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제7회)

 

   장편연재_제7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하나, 두울.

   사내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음속으로 숫자를 센다. 둘을 딛고 셋이 뛰어올라 문을 걷어찬다. 사내의 칼날이 왈칵 드러난 역광의 어둠 속으로 뛰어든다. 어둠은 적막하고 뜨겁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차마 숨소리를 낼 수 없는 숨 막히는 어둠이다. 낮 속의 밤이다. 움츠러든 시야의 가장자리에 방치의 흔적이 하나둘 걸려든다. 나뭇결을 흉내 낸 비닐 장판에는 신발 자국이 어지럽게 찍혀 있고 문이 떨어져 나간 싱크대 수납장은 텅 비었고 개수대 수챗구멍에는 말라비틀어진 걸레가 처박혀 있다. 요리의 기억이 까마득한, 버려진 부엌이다.

   낮 속의 밤을 밀어붙이며 사내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삐걱대는 미닫이문을 열어젖혀 보지만 안방에도 염소는 없다. 안방은 의외의 빛으로 환하다. 서쪽으로 난 쪽창이 기울어 가는 빛을 아낌없이 거둬들이고 있다. 환해도 버려지기는 부엌과 다를 바 없다. 버림받은 흔적이 적나라해 오히려 더 흉물스럽다. 역시 나뭇결을 흉내 낸 비닐장판에는 신발 자국이 어지럽고 컵라면 용기와 휴대용 부탄가스통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다. 천장을 점령한 거미줄이 담쟁이처럼 벽을 타고 내려와 있다.

   염소는 잠깐 담배를 사러 나간 게 아니다. 진즉 냄새를 맡고 달아났다. 사내는 먼지투성이 바닥에 풀썩 주저앉는다. 이번에도 한 발 늦었다. 어쩌면 백만 발쯤 늦은지도 모르지만 한 발 늦은 기분을 어쩔 수 없다. 허탈하고 분하다. 군산에 들르지만 않았어도, 좀 전에 중국집만 가지 않았어도, 그러니까 아이라는 혹만 없었어도 염소를 놓치지 않았을 텐데. 한편으로는 추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사내는 칼을 붕대로 돌돌 감은 뒤 양복상의 안주머니에 도로 집어넣는다. 아직은 칼의 시간이 아니다. 지금은 매의 눈이, 셰퍼드의 코가 필요하다. 진짜 사냥은 이제부터라고 생각하니 힘이 솟는다.

   매의 눈이 활약한다. 염소의 은신처를 꼼꼼히 살피고 분석한다. 벽에는 못 자국이 많다. 남아 있는 못은 하나도 없다. 못 구멍마다 해를 가린 자국이 누리끼리하게 걸려 있다. 저기는 벽시계, 저기는 액자, 저기는 옷 한 벌. 그리고 저기는 십자가. 벽시계도 액자도 옷도 십자가도 색이 바랬다. 염소가 뜬 지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이야기. 염소는 어디로 달아났을까? 벽시계와 액자와 옷 한 벌과 십자가와 벽시계의 못과 액자의 못과 옷 한 벌의 못과 십자가의 못을 짊어지고 어디로 숨었을까? 벽시계는 지금 몇 시일까? 액자는 어떤 사진을 품고 있을까? 저 구멍에 박혀 있던 대못은 어떤 옷을 걸치고 있을까? 염병할 염소의 십자가는 어떤 염병할 기도를 듣고 있을까?

   사내는 구석에 쌓인 쓰레기 더미도 샅샅이 뒤진다. 목이 부러진 효자손, 부러진 효자손의 목, 상표가 닳아버린 건전지, 상표가 반쯤 남은 건전지, 상표가 온전히 남은 건전지, 옷처럼 보이는 누더기, 누더기처럼 보이는 옷, 옷이었던 시절의 기억만 간직한 누더기, 옷이었던 시절의 기억마저 잃어버린 누더기, 신발 깔창 한 짝, 구멍 난 양말 한 짝, 구멍 안 난 양말 한 짝, 연료가 바닥 난 라이터, 깨진 사발, 깨진 사발의 조각, 깨진 사발의 조각의 조각, 너구리라면 봉지, 너구리라면 스프 봉지, 너구리, 너구리, 너구리, 너구리, 너구리. 백세약국 봉지, 검정 비닐봉투, 노란 비닐봉투, 재활용 쓰레기봉투, 꽝인 즉석복권, 꽝, 꽝, 꽝, 꽝, 끝이 빨간 나무젓가락, 끝도 노란 나무젓가락, 처음처럼 병마개, 처음처럼, 처음처럼, 처음처럼, 처음처럼, 처음처럼, 처음처럼, 박카스 병마개, 체납 수도요금 독촉 고지서, 체납 전기요금 독촉 고지서, 똥 광 화투짝, 흑싸리 껍질 화투짝, 검정 바둑알, 흰 바둑알, 장기판 졸, 잠실야구장 입장권?

   사내는 한쪽 귀퉁이가 찢어진 잠실야구장 입장권을 집어 들어 검시관의 눈으로 살펴본다. 작년 8월, 곰과 호랑이의 대결. 내야석. 귀퉁이가 찢어져 확인할 수 없지만 염소는 당연히 1루 쪽에 앉았을 것이라고 사내는 당연하게 짐작한다. 어떤 순간에도, 단 한 순간조차 염소가 같은 편일 리가 없고, 같은 편일 수도 없고, 같은 편이어서도 안 된다. 쓰레기더미는 염소의 행방에 대해 쓰레기답지 않게 끝까지 입을 다문다.

   추적은 벽에 부딪혔다. 소득 없이 손만 버렸다. 손을 비벼 먼지를 털어내지만 감식과 검시의 흔적이 얼룩덜룩 남아 있다. 사내는 방을 나가 개수대로 향한다. 먼지를 뒤집어쓴 수도꼭지를 돌린다. 수도꼭지도 입을 꽉 다문다. 목젖을 비틀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염병할 염소의 행방은 물론 물 한 방울 실토하지 않는다. 잡아뗀다. 묵비권을 행사한다. 손바닥에 침을 뱉어 검댕 얼룩을 지우고 수챗구멍에 처박힌 말라비틀어진 걸레를 꺼내 닦는다. 걸레가 아니라 수건이다. 수건이었다. 사내는 왕년의 수건을 심문한다. 염소의 행방을 캔다. 왕년의 수건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 양쪽 귀를 힘껏 잡아당기자 쓸 만한 정보를 술술 토해낸다.

   광영교회 창립 50주년 기념.

   염소의 집에서 나오자마자 사내는 야구모자와 양복상의를 벗어든다. 온몸이 땀에 푹 젖었다. 사내는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훔친다. 공기가 후텁지근하다. 시멘트 길과 벽이 삼켰던 해를 토해내고 있다. 최고층을 한참 남겨 둔 공사장의 높이는 이미 위협적이다. 공성 탑처럼 우뚝 솟은 타워크레인의 가로축이 까마득한 하늘의 구름을 매달고 있다. 아파트 꼭대기에 얹을 구름을 집어올리고 있다.

   공사현장 안쪽에서만 밖을 내다봤지 밖에서 안쪽을 들여다보기는 처음이다. 낯설다. 손에서 연장을 놓은 지 며칠 안 됐는데 저 안쪽에, 가림 펜스 안쪽에 있었던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쪽에서 보이는 가림 펜스에는 그림이 없다. 아름다운 열대의 꽃밭이 없다. 이쪽 밭에는 꽃이 피지 않는다. 이쪽에도 해가 있지만 꽃은 없다. 가짜 해다. 사기꾼 해다. 여기도 사기극, 저기도 사기극. 실로 거대한 사기극. 정의는 사극에만 있다.

   사내는 올라왔던 길을 되짚어 내려간다. 골목, 계단, 골목, 계단. 거대한 사기극, 생존권 사수, 불도저를 멈춰라. 왔던 길이고 내려가는 길인데도 더 길게 느껴진다. 코흘리개들의 덤프트럭과 포클레인은 아직도 흙을 쏟았다 담았다 하고 있다.

   아이는 차에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다. 차 안에 혼자 앉아 있는 아이의 조그마한 모습에 가슴이 졸아든다. 혹이라고 치부한 게, 혹 때문에 염소를 놓쳤다고 한탄한 게 미안하다. 그런데 복수가 끝나면 아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학교마저 두 손 두 발 든 아이를 이 세상에 혼자 남겨 둬야 할까? 저 세상에 함께 데려가야 할까? 달아난 염소도 염소지만 아이 때문에 마음이 천근만근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잊어버릴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이의 모습은 점점 커진다. 한 걸음씩 커지면서 가슴을 짓누른다. 아이는 여전히 『파브르 곤충기』에 코를 박고 있다. 책의 활자를 맛볼 기세다. 개미굴을 노리는 개미핥기 같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아이의 얼굴 때문에 겨드랑이가 축축해진다.

   친구 만났어?

   아이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묻는다. 책을 읽는 것 같다.

   아니.

   왜?

   이사 갔어.

   어디로?

   모르겠어. 알아봐야지.

   누구한테?

   몰라.

   왜 몰라?

   몰라.

   왜 몰라?

   그만 해.

   아이는 샐쭉한 얼굴로 파브르 박사에게 돌아간다. 파브르 박사가 된다. 이번에는 진짜로 책에 적힌 것을 큰 소리로 읽는다.

   나는 독거미에게 두더지를 물게 했습니다. 독거미에게 물린 두더지는 코를 긁더니 아무렇지 않게 먹이를 먹고 잘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이튿날에는 잘 먹던 먹이인 매미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독거미에게 물린 지 39시간쯤 되었을 때 죽었습니다.

   조용히 읽어.

   왜?

   다른 사람 생각도 해야지.

   무슨 생각?

   다른 사람은 듣기 싫을 수도 있잖아.

   파브르 곤충기인데?

   그래도.

   파브르 곤충기인데?

   그래도 싫다니까.

   아이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다. 철석같이 믿는 신을 부정당한 얼굴이다. 사내야말로 아이의 표정에 작은 충격을 받는다. 독거미가 두더지를 물어 죽이는 이야기 따위를 모두가 좋아할 거라는 믿음의 맹목에 울컥 짜증이 치민다. 독거미에게 물린 두더지가 39시간을 버티든 40시간을 버티든 무슨 상관인가? 염병할 독거미. 염병할 두더지. 한 발 늦은 것은, 염소에게 달아날 틈을 준 것은 아이 때문인 게 맞다. 혹 때문인 게 분명하다.

   차가 열대의 꽃밭을 지나는 내내 아이는 침울하다. 신성모독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차는 큰길 쪽으로 간다. 주유소를 지나자 버스정류장 바로 옆에 구멍가게가 보인다. 버스정류장 너머에 차를 세우고 사내는 구멍가게로 간다.

   돋보기를 쓴 노인이 두툼한 국어사전을 끼고 신문에 실린 십자말풀이와 씨름하고 있다. 사내는 냉장고에서 바닐라 맛과 바나나 맛 부라보콘을 꺼내 신문 옆에 놓는다. 캐러멜도 한 갑 집어온다. 아이스크림과 캐러멜 값을 치르면서 광영교회를 아는지 묻는다.

   이 동네에서 거기를 모르면 간첩이지.

   노인이 잔돈을 내주면서 대답한다.

   어디에 있는지도 아시겠네요?

   사내가 반색하며 묻는다.

   갑자기 사내의 얼굴이 굳어진다. 아차, 싶었다. 모르면 간첩이라지 않는가. 그렇다면 위치를 모를 리 없는데 어리석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노인이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얕잡아볼까 봐 더럭 겁이 난다. 아직 한참 멀었다. 노련한 사냥꾼이라면 진짜 목표물을 섣불리 입 밖에 내면 안 된다. 그것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도 감춰야 한다. 떠벌리면 훼방꾼만 생긴다. 간절히 원하는 것은 남들에게 들키는 순간 약점이 된다.

   알다마다. 이 동네에서 거기를 못 찾으면 장님이지.

   노인이 시원스레 대답한다. 다행히 노인은 사내에게 별 관심이 없다. 십자말풀이의 빈 칸만 들여다보고 있다.

   사내는 아이스크림과 캐러멜과 염소의 행방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손에 넣고 차로 돌아간다. 아이에게 바나나 맛 부라보콘만 내민다. 바닐라 맛은 사내의 몫이고 캐러멜은 비장의 카드로 아껴 둔다. 아이는 독거미에 물린 두더지처럼 코를 긁더니 아무렇지도 않게 좋아하는 먹이를 잘 먹는다. 아껴 가며 조금씩 핥아먹는다. 아이스크림핥기다. 신성모독의 독도 바나나 맛 부라보콘 앞에서는 맥을 못 춘다. 파브르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적어도 39시간은 멀쩡할 테지. 사내는 39시간 안에 염소를 찾기로 결심한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구체적인 시한을 정하니 추적이 더 절박해진다. 나쁘지 않다. 마침내 이 추적의 십자말판에서 아이의 의미를 찾아낸다. 아이는 39시간짜리 타이머다.

   광영교회는 중국집을 찾을 때 봤던 유리로 지은 교회다. 벽돌로 지은 교회와 시멘트로 지은 교회를 지나 광영교회에 도착한다. 못 찾으면 장님이라는 구멍가게 노인의 말을 증명하려는 듯 유리의 성이 눈부시게 번쩍거린다. 정방형의 유리창과 직사각형의 유리창이 줄을 바꿔 가며 차곡차곡 쌓여 있다. 유리벽돌로 지어올린 탑이다. 온 세상이 같은 말을 쓰던 시절, 사람들이 온 세상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늘 끝까지 지어올린 탑이다. 정방형 유리벽돌 줄에는 성경의 일화를 담은 스테인드글라스 벽돌이 한 칸 건너마다 끼워져 있다. 빨간 해, 노란 해, 파란 해가 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의 머리 위에 떠 있다. 유리의 하느님을 모시는 빛의 신전 같다.

   불펜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

   사내가 시동을 끄고 아이를 쳐다보며 말한다.

   아이는 스테인드글라스에 넋을 빼앗겼다. 영락없는 촌뜨기의 얼굴이다. 촌뜨기 토끼다. 아이는 여태 부라보콘을 핥고 있다. 바나나 맛을 핥고 있다. 촌뜨기 원숭이토끼다.

   교회는 예배 중이다. 사내는 로비에서 기다린다. 대리석이 깔린 로비에는 햇빛이 곧장 들이치지만 에어컨이 지상낙원의 공기를 쾌적한 온도에 붙잡아 두고 있다. 사내는 로비를 둘러본다. 예배실 문 오른쪽 벽에 걸린 게시판은 이런저런 여름봉사선교활동 계획을 알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다른 말을 쓰는 땅들의 이름이 적혀 있다. 하나의 말을 쓰던 탑에서 온 세상으로 흩어진 사람들의 땅이 적혀 있다. 반대쪽 벽에는 두 개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넓은 이마, 긴 눈썹, 동글동글한 콧방울, 역시 넓은 하관. 둘 모두 켄터키프라이드치킨 할아버지를 닮았다. 사람 좋은 미소도 영락없다. 자세히 보니 한쪽이 머리숱이 많아서 다른 쪽보다 10년쯤 젊어 보인다. 닮은 두 사람을 그린 것 같기도 하고 한 사람의 두 시기를 그린 것 같기도 하다.

   마침내 예배실 문이 열리고 잘 차려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무리지어 쏟아져 나온다. 쏟아져 나온 사람들,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쏟아져 나오려는 사람들을 사내는 하나하나 눈여겨보며 목사를 찾는다. 아무나 붙들고 물어볼 수도 있을 테지만 그러지 않는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저 안쪽에서 잘 차려입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초상화의 주인공이 걸어 나온다. 나란히 걸린 초상화 주인공들의 젊은 시절 얼굴이 걸어 나온다. 역시 잘 차려입었다. 파란 실크 양복에 빨간 넥타이 차림이다. 양복은 맞춘 것처럼 몸에 딱 맞다. 파란 옷이 아니라 파란 피부 같다. 한눈에 고급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급스러운 결혼식을 이제 막 마치고 나온 고급스러운 신랑 같다. 세상의 반을 들고 들어가 나머지 반마저 손에 넣고 나오는 왕자 같다. 기껏해야 30대 초반? 신앙심이 나이에 비례한다는 법은 없지만 목사가 젊다는 사실에 사내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초상화만 아니라면 목사일 거라고 짐작도 못 했을 것이다. 너무 어린 양치기다.

   목사님?

   사내가 젊은 남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젊은 남자가 사내 쪽을 돌아본다. 두 개의 초상화에 박제된, 사람 좋은 미소가 사내의 얼굴을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활짝 피어난다. 뭘 도와드릴까요? 이런 말을 건네는 미소다. 언젠가, 수백만 번의 설교 뒤 저 두 개의 초상화와 귀를 나란히 할 얼굴이다. 제대로 짚었다. 목사가 분명하다. 할아버지 목사와 아버지 목사의 뒤를 잇는 손자 목사다.

   무슨 일이십니까? 형제님?

   무슨 일이든 도와주겠다는 얼굴로 목사가 묻는다.

   사람을 찾습니다.

   사내는 곧장 용건을 꺼낸다.

   누구를 찾으십니까? 형제님?

   미소는 여전하다.

   사내는 잠시 주춤거리다 염소의 이름을 댄다. 하마터면 염소라고 대답할 뻔했다. 염소라는 별명 대신 입에 올리기 싫은 이름을 댄다. 혀가, 입이 더러워진다. 씻을 수 없는 죄악에 오염된다.

   염소의 이름이 목사의 눈꺼풀을 짤랑 흔든다. 염소를 아는 눈치다. 대충 이름만 아는 정도가 아니다. 기다렸다는 듯 칭찬을 늘어놓는다.

   믿음이 누구보다 크고 강한 분이시죠. 폐지를 주워 근근이 입에 풀칠하면서도 십일조를 한 번도 빠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봉사활동도 열심이셨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신 성자 같은 분이죠.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그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형제님.

   성자라니. 사내는 목사의 말이 수상쩍었다. 염소일 리가 없다. 사내가 찾는 것은 성자가 아니라 악마다. 말이 아니라 행동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염소는 행동뿐만 아니라 말로도 선량한 세상을 파괴했다.

   지금이 어떤 시국인데 신분증도 없이 돌아다녀? 신분증이 없으면 무조건 빨갱이야. 염소는 동생의 교련 바지 주머니에서 나온 담배와 주사위를 손에 쥐고 말했다. 염소도 주변의 군인들도 눈자위가 살의로 빨갛게 번뜩였다. 도청에 진을 쳤다던 얼룩무늬 군인들이 무엇 때문에 이 외진 마을까지 들이닥쳤을까? 소헌티 멕일 꼴을 베러 감서 신분증을 지참한다요? 저기 엎어지믄 코 닿을 데가 집인께 언능 학생증을 가져오면 되겄소? 군인들의 손에 들린, 착검한 무시무시한 M16이, 무지막한 몽둥이가 보이지도 않는지 동생은 또박또박 대꾸했다. 이 새끼 봐라. 저기가 네 집이면 여기는 내 똥간이다. 염소가 땅바닥에 찍, 침을 뱉으며 말했다. 곁에 있던 얼룩무늬들이 얼룩덜룩 웃었다.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어라. 동생도 물러서지 않았다. 너희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봐. 염소가 싸늘하게 말했다. 오매, 환장허겄네. 빨갱이가 아닌 사람이 빨갱이가 아니란 걸 우째 증명헌다요? 동생이 갑갑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주사위를 던져서 홀수면 빨갱이고 짝수면 아니야. 누가 먼저 할래? 염소가 주사위를 내밀며 말했다. 미친 소리. 새빨갛게 미친 소리. 새빨갛게 미친 흰소리. 저 사악한 말은 어느 지옥구덩이에서 기어 올라왔단 말인가. 무시무시하게 미친 무지막지한 억지가 무서워 사내는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리는 게 등뼈가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동생이 주사위를 받아들었을 때 사내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안 돼. 던지지 마. 사내는 미친 듯 소리쳤지만 입 밖으로는 아무 말도, 어떤 소리도 새나오지 않았다. 동생이 기어이 주사위를 던지고 말았다. 천진한 주사위가 빙글빙글 돌면서 5월의 파란 하늘로 솟구쳤다. 홀수면 빨갱이, 홀수면 빨갱이, 홀수면 빨갱이. 무서운 노래를 부르며 무심하게 솟구쳤다. 온 세상이 주사위를 주시했다. 주사위가 점박이별처럼 높이 날아올랐다 정점에서 잠시 멈춘 뒤 낙하를 시작했다. 빨갱이다, 아니다, 빨갱이다, 아니다. 주사위는 사악한 우연의 눈을 깜박이며 떨어졌다. 차마 눈을 뜨고 있을 수 없었다. 사내는 질끈 눈을 감았다.

   조용했다. 이가 시리도록, 뼈가 저리도록 조용했다. 사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주사위가 보이지 않았다. 얼룩무늬들은 똥 씹은 얼굴로 동생의 입만 쳐다봤다. 개새끼, 좆같은 새끼, 빨갱이 새끼, 삼켜? 그걸 삼켜? 차갑게 얼어붙었던 염소가 시뻘게진 얼굴로 시퍼렇게 날뛰었다. 농담이라고 여긴 걸까? 겁 대가리를 상실한 미친 웃는 동생은 새빨간 농담이라고 생각한 걸까? 염소가 불붙은 도화선처럼 씩씩거리며 동생의 배에 총검을 들이댔다. 동생의 배를 갈라 홀수인지 짝수인지 기어이 두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는 것처럼.

   동생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내는 몸을 날려 염소의 다리를 붙들었다. 성난 개머리판과 성난 몽둥이와 성난 군홧발이 머리와 어깨와 팔뚝으로 달려들었다. 눈앞에 불똥이 튀는가 싶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사내는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염소가 득달같이 동생을 쫓아갔다. 달려, 달려, 세상 끝까지 달려. 사내의 심장이 헐떡이며 소리쳤다. 동생이 풀썩 쓰러졌다. 안 돼. 넘어지면 안 돼. 달려. 어서 달려. 멈추면 뱃속의 폭탄이 터진단 말이야. 심장의 다급한 외침은 목구멍 안쪽에서만 웅성거렸다. 고통과 두려움의 고무마개가 목구멍을 꽉 틀어막아 숨을 쉴 수 없었다. 빨갱이, 개새끼 어쩌고저쩌고 하는 악에 받친 욕설이, 악에 받친 악의 악다구니가 귀를 때렸다. 부들부들 떨면서도 사내는 눈을 부릅뜨고 보았다. 저 멀리 논둑길에서 염소의 몽둥이가 동생의 머리를 깨고 어깨를 부수고 허리를 박살냈다. 수십 번의 겨울이 담금질한 박달나무 몽둥이가 파괴의 춤을 췄다. 대검이 살의를 번뜩이며 살육의 춤을 췄다. 사내는 목구멍을 틀어막은 두려움의 고무마개에 대고 외쳤다. 누가 좀 말려 줘요. 제발 누가 저 악마 좀 말려 줘요.

   어디 불편하세요? 형제님?

   목사의 목소리가 사내를 현재로 불러온다. 욕지기가 치민다. 30년 전의 기억 때문인지 염소에 대한 목사의 칭찬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토할 것 같다.

   괜찮습니다.

   안색이 안 좋으신데 정말 괜찮으신가요?

   목사가 친절한 의사처럼 묻는다.

   괜찮다. 동생이 억울하게 죽었지만 괜찮다. 아버지가 화병으로 세상을 떴지만 괜찮다. 여자가 집을 나갔지만 괜찮다. 아이가 별나지만 괜찮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괜찮다. 아이를 맡길 곳이 없지만 괜찮다. 복수를 위해 일을 쉬고 있지만 괜찮다. 복수를 끝내면 죽을 각오지만 괜찮다. 모든 게 괜찮지만 동생을 죽인 자가 달아나서 괜찮지 않다. 사내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괜찮지 않지만 완벽하게 괜찮은 것처럼 보이려고 노력한다. 추적이라는 목표에 집중하려고 애쓴다.

   요즘도 교회에 나옵니까?

   애석하게도 작년에 이사하셨습니다.

   어디로 갔는지 아십니까?

   염소의 행방을 캐는 사내의 목소리가 다급해진다.

   사내는 서울 근교의 도시와 마을 이름을 얻어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번지까지는 모른다고 말하고서 목사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계속 뵐 수 있으면 좋겠지만 멀리 가셨으니 어쩔 수 없죠. 그곳에서도 빛처럼 말씀하시고 소금처럼 행하시고 있을 겁니다.

   빛처럼 어쩌고 소금처럼 저쩌고? 들어서는 안 될 말, 말 같지 않은 말, 어둠처럼 눈멀고 설탕처럼 귀먹은 말에 사내는 속이 뒤집힌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분을 찾으세요? 형제님?

   사내는 황급히 자리를 뜬다.

   형제님, 형제님.

   목사의 부름을 뒤로 하고 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채 화장실로 달려간다. 변기에 머리를 박고 토한다. 분노의 고무마개를 밀고 올라온 증오의 소용돌이를 변기에 고인 물이 꿀꺽꿀꺽 삼킨다. 사내의 아침과 점심을 꾸역꾸역 삼킨다. 파란 신물과 노란 위액까지 아낌없이 삼킨다. 품속의 칼이 부들부들 떤다. 염소를 치켜세우는 눈멀고 귀먹은 목사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떤다. 사내가 떤다. 사내가 칼이다.

 

   사내는 빈 칼집처럼 축 늘어진 채 차로 돌아간다. 39시간짜리 자명종에게 돌아간다. 자명종은 차에 앉아 파브르 박사의 얼굴로 파브르 박사의 책을 파브르 박사의 목소리로 읽고 있다. 지겹지도 않은지 읽은 것을 또 읽는다. 읽을 때마다 처음처럼 눈을 반짝인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그새 30분이 지났다. 아이는 이제 38시간 30분짜리 자명종이다. 사내의 마음이 다급해진다. 한번 깨어나면 혼을 쑥 빼놓는 미친 자명종이 울어대기 전에 염소를 찾아야 한다. 꼭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꼭 그래야 할 것 같다. 애당초 이 가난한 복수의 길에 ‘필요’ 같은 것이 끼어들 자리는 없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뿐이다. 간절히 원한다면 입은 다물고 몸은 움직여야 한다.

   차도 가야 할 길을 간다. 입은 무겁게 다물고 몸은 가볍게 놀린다. 목사가 일러준 도시를 향해, 물러나는 해의 꽁무니를 물고 늘어진다. 그림자가 제법 길어졌다. 차는 제 그림자를 간발의 차로 쫓으며 달린다. 차가 아무리 달려도 간발의 차는 간발의 차로 잡히지 않는다.

   해는 작아지고 간발의 차는 커진다. 염소를 영영 찾지 못할까 봐 겁이 난다. 100에서 얼마나 멀어졌는지 가늠할 수 없다. 집을 태워 64까지? 홍수에 떠내려가 82까지? 나무에서 떨어져 78까지? 얼마나 밀려났는지 알 수 없지만 밀려났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발목에 힘을 줘 가속장치를 닦달한다. 잃어버린 시간과 거리를 만회해야 한다.

   차가 많아진다. 발목은 액셀보다 브레이크를 자주 찾는다. 퇴근하기에는 이른 시각인데 차는 점점 많아진다. 세상의 모든 차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 같다. 6의 눈이 나와도 모자랄 판에 자꾸 1의 눈이 나온다. 주사위를 부지런히 굴리지만 번번이 한 칸만 전진이다. 주사위는 애간장 태우는 애인처럼 감질나게 1의 눈만 보여주고 사내는 씩씩거리며 주사위를 던진다. 어김없이 한 번에 한 칸씩. 동대문, 종로5가, 종로4가, 종로3가, 종로2가, 종각.

   사내는 라디오를 켜고 교통방송에 귀 기울인다. 올림픽대로 정체, 강변도로 정체, 동부간선도로 정체, 내부순환도로 정체, 정체, 정체. 정체 모를 정체가 전염병처럼 도시 전체로 번진다. 결국 신촌로터리에서 일찌감치 튀어나온 러시아워에 덜미를 잡히고 만다. 주사위를 던질 기회조차 드문드문해진다.

   주사위. 동생이 삼킨 주사위. 홀수의 눈이 나오면 빨갱이가 되는 주사위를 삼킨 동생은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부서지고 폐가 찢어지고 대장이 파열된 채 병원으로 실려 갔다. 머리를 꿰매고 폐를 꿰매고 대장을 꿰매야 했다. 수술실로 실려 가면서 동생은 사내의 손을 붙들고 말했다. 무서워. 무서워, 성. 겁 대가리를 상실한 미친 동생이 무섭다고 했다. 이제까지 무서움을 무서워하지 않아서 무서운 벌이라도 받을까 봐 무서워하는 것처럼 무서워했다. 난생처음 무서워할 때조차 동생은 웃고 있었다. 사실 웃는 것은 동생이 아니라 동생의 얼굴이었다. 눈썹이 둥글게 휘어지고 눈초리는 슬쩍 처지고 입 꼬리는 살짝 올라가 웃는 것처럼 보이는 얼굴. 동생의 웃음이 두려움의 매끈한 표면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졌다. 기름방울처럼 빙글거리는 웃음 밑에서 동생이 무서움에 떨며 고인 물처럼 울었다.

   수술실에서 살아나온 동생은 마취가 풀리자 주사위 똥을 눴다. 동생은 똥구멍에서 나온 주사위를 머리맡 서랍에 넣어 두었다. 주사위가 자신을 지켜주기라도 할 것처럼. 주사위가 동생의 낮을 지켜줬는지는 몰라도 밤은 지켜주지 못했다. 지켜주기는커녕 들쑤셨다. 소매치기를 하다 감옥에 갔다며, 살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다 물에 빠졌다며, 철길에서 놀다 기차에 치었다며 새벽마다 울먹였다. 꿈이라고, 꿈에서 주사위놀이판의 그림을 본 것일 뿐이라고 다독여도 꿈밖에서 진짜 죄를 저지른 것처럼 울먹였다. 그런 죄를 짓지 않았다면 머리가 깨지고 어깨가 부서지고 폐가 찢어지고 대장이 파열되는 불행을 납득할 수 없다는 듯 울먹였다. 그랬다. 동생이 삼킨 주사위가 동생을 삼킨 것이다. 동생이 악몽을 호소할 때마다 사내는 서랍을 열어 주사위가 그대로 있는지 확인했다. 주사위가 보이지 않았다면 동생의 관자놀이에 총알처럼 박혀버렸다고 믿었을 것이다.

   동생의 입에서 주사위라는 말이 튀어나올 때마다, 주사위를 볼 때마다 사내는 미안하다고, 먼저 주사위를 던지게 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을 뱉으면 동생이 죽을 것 같았다. 미안하다는 말이 동생을 죽일 것 같았다. 동생이 중환자실에서 여름을 버티다 영영 눈 감을 때까지도 그 말을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 무서워. 무서워, 성. 동생이 눈 감기 직전 두려움에 떨 때조차도. 동생이 죽은 뒤에야 사내는 미안하다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미안하다는 말을 아껴서 동생이 서둘러 간 것 같았다. 주사위를 관에 넣지 않은 것은 동생의 영원한 밤을 지켜주기 위해서였다. 주사위 던지는 꿈을 더 이상 꾸지 않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주사위를 던져야 할 사람은, 목숨을 걸고 주사위를 던져야 할 사람은 따로 있다.

   러시아워의 덫에 갇혀 어쩌다 한 칸 전진한다. 차가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워라는 덫이 한 칸씩 나아간다. 동교동, 서교동, 합정동. 감질나다. 차가 몸을 배배 꼰다. 아이도 몸을 배배 꼰다. 이미 반쯤 꽈배기가 되었다. 파브르 박사도 어쩌지 못한다. 양화대교 위에서 아이는 완전히 꽈배기가 된다. 다리 건너서도 주사위를 굴릴 기회는 어쩌다 찾아오고 그나마 매번 한 칸씩이다. 양평동에서 꽈배기가 폭발하고 만다.

   답답해.

   아이가 머리를 앞뒤로 흔든다.

   조금만 참아.

   집에 갈래.

   아이가 머리를 앞뒤로 빠르게 흔든다. 머리를 앞뒤로 빠르게 흔들면서 파란 토끼로 변신한다.

   사내는 아껴 둔 비장의 카드를 꺼낸다. 바지 주머니에서 캐러멜을 꺼내 아이의 눈앞에 좌우로 흔든다. 앞뒤로 흔들리던 아이의 머리가 멈춘다. 아이의 손이 캐러멜을 낚아챈다. 껍질을 까고 노란 마약을 입에 넣는다. 아이의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에 노란 천국이 내려앉는다. 아이가 잠잠해진다.

   착한 일을 하자 하늘이 고속도로를 덥석 안겨 준다. 고속도로와 절친한 인터체인지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120번 고속도로에 올라탄다. 간만에 나타난 고속도로를 붙들고 올라간다. 올라갈 수 있는 데까지 최대한 올라갈 것이다. 퇴근길 미등의 빨간 홍수는 이 도로까지 집어삼키고 있지만 사내는 한숨 돌린다. 고속도로에서는 로터리도, 오거리도, 사거리도, 삼거리도, 갈림길도, 유턴도, 비보호 좌회전도, 요령껏 우회전도, 경적도, 오토바이도, 스쿠터도, 자전거도 없다. 오직 바퀴 넷 달린 기름통의 전진을 위한 직선과 곡선뿐이다. 한번 발 들이면 돌이킬 수 없지만 돌이킬 수 없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 이랬다면 어땠을까, 저랬다면 어땠을까 하는 소모적인 저울질과 담을 쌓을 수 있다. 가다서다가지만 어쨌거나 간다. 주사위를 던질 필요가 없어서 속편하다. 이 고속도로만 따라가면 염소가 달아난 도시가 나타날 것이다. 문제는 시간이다. 염소가 낌새를 채고 달아날 시간을 줘서는 안 된다.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줬다. 사내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새로운 도시 이름을 수중에 넣은 지 2시간이나 지났다. 자명종이 울기까지는 36시간 30분밖에 안 남았다.

   한 시간 17분을 더 바친 뒤에야 고속도로에서 내려온다. 아이는 이제 35시간 13분짜리 자명종이다. 목사가 일러준 도시는 고속도로의 아래쪽에 웅크리고 있다. 인터체인지의 안내를 받아 아래로 내려간다. 인터체인지의 구부러진 병목에서 빠져나오자마자 길가에 차를 대고 지도를 펼친다. 사내는 길눈이 어둡다. 고물차의 골골대는 뼈와 혈관과 심장을 손보느라 내비게이션은 엄두도 못 냈다. 목사가 일러준 동네 역시 도시의 아래쪽에 도사리고 있다고 지도가 알려준다. 지도를 덮고 출발한다. 이 낯선 도시는 여름 낮의 마지막 열기로 하얗게 구워지고 있다. 어디선가 고무 타는 냄새가 나고 아이는 마지막 캐러멜의 껍질을 벗기고 있다.

   목사가 일러준 동네가 표지판에 나타나기 시작하자 사내는 안도한다. 표지판에 귀 기울이며 핸들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삼정동, 심곡동, 두 칸을 전진해 마침내 목사가 일러준 동네 표지판 아래 선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염소가 듣고 달아날까 봐 겁난다. 흥분하기에는 이르다고,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아니라고 마음을 다잡으려 애쓴다.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한다.

   사내는 주사위놀이판을 떠올린다. 맨 윗줄에는 뱀이 우글거린다. 불장난 뱀, 벌목 뱀, 나무타기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다. 신중해야 한다. 주사위를 던져 홀수의 눈이 나오면 뱀이다. 홀수면 영락없이 뱀이다. 홀수면 빨갱이. 염소의 목소리가 귓불을 채찍질한다. 홀수면 빨갱이라고 으름장 놓던 가늘고 쉰 목소리가 이번에는 홀수면 뱀이라고 겁박한다. 주사위가 식은땀에 젖는다. 염소의 주소는 미완성이라고 아직은 너의 시간이 아니라고 식은땀 흘리는 주사위를 다독인다. 눈치를 보던 위가 손과 발에게 속삭인다. 이브를 꾀는 뱀처럼 일단 먹으라고 달콤하게 속삭인다.

   김밥천국에서 김밥과 어묵과 라면을 주문한다. 아이는 과학자의 얼굴로 김밥을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젓가락으로 시금치를 쏙 빼낸다. 어묵 국물에서는 고추를 건져내고 라면에서는 파를 집어낸다. 공교롭게도 모두 파란색이다. 파란색이 천국에서 추방된다. 회색만 가리는 줄 알았더니 파란색도 싫어한다. 파란색도 안 먹는다.

   편식을 타박하는 지청구가 혀끝에서 맴돌다 목구멍으로 기어 들어간다. 이제 파란색이라면 사내도 질색이다. 그래도 먹기는 한다. 시금치와 고추와 파가 사내의 목울대를 들썩인다. 시금치와 고추와 파의 파란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분별하게 된다. 사내는 시금치와 고추와 파의 파란 천국에서 추방된다. 파란 천국의 파란 주인이 시퍼렇게 말한다. 너는 일생 고통 속에서 땅을 부쳐 먹으리라.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땀을 흘려야 주림을 면하리라.

   김밥과 어묵과 라면을 먹으며 사내는 땀범벅이 된다. 아이는 땀을 흘리지 않는다. 아이의 몸은 얼음 창고를 품고 있는 것처럼 땀 한 방울 허락하지 않는다. 아이는 새끼 냉장고다. 아이의 피부는 새하얗고(사내는 까무잡잡하다!) 반질반질해서(사내는 거칠다!) 작은 항아리 같다.(여자가 그런 것처럼!) 사내는 아이가 자신과 다르다는 사실에 먼지처럼 가벼워져 천국에서 나온다.

   천국을 나서자 파란 불꽃 같은 어둠이 땅에서 솟구친다. 땅 밑에서 큰물처럼 밀고 올라오는 파란 불꽃 어둠에 여름 하늘이 보랏빛으로 질린다. 성마른 가로등 몇이 스스로의 조급함에 얼굴을 붉히며 엉거주춤 서 있다. 스카이라인 너머에서 어둠이 밝아 오고 있다. 낯선 길 위에서는 겨울의 아침보다 여름의 밤이 더 갑작스럽다. 어머니는 말했지. 등뼈 누일 곳은 캄캄해지기 전에 마련해야 한다고.

   사내는 오늘의 등뼈 누일 곳을 물색한다. 톰슨가젤의 본능이 역 쪽으로 가라고, 익명의 가시덤불과 번잡의 엉겅퀴 밑에 숨으라고 귀띔한다. 숨어 있다 옆구리를 노리라고, 사자를 쫓는 톰슨가젤처럼 말한다. 쫓는 자는 잘 숨어야 한다. 머리카락도 냄새도 잘 감춰야 한다. 바람을 안고 숨어야 한다. 계획의 동선 바깥에서 쫓기는 자와 마주치면 안 된다. 쫓는 자는 쫓기는 자와 마주칠 때 위험에 빠진다.

   역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도시의 밑바닥으로 내려간다. 역 주변은 허름하고 번잡하다. 커피, 술, 커피, 술, 커피, 술을 지나 여관 골목에 들어선다. 낮고 낡은 여관들이 카페인과 알코올의 궁둥이를 향해 헤픈 주둥이를 내밀고 있다. 사내는 장미가 그려진 입간판을 고른다. 가시덤불 속에, 가시덤불의 맨 꼭대기 층에 숨는다.

   은신처를 확보하자마자 사내는 씻는다. 추격자의 냄새를 없앤다. 씻으라고 욕실에 들여보낸 아이는 이곳의 물을 연구한다. 사내는 아이가 이 도시의 물을 분석하도록 내버려둔다. 염소의 코는 아이의 냄새를 모르니 괜찮을 것이다. 사내는 아이를 위해 거미집을 다시 세운다. 물에 대한 연구를 끝낸 아이는 거미집으로 쏙 들어간다. 거미집에 들어앉아 낡은 텔레비전 속의 새 야구를 본다. 사내도 낡은 침대에 누워 새 야구를 본다. 호랑이의 야구는 아직 군산에 머물고 있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저 도시에 있었는데 먼 옛날처럼 아득하다. 저 도시에서의 하룻밤이 꿈속의 일 같다. 오늘의 상대도 사자다. 초반부터 사자에게 물려 6점 차로 끌려간다. 8회 말이 끝나자 사내는 낡은 냉장고에서 새 맥주를 꺼내들고 거미집을 향해 말한다.

   바람 쐬고, 아니, 옥상에 올라갔다 올게.

   거미집은 반응이 없다.

   사내는 여관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9회가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도시의 불빛이 기름을 먹인 것처럼 번들거린다. 공기는 무겁고 눅눅하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 쪽에서 불어오는지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십자가, 기차, 십자가, 먹구름, 십자가. 여관의 옥상은 십자가의 덤불 속에 들어앉아 있다. 떠나온 집, 영구임대아파트 옥상 같다. 아주 멀리 떠나왔는데 고작 같은 옥상이다.

   물구나무 선 아버지의 외침이 어깨를 짓누른다. 네 동생은 어디 있느냐? 지상의 아버지, 주정뱅이 하느님은 귀에서 술 냄새를 풍기며 소리치곤 했다. 니 동상이 흘린 피가 땅바닥에서 시방 울부짖고 있당께. 니 동상의 피를 거시기하기 전까지 땅은 수확을 내주지 않을 것이여. 술주정이 아니라 진담이었다. 아버지는 얼마 안 되는 땅뙈기를 처분하고 법원 앞에 담배 가게를 열었다. 어머니가 동생의 억울함을 부처님께 호소했다면 아버지는 법에 호소했다. M16에는 부처가 아니라 법, 대검에도 부처가 아니라 법, 박달나무 몽둥이에도 부처가 아니라 법.

   아버지는 동생의 장례 때 입었던 검은 양복, 흰 와이셔츠, 검은 넥타이 차림으로 법원에 드나들었다. 매일 매일이 장례식이었지만 넥타이 차림으로 출근하는 아버지를 갖고 싶다던 동생의 소원은 이루어진 셈이다. 새벽같이 담배 냄새를 풍기며 출근한 아버지는 밤늦게 술 냄새를 풍기며 돌아와 격무에 시달린 샐러리맨처럼 우울한 얼굴로 울분을 터뜨리곤 했다. 직장 상사를 욕하듯 법의 위선을 개탄했다. 정의사회 구현은 염병! 저기는 정의의 전당이 아니라 푸줏간이여!

   법원에 출근하는 날은 그나마 나았다. 법원이 쉬는 날이면 새벽부터 술 냄새를 풍기며 주정뱅이 하느님처럼 소리쳤다. 종배야, 니 동상은 어딨다냐? 사내는 카인처럼 항변했다. 몰러라. 나가 동상을 지키는 사람이다요? 주정뱅이 하느님이 노발대발했다. 니 동상은 어딨냐고? 사내는 먼지처럼 소리 없이 외친다. 오매 아부지, 나는 동상을 안 죽였어라, 나는 동생을 안 죽였단 말이오. 나도 죽은 목숨이오. 아부지가 거시기 사망진단선가 확인선가 하는 종이쪼가리에 실수로 내 이름을 올렸을 때 나도 죽었당께. 동상 곁으로 가부렀당께. 그것도 모자라 아부지는 술에 찌든 밤마다 왜 동상이 아니라 나가 살아 있냐는 눈빛으로 나를 죽여부렀소. 아부지, 아부지가 나를 죽였소. 오매 하느님 아부지. 나가 뱃속에 회충이 들어앉은 것맹키로 시멘트 냄새를 킁킁대며 떠돌게 된 것도 전부 아부지 때문이오. 떠도는 신세가 된 나를 만나는 놈마다 죽이려 달려드는 것도 아부지 때문이오. 그라요, 아부지. 나가 동상을 죽였어라. 나가 생때같은 동상을 죽였당께라. 그러지 않고서야 인생이 이러코롬 거시기헐 수 있것소.

   사내의 메마른 외침에 하늘은 벼락과 천둥이라는 대답을 들려준다. 비가 쏟아진다. 하늘의 창문들이 열리고 비가 장대처럼 쏟아진다. 모든 죄악의 살덩이를 쓸어버릴 기세로 쏟아진다. 무지개는,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지 않겠다는 하느님의 약조의 징표는 어디 있나? 무지개도 없이 무시무시한 비가 쏟아진다.

 

   여름밤을 두들기는 여름비는 사내의 조바심도 두들긴다. 이 모진 비가 실낱 갈은 염소의 흔적을 지워버리면 어쩌나 하는 근심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거세게 흘러내리는 비의 급류 속에서 염소의 흔적을 붙드느라 눈을 붙이지 못한다. 빗소리 위에 누워 있는 기분이다. 밤새 빗소리 위에서 뒤척인다. 새벽에 비가 그치고 나서야 늦은 잠에 빠져든다.

   늦은 잠이 꿈을 꾼다. 꿈의 뭉글뭉글한 반석 위로 구름이 오글오글 몰려들고 몰려든 구름 사이로 무지개가 뜬다. 사내는 무지개 위에서 미끄럼을 탄다. 무지개 위에서 아래로 미끄러진다. 꿈이라는 사실이 빤한 꿈이지만 브레이크가 작살난 차에 앉아 고갯길을 미끄러지는 것처럼 무섭다. 미끄러지는 것이 무서운 게 아니라 미끄러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한다는 것이 무섭다. 어렸을 때는 비료 포대를 깔고 눈 비탈을 총알처럼 내려올 때도 즐거웠지만 비료 포대를 메고 올라갈 때가 더 좋았다. 소풍 가방을 과자로 채울 때처럼. 그래서 맛난 과자를 아껴먹는 것처럼 천천히 올라갔다. 하지만 동생은 숙제를 해치우듯 단박에 올라갔다. 소풍 때도 짐을 줄여야 한다며 소풍 전날 과자를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한 배에서 나왔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동생은 뭐든 달랐다. 사내는 무지개에서 계속 미끄러진다. 땅 끝까지 내려가는 무지개다. 내려갈수록 가벼워진다. 소풍의 아침을 향해 올라가는 동생의 소풍 가방처럼 가벼워진다. 미끄러지다 눈을 뜬다. 꿈과 현실 사이에 걸쳐진 무지개 빛깔 병목에 낀 채 사내는 간밤의 꿈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다. 어떤 꿈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꿈이 아닌지는 알겠다. 이것은 키가 크는 꿈이 아니다.

   배고파.

   아이의 허기가 밥을 달라고 사내의 눈꺼풀을 흔든다. 사내는 허우적대다 구름 침대 아래로 떨어진다. 아이의 입 꼬리가 살금살금 올라가며 웃음 비슷한 것을 만들어낸다. 고양이 웃음이다. 야옹이 웃음이든 뭐든 아이가 웃음 근처까지 간 것은 처음 본다. 아이도 웃을 줄 안다. 웃음 비슷한 것을 보여줄 수 있다. 동생의 웃음을 닮은 웃음이다. 웃는 모양이 동생을 닮았다. 웃을 때 아이는 동생을 닮는다. 동생이 웃는 모습을 한 번만 더 보고 싶다. 하지만 동생은 이제 영영 웃지 못하고 동생을 닮은 아이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동생의 웃음을 닮은 아이의 웃음 때문에 초조해진다. 꾸물거릴 때가 아니라고 동생이 나무라며 웃는 것 같다. 사내는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손목시계를 찾는다. 침대 맡 탁자에 올려 두었는데 보이지 않는다. 있어야 할 곳에 있어야 할 것이 없어서 당황스럽다. 몸이 차갑게 식는다. 허둥거리며 주위를 둘러본다. 손목시계는 아이의 팔뚝에 걸려 있다.

   그걸 왜 차고 있어?

   아빠가 바람 쐬러 갈까 봐.

   아이가 거미집을 지키는 거미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거미에게 말한다. 아이는 거미에게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바람 쐬러 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불하고서야 사내는 손목시계를 되찾는다. 자명종은 이제 23시간 37분 남았다. 거의 하루. 오늘 내로 염소를 찾아야 한다.

 

   《문장웹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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