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도 로망스

 

마라도 로망스




김서령




“베트남에 몇 달 가려고 하는데 말이야, 생각보다 돈이 드네.”

나는 심드렁하게 끄덕였다. 가야지. 어디로건 가야지. 또 다른 세상을 보고 와야지. 이 어지러운 서울 바닥을 잠시 떠나 정말 글만 쓰다 와야지. 그렇게 큰맘 먹고 가방을 챙기다보면 달랑달랑한 예금통장이 뒷덜미를 잡기 마련이었다. 류외향 시인도 다를 바 없어서, 고민에 빠져 있었다.

“니는 우예 그렇게 잘 돌아댕기노? 난 어디 한 번 갈라니까, 온갖 게 다 붙잡는다.”

“일 년 벌고 일 년 논다 생각하면 돼요. 별 거 아니에요.”

혼자 키우는 강아지 두 마리를 한동안 돌봐줄 후배도 구해 놨건만 결국 류외향 시인은 베트남을 접었다. 그리고는 돈이 덜 든다는 마라도로 떠났다. 한국 최남단의 작은 섬, 텔레비전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았던 그 섬 말이다. 지중해나 남미의 어느 섬으로 떠났다는 말보다 더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그곳에서 사랑에 빠졌단다.

두문불출 시를 쓰겠다고 떠나간 섬에서, 횟집을 하는 남자를 만났단다.


“말도 안돼! 정말 결혼을 한대요? 외향 언니가요?”

작가들과의 술자리에서 그 소식을 처음 들은 나는, 처음에는 사람들의 실없는 농담 정도로 여겼다. 설마. 나뿐만 아니라 그 자리, 삼겹살집을 채우고 앉았던 대부분의 작가들이 나와 비슷한 강도로 탄성을 내질렀다.


나는 류시인을 대학 때 처음 만났다. 그녀는 그때도 이미 시인이었고 나는 낯을 가려서, 아무에게나 말을 잘 못 붙이는 후배였다. 안 그래도 그녀의 딱딱하고 메마른 표정, 그리고 툭툭 내뱉는 서늘한 말투에 지레 겁을 먹을 정도인데, 내가 겨우 얼굴을 익힐 무렵에는 또 머리를 박박 밀고 나타났다. 맨들맨들 한 올도 남기지 않고 파랗게 깎은 머리에 모자 하나 푹 눌러쓴 그녀를 술자리에서 만나기라도 하면,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 앉았다. 그래서 제대로 된 이야기 한 번 나누지 못한 채 졸업을 했다.

유기견을 두 마리나 키우고 있는, 게다가 그 유기견을 서울 어느 동네 좁은 자취방에서 키우는 것이 가슴 아파 집값 싼 평택으로 이사를 간, 그런 면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아, 얼마 전엔 버려진 강아지를 한 마리 더 데려왔다는 소식도 들은 것 같다.

나는 그녀와 보름 간의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아시아 문화교류를 목적으로 한 심포지엄이 태국과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그렇게 4개국에서 열렸던 것이다. 연극배우, 영화제작자, 작가들, 그리고 신문사 기자들이 몇 동행했다. 보름 동안 나는 그녀와 호텔방을 함께 썼다. 동네 큰 개에게 물려 몸이 두 동강날 뻔한 유기견을 치료하느라 두어 달치 생활비를 고스란히 날렸다는 이야기도 아마 그 여행의 어느 밤에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투박하기 그지없는 경상도 사투리에, 긴 말 싫어하고 말대꾸하는 것 싫어하고 간지러운 말도 싫어하고 강압적인 말도 싫어한다. 그러니 류 시인 앞에서는 잘 모르고 떠드느니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상책인데, 그걸 미처 몰랐던 모 신문사 기자 하나가 문학이 어쩌고, 시가 어쩌고 하다가 숙소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밤새 그녀에게 욕을 먹었다. 필리핀의 바닷가였다. 기자는 그날 마신 술이 다 깰 정도로 충격을 받았지만 물론 그녀는 술 때문에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나를 포함한 몇몇 작가들이 상처받은 기자를 달래느라 그날 밤 애를 좀 먹었다. 후에 그 기자는 자신의 미니홈피에 그날의 수모를 구구절절 고백했고(물론 일촌 공개용 글이었다), 류 시인은 기자의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일촌신청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루 꼬박 고민한 기자는 그녀에 대한 글을 지우고 일촌신청을 수락했다. 물론 지금은 두 사람, 더없이 돈독한 관계다.

 

 


무표정과 투박한 말투, 그리고 또 그녀를 설명하는 한 가지 코드가 있긴 하다. 바로 주먹. 물론 나는 목격한 바가 없다. 무용담처럼 전해 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술자리에서 난동을 피우는 문단 남자 선배를 주먹으로 제압했다는, 그래서 유치장 신세를 잠시 졌다는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낭창낭창 고개를 끄덕이곤 한다. 학교 때부터도 그런 비슷한 사건이야 종종 들어왔으니까. 추저분하게 구는 몇몇들을 류 시인이 팼다는 소문들은 나에게 그리 낯설 일이 아니다.

그런 그녀였으니, 평택 대추리의 미군기지 건설 반대현장에서 목소리를 세우며 뛰어다녔을 류 시인을 상상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녀는 오랜 시간 평택의 투쟁 현장, 그 한 가운데에 있었다. 어떤 소설가는 머리가 깨지고 어떤 시인은 목을 졸렸단다. 그녀는 그곳에서 벽시를 썼다. 대추리 주민들의 초상화가 그려진 어느 초등학교의 담벼락에 그녀는 시를 썼다. 그 시는 그녀의 주먹만큼이나 강했겠지만, 결국 학교가 파괴되면서 주민들의 초상화와 함께 땅에 묻혔다. 학교가 무너지던 날, 그녀는 바락바락 악을 썼을까, 아니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소주를 마셨을까. 다음에 만나면 꼭 물어보아야겠다. 별 걸 다 묻는다고 또 서늘하게 목소리를 낮출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대구에서 치러진 그녀의 결혼식, 어느 시인은 웨딩드레스를 입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고 다른 층을 헤맸다. 또 어느 시인은 기념 촬영 때 신부의 드레스 자락을 밟았다고 욕을 먹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그녀는 그 날, 더없이 우아하고 조용했기에 우리의 원성을 우우우, 듣기도 했다. 원래 결혼식장 풍경이라는 것이 조금만 지루하다 싶으면 식당으로 슬쩍 빠져나가 뷔페 챙겨먹는 것이 예삿일이지만 그날은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지금 비디오 찍고 있는 것 같아. 나중에 돌려보면서 없는 사람 체크할지도 모른다고.”

“다들 조용히 해. 신부가 지금 이쪽 보고 있단 말야.”

“아. 축가 부르는 후배 목소리가 너무 작지 않아? 나중에 맞는 거 아냐?”

“서령! 너는 꼭 서울에서 결혼식 해! 이번엔 신부가 무서워서 여기까지 온 거야. 네가 지방에서 하면 안 올 거야!”

무슨 말을 하건 웃음이 터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류 시인과, 머리를 한껏 틀어올리고 인조 속눈썹을 붙인 신부의 모습이 좀처럼 오버랩 되지 않아 우리는 자꾸만 킬킬거렸다.


그녀는 지금 마라도에 산다. 인물 훤칠한 낚시꾼 신랑과 무뚝뚝한 시인 신부는 요즘 짜장면 집을 열었단다. ‘자장면’이 아니다. ‘짜장면’, 그것도 해물을 넣은 ‘톳짜장’이란다. 맞춤법 표기가 틀렸다는 것은 알지만, 된소리를 쓰지 않으면 언어순화가 되고, 언어순화가 되면 국민들의 성정이 부드러워진다는 국립국어원의 의견에 도무지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다. 그래서 그녀는 요즘 미니홈피를 관리하는 대신 새 블로그를 열었다. ‘시인과 낚시꾼이 요리하는 마라도 짜장면’이라는 이름이다. 시인이 운영하는 블로그라면 방명록에 익숙한 이름 하나쯤 나타날 법도 한데, 온통 마라도 관광객들뿐이다. 맛있었다고, 꼭 다시 들르겠다는 글들이 많은 것을 보니 그녀 솜씨가 괜찮긴 한가 보았다. 바쁠 때 설거지만 좀 도와주면 먹여주고 또 재워준다고 류 시인이 약속을 했는데, 서울 생활에 심사가 꼬일 때쯤 주섬주섬 가방 싸들고 한 번 마라도엘 가야겠다.

 

 


거문도에 사시는 소설가 한창훈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오셨다.

“요즘 뭐하고 지내냐?”

“그냥 글도 쓰고…… 일도 하구요.”

“어딜 출근하고 있다는 말이냐?”

“네.”

“못 그만두냐?”

“음……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그만두기는 좀 그런데, 무슨 일 있으세요?”

“여기 거문도에 말이야, 배 타는 총각이 하나 있는데, 성격도 좋고…….”

“선생님. 지금 저보고 시집가란 말씀이세요? 선 보라구요?”

와락 웃음이 터졌다. 시인 하나는 마라도로, 소설가 하나는 거문도로. 이슈는 되겠지만 이건 명백히 류외향 시인의 아류다. 거문도 바닷가 항구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아 한창훈 선생님과 싱싱한 회 한 접시 떠놓고 소주를 마시며, 배 타고 돌아올 신랑을 기다리는 것도 제법 운치 있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류다. 해서 한창훈 선생님께는 그저 다음에 거문도로 여행이나 한 번 가겠다 말씀을 드리고 말았다.《문장 웹진/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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