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준은 남자다!

 

박남준은 남자다!




김이정




시인 박남준의 별명은 남순이다. 작고 여린 몸매에 소년 같은 곱상한 얼굴, 솜씨 또한 웬만한 여자보다 더 곱고 빼어난 데다 뭇 생명들에 대한 연민으로 눈시울까지 자주 붉어지는 그를 보고 있노라면 남순이라는 이름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다. 요즘 같은 겨울이면 그가 한 입에 꼭 먹기 좋은 크기로 얌전히 부쳐 내놓는 굴전과, 갓을 적당히 섞어 연자줏빛 색깔까지 딱 맞춰 담그는 동치미 생각이 간절해진다. 또 멸치국물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한 맛을 내는 그의 국수는 먹고 나면 그 맛이 오래 혀끝에 남아 급기야 마음에 각인돼 버린다. 뿐만 아니라 그는 누군가 사서 들고 간 음식이라도 절대로 그냥 내놓는 법이 없다. 마당가에 핀 주홍빛 한련화 꽃이나 하다못해 돌나물 순이라도 뜯어 와 정갈하나 멋스런 장식을 곁들여 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다.

 

 

나와 몇몇 친구들은 한동안 그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의 집에서는 음식을 하려 들지 않았다. 어느 여자보다 맛깔스러운 솜씨를 자랑하는 그의 집에서는 그저 가만히 앉아서 그가 해 주는 음식을 감탄사와 추임새 넣어 가며 맛있게 먹어 주는 게 상책이다. 섣불리 손을 댔다가는 둔한 손끝 놀림만 당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느질 솜씨도 제법이어서, 매고 다니는 배낭과 헤져 구멍 난 옷에 나뭇잎 모양의 염색 천을 대고 아플리케 수를 놓아 본래 무늬인 듯 태연히 걸치고 다닌다. 그런 그를 보고 있노라면 한 친구의 말처럼 아무래도 이성애보다는 자매애를 더 느끼게 된다. 그런 까닭에 가까운 사람들의 술자리는 그를 놀리는 재미가 빠지지 않는 안주거리로 등장하기도 한다.

“형, 이 침화 언제까지 그릴 거야?”

언젠가 그가 시집을 낸 후 지인들에게 줄 책에 일일이 그림을 그리고 서명하느라 엎드려 일어날 줄 모르자 보다 못한 소설가 H가 물었다. 펜으로 매화꽃이나 잠자리, 나무 등의 그림을 그린 다음 손가락에 침을 묻혀 살짝 뭉개는 ‘기법’이 이른바 그의 침화이다.

“응…… 내 침이 마를 때까지.”

성질 급한 사람을 참을 수 없게 만드는 느릿느릿한 말투의 그는 어떤 놀림에도 태연하다.

 

2년 전, 박남준과 나는 한 배를 탄 적이 있다. 나를 포함한 세 명의 여성작가들과 박남준은 대양체험이라는 명분으로 대형 컨테이너선을 타고 남지나해와 인도양을 거쳐 유럽까지 항해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더할 수 없이 황홀했던 항해에 그러나 예상치 못한 큰 사고가 나는 바람에 우리는 험난한 경로를 거쳐 아라비아만의 낯선 사막, 예멘이라는 나라에 갑자기 상륙하게 되었다. 우리로 치자면 부산쯤 되는 항구도시 아덴(Aden)이라는 곳에 상륙해서 우리는 그날 밤으로 사나(Sanaa)라는 그 나라의 수도를 향해 밤길을 떠나야 했다. 사나는 국제선 비행기를 탈 수 있는 곳으로 자동차로 일곱 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오랜 내전 끝에 통일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멘의 곳곳은 부서진 건물들과 퀭한 눈이 유리알처럼 반짝이는 사람들, 그리고 낡은 자동차들이 먼지바람을 일으키며 달리는 황막한 곳이었다.

 

 

좋은 차를 타고 가니 걱정 말라던 현지 안내인의 호언과는 달리 우리가 밤새 타고 가야 하는 자동차는 한쪽 차문과 유리창이 열리지도 않고, 차 바닥은 구멍이 나서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폐차 직전의 고물이었다. 게다가 우리를 태우고 사나까지 가는 기사는 영어를 한 마디도 할 줄 몰랐고, 우리는 갑자기 상륙한 예멘화폐가 있을 리 없어 물조차 사먹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낮엔 한여름처럼 덥던 사막은 해가 지자 기온이 내려가기 시작했고 먼지바람 탓인지 갈증은 심해졌다. 우리가 갖고 있던 물이라곤 박남준의 배낭에 있던 250리터들이 작은 페트병 반 병 정도가 전부였다.

“나는 한 모금 밖에 안 마셨는데 너는 왜 두 모금이나 마셔?”

“아냐, 한 모금도 채 안 되게 마셨단 말이야.”

“방금 두 모금 꿀꺽하는 거 봤어.”

“다 마시지 말고 나도 좀 남겨 줘.”

우린 갑자기 겪은 사고가 실감이 나지 않는 멍한 상태에서 여전히 킥킥거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쉬지도 못한 채 낯선 밤거리를 달려야 하는 피로감와 밤이 되면서부터 몰려오는 추위와 곳곳에서 총을 들고 검문하는 군인들이 플레시를 들고 차안의 우리를 비출 때마다 두려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특히 그 밤에 무엇보다 무서웠던 것은 운전기사였다. 말이 통하지 않는 아랍인 기사는 툭하면 역주행을 일삼으면서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함부로 역주행을 하다가 맞은편에서 불을 환히 켠 덤프트럭이 코앞에 다가와서야 비로소 차선을 바꾸곤 하는 기사는 배 사고보다 더 큰 두려움을 갖게 했다. 우리 넷은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각자 바짝 긴장한 채 캄캄한 사막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 번은 기사가 야식을 먹기 위해 도로 변의 가게 앞에 차를 멈추자 우린 그간 참았던 긴장과 요의를 해소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려 했다.

“잠깐만. 너희는 그냥 있어 봐. 내가 나가보고 분위기 봐서 내려.”

박남준이 마침내 남자, 그것도 우리보다 세 살이나 많은 오라비 노릇을 하며 문을 열고 먼저 밖으로 나갔다. 고기를 구워 파는 가게 주변에 서 있던 남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 쏠렸다. 이방인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경계의 눈빛이었다.

“안되겠다. 너희는 그냥 이 차 안에 꼼짝 말고 있어. 너무 눈에 띄어.”

여자라곤 하나도 보이지 않는 밤의 고속도로에, 그것도 겨우 두 눈만 내놓은 채 검은 차도르로 전신을 감싸고 다니는 그곳 여자들에 비해 노란 머리를 라면처럼 볶은 파마머리와 청바지 차림의 여자 셋이 내린다면 그 상황은 충분히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우리는 결국 내리길 포기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박남준이라는 남자가 우리 곁에 있다는 사실이 그토록 다행일 수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다시 떠난 길에서 운전기사는 잠이 올 때마다 각성효과가 있다는 나뭇잎을 하나씩 따먹느라 더 아슬아슬한 주행을 했고 그런 그를 믿을 수 없어 나는 한순간도 눈을 붙일 수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박명이 트고 내전으로 폐허가 된 사막의 지평선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를 무렵 우리는 드디어 사나에 도착했다. 불안감으로 밤을 꼬박 새운 일행은 그제야 안심이 되었고 난폭운전 못지않게 우릴 떨게 만든 추위도 떠오르는 태양빛을 따라 빠른 속도로 가시고 있었다.

 

 

“사고날까 봐 무서워서 한 잠도 못 잤어.”

“나도 너무 피곤한데 눈을 감고 있어도 잠이 안 오더라.”

“불타는 배에서도 살아 왔는데 여기서 죽는구나 싶더라.”

세 명의 여자들이 서로 지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나는 너희 추울까 봐 차 바닥에 난 구멍을 발로 막고 있느라 더 못 잤다.”

그제야 그가 어눌한, 그러나 자랑스러움이 슬쩍 묻어나는 투로 말을 흘렸다.

“아니, 그럼 그 구멍을 밤새 몸으로 막고 있었단 말이야?”

우리가 놀라 묻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와, 우린 남준 오라버니 아니었으면 얼어 죽을 뻔했네.”

“와 멋있다. 진짜 남자 같다.”

우린 그간 남순이라고 놀려댔던 만큼 더 호들갑스레 그를 추켜세웠다.

“그럼 터진 둑을 자신의 팔로 막아 낸 그 네덜란드 소년처럼 발바닥으로 차 구멍을 밤새 막고 있었단 말이야?”

누군가 이젠 완전히 긴장이 풀린 목소리로 킬킬거리며 놀려댔다.        

“이를테면…… 뭐…… 그런…… 셈이지.”

오라버니 덕분에 우린 살아 돌아가는 거야. 와, 진짜 멋진 남자다. 연속되는 낯선 경험들이 안전하게 마무리되는 시점에 이르자 우린 신이 나서 그에게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순간, 사내로서의 자부심이 사막의 지평선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만큼 차오른 그의 얼굴이 붉고 환히 빛났다.

 


지금 그는 때 아닌 운하에 위협 받고 있는 우리 강을 지키기 위해 생명평화 순례단의 일원으로 100일간의 도보순례 길에 올라 있다. 운하 예정지의 강을 따라 걷고 있는 그에게 나는 이 글을 쓰다 말고 문득 응원의 문자를 보냈다. 그의 말투만큼이나 느린 답장이 왔다. 그런데 정말 너무 춥다. 텐트 치고 침낭 안에서 자는데 ‘꼬추’가 다 얼었다. 이번에는 운하를 막기 위해 그가 또 온몸을 던져 걷고 있다. 더 이상 그의 ‘꼬추’가 얼지 않는 따뜻한 봄날이 간절히 기다려진다.《문장 웹진/2008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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