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마지막 회]

 

   장편연재_마지막 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병원을 나서는 사내는 사냥꾼의 얼굴을 되찾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염소를 찾아내야 한다. 하늘이 무너졌지만 솟아날 구멍을 뚫어야 한다. 실제로 구멍을 뚫었다. 간호사실 책상 서랍에서 슬쩍한 명함. 염소의 가족이 찾아오면 연락 달라며 보험회사 직원이 남긴 명함. 염소는 보험회사 쪽에 기웃거리지 않을까. 쥐도 새도 모르게 줄행랑 친 염소가 섣불리 꼬리를 드러낼까? 꼭꼭 숨어버리면? 하늘이 무너지는데 겨우 바늘구멍을 뚫었다.

   제로손해보험 영업팀장. 이름 밑에 휴대폰 번호만 달랑 적혀 있다. 이상한 명함이다. 사내는 명함 속 휴대폰 번호로 전화를 건다. 신호음이 길게 이어진 뒤 굵고 낮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온다.

   여보세요.

   보험회사죠?

   아닌데요.

   제로손해보험 아닙니까?

   아, 맞아요.

   수화기 저쪽의 말이 빨라진다. 엎지른 것을 주워 담는 목소리. 석연치 않다. 염소와 관련 된 것은 하나같이 다 수상쩍다.

   무슨 일로?

   거시기 명함을 보고…….

   돈 쓰시게? 아님 받을 돈이 있으신가?

   남자의 말에는 주저하는 기색이라고는 없다. 닳고 닳은 점원이 물건을 권하는 말투다. 받을 돈이라고? 혼란스럽지만 사내는 상황을 파악하려고 애쓴다. 적어도 보험회사는 아니다. 염소에게 돈을 줄 사람이 아니라 돈을 받아내려는 사람이다. 일단 미끼를 던져 보기로 한다.

   받아야 할 돈이 있습니다.

   사무실로 찾아오쇼.

   사무실이 어디죠?

   사내는 남자가 불러 준 주소를 명함에 받아 적는다. 서울이고 가리봉께다.

   사내는 여관으로 달려간다. 아이는 거미집에 엎드려 『파브르곤충기』를 큰 소리로 읽고 있다. 사내는 부산스레 짐을 챙긴다. 세면대에 늘어놓은 세면도구를 비닐봉투에 챙기고 객실 의자 등받이에 널어 둔 속옷을 거둬들인다. 그제야 아이가 관심을 보인다.

   집에 가?

   아이는 『파브르곤충기』에게 묻는다.

   찾을 사람이 있어. 어서 짐 챙겨.

   친구?

   ‘친구’라는 말이 거슬리지만 말씨름할 시간이 없다.

   그래.

   친구 병원에 있어.

   지금은 없어.

   친구 다 나았어?

   몰라.

   친구 어디 갔어?

   몰라. 친구 아니야. 어서 짐이나 챙겨.

   사내가 버럭 소리 지르며 거미집을 철거한다. 바닥에 널린 곤충부대를 스파이더맨 가방에 쓸어 담는다. 질풍처럼 짐을 꾸린다. 마지막으로 냉장고에서 어머니를 꺼낸다. 오동나무 상자가 서늘하다. 아이는 벽에 붙은 생활계획표를 조심조심 떼어내고 있다. 벽의 심장이라도 떼어내는 것처럼 신중하다. 복장이 터지지만 사내는 입술을 깨물며 참는다. 더 다그치다 잠자는 파란 토끼를 깨우면 곤란하다. 염소를 깨운 것만으로 어리석은 짓은 충분하다. 카운터로 내려가 숙박비를 치르고 차에 오른다.

   전에 왔던 길을 되짚어 도시의 북쪽으로 올라간다. 서울하고도 가리봉이라면 다른 길, 질러가는 길이 있을 수도 있지만 익숙한 길만 고집한다. 도시의 북쪽에서 120번 고속도로를 다시 잡아탄다. 고속도로에는 차가 많다. 심장은 액셀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하지만 발은 자꾸만 브레이크를 찾는다. 속도계의 바늘은 50에서 왔다 갔다 한다. 120번 고속도로가 아니라 50번 고속도로다. 속도계의 바늘이 더 밀린다. 왔던 길만 고집한 게 후회스럽지만 고속도로에는 비상구가 없다. 계속 후회한다. 시속 43킬로미터의 속도로 쭉 후회한다.

   어지러워.

   아이가 『파브르곤충기』를 들여다보며 말한다.

   책을 보고 있으니까 그렇지. 나중에 봐.

   독서시간.

   뭐?

   12시까지는 독서시간.

   나중에 읽어.

   지금은 독서시간. 아이는 생활계획표를 두개골 밑에 붙인 모양이다. 사내는 한숨을 쉰다. 역시 어떻게든 아이를 떼어 놓고 왔어야 했다.

   지금은 주자야. 다음 베이스까지 달려야 해. 멈추면 죽어.

   다음 베이스까지. 멈추면 죽어.

   야구라는 마법의 손이 아이의 두개골에서 생활계획표를 떼어낸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앞 차의 그림자만 말없이 노려본다. 그림자를 읽는다. 생활계획표는 여전히 아이의 두개골에 붙어 있다.

   여관을 떠난 지 한 시간, 병원을 나선 지 한 시간 20분, 염소가 사라진 지 반년 만에 120번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다. 낯선 길을 따라 남쪽으로 내려간다. 당산, 문래, 신도림, 가리봉. 동대문 쪽과 마찬가지로 곳곳이 공사 중이다. 불도저와 포클레인이 늙은 건물을 도시 가장자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철로 변까지 밀린 건물들은 비슷하게 후줄근해서 분간이 안 된다. 주소도 중구난방이다.

   사내는 차를 세우고 명함의 휴대폰으로 다시 전화를 건다. 신호음만 들릴 뿐 응답이 없다. 차에서 내려 탐문한다. 건물의 주소를 알아보고 행인에게 묻고 다시 건물의 주소를 살피지만 소득이 없다.

   길 잃은 양은 마음속으로 시편을 노래하며 부동산 중개업소를 찾는다. 부동산 중개업자는 나의 목자이시니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파란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어 내 영혼에 생기를 돋우어 주시고 바른길로 끌어 주시니 당신의 이름 때문이어라. 철물점, 편의점, 중국집, 철물점, 열쇠가게, 휴대폰 대리점, 철물점. 마침내 목자가 기도에 응답한다. 부동산이라고 빨갛게 소리치는 간판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사내는 빨간 계시 아래 차를 세운다. 차가 멈추기 무섭게 아이는 무릎 위의 책을 들여다본다.

   내려.

   아이는 꿈쩍 않는다.

   아이의 도움이 필요하다. 내비게이션에 새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이번에는 진구가 코치야.

   이번에는 진구가 코치.

   아이가 독서에서, 생활계획표에서 내린다.

 

   번지수로는 이쯤인데…….

   부동산중개업자는 벽에 붙은 지도를 짚으며 말한다. 사내는 아이를 쳐다본다. 지도를 바라보는 아이의 표정이 팽팽해진다. 지도를 입력하고 있다. 아이의 볼과 입술이 느슨해진다. 입력이 끝난 것이다. 사내는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차로 돌아간다.

   아이가 일러주는 대로 차를 몬다. 차와 오토바이와 리어카가 아무렇게나 세워진 비좁고 어수선한 길의 어깨를 몇 번 비틀자 철길에 면한 낡은 건물 사이에서 명함에 적힌 번지와 끝자리만 다른 숫자가 튀어나온다. 3, 4, 5, 6, 7. 사내는 명함에 적힌 주소 건너편에 차를 세운다.

   저 건물에 갔다 올게. 차에서 기다려.

   아이는 대꾸 대신 잠시 멈춘 생활계획표에, 생활계획표 속의 독서에 시동을 건다. 사내는 손목 위에서 돌아가는 시간을 확인한다. 앞으로 한 시간 반 안에 아이가 차에서 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내는 생활계획표에 아이를 맡기고 차에서 내린다. 철길에 몸을 던질 듯 서 있는 낡은 건물로 향한다.

   명함은 사무실이 몇 층인지 말하지 않는다. 과묵하기는 건물도 마찬가지. 간판도 없고 1층에는 셔터가 내려져 있다. 사내는 계단을 올라간다. 2층 출입문도 잠겨 있다. 문 위에는 대광실업이라는 상호가 음각된 현판이 붙어 있다. 사내는 3층으로 올라간다. 제로손해보험이라는 간판은 보이지 않는다. 파란 칠이 벗겨져 너덜너덜한 출입문에는 초인종도 딸려 있지 않다. 역시 수상쩍다.

   탕탕. 사내는 파란 허물을 벗고 있는 철문을 두드린다. 걸쇠가 허락하는 만큼만 문이 열린다.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오고 걸쇠 너머로 동그랗고 투실투실한 중년 남자의 얼굴이 나타난다. 눈두덩은 두둑하고 눈 밑은 검은 게 너구리 같다. 투실투실한 살이 표정을 깔고 앉은 듯 무표정한 너구리다.

   뭐요?

   가래가 끓는 듯 칼칼한 목소리. 명함 주인이 아니다.

   제로손해보험을 찾는데요.

   제로손해보험? 무슨 일로 그러쇼?

   너구리는 그곳이 제로손해보험인지 여부는 전적으로 사내의 행색에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본다. 사내는 다시 미끼를 던진다.

   돈 문제 때문에…….

   너구리가 걸쇠를 푼다.

   사내는 철문 안으로 들어간다. 허름한 사무실이다. 창문 쪽을 뺀 모든 벽에 캐비닛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캐비닛으로 벽을 두른 방이다. 안쪽에는 철제 책상이 있고 출입문과 가까운 쪽에는 까만 가죽 소파가 탁자를 마주보고 놓여 있다.

   너구리가 소파에 앉으며 맞은편 자리를 권한다. 사내는 소파에 앉는다. 너구리는 흰 티셔츠에 검정 양복 차림이다. 티셔츠에 주름 하나 잡히지 않을 정도로 뱃살이 두둑하다. 침묵이 흐른다. 창문 쪽 벽에 달린 에어컨이 가쁜 숨을 토하며 징징거린다.

   뭐, 마실 거라도?

   물 한 잔 마실 수 있을까요?

   너구리가 끙 소리를 내며 일어나 한쪽 구석에 놓인 소형 냉장고에서 물병을 꺼낸다. 냉장고 옆 캐비닛을 열고 유리컵을 두 개 꺼내 물을 담아온다.

   사내는 목을 축이기 위해 찾아온 것처럼 물을 벌컥벌컥 마신다. 너구리는 탁자 밑에서 나무젓가락을 꺼내더니 포장을 뜯고 둘로 쪼개 컵 위에 걸친다.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작은 플라스틱 통을 꺼낸다. 하얀 알약이 가득 든 통이다. 알약을 꺼내 나무젓가락에 걸쳐 놓는다. 무슨 마술이라도 준비하는 것 같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뭔가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갑자기 건물이 흔들린다. 탁자가 흔들리고 유리컵이 흔들리고 나무젓가락이 흔들려 마침내 알약이 물속으로 떨어진다. 알약을 삼킨 물이 거품을 물며 부글댄다.

   역시 케이티엑스야. 늦는 법이 없어.

   너구리가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말한다. 너구리는 물을 천천히 마신다. 마시는 게 아니라 씹어 먹는다. 컵을 깨끗이 비운 뒤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이쑤시개를 꺼내 잇새를 쑤신다.

   돈을 쓰실 건가, 받으셔야 할 건가?

   받아야 할 돈이 있습니다.

   얼마나?

   사내는 당황한다. 액수를 미리 정하지 못했다.

   5천…… 정도.

   떼인 지는 얼마나 됐고?

   30년쯤.

   역시 엉겁결에 대답한다.

   지독한 놈이군.

   너구리가 미간을 찌푸린다.

   수수료는 얼마나…….

   케이티엑스가 생기기 전이니 절반이오.

   절반이나요?

   너구리가 다시 미간을 찌푸린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데 그 정도면 약소한 거요.

   그래도 절반은…….

   제로손해보험. 우리는 절대로 고객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소. 30년씩이나 요리조리 피해 다닌 놈도 우리한테 걸리면 어림없지. 우리는 지옥 끝까지도 쫓아가니까.

   정말로 놓친 적이 없습니까?

   절반이 내 돈인데 어떻게 놓칠 수 있겠소?

   이자들은 사냥개다. 한번 물면 절대로 놓아 주는 법이 없는 무시무시한 사냥개다. 제대로 찾아왔다. 이제 사냥개의 뒤만 밟으면 된다. 염소를 찾는 건 시간문제다. 죽었던 희망이 되살아난다. 바늘구멍에 빛이 든다.

   생각 좀 해보고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너무 오래 생각하지 마시오. 시간은 금이니까.

   무표정한 얼굴과 사무적인 말투 때문일까. 충고가 아니라 위협처럼 들린다. 사냥꾼도 사냥개를 조심해야 한다. 어떤 사냥개들은 사냥꾼도 무니까. 사내는 알겠다고 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궁금해서 그런데…… 케이티엑스가 생긴 이후는 수수료가 얼맙니까?

   절반이오.

   너구리는 여전히 무표정해서 농담인지 진담인지 아리송하다. 살찐 어린애처럼 표정이 없다. 고집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곳에 발을 들인 이후 처음으로 사내는 두려움을 느낀다. 어서 빨리 이 캐비닛 감옥에서 나가고 싶지만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천천히 움직인다. 출입문 손잡이에 너구리의 실루엣이 어른거린다. 사내의 심장이 펄쩍 뛰어오른다. 따라오는 걸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사내의 등 뒤로 철문이 닫히고 딸깍, 걸쇠 거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내는 계단을 서둘러 내려간다.

   아래쪽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발견한 것은 2층 계단참에서다. 시커먼 사람의 형체가 빛을 등진 채 계단을 올라오고 있다. 어깨가 떡 벌어진 어둠이다. 목은 짧고 굵다. 캄캄한 사람의 형상이 성큼성큼 다가온다. 짧게 자른 스포츠머리, 날카로운 눈매. 염소의 침대맡을 지키던 남자, 염소의 상태를 전화로 알리던 남자다. 저 남자가 왜 여기에? 사내의 머리가 퍼즐 조각을 쥔 채 분주해진다. 날카로운 눈매와 부딪히자 사내는 황급히 눈을 내리깐다. 퍼즐 조각을 여기저기 대보며 계단을 내려간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는다. 남자는 이곳 위치를 전화로 알려준 목소리, 귀에 익은 듯했던 목소리의 주인공이자 간호사가 보관하던 명함의 주인공이다. 가족이 나타나면 연락하라고 했다지. 저 사냥개들은 지옥이 아니라 천국 끝까지도 쫓아갈 것이다. 하느님이 보는 앞에서도 돈을 뜯어내겠지. 염소는 언제부터 저 사냥개들에게 쫓긴 걸까? 사내는 겨드랑이를 파고드는 한기에 몸을 떨며 차에 오른다.

   아이는 여태 독서 중이다. 배검은독거미와 어리호박벌의 결투가 한창이다. 결투는 배검은독거미의 승리로 막을 내린다. 거미의 승리에 아이의 목소리가 커진다. 아이의 목소리가 사냥개들의 귀에 들어갈까 봐 염려스럽다. 사내는 차에 시동을 건다.

   집에 가?

   아이가 배검은독거미를 바라보며 묻는다. 배검은독거미는 메뚜기를 물고 있다.

   아니. 집에 못 가.

   여관집에도 못 가?

   그래. 오늘은 차가 집이야.

   차가 집이야.

   아이는 흡족한 모양이다. 집에 가자고 떼를 쓰면 어쩌나 싶었는데 뜻밖의 반응이 반가울 따름이다. 사내는 차를 뒤로 물린다. 사냥개가 소굴에서 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가로수 그늘에 숨어 시동을 끈다.

   아이는 스파이더맨 가방을 열고 생활계획표와 스카치테이프를 꺼낸다. 생활계획표를 정면 유리창 귀퉁이에 붙인다. 스파이더맨 운동화를 벗는다. 양말도 벗는다. 티셔츠까지 벗는다. 아이는 고물차를 진짜 집으로 여기는 것 같다. 곤충부대마저 대시보드 위에 늘어놓는다. 사내는 아이를 내버려둔다. 고물차가 집이라는 상상을 내버려둔다. 그 엉뚱한 상상이 아이를 오래 붙들고 있기만 바라며 사냥개 소굴을 주시한다. 눈도 깜박이지 않는다. 잠복 중인 형사라도 된 기분이다.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여름의 태양은 점점 위세를 떨치지만 에어컨을 켤 수는 없다.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덥다. 더워서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눈꺼풀이 무거워서 더 덥다. 눈꺼풀은 무겁고 더위는 더 무거워서 하품이 새어 나온다. 기지개를 켜고 고개를 놀리고 손가락 마디를 차례로 꺾는다. 졸음을 차창 밖으로 몰아낸다. 30년을 기다렸는데 이쯤은 일도 아니다.

   점심시간.

   아이가 소리친다.

   사내는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생활계획표가 정한 점심시간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다. 사내는 길 건너편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자장면과 사천식 자장면을 주문한다. 중국냉면이 먹고 싶지만 가급적 국물은 삼가야 한다. 길 건너 봉고로 배달해 달라는 주문에 수화기 저쪽의 남자가 뭐요? 라고 반문하더니 가게 밖을 내다본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낮춘다.

   차가 집이니까 차에서 자장면을 먹어.

   아이의 목소리가 팽팽하다. 아이는 차가 집이라는 상상에 푹 빠져 있다. 자장면이 도로를 건너온다.

   아이가 차에서 먹고 싶다고 해서…….

   사내는 자장면 값을 건네며 변명을 슬쩍 얹지만 어린 배달원은 듣는 둥 마는 둥이다. 어린 배달원의 무관심에 안도한다. 자장면을 먹으면서도 사내는 사냥개 소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차에 숨어서 자장면을 먹고 있으니 진짜 잠복 중인 형사라도 된 것 같다. 그릇을 돌려주고 오면서도 사냥개 소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아이는 생활계획표의 명령대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플라타너스 그늘이 그새 한 걸음 물러났다. 사내는 플라타너스 그늘 속으로 차를 물린다. 아이는 생활계획표가 권한 낮잠을 눈꺼풀에 매단다. 꾸벅거리며 존다. 아이는 지금 ‘휴식 및 낮잠’이다. 사내는 의자 등받이를 뒤로 젖히고 장기전에 대비한다. 목이 마르지만 참는다.

   사냥개 소굴 앞에 오토바이가 한 대 멈춘다. 사내는 척추를 벌떡 일으켜 세운다.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철가방이 실려 있다. 사내는 척추를 다시 비스듬히 눕힌다. 목이 마르지만 계속 참는다.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간다.

   덥다. 더워서 더 목이 마르지만 참는다. 여름날의 열기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차만 가끔 오갈 뿐 지나가는 사람은 없다. 이 거리에서 움직이는 것은 플라타너스 그늘뿐이다. 저만치 비껴난 그늘 속으로 차를 물린다. 차 안이 플라타너스 그늘처럼 고요하다. 아이의 책 읽는 소리가 그립다.

   아이의 머릿속에 시계가 들어 있는 걸까. 생활계획표에 정확히 맞춰 깨어난다. 아이가 갈증을 호소한다. 아이에게 돈을 쥐어주고 편의점에 보낸다. 생수도 주문한다. 편의점은 차 뒤쪽에 있다. 백미러 속 아이가 편의점에 들어간다. 전방과 백미러를 번갈아 쳐다본다. 아이가 백미러로 돌아오지 않는다. 사내의 미간이 좁아진다. 혼자 보낸 것을 후회한다. 사내는 차를 편의점 앞까지 후진시킨다.

   아이는 환타를 든 채 음료수 코너 앞에 멍하니 서 있다. 사내가 아이의 이름을 부른다. 아이의 이름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아이는 여전히 음료수 코너 앞에서 더듬이를 잃은 개미처럼 두리번거리고 있다. 젊은 여자 손님이 문을 열고 나오는 틈을 타 사내는 아이의 이름을 외친다. 아이가 이쪽을 돌아본다. 사내는 아이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아이는 눈을 내리깐 채 출입문 쪽으로 걸어온다. 점원이 아이를 불러 세운다. 아이는 여전히 눈을 내리깐 채 환타 값을 치르고 편의점을 나와 차에 오른다.

   생수는?

   생수 없어.

   아이가 성난 얼굴로 대꾸한다.

   편의점에 생수가 없다니, 사내는 아이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

   정말로 생수가 없어?

   생수 없어.

   아이가 페트병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한다. 환타에게 말한다. ‘환타’라는 글자가 사내의 눈을 사로잡는다.

   삼다수는?

   삼다수 있어.

   잔뜩 굳었던 아이의 얼굴이 풀어진다.

   삼다수 가장 작은 걸로 한 병 사와.

   삼다수 가장 작은 걸로 한 병.

   사내는 차에서 내리는 아이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다 사냥개 소굴로 고개를 돌린다. 아이가 차에 오르자마자 사내는 플라타너스 그늘까지 차를 전진시킨다. 사내가 생수로 목을 축이는 사이 아이는 환타 병을 단숨에 바닥낸다. 아이는 트림을 한 뒤 다시 생활계획표로, 생활계획표의 독서로, 생활계획표의 독서의 『파브르 곤충기』로 돌아간다. 아이의 목소리가, 책 읽는 소리가 돌아온다. 송장벌레를 데리고 돌아온다.

 

   송장벌레들은 먹잇감을 발견하면 그 밑에 기어 들어가 시체를 등져 지렛대 구실을 하면서 억센 발톱으로 땅을 팠습니다. 그러면 시체는 제 무게 때문에라도 조금씩 아래로 파묻혔습니다. 송장벌레들은 애벌레에게 주기 위해 먹이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먹는 것이라고는 썩은 고기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고작이었습니다. 송장벌레는 새끼들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곤충이었습니다. 그런데 할 일이 끝나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없어지자 늙고 쇠약해지더니 정신까지 이상해졌습니다. 동료의 팔다리를 부러뜨리고 심지어 잡아먹기까지 했습니다. 들판의 장의사로서 보여준 멋진 모습과는 딴판이었습니다.

 

   음료수 코너 앞에 서 있던 아이의 표정이 자꾸만 어른거린다. 이 아이를 어찌할 것인가. 편의점 음료수 코너 앞에서 길을 잃어버리는 아이를 어찌 세상에 홀로 남겨 둘 것인가. 사내는 심장이 무거워진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미뤄 두었던 질문을 다시 미루는 것뿐이다. 일단 염소를 찾아야 한다. 염소를 떠올리니 모든 게 분명해지고 심장도 가벼워진다.

   올 것이 오고야 만다. 오줌이 마렵다. 오줌이 마렵다는 생각이 든 순간부터 요의는 점점 강해진다. 저 아래쪽 뿌리가 꽉 막힌 수압으로 묵직하다. 참을 때까지 참다 사내는 환타 병을 집어 들고 바지 지퍼를 내린다. 바지에서 튀어나온 빨간 수도꼭지를 페트병 주둥이에 끼운다. 오줌이 흘러나온다. 진짜, 진짜 잠복하는 기분이다.

   아빠 오줌 노래.

   아이가 소리친다.

   아이가 페트병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사내는 아이에게 페트병을 건넨다. 아이도 고추를 꺼내 페트병에 끼우고 오줌을 눈다.

   진구 오줌도 노래.

   아이가 소리친다. 아이는 마개를 꼭 닫은 뒤 페트병을 대시보드 위에 올려놓는다. 책을 읽다가도 자꾸만 고개를 들어 페트병을 쳐다본다. 급기야 곤충부대로 빙 둘러싼다.

   오토바이가 다시 와서 그릇을 찾아간다. 그늘을 따라 간혹 차를 움직인다. 플라타너스 그림자가 점점 길고 엷어진다. 사냥개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은 플라타너스 그림자와 아이의 생활계획표 속에서만 흘러가는 것 같다. 수술하는 나나니벌, 거미를 사냥하는 대모벌, 성스러운 쇠똥구리. 아이의 ‘독서’는 끊이지 않는다. 저녁식사 시간이 되어서야 멈춘다. 아이의 생활계획표에는 도미노피자라고 적혀 있다. 사내는 114로 전화해서 근처의 도미노 피자집 번호를 알아낸다. 아이가 좋아하는 파인애플 피자를 주문한다. 위치를 설명하는 데 애를 먹는다. 주소만으로는 어림없다. 건너편 중국집 이름을 대고서야 주문에 성공한다.

   맞은편에서 배달 오토바이가 나타난다. 오토바이 뒷자리에는 커다란 주사위가 매달려 있다. 파란 철 주사위. 철 주사위를 삼키기라도 한 것처럼 속이 뒤집어진다. 내장 기관이 죄다 물구나무선다. 동생의 주사위가 어딘가 캄캄한 구석에서 혼자 울고 있을 것만 같다. 차가운 땅속에 묻힌 동생처럼 울부짖고 있을 것 같다.

   배달원이 피자 시킨 분 맞느냐고 묻는다. 사내는 뒤집어진 정신을 수습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배달원이 파란 주사위의 뚜껑을 열고 노란 상자를 꺼낸다. 돈을 건네고 상자를 받는다. 상자가 따뜻하다. 배달원이 차창 너머로 차 안을 기웃거린다. 맨발에 러닝셔츠 차림의 아이와 차창에 붙은 생활계획표와 오줌이 담긴 환타 병과 오줌이 담긴 환타 병을 둘러싸고 있는 곤충부대를 흘깃거린다. 성가신 파리다. 남의 집을 염탐하는 무뢰한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까 봐 겁난다. 사내의 숨구멍이 일제히 움츠러든다.

   볼일이 더 남았습니까?

   아, 아닙니다.

   배달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떠난다. 그제야 사내는 안도한다. 다시 감시에 집중한다. 피자를 먹으면서도 한눈팔지 않는다. 사냥개들은 저녁도 안 먹고 웅크리고 있다. 물러가는 빛으로 거리가 노랗게 물든다. 아이가 라디오를 켜고 야구를 찾는다. 도미노 피자 다음은 야구라고 생활계획표가 외치고 있다. 아이가 스피커에 귀를 대고 채널 조정 다이얼을 신중하게 돌린다. 새끼 금고털이범 같다. 금고의 자물쇠가 팔짱을 풀고 야구를 내놓자 아이의 볼이 말랑말랑해진다. 호랑이와 독수리가 독수리 둥지에서 맞붙었다.

   사냥개들은 조용하다. 저물어 가는 빛이 전깃줄에 널어 놓은 자신을 거둬들인다. 붉은 기운이 땅바닥에서부터 타올라 전깃줄을 밟고 하늘로 튕겨져 오르며 사라진다. 사물들이 역광에 노출된 피사체처럼 검은 가면을 뒤집어쓴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 동네 양아치처럼 거리를 어슬렁거린다. 가로등이 켜지자 더 어두워진다. 가로등마다 어둠이 켜진다. 사냥개들을 감시하느라 야구가 한 귀로 들어왔다 다른 쪽 귀로 흘러나간다.

   마침내 사냥개가 움직인다. 젊은 사냥개가 건물에서 나와 길가에 세워 둔 승용차에 오른다. 사내는 등받이를 세우고 차에 시동을 건다. 사냥개의 검은 차가 눈에 불을 켜고 달리기 시작한다. 사내는 재빨리 유턴해서 꼬리를 문다. 너무 바짝 붙어도 눈치 챌 테고 너무 놔주면 놓칠 염려가 있어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어렵다. 방심하면 간격이 자꾸 좁혀진다. 사냥개는 철길을 끼고 달린다. 사냥개와 철길 사이에는 허름한 건물이 즐비해 철길이 나타났다 사라지고 멀어졌다 가까워진다. 사냥개가 우회전해서 건물 뒤로 사라진다. 사내는 액셀을 화들짝 밟고 핸들을 급히 꺾는다.

   땡땡땡. 경고음이 울리면서 빨간 차단막대가 내려온다. 사냥개는 이미 건널목을 건넜다. 사내는 액셀을 힘껏 밟는다. 덜커덩. 차가 건널목을 건너며 펄쩍 뛰어오른다. 반대편 차단막대가 차의 뒤통수를 때린다.

   아빠.

   아이의 목소리가 펄쩍 뛰어오른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 사내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왼쪽으로 휘어지며 사라지는 길 위에 사냥개가 안 보인다. 액셀을 부서져라 밟는다. 차가 비명을 지른다. 휘어지는 어둠 속으로 꺾어들자 저만치 교차로에 서 있는 사냥개가 보인다.

   신호등이 바뀌고 사냥개가 교차로를 건넌다. 사냥개 뒤에 바짝 붙는다. 다리도 건넌다. 사냥개는 달리고 달린다. 우로 꺾고 좌로 꺾으면서 계속 달린다. 검은 허공을 문 스카이라인이 복잡해지는가 싶더니 다시 느슨해진다. 어디가 어딘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사냥개가 큰길을 버리고 우회전한다. 속도를 늦추고 한적한 도로를 천천히 달리다 캄캄한 어둠 속으로 쑥 들어간다. 사내는 어둠의 입구에 차를 세운다.

   여기서 기다려.

   아이는 라디오에서 꺼낸 야구에 빠져 있다.

   사내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린다. 발소리를 죽여 가며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어두운 공터 한쪽에 사무실로 개조한 컨테이너가 보인다. 사무실도 캄캄하다. 사냥개의 차는 저만치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죽은 차의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거대한 프레스기가 무시무시한 파괴의 신처럼 우뚝 버티고 서 있다. 폐차장이다.

   차에서 사냥개가 나온다. 사내는 컨테이너 뒤로 재빨리 숨는다. 사냥개가 트렁크에서 뭔가를 꺼내 어깨에 짊어지고 죽은 자동차의 산을 오른다. 몇 번 헛디뎌 휘청거리지만 넘어지지는 않는다. 프레스기 바로 아래 널브러져 있는 자동차 트렁크에 시커먼 뭔가를 집어넣는다. 사냥개가 주위를 둘러본다. 사내는 목을 움츠린다. 사냥개가 트렁크를 닫는다. 자동차 산에서 내려와 검은 차에 오른다. 사내는 프레스기 밑의 차와 사냥개의 차를 번갈아 쳐다본다.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사냥개를 그냥 보낸다. 무엇을 버렸는지 확인해야 할 것 같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사내는 프레스기 쪽으로 다가간다. 차의 껍데기를 딛고 올라간다. 문제의 트렁크 앞에 선다. 가슴이 뛴다. 수상쩍은 어둠이 가슴 속에서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휘몰아친다. 저 트렁크를 열면 무시무시한 게 튀어나올 것 같다. 사내는 입을 앙다문 채 트렁크를 연다. 캄캄하다. 사내는 휴대폰 폴더를 열어 손바닥만 한 빛을 불러낸다. 사내는 흠칫 놀라며 주춤 물러선다. 양복 케이스 끝에 사람의 다리가 튀어나와 있다. 사내는 휴대폰을 앞으로 내민다. 앙상한 다리다. 시퍼런 다리다. 죽은 다리다. 지퍼를 내리는 사내의 손이 떨린다. 시퍼런 다리의 주인이 얼굴을 내민다. 눈두덩이 움푹 꺼진 얼굴은 검푸르다. 눈꺼풀 끝에 피가 촛농처럼 굳어 있어 피로 눈을 봉한 것 같다. 눈 먼 자의 유령이다. 가만, 볼에 흉터가 있다. 사내는 휴대폰을 가까이 들이댄다. 똬리를 튼 뱀의 흉터. 염소다. 휴대폰이 염소의 얼굴 위로 떨어진다. 사내는 하얗게 질린다. 주저앉는다. 사냥개들이 염소의 숨통을 끊어버렸다.

   아니다. 염소가 죽었을 리 없다. 염소가 그리 쉽게 갈 리 없다. 사내는 벌떡 일어나 지퍼를 마저 내린다. 또 다른 지퍼가 나타난다. 염소의 가슴에서부터 아랫배까지 지퍼가 달렸다. 가슴 밑에는 가로 지퍼도 달려 있다. 십자 지퍼. 누군가 염소의 몸에 십자 지퍼를 달았다. 십자가를 꿰맸다.

   사내는 염소의 심장께를 두 손으로 힘차게 누른다. 누르고 두드리고 때린다. 염소는 꿈쩍도 않는다. 다시 심장께를 누르고 두드리고 때린다. 미친 듯 누르고 두드리고 때린다. 하느님, 염소를 돌려주면, 염소의 심장을 돌려주면 당신을 믿겠습니다. 아아, 하느님.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는, 목숨 걸고 주사위를 던지기 전에는 염소를 데려갈 수 없습니다. 염병할! 염병할! 아, 염병할 염소의 염병할 심장이 뛰지 않아요, 염병할 하느님.

   염소가 죽었다.

   위가 뒤집어진다. 구역질난다. 토한다. 위가, 식도가 입 밖으로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신물이 입가에 줄줄 흘러내린다. 사내는 털썩 무릎을 꿇는다. 염소의 손이 눈에 들어온다. 뭔가 움켜쥐고 있는 것 같다. 염소의 새끼손가락을 잡아당긴다. 나사못으로 세게 조인 것처럼 옴짝달싹 않는다. 트렁크 턱에 한 발을 대고 버티면서 온 힘을 모아 손가락을 잡아당긴다.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인다. 새끼손가락 하나 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땀에 젖는다. 잠시 숨을 돌리고 약지를 편다. 또다시 숨을 돌린 뒤 중지를 편다. 손바닥에 희끗한 게 보인다. 주사위다. 동생의 주사위다.

   사내는 다시 주저앉는다. 사냥개들이 염소를 빼앗아갔다. 하느님도 빼앗을 권리가 없는데 염병할 사냥개들이 염소를 가로챘다. 사내는 사냥개들에 대한 분노로 부들부들 떤다. 떨면서 경찰서로 전화를 건다. 염소의 발로 자꾸만 눈길이 간다. 발바닥이 시멘트를 빚어 만든 것처럼 딱딱해 보인다. 평생 선 채 잔 발 같다. 염소는 언제부터 사냥개들에게 쫓겼을까. 동대문에서도 사냥개들을 피해 달아난 걸까? 의정부에서도?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자던 모습이 어른거린다. 아주 오래전부터 쫓겼을 것 같다. 그러니까, 어쩌면, KTX가 생기기 전부터.

 

   지독한 놈들! 콩팥부터 금이빨까지 돈 될 만한 것은 남김없이 빼갔더라고요.

   경찰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한다.

   연고자는 아직 못 찾았습니까?

   어제 딸과 겨우 연락이 닿긴 했는데…….

   사내는 경찰관이 말을 잇기를 기다린다.

   시신을 포기했습니다.

   다른 가족은요?

   딸이 유일한 가족입니다.

   그럼, 시신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무연고 시신은 해부 실습실이나…….

   거시기, 제가 시신을 수습하겠습니다.

   뭔가에 쫓기듯 내뱉은 말에 사내 자신도 놀란다.

   그러시겠어요?

   경찰관이 반색한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거시기해도 되면요.

   되고말고요.

   경찰관은 사내에게 서류를 내밀고 채워야 할 빈칸을 하나하나 짚어 준다. 사내는 이름과 주민번호와 주소를 적는다. 사망자와의 관계 앞에서 머뭇거린다. 망설임 끝에 빈칸을 채운다. 첫 획이 희미하지만 개의치 않고 마저 쓴다. 진구. 사내는 자신이 쓴 글자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데 거시기…….

   사내가 서류를 넘기며 입을 뗀다.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택시기사 연락처를 알 수 있을까요?

   사고를 낸 택시기사요?

   네, 장례 소식은 알려야 할 것 같아서요.

   아, 네. 잠깐만요.

   경찰관은 사건 파일을 뒤져 사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 준다.

   사내는 차로 돌아간다. 아이는 라디오 속 야구에 빠져 있다. 호랑이는 잠실에서 곰을 상대하고 있다.

   잠실야구장에 가.

   아이가 라디오에게 말한다.

   그래.

   사내가 힘없이 중얼거린다.

   사내는 여관방에 들어오자마자 텔레비전 야구를 켜고 전화로 화장터를 물색한다. 큰 화장터부터 알아본다. 서울과 이곳의 화장터는 다음 주 초까지 만원이다. 염소가 마지막으로 숨어 있던 도시의 화장터에서 겨우 불씨를 확보한다.

 

   다음날, 사내는 까만 넥타이를 매고 여관방을 나선다. 어머니 장례 때 맸던 것이다. 근처 맥도널드에서 아침을 먹고 지도를 따라 북쪽으로 달린다. 건널목을 건너 위로 올라간다. 신월동의 도로표지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나타난다. 표지판의 안내를 받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당도한다. 입구의 경비원에게 경찰서에서 받은 서류를 보여준다. 경비원이 유선전화로 연락을 취하더니 본관 앞에서 대기하라고 한다. 사내는 차를 본관 앞에 대고 기다린다.

   10분쯤 뒤 젊은 남자가 염소의 시신을 얹은 이동식 침대를 밀고 나온다. 사내는 방수포의 지퍼를 내리고 시신의 얼굴을 확인한다. 염소가 맞다. 염소를 봉고의 짐칸에 싣고 출발한다. 화장터에 가기 위해 120번 고속도로에 올라탄다.

   첫 번째 인터체인지에서 고속도로를 버리고 남쪽으로 내려간다. 도시의 아래쪽으로 내려간다. 일요일의 거리는 한산하다. 학교 앞이라 속도를 줄인다. 아이 또래의 남자애가 미친 듯 자전거 페달을 밟아 봉고를 따라온다. 운구차를 밀어붙인다. 땀이라는 생명의 진주를 장딴지에 빚어내며 죽음을 따라잡는다. 결국 추월한다. 유후! 잔인한 승리의 포효를 내지르며 골목으로 휙 뛰어든다. 사내는 자전거가 사라진 골목을 힐끗 본다. 남자애는 두 팔을 핸들에서 뗀 채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달리고 있다.

   저 멀리 가파른 녹색 비탈이 보인다. 도시를 굽어보는 산이다. 산자락을 에둘러 간다. 산의 뒷면은 완만하고 넓게 펼쳐져 있다. 숲과 잔디밭이 번갈아 펼쳐지는 공원이다. 아치 모양의 북문을 통과해 녹색 안식으로 들어간다. 사람들이 많다. 파란 잔디 곳곳에서 돗자리의 은박이 번쩍인다. 은박 돗자리 위에서 김밥을 먹고 잠을 자고 자다 깨서 칭얼거리고 칭얼거리는 애를 달랜다. 파란 잔디밭에서는 배드민턴을 치고 공을 찬다. 은박을 입힌 파란 일요일에도 번식하고 번영하고 있다. 도시락을 까먹는 모녀를 쳐다보는 아이의 눈이 가늘어진다. 배드민턴을 치는 부자를 바라보는 아이의 입술이 튀어나온다. 사내의 눈에는 젊은 아빠들만 보인다. 젊은 아빠들의 젊음만 보인다.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사내는 늙은 아빠다. 늙은 아빠라서 미안한 아빠다.

   오늘은 야구장에 가자.

   늙은 아빠지만 약속은 지키고 싶다. 약속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아이는 대꾸가 없다.

   화장 시설은 공원의 맨 아래, 남문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다. 쇠기둥과 유리로 지어올린 구조물은 체육관처럼 보인다. 실제로 옆에는 체육관이 들어서 있다. 사내는 화장 시설 입구에 차를 댄다. 차에서 내려 화장 시설로 들어간다. 최소한의 쇠기둥, 최대한의 유리, 최대한의 빛을 위한 최소한의 어둠. 내부도 진짜 체육관 같다.

   사내는 시설 직원에게 운구를 부탁한다. 직원이 이동식 침대를 밀고 나와 염소의 시신을 싣고 간다. 사내는 차를 주차장에 댄다.

   같이 갈래?

   아이는 시무룩하다. 사내는 자전거를 타고 봉고를 따라잡던 꼬마를 떠올린다. 아이에게는 그런 맹렬한 생명력이 없다. 아이의 몸속 생명의 심지는 불꽃을 피워 올리지 못하고 젖은 성냥처럼 맥없이 부러진다. 화나고 안쓰럽다.

   어디 가지 말고 불펜에서 기다려.

   아이는 역시 대꾸가 없다.

   사내는 혼자 화장 시설로 들어간다. 저쪽 불가마 앞에서 목사가 까맣게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을 모아 놓고 설교한다.

   원수를 사랑하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십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은 널찍하여 들어가는 자 많지만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길은 비좁아 찾아드는 이 적다. 저 문은 멸망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문이니 형제님은 하느님의 나라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까만 사람들이 입을 모아 기도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저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사내는 까만 사람들의 기도에게서 등을 돌린다.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해를 주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리는 아버지께는 볼일이 없다. 대신 남쪽의 붉은 땅에 물구나무 선 채 묻혀 있는 아버지를 떠올린다. 우주를 심장에 품고 있었으나 꽃 한 송이 피우지 못하고 먼지로 돌아간 동생을 생각한다. 사내의 눈이 불타고 귀가 얼어붙는다. 얼어붙은 귀에는 아브라함의 목소리가 메아리친다. 사내는 아브라함의 목소리로 기도한다.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부디 불의를 심판하시어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칼과 주사위와 청산가리의 이름으로 아멘.

   하느님의 말씀을 나누어 가진 까만 사람들이 교회를 나서는 걸음으로 화장 시설을 빠져나간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체육관이 아니라 염소가 다니던 교회를 닮았다.

   사내의 이마에 비친 경고등이 깜박이고 불가마의 좁은 문이 열린다. 염소의 관이 좁은 문 너머의 비좁은 길을 따라 불바다로 천천히 흘러 들어간다. 사내는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주사위를 꺼내 관 위에 올려놓는다. 주사위가 요단강을 건넌다.

 

   두 시간 뒤 염소가 나무상자에 담겨 나온다. 염소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주사위를 삼킨 염소를 어찌할 것인가. 염소를 받아든 사내는 밖을 바라본다. 저 멀리 은박이 점점이 찍힌 파란 융단 위에서 김밥과 배드민턴으로 번식하고 번영하는 무심한 생명들을 바라본다. 새끼를 먹이는 젊은 엄마들은 은색 너럭바위에 낀 이끼 같고, 배드민턴공을 주우러 가는 젊은 아빠들은 뿌리 뽑힌 나무 같다. 젊지만 무기물이다. 젊은 무기물이다. 새끼들에게 칼슘을 내주고 진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미 자연의 일부다. 새끼들은 어미 아비의 칼슘을 뽑아먹고 단단해진 장딴지로 애먼 운구차를 추월한다. 냉혹하게 추월하고 잔인하게 쾌재를 부른다.

   사내는 피크닉을 간 적이 없다. 아버지의 아들로서든, 아들의 아버지로서든, 한 번도 없다. 염소는 피크닉을 간 적이 있을까? 아버지와 함께든, 아버지로서든? 염소도 누군가의 아들이자 아버지였다는 당연한 사실에 사내는 흠칫한다. 유일한 혈육인 딸이 시신을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미처 생각 못 했다. 염소는 어떤 아버지, 어떤 칼슘이었을까?

   염소를 안고 봉고로 돌아간다. 아이가 차에 없다. 염소를 짐칸에 넣고 허둥지둥 아이를 찾아 나선다. 공원을 샅샅이 뒤진다. 배드민턴공 안에도 없다. 김밥 안에도 없다. 매점 아이스크림 냉장고에도 없다. 스포츠, 레저용품점에 진열된 글러브에도 없다. 화장실 변기에도 없다. 염병할 연못 잉어 입속에도 없다. 빌어먹을 개미굴에도 없다.

   문득 군산에서의 밤이 떠오른다. 아이에게 뭐라고 했지? 불펜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것 같다. 불펜으로 갔을까? 야구장으로? 잠실야구장? 조르다 지쳐서 혼자? 미친 생각이 날뛴다. 미친 생각을 멈출 수 없다.

   저 멀리 빨간 야구모자가 보인다. 토끼다. 아이가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다.

   진구야!

   사내가 소리친다. 손바닥만 들여다보는 멍청한 걸음걸이가 화나고 반갑다.

   아이가 고개를 든다.

   아빠.

   아이의 무표정한 얼굴이 사내를 바라본다. 그것도 잠시 다시 손바닥으로 고개를 떨어뜨린다. 손바닥에는 나침반이 있다.

   불펜에서 기다리라고 했잖아.

   사내는 화를 삭이며 말한다. 화를 내면 아이를 영원히 잃어버릴 것 같다.

   호랑나비가 날아왔어. 꼼짝도 안 했어. 한쪽 날개 끝이 뜯겨졌어. 진구는 안 다쳤지만 꼼짝 안 했어. 안 다친 진구가 꼼짝 안 하니까 다친 호랑나비는 계속 다친 호랑나비였어. 진구가 차에서 내리니까 호랑나비도 다시 날았어. 진구가 따라가니까 호랑나비가 계속 날았어. 진구가 달리니까 호랑나비도 하늘로 날아갔어. 호랑호랑 날아갔어.

   아이는 미친 말을 미친 듯 쏟아낸다. 칼슘이 부족한 말, 칼슘이 부족해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다. 사내는 정신을 가다듬는다. 칼슘을 어디에 뒀더라. 두개골을 가득 채운 진흙 덩어리에서 야구라는 칼슘을 찾아낸다.

   아빠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혼자 야구장에 간 줄 알았잖아?

   잠실야구장 아빠랑 가기로 했어.

   사내는 긴장이 풀린다. 맥이 풀린다. 무릎이 풀린다. 칼슘이 풀린다. 진짜로 아이를 되찾은 기분이다. 사내는 쭈그려 앉는다. 아이의 손바닥에 올려진 나침반을 들여다본다. 삶의 지침을 찾으려는 사람처럼 바늘을 주시한다. 바늘이 파르르 떤다.

   아빠.

   …….

   미안.

   사내는 깜짝 놀란다. 귀를 의심한다.

   뭐라고?

   미안.

   뭐가 미안해?

   윤지수 선생님이 상대방 눈자위가 빨개지면 미안하다고 하랬어.

   사내는 아이의 눈을 바라본다. 이번에는 아이가 나침반을 내려다본다. 사내의 눈과 아이의 눈이 숨바꼭질한다.

   사내는 목이 멘다. 낯선 사람들에게는 수백 번도 더 들려줬지만 가족에게는 한 번도 들려주지 않은 말을 아이한테서 들었다. 마음이 아니라 용기가 없어서 들려주지 못한 말을 아이한테서 들었다.

   괜찮아. 괜찮아, 진구야.

   아버지한테서 들어 보지 못한 말을 사내는 아들에게 난생처음 들려준다. 무조건적인 칼슘을 한 줌 내준다. 아이는 여전히 나침반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런데 나침반은 왜 들고 있어?

   아빠 차 남문 앞에 있어. 파란 바늘 끝 따라가면 아빠 차야.

   그렇구나.

   사내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다 멈칫한다. 아이가 싫어한다. 사내는 아이가 싫어하는 게 싫다. 사내는 손을 거두고 일어선다. 배드민턴을 지나, 김밥을 지나 차로 향한다. 아이가 김밥을 쳐다본다.

   김밥 사먹을까?

   계란말이 김밥.

   김밥 집에서 계란말이 김밥을 산다. 매점에서 삶은 계란, 바나나 우유, 사이다, 은박 돗자리도 산다. 아이와 피크닉을 간다. 난생처음 은박 피크닉을 간다. 사과나무 아래 은박 돗자리를 깐다. 삶은 계란부터 먹는다. 사내는 흰자만 벗겨 먹고 노른자는 아이에게 준다. 사내는 사이다를, 아이는 바나나 우유를 마신다.

   저만치 떨어진 아이 또래의 꼬맹이가 이쪽에 쭈그려 앉은 젊은 아빠를 향해 공을 던진다. 공이 이쪽으로 굴러온다. 새하얀 가죽이 빨간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며 싱긋 웃고 있는 진짜 야구공이다. 아이가 야구공을 줍는다. 야구공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연구한다.

   꼬마야, 이리 던져.

   쭈그려 앉은 어른이 아이를 향해 말한다. 아이가 야구공 연구를 중단하고 사내를 쳐다본다. 불펜의 감독을 쳐다본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가 공을 쥐고 일어선다. 두 팔을 바짝 들어 올려 원심력을 만든다.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앞으로 차면서 장전된 원심력을 발사한다. 야구공이 날아간다. 하얀 야구공이 파란 하늘 속으로 빨갛게 빙글거리며 날아간다.

   스트라이크.

   사내가 마음속으로 소리친다. 스트라이크라는 판결의 뿌듯한 물결이 마음속에 메아리친다.

   야구공 사줄까?

   사내가 기쁨의 메아리에 화답한다.

   야구장.

   야구장을 어떻게 사줘?

   잠실야구장.

   사내는 그제야 아이의 말뜻을 알아차린다.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이제 막 5시가 지나갔다. 서두르면 경기 시작 전에 도착할 수 있다.

   늦은 건 아냐.

   주말에는 5시.

   사내의 얼굴이 굳어진다. 또 깜박했다. 늙은 아빠라서 깜박깜박한다. 오늘이 일요일이라서 3연전의 마지막 시합이다. 늙은 아빠지만, 늙어서 깜박깜박하는 아빠지만 오늘만큼은 아이와의 약속을 지키고 싶다. 오늘만큼은 더 이상 미안하고 싶지 않다.

   어서 가자.

   사내는 잔디밭에 펼쳐 놓은 어설픈 피크닉 흉내를 서둘러 거둬들이고 차로 달려간다. 공원을 떠난 지 한 시간이 지나서야 120번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온다. 몇 회일까? 사내는 라디오를 켜고 잠실의 야구를 찾는다. 라디오는 횡설수설하더니 가래 끓는 소리만 들려준다. 머리통을 얻어맞은 뒤에는 입을 아예 다물어버린다.

   6번 도로는 가다 서다 간다. 강 건너 46번 도로는 잘 달리는 것 같다. 양화대교를 건넜어야 했다. 강을 건너려고 여의도에 발을 들였다 미로에 갇힌다. 일방통행이라는 덫이, 막다른 길이라는 지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지나간 곳으로 돌아온다. 결국 아이의 나침반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침반의 지시에 따라 북쪽으로 올라간다. 원효대교를 건너 여의도라는 미로에서 탈출한다. 기쁨은 잠시뿐, 46번 도로도 절뚝거린다. 한 우물을 팠어야 했다. 동작대교를 건너 본래의 우물로 돌아간다. 우물이 다시 마른다. 6번 도로가 다시 절뚝거린다. 강 건너가 더 빨라 보인다. 한남대교를 건넌다.

   강이 자꾸 따라와.

   아이가 강에게 소리친다. 사내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놀란다. 추적을 따돌리려는 것처럼, 날아오는 화살을 피하려는 것처럼 지그재그로 가고 있다. 자꾸만 백미러를 흘깃거리고 있다. 뒤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지만 뭔가가 쫓아오는 것 같은 기분에 쫓기고 있다. 기척도 없이 쫓아오는 불안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버틴다. 동호대교, 성수대교, 영동대교를 이를 악물고 버틴다.

   잠실야구장.

   아이가 소리친다.   

   너무 버티다 잠실대교를 지나쳤다. 강 건너 잠실야구장이 조명탑에 불을 붙이며 날아간다. 올림픽 대교를 건너 야구장이라는 비행접시를 추격한다. 6번 도로를 잡아타고 쫓는다. 간격이 좁혀진다.

   비행접시를 따라잡자마자 매표소로 달려간다. 매표소에도, 입구 쪽에도 사람이 없다. 아이와의 약속만 아니었다면 발길을 돌렸을 테지만 그냥 들어간다. 비행접시에 무임승차한다. 아이는 신기한지 휘둥그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잠실야구장은 사내도 처음이다. 아이와 야구장에 오게 되리라고는 꿈속에서도 꿈꾸지 못했다. 꿈만 같다. 꿈속의 꿈만 같다.

   몇 회나 되었을까? 경사진 통로를 오르는 사내의 걸음이 분주해진다. 평소에는 곤충 박사의 얼굴로 발치만 두리번거리던 아이도 부지런히 걷는다. 언제나처럼 무표정하지만 상기된 것 같기도 하다. 함성이 들린다.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끝났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더 다급해진다. 맨 먼저 나타난 출입구로 뛰어든다. 빛의 소용돌이에 휩쓸린다. 비행접시에 납치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빛에 대해 입 모아 얘기한다더니.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빛. 여기는 빛의 도가니, 빛의 콜로세움이다. 주변의 풍경이 차츰 윤곽선을 얻는다. 빨간 선수들이 수비를 하고 있다. 사내는 전광판을 확인한다. 7회 말이고 곰에게 한 점 내주는 동안 호랑이는 한 점도 못 얻었다.

   딱 소리와 함께 흰 막대풍선들이 벌떡 일어난다. 흰 막대풍선들이 박수 치고 춤추고 노래한다. 3루 쪽 노란 막대풍선들은 시무룩하다. 전광판을 건너 3루 쪽 외야석에 자리를 잡는다. 그새 공수가 바뀌었다.

   전광판이 안 보여.

   아이가 모로 서 있는 전광판에게 말한다.

   내야에는 자리가 없는데.

   전광판이 안 보여.

   아이의 목소리가 불안하게 떨린다.

   전광판이 꼭 있어야겠어?

   전광판이 안 보여.   

   아이는 안절부절못한다.

   저쪽에도 있잖아.  

   사내가 본부석 위쪽에  설치된, 스코어만 알려주는 간이 전광판을 가리키며 말한다.

   선수들이 없어.

   아이가 간이 전광판을 노려보며 소리친다.

   주변 사람들이 일제히 이쪽을 쳐다본다. 사내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선다. 전광판을 얻기 위해 의자를 포기하고 내야 쪽 통로 계단에 앉는다.

   사내는 진짜 야구를 느낀다. 조명탑에 알알이 박힌 에디슨의 해, 인공 태양 아래 눈부시게 반짝이는 파란 잔디, 파란 다이아몬드를 깎고 다듬는 움직임들의 기민함, 마운드 위로 켜켜이 쌓이는 태초의 정적, 투수의 다리가 정적 더미를 박찰 때마다 새로 태어나는 백색왜성, 빨갛게 싱글거리는 초신성의 궤도에 달라붙은 관중의 함성과 탄식. 와글와글, 들썩들썩, 여기는 별세상이다. 별나라다. 별나라의 야구다. 깨끗해지고 순수해지는 느낌, 강력한 세제로 뼈마디의 얼룩을 씻어내는 기분이다. 아이는 전광판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야구라는 지구인들의 기이한 놀이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외계인의 얼굴이다. 야구를 비행접시에 납치한 외계인의 얼굴이다.

   8회 초에도 호랑이는 점수를 내지 못한다. 전광판에 0이 늘어난다. 전광판 스코어보드는 하나뿐인 1을 빼면 모두 0이다. 다른 숫자는 없다. 아이의 일기장 같다. 아이의 일기장 속 야구 같다. 선수들 이름 앞에는 수비 위치를 알려주는 숫자가 불을 밝히고 있다. 야구는 모든 상황을 숫자로 표기할 수 있다. 어쩌면 아이는 2진법을 쓰는 별나라에 야구를 중계했는지도 모른다.

   8회 말 수비, 두 명의 타자를 잡아낸 뒤 안타와 볼넷을 거푸 내줘 만루 위기에 몰린다. 흰 막대들은 기세를 올리고 노란 막대들은 숨죽인다. 딱. 제대로 때린 공이 2루수의 글러브에 눈 깜짝할 새 빨려 들어간다. 다시 0이 늘어난다. 9회는 차마 볼 수 없다.

   화장실 다녀올 테니까 꼼짝 말고 있어.

   아이는 전광판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사내는 야구 밖으로 나간다.

   화장실에서 나온 사내는 야구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통로를 배회하고 기념품점을 기웃거린다. 야구공을 산다. 야구공을 쥐고 있으니 야구의 핵심을, 야구라는 기이한 별의 심장을 움켜쥐고 있는 것 같다. 천둥 같은 함성이 들린다. 사내는 자석에 끌리듯 출입구로 다가간다. 호랑이 한 마리가 홈으로 뛰어든다. 세이프. 기어이 동점을 만든다. 1루에 나간 주자는 불러들이지 못하고 공격권을 내준다. 사내는 출입구에서 옴짝달싹 못한다. 야구 안으로 들어가지도, 야구 밖으로 나가지도 못한 채 9회 말을 지켜본다. 가슴을 졸이며 본다. 패하면 자기 때문일 것 같다. 마지막 공격에서 극적으로 동점을 만든 것은 자신이 안 봤기 때문이라는 확신만큼이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마지막 타자를 잡아낸 뒤에야 사내는 야구에게로, 야구를 연구하는 아이에게로 돌아간다.

   연장전도 0만 추가한다. 결정적 한 방이 터지지 않는다. 연장전은 마무리할 타이밍을 놓쳐버린 연설처럼 늘어진다. 자리를 뜨는 관중도 있다. 호랑이는 마지막 공격에서도 점수를 못 낸 채 마지막 수비를 한다. 선두 타자에게 볼넷을 내준다. 희생번트로 1루 주자가 2루까지 간다. 대타가 들어선다. 대타는 3루수 땅볼로 물러나고 2루 주자는 발이 묶인다. 다음 타자가 때린 공이 투수 옆을 스치고 중견수 앞으로 굴러간다. 2루 주자는 3루를 돌아 홈으로 달리고 중견수는 포수에게 송구한다. 주자의 발과 포수의 미트가 아슬아슬한 사선 위에서 춤춘다. 노랗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하얗게 피어오르는 석회가루. 아웃. 탄식과 함성이 교차한다. 경기는 무승부로 끝난다.

   관중은 분주한 월요일 아침을 향해 잰걸음으로 빠져나간다. 아이는 나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텅 빈 그라운드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홈플레이트 쪽을 보고 있다. 홈플레이트를 연구 중이다. 사내도 꼼짝 않는다. 어차피 서둘러 가야 할 곳도, 잰걸음으로 맞으러 갈 월요일 아침도 없다.

   집에 가.

   아이가 홈플레이트 쪽을 쳐다보며 중얼거린다.

   뭐?

   집에 돌아가.

   아이가 홈플레이트에게 또박또박 말한다.

   지금?

   집에 돌아가.

   조명등이 하나둘 꺼진다. 하얗게 빛나던 홈플레이트가 일요일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든다. 순간, 사내의 두개골 아래에 고인 어둠이 번쩍 밝아 온다. 빛나던 홈플레이트가 머릿속에 들어앉는다. 희미해진 파울라인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부챗살처럼 펼쳐진다. 머릿속에 펼쳐진 새하얀 길이 사내의 눈초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겨 놀란 표정을 만들어낸다. 사내는 방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때문에 놀랐다. 아이가 들춘 야구의 진실에 부르르 몸을 떤다.

   그래,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가자. 월요일은 이동일이니까 내일 가자.

   월요일은 이동일.

   아이의 입가에 만족의 주름이 몰려든다.

   오늘밤은?

   아이는 에디슨 못지않은 발명왕. 걱정거리가 사라지기 무섭게 새 걱정거리를 발명한다.

   캠핑하자.

   어디에서?

   사내는 아이에게 야구공이라는 답을 건넨다.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사내의 답을 이리저리 돌려 본다. 야구공을 분석한다.

   일, 이, 삼, 사, 오…….

   아이가 속사포처럼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야구공의 빨간 치아를 세기 시작한다.

   ……백, 일, 이, 삼, 사, 오, 육, 칠, 팔.

   야구공의 실밥은 백팔 개다. 사내도 처음 알았다.

   백팔.

   사내는 아이가 밝혀낸 야구공의 비밀을 중얼거린다.

   사내는 아이를 데리고 차로 돌아가 야구장의 불이 모두 꺼지고 인기척도 사라질 때까지 기다린다. 야구장이 완전히 여름밤의 일부가 되자 사내는 짐칸을 열고 거미집과 은박 돗자리를 꺼낸다. 염소의 상자도 꺼낸다. 아이는 스파이더맨 가방을 챙긴다. 아이의 손전등을 앞세우고 야구장의 고요한 어둠을 향해 걸어간다. 내야석 끝에서 야구장으로 내려간다. 야구장은 밤의 양탄자처럼 푹신하고 고요하다. 아이는 눈밭을 걷는 것처럼 한 발 한 발 멀리 내딛는다. 사내는 내야를 지나 홈플레이트 쪽으로 간다.

   여기에서 캠핑?

   아이의 물음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고 홈플레이트 위에 거미집을 세운다. 거미집 앞에 은박 돗자리를 깐다. 아이는 손전등을 앞장세우고 거미집의 어둠 속으로 쏙 들어간다.

   진구야. 아빠 좀 도와줘.

   아이가 손전등과 호기심을 거미집 밖으로 내민다.

   파울라인이 희미해져서 다시 그려야 해.

   파울라인을 다시 긋는 모험에 아이는 기꺼이 동참한다. 파울라인을, 주루 선을,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다시 긋는다는 즐거움에 손전등을 앞장세우고 깡충거리며 1루로 향한다. 사내는 희미해진 석회가루 위에 염소를 조금씩 뿌린다. 3루를 돌아 홈으로 간다.

   아이는 거미집 밑에 눕고 사내는 은박 돗자리 위에 눕는다. 머리맡에 아이의 숨소리와 곤충군단의 경계심이 느껴진다. 별이 나타난다. 별을 품은 하늘이 나타난다.

   아빠.

   아이의 목소리가 가까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

   왜?

   할머니는 어디에서 자?

   아이는 그새 새 걱정거리를 발명했다.

   집에서.

   누구 집?

   할머니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살던 집.

   이 세상에 오기 전?

   그래.

   집으로 돌아갔어?

   그래.

   할머니 홈런 쳤어?

   그래.

   우리도 내일 집에 돌아가.

   그래.

   아이는 입을 다문다. 사내도 입을 다문다. 입을 다물고 마음속으로 야구의 진실을 중얼거린다. 그래. 집에 가자. 무사히, 살아서 집에 돌아가자. 사내는 무심코 양복 상의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는다. 칼과 청산가리는 그대로 있다. 쪽지를 꺼내 펼친다. 염소의 마지막 주소에는 빨간 펜으로 가위표가 쳐져 있고 낯선 숫자가 적혀 있다. 염소를 친 택시기사의 휴대폰 번호다. 사내는 어둠 속에 숨은 전화번호를 가만히 노려본다.  (끝)

 

 

   《문장웹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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