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제5회)

 

장편연재_제5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사내는 입안에 남은 인삼 맛을 몰아내기 위해 침을 삼킨다. 침을 뱉을 수는 없다. 침을 뱉는 것은 나쁜 행동이다. 정직한 사람이, 소심하고 정직한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사내는 침이 바닥날 때까지 삼킨다. 침을 삼키면서 저 멀리 파란 들판이 더 파란 산과 만나는 곳에 거대한 원반처럼 떠 있는 야구장에 집중한다. 야구장은 땅에서 솟아난 것 같기도 하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기도 하다. 어느 한쪽이라면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다. 외계인들의 우주선 같다. 조명탑은 날개다. 착륙을 위해 날개를 접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날개를 펼치고 수백 개의 알전구를 팡팡 터뜨리며 순식간에 하늘 너머로 사라질지 모른다. 밑도 끝도 없는 우주적 공상이 인삼 맛 독을 목구멍 너머로 밀어낸다.

   야구에 관한 우주적 공상이라는 해독제에 사내는 더 매달린다. 인삼 맛 독은 강렬해서 해독제도 세야 된다. 야구장이 우주선이라면 야구라는 기이한 경기는 외계인들의 스포츠가 아닐까? 외계인들이 지구에 전해 준 스포츠가 아닐까? 아니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런 텔레비전 영화를 봤다. 우연히 지구에 온 외계인이 야구시합을 보고 반해서 지구인 행세를 하며 야구선수로 뛴다. 그러다가 최초의 흑인 메이저리거가 된다. 그런데 왜 흑인이었지? 외계인은 까만가? 최초의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생겨났다던데 정말 인간은 외계인의 후손인가? 그렇다면 하느님은? 하느님은 검은 하느님인가? 사내의 공상이 진화론과 창조론의 교차로에서 두리번거리는 사이 야구장이 눈앞에 바투서 있다.

   주차장은 빈자리가 드물다. 사내는 주차장을 빙빙 돌다 겨우 차를 세운다. 매표소를 향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사내는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다. 시합은 한 시간도 더 남았는데 줄이 엄청나다. 불길한 예감이 콧잔등을 집어 쭈글쭈글 주름을 만든다. 야구의 도시를 너무 만만하게 본 것일까?

   표 사올 테니까 차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

   아이는 줄의 꼬리를 굳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괜찮아. 아직은 표가 있을 거야.

   사내는 힘없이 중얼거린다.

   끝없는 줄의 끄트머리에서 사내는 쫓기는 기분에 사로잡힌다. 야구, 외계인 어쩌고저쩌고 하는 미친 구덩이에 머리를 들이민 동안 겨우 잊고 있던 불안에 빠져든다. 이상하다.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하는데도 쫓기는 기분이다. 표가 동났을지 모른다. 동났을 것이다. 동난 게 분명하다. 사내는 두려움에 휩싸인다. 표가 동날까 봐 무섭다. 표가 동나 아이와 야구를 볼 수 없을까 봐 무섭다. 야구를 볼 수 없게 되어 아이가 파란 토끼로 변할까 봐 무섭다. 야구장이 무섭다. 야구장을 무서워하자 무서운 야구장이 바짝 다가온다. 먹잇감의 빈틈을 발견한 사자처럼 달려든다. 무섭게 달려든다. 무서운 야구장이 점점 빨리 다가온다. 갈기를 휘날리며 달려든다. 야구장이 우뚝 멈춘다. 야구장이 꿈쩍도 않는다. 사람들이 술렁인다. 매진이라는 무서운 소문이 들려온다. 줄이 무너지고 사람들이 매표소에 달라붙는다. 난파하는 줄을 버리고 매표소라는 구명정에 뛰어든다. 사내도 떠밀리듯 매표소 앞으로 달려간다. 구명정은 만원이다. 매표소는 매진이다. 야구장은 매진이다. 야구는 매진이다. 사내의 표정도 매진이다. 표정이 동났다. 어떤 표정도 남아 있지 않다. 쫓기는 표정도, 무서워하는 표정도 남아 있지 않다. 불길한 예감이 맞아떨어져 홀가분한 것 같기도 하지만 확신하기에는 입 꼬리의 선이 희미하다.

   사내는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선다. 야구장에서, 야구에서 멀어진다. 우주선에서, 외계인의 공놀이에서 멀어진다. 주차장으로, 봉고로, 아이에게, 납 같은 현실로 돌아간다. 아이는 납처럼 고요하고 무겁게 졸고 있다. 의자와 차문이 만나는 작고 오목하고 딱딱한 구석에 웅크린 채 졸고 있다. 다행이다. 매진이라는 비보를 당장 전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다. 파란 토끼를 깨우지 않아서 다행이다. 구석에서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파란 토끼와 야구장이라니! 꿈이 컸다. 그래도 다행이다. 아이와 갈 곳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아이와 갈 야구장이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사내는 조심조심 차에 올라탄다. 차 도둑처럼 살금살금 시동을 건다. 죽었던 엔진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아이가 번쩍 눈을 뜬다. 저 조악한 구멍에 꽂힌 투박한 열쇠가 아이의 엔진을 건드리기라도 한 것처럼. 사내는 차 도둑처럼 급히 속도를 올리며 출발한다. 아이는 눈꺼풀 안쪽까지 딸려온 잠의 어둡고 무거운 핵에 눌려 있다. 아이의 볼에 잠의 낙인이 손잡이 모양으로 찍혀 있어, 음각된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아이의 백일몽이 쏟아져 나올 것 같다. 사내는 아이의 정신이 이쪽으로 온전히 건너오기 전에 도로 위에 올라선다. 야구장에서 빠져나온다. 야구장의 매진에서 발을 뺀다.

   야구는?

   아이의 목소리에서 부석부석 쇳조각이 떨어진다. 아이의 잠은 쇠의 꿈을 꿨나 보다.

   사내는 마른침을 삼켜 조여드는 목구멍을 벌린다.

   표가 다 팔렸어. 켄터키에서 더 빨리 나왔어야 했는데.

   사내의 목소리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는다. 켄터키라는 지푸라기에 매달린다. 사내의 자신 없는 목소리는 모든 책임을 켄터키에게 돌린다. 이게 다 염병할 켄터키 때문이다.

   사내는 파란 토끼가 깨어날까 봐 조마조마하지만 아이는 의외로 잠잠하다. 반응이 없다. 아이의 정신은 아직도 켄터키에? 은퇴한 하느님처럼 웃는 켄터키 영감이 나오는 꿈을? 아이의 눈빛은 노리끼리하다. 파란 토끼는 얼씬도 않는다. 그래서 사내는 불안하다. 함정과 계략이 숨어 있는 것 같다. 아이는 계속 잠잠하다. 함정과 계략의 기미는 없다. 함정과 계략은 사내가 꾸미고 있다. 아이는 용궁에 끌려가는 토끼다. 아무것도 모르는 토끼다.

   야구는 테레비로 보자. 에어컨 빵빵 틀어 놓고 짜장면 먹으면서 벽걸이 테레비로 보는 거야.

   아이는 여전히 대꾸가 없다. 표정도 없다. 감정도 매진된 것 같다. 파란 토끼보다 더 무섭다. 사실 파란 토끼는 귀찮고 짜증스럽지만 무섭지는 않다. 진짜 무서운 것은 파란 토끼를 구경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럴 때면 아이가 진짜 무섭다. 아이가 죽은 것 같아 무섭다. 저 아이는 어미 뱃속에서 나왔을 때도 저 표정이었지. 울지도 않았어. 숨도 안 쉬는 것 같았지. 엉덩이를 찰싹 때려도 울지 않았어. 벙어리인 줄 알았지 뭐야. 무섭도록 조용했지. 무시무시하게 조용했어. 번지수가 틀린 짬뽕처럼 빨갛게 불어터진 채.

   사내는 묵묵히 차를 몬다. 어디로 가야 할지는 이미 아이에게 말했다. 즉흥적인 말이었지만 어쩐지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계획처럼 느껴진다. 사내는 빵빵한 에어컨과 벽걸이 텔레비전을 찾아 달린다. 26번 도로에 올라타 도시를 대각선으로 꿰뚫는다. 시청을 지나 시외버스터미널까지 내달린다. 빵빵한 에어컨과 벽걸이 텔레비전을 찾아 시외버스터미널로 향한다. 과연 시외버스터미널 근처에는 번듯한 숙박시설이 즐비하다. 현수막을 내건 곳도 있다. 전 객실 42인치 벽걸이 텔레비전 설치. 남아공월드컵은 연인과 함께 시원하고 쾌적한 용궁장에서.

   사내는 만국기로 치장된 용궁장 주차장에 차를 댄다. 차에서 내려 뒷문을 열고 갈아입을 옷가지와 세면도구가 담긴 배낭을 집어 든다. 아이가 놀이용 텐트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안 돼.

   사내가 단호하게 말한다.

   아이는 놀이용 텐트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안 된다고 했지. 넌 달팽이가 아니야.

   그래도 아이는 놀이용 텐트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사내는 한숨을 쉬며 마지못해 아이의 집을 꺼낸다.

   거미인간 가방을 멘 아이와 거미인간이 그려진 아이의 집을 데리고 사내는 카운터로 간다. 카운터를 지키는 노파의 눈이 커다랗고 두툼한 뿔테 안경 너머에서 휘둥그레진다.

   전쟁이라도 터졌소?

   노파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소리친다. 하지만 사내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다. 지난 30년 내내 사내는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방 하나 주세요. 맨 꼭대기 층으로.

   몇 층?

   노파가 소리친다.

   꼭대기 층이요.

   사내도 소리친다.

 

   방은 용궁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꾸며졌다. 새로 바른 파란 벽지에는 노란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고 새하얀 침대와 욕조는 조가비 모양이다. 에어컨과 텔레비전과 냉장고도 새것 특유의 새침한 냄새를 풍기고 있다. 팀원들과 묵던 누리끼리하고 퀴퀴하고 삐걱거리던 여관방에 비할 바가 아니다. 천국이 따로 없다. 바다 속 천국, 용궁이다.

   사내는 에어컨과 텔레비전을 켠다. 에어컨은 조용하면서 차갑고 텔레비전은 크고 선명하다. 아이에게 큰소리 친 대로다. 사내는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아이를 돌아본다. 아이는 표정이 없고 말이 없고 생기가 없고 의욕이 없고 감정이 없다. 길을 잃은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거릴 뿐 방과 어울리지 않는다. 낯을 가린다. 방과 내외한다. 구석을 찾는다. 아이는 여전히 죽어 있다. 용궁에 끌려온 토끼다.

   사내는 스파이더맨 텐트를 조가비 모양의 침대 옆에 세운다. 출입문이 벽에 걸린 텔레비전을 향하도록 세운다. 달팽이처럼 집을 짊어지고 다니겠다고? 미친 소리. 아이에게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재주가 있다. 똥오줌을 가릴 때까지도 말을 못 해 진짜 벙어리인 줄 알았는데, 죽은 입인 줄 알았는데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미친 입이었다. 꾸바. 입이 트인 아이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이다.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안담, 까부, 뚜므, 우파. 아이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는 미친 토끼달팽이다. 토끼달팽이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다. 사내가 알아들을 수 있었던 최초의 토끼달팽이 행성의 말은 할맘마였다. 아이는 어머니의 죽은 젖을 파랗게 빨다가 빨간 얼굴로 울며 소리쳤다. 할맘마, 할맘마, 할맘마.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 달팽이집 속으로 쏙 들어간다. 달팽이집에서 매미, 메뚜기, 사마귀, 잠자리, 거미, 장수하늘소, 개똥벌레, 무당벌레, 딱정벌레가 차례로 튀어나와 입구를 막아선다. 사내는 한숨을 쉬며 욕실에 들어간다.

   입이 많은 샤워기 밑에서 사내는 생각이 많아진다. 전쟁이라도 터졌소? 카운터 노파의 재미없는 농담이 샤워기에서 쏟아져 사내의 정수리를 때린다. 사내는 전쟁을 피해 온 게 아니라 전쟁을 시작하러 가는 길이다. 전쟁을 끝장내러 가는 길이다. 30년 전에 시작된 전쟁에 종지부를 찍으러 가는 길이다. 거미집을 짊어진 채. 공자는 복수의 길을 떠나는 사람은 무덤을 두 개 준비해야 한다고 했는데 사내가 준비한 무덤은 칼과 청산가리 두 개뿐이다. 세 개의 무덤을 짊어지고 복수의 길을 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두 개의 무덤과 한 개의 집을 짊어지고 복수의 길을 갈 수는 없다.

   미지근한 물이 복잡하고 착잡한 두피를 씻는다. 미지근한 물이 몇 줌의 체온을 수챗구멍에 내다버린다. 체온을 덜어낸 덕에 사내는 차갑고 단단해진 채 욕실에서 나온다.

   아이는 달팽이집에 들어앉아 배를 바닥에 깔고 엎드린 채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눈을 빛내며 동물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아이가 살아났다. 최신형 텔레비전이 아이를 살려냈다. 사내는 침대에 모로 누워 텔레비전을 본다. 사자가 톰슨가젤을 쫓고 있다. 톰슨가젤은 지그재로로 달아난다. 쫓는 쪽도 쫓기는 쪽도 필사적이다. 다행히 쫓기는 쪽이 더 필사적이었다. 톰슨가젤은 간발의 차로 사자의 이빨을 피한다. 사자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멀리 달아나는 톰슨가젤의 꽁무니를 씁쓸하게 지켜본다. 사내는 안도한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은 어떤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아 서늘하다. 냉정한 관찰자의 얼굴이다. 사내는 놀란다. 당연히 같은 편일 거라 생각했는데 어쩌면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 때문에. 아이가 건널 수 없는 금 너머에 있는 것 같다.

   야구가 시작되고 호랑이가 사자에 맞서자 그런 기분은 희미해진다. 아이도 호랑이를 응원한다. 아빠와 아빠의 아빠가 응원한 호랑이를 응원한다. 응원은 유전이다. 아이는 여전히 달팽이집에 웅크리고 있지만 금 이쪽, 사내의 편에 있다. 배달된 자장면과 탕수육의 달콤한 냄새도 아이와 한편이라는 믿음에 한 몫 한다.

   야구는 난타전이다. 호랑이의 타자도 사자의 타자도 잘 친다. 타자들의 방망이는 대담하고 확고하지만 타자들의 공은 조마조마하고 우유부단하다. 점수를 주고받는다. 주고받는 점수가 쌓여 간다. 스코어보드에 짝을 맞춰 새겨지는 숫자가 사내의 가슴을 거품처럼 꽉 채운다. 호랑이와 사자는 7점을 주고받은 뒤 마지막 이닝을 맞는다. 사내는 슬그머니 방에서 나온다. 야구에서 빠져나온다. 언제부턴가 사내의 야구는 8회까지다. 사내의 야구에 9회는 없다. 9회는 차마 볼 수 없다.

   바람 좀 쐬고 올게.

   사내는 양복 상의를 챙겨들며 달팽이집을 향해 말한다. 아이는 여전히 야구 안에 있다. 달팽이집 속의 야구 안에 있다. 사내의 목소리는 달팽이집 속의 야구 안에 있는 아이의 귀 속 달팽이관에 닿지 못한다. 아이의 눈과 귀는 토끼달팽이 행성의 메시지를 수신하느라 여념이 없다.

   복도로 나와 객실 문을 닫으며 사내는 호수를 확인한다. 카운터로 내려가며 양복 상의 안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낸다. 명함 크기로 접힌 쪽지를 펼친다. 쪽지에는 주소가 적혀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주소다. 사내는 쪽지를 뒤집는다. 군산시 중앙동의 주소다. 4년 동안 장롱 바닥에 처박혀 있던 장롱 주소다. 한 달 품삯의 반을 지불하고 손에 넣은 비싼 주소다.

   카운터는 이제 큼지막한 뿔테 안경을 쓴 뽀글뽀글 파마 머리의 중년 여성이 지키고 있다. 휴대폰으로 통화 중이다. 사내는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통화는 좀체 끝나지 않는다. 미용사의 가위질 솜씨부터 개업기념으로 내놓은 시루떡의 맛까지, 새로 문을 연 미용실에 대한 꼼꼼한 품평의 수다를 늘어놓는다. 소시 적에 미용 기술도 배웠단다.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말을 끊고 용건을 묻는다.

   뭔 일이다요?

   사내는 쪽지에 적힌 주소를 대고 어디쯤인지 묻는다.

   항구 근처 거시긴디.

   파마 머리는 대꾸하기 무섭게 미용실 얘기로 돌아간다.

   사내는 26번 도로에 다시 올라탄다. 야구장과 마찬가지로 항구를 찾아가는 길도 어렵지 않다. 표지판도 표지판이지만 분주하게 달려가는 트레일러와 활어차를 따라가면 된다. 짐칸을 매단 차들은 모두 그쪽에서 흘러나오고 그쪽으로 몰려가는 것 같다. 어쨌거나 여기는 항구도시다. 여자는 왜 항구도시만 전전할까? 여수, 목포, 이번에는 군산이다.

   그러고 보니 여자를 만난 곳도 인천이다. 차이나타운 귀퉁이의 허름한 술집이었다. 색색의 알전구로 테를 두른 간판에 적힌 글자는 백합이었다. 소주부터 양주까지 없는 술이 없었지만 안주는 마른오징어가 고작이었다. 손톱마다 다른 색깔의 매니큐어를 바르던 마담은 차이나타운의 가장 오래된 중국집 메뉴판을 버젓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주색을 밝히던 팀장은 중국요리라면 사족을 못 쓰는 사람이었다. ‘백합’에서의 회식이 잦아졌다.

   여자는 그곳에서 일했다. 잠깐 언니 일 좀 거들고 있어요. 여자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소개했다. 사실 여자가 거들 일은 별로 없었다. 중국집에 요리를 주문하고, 손님한테서 요리 값을 받아 배달원에게 지불하는 게 전부였다. 간혹 여자도 술자리에 꼈지만 있는 듯 없는 듯했다. 정말로 먼 친척언니의 일을 잠깐 거드는 것처럼 굴었다. 몸집이 크고 살집이 실했지만 안주에는 젓가락도 대지 않았다. 깐풍기만 먹었다. 아니야, 노랗고 바삭바삭한 닭튀김을 뭐라더라, 유린기, 맞아 그거만 먹었어. 아이가, 파란토끼가 미친 켄터키 프라이드에 목매는 것도 놀랄 일은 아니지. 여자는 늘 입이 슬쩍 벌어져 있어서(아이도 그렇지!) 둔하고 게으른 인상(밥상 앞에서 아이도 그렇듯이!)이었다. 투실투실한 몸뚱이 안쪽에 텅 빈 공간이 있어 뭔가를 채워야 할 것처럼 입은 닫힐 줄 몰랐다.(잠 잘 때면 아이도 그렇잖아!) 여자는 꽃이 없는 꽃병, 빈 항아리였다.(아이는 빈 항아리 속의 토끼!) 빈 항아리에 꽃이 아니라 여덟 달이나 발아된 씨앗을 품고 집 앞에 나타났을 때조차 여자의 입은 조용히 벌어져 있었다. 더 채워야 할 뭔가를 찾는 것처럼, 뱃속의 씨앗은 꽃의 운명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것처럼. 그랬다. 아이는 처음부터 꽃이 아니었다. 꽃의 운명이 아니었다.

   항구의 짠 바람과 짠 불빛과 짠 어둠이 가까워질수록 사내는 초조해진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는 초조함 때문에 더 초조해진다. 사내는 부두의 배후를 길게 달리는 도로변에 차를 세운다. 양복 상의는, 칼과 청산가리와 주사위는 차에 두고 내린다. 두 개의 주소가 적힌 쪽지만 쥐고 내린다.

   사내는 부두를 미적미적 둘러본다. 뭔가를 미루고 지연시키고 연기하는 걸음이다. 결정적인 장면과 장소를 뒤로 밀어내는 걸음이다. 여름의 항구는 여름의 가볍고 먼 어둠 안에서 높고 환하다. 집어등을 내건 여름밤의 어선들이 더 가볍고 더 먼 어둠 속으로 날아간다. 항구에는 수많은 밤들이 기항하고 있어 배들은 눈 맞은 어둠의 손을 잡고 바다로 떠난다. 여자의 고랑에 씨앗을 흘린 밤처럼.

   공사가 끝나고 밀린 품삯을 받은 날이었다. 주머니가 두둑해진 사내들은 간도 두둑해지고 사타구니도 두둑해졌다. 동원훈련에서 풀려난 예비역들처럼 껄렁껄렁 ‘백합’으로 몰려가 진탕 마셨고 노래도 불렀다. 팀장은 노래라면 환장했다. 마담도 노래를 잘했다. 처음 듣는 팝송을 불렀는데 훌륭한 솜씨였다. 술자리에서 끝까지 노래를 하지 않은 사람은 사내와 여자 둘뿐이었다. 사내는 맨정신에는 못 한다고, 여자는 마이크 없이는 못 한다고 버텼다. 사내는 여자에게 유대감을 느꼈다. 부당함에 나란히 맞서는 동지 같았다. 하지만 그날 밤에는 노래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사내도 모르지 않았다. 사내들의 탄창에는 실탄이 가득 차 있었고 누군가를 쏠 수 없다면 제 머리통이라도 날려버릴 기세였으니까. 결국 노래방에서 사내는 소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두 잔이나 거푸 비워야 했고 여자는 마이크를 쥐어야 했다.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이 아쉬워 두 손을 꼭 잡았나. 여자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불렀다. 노래실력은 그저 그랬다. 사내도 한 곡 뽑았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어쩌고저쩌고.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는 건 처음이었다. 꽃이 없는 꽃병, 빈 항아리에서 웃음꽃이 피었다. 끽끽끽, 꺅꺅꺅. 여자는 원숭이처럼 웃어댔다. 누가 나무에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웃어댔어. 사내는 창피하고 불쾌했다. 배신감에 작고 쭈글쭈글해졌다. 새끼원숭이가 되었다. 술잔이 돌고 돈 뒤, 화장실에 다녀온 여자는 사내 곁에 앉았다. 여자는 다정하게 술을 권했다. 어미 원숭이처럼 나긋나긋한 손길로 안주를 입에 넣어주기까지 했다. 술을 들이붓고 안주를 밀어 넣을수록 사내는 텅 비어 갔다. 여자가 품고 있던 공허가, 빈 항아리가 품고 있던 어둠이 사내의 뱃속을 채웠다. 이번에는 사내가 항아리가 되었다. 빈 항아리였던 여자는 꽃이 되어 소주와 맥주로 출렁이는 항아리 깊이 들어왔다. 오징어 꽃, 땅콩 꽃, 수박 꽃, 참외 꽃이 되어 깊숙이 들어왔다. 오징어땅콩수박참외 꽃이 항아리를, 알코올과 테스토스테론으로 단단해진 항아리의 어둠을 채웠다. 꽉꽉 채웠다. 계집들의 속살이 빨갛게 웃으며 화들짝 피어나는 기름진 여름밤, 사내들은 항아리처럼 창백하게 버틴 채 검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사내는 횟집 골목 끝 포장마차 구석에 엉덩이를 붙이고 소주를 마신다. 맨정신으로는 여자를 찾아갈 수 없다. 입대 전날 밤에도 사내는 혼자 소주잔을 움켜쥐고 있었다. 사창가 언저리의 포장마차였다. 총각 딱지를 떼 주겠다고 설레발치는 친구들은 없었다. 친구가 없었다. 그때 사내의 유일한 친구는 포장마차 기둥에 고무줄로 묶인 라디오였다. 한국시리즈였고 타이거즈는 청룡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여 첫 우승까지 한 번의 수비만 남겨 두고 있었다. 8회 말이 끝났을 때 7점 차로 앞서고 있어 승리는 결정적이었지만 사내는 불안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간절히 바라던 일이 곧 이루어지는 순간인데 두려웠다. 그토록 소망하던 우승이었는데 대체 무엇이 두려웠던 걸까? 사내는 소주잔을 서둘러 비우고 포장마차에서 나왔다. 알록달록한 취기로 깜박거리며 빨간 알전구의 집으로 갔다. 그 짓이 간절한 건 아니었다. 궁금했지만 무섭기도 했다. 도색잡지에서 본 그것은 꿰매야 할 상처처럼 징그럽고 무서웠다. 동생의 배에도 그런 상처가 났었다. 내장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여자들 거기에서는 내장 대신 아기들이 쏟아져 나오지만. 진짜 무서운 건 군대였다. 군대에 가면 무사하지 못할 것 같았다. 동생을 빨갱이로 몰아서 죽인 게 군인들이었으니까.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눈에 띄지 않아야 했다. 자갈 개구리처럼, 카멜레온처럼. 눈에 띄지 않으려면 뭐든 남들처럼 해야 했다. 남들처럼 머리 깎고 남들처럼 코가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고 남들처럼 총각 딱지를 떼고 남들처럼. 얼마다요? 사내는 빨간 알전구 집 문턱에서 물었다. 알사탕 껍질 같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들이 알사탕 같은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을 붉히며 달아나려던 사내의 팔을 붙든 건 작고 까무잡잡하고 통통한 여자애였다. 돌아보니 땅콩사탕 같은 여자애가 웃고 있었다. 이렇게 말하면서. 처음이지?

   사내는 전기가 새는 알전구처럼 흐릿해진 채 포장마차에서 나온다. 부두의 배후를 달리는 도로를 건너 구부정하고 쭈글쭈글한 여관과 술집이 늘어선 뒷골목으로 간다. 회색 여관들 사이로 까만 새시 문을 활짝 열고 빨간 발을 내린 술집들이 늘어서 있다. 왕자, 백조, 은하수, 나비.

   사내의 발길을 세운 것은 ‘물망초’다. ‘물망초’의 새시 문도 활짝 열려 있다. 작은 구슬이 촘촘히 꿰인 발을 내리고 있다. 사내는 쪽지와 벽에 적힌 번지수를 번갈아 본다. 벽에는 여종업원을 구하는 전단이 붙어 있다. 사내의 이마가 흐려진다.

   몇 번 헛기침을 한 뒤 사내는 구슬발을 헤치고 술집 안으로 들어간다. 술집은 침침하고 눅눅하고 썰렁하다. 네 개의 테이블은 모두 비었다. 주방에 면한 맨 안쪽 테이블에서 늙은 말 같은 여성이 멸치를 다듬고 있다. 주방 구석의 푸른 어둠 속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목소리가 가늘게 흘러나온다. ‘물망초’의 여주인은 인기척에 반색하며 고개를 들기도 전에 어서오씨오, 라고 인사한다.

   사람을 찾는데요.

   사내의 목소리가 딱딱하다. 늙은 말의 얼굴은 더 딱딱해진다. 딱딱한 눈길로 사내를 훑어본다.

   어디서 왔당가?

   전주서 왔습니다.

   수작을 거는 수컷 앞에서처럼 늙은 말이 히히힝, 웃는다.

   누구를 찾소잉?

   진구 엄마를 찾습니다.

   누구 엄마?

   사내의 입이 딱딱해진다. 아이 엄마의 이름을 떠올리려 애쓰지만 쉽지 않다. 여자에게도 이름이 있어나 싶다. 취기 때문일까? 가물가물하다. 진구가 태어나기 전에는 ‘저기’였고 진구가 태어난 뒤로 ‘어이’였다.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없는 동거에 이름은 없었다. 여자가 복수를 한 것 같다. 유령과 산 기분이다. 빈 항아리의 유령.

   사내는 지갑에서 사진 조각을 꺼내 늙은 말에게 건넨다. 아이 첫돌 때 찍은 사진에서 여자만 오려냈다. 여자와 찍은 유일한 사진이다. 늙은 말의 입술 주위로 멸치 떼 같은 주름이 모여든다.

   미란이?

   멸치 떼가 사내의 미간으로 건너간다. 여자가 그런 이름이었던가? 낯선 이름 때문에 여자의 실체가 더 흐릿해진다.

   지금 어디 있습니까?

   폴세 관뒀어.

   언제요?

   작년 세밑에 관둬부렀어.

   어디로 갔습니까?

   몰라. 친동상처럼 살갑게 거시기했는디 온다간다 한 마디 없이 사라져부렀당게.

   늙은 말은 혀를 찬다. 정이 어쩌고 도리가 저쩌고 푸념하다 분통을 터뜨리고야 만다. 사내는 놀란다. 여자가 집을 나갔을 때 어머니가 했던 말과 판박이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이 항구도시까지 따라온 것 같다. 여자가 종적을 감췄을 때 사내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놀라기는 했다. 여자가 빈 항아리였다는 자신의 막연한 짐작이 옳았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어머니는 천륜 운운하며 개탄했지만 사내의 관점은 좀 달랐다. 여자는 집을 나가지 않았다. 애당초 집에 들어온 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삭의 몸으로 집 앞에 나타났을 때도 항아리는 비어 있었다. 항아리에는 무엇도 담긴 적이 없다.

   죄송합니다.

   사내의 입에서 사죄의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반사적으로 죄송한 입이다. 선선한 사죄에 늙은 말이 주춤한다. 늙은 말은 이제 여자에게 얼마나 잘해 줬는지 떠들어댄다. 영양크림도 주고 감기약도 지어다주고 등도 밀어 줬단다.

   고맙습니다.

   사내의 입에서 이번에는 감사의 말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다. 반사적으로 감사한 입이다.

   근디…… 뭣 땜시 찾는당가?

   늙은 말이 가늘게 뜬 눈을 빛내며 묻는다. 짚이는 데가 있는 질문을 던질 때 여자들이 짓는 표정이다. 사내는 당황한다. 깊이 감춘 어두운 진실을 쑤석거리는 눈빛 앞에서 식은땀을 흘린다.

   혹시 신랑?

   늙은 말이 자신의 말꼬리를 붙들고 히히힝, 웃는다.

   멸치 떼 같은 주름이 늙은 말의 눈가와 사내의 입가로 흩어진다. 늙은 말의 눈빛에 담긴 호기심과 목소리에 담긴 뜻밖의 교태에 사내는 움츠러든다. 달아난다. ‘신랑’이라는 외설스러운 말로부터 달아난다. 첫날밤이 무서운 순진한 신부처럼 달아난다.

   낙담과 절망이 달아나는 사내의 발뒤꿈치를 깨문다. 아이를 맡기려던 계획은 벽에 부딪혔다. 고작 벽에 이마를 찧으려고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들이부은 건가. 스스로가 우스꽝스럽고 창피하다. 그 옛날 빨간 알전구의 집에 찾아갔을 때만큼이나 우스꽝스럽다. 문간에서 얼마냐고 물었을 때처럼 창피하다. 세상 모든 여자들이 나무 위에서 알사탕 같은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나무에서 비웃음의 알사탕이 쏟아져 내린다. 사내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이쪽도 저쪽도 피할 데가 없다. 믿을 것은 늙은 봉고 지붕뿐이다.

   사내는 봉고 지붕 아래로 숨어든다. 알사탕이 봉고 천장을 두드려댄다. 알사탕이 봉고 천장을 두드리는 소리가 사내의 두개골을 두드려댄다. 알사탕 폭풍이 봉고의 두개골을 난타한다. 두개골 아래에서는 안전하지만 갑갑하다. 옴짝달싹할 수 없다. 차 열쇠를 집어넣고 돌리는데 안쪽에서는 열 수 없는 문을 긁어대는 절망적인 기분이다. 발작적으로 차를 출발시킨다. 술집을, 부두를 밀어내며 동쪽으로 달린다. 바다에서 멀어진다. 물망초를 잊는다.

   머지않아 갈림길이 나온다. 곧장 달리면 버스터미널이 나오고 버스터미널 너머에는 용궁장이 버티고 있다. 여자를 닮은 아이가 덫을 놓고 기다리고 있다. 아니, 아이가 덫이다. 사내는 운전대를 거칠게 꺾어 21번 도로를 잡아탄다. 직선도로다. 덫을 피했을 뿐인데 탄탄대로가 깜짝선물처럼 짠, 하고 나타난다. 쭉 달린다. 오른쪽 어둠의 덤불에서 경찰서의 불빛이 불쑥 튀어나올 때는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경찰서의 불빛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표정이다. 아이는 저쪽에 있다고, 차를 돌리라고 경고한다. 애써 무시하고 내처 달린다. 운전대와 가속페달에 연결된 팔과 다리가 멋대로 움직인다. 사실 멋대로 움직이는 팔과 다리에 의지한다. 차가 달리고 있지만 직접 달리는 기분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달리는 것 같다. 달리는 차 안에서 달리는 기분 속을 달리는 느낌이다.

   불빛이, 두개골 안쪽을 염탐하는 도시의 불빛이 뜸해진다. 젖은 흙냄새가 날아오는가 싶더니 개구리 소리가 폴짝 튀어 오른다. 젖은 흙냄새가, 개구리 소리가 숨통을 튼다. 숨통이 몸집을 한껏 부풀린다. 두려울 게 없다. 세상의 왕이다. 한줌의 불빛이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어둠이 감겨 온다. 팔과 다리가 심장에게 묻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묻는다.

   그 옛날 빨간 알전구 집에서 얼굴을 붉히며 달아나려던 사내를 붙든, 땅콩사탕 같은 여자애는 이렇게 말했다. 올라갈까? 땅콩사탕의 스스럼없는 반말이 은밀한 부위의 달콤한 피부처럼 사내의 몸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올라갈까? 사내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멋진 말이고말고. 한껏 꾸민 여자들이 나무에서 떨어진 사내들을 나무 위로 데려가지. 젖과 꿀이 흐르는 나무 위로 데려가지. 올라갈까? 문득 심장이 속삭인다. 멋진 생각을 속삭인다. 21번 도로를 타고 천국으로 올라간다.

   천국으로 앞장 서 올라가는 불빛의 꽁무니는 보이지 않는다. 사내는 텅 빈 사다리를 마음껏 올라간다. 검은 산 밑의 파란 어둠에 모여든 집들이 깜박이는 불빛으로 배웅한다. 산과 산 사이를 통과할 때는 나무 냄새가 서늘하다. 나무를, 산을 쪼개며 달리는 것 같다. 왼쪽 산이 거꾸러지고 오른쪽은 산이 튕겨 오른다. 저만치 거꾸러진 산의 껍데기를 들추고 열차의 불빛이 스르르 미끄러져 나온다. 열차의 불빛도 위로 올라간다. 열차의 불빛과 경주한다. 열차의 불빛이 속도를 늦추더니 멈춘다. 역이다. 군산역을 지나친다. 거북이는 쉬지 않고 달린다. 육지가 끊어진다. 거북이는 바다를 건넌다. 바다가 아니라 강이다. 금강이다. 금강을 건너 천국으로 올라간다.

   여기는 천국인가? 21번 천국인가? 왼쪽은 여전히 검은 산의 파란 어둠. 검은 산이 꾸는 파란 잠. 그 밑에 산이 꾸는 꿈처럼 공중관람차가 돌아가고 회전목마가 달린다. 유원지다. 자동차극장도 있다. 산자락을 등진 거대한 스크린 위에서 박쥐인간이 웃는 남자와 대결한다. 박쥐인간과 웃는 남자가 타워크레인에 걸린 줄에 매달려 싸운다. 박쥐인간이 올라가면 웃는 남자가 내려오고 웃는 남자가 올라가면 박쥐인간이 내려온다. 올라가고 내려오면서 단 하나의 점에서 주먹다짐한다. 모두가 행복하다. 산도 공중관람차도 회전목마도 박쥐인간도 웃는 남자도 자동차들도 행복하다. 사내만 빼고 모두모두 행복하다.

   미란이라고? 본명은 아닐 것이다. 여자는 텅 빈 항아리니까. 진짜 이름은 등짝에 쓰는 거니까. 빨간 방에서 이름을 묻자 땅콩사탕은 깔깔거리더니 처음이니까 가르쳐준다며 첫날밤의 신부처럼 수줍은 손짓으로 등에 이름을 썼지. 수지. 왜 그 이름이 떠오르지? 성경이 틀린 걸까? 하느님은 아담의 갈비뼈가 아니라 척추를 꺼내 이브를 만든 걸까? 그래서 이브의 이름은 등이 기억하는 걸까? 이브는 애당초 아담의 등뼈에 붙여진 이름일까? 어쨌거나 지금 사내의 등짝에 여자의 이름은 없다.

   강 건너 여기가 천국이라는 믿음이 흔들린다. 젖과 꿀은 없다. 두개골 안쪽에 뭔가가 들러붙어 있다. 씹다버린, 휴지에 싸지도 않고 그냥 버린 껌 같은 것이, 인삼 맛을 풍기며 들러붙어 있다. 땜질된 납처럼 숨구멍을 꽉 물고 있다. 밀봉된 두개골 아래서 심장이 땀 흘린다. 축축해진다. 무거워진다. 여자들의 구름처럼 가벼운 배 위에서 식은땀을 흘릴 때처럼 축축하고 무거워진다. 땅콩사탕의 손을 잡고 올라간 나무 위에서 사내는 과분한 전기를 들이켠 알전구처럼 파삭 터져버렸다.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사다리가 휜다. 곧장 올라가지 못하고 미끄러진다. 21번 도로에서 미끄러져 내린다. 떨어진다. 천국에서 떨어진 뱀처럼 꾸불꾸불한 길이 사내의 심장을 덥석 문다. 4번 도로, 4번 뱀과 함께 떨어진다. 박쥐인간과 웃는 남자가 그랬던 것처럼 사내가 떨어지자 다른 것들이 올라간다. 산이, 산 밑의 어둠이, 집들이, 집들의 불빛이, 장항의 밤이 올라간다. 사내는 계속 떨어진다. 추락한다. 추락은 강 앞에서야 멈춘다.

   빨간 침대 위에서 엉거주춤 알전구가 터질 때도 이런 기분이었다. 떨어지고 떨어지는 기분. 빨간 침대 끝에서 땅콩사탕은 등을 돌린 채 브래지어를 걸치며 말했다. 괜찮아. 사내의 눈에서 축축한 게 흘렀다. 태어나서 처음 들어 보는 말이었다. 괜찮아. 동생이 빨갱이로 죽었지만 괜찮아. 아버지가 맛이 갔지만 괜찮아. 내일이면 입영열차에 타야 하지만 괜찮아. 타이거즈의 첫 우승 순간을 놓쳤지만 괜찮아. 괜찮아. 아버지는 한 번도 해주지 않은 말이었다. 세상 그 누구도. 하느님조차도.

   사내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정면을 노려본다.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괜찮아. 그럴 리는 없겠지만 여자의 진짜 이름이 미란이라 해도 괜찮아. 천국에서 떨어졌지만 괜찮아. 오른쪽 갈빗대 밑이 허전하지만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해줄 사람이 없지만 괜찮아. 하지만 강 건너에는 아이가 있다. 강 건너에 간을 두고 왔다.

 

   강 건너에는 아이가 없다. 용궁에 토끼가 없다. 용궁장 502호에 아이가 없다. 달팽이집에도 없다. 화장실에도 없다. 카운터에는 사람이 없다. 여관 뒷골목에도 아이는 없다. 편의점에도 없다. 만화방에도 없다. 전자오락실에도 없다. 버스터미널에도 없다. 전자오락실에도 또 없다. 만화방에도 또 없다. 편의점에도 또 없다. 여관 뒷골목에도 또 없다. 카운터에는 여태 사람이 없다. 용궁에도 아이는 또 없다. 달팽이집에도 또 없다. 화장실에도 또 없다. 아이는 어디에도 없고 사내는 정신이 없다. 침착함이 없다. 두서가 없다. 없다. 없다. 아무것도 없다.

   사내는 복도로 나가 501호의 초인종을 누른다. 대답이 없다. 다시 초인종을 눌러 봐도 마찬가지. 탕탕탕. 문을 두드리지만 역시 대답이 없다. 이번에는 503호의 초인종을 누른다. 묵묵부답. 문을 두드리자 문이 빠끔 열린다. 핏발 선 눈동자가 술 냄새를 앞세우고 문 틈 사이로 나타난다.

   옆방 사람입니다. 혹시 제 아이를 못 보셨습니까?

   몰라요.

   키가 이쯤 된 아홉 살짜리 남자앤데 못 보셨습니까?

   모른다니까.

   토끼처럼 앞니가 튀어나왔는데 못 보셨습니까?

   몰라.

   겁먹은 토끼처럼…….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사내의 말허리를 싹둑 자른다.

   사내는 504호의 초인종을 누른다. 대답이 없자 초인종을 다시 누른다. 이번에도 대답이 없자 문을 두드린다. 역시 대답이 없다. 문을 세게 두드린다. 열어 달라고, 목을 조여 오는 어둠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막다른 구석에서 끌어내 달라고 필사적으로 두드린다. 사내는 두렵고 불안하고 초초하다. 여자의 이름을 떠올리지 못해서 몹쓸 일이 생길 것 같다. 과속을 해서 나쁜 소식을 듣게 될 것 같다. 휴대폰! 사내는 바지 주머니를 뒤진다. 휴대폰이 없다.

   사내는 휴대폰을 찾기 위해 502호로 돌아간다. 휴대폰은 양복 상의 주머니에 있다. 휴대폰은 죽어 있다. 배터리가 나갔다. 사내의 배터리도 나간다. 사내는 동력이 끊긴 자동인형처럼 방바닥에 맥없이 주저앉는다. 넋이 나간다. 눈동자는 빛이 죽어 까만 단추가 된다.

   탕탕탕. 사내의 심장을 안쪽에서 강타하는 간절한 두드림이 있어, 눈동자가 미친 감시카메라처럼 덜컥덜컥 이곳저곳을 들쑤신다. 달팽이집 앞에서 감시카메라가 멈춘다. 이상하다. 입구를 철통같이 지키던 곤충부대가 보이지 않는다. 사내는 달팽이집까지 엉금엉금 기어간다. 달팽이처럼 기어간다. 사내가 지나간 자리가 의혹의 점액질로 축축해진다. 사내는 달팽이집을 뒤진다. 마음과 달리 몸이 굼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우적댄다. 실제로 방에는 물이 가득 찬 것 같다. 안간힘을 다해 꼼지락거리며 사내는 수몰된 유물을 탐사한다. 스파이더맨 가방도 그대로이고 집에서 챙겨온 물건들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곤충부대만 없다. 곤충부대는 어디로 갔을까? 달팽이집 안쪽에는 일기장이 펼쳐져 있다. 오늘이 펼쳐져 있다.

   날씨, 최고 기온 33도. 상대팀, 라이온즈. 장소, 군산 월명야구장. 사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다. 아이는 일기장에 미심쩍은 숫자를 잔뜩 적어 놨다.

   1101. 1001. 1011. 1010. 10111. 10011. 101. 111. 10101.

   1011. 1110. 10100. 11011. 101010. 110. 1000. 1101. 111.

   불가해한 숫자들이 차곡차곡 쌓여 일기장은 금세 난수표가 되고 야구는 토끼달팽이 행성에서 보내는 지령을 아이에게 전달하는 모스 부호가 된다. 깨알같이 적힌 숫자의 의미를 사내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어서 불길한 숫자다. 저 수상쩍은 이진법의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무시무시한 진실이 튀어나올 것 같다. 야구를 숫자로 번역하는 아이가, 머릿속의 모든 숫자를 바로바로 이진법으로 번역하는 저 아이가 괴물이라는 무시무시한 진실 말이다. 무시무시한 진실이 어느새 사내의 머릿속으로 옮겨왔다. 사내는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앉은 무시무시한 진실을 몰아내기 위해 토끼달팽이 행성에서 보낸 메시지라는 만화적 상상의 연기를 거듭 피워 올린다. 이진법을 쓰는 걸 보니 토끼달팽이 행성인은 손가락이 두 개일 것이다. 두 개의 손마다 손가락 하나. 어쩌면 하나의 손에 두 개의 손가락. 아이의 손에 달린 열 개의 손가락은 속임수겠지. 토끼달팽이 행성의 스파이라면 그런 속임수를 쓰고도 남을 테니까.

   아이를 처음 대면했을 때 사내는 시멘트와 타르 냄새를 씻지도 않은 채 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부터 확인했다. 손가락도 열 개, 발가락도 열 개. 자신의 씨가 맞았다. 여자의 수상쩍게 부푼 수상쩍은 뱃속에 들어 있던 수상쩍은 생명의 수상쩍은 신진대사는 기억의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졌다는 사내의 수상쩍은 사출에서 비롯된 게 틀림없었다. 아랫목의 여자는 빚을 낸 찌무룩한 얼굴로 누워 있고 윗목의 어머니는 빚을 갚은 홀가분한 얼굴로 핏덩이를 안고 있었다. 이상한 풍경이었다. 아기가 동생을 닮았다고, 죽은 동생을 쏙 빼닮았다고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상기된 얼굴은 신부처럼 빛났다. 여자가 아니라 어머니가 아기를 낳은 것 같았다. 어머니의 아기, 어머니의 고추, 어머니의 아들. 어머니가 아기를 어르며 죽은 동생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여자는 진저리치며 소리쳤다. 자기는 어머니의 죽은 아들을 낳은 게 아니라고. 못된 년. 못된 년은 동생이 어떻게 숨을 거뒀는지 모른다. 못된 년은 동생이 너덜너덜해진 폐와 내장을 끌어안고서 얼마나 무서워하다 죽었는지 모른다.

   초인종이 운다. 초인종이 울부짖는다.

   진구니?

   사내의 떨리는 목소리가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문밖에는 큼지막한 뿔테 안경을 쓴 여드름쟁이 청년이 서 있다.

   손님, 다른 손님들이 시끄럽다고 난리당께요.

   진구가 없어졌어요.

   네?

   바람 쐬러, 부둣가에 잠깐 바람 쐬러, 잠깐 볼일이 있어서 진짜 잠깐 부둣가에 잠깐 다녀왔는데 아이가 없어졌어요.

   손님, 진정하시고 천천히 얘기해 보세요.

   사내는 다시 말을 쏟아낸다. 잠깐…… 잠깐…… 잠깐. 술과 물망초와 여자와 천국 얘기는 빼고 잠깐. 토끼와 거북이 얘기도 빼고 진짜 잠깐.

   여드름쟁이가 휴대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할머니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사내의 말을 고래고래 전한다. 아이가 없어졌다고, 겁먹은 토끼처럼 생긴 아홉 살짜리 남자애가 없어졌다고. 토끼가 아니라 토끼처럼 생긴 애가 없어졌다고 소리친다. 겁먹은 새끼토끼가 아니라 겁먹은 토끼처럼 생긴 애가 없어졌다고 외친다.

   노파의 대꾸가 고스란히 들려온다.

   나가 다니던 소핵교서 토깽이를 길렀는디 고놈들이 나가 준 풀만 먹어 갖고 공일 때도 방학 때도 노상 학교에 가야 안 했냐.

   거시기 내가 잠깐 나갈 때는 파마 머리 아줌마였는데.

   사내가 끼어든다.

   파마 머리요?

   여드름쟁이가 묻자 사내는 고개를 끄덕인다. 여드름쟁이는 전화를 끊는다.

   진작 거시기하시지.

   여드름쟁이가 푸념하며 다시 전화를 건다.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린다.

   아따 고모는 또!

   손님, 시방 고모가 통화 중인 관계로 확인이 안 됭께 쫌만 기다리씨오. 뭔 일 있을라고요. 확인하는 대로 알려드릴 텐께 너무 걱정 마시고 쫌만 기다리씨오. 다른 손님들이 거시기 클레임 안 걸게 거시기 해주시고.

   여드름쟁이가 안경을 밀어 올리며 말한다.

   부탁드립니다.

   사내는 머리를 숙이며 말한다. 사내의 목소리는 꽉 막혀 있다. 슬픔과 불안으로 꽉 막힌 파이프 저쪽 끝에서 누군가 외치는 것 같다.

   여드름쟁이가 아랍풍의 양탄자가 깔린 복도를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한다. 사내는 여드름쟁이를 따라간다. 여드름쟁이의 손가락은 계속 통화를 시도하지만 전파의 거미줄에서 번번이 미끄러진다. 여드름쟁이의 미간이 좁아질 때마다 사내의 심장도 찌무룩해진다. 여드름쟁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1층에서 졸던 엘리베이터가 꾸벅꾸벅 올라온다. 여드름쟁이가 바닥에 버려진 냅킨을 줍고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사내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지 않는다. 엘리베이터 바로 왼쪽 바닥에 뭔가가 떨어져 있다. 무당벌레 모형이다. 아이의 무당벌레다. 엘리베이터 버튼은 반대쪽 벽에 붙어 있다. 아이는 왼손잡이라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면 무당벌레는 저쪽 바닥에 떨어져 있어야 한다. 아이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다. 무당벌레가 떨어진 쪽으로 가면 비상계단이다. 사내는 무당벌레를 손에 쥐고 비상계단 쪽으로 간다. 무당벌레가 길을 밝힌다. 계단참에서 무심코 아래쪽으로 내려가려던 무당벌레는 문득 발길을 멈춘다. 아이는 왜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았을까? 사내는 주변을 찬찬히 둘러본다. 탐정의 눈으로 계단을 꼼꼼히 살핀다.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사마귀를 찾아낸다. 아이는 위로 올라갔다. 이번에는 사마귀가 앞장선다. 사내도 바닥을 훑으며 계단을 올라간다. 옥상으로 나가는 철문 앞에 개똥벌레가 떨어져 있다. 사내는 개똥벌레를 앞세워 옥상으로 나간다. 옥상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다. 어둠뿐이다.

   어둠의 바닥을 들추려다 보니 사내는 쭈그려 앉게 된다. 어쩔 수 없다. 옹색하고 우스꽝스러운 오리걸음으로 뒤뚱뒤뚱 주변을 살핀다. 역시 어쩔 수 없다. 땅만 바라보는 아이처럼, 땅 위의 곤충만 들여다보는 아이처럼 납작한 눈으로 세상을 본다. 여름밤의 어둠은 높아서 아찔하다. 어둠은 무시무시하게 높고 아찔한데 달은 엄청나게 크고 밝다. 가득 찬 달이다. 달 속에 토끼가 가득하다. 거북이도 있다. 토끼가 거북이를 타고 있다. 간을 가지러 가고 있다. 사내도 간을, 두고 온 간을 찾으러 간다. 저기 메뚜기가 보인다. 사내는 뒤뚱뒤뚱 걸어간다. 저기 매미도 보인다. 다시 뒤뚱뒤뚱. 저기 잠자리. 다시 뒤뚱뒤뚱. 저기 장수하늘소. 다시 뒤뚱뒤뚱. 저기 딱정벌레. 다시 뒤뚱뒤뚱. 저기 노란 물탱크 밑에 토끼. 아이는 쭈그린 채 얼굴을 무릎에 묻고 있다. 사내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난다. 아이 쪽으로 어른답게 성큼성큼 걸어간다. 아이 앞에는 거미가 버티고 있다.

   진구야.

   아이는 꿈쩍 않는다.

   진구야.

   사내는 아이의 어깨를 흔든다. 아이가 고개를 든다. 눈을 껌벅거린다.

   아빠.

   여기서 뭔 지랄이여? 얼마나 거시기했는지 알아?

   사내의 목소리가 높고 빨라진다. 병목에 빨갛게 몰린 물처럼 파랗게 쿨럭인다.

   고도가 높을수록 공기 밀도가 낮아서 바람이 세게 불어.

   아이가 거미를 내려다보며 무심하게 대꾸한다. 실험 결과를 설명하는 과학자의 무미건조한 말투다. 아이의 무심한 말투가 병목을 더 옥죈다.

   대체 뭔 소리야? 왜 여기 와 있는 거냐고?

   아빠가 바람 쐬러 간다고 했잖아.

   아이가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엄정한 과학자의 말투로 대답한다.

   사내의 심장이 비과학적으로 후끈 달아오른다. 달아오른 심장이 목구멍으로 치밀어 오른다.

   바람 쐰다는 건 그런 뜻이 아니라…….

   사내는 말문이 막힌다. 비과학적으로 막힌다. 달아오른 심장이 목구멍에 꽉 걸렸다. 심장 모양의 목구멍에 꽉 걸렸다. 아프다. 심장 모양의 목구멍이 아픈 것인지, 목구멍 모양의 심장이 아픈 것인지 과학적으로 분간할 수 없다. 어쨌거나 아프고 화가 난다.

(다음 호에 계속)

 

   《문장웹진 8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