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의 나날

 

신동옥

 

 

 사순절의 나날

 심금心琴

 악공, Anarchist Guitar

 요들링



사순절의 나날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늙은 신부가 종려나뭇단을 태우며 저녁 미사를 집전한다.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가리라 늦눈 사이로 구약처럼 떨기나무 재는 신부의 이마에 내려앉는다.


가시덤불과 엉겅퀴의 식탁 너머로 여자의 붉은 눈이 자꾸만 커간다. 엉덩이로 찬장서랍을 밀어 닫는 버릇은 불운을 가져와요 얼음으로 틀어막힌 부뚜막 틈새로 푸른 연기가 핀다.


실을 잣던 당신의 손은 천 마리의 벌레가 되어 배추 속을 헤집어 놓을 거예요 죽은 새를 든 사냥꾼은 찬 등으로 문을 닫는다. 늦은 밤 칼을 갈던 소리는 커단 폭풍을 몰아올 거예요


아이들은 썰매를 버리고 모두가 사육제의 가면을 벗고 팔을 걷고 경전에 손을 얹을 때, 광대는 찬물에 얼굴을 담금질한다. 불가에서 손잡고 춤추던 따뜻한 손은 찬물 속에서 깊은 우울에 잠긴다. 북구의 살얼음에 하얗고 붉게 분칠한 얼굴이 되비친다.




심금心琴




꽃을 보고, 저만치 혼자라고 적은 사람

아무래도 나는 조금 비껴서 있다고 적은 사람이 있지만

내 꽃잎에는 사자 한 마리가 먼저 가 앉는다 피를 흘린다.

꽃그늘 멍석에 앉아 술잔 띄울 만한 계곡을 베고 눕는 계절이면

가슴에 손을 얹는다. 국기에 대고도 맹세할 바 없는 나는

무제한으로 채워지는 꽃잎 사자 우리를 또 비워내는 거다.


내 꽃나무 아래는 언제나 불타는 겨자 소스 접시가 놓인다.

글 한 줄에 페이소스 한 접시 그게 삶이라고 말할 때

나를 읽고 가는 친구, 자네는 또 여리다고 타박을 하지만

자정의 판옵티콘 창살에 머리를 박고 엉덩이를 까뒤집던 베를렌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왜 하필 내가 여자였지, 아니었을까?

어제의 꽃 속에도 총소리가 들렸다고 쓰면서 나 역시 아랫도리를 움켜쥐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거다.

왜 하필 내가 남자였지!


입춘(立春) 지나고 대길(大吉) 지나고 건양다경(建陽多慶) 지나 앉아보는 뾰족한 마음의 자리 건너

옮아가는 꽃잎에 실어 보낸다 그것은 내가 자네에게 보내는 새떼.

이만치 혼자 있는 내게 친구, 술잔 들이미는 자네의 손뭉치는 차라리 따뜻한 빵이었다.

악수를 청하던 손은 금세 주먹으로 변하고 1월에서 4월로

움켜쥔 주먹 언덕을 오를 때면, 검지와 중지 사이는 언제나 허방이었다.

눈 비비고 보면 열심으로 제가 생각하는 꽃나무를 틔워내는 꽃은 오간 데 없고

없는 묘혈(墓穴)에서 내가 마주하는 것은 바로 자네,

자네는 시퍼런 레몬처럼 씁쓸하게 웃는다.


꽃 진 자리마다 무성한 혓바닥

그 벼린 창 칼 아래 마주하는 것은 어제하고도 어제의 꽃그늘

술잔 비울 때마다 다른 격문 다른 사발통문.

내 사자는 벌써 건너 건너의 꽃나무로 뛰쳐나간다.

한없이 가벼워져 두 팔 벌리면 날 듯한데, 친구

자네의 눈빛은 내 등배를 훑고 내 두 다리는 지상에 비끄러매다오.


까칠한 멍석에 돌 틈 바위틈에 그늘 습지에 그 불립문자(不立文字) 위에

저만치 혼자 있는 거 이만치 저 혼자 갈앉는 거

술잔 띄울 때마다 듣는 꽃사태-파문은 총소리 아닌가? 어제의 꽃잎 속에도

꽃잎 하나에 불타는 사자우리

친구, 나는 그것을 겨눈다.




악공, Anarchist Guitar




당신의 기차는 내 창가에 묶여 있어요

창을 열면 낯선 구두가 이마를 꾹꾹 눌러요

하늘엔 새들이 오래도록 멈춰 서 있고요

여섯 가닥의 먹구름이 흘러가요 그 위로

한 줄기 번개가 소리 없이 디스토션을 걸어요

고압선을 따라 당국의 메시지가 전송되는 아침

소리 분리 수거법이 강화됐다는 전갈이에요

주부들이 소음을 가득 채운 쓰레기봉투를 던져요

기타줄은 소각됐고 당신의 기타는

기다란 손톱을 사랑하는 소리의 방주예요

레일을 잃은 기차예요


당신의 기타는 너무 오래 묶여 있어요

창을 닫으면 낯모를 신음이 벽을 두드려요

소녀들이 수화를 재잘거리며 지나가요

음반 가게에선 침묵을 구워 팔아요

아나키스트들은 복화술로 지령을 전달하고

사람들은 초음파로 대화하는데 익숙해져가요

그 많던 기타줄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역사가는 백가쟁명의 선사라 우기고

정치가는 반국가적 복화술 책동이라 우겨요

사람들은 몰라요

기타는 달리고 기차는 울고

소리 없이 뛰는 건 당신의 심장이에요

자궁 위로 초음파가 지나듯 해가 저물어요

빈 술독 틈에서 소리 없는 나날이 저물어요




요들링




처음 앵두를 씹었을 때의 씨와 과육

과육은 금세 혓바닥에 몸을 숨기고 씨앗은 다른 땅을

꿈꾼다. 느낌만으로 분리 불안이라고 되뇌는

어느새 한없이 솟아버린 옥탑


철제 빙돌이 계단에 걸터앉아 무릎을 까딱이며

요들링, 혀가 혀에 감기듯, 만일

내가 사막에 뿌리내렸다면 다른 노랠 꿈꿨을 테지.


요들링, 영혼의 각질은 서늘해 건조한 음악들

새벽을 건너는 로-파이

엷은 공기의 밀도를 헤아리다 보면

만취한 손마다 저도 모르게 쥐어진 반짝이는 칼날


어느 먼 곳을 꿈꾸었을까? 언제고 멀리 떠나기 전

이 집은 내 삶에 놓은 맨 처음의 공리

내가 부르면 내가 대답하는 돌림 노래들


천장의 모빌은 허공을 빙빙 돌며 홀로

요들링, 또 요들링

하늘 멀리서 바람에 불려온 머리칼은 금세 자라

모빌을 친친 동여매고 요들링을 더욱 높이 들어 올려


그 많은 노래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모두 하늘로 올라가 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처음 앵두를 씹었을 때의 씨와 과육처럼

툭 툭 틱 톡 그리고 요들링, 요들링뿐.




시?낭송 : 신동옥

출전 : 신동옥 시집 『악공, 아나키스트 기타』, 랜덤하우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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