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사내 外 3편

김희업


 

구름사내
버려진 어머니
억압의 역사
일요일

 

 

 

 

 

 

 

 

 

구름사내

 

 

 

검은 옷 갈아입고 서둘러 외출을 했지

흐릿한 안개 어깨에 걸치고

슬픔이 빛날 때를 기다려

그대의 뺨에 감당할 수 없는 눈물만 주었지

불어터진 비를 보아버린 지상의 그대여

나의 입은 가물어 미안하구나

울음주머니를 잃어버린 나는  

그대와 더불어 속울음 울었지

 

하늘도시를 유령처럼 떠도는

나는 구름사내

대지로부터 흔한 찬사 한 번 받지 못한

어느 이국에서 온 짐승처럼

하늘길 밟고

낯선 우주로 흘러들지

 

어젯밤은 별똥별이 자신의 부고장을 전해 주었지

부질없는 일인 줄 알면서

겉봉이 유난히 반짝거려

빛나던 한때를 떠올렸지

 

나를 이탈한 자  

불편한 세계를 나온 듯

앞서가지만

후진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선

다소 헝클어진 모습이었지

 

 

버려진 어머니

 

 

 

겨울에 버려진 냉장고는

 

아무도 기웃거리지 않는 폐가

 

늦은 오후

 

새의 그림자가 제 무게에 못 이겨

 

반쯤 열린 냉장고 문틈에 날개가 끼인다                  

 

열린 관 뚜껑처럼 불안해 편안히 닫아 주고 싶다

 

따뜻한 가슴으로 품어주던 온갖 음식물

 

다 꺼내 먹고 내다 버린

 

냉장고는 배가 고프다

 

곳곳에 지문이 꽁꽁 얼어 있다

 

나도 한때 어머니의 젖을 열심히 꺼내 먹었다 지금은

 

내게서 버려진 어머니

 

더 이상 귀찮게 들락거리지 않을게요

 

 

억압의 역사

– 돌

 

 

 

막 굴러먹은 후레자식,

다들 날 그렇게 불러요

내 얼굴도 모르는데

난들 부모를 어떻게 알겠어요

이 시간 이후로 나에 대한 호칭은 생략하고

진화의 과정을 한번 되돌아 봐요

생존

노동

약탈

윤간

전쟁

분노

한결같이 피의 냄새가 느껴지는 건

사람의 머리에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달빛 거머쥐고

묵상과 지새운 밤

내게도 차츰 변화가 생겼지요

빛나는 눈에

맑은 귀

입가엔 환한 미소가 불붙어요

복제할 수 없는 형체

내 영혼,

참 부드러운 모습이지요?

 

 

일요일

 

 

 

돋보기가 읽다 만 성경책

 

밥상 위에 펼쳐 있네

 

어머니 나귀 타고 교회 가시고

 

정성껏 차려 놓은 말씀 꼭꼭 씹어 먹네

 

시편 먹고 물 한 모금

 

잠언 먹고 물 한 모금

 

물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어머니 홀로 집에 오셨네

 

멀미하는 가방 속 성경책

 

돌아오지 않는 나귀

 

나귀는 천국으로 가는 길 모르네

 

천국은 이 땅에 없는 나라

 

어머니 나귀 위해 기도하는 일요일  《문장웹진 8월호》

 

 

 

 

시/낭송 : 김희업

출처 : 김희업 시집 『칼 회고전』, 천년의시작,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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