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와 진실

 

허구와 진실

– 남미 여행기(5)




권리




한국인이 남미 여행을 떠날 때 반드시 준비해야 할 물건이 있다. 그것은 ‘중국인 아님’이란 팻말이다. 그것을 큰 가방에 붙이는 것이다. 그럼 아무도 ‘치노 혹은 치나(Chino(a), 중국인)?’ 라는 말을 걸어 귀찮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콜롬비아를 여행할 때만은 예외로 해도 좋을 것이다. 왜냐하면 콜롬비아 사람들은 주로 ‘코레아?’라고 먼저 물어 오기 때문이다. ‘치나(China, 중국)?’ ‘하폰(Japon, 일본)?’이란 물음이 건네진 이후에 고개를 저으며 ‘코레아’라고 대답할 필요가 전혀 없단 뜻이다. 그들이 왜 친 한국 성향을 띠는지는 모르겠다. 더 이상한 일이 하나 있는데, 내가 만난 두 명의 타이완 여자들은 거리를 다닐 때마다 늘 ‘코레아?’란 질문만 받았다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혼자만의 퀴즈 놀이(‘치나?’ ‘땡!’ ‘하폰?’ ‘땡!’ ‘필리핀?’ ‘땡!’ ‘코레아?’ ‘딩동댕!!!’)를 하며 카타헤나(Cartagena) 거리를 돌아다녔다. 

 

 

카타헤나는 콜롬비아 북부의 해안 도시인데, 해변 쪽이 성벽으로 가로막혀 있어 독특한 분위기가 난다. 얼마 전 가브리엘 G. 마르케스가 쓴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이 이곳을 배경으로 하여 영화화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원작에는 도시의 이름이 특별히 밝혀져 있지 않지만 듣고 보니 어쩐지 카타헤나의 분위기와 제법 잘 어울린다. 16세기 무렵, 카리브 해에 주둔한 스페인군의 주요 요새로 번성했던 이곳은 현재 콜롬비아에서 가장 큰 항구이자 산업 도시로 자리 잡았다. 올드 타운 내에는 16, 17세기 스페인 풍 건물들과 공예품, 액세서리, 옷가게들이 미로처럼 생긴 거리를 사이좋게 점하고 있다. 숙소를 나서는데 얼굴빛이 짙은 남자가 다가왔다. ‘치나?’ ‘하폰?’ ‘코레아?’의 질문 퍼레이드가 이어진 뒤, 그가 악수를 건네며 물었다. "마리화나 필요해요?"

 

 

‘콜롬비아’ 하면 ‘커피’와 더불어 ‘마약’이 떠오르는 게 사실이다. 콜롬비아를 다녀오지 않은 여행자들은 간혹 그곳이 얼마나 위험하냐고 묻곤 한다. 콜롬비아의 범죄 강국(?) 이미지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한 사람들은 게릴라다. 관공서 곳곳에는 수십 명이 넘는 게릴라의 사진과 현상금이 붙어 있다. 특히 최대 게릴라 조직인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은 9,000여명의 병력을 갖춘 대규모 무장단체로 활동하며 반세기간 콜롬비아 정부를 위협해 왔다. FARC는 원래 토지개혁과 정권 탈환을 주요 목표로 하는 사회주의 이념을 내걸었으나 친미 성향의 알베로 우리베 대통령의 대대적인 토벌 공세로 세력이 약화되자, 지금은 코카인 거래와 인질 납치를 주로 하는 테러 단체로 전락했다. 게다가 대변인에 이어 최고 지휘관까지 사망한 것도 모자라, FARC를 배후 지원해 온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마저 무장혁명군과의 관계 청산에 나선 상태여서 무장혁명군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이런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는 여행하기 힘든 곳이라는 기대를 자주 배반하는 나라다. 사람들은 친절하며 정감이 넘치는데다가 음식도 맛있다. 카타헤나에서 22시간 거리에 있는 수도 보고타에서 재밌는 사람들을 보았다. 신호등 앞에서 차가 멈추자 서둘러 앞 유리창을 닦아주고 돈을 받아 가는 그들이었다. 칠레의 같은 장소에서 저글링을 하고 돈을 받아 가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5월의 보고타는 춥고 비가 많이 왔다. 콜롬비아는 국토의 대부분이 적도 바로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덥고 습하지만, 보고타는 해발 2600미터 위에 있어 연중 14℃의 기온을 유지한다.

 

 

보고타를 걷다 보면 창틀 테두리 주위에 색이 칠해져 있는 건물이 나란히 늘어선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칸델라리아(La Candelaria)는 옛 식민지풍의 고풍스럽고 산뜻한 건물들이 늘어선 구역이다. 이 안에는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화가 보테로를 만날 수 있는 미술관(Donacion Botero)도 있다. 보테로 미술관에는 안경 너머로 그림이 뚫어져라 심각하게 보는 사람들이 없다. 웃음에 관한 의태어로 표현하자면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보테로 특유의 동화적인 감성과 유머러스한 과장법 때문이다. 뚱뚱한 모나리자로 유명한 보테로는 여자의 엉덩이를 유난히 살찌게 그리고 눈 밑에는 애교 점을 그리는 버릇이 있다. 옷을 벗은 채 웃고 있는 여자의 모습은 한 떨기 장미가 아니라 맛있게 부풀어 오른 빵처럼 보인다. 여자뿐이 아니다. 살찐 말, 살찐 과일, 살찐 자화상까지, 그는 무슨 사물이든 풍만하게 그린다. 조각 작품도 마찬가지다. 곧 레스토랑에 보내져도 아무런 핑계를 대지 못할 정도로 퉁퉁하게 살이 찐 말을 보며 예술가에게 있어 개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칸델라리아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가브리엘 G. 마르케스 문화센터(CCGGM, Centro Cutural Gabriel Garcia Marquez)를 발견했다. 여기에는 마르케스의 대표작들이 다양한 형태로 수백 권이 쌓아 올려 진 벽장이 있다. 옥타비오 파스, 이사벨 아옌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책들을 지나가다 보면 한쪽 구석에 외국 소설들도 보인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 밑에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이 있고 그 옆에는 척 팔라닉과 트루먼 카포티, 더글라스 아담스의 책들이 올려 있다.

나는 가끔 한국 작가들 작품이 시중에 나와 있는지 살펴보곤 한다. 하지만 영국과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에서도, 남미에서도 한국인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은 단 한곳도 없었다. 매년 ‘노벨문학상의 한국 작가 수상’이라는 위업이 무산되는 날이면, 기자들이 씁쓸히 아무개 씨의 집 앞에서 철수를 한다는 소식과 함께 ‘한국어의 우수성’이라는 볼멘 목소리들이 들려오곤 한다. 하지만 한국 문학이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한국어가 우수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번역된 작품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 문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베트남 문학만큼이나 멀게 느껴질 것이다.

반면, 일본 작품들은 스페인어 권 서점 어디서나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르헨티나 서점의 벽에서는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 미시마 유키오처럼 잘 알려진 일본 소설가들의 사진이 윌리엄 포크너와 나란히 걸린 것을 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발군의 작가는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다. 현대의 아시아 소설가 가운데에서 그만큼 러브콜을 받고 있는 아시아계 작가도 드물 것이다. 예전에 스페인의 어느 거리에서 본 하루키 책 띠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문학계의 데이비드 린치’. 나는 그 말에 별로 동의할 수 없지만 서구적 관점에서 쓴 현대 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그가 장식했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다. 나는 ‘류가 좋냐, 하루키가 좋냐?’는 유치한 문답에서 언제나 후자에 손을 드는 편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시아를 대표하는 작품을 썼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이 정도의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 그의 문학적 보편성 때문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나는 9개월간 세계를 여행하면서 대륙을 넘나드는 보편적인 현상을 목격했다. 체중을 달아 주고 돈 받는 사람, 줄줄이 사탕처럼 길게 매달린 복권을 파는 사람, 밖에 재봉틀을 내놓고 열심히 페달을 굴리는 사람, 손을 입 부근에 가져가며 구걸하는 사람, 화려한 네온사인 대신 조악하게 페인트로 벽에 상호를 칠하고 있는 사람들. 이상하지 않은가? 세계 어느 서점에서나 똑같이 해리포터가 윈도 앞을 장식하고 있고 각기 다른 기념엽서를 팔고 있으며, 어느 재래시장에서나 물건 값을 액면가보다 조금 깎는 것이 기본처럼 되어 있고 짝퉁 가방이 있고 불법 DVD 장사꾼들이 있다. 아프리카와 중동, 남미의 어느 지역, 어느 인종을 막론하고 똑같은 일이 벌어지는 것은 굉장히 우연하고 신비한 일이다.

보고타의 숙소에 돌아왔을 때 두 명의 콜롬비아 남자가 소파에 앉아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알 포인트>였다. 그들이 한국 상황이나 군대, 영(靈)에 대한 믿음 등을 배경 지식으로 갖고 있을 리 만무하다. 하지만 그들은 그 영화가 무척이나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그들은 ‘메이드 인 코리아’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적인 한 모습을 본 것이다. 

 

 

나는 인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기 위해 콜롬비아 남부의 산 아구스틴(San Agustin)으로 향했다. 이곳은 단순함의 미학을 보여주는 동네이다. 비탈진 언덕 위를 채우고 있는 것은 흰색 페인트칠이 된 벽과 파란 대문들뿐이다. 동네에는 개와 연날리기하는 아이와 팽이치기하는 꼬마와 노인들이 돌아다닌다. 마치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연상되는 소박한 정경들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산 아구스틴 고고학 공원(Parque Arqueologico de San Agustin)은 내가 본 중 최고의 야외 박물관이었다. 78헥타르에 달하는 이곳에는 석상과 무덤들이 잔디와 정글 위에 흩어져 있다. 남미의 석상들은 언제나 익살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다.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있는 석상 사이로, 느릿느릿 기어가는 딱정벌레와 이구아나, 거북, 그리고 광대한 집들을 잔디 위에 짓고 사는 개미떼들을 목격하는 것은 즐거운 보너스 중 하나다.

 

 

산 아구스틴을 나와 비포장도로를 달린다. 너구리가 한 마리 지나가는가 하면, 누군가 돌로 산 밑자락에 박아 놓은 해골이 보인다. 버스 운전사는 신나는 라틴 음악에 맞추어 기어에 올린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다. 창 밖에는 말 위에 쪼르르 올라타 있는 세 명의 꼬마가 보인다. 막 콩 껍질에서 꺼낸 콩알처럼 옹기종이 앉아 있다. 안데스를 넘는 동안 시골 마을의 풍경은 정겨웠다. 사과 뺨을 한 어린애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모습이라든가, 버스 안에서 젖 먹이는 여자의 모습을 구경하고 있는데 비가 세차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빗소리 사이에서도 멀리서 소들이 풀 뜯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스갯소리로 ‘소 풀 뜯는 소리 하고 앉았네!’라고 하지만 시골에서 자라지 못한 나에겐 소가 풀 뜯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음악도 없었다.

 

 

나는 페루의 리마를 향해 가면서 그곳의 모습을 상상했다. 안데스 산맥 밑자락에서 풀을 뜯고 있을 양, 삼포냐(zampona: 팬플룻처럼 생긴 안데스 지방의 전통 악기)를 불고 있는 목동, 색색의 천 보자기를 매고 다니는 여자들……. 마침내 리마에서 가장 처음 마주한 것은 KFC의 거대한 간판이었다. 여행자들이 많이 몰리는 미라플로레스(Miraflores)의 해변 근처 절벽에서는 패러글라이딩이 인기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싼 값(50달러 안팎)으로 25분간 탠덤(전문가와 함께 타는 일) 비행을 할 수 있는 장소일 것이기 때문이다. 도시에서는 도시 생활을 즐겨야 하는 법. 나도 근처 멀티플렉스 빌딩의 카페에 있는 사람들과 해안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짜릿한 경험을 했다. 패러글라이딩을 마치고 오랜만에 극장에 갔다.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가보고 처음 가보는 것이니까 거의 1년 만의 극장 나들이인 셈이다. 굉장히 설레는 마음으로 본 <인디아나 존스 4>는 공교롭게도 페루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극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나스카 라인이나 쿠스코에 대한 화면이 지나갈 때마다 환호성을 냈다. 모험 영화는 페루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 충분했다.

 

 

쿠이(Cuy)는 모험을 원하는 사람이 피해갈 수 없는 요리 코스일 것이다. 나는 마추픽추로 가기 위한 주요 관문인 쿠스코에서 기니피그(guinea pig)를 요리한 쿠이를 맛보았다. 기니피그가 ‘돼지’가 아닌 쥐목(目)에 속하며, 다른 말로는 ‘모르모트’라고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놈이 네 개의 다리를 잔뜩 웅크린 채 손톱과 이빨을 드러낸 채 누워 있는 접시를 종업원이 가져다주었을 때였다.

“모험이에요, 그쵸?”

나는 주방장이 부엌을 돌아다니는 쥐를 잡아다 네 조각으로 잘랐는지 알았다. 등뼈에 딱 달라붙은 얇은 피부하며, 댕강 잘라진 목 사이로 보이는 까만 살들, 그리고 내장이 다 발라져 텅 빈 원통처럼 보이는 25센티미터 길이의 가냘픈 몸을 보고 있으려니 입맛이 딱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입을 한껏 벌리고 있는 놈의 머리를 반대쪽으로 놓은 뒤, 등의 살점을 조심스럽게 뜯어 먹었다. 껍질이 질긴 편이었지만 맛은 있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 마당에서 본 거대한 쥐새끼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모험과 스릴 넘치는 식사를 한 다음날, 나는 아구아스 깔리엔떼(Aguas caliente: 뜨거운 물이라는 뜻)행 기차를 탔다. ‘백패커스 트레인’이라는 이름의 이 파란색 기차는 기관실까지 포함해 6량밖에 되지 않았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끼리 무릎을 마주대고 4시간가량 가는데 기가 찰 정도로 속도가 느리다. 산비탈을 오르기 때문에 지그재그 형태로 다섯 번 이상 주행을 하게 된다. 창밖으로는 완전한 시골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당나귀, 몸이 노르스름하고 입과 발만 흑갈색인 양떼들, 개, 농부들. 잠시 기차가 섰을 때 8명의 어린 아이들이 나타났다. ‘1솔(약 400원)만 주세요!’하고 외치면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에게 한 백인 여자가 사탕을 던져 주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미가(amiga, 친구)!’를 외치면서 여자의 손 밑으로 달려들다 서로 치고 받고 싸우다 어떤 아이는 몸뚱이가 깔리기도 했다.

 

 

아구아스 깔리엔떼에 도착하자 안개가 휘어 감싸고 있는 웅장한 산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추픽추를 내려다보고 있는 2700미터 높이의 와이나픽추(Waynapicchu)였다. 나는 한 시간 정도 가파른 산길을 걸어서 와이나픽추의 정상에 올랐다. 산자락에 마추픽추가 찌그러진 별 모양 형태로 박혀 있고 그 왼쪽으로는 지그재그형의 기차 길이 보였다. 이곳의 기후는 무척이나 변덕스러워서 안개가 끼었다 걷히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다. 드디어 안개가 개운하게 걷히자 ‘잉카의 잃어버린 도시’가 눈앞에 나타났다.

많을 때는 하루에 천 명씩 방문한다는 잉카 제국(1438년?1533년)의 고대 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 '나이 든 봉우리'라는 뜻)는 해발 2천 미터 높이에 있어, 흔히 ‘공중도시’로 비유된다. 이곳은 우루밤바(Urubamba) 계곡 사이에 있다. 성벽으로 둘러쳐진 안에는 신전, 궁전, 일반 거주지를 포함해 200 가구 이상의 유적이 40개의 계단식 밭과 3000개의 계단으로 오밀조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잉카 제국은 100년간 번성하다가, 13대 황제이자 마지막 사파 잉카(Sapa Inca, 케추아어로 ‘유일한 왕’이라는 뜻)였던 아타왈파가 스페인의 피사로에게 살해당하면서 멸망에 이르렀다. 잉카인들은 왜 이런 곳에 도시를 세웠을까. 그리고 200톤이 넘는 거석을 정교하게 쌓아 올릴 수 있었던 화려한 문명을 버리고 왜 16세기에 갑자기 이곳을 떠났을까. 1911년 한 미국인 역사가에 의해 발견되기 이전까지 400년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여전한 수수께끼이다.

다음날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를 거쳐 쿠스코로 돌아갔다. 두 시간 가량 달린 버스 도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푸른 하늘과 들판, 몸뚱이가 안 보일 정도로 무거운 장작을 지고 가는 당나귀, 풀 뜯는 젖소와 양 그리고 산 위에 새겨진 기이한 문양을 보고 있으니 남미 여행의 피로가 싹 가셨다. 불과 5솔(약 1800원)이면 이런 스펙터클한 파노라마를 구경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쿠스코에서 다시 15시간을 달려 나스카에 도착했다. 나스카는 인구 5만 명의 작은 마을이지만 해마다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 500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미스터리한 그림을 보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보통 6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약 30분간 총 13개의 나스카 라인을 보게 된다. 우주인인지 올빼미인지 가늠할 수 없는 사람의 형상, 꼬리가 돌돌 말린 원숭이, 다리가 좌우로 대칭을 이루는 거미 등 다양한 무늬가 거대한 사막 위에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신비하기 짝이 없다. 게다가 이 무늬는 그린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태양에 그을린 돌들을 치워냄으로써 하늘에서만 특정한 무늬가 보이도록 만들어낸 것이다. 대체 누가, 왜 이곳에 이런 문양을 만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천체 지도설, 샤머니즘 의식설 등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어느 것도 확실한 것은 없어서 나스카는 여전한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신비로 가득 찬 페루에서 오아시스가 나타났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다. 페루 남부의 이카(Ica)에서 택시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후아카치나(Huacachina)란 곳이 나온다. 이곳은 사막 한 가운데에 있는 작고 평화로운 오아시스 마을이다. 분위기 있는 카페와 장신구 파는 사람들이 관광객을 유혹하는가 하면, 사막 한가운데에 수영장까지 마련한 어떤 숙소에서는 매일 밤 바비큐 파티를 열기도 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레포츠는 버기(buggy: 사막을 달리는 바퀴가 큰 차) 투어와 샌드 보딩이다. 버기는 사막의 롤러코스터 같은 차다. 이것은 사방이 뚫려 있고 사막의 어느 곳이든 자유롭게 달릴 수 있다. 사구(砂丘)의 아름다움은 버기를 타는 순간 끝장이 난다. 방심하고 있다가 사구 아래로 차가 달리면 마치 절벽 위를 직각으로 달리는 기분이 든다. 버기 운전사가 미친 듯이 사막을 달리는 바람에 나는 모자도 잃어버리고 카메라도 고장 나버렸지만 오래 전에 잃어버린 아드레날린을 되찾고야 말았다.

 

 

페루의 마지막 목적지는 피스코(Pisco)였다. 이곳은 이카에서 불과 두 시간 떨어져 있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거리 곳곳이 마구 파헤쳐져 있고 보도블록 중간에는 구멍이 뚫린 곳도 허다해서 잘못하면 다리가 빠지기 십상이었다. 나는 중심부가 날아간 교회를 보고 나서도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깨닫지 못했다. 알고 보니 피스코는 작년 8월 15일에 일어난 대지진의 피해지였다. 당시 페루 남부 지방을 강타한 리히터 규모 8의 지진 때문에 500명 가까운 사람들이 건물 잔해에 파묻히거나 심장마비에 걸려 사망하고, 부상자도 1600명에 달했다고 한다. 마침 성모 승천 대축일이어서 성당에서 미사 드리던 145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는 아이러니한 소식도 뒤늦게나마 듣게 되었다. 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이뿐이 아니었다. 1만7000여 건물과 주요 고속도로가 파괴되었고 전기, 수도, 통신이 두절되었으며, 여진이 끝없이 이어져 하루아침에 집을 잃은 사람들이 8만 5000명에 달했다. 지진이 난 지 일 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도 파괴된 집들 사이에는 대형 텐트들이 남아 있다. 그즈음 중국과 일본에서 지진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피스코의 깨진 도로를 걷고 있자 지진의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우울한 피스코를 끝으로 40일간의 남미 여행을 마쳤다.

남미 여행을 한마디로 하면 구토가 나오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의 버스 여행이 짧으면 8시간에서 길면 30시간이나 걸리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고산 지대로 향할 때는 구토를 세 번이나 하는 것도 모자라 초록색의 담즙까지 쏟아낸 적도 있었다. 기압 변화로 샴푸가 터져 가방이 흠뻑 젖은 일도 비일비재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내가 한국적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전부터 한국어가 외국인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물어보았다. 타이완에서 만난 여자들은 요새 한창 유행하고 있다는 한국 드라마를 예로 들었다. 한국어의 모음이나 ‘아리랑’의 율동성, 한복 곡선의 부드러움 등을 떠올리고 있던 내게 그녀들은 한국어가 마치 싸우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굉장히 거칠다고 말했다. "일본어보다는 부드럽죠?"라는 내 질문에 그들은 고개를 저었다. 예전에 볼리비아에서 만난 홍콩 여자는 "한국? 아, 거기 여자들이 성형 수술 많이 한다는 게 진짜예요?"하고 물었고 그 전에 만난 일본 여자는 "한국에선 때를 민다면서요?"라고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의 정체성이나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허구에 머물러 있기는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몇 몇 이미지가 만들어 놓은 허구의 그물을 뚫지 못해 진실에 잘 다가가지 못한다.

 

 

남미에 와서 놀란 점이 있다. 사람들이 영어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것이다. 한번은 대형 마트에 팝콘을 사러 간 적이 있었다. 나는 ‘팔로미타스(palomitas)’란 단어를 몰라 ‘빵 터지는 먹을 것’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했는데, 직원이 나를 데려다 준 곳에는 부탄가스가 마구 쌓여 있었다. ‘핫(hot)’처럼 우리가 자주 쓰는 단순한 어휘들조차도 그들은 몰랐다. 물론 그것은 스페인어가 중국어와 영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인 탓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핫 팝콘’ 따위의 단어를 어렸을 때 우습게 깨우치고도 모자라, 외국에 어학연수까지 떠나야 하는 한국의 학생들을 생각하면 ‘핫이 뭔데요?’ 라고 하던 직원의 반문은 너무나 이상한 나라의 외국어였다. 나는 그들에게 ‘영어에 대한 짝사랑 감정’이 전무하다는 것에 놀라움을 느꼈다. 가끔 한국에 관한 뉴스-특히 영어 교육 정책 관련 소식-을 듣다 보면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아진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영어를 잘 못해서 미안한 감정’을 느끼곤 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유감’의 문제가 아니었다. 왜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핫이 뭔데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자유를 상실하게 된 것일까. ‘핫’을 모르면 죄책감을 느끼고 당장이라도 영어 회화 새벽반 A코스를 끊어야 하게 되었을까. 정체성이란 자존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잉카 제국이 손 놓아 버린 것은 망치와 도끼가 아니라 그들의 정체성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영원히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문장 웹진/2008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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