 어깨 위에 무동을 타고 “우리에게 가르친 대로 그대로 행하라”라고 외치는 ‘그’를 발견한다. ‘나’는 그날의 데모에서 경찰의 총에 죽은 학생들을 떠올리며 ‘녹슨 쇠못’의 진리를 다시 한 번 확인하지만, 집단적인 의사라는 것을 만들어내고 마는 군중이라는 존재를 처음 바라본 경험에 압도되고 만다. 그리고 그 성공한 ‘역사적 사건’의 며칠 후 ‘나’는 미국인 방송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를 발견한다. 거기에서 ‘나’는 ‘그’의 발언(“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발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믿고 있으며 우리는 할 수 있다.”)이 다시 한 번 ‘나’를 압도해옴을 느낀다.   


이 짧은 이야기를 읽고 내가 받았던 충격은 무엇 때문이었던가. 그것은 녹슨 못의 환상으로 인해 신경증적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소설 속의 ‘나’에게서 나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나의 미래상을 보아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 속 인물인 그(‘나’)와 소설 밖의 나가 동일한 존재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소설 속 ‘나’의 소심하고도 촌스러운 행동들을 비웃기는커녕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으로 소설 밖의 나와 겹쳐지고 있는 소설 속의 ‘나’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소설 속의 ‘나’를 통해 비로소 소설 밖의 나가 누구인지가 점점 밝혀지는 기묘한 체험이었다. 그 순간 나는 소설이라는 것에 운명적으로 휘말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소설이라는 거울에 비춰진 나 자신의 모습은 애틋하면서도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고, 나는 그것에 반발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반발조차도 소설이 암시하고 유도한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을 수 있었다.


대학에 들어와서야 나는 내가 읽었던 「그와 나」라는 짧은 글의 작가가 김승옥이며, 그가 꽤나 유명한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문학에 일가견이 있다는 선배들조차 김승옥의 대표작들은 줄줄 꿰면서도 「그와 나」라는 작품에 대해서만은 고개를 갸웃거리곤 하는 것이 당시의 나로서는 기이하게 여겨졌다. 『다산성』(?겨레, 1987)이라는 제목의 김승옥 대표작 선집을 사서 읽은 것은 그러한 기이함을 해결해보고자 하는 심산이었던 듯싶다. 이 책은 선집이라는 말 그대로 김승옥의 대표작들이 한데 묶여 있는 책이었다. 그 가운데서도 「생명연습」(1962)이 유독 절실하게 읽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생명연습」은 김승옥의 등단작이자 대표작의 하나이긴 했으나 거기에 실려 있는 다른 작품들, 예컨대 「무진기행」(1964)이나 「서울 1964년 겨울」(1965), 「서울의 달빛 0장」(1977)만큼 그 가치를 높이 인정받는 유명한 작품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다른 작품들을 모두 물리치고 「생명연습」 가운데 한 장면이 당시의 내 의식에 선명한 각인을 남겼다. 유년의 ‘나’가 누나와 함께 바닷가에서 애란인 선교사의 고독한 자위행위를 훔쳐보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그 장면에서 「그와 나」의 전사(前史)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같은 작가의 작품이기는 하나 「그와 나」의 ‘나’와 「생명연습」의 ‘나’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생명연습」에서 이방인 선교사의 자위행위를 목격한 사건과 「그와 나」에서의 ‘나’의 콤플렉스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의 독서 체험 속에서 두 소설의 ‘나’들은 하나의 코기토로부터 파생된 분신들처럼 보였다. 독서하는 나의 존재가 그 코기토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마치 내가 누나의 손을 잡고 바닷가에 서 있었던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한마디로 얼마나 기가 막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는 대목에 나는 짙은 공감의 밑줄을 그었다.


전공을 바꿔 본격적으로 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대학원에서 나는 문학사와 관련된 수업들을 들었고 대학원의 다른 동료들과 아도르노와 벤야민, 하버마스, 알튀세르와 푸코의 이론을 함께 읽었다. 그리고 김승옥의 소설들을 다시 읽었다. 더 명쾌한 이해가, 더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은, 그러나 충족되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그랬다. 오히려 내 개인적 독서체 험과 대학원이라는 제도의 공유 면이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 들었다. 가까이 간다고 다가갔는데 오히려 더 멀어진 꼴이었다. 「무진기행」이라는 방패로 무장한 당당한 적군 앞에서 내가 들고 있는 「그와 나」라는 칼은 너무도 초라해 보였다. 무언가 억울한 심정이었지만 나는 칼을 도로 집어넣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혼란과 회의가 찾아왔다. 「환상수첩」(1962)을 읽은 것은 아마 그 무렵이었던 듯하다. 「그와 나」에서 대학에 입학한 ‘나’의 대학 생활이 「환상수첩」에서 한 고비를 넘고 있었다. 20대 중반에 쓰여진 그 시절의 내 노트에는 「환상수첩」에 대한 독후감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환상수첩」은 한 자살한 문과대학생(정우)의 수기를 그의 친구(임수영)가 소개하는 액자소설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수기 속의 화자인 ‘나(정우)’는 지방 도시(순천) 출신의 서울대학교 문과대학생이다. 그의 서울 생활은 ‘환상과 현실과의 거리조차 잊어버려 아무것도 구별해낼 수 없는’ 욕된 생활이었다. 환상적 기준이 소멸한 자리에서 현실은 자아에게 잔인한 공격법을 강요하며, 정우는 그와 같은 현실에 환멸을 느낀다. 향자와 선애를 맞바꾸자는 영빈의 제안에 쉽게 수긍해버리는, 그리고 선애의 자살 이후 ‘여대생 염세자살’이라는 기사를 오려서 술상 위에 붙여놓고 영빈과 술을 마시는 정우의 가장된 위악의 태도는 그가 속해 있던 환멸의 현실과 그에 대한 정우의 순진한 대응 방식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여전히 그는 “환상. 망상. 더구나 그 망상을 현실까지 끌어내려 그것으로써 자위해가며 살아가고 있기까지 했던 것”이다. 정우는 새로운 생존 방법을 찾아 하향을 결심한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아버지의 연두색에 대한 집착을 긍정하는 한편, 아우에게서 자신을 들여다보며 아우만은 운명적인 질병으로부터 벗어나 평범한 일상의 삶을 살기를 가슴 아프도록 바란다. 부성을 긍정한다는 것, 자기 이후 세대의 얼굴에서 자신의 표정을 발견한다는 것, 또한 그들이 굴곡 없는 삶을 살아가기를 가슴 아프게 기원한다는 것은 모두 정우의 젊음이 어느 한 고비를 넘고 있음을 뜻한다.

그러나 정류장에 마중 나온 윤수와의 대화에서 정우는 벌써 자신이 피해온 오영빈의 세계가 되살아온 듯한 느낌을 받고 식은땀을 흘린다. 또한 화상으로 비틀어져 만화의 주인공 같은 얼굴을 한 형기는 바다로, 죽음으로 데려가 달라고 정우를 조른다. 폐병을 앓으며 춘화를 만들어 팔고 문화서적에 심취해 있는 수영까지 포함하여 모두는 정우보다 더 밑바닥 의식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것이다. 정우는 진과 위의 차이를 구별할 수 없었던 서울에서의 삶으로 되돌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날이 갈수록 자신의 도피가 어리석었음을 확인한다. 그리고 그러한 위기의식이 그를 여행이라는 미명의 새로운 도피로 내몰았던 것이다.

윤수와의 여수 여행에서 정우는 겨울의 쓸쓸한 풍경마저 따뜻하게 느낀다. 그만큼 환상적인 삶의 기준이 형성한 ‘지하실의 자기세계’로부터 벗어나 이른바 ‘밝은 세계’인 범속한 삶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는 강렬한 것이었다. 그러던 중 정우 일행에게 하나의 사건이 찾아온다. 그것은 여자 단원들로 하여금 몸을 팔게끔 할 정도로 운영난을 겪으며 해체를 눈앞에 두고 있는 곡예단과의 만남이다. 윤수와 정우는 두 명의 여자 단원이 자신들이 묵고 있는 방에 들어오지만 그냥 화투놀이로 밤을 새운다. 이 순간 정우는 윤수에 대한 신뢰와 여자들을 향한 자랑스러움을 가슴 가득히 느낀다. 정우 일행은 곡예단을 따라 거문도 행을 결심한다. 거문도에서 정우는 곡예단원들의 공연을 보며 그것이 화려한 구경거리가 아닌 생활 형태의 하나임을 깨닫는다. 결국 삶이란 평생 동안 자신이 지니고 살아야 할 ‘하나의 얼굴’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환상수첩」에서 공중곡예사 이씨의 죽음은 정우에게 ‘하나의 얼굴’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이씨의 죽음은 일상이 그저 살아가면 되는 따뜻한 공간이 아니라 ‘하나의 얼굴’로 견디기 위한 죽음을 건 싸움임을 일깨워준 것이다. 정우가 섬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은 바로 ‘하나의 얼굴로 견디기’라는 윤리이다. 여기에서 윤리는 도덕적 규범이 아닌 확고한 자기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내적 결단으로서의 윤리다. 정우와 윤수는 이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환상적 기준임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이제 긴 방황을 거쳐 생활로 되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윤수는 여자 단원 가운데 한 사람인 미아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정우는 그 따스한 여행에서 생활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다.

그러나 여행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다음 정우는 윤수의 죽음이라는 새로운 사건에 직면한다. 수영의 동생 진영이 수영에게서 춘화를 사간 깡패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윤수는 이들에게 복수하러 갔다가 주검으로 돌아온다. 윤수와 정우가 지향했던 일상의 ‘밝은 세계’에는 또 다른 역설이 잠복해 있었던 것이다. 환상적 기준을 현실의 윤리로 전환시켰다고 하더라도, 임수영처럼 ‘살아남아 있음’에 최대의 의미를 두지 않는 한 평범한 일상을 살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이제 정우와 형기는 순천만의 염전에서 죽음이라는 새로운 환상적 기준으로 달려간다. 비윤리의 극단인 죽음으로 가장 윤리적인 삶을 선택함으로써 그들은 ‘하나의 얼굴’로 삶을 견디고자 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들에게 있어서 삶이란 목숨을 담보로 하여 ‘하나의 얼굴’로 견디기 위한 생명 연습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생명 연습이 만들어낸 내면적 공간은 관념이 아닌 다면체로서의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준거점이 된다. 김승옥의 소설이 대학생 편향에서 벗어나 현실 속의 타인들을 그려낼 수 있게 된 계기가 여기에 놓여 있다.


위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의 얼굴로 견디기’라는 소설 속의 구절에 유독 내가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은 내가 통과하고 있던 그 시기의 특성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내가 사회적 선택을 유보한 채 대학원에 진학했던 것은 그것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하나의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또 그때까지 나의 독서 체험 속에서 키워왔던 문학과 대학원에서 접하게 된 제도의 문학이 사뭇 다른 것임을 발견하고 당황한 내가 그만큼 절박하게 나의 고유한 글 읽기와 글쓰기를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추측해볼 수 있는 의식의 흐름을 그때 쓴 위의 글에서 새삼 발견하게 된다.


그 후로 나는 1930년대 비평, 특히 역사철학자들의 문학비평을 대상으로 한 석사논문을 썼고 근대 초기 소설 장르의 형성 과정을 분석하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도 받았다. 전후 작가들에 대해서도 몇 편의 논문을 쓴 바 있지만 김승옥과 관련된 글은 한 번도 쓰지 못했다. 문학평론가라는 직함으로 쓴 여러 편의 글들에서도 역시 김승옥과 관련된 구절은 찾아보기 힘들다.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었던 위의 「환상수첩」 독후감이 전부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을까. 물론 나의 게으름 탓이 가장 크겠지만, 위에서 이야기한 체험 또한 무의식 속에서 작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만일 텍스트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비평적 입장에 선다면 개인적 독서 체험은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울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내게 그 체험은 객관적인 분석에 앞서 여전히 엄연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체험을 분리한 채 대상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면 개인적 체험의 기술에 치중할 경우 주관적 인상에 머무르게 된다는 문제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개인적 체험을 떨쳐버릴 수도, 그렇다고 그걸 전면에 내세울 수도 없는 딜레마가 김승옥 소설에 대한 글쓰기 앞에 가로놓여 있었다. 내가 그 어느 작가보다도 원초적인 영향을 받았던 김승옥에 대해 한 편의 글도 쓸 수 없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사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내가 이 딜레마를 명료한 형태로 재발견하게 된 것은 죠르쥬 풀레(George Poulet)의 논의(『비평적 의식』, 1971)를 통해서였다.


김승옥의 소설이 있고 그것을 읽는 내가 있다. 소설을 읽기 시작하는 순간 소설의 물질성은 사라지고 내 앞에는 심적 대상이 된 단어와 이미지, 개념 등이 놓인다. 그 심적 대상들이 구성하는 사고는 애초에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죠르쥬 풀레의 견해에 따르면 그것은 김승옥의 것이다. 하지만 읽기의 과정에서 나는 어느새 그 사고의 주어가 된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사고임에 틀림없지만, 내가 그것의 주체가 된 것이다. 그리하여 명백히 다른 사람의 세계에 속해 있던 사고, 내가 전에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사고를 사유하기에 이른다. 만약 내가 그것을 다른 사람의 것으로 간주한 채 사유한다면 놀랄 것이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내가 그 다른 사람의 사고를 나의 사고로 사유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설 읽기에 몰두하게 될 경우 제2의 내가 나를 점거하여 무대의 전면을 차지하는 듯한 느낌에 빠지게 된다. 나는 한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그 탈취 행위를, 나와 무관하지 않은 어떤 사건을 목격하고 있는 듯한 긴장을 느낀다. 나의 삶이 아님에도 그것을 나의 삶으로 의식하고는 놀라게 된다. 이 놀란 의식, 그것을 죠르쥬 풀레는 비평의식이라고 부른다. 그가 말하는 비평의식이란 텍스트 속에서 그 바깥(현실)과 유사한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등가물을 찾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비평적 사고의 귀착지는 작가의 의식과 독자의 의식이 하나의 강을 흐르는 두 개의 흐름처럼 일치되는 순간이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한다. 작가의 의식에서 나의 의식을 발견하는 것이 비평의 최종 도달점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와 같은 의식의 향유와는 구분되는 언어적 표현의 차원이 또한 엄연히 존재하기에 그러하다. 그럼에도 죠르쥬 풀레가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그와 같은 원초적 코기토의 발견이 비평의식의 출발점이라는 것일 터이다. 그의 말처럼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면 세상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죠르쥬 풀레의 논의를 음미함으로써 개인적 체험과 제도화된 사유 사이의 괴리로부터 연유하는 혼란에서 조금 벗어나 체험을 통해 얻어진 감각을 객관화할 수 있는 의지를 마련할 수 있었다. 독서 과정에서 텍스트와 마주하여 형성한 원초적 코기토가 비평의 전부는 아니지만, 그 뚜렷한 근거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 체험이 각인되어 있는 「그와 나」, 「생명연습」, 「환상수첩」 등과 그러한 체험의 소인이 찍히지 않은 다른 소설들을 하나의 일관된 맥락으로 설명하는 것이 이제 새로운 과제로 떠올랐다.

 

그렇다면 「무진기행」 속 윤희중의 나이(33세)에서도 서너 해 지난 시점에서 다시 읽은 김승옥의 소설들은 어떠했던가. 구체화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한데 우선 그 단서만을 제시하자면, 다시 대면한 김승옥의 소설들은 어떤 ‘시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내게 읽혔다. 그 인물들이 짓고 있는 처참한 ‘극기’의 표정들은 어느 척박했던 시대가 강요한 것임에 틀림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 극기의 표정들은 「환상수첩」에 나오는 인물들의 연기(演技)에서 드러나는 위악적 포즈와 대구를 이룬다. 실상 그 과장된 몸짓은 그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연약함의 반사체였기 때문이다.

「역사(力士)」(1963)에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 한밤이면 동대문 성벽의 돌을 옮기는 ‘역사’ 서씨가 등장한다. 이 허풍은 도대체 무엇일까. 그것은 무기력하게 바닥에 누워 벽을 바라보고 있는 ‘나’의 공상이 만들어낸 환각이 아닐 것인가. 객관적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 미처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가능한 한 가지 방식은 이처럼 주관적인 극기를 통해 의식 속에서나마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는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다. 설사 그 시도가 현실에 부딪쳐 파탄에 이르더라도 그 욕망만은 남아 존재를 증명하지 않을 것인가.

「누이를 이해하기 위하여」(1963)에서 ‘자연’을 ‘도시’에 대립시키는 구도 또한 이 맥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나’가 최후의 보루처럼 기대고 있는 ‘자연’은 마치 ‘역사’처럼 현실에서는 점점 무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누이가 침묵만을 배우고 돌아온 도시를 향해 ‘이번엔 내가 가보지’ 하고 외치면서 떠나는 ‘나’의 행로는 이미 예정된 실패를 향한 무모한 것이다. 무모한 것이기에 순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김승옥 소설에 등장하는 극기의 인물들은 어떤 특정 시대에 대응되는 윤리를 실현하고 있는 존재들이 아닐까. 너무도 척박했기에 맨몸으로 덤벼들 수밖에 없었던, 그러나 그러하기에 장엄할 수 있었던 시대가 바로 그것일 터, 그 척박함, 비장함에서 어떠한 시간적 표지보다도 선명한 시대의 표정을 읽을 수 있다. 말하자면 한 개인의 성숙과 공동체의 성장이 동시적인 과제로서 운명처럼 얽혀 있던 시대, 김승옥의 초기 소설들은 바로 그러한 시기의 산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내 앞의 연구자들이 루카치의 개념을 빌어 ‘환멸의 낭만주의’라고 지칭했던 시각이 더 이상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의 개인적 독서 체험이 외부와 소통하기 시작하는 기미가 희미하나마 감지되는 순간이었다. 


여유가 조금 생기자, 나의 독서 체험에서 배제되었던 소설들도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들놀이」(1965)에는 회사 ‘들놀이’에 혼자만 초청장을 받지 못한 인물 맹상진이 등장한다. 무시해버리고 싶지만 이런저런 의혹과 불안이 연달아 일어난다. 직접 확인해보면 될 일이지만 현실과 마주하기를 두려워하는 무의식이 그것을 가로막고 있다. 들놀이가 있는 날, 맹군을 위로하기 위해 함께 들놀이에 가지 않은 동료 이군의 집에서 두 사람은 바둑을 둔다. 바둑을 두면서도 맹군은 이군에게 너라도 야유회에 가라고 하고, 이군은 단지 실수일 뿐이니 함께 가자고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둘의 무기력한 실랑이는 계속된다. 가자니 귀찮지만 막상 자기만 가지 못하게 되니 불안한 들놀이. 그 들놀이 초청장은 결여로서만 주어지는 남성적 욕망의 대상을 희화화하는 사물일 것이다. 「들놀이」에서 신경증적 불안에 사로잡힌 인물들은 얼마나 솔직한가. 그들에게서는 위악이나 허풍이 보이지 않는다. 「무진기행」을 경과하면서 김승옥 소설의 인물들은 위악적 포즈로 위장된 젊음이 아니라 자신의 치부를 덤덤하게 바라보는 나이든 인물들로 바뀐다. 위악적 포즈와 무모한 극기의 시도들은 「무진기행」이나 「들놀이」에서 보는 것처럼 현실 속에서 남성적 욕망의 신경증으로 귀착되고 만다. 이 남성적 신경증의 기원은 사내를 데리고 오는 어머니, 어머니를 죽이자는 형의 음모, 어머니의 행위를 아버지에 대한 사랑으로 채색하는 누나, 이 모두가 결국은 ‘나’의 환상의 산물인 「생명연습」과 아버지와 형들과 함께 빨치산의 시체를 묻으러 갔던 ‘나’가 윤희 누나를 불러내는 형들의 ‘무서운 음모’에 가담하는 「건(乾)」(1962)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생명연습」, 「건」에 발생적 기원을 둔, 「환상수첩」에서 확장될, 그리고 「무진기행」, 「들놀이」에서 실현될 미래상을 예비하고 있는 어떤 원초적 코기토를 고등학교 시절의 나는 「그와 나」에서 발견했던 것이리라. 그것은 소설 속의 ‘나’, 그들의 코기토이자 동시에 소설 밖 나의 코기토이다. 「그와 나」를 필두로 오랜 시간 동안 김승옥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새로운 판본의 ‘그와 나’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이 글쓰기는 앞으로도 판을 고쳐가며 계속 쓰여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와 나」는 내게 미로와도 같은 한 작가의 소설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에 묶어놓은 아리아드네의 실과도 같은 것이다. 《문장 웹진/200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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