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요, 두더지놀이 한 일

 

미안해요, 두더지놀이 한 일




이규리




문방구 앞, 5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쏙쏙 올라오는 두더지 대가리를 두들길 때, 가장 순발력 있게 때려잡은 사람이 평론가 김양헌이다. 어떤 사람은 소리만 컸지 두더지가 도망가도록 허탕을 쳤고 또 다른 사람은 어둔하게 방망이질을 했음에도 운 좋게 기본점수를 냈는가 하면 그런 거 잘 못해도 살아가는 데 전혀 지장 없다 위로한 사람도 있었다. 나는 뒤에서 그런 개구쟁이 짓을 보며 내심 점수를 매기고 있었는데, 한 가지 분명한 건 남자들이 뭔가 때려잡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 그렇게 낄낄거리며 즐거워하던 모습이라니.


그러던 그, 김양헌의 몸에서 종양이 발견되어 정말 두더지를 잡는 일이 시작되었다. 말하자면 색전술이라는 시술을 받게 된 것이다. 자잘한 종양이 두더지처럼 장기에 돋아나는 걸 고주파열로 태워 없애는 치료법이 색전술이다. 한 달에 한 번씩 치료를 받기 위해 서울행 열차를 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우리는 침묵했다. 어이없어서 침묵했고, 참담해서 침묵했고, 억울해서 침묵했다. 침착하게 대처하며 어렵사리 1차 수술은 무사히 성공했다. 그러나 여진처럼 나타나는 종양 알갱이들을 두더지 잡듯 그때그때 잡아내야 하는 일은 참 고통스런 작업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의연했다. “두더지 잡으러 갔다 올게요.” 농담을 던지며 상경하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이 도인인가, 아닌가 헷갈리기도 했다.


그가 휴직을 하고 요양 차 김천 오봉산 아래 한 농가에 혼자 몸담고 있을 때였다. 적적한 그를 즐겁게 해주려 몇몇 시인이 방문을 하게 되었다. 식이요법을 하는 그를 위해 유기농 식당을 찾아 대접하려던 우리는 김양헌의 완강한 만류로 그 계획을 접고 말았다. 지금 집에 있는 것들이 모두 무공해 먹을거리인데 가길 어딜 가느냐, 내가 밥을 해 주겠노라는 것이다. 아니다, 그건 경우가 아니다. 아픈 사람에게 밥을 얻어먹다니, 천벌을 받을 일이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만류를 뒤로 하고 무조건 쌀을 씻어 안쳤다. 어쩔 수 없이 어물쩍 민망하게 물러앉을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밥이 다 되어 상을 차리는데 반찬이 영 장난이 아니다. 냉장고에 그의 부인이 아픈 사람을 위해 마련한 반찬들이 칸칸마다 빼곡하게 들어 있었는데, 우엉조림과 수삼장아찌, 두부구이, 버섯요리, 한약재를 넣어 특별 재배한 상추와 오이, 처음 보는 더덕 된장 등을 가지고 나와 상을 차리는 것이다.

  

조금 송구해 하던 사람들이 식탐 앞에서 갑자기 돌변, 아픈 사람은 차치하고 밥이 모자란다, 아까 쌀 씻을 때 보니까 밥이 적을 것 같더라, 야채는 역시 무공해가 최고야 따위 뻔뻔한 발언들을 거침없이 왁자하게 내뱉으며 허기를 채웠다. 그리고는 급기야 냉장고에 있던 남은 반찬까지 몽땅 거덜내고 말았다. 상을 물리고 난 뒤에야 비로소 자신들이 한 짓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는데, 웬걸 아랑곳않고 김양헌은 어제 밭에서 캔 고구마라며 입가심하라고 한 접시 쪄내는 게 아닌가. 또 있다. 몸에 좋다는 온갖 약재를 넣고 달인, 자신이 먹을 음료 페트병 하나 분량을 그 자리에서 거덜냈으니…… 맘이 저지른 일을 몸이 갚는다고, 누군가는 재바르게 설거지에 나섰고 또 누군가는 거실을 꼼꼼히 쓸어내는가 하면, 빈 페트병과 쓰레기를 주섬주섬 한 곳에 모아 준 이도 있었다. 이런 꾸밈없는 행위들이 그를 즐겁게 해 주었으리라 애써 자위한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건 96년경 우이도 여행에서이지만, 정작 가까워진 건 그의 탁월한 비평문을 읽고 나서부터이다. 글을 통해 사람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남들보다 일찍 벗겨진 그의 이마가 아무리 100미터 반경에 번쩍! 하여도 그의 찬란한 문체를 능가하진 못하리라. 등단작이었던 「푸줏간의 물고기」를 비롯, 탁월한 심미안을 여실히 보여준 「불상유통(不相流通), 동기감응(同氣感應)」을 읽으며 눈이 번쩍 뜨였다. 《문학과사회》에 발표한 「불상유통 동기감응」은 김준오 선생의 눈에 띄어 <고석규비평상> 수상이라는 영광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특히 김준오 선생이 마지막으로 인정한 비평문이라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고 하겠다. 그 시상식을 위해 나는 부산까지 가서 그의 미래에 박수를 보냈다.


일 때문에 내가 구미를 들를 때면 반드시 그를 만나곤 한다. 그럴 때 그는 한 번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자신이 숨겨 놓은 풍경과 사물을 아낌없이 보여 주곤 했다. 수양벚나무가 기막히게 꽃을 피웠다며 보여 주는가 하면, 낙우송 뿌리가 더 나아갈 때가 없어 땅 위로 종양(저 망할 두더지 대가리들!)처럼 특이하게 뿌리를 내민다고 굳이 보여 주기도 했다. 그에게 들은 꽃 이름은 사전을 꾸며도 좋을 정도다. 지난 초여름 청노루귀가 피었으니 오라는 말을 듣고 곧장 달려갔더니 직지사 뒷길로 우리를 안내했다. 산길을 한참 올라 한 지점을 가리키는데 특이한 점을 도저히 발견할 수 없었다. 한참만에야 내 눈에 들어온 청노루귀를 보며 나는 ‘꽃은 꽃으로 알아본다’ 라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알려지지 않은 우리 꽃을 찾아다니며 생명의 숨결을 불어 넣거나, 오랜 생을 겪어낸 노거수들을 찾아 위무하는 일을 즐겨한다. 그것이 사랑의 행위이란 걸 안다. 그리고 그날 보았다. 손톱만한 청노루귀를 조심스레 떠받쳐 보여 주던 섬세한 손동작이 바로 한 송이 꽃이었음을.


그만큼 그는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다. 단언컨대 그의 감각과 판단력은 여느 시인보다도 더 민감하고 여느 과학자보다 더 예리하다. 그렇게 우리 곁에 다가온 뛰어난 평론가 한 사람이 자랑스럽고 느꺼워 술잔을 자주 기울였던 것이 혹 화근이었을까. 내 탓이다. 사람 좋아 거절하지 못하는 이에게 술을 권한 사람이 나다. 술을 좋아했고 술보다 사람을 더 좋아했던 그다. 더하여 그에게 무슨 곡절이 홍역처럼 다녀간 걸까. 허무주의자이면서 탐미주의자인 그. 기실 예술가를 자처하는 우리에겐 아름다움이란 것이 늘 독이었다. 문학이라는 이름으로 접수했던 불면과 지식욕과 시대의 울분들도 사실은 모두 독이었다. 그 독을 펜으로 찍어 한 자 두 자 새겨 놓은 것이 그의 문학이다. 끽연과 음주와 불면으로 온몸을 만신창이로 만든 후 벼랑 끝에 서듯 서 있어야 비로소 문장이 흘러나온다는 그. 그런 그가 지금 많이 아프다. 나는 진실로 어떤 절대자 앞에 그에게 찾아든 두더지의 씨를 말릴 수 있기를 간구하고 또 간구한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몸을 대우하기 시작했다. 담배를 끊었으며 술을 삼갔다. 삶의 가치와 존재의 이유를 몸에 맞추면서 그는 더 고요하고 더 깊어지고 더 명랑해졌다. “지금같이 신앙심이 없는 시대, 사람은 명랑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입니다. 침몰하는 타이타닉호에서 기선 악대는 최후까지 연주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절망이 기어오르는 발판을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라는 말에 동의하듯 그의 명랑함이 고맙기만 하다. 그러나 또한 불안하다. 이렇게 아픈 그가 그동안 한 번도 삶을 투정하는 걸 보지 못했는데 정작 안 아픈 내가 늘 아픈 척했다. 지금 몹시 부끄럽다.


아프기 시작하면서 나타난 또 다른 변화는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 이유를 나는 모른다. 다만 잘 어울린다. 점점 투명해져 가는 그의 얼굴빛과 턱수염은 지식인의 면모를 잘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혹 그 수염으로 삶의 허무와 애달픔의 표정을 감추려 했던 건 아닐까. 그가 내게 보여 준 아름다움에 대한 답례로라도 나는 그의 간장에 달라붙은 오만방자한 놈들을 떼어내고 싶다. 무지하게 선량해서 작은 업(業) 하나 짓지 못할 그의 처소에 잘못 깃든 저 불한당을 몰아내고 싶다. 왜냐하면 해마다 우리는 청노루귀를 보아야 하니까. 그리고 선산 낙산동 삼층석탑의 감실에 숨어들어 꽃살림 차려야 하니까. 아니지, 무엇보다 그는…… 너무…… 착하니까. 따뜻하니까. 무지…… 아까우니까.《문장 웹진/2008년 7월호》

 

 

편집자주

평론가 김양헌 선생께서 7월 3일 새벽 3시에 돌아가셨습니다. 청노루귀꽃처럼 아름다웠던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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