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 숲을 기어서 가자

 

정글 숲을 기어서 가자

― 남미 여행기(3)




권리 




당신은 도시가 좋은가, 시골이 좋은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후자 쪽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반대로, 도시가 좋다. 24시간 편의점과 밤새 영화를 볼 수 있는 멀티플렉스 극장, 좋아하는 책이 열권씩 꽂혀 있는 공공 도서관. 이것이 내가 도시를 좋아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시골로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그 후에 비로소 도시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깨닫기 위해서다.

 

 

아르헨티나의 대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좋은 공기라는 뜻, 이하 BA)에는 멋진 바람이 분다. 그 바람은 여자의 발목을 타고 온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발목이 그토록 아름다운 줄 몰랐다. 그것은 확실히 예뻤다. 특히 부드럽게 뒤로 젖혀질 때는 섹시하기까지 하다. 이런 생각이 든 것은 도레고 광장(Plaza Dorrego)에서 탱고 공연을 보고 난 후부터다. 그곳에는 일요일마다 골동품 시장이 열리는데, 길거리에서 탱고 공연을 볼 수 있다. 여기선 아직 사랑이 뭔지도 모를 초등학생 커플까지 나와 허벅지를 들었다 내렸다 하는 춤을 춘다. 발목을 꺾는 부분은 아직 어색해 보이지만 열심히 추는 모습이 귀엽다. 또 이십오 년째 탱고를 춘다는 포치와 오스왈도의 공연은 신선했다. 빨간 드레스와 장갑과 하이힐을 착용한 사람이 할머니였기 때문이다. 포치는 까만 중절모에 회색 양복을 입고 있는 오스왈도와 함께 엉덩이를 씰룩댄다. 한국에서라면 ‘노망났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도레고 광장의 스타다. 그들의 모습을 흑백 사진에 담아 팔고 있는 장사꾼들도 여럿 된다. 본격적인 탱고 공연을 보기 위해 백오십년 된 카페 ‘또르띠니(Cafe tortini)’에 갔다. 공연 제목은 ‘탱고의 그림자’(Sombre de Tango)였다. 이들의 탱고는 춤과 노래뿐 아니라, 드라마까지 가미해 놓았다. 내가 좋아하는 아코디언 악사들은 발과 고개로 박자를 맞추며 자신의 음악에 심취해 있다. 뜨거움과 섹시함과 귀여움이 버무려진 탱고에 나는 그야말로 푹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탱고를 빼면 BA는 전형적인 메트로폴리스의 하나로 전락하고 만다. BA의 지도는 거의 바둑판 모양이다. 지도 위에서 오목을 하면 가볍게 세 판 정도는 할 수 있다. 거리나 지하철 역 이름은 남미의 주요 도시나 유명인들 이름을 따왔다. 과테말라 거리, 니카라과 거리, 보르헤스 거리, 그리고 체 게바라 거리까지. 예상대로 체 게바라는 ‘국민 삼촌’ 이다. 체 게바라 배지, 체 게바라 가방, 체 게바라 목걸이, 체 게바라 액자 등등. 그 중에서도 가장 웃겼던 것은 체 게바라가 된 마릴린 먼로였다. 지루하게 계획된 도시답게 노숙자도 많다. 아기를 더러운 바닥에 앉히고 구걸하는 여인, 배꼽이 등에 달린 남자, 왼발로 그림을 그려 파는 사람 등등. BA에는 사실 멋진 바람이 아니라 탁한 공기가 분다. 여기 사람들의 관심사는 두 가지다. 보카주니어와 인디펜던트 경기에서 어느 팀이 이길 것인가, 혹은 오늘은 어떤 카페에서 무슨 점심을 할까. 하지만 나라면? 어떻게 하면 바로 도시를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잠깐 넌센스 퀴즈를 내보자.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의 세 나라 사이에 흐르는 눈물을 무엇이라고 할까. 정답은 ‘이과수’다. 브라질 쪽에서 본 이과수는 ‘이’름 그대로 ‘과’연 ‘수’작이었다. 그것은 절벽이 쏟아 내는 눈물 같았다. 마치 오십년 간 헤어진 형제를 다시 만났을 때, 기쁨과 슬픔이 섞여 있는 고요하고도 뜨거운 울음을 쏟아 내듯이, 산은 그렇게 울고 있었다. 그 울음소리가 어마어마하게 컸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벙 뚫리는 폭포였다. HD TV나 극장용 스크린에서도 이 감동은 전해질 수 없을 것이다.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모자란 사람들은 어떻게 하냐면, 바로 이 폭포 속으로 뛰어든다. 보트를 타고 말이다. 이십인 용 보트에 탄 사람들은 폭포에 다가가면서 점점 숨을 죽였다. 설마 했는데, 보트 운전사는 그대로 폭포 밑에 자가용을 돌진해 버린다. 머리가 따가울 정도의 큰 폭포 줄기에 맞고 나니, 어느 새 안경은 날아가고 정신은 몽롱해지며 모두가 친구가 된다. 사람들은 와락와락 소리를 지른다. 아마 어린 시절, 분수대 안에서 뛰어놀며 정신없이 좋아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마치 사람들은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비에 젖은 채 미친 듯이 소리 지른다. 멀리서 ‘보세띠 폭포’(Salto Bossetti)에 무지개가 보인다. 그것도 쌍무지개다. 평소에 빗물에 얼룩진 자동차 기름 무지개만 보던 사람들이 무지개 너머 파란 나라를 향해 손을 흔든다. 이과수 국립공원에는 폭포만 있는 것이 아니다. 높은 나무에 사는 코아티(남미산 곰의 일종), 도마뱀, 나비, 왕개미 등 다양한 동물들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특히 나는 코아티라는 동물을 처음 보고 점점 남미의 동물들에 관심이 갔다. 하지만 동물들 이야기는 잠시 두고 다시 도시 이야기로 넘어가자.

 

 

이과수에서 브라질 국경까지는 불과 십 분이다. 하지만 시간은 한 시간 더 늦어졌고, 현지인들은 포르투갈어만 할 뿐이다. 시간과 관념을 고쳐먹기 무섭게 다시 버스에 올랐다. 이십 시간이 걸려 도착한 상파울로는 전체적으로 우울하고 이상하게 긴장감이 도는 곳이었다. 일요일 오후 다섯 시부터 나이트클럽 앞에 길게 늘어선 줄들을 보자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놀라운 것은 젊은 노숙자가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맨발로 리퍼블리카 공원을 돌아다니며 담배 빌려 달라고 하는 소년, 그래피티가 지저분하게 칠해진 높은 터널 아래에서 자고 있는 청년들. 또 대낮에 공원의 연못에 뛰어들려는 애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동 경찰차 앞에서 경찰 세 명은 잡담 중이었다. 그들 옆에서 젊은 커플이 키스를 하고 있었다. 브라질이 아르헨티나와 다른 점은 유색 인종(특히 흑인)이 많으며 물가가 비싼 데다, 엄청나게 덥다는 것이다. 리오 데 자네이루에 사는 여자들의 노출 수위는 세계 최고다. 임산부도 브래지어에 가까운 탱크톱을 입고 다닌다. 나는 더위는 질색이다. 내가 리오 데 자네이루에서 겪은 봉변도 순전히 더위 때문이었다. 내가 무심코 지하철에 탔을 때, 반대편 좌석에 앉은 아주머니가 날 보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쪽을 보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다 내 쪽을 보았다. 어디선가 영어가 속삭이듯 들려왔다. 여기는 여자 전용칸이에요. (지난 회에 썼듯이 나는 삭발을 해서 지금은 머리카락이 약 이 센티미터 정도 자란 상태다.)

하지만 그놈의 더위는 리오 데 자네이루를 최고의 해양 도시로 만들었다. 하늘은 높고 파도 위에는 서핑하는 애들이 둥둥 떠 있고, 백사장에는 비치발리볼이니, 선탠이니 하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게다가 둥그런 달과 가슴이 짠할 정도로 붉은 놀이 저녁 바다를 채운다. 특히 이파네마와 코파카바나 해변은 잊기 어렵다. 삼 단 파도가 동시다발적으로, 거세게 밀려오는 바다라니. 이전까지만 해도 파도는 넘실대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파네마의 파도는 출렁, 아니 쿨렁댔다. 일단 파도가 멀리서 안으로 휘말리듯 온다. 김밥을 말듯이 천천히, 그리고 크게 다가오는 파도에 등을 맞으면 백사장을 향해 그대로 전진이다. 꼬맹이들이 서핑 하느라 정신없을 때, 나는 파도에 맞아 두 바퀴 반을 굴렀다. 내 코와 귀에서는 소금물이 나왔고 옆에 있던 아기는 팬티가 홀랑 벗겨졌다. 이 와중에도 어떤 남자는 철망으로 바다에 쏟아진 동전들을 줍기 바쁘다. 불과 삼십 분 정도 수영했을 뿐인데, 손가락 끝의 살갗이 벗겨져 있었다. 피부는 점점 검게, 시골형으로 변해 갔다.

 

 

며칠 후, 판타날(Pantanal)에 가기 위해 리오 데 자네이루에서 서쪽으로 이십 시간 동안 버스를 탔다. 꿈을 꿨는데 거대한 악어 세 마리가 몸을 겹친 채 내 앞에서 기어가고 있었다. 악어는 현실에도 나타났다. 판타날은 그 크기가 이십일만 평방킬로미터나 되는 세계 최대의 습지대다. 그곳은 리오 데 자네이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덥고 습했다. 삼월 말은 우기의 끝 무렵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습지에는 최대 3m까지 물이 차오른다고 한다. 숙소는 물 위에 지어져 있었다. 화장실에서는 노란색 혹은 검은색 물이 쏟아졌다. 양치를 하면 입안이 더욱 텁텁해지는 그런 물이었다. 게다가 바닥에는 왕만두만한 바퀴벌레가 돌아다녔다. 화장실 대신 밖으로 가니 까만 악어 한 마리가 물속에 잠수해 있었다. 나는 지레 겁을 집어먹었다. 그것은 남미산 악어의 일종인 캐이먼(Cayman)이었다. 케이먼은 엘리게이터(Alligator: 북미산 악어)와 달리 인간을 물지 않는다. 또 최대 2.5미터까지 자라며 육식 동물이 아닌 생선이나 곤충을 먹고 산다. 캐이먼은 시야가 좁은 대신 청력이 발달해서 조금만 다가가도 물 속 깊이 몸을 숨겼다. 밤에 플래시를 켜면 곳곳에서 번뜩이고 있는 노란 불빛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캐이먼의 눈이었다.

 

 

더워서 토할 것 같은 날, 나는 여덟 명의 사람들과 정글 투어를 나갔다. 가는 길에 어른 팔뚝만한 크기의 도마뱀과 사슴, 마코(Macaw) 앵무새, 그리고 재규어 어미와 새끼 두 마리의 발자국을 보았다. 정글에서는 긴 까만 부리와 하얀 몸통을 가진 새인 투유유(Tuiuiu), 머리에 파란 털이 난 그라야 칸차(Gralha Canca)라는 새를 주로 볼 수 있었다. 갑자기 다리 한쪽이 귀를 뚫을 때의 느낌처럼 순간적으로 따끔했다. 누군가 개미집을 밟은 것이다. 게다가 모기 수십 마리가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모기한테 물린 오른쪽 눈은 쌍꺼풀이 풀릴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다. 게다가 갑자기 쏟아진 비로 인해 몹시 피로해졌다. 그때 눈앞에 뭔가가 몸을 비틀며 굴러 왔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뱀이었다. 뱀(azulao boia)은 삼십초 전쯤에 습격을 당했는지, 머리 전체가 댕강 잘려 있었다. 캐나다에서 온 나이 든 여행자가 겁도 없이 뱀을 가슴께에 들어 올렸다. 뱀은 굵은 밧줄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노인이 되면 놀랄 일이 없다더니, 그는 내가 사양했는데도 불구하고 뱀 만진 손으로 내 팔에 난 상처 위에 약을 덧발라 주었다. 나는 상처가 덧나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는 강물에서 피라니아(piranha: 남미산 담수어로 사람과 짐승을 떼 지어 뜯어먹음) 낚시를 했다. 솜씨가 서툴러서 나는 물고기를 두 번이나 잡았다 놓치고 말았다.

오일 만에 깨끗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마을로 돌아왔다. 나는 빨갛고 노란 부리가 달린 투칸(toucan)이나 캐피바라(capybara: 남미산 설치류 중 최대 동물. 몸길이가 1.2m에 이르며 강가에 산다)를 가까이서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다. 그런 동물을 보려면 아마존에 가야 했다. 인터넷 서점 말고 동물들이 득실대는 정글 말이다. 하지만 마나우스(Manaus)의 아마존 강 투어는 말도 안 되게 비쌌다. 고맙게도 아마존 강의 지류는 베네수엘라나 볼리비아에까지 흘러들었다. 나는 볼리비아 쪽 아마존 유역으로 가기로 했다.

볼리비아에서 머무는 보름간 나는 기차, 야간 버스, 보트, 비행기를 모두 경험해 볼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모두가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지옥 같았다. 특히 브라질 국경에서 볼리비아의 산타크루즈로 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Expreso oriental)는 과거에 ‘죽음의 기차’라고 불린 경력이 있다. 안은 어둡고 덜컹거렸고 시트는 솜씨 나쁜 요리사의 부침개처럼 마구 흐트러져 있었다. 아침에 일어날 때는 어깨뼈가 무사한지 살펴봐야 했다. 열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산타크루즈야말로 천국이었다. 대신 조금 지저분하고 부랑자가 많고 칙칙한 천국이었다. 거리에는 기저귀를 찬 채 바닥을 돌아다니는 아기나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여자 거지들이 많았다. 그녀들은 대체로 길고 까만 머리를 엉덩이까지 땋아 내리고 있었다. 볼리비아 인들은 유난히 장식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양 갈래 머리를 딴 채 중절모를 쓴 중년 여성들이 자줏빛 보따리를 목에 매달고 돌아다니는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루트 상 아마존 대신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를 먼저 보러 가야 했다. ‘티티카카’가 있는 코파카바나(Copacabana)는 작고 복잡한 마을이었다. 피가 흐르는 양 머리를 나무 선반에 내놓고 파는 재래시장이 있는가 하면, 아프로 라틴 아메리카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는 펑키한 펍과 레스토랑이 즐비했다. 문제는 그곳이 해발 3815m 높이에 있었다는 것이다. 나는 그곳에 도착하자마자, 그날 먹은 것을 다 토해냈다. 고산병이었다. 하루 종일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심하게 뛰었다. 10미터만 뛰어도 1200미터 계주를 막 마친 사람처럼 숨이 가빴다. 나는 맥박이 일분에 35?40회 뛰지도 않고, 42.195km를 세 시간 만에 뛸 자신도 없다. 이봉주 선수처럼 폐활량 270리터에 체지방율 4%, 최대 산소 섭취량 80ml, 심장 지름이 15cm도 아니다. (내가 이봉주보다 나은 점이라곤 쌍꺼풀이 자연산이라는 것 뿐일 거다.) 그러니까 내 말은 4박 5일간 그곳에서 미친 듯이 잠만 잤단 얘기다. 그 와중에 보기만 해도 울렁거리는 보트를 타고 태양의 섬(Isla del sol)에 갔다. 그러나 섬에 닿자마자 나는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손오공의 머리띠가 이만큼 아팠을까. 나는 뇌수가 쏟아질 사람처럼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마을에서 축구공을 차며 집에 가던 꼬맹이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이 상황에 축구라니, 나는 급기야 어린애처럼 펑펑 울기 시작했다.

 

 

축구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볼리비아에는 정말이지 축구장이 많다. 축구와 관련해 생각난 것은 에보 모랄레스(Evo Morales) 대통령이다. 그는 2005년에 당선된 볼리비아 최초의 원주민 대통령이다. 그의 전직은 코차밤바 지역의 코코아 농장의 농부다. 공공 기관마다 걸린 그의 사진을 보면 순박한 인상이 단박에 들어온다. 서민적인 취향의 그는 한때 울 스웨터에 자신의 사인을 한 옷을 입고 다녀서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어느 볼리비아 디자이너 한 명이 런칭한 회사가 하나 있는데 이름이 ‘에보 패션’이라고.) 그런 그가 지난 3월에 돌연 축구 선수로 변신했다. 볼리비아 경찰 소유의 볼리비아 2부 리그 팀 ‘리토랄’의 후보 선수가 된 것이다. 리토랄이 이번 시즌에 1부 리그로 승격한다면 2009년에는 그가 프로 축구 리그에서 뛸 수도 있단 말이다. 그는 코차밤바에서도 알아주는 축구광이었다. 하지만 이번 입단의 진짜 목적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축구 경기고도 제한에 대한 반대하는 데 있다. 작년에 FIFA는 선수 보호와 공정한 승부를 위해 앞으로 해발 2750m가 넘는 곳에서는 2주 이상의 적응 기간을 거치지 않은 경우 FIFA 주관 경기를 치르지 못하도록 하는 규정을 승인했다. 그는 이것이 고지대 국민에 대한 차별이라고 보고, 해발 3640m의 수도 라파스에서 마라도나와 함께 축구 경기를 벌이는가 하면,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통해 법적 투쟁에도 나섰다.

나는 마라토너 급 폐와 심장을 타고 나지 못한 것을 탓하며 루레나바케(Rurrenabaque)로 도망쳐 갔다. 그 또한 죽음의 레이스였다. 내가 탄 버스는 낮에는 황톳길을, 밤에는 가파른 벼랑을 따라 스물 한 시간을 달렸다. 화장실 갈 시간은커녕, 밤에는 버스가 고장 나 두 시간이나 멈춰 서야 했다.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아이들이 도미노 넘어지듯 울어댔다. 한 아이가 울면 다른 아이가 따라 우는 것이다. 왜 야간 버스 탈 때는 갓난아이들이 꼭 한 명씩 타는지 의문이다. 겨우 루레나바케가 다가오자, 한 아이가 엄마와 함께 맨발로 버스에서 내렸다. 아이의 큰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바지 뒤쪽은 흠뻑 젖어 있었다. 내 상태도 그 아이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내리자마자 나는 점심으로 피자를 주문했다. 버섯, 햄, 치즈 외에 한 가지 메뉴가 모르는 스페인어로 적혀 있었는데 그냥 시켰다. 얼마 후, 까맣고 긴 머리카락 네 가닥이 치즈 속에 묻혀 나왔다. (놀라운 것은 그 머리카락 피자조차 아르헨티나의 피자에 비하면 훨씬 맛이 좋았다는 점이다.) 

이 모든 북새통을 헤치고 이곳에 온 이유는 앞에서 말했던 볼리비아 쪽 아마존 유역 투어 때문이었다. 보통 팜파스 투어라고 하는데, 주로 8인용 보트를 타고 산타 로사의 야쿠마(Yacum) 강을 따라 가며 동물을 보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드디어 캐피바라를 보았다. 캐피바라는 동물 분류상 쥐목(目)에 속한다. 저게 정말 쥐란 말인가. 하마처럼 뚱뚱하게 큰 동물이 사람을 보고 놀라 늪으로 뛰어드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캐피바라 말고도 처음 본 동물들이 많았다. 온몸이 노란 다람쥐원숭이, 엘리게이터, 타란툴라(독거미의 일종), 터마이트(termite), 자비루(Jabiru: 황새의 일종으로 펠리컨같은 주머니를 가진 새), 핑크 돌핀……. 그 밖에도 이름을 알 수 없는 매, 잠시 물 밖으로 나와 몸을 말리고 있는 거북이, 거대한 캐이먼, 그리고 나무속에 사는 작은 박쥐들, 뱀도 관찰할 수 있었다. 또 껍질로 화살촉을 만들어 동물을 쏘면 2초 만에 동물을 기절 시킨다는 쿠라르(Curar: ‘치료’라는 뜻)라는 나무, 볼리비아 국기의 색(빨강, 노랑, 초록)을 모두 갖고 있어 국가를 상징하는 꽃처럼 여겨지는 꽃고비 (Poleminium caeruleum) 등.

팜파스 투어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수영 교사 출신의 가이드 도밍고, 독일의 함부르크에서 온 야니와 야나, 슬로바키아 출신으로 영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는 페트라, 미국인 줄리와 애슐리 등이 그들이었다. 특히 야니와 야나는 쾌활한데다가 스페인어가 유창했다. 각각 페루에서 1년, 볼리비아에서 반년 간 자원봉사를 한 탓이었다. 특히 7년간 스페인어를 공부했다는 야니는 휴식 시간에 해먹에 누워 스페인어판 해리포터를 읽곤 했다. (그녀는 이미 독어와 영어판 책도 읽었다면서 영어판이 가장 영화다운 느낌의 소설이라는 평을 했다) 나는 그녀가 가을에 대학 입학을 앞둔 열아홉 살 소녀란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그녀가 이틀째부터 의문의 병을 앓아 종일 누워 있지 않았더라면 햄버거가 함부르크에서 왔냐는 시시껄렁한 농담 대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저녁이면 나는 사람들과 보트를 타고 팜파스 내의 한 가게에 갔다. 그것은 실로 작은 가게이지만 젊은 백인들로 가득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5개월간 영어 교사를 했다는 캐나다 출신의 여자도 있었다. 내가 서울 출신이라고 하자, 그녀는 서울은 너무 넓다며 구체적인 ‘동’을 대라고 했다. 캐나다에선 소주가 너무 비싸다는 둥, 한국 음식은 최고라는 둥의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해 지는 것을 구경했다. 숙소로 돌아온 나는 사람들과 원 카드 게임을 했다. 목과 다리 사이로 수많은 나방과 모기들이 날아왔다.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도밍고가 실수를 할 때마다 ‘Opa!’라고 외쳤던 것이다. 사실 ‘Opa’는 ‘와우!’ 정도에 해당하는 감탄사이다. 나는 한국어로 ‘오빠’에 어떤 뜻이 있는지 설명해 주었다. 다음날 해먹 밑에 나방이 샛노랗게 죽어 있는 것을 보면서 나는 속으로 ‘오빠!’라고 소리쳤다.

 

 

팜파스에서 도시 생활로 완벽히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라파스(La Paz)는 수도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번잡했다. 언덕에 오를 때는 숨이 가빠서 일부러 심호흡을 여러 번 해야 했다. 라파스에서 가슴 벅찬(?) 하루를 지내고 나는 남쪽의 우유니(Uyuni)에 갔다. 뭐니 뭐니 해도 우유니의 하이라이트는 소금 사막(Sala del Uyuni)이다. 이곳에는 무려 만 이천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곳이 12미터 두께의 새하얀 소금으로 뒤덮여 있다.

 

 

이곳이 4만 년 전에는 바다였던 탓이다. 소금 결정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것보다 조금 더 컸다. 손가락에 찍어 먹어 보니 정말 소금이 맞았다. (나는 손가락을 찔러 보고서야 예수의 존재를 인정했던 도마인가) 점심에는 어금니만한 크기의 옥수수가 가득 든 수프와 야마 스테이크를 먹었다. 그리고 빨간 호수를 비롯한 다섯 개의 호수, 그 위를 돌아다니는 홍학 무리, 선인장이 빼곡하게 들어찬 산과 온천, 그리고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가 영감을 얻었다는 ‘살바도르 달리 사막’을 둘러보았다. 화산 활동과 풍화 작용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스톤 트리(stone tree)는 이집트의 바하리야 오아시스에서 본 ‘플라워 스톤’과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이것이 자연의 신비라고 하는 것일까. 정글과 팜파스, 소금 사막을 거쳐 나는 칠레로 넘어갔다. 사막의 모래가 뜨겁고 부드럽게 뺨 위를 스쳤다.《문장 웹진/2008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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