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다녀가는 것들을 만나고 돌아온 봄날

 

대담  박완서(소설가)

진행?정리 김연수(소설가)

 

대담 내용 듣기 

 

아직 살구나무에 꽃이 피지 않았을 무렵, 아치울 마을에 있는 박완서 선생의 집으로 찾아갔다. 바티칸에서 열린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장례식에 정부 조문사절단으로 참석했던 선생이 막 돌아온 직후였다. 급박한 일정에 파리를 경유하는 장거리 비행 일정이었는데도 선생의 모습은 그다지 피곤해보이지 않았다. “부시는 보셨나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지자, 선생은 그 날 장례식이 얼마나 큰 규모로 벌어졌으며, 어떤 예법으로 진행됐는지 차근차근 설명했다. 선생의 목소리나 말투는 소설 속 주인공을 많이 닮아 있다. 그러니까 8년도 더 지난 일인데, 잡지사에 다닐 때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다. 그 때는 아직 아치울 마을이 시골 같은 정취가 남아 있었다. 선생의 집 2층 작은 창으로 계절마다 해가 어떻게 저무는지 설명하는 목소리를 듣다가 그만 선생이 방학 맞아 시골집 내려온 여고생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유, 그게 말이지요’라든가, ‘뭐, 그냥’이라고 시작하는 것은 선생의 독특한 화법이다. 웃음소리와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는 여전했다.


지금 우리의 부채


김연수 : 이상하게 선생님 책은 병원에서 많이 읽게 됩니다. 어머니가 병원에 자주 가시는데, 작년에 또 입원하셨거든요. 그래서 병원 보호자 의자에서 『그 남자네 집』을 읽었습니다. 지금 쓰시는 글은 없으세요?

박완서 : 네.

: 여전히 쓰시고 싶은 글은 있으시죠? 아니, 계속해서 쓰시고 싶지 않으세요?

: 뭐, 그냥. 머릿속에 쓰고 싶은 게 있기는 하지만, 그걸 다 쓰겠어요? 나는 이제 긴 글은 구상을 안 해요.

: 단편만 쓰시게요?

: 글쎄요. 단편만 쓰겠다는 게 아니라, 중편에서 장편 길이 정도 되는 소설을 몇 개 정도 구상하기는 합니다. 그런데 그걸 쓰겠다고 어떤 사람과 약속을 한다든지 하는 일은 없어요. 나 자신하고도 약속하지 않아요.

: 그래도 꼭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있지 않나요?

: 대강 다 울궈먹은 것 같네요.(웃음)

: 처음에 문예지에 『그 남자네 집』을 발표할 때는 단편보다는 조금 긴 중편이었죠?

: 아니, 120매 정도 되는 단편이었습니다. 그 때 잡지사에 얘기하지는 않았는데, 다 써서 넘기고도 다 쓰지 못한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모자란 것 같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 전에 『엄마의 말뚝』을 쓸 때도 그랬어요. 그래서 연작으로 써볼까, 마음먹었는데 『엄마의 말뚝』 때도 그렇고, 연작으로 쓰면 조금 느낌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장편으로 만들었어요.

: 그 때, 더 써야겠다고 하셨던 부분은 다 쓰셨나요?

: 네, 다 썼어요.

: 어느 부분이었나요?

: 그 남자에 대한 얘기를 다 하지 못한 것 같아서 그랬던 것도 있고, 또 사실 그 남자 얘기보다도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더 많은 애정이 갔기 때문에…… 사실은 그랬어요.

: 저는 선생님이 묘사하는 여자 주인공 같은 캐릭터는 절대로 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어떤게요?

: 예를 들면 그 여자의 마음 같은 것이죠. 저는 남자니까 여자의 마음을 그렇게 생생하게 그리지는 못하지요. 선생님이 여전히 젊으시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선생님하고 그 여자 주인공하고는 어떤 관계입니까?

: 글쎄요, 이게 완전 허구냐, 작가 자신이냐 물어보는 게 제일 싫은데요.

: 그래도 자전적으로 계속 쓰시잖아요.

: 저는 아주 경험 안 해본 것은 못 쓰겠어요. 하지만 이 소설에는 물론 제 얘기도 있고, 허구도 있지만 제가 애정을 가지고 쓴 것은 춘희 같은 주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그런 사람들이 아주 흔했어요. 우리가 그런 시대를 살아왔는데, 요즘 사람들은 그걸 너무 몰라요. 양갈보다 하지만, 그 때는 양가집 처녀에게도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어요. 옛날 영화 중에 ‘애수’라는 게 있는데, 그 영화 보고 펑펑 울었어요. 약혼자 떠나가고 난 뒤에 여자 주인공이 먹을 게 없어서 매춘하고 그러는데,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을 때, 그런 경우가 없었다고 할 수 없거든요. 한국 여자들이 식구를 위해서 희생정신이 아주 강해요. 여러 남매의 장녀라고 하면 더 심하죠. 내일이 없는 세상에서는 그런 일들도 일어나는 것인데, 환도한 뒤에는 사람의 이목도 생각하게 되고 내일도 있으니까, 그 때는 여자들이 버스 차장이나 식모살이를 많이 했죠. 우리집도 부자는 아닌데 시골에서 온 애들을 밥만 먹이는 조건으로 식모로 뒀어요. 그렇게 밥 먹는 것 이상이 필요하면 버스 차장으로, 그 다음에는 공장으로 이렇게 나간 거죠. 우리가 이렇게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경제발전을 이루기까지 그 여자들의 싼 노동력에 빚진 게 많습니다. 그런 얘기를 나는 자꾸자꾸 하고 싶어요.

: 그렇다면 이 소설은 그 남자의 집 근처에 있는 여자들의 얘기랄 수도 있네요.

: 그 시대의 여자죠. 그 시대, 열다섯에서 스물 사이의 여자들이 가족의 보호를 받기는커녕, 그 가족을 책임져야만 했던 시대. 어떤 가톨릭 계통의 단체에서 이 소설을 같이 읽은 적이 있었는데, 어느 신부님이 분개를 하시더래요. 주인공 여자가 바로 작가일 텐데, 자기는 아주 깨끗하게 살아남았고 다른 사람들은 다 어쨌다는 소리냐 하시면서.


사랑의 환상들


: 그건 좀 부담스런 말씀이네요.

: 그게 간발의 차이라는 것이지, 내가 뭐 잘났다는 게 아니죠. 나도 능히 그럴 수 있었고요. 소설에서 아주 공리적인 결혼을 하는 것, 그것도 마찬가지에요. 그런 선택은 지금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내가 그 소설에서 반성하는 말을 새에 비유하고 그랬어요. 새대가리라고.(“그래, 그때 난 새대가리였구나. 그게 내가 벼락 치듯 깨달은 정답이었다”, 『그 남자네 집』, 101쪽) 중요한 것은 우선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었죠. 그래서 가정을 책임질 수 없는 연애와 결혼을 분리하게 되죠. 물론 스스로 능력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그러지 못할 때는 우선 결혼해서 애를 낳아야한다는 사실을 피할 수가 없어요. 그 전에 다른 곳에도 썼는데, 결혼을 위해서 순결을 지킨다는 것, 지금 같으면 나도 안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 순결을 지킨다고 하는 건 남자들의 환상처럼 남편에게 순결을 바친다, 이런 게 아니었어요. 그 시절에는 누구하고 잔다고 하면 애를 갖는 일을 피할 수 없으니까 무서웠던 것이죠. 피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시대가 있었어요. 지금 남자들이나 여자들은 전혀 상상할 수 없을 거예요. 우리 집처럼 돈은 많지 않아도 체면을 중시 여기는 집에서는 만약에 딸이 그러면 나가 죽어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남자들에게 몸을 사리는 게 몸에 배는 겁니다. 결혼할 남자라면 가정을 이뤄 낳은 애를 보호해서 어른으로 키울 수 있는 그런 남자를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 첫사랑이라는 게 평생 오랫동안 지배적으로 가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 소설에서도 아주 범속한 생활이 계속되는데, 그 남자가 아프다, 그런데도 그 여자를 첫사랑이라고 말한다, 하니까 첫사랑에 황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죠. 왜 여태까지 첫사랑에 대해 작가들이나 예술가들이 만들어놓은 환상이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스쳐가는 게 많잖아요. 학교 선생님에게 그런 감정을 품을 수도 있고. 그런 상황에서 그 남자가 내 첫사랑이라고 말했으니까 갑자기 신화적으로 되는 것이죠. 자신의 따분한 결혼생활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환상을 가졌는데, 그게 아니다. 뭐, 그런 현실적인 이야기지요.

: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그런 환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너무 현실적으로 쓰신 것 아닙니까? 물론 둘이서 소풍도 가긴 하지만. 환상은 깨지는 것이고 그 때 남자를 사귄다고 하면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그렇다면 연애는 없었나요?

: 왜 없어요? 그렇다고 꼭 그런 남자와 연애하라는 법은 없잖아요? 저도 연애결혼했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런 일도 있었다는 얘기죠.

: 선생님이 꼭 쓰시고 싶었던 연애소설이다, 이런 말도 나오는데 맞습니까?

: 저도 물론 현대를 배경으로 하는 연애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연애 감정 같은 것은 얼마든지 이해가 되는데, 노는 마당이나 소도구가 잘 안 돼요. 그래서 노는 마당을 옛날로 하게 되더라구요. 나는 연애소설이든 아니든 노는 마당이 익숙하지 않으면 소설을 써나갈 수가 없어요.


마지막 대답을 하기 전에 선생은 오랫동안 침묵을 지켰다. 작가에게는 ‘노는 마당’이 가장 중요하다. 노는 마당이 익숙하지 않으면 소설을 써나갈 수가 없다. 이 말이 내게는 왠지 화두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선생과 나의 ‘노는 마당’은 얼마나 다른 것일까, 또 얼마나 같은 것일까?


: 저 같은 경우에는 뭐랄까, 표현하고 싶은 게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딱히 남들과 다른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죠. 책을 좋아해서 책을 읽다보니까 뭔가 쓰고 싶어지기 시작했다는 뜻입니다. 선생님이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그 때의 첫 마음은 어떤 것이었습니까?

: 저도 그냥 읽는 것을 좋아했죠. 그렇다면 습작을 얼마나 했느냐는 질문이 나올 텐데, 습작을 안 했다고 말하면 잘난 척 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습작 같은 것은 전혀 안 했어요. 편지질도 하지 않았고 일기도 쓰지 않았어요. 요새는 일기를 씁니다. 하도 일어난 일들을 잊어버리는 일이 많아서 일기를 쓰는데, 쓰더라도 내가 하는 생각 같은 것을 쓰는 것은 아니고 만난 사람, 일어난 일 같은 것을 써놓습니다. 그 전까지는 이런 일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가계부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읽는 것은 좋아했어요. 지금도 읽을거리가 없으면 허전하고 몸이 싫어하는 것을 느낍니다. 소설 쓰다가 보면 안 써질 때가 많잖아요. 억지로라도 다 쓰고 나면 너무 좋을 것 같은데도, 그게 또 그렇지 않아요. 그 전에 대림아파트 살 때인가, 전혀 글을 쓰고 싶지 않았는데도 무심결에 쓰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잘 씌어지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억지로 써서 보내고 나면 날아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구요. 라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큰 소리로 악을 썼어요. 소설 보내고 나면 뭉친 게 풀릴 줄 알았는데, 그게 그렇게 되지 않아서요. 쓰는 일이야, 뭐 힘들지요.

: 저는 쓰기 싫을 때는요, 밤중에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서 춤을 춰요. 좋아서 추는 춤도 아니고, 어쨌든 써야만 하니까.

: 여름옷을 겨울옷과 바꿔놓는다든지 찬장 위에 있는 접시 꺼내서 닦다가 다시 넣는다든지. 저 앞에 마당이 있는데, 저만 해도 가꾸는 게 힘들어요. 그래서 아침에 호미 들고 나가서 일하는데, 일하는 동안에는 휴식도 되고 머리도 잘 돌아요. 꽉 막혀서 대책 없던 게 대책이 생겨요. 난 몸 움직이는 것, 가사노동이라고 부르는 일이라든가 농사라고 부르는 일이라든가, 머리를 쓰지 않는 그런 일을 좋아해요. 마음이 가라앉고 헝클어진 것들이 풀어져요. 그게 축복인 것 같아요.

: 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 제일 감명 깊었던 게 그 비슷한 얘기였습니다. 소설을 쓰는 일은 노동하는 일과 비슷하다, 그렇다면 오래 해왔다면 손에 익어야만 하는데 아직도 손에 익지 않는구나. 지금도 그러시지 않나요?


소설이란 내가 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


: 그럼요. 소설 쓸 때는 특히 그렇죠. 소설이란 내가 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그 세계가 바로 나를 받아들여준다면 그게 재미가 없을 거예요. 힘껏 두들겨서 간신히 들어가는데 그게 잘 되지 않죠. 스토리가 다 짜여졌다고 쳐요. 아까도 연애소설 얘기했지만, 주인공의 성격과 외모를 다 만들었다고 해도 그 사람이 노는 무대가 있어야만 하잖아요. 그게 내게 아주 익숙해지지 않으면 안 써져요. 내가 구상한 세계니까 빤히 들여다보이는 것 같지만, 막상 들어가려고 하면 단단한 껍질을 둘러친 것 같아요. 그걸 간신히 뚫고 들어가는 것인데, 그런 일이 쉽게 이뤄질 리가 없죠. 『그 남자네 집』도 내가 살던 그 시절의 동네를 무대로 한 것이죠. 지금 살고 있는 시대보다는 그 시대가 주인공들을 하여금 놀게 하기가 편하더라구요. 이 시대는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워요. 내가 컴퓨터를 일찍 받아들였다고 말하지만, 그건 볼펜 쓰다가 만년필로 바꾸는 일과 비슷해요. 컴퓨터의 속도를 받아들인 것은 아니니까.

: 『그 남자네 집』에서도 옛날 동네를 다시 찾아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에요. 그 소설의 배경이 서울이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선생님은 그런 공간을 정확하게 묘사하려는 것 같습니다.

: 2000년대를 배경으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얘기를 쓴다고 쳐요. 그럼 그런 사람들이 어디에 얼마만큼 사는지, 그런 정보만 가지고는 소설이 써지지가 않아요. 그 동네 가서 몇 번 둘러보면서 여기에는 무슨 가게가 있고 여기에는 무슨 나무가 있고, 하면서 살펴봐야만 해요. 그걸 사실적으로 쓰려는 게 아니고, 다만 그 동네만의 분위기가 내게 사실적으로 다가오기 전까지는 소설을 쓰지 못한다는 뜻이죠. 시대도 마찬가지로 그 배경이 내게 충분히 익숙해져야만 쓸 수 있어요.

: 그렇다면 선생님의 주인공은 시간과 공간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인물들이 되는 셈이군요.

: 그렇죠. 물론 자신의 시대와 동떨어져 사는 사람을 그릴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어떤 식으로든 그 시대와 연관은 있을 것 같아요.

: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인간’도 그렇습니까?

: 그렇죠. 시대와 담을 쌓고 사는 기인을 그릴 수도 있지만, 그 사람에게도 자기와 익숙한 공간이 있잖아요.

: 저는 저런 살구나무 같은 게 없으면 어떤 사람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추상적으로 그냥 살았다고 하면 말이죠. 선생님도 지도 보는 것 좋아하세요?

: 네.

: 저 같은 경우에는 제일 중요한 게 디테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성격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성격은 거의 다 디테일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그게 제게는 지도예요. 사방 방위를 다 파악해야만 하고 그 다음에는 고개를 돌려 골목 같은 것을 다 본 뒤에야 그 사람의 성격이 드러나는 것이죠. 그래서 『그 남자네 집』에서 집을 찾아가는 장면이 제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책에 대한 욕심은 갈수록 더 심해진다. 그런 탓에 누군가 ‘한국 작가 중에서는 누굴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면 적이 난감하다. 좋아하는 작가가 어디 한두 명인가? 그럴 때마다 하는 대답이 ‘순수한 독자의 입장에서 박태원과 박완서를 좋아한다’고 대답한다. 두 분의 소설에는 나를 빠져들게 하는 요소가 많은데, 그게 바로 서울의 골목길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점 때문이다. 소도시 상점가에서 태어난 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부딪히면서 빚어지는 이야기에 대해 한없이 매료된다. 선생이 말한 ‘노는 공간’이라는 것도 그렇게 이해된다. 도시의 공간과 시간이라는 것은 단 한 번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산천이 주는 매력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선생의 고향은 어떨까? 예전에 고향에 가보고 싶지 않으시냐고 했더니, 서울역에서 기차 타고 가는 고향도 아니라면 생각 없다고 대답하신 적이 있었다.


고향 개성의 숲


: 개성에는 다녀오셨죠?

: 뭐, 저기. 개성공단.

: 이번에 다녀오신 거죠?

: 키친아트인가 하는 공장 준공식이 있은 뒤에 두 번째로 갈 때 갔어요. 소설가 심상대 씨가 먼저 다녀오더니 선죽교도 가봤다면서 고구마하고 선죽교 그림 같은 것을 갖다 줬어요. 그 다음에 한국일보 장명수 사장이 개성 시내 들어가 볼 수 있다고 해서 갔지요. 그랬더니 이번에는 안 들여 보내주더라구요.

: 공단에만 계셨군요?

: 그 공단 있는 데가 봉덕면 쪽 같아요. 그래서 잘 아는 동네이긴 하지만, 우리 동네와는 전혀 다른 곳이죠. 먼 동네가 아닌데도 다른 곳이니까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게다가 여기도 마찬가지지만 몇 백만 평이 된다고 하는데 워낙 다 밀어놓아서. 개성 시내는 들어가지 못하고 넓은 공단에만 있는데, 겨울이고 춥고 하니까 괜히 갔다 싶었죠. 개성도 예전 같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지난번에 ‘생명의 숲’이라는 심포지엄에 참가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유년의 숲 노년의 숲’이라는 걸 발표하기도 했는데, 어릴 적에 보면 개성 사람들이 참 숲을 잘 가꿔요. 집집마다 청솔가지처럼 꺾은 나뭇가지를 조금씩 섞어서 갈잎 낟가리로 해서 쌓아놓지, 절대로 나무를 안 베요. 그래서 저도 울창한 산골에서 자랐어요. 송학산도 소나무가 많은 산이지만, 음식점 이름으로도 쓰이는 용수산에도 나무가 많았어요. 개성 시내를 가운데 두고 송학산은 개성 북쪽에 있고 용수산은 남쪽에 있는 산이에요. 우리 집에서 용수산 농바위 고개를 넘어가면 개성 시내가 나왔죠. 제가 서울에 오느라고 처음 농바위 고개를 넘던 기억이 생생해요. 그 고갯길이 굉장히 가파른데, 양쪽에 나무가 너무 많아서 고개 위에서 바라보면 나무 사이로 개성 시내가 터널처럼 보여요. 그런데 개성공단도 그렇고, 지금은 나무가 많지 않더라구요.

: 개성 사람들은 만나셨나요?

: 남한에 응원단으로 온 아가씨들처럼 예쁘게 한복 차려 입은 아가씨들과 점심을 먹었어요. 텔레비전에서 본 대로 노래도 불러주고 하더라구요. 나는 서울에서 숙명에 다니다가 일제 말기에는 소개한다고 해서 개성으로 내려가 호수돈고녀를 다녔거든요. 기독교 계통으로 학생들이 이화여대로 많이 진학하고 그러던 학교였는데, 그 이름이 서양 이름이었는지 일제 말기에는 명덕고녀로 바뀌었어요. 그러다가 해방되니까 다시 호수돈으로 돌아갔는데, 어쨌든 아가씨들이 개성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다고 하기에 호수돈이냐, 명덕이냐 물어봐도 모른다고 하더라구요. 어떻게 생긴 학교였다고 설명해도 자기들은 모른대요.

: 평양처럼 개성도 폭격을 많이 받았나요?

: 아니에요. 시내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개성에는 그래도 옛날 집이 많이 남아 있다고 하더라구요. 개성은 집집마다 앞으로 개천이 흘러 다녀요. 그걸 우리는 나까줄이라고 불렀는데, 나는 속으로 베니스가 아마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북한에서도 개성의 좋은 기와집들은 그대로 보존해서 외국 사람들 올 때 묵게 하고 그랬다고 하네요.

: 평양 아가씨들 말투와 지금 남한에 살아계신 북한 출신분들 말투가 꽤 다르더라구요. 그게 개성말이나 평양말은 아닌 거죠? 새로 만든 표준말이죠?

: 그렇죠.


그 시절의 개성은 아마도 선생의 소설에만 남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소설을 읽다보면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애틋한 마음이 들 때가 있는데, 그 소설에서 다루는 현실이 이제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다. 소설가란 숙명적으로 그런 것들을 기록해야만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선생의 작품이 주는 감동도 바로 거기서 시작할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런 순간들을 경험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아름다웠던 모든 것들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게 되는 순간 말이다. 모든 독서의 체험은 그게 얼마나 절망적인 현실인 동시에 매혹적인 환상인지 깨닫는 순간에 비롯할 것이다.


새로운 소설은 위대한 것에 대한 충격 다음에


: 요즘은 무슨 책을 읽으세요?

: 샨사의 『측천무후』를 읽고 있습니다.

: 요즘도 책을 많이 읽으시죠? 심사 때문에라도 젊은 작가들 책을 읽으셔야 할 텐데, 어떠신가요?

: 글쎄요, 이건 나한테 안 맞는 작업이다 싶어요. 좋다고 하는 작품을 읽어도 따라 읽기가 힘든 새롭고 실험적인 작품들이 있어요. 그런 책을 읽으면 이런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우리 소설을 읽을 때 얼마나 진부하게 느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우리 세대가 이 사람한테는 아무런 영향도 못 미쳤구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새로워도 이해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이게 내 자식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작가도 있죠. 물론 한국문학이 자꾸만 새로워져야만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인체로 치자면 저와는 DNA가 완전히 다른 것처럼 느껴지는 작품도 있어요. 그런 작품 중에서 잘 읽히는 게 있으면 고마워요. 하지만 더 이상 읽히지 않으면 이제 내가 진부한 인간이 됐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 그거 큰일이네요(일동 웃음). 읽히지가 않는다면 말이죠.

: 새로운 소설을 쓰는 것도 명작을 거쳐서 새로운 소설을 쓴다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전혀 그런 과정을 안 거치고 말재주만 가지고 쓴다면 문제죠. 예전에는 아주 어려운 소설도 안 읽으면 남들이 말하는데 끼어들지도 못하고 하니까 읽었어요. 그렇게 읽은 소설은 그 때 받은 충격이 있기 때문에 나중에 읽어도 좋고 글을 보는 안목도 생기죠. 그런 거대한 산맥을 거치고 나면 자기 작품에 대해 겸손해져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느끼게 되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굉장한 것으로 아는 사람, 자기 것만 제일로 아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정말 위대한 것에서 받은 충격이 없으니까 그러는 것이죠. 그래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서도 꼭 그런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 같아요.

: 선생님 소설에 대한 젊은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 국정교과서 개정하면서 제 소설 중에 『그 남자네 집』이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서 제일 먼저 나옵니다. 동인지에 쓴 소설인데, 그야말로 쉽게 쓴 소설이에요. 이 소설 때문에 새로운 독자를 많이 얻었다고 생각해서 거기까지는 좋죠. 그 소설을 읽은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고 『그 남자네 집』도 사봤다고 하니까. 내 소설이 재미있다고 하는 젊은 독자들을 얻었으니까. 그런데 그 소설로 참고서를 만든다고 하니까 소설을 또 얼마나 어렵게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나는 문학교육이란 읽고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걸로 여러 개의 시험 문제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생각하면 겁이 나요. 예전에 김춘수 선생에게서 들은 말인데, 교과서에 실린 자기 시를 가지고 만든 문제를 풀었더니 40점밖에 못 받았대요. 그 소설 실릴 때, 국어 선생님 두 분에게서 전화를 받았어요. 참고서를 만들기 전이었는데, 저한테 물어보는 게 이게 수필적 소설이냐, 어떤 적(的) 소설이냐는 거예요. 소설이면 소설인줄 알았지, 나는 모르겠다고 그랬죠.

: 만연체냐, 간결체냐 등등등.

: 그렇죠. 어렵게 만들어야지, 고등학생에게 합당한 시험 문제를 낼 게 아니겠어요? 나는 중졸, 요즘에는 중졸이 거의 없으니까 고졸이면 다 이해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학 입학시험에 나오려면 그 정도로는 안 되는 거죠. 우리 때는 일부러라도 어려운 소설을 읽으려고 했었어요. 그것도 그런 때가 있었지요. 20대 전쟁통에 외부와 단절된 세계 속에 있으면서 읽었으니까. 책을 읽을 때 입시나 그런 것에 너무 시달리지도 않았어요. 글을 쓴 것도 내가 좀 심심했을 때였구요. 하지만 요새는 재미있는 게 너무 많잖아요. 그리고 한참 읽어야할 시기에 해야 할 공부도 너무 많고. 그냥 재미로 읽는 책에도 얼마나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나 같은 경우에는 학교 다닐 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뺏어서 읽었는데,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재미있게 쓸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레미제라블』도 몇 권씩 되는 걸 아주 재미있게 읽었죠. 탐정소설을 읽는 것 같더라구요. 프랑스 혁명이나 파리의 미로 같은 하수도도 엿보고. 물론 위고가 위대한 작가지만, 내가 흥미 있게 쫓아간 것은 통속적인 재미였어요.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책도 그렇고. 그런데 요새 애들이 재미있어 할 것은 얼마나 많아요.

: 그런 것에 비하자면 한국 소설은 너무 재미없게 쓰려는 경향이 많지 않나요? 재미를 좀 꺼리는 느낌도 듭니다.

: 재미있는 것은 통속, 재미없는 것은 순수. 사실 소설은 대중들을 위해서 발생한 것 아니에요? 대설이 아닌 소설이라는 것만 봐도 그렇고.

: 어떨 때는 가독성 자체를 통속으로 보기도 하죠. 문장이 길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인 것 같구요. 프랑스 소설 같은 경우에는 묘사도 길지 않고 바로 넘어가는데, 우리는 점점 길어지는 게 가독성이 통속이라는 시각 때문이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여쭙겠습니다. 제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 내가 언제 한 번 만나면 얘기하려고 했어요. 이건 쓰지 말아요.


그러므로 여기까지만. 주로 듣는 입장이지만, 박완서 선생과 얘기하는 일은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다. 녹음된 대화의 반 정도는 웃음소리로 채워졌다. 사실은 아치울 마을의 봄이 보고 싶어서 선생을 뵈러 가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때만 해도 목련만 꽃을 피웠을 뿐, 다른 나무들은 잠잠했었다. 생각보다 더디 오는 봄이 조금 야속했다. 하지만 지금쯤은 그 곳으로도 여러 꽃들이 다녀갔겠다. 많은 말들을 했지만, 더디 오던 봄날, 선생과 마주 앉아 말씀을 듣다가 가끔씩 창밖을 쳐다본 기억만 또렷하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내 마음으로도 다녀가는 것들이 여럿 있다. 그렇게 다녀가는 것들이 아마도 내가 ‘노는 마당’일 것이다. 그러므로 내게는 잘 놀다가 돌아온 봄날이었다.《문장 웹진/2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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