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제1회)

 

[장편연재_1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마이크를 쥔 사내의 얼굴이 뻣뻣하게 굳었다. 사내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곳에서 가장 싫어하는 일을 하려는 참이다. 노래방에서 노래하기. 한솥밥을 먹고 한 지붕 아래서 잠자는 동료들 앞이지만, 그 짓만 빼면 뭐든 같이 하는 이들 앞이지만 노래 부르는 것은 늘 어색하다. 폭탄주 한잔을 눈 딱 감고 들이킨 보람도 없이 오늘따라 마이크는 더 무겁기만 하다. 마이크가 아니라 아령이라도 들고 있는 것 같다.

   저 여자 때문인가. 사내는 맞은편 소파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여자를 흘깃 쳐다본다. 짠돌이 팀장이 선심 쓰듯 부른 도우미. 여섯 마리 일벌을 거느린 한 마리 여왕벌. 과장되게 부풀린 파마머리, 말라버린 밀가루 반죽 같은 얼굴, 밀가루 반죽에 박아 넣은 건포도 같은 눈. 가부키 배우 같아 표정을 읽을 수 없다. 나이도 짐작할 수 없다. 본래 여자란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종족이다. 어리든 늙든 나이를 감추는 게 지상과제니까. 여자의 나이를 염탐하는 것이 남자들의 본능인 것과 마찬가지로.

   팀장이 귀엣말을 속삭이자 여자가 웃는다. 파마머리가 웃고 밀가루 반죽이 웃고 밀가루 반죽에 박아 넣은 건포도가 웃는다. 사내의 얼굴은 더 굳어진다. 여자가 자신의 뺨에 꽂힌 시선을 금세 감지한다. 촉이 좋은 여자다. 여자의 건포도가 사내를 똑바로 바라본다. 사내는 나쁜 짓을 들킨 것처럼 당황한다.

   실제로 사내는 나쁜 짓을 들켰다. 누군가를 훔쳐보는 것은 사내에게는 나쁜 짓이다.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던가. 다른 사람을 빤히 쳐다보지 마라. 눈에는 눈이라 안 하든. 눈은 눈을 부른당께. 초등학교만 다닌 어머니였지만 머릿속에는 깜짝 놀랄 말들이 잔뜩 쟁여져 있었다.

   어머니한테 꾸지람이라도 들은 듯 사내는 불알이 쪼그라들었다. 여자의 눈길을 피할 수도 없다. 그러면 더 초라해질 것 같다. 아니, 자신이 나쁜 짓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하지만 계속 여자를 바라볼 수도 없다.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어야 할 것 같다. 여자의 얼굴에 언뜻 호기심이 어린다. 밀가루 반죽에 노릇노릇 열기가 퍼진다. 건포도가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건포도가 자부심으로 빛난다. 난 아직 죽지 않았어. 여자는 짐작보다 나이가 더 많은지도 모른다.

   여자는 이제 노골적으로 사내를 쳐다본다. 숨을 헐떡이는 사냥꾼을 위해 잠시 멈춰선 사냥감의 도도한 눈빛으로. 사내는 스스로 판 덫에 걸린 기분이다. 때마침 귀에 익은 멜로디가 들려온다. 누군가 사내의 애창곡을 입력한 것이다. 사내는 호명이라도 받은 듯 노래방 기기 앞에 선다. 화면에는 남국의 휴양지가 펼쳐진다. 푸른 하늘, 더 푸른 바다, 쭉쭉 뻗은 야자나무, 하얀 해변, 더 하얀 비키니 차림의 여자.

   사내는 헛기침을 한 뒤 노래를 시작한다. 화면 하단에 떠 있는 가사 한 글자 한 글자를 신중하게 두드리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 사랑 받고 있지요.

 

   처음 그 노랫말을 들었을 때 사내는 모욕이라도 받은 듯 불쾌했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사랑받지 않기 위해 태어난 사람도 있다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사랑받지 않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다면 꼭 자기일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 노랫말이 자꾸만 이렇게 들렸다.

   당신은 사랑받지 않기 위해 태어난 사람.

   당신의 삶 속에서 그들이 받고 있지요.

   슬펐지만 기이하게도 그런 생각이 사내를 홀가분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자꾸만 그 노래를 흥얼거리게 됐다. 가려운 데를 긁는 심정으로. 손톱자국으로 피범벅이 된 부위를 벅벅 긁는 기분으로. 벅벅 긁고 나면 언제나 더 가려웠다. 그래서 또 그 노래를 불렀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음정과 박자가 서툰 사내조차 만만하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였다. 무엇보다 그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은 노래를 더 권하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그런데.

   앵콜.

   여자였다. 여자가 쥐포인지 오징어인지를 입에 가져가며 말했다. 여자는 웃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웃고 있는 것은 여자가 아니라 여자의 붉은 입술이었다. 동료들도 따라 웃었다. 기발한 농담이라도 들은 것처럼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앵콜이라니. 사내는 처음에는 어리둥절했고 나중에는 당황스러웠다. 애창곡을 바꿔야 하나. 사내는 머리를 긁적이며 룸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웃음소리가 사내의 어깨를 쳤다. 이 봐, 어딜 가. 문을 닫자 사내를 따라 나오던 웃음소리가 이를 악물고 비명을 질렀다. 비명은 다른 방에서도 새어 나왔다. 마이크를 쥔 사람들, 탬버린을 흔드는 사람들, 몸을 흔드는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듯 노래를 질렀다. 세상의 마지막 밤을 보내는 사람들처럼 필사적이었다.

   좁고 긴 복도에는 붉은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노래방 이름이 ‘레드 카펫’이었을 것이다. 영화제의 도시에 걸맞은 이름이 아닌가. 두툼한 양탄자가 발소리를 삼켰다. 사내는 일부러 발을 쿵쿵 굴렸지만 여전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소리 없이 움직이는 것은 배로 기어 다니는 뱀 같은 짐승이나 할 짓이 아닌가.

   사내는 걸음을 재촉했다. 저만치 복도 끝에 카운터가 보이고 카운터에 14인치 텔레비전이 얹혀 있다. 텔레비전이 사내의 목표물이다. 카운터는 비어 있고 텔레비전은 야구를 중계하고 있다. 호랑이와 거인의 대결. 30분 전 나왔을 때는 7회 초, 동점이었는데 지금은 8회 말, 한 점 뒤진 거인의 공격이다.

   선두 타자는 배트를 짧게 쥐고 있다. 발이 빠르게 생긴 얼굴이다. 사내는 얼굴만 봐도 발이 빠른지 느린지 알 수 있다. 초식동물처럼 생긴 얼굴은 발이 빠르다. 토끼눈. 토끼눈은 공을 때리기도 전에 달려갈 태세다. 투수는 토끼눈을 내보내면 골치 아프리라는 것을 안다. 너무 잘 안다. 문제는 그것이다. 절대로 내보내지 말아야 한다는 절대적인 다짐. 절대로. 절대적인 다짐 때문에 투수의 어깨가 뻣뻣해진다. 허리가 흐트러진다. 허벅지가 무너진다. 무릎이 흔들린다. 투구 간격이 짧아진다.

   볼, 볼,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그리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볼.

   토끼눈이 1루로 냉큼 달려간다. 부풀어 오른 오렌지색 비닐봉지를 화관처럼 머리에 얹은 관중들이 불타오르며 열광한다. 조짐이 좋지 않다. 사내의 머리에 빨간 불이 들어온다.

   다음 타자는 부산한 발놀림으로 타석을 고른 뒤 3루 코치를 쳐다본다. 코치의 손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코를 건드리고 어깨를 두드리고 턱을 쓰다듬고 귀를 만지고 박수를 친다. 악기를 연주하는 연주자 같다. 타자는 초구를 후려치지만 공은 3루 파울선 밖으로 떨어진다. 번트는 없다. 공격의 목표는 동점이 아니라 역전이다. 더그아웃 한쪽 끝에 선 검은 얼굴의 감독은 껌을 질겅질겅 씹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박수를 친다. 흑인 감독 얼굴 뒤편 벽에 붙은 종이에는 이런 구호가 적혀 있다.

   No Fear.

   사내의 손이 두려움으로 축축해진다. 질 것 같다. 게임을 잃을 것 같다. 사내는 마른침을 삼킨다. 볼. 투수가 모자를 벗어들고 팔뚝으로 이마를 훔친 뒤 로진백을 만진다. 토끼눈은 슬금슬금 굴에서 걸어 나와 다음 굴을 노리고 있다. 투수가 다리를 들고 토끼눈은 냅다 달리고 2루수는 2루 쪽으로 풋워크를 하고 타자는 때리고 공은 2루수가 서 있던 자리를 뚫고 외야로 굴러가고 토끼눈은 3루까지 내달린다.

   수만 개의 빵빵한 오렌지색 화관들이 수십만 개의 꽃잎으로 폭발하며 춤춘다. 텔레비전이 터져버릴 것 같다. 사내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심장이 벌떡거린다.

   염병, 글러먹어 부렀다. 아버지가 곁에 있었다면 혀를 차며 욕지거리를 내뱉었을 게다. 아버지라면 토끼눈에게 볼넷을 내줬을 때부터 그랬을 것이다. 유독 야구 앞에서 아버지의 입은 험해지기 일쑤였다. 응원하는 팀의 선수가 실수라도 하면 곧장 욕설이 튀어나왔다. 밥 처묵고 거시기만 허는 놈이 어쩌고저쩌고. 잘했다고 칭찬하는 법은 없었다.

   사내는 카운터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고 음소거 버튼을 누른다. 소리가 사라지자 두려움도 실감을 잃는다.

   이제 야구는 어릴 적 극장에서 보았던 뉴스의 한 장면처럼 밋밋하게 펼쳐진다. 유명 영화배우의 죽음도, 다른 대륙의 전쟁도 달나라의 일처럼 멀게만 느껴진다. 그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의 거리가 사내의 숨통에 공기를 불어넣는다. 소리를 잃은 야구는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처럼 비현실적이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영화는 계속된다. 타자가 친 플라이가 중견수에게 잡히자 토끼눈이 홈으로 뛰어든다. 토끼눈의 금의환향. 승리의 여신도 토끼눈 편이다. 민첩하고 센스 있는 남자를 마다할 여자는 없는 법.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요기의 말대로 야구는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타자가 친 공이 1루수 앞으로 굴러가는 사이 1루 주자는 2루까지 진출한다. 투 아웃, 주자는 2루. 흑인 감독이 주자를 바꾼다. 육식 동물의 얼굴이 물러나고 초식 동물의 얼굴이 달려온다. 유니폼 위로 튀어나온 무릎이 둥글고 단단하다. 스프린터의 무릎이다. 가젤의 무릎이다.

   외야수들이 앞쪽으로 전진한다. 투수는 2루 주자를 견제한다. 뒤쪽을 힐끔거리는가 싶더니 휙 돌아서 유격수에게 공을 던진다. 가젤의 무릎은 어느새 베이스로 돌아와 있다. 오렌지색 비닐봉지를 인 관중들이 일제히 외친다.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사내는 무슨 말인지 안다.

   마.

   견제구를 던지는 투수를 야유하는 관중들의 표정은 승리에 대한 예감으로 상기되어 있다. 1루 쪽 더그아웃의 선수들은 당장이라도 다이아몬드로 뛰쳐나갈 태세다. ‘마’로 끝나는 문장들이 사내의 머릿속에 소용돌이친다. 견제하지 마. 쫄지 마. 두려워 마. 얼지 마. 울지 마. 죽지 마.

   딱.

   배트에 부딪친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외야로 날아간다. 넘어가지 마. 넘어가지 마. 넘어가지 마. 사내의 숨이 넘어간다. 공은 우익수의 글러브 위를 살짝 지나 본래 수비 위치에서 불과 4미터 떨어진 곳에 떨어진다.

   흰 공이 파란 잔디 위에 떨어지는 순간, 사내의 머릿속에 아버지의 돌아누운 모습이 스쳐가고 심장에 대고 성냥을 그은 듯 뜨거운 기운이 욕지기와 함께 치밀어 오른다. 아버지는 신경질적으로 텔레비전을 끄고 돌아누우며 중얼거리곤 했다. 나가 뭐라 그랬냐. 진즉 글러부렀다고 안했냐. 그럴 때 삐뚜름한 아버지의 어깨는 모국의 패망이라는 비극적 예언이 실현되는 것을 지켜본 점성술사처럼 죄의식에 짓눌려 있었다. 누군가에게 패배는 죄악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소리가 없으면 패배도 없고 죄의식도 없다. 물론 야구도 없다.

   다음 타자가 초구를 건드려 파울 플라이로 물러나고 공수가 바뀐다. 사내는 출입문 쪽으로 걸어간다. 오줌이 급한 것은 아니다. 한 이닝 정도는 버틸 수 있다. 문제는 다음이 마지막 이닝이라는 것이다. 야구는 9회 말 투아웃부터라지만 사내의 야구는 8회 말까지다. 호랑이가 이기고 있든 동점이든 지고 있든 상관없이. 이상한 믿음 때문이다. 자신이 지켜보고 있으면 크게 이기던 경기도 뒤집어질 것만 같기 때문이다.

   사내는 노래방 문을 열고 나가 계단을 밟아 올라간다. 화장실은 1층과 2층 사이 계단참에 있다. 지상에는 여름의 밤이 달궈지는 냄새가 진동한다. 발정난 지구의 체액이 만물을 흥분시키는 밤이다. 무슨 일이든 일어날 것만 같은 밤이다. 사내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누리끼리한 소변기에서 지린내가 진동한다. 사내는 자신의 지린내를 조금 보탠다. 바지 지퍼를 올리려는데 휴대폰이 주머니에서 진저리친다. 사내는 휴대폰을 꺼낸다. 집이다. 생활비를 부친 게 언제였더라. 사내는 폴더를 열고 휴대폰을 귀에 가져간다.

   할머니가 아파.

   아이의 목소리가 곤두서 있다.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할머니가 아파. 할머니가 매우 아파. 할머니가 매우매우 아파.

   아이의 말이 수챗구멍에 빨려드는 물처럼 빠르고 급하게 맴돈다. 어쩌면 아이는 수화기를 쥔 채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내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낀다. 빙빙 도는 건 질색이다. 치미는 욕지기를 꾹꾹 누르며 사내는 입을 연다.

   할머니 바꿔 봐.

   사내는 일부러 천천히 말한다.

   할머니가 안 일어나. 할머니가 안 일어나. 할머니가 안 일어나.

   아이의 말은 이제 고장 난 장난감에서 나는 소리 같다. 아이는 숨조차 쉬지 않고 말한다.

   진구야, 진정해. 진정하고 할머니 깨워 봐.

   할머니가 흔들어도 안 일어나.

   아이의 목소리가 갑자기 고즈넉해진다. 물을 몽땅 빨아들인 수챗구멍처럼 고요하다. 아이는 뭔가를 체념한 듯하다. 무엇을? 누군가 등 뒤에서 몸 어디에 붙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 같다. 사내의 마음에 불길한 구멍이 뚫린다. 시멘트로도, 아교로도, 실리콘으로도 메울 수 없는 구멍. 좋은 것들만, 소중한 것들만 빨아들이는 작고 무시무시한 구멍. 고무마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할머니가 언제부터 자고 있어?

   아침부터.

   오늘 아침?

   어제 아침.

   진구야, 아빠 말 잘 들어. 조금 있다 소방관 아저씨가 집으로 갈 거야. 소방관 아저씨가 가면 문을 열어 줘야 해.

   불났어?

   그게 아니라 소방관 아저씨가 할머니를 도와주러 갈 거야.

   할머니가 아파서?

   응, 할머니가 아파서.

   아빠도 와?

   응.

   언제?

   지금 당장.

   지금 당장?

   사내는 자신의 실수를 깨닫는다.

   네 시간쯤 걸릴 거야.

   네 시간쯤?

   네 시간.

   네 시간.

   아이는 자신의 몸 어딘가에 받아 적는 것처럼 사내의 말을 되풀이한 뒤 전화를 끊는다.

   사내는 119로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한다. 실명을 밝히고 사정을 설명했지만 저쪽은 반신반의다. 노인들은 수시로 자는 법 아니냐고 했다. 어머니를 욕보인 것처럼 사내는 얼굴이 뜨거워진다. 사내는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처럼 힘주어 말한다.

   평생 낮잠 한 번 안 주무신 분입니다.

   그랬다. 어머니는 낮잠도 늦잠도 잔 적이 없다. 심지어 사내는 어머니가 잠든 모습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물은 적도 있다. 엄마는 잠을 안 자요?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했다. 죽으면 오래오래 잘 것인디 뭣 땜시 잔다냐? 사내는 놀랐다. 엄마는 안 자는구나. 엄마는 짜장면도 안 먹고 영화도 안 보고 잠도 안 자는구나. 사내가 말했다. 나도 안 잘래. 어머니가 사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아직 덜 여물었응께 잠을 자야 써. 잠을 자야 키가 큰당께. 풀도 나무도 기린도 밤에 잠을 자야 키가 큰당께. 사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버지는 어른인데 왜 자? 어머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덜 컸응께로. 실제로 아버지는 어머니보다 키가 작았다. 세 명의 고모들도 모두 작았다.

   전화기 저쪽은 사내의 단호한 기세에 움찔한다. 움찔하는 기색이 전파에 매달려 수백 킬로미터를 끌려온다. 전화기 저쪽은 의심을 거두고 주소를 물어 온다. 이제 뭔가 제대로 되고 있다.

   사내는 주소를 댄다. 주소를 읊자 사태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으로 접어든 것만 같다.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다. 돌이킬 수 없는 소방서다. 돌이킬 수 없는 주소다. 불났어? 펄쩍 뛰어오르는 아이의 음성이 귓전을 맴돈다. 아이의 덜떨어진 질문은 차마 건드릴 수 없는 어떤 사태의 본질을 무심코 후빈다. 그래서일까. 사내는 아이와 얘기할 때면 불필요한 긴장감으로 뒷목이 뻣뻣해진다. 지금 사내는 자신의 집에 불이라도 놓은 기분이다.

   아버지는 수가 틀리면 술을 진탕 마시고 집을 태워버리겠다며 기름통의 뚜껑을 열곤 했다. 큰누나가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도, 둘째 누나가 펜팔을 하다 들켰을 때도 풍로에 쓸 등유를 여기저기 끼얹었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의 팔에 울며불며 매달리는 것은 언제나 동생 몫이었다. 아빠, 무서워. 아빠, 무서워. 누나, 잘못했다고 그래. 누나, 잘못했다고 그래.

   그런 날 밤이면 사내의 꿈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났다. 키가 덜 자라 잠을 자야 하는 것들이 번들거리는 불길에 휩싸였다. 풀이 불타고, 나무가 불타고, 기린이 불타고, 아버지가 불탔다. 꿈에서 깨면 사내는 죄책감에 훌쩍였다. 아무에게도 꿈 얘기를 할 수 없었다. 꿈보다 꿈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 슬펐다. 아이는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꾸던 악몽을 떠올리게 했다. 전화를 받는 곳이 소방서라는 사실에서 사내는 눈먼 위안을 얻는다.

   전화기 저쪽에서 즉각 출동하겠다는, 냉큼 알아보겠다는 다짐이 들려온다. 사내의 입에서는 무심코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잘 부탁드립니다.

   사내는 노래방으로 돌아갔다. 팀장은 여자와 한 몸이 되다시피 해서 블루스를 추고 있다. 수나사와 암나사처럼 한 치의 틈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고 있다. 팀장의 커다랗고 반질반질한 머리통은 빙글빙글 돌아서 여자를 자신의 발등에 박아 놓으려는 것 같다.

   사장님.

   팀장은 ‘사장’이라고 불러 주면 좋아했다. 하지만 사내의 목소리는 나사못 주변에서 주저하고 머뭇거리다 쿵쾅거리는 노랫소리에 묻힌다. 땅딸보 팀장은 엉뚱한 곳에 박힌 못처럼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사내는 문 앞에 엉거주춤 선 채로 노래가 끝나기를 기다린다. 룸은 담배 연기가 자욱하다. 너구리굴 같다. 너구리 한 마리, 너구리 두 마리, 너구리 세 마리, 너구리 네 마리, 너구리 다섯 마리, 너구리 여섯 마리, 여우 한 마리. 다시 너구리 한 마리, 다시 너구리 두 마리, 다시 너구리 세 마리, 다시 너구리 네 마리, 다시 너구리 다섯 마리, 다시 너구리 여섯 마리, 다시 여우 한 마리.

   마침내 노래가 끝나고 꽉 물려 있던 나사못이 헐거워진다. 나사못이 대체 무슨 일이냐는 듯 눈을 뜬다. 눈이 기름이라도 먹인 것처럼 반들거린다.

   어이, 목사님 할 말이라도 있어?

   팀장의 목소리가 건들거리며 사내의 멱살을 붙든다. 인기척도 없는 횡단보도 앞에 차를 세우고 파란불을 기다릴 때, 씹던 껌을 휴지에 싸서 주머니에 넣어 뒀다 쓰레기통에 버릴 때 팀장은 대단한 목사님 나셨다며 비아냥거리곤 했다.

   목사라니. 사내는 교회 문턱을 넘은 적도 없었다. 딱 한 번 있었다. 여덟 살 때였고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과자를 준다기에 동생을 데리고 갔다. 동생은 일종의 보험이었다. 만에 하나 들통이 나도 동생을 걸고넘어지면 무사할 거라는 계산이었다. 무뚝뚝한 아버지도 동생이라면 껌벅했으니까.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을 테지만 차마 아까워 못 깨무는 손가락도 있는 법이니까. 불만은 없었다. 동생은 머리도 좋은 데다 늘 방실방실 웃었다. 눈초리는 비스듬하게 처지고 입 꼬리는 추녀처럼 슬며시 올라간 게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다. 긴장할 때도, 겁먹을 때도, 오줌 눌 때도, 잘 때도 웃는 얼굴이었다. 심지어 울 때도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 동생이 사내도 싫지 않았다. 게다가 동생은 사내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태양이 있고 사내가 있으면 어김없이 동생도 있다. 그림자라는 것은 그런 뜻이다.

   태양이 자리를 비울 때도 동생은 사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캄캄한 밤 외따로 떨어져 있는 변소의 검은 아가리에 궁둥이를 내준 채 쭈그려 앉아 있으면 변소 문 앞에서 촛불을 들고 서 있었다. 그럴 때면 동생은 무섭다며 끝말잇기를 하자고 했다. 변소. 소나무. 무지개. 개집. 집배원. 원숭이. 원숭이는 진짜 엉덩이가 빨개? 몰라 끝말잇기나 해. 동물원에 가고 싶다. 어서. 이발소. 소나무. 소나무는 했어. 다시 시작해. 소나무. 무지개. 개집. 집배원. 원숭이. 이발소. 소금. 금니. 니미럴. 욕은 안 돼. 다시. 자장가. 가방. 방학. 학교. 교회. 회사원. 아빠도 회사원이면 좋을 텐데. 왜? 넥타이를 매고 일하잖아.

   사내는 똥을 누느라 대꾸할 수 없다. 동시에 두 가지는 불가능하다. 한 번에 하나씩. 위로든 아래로든. 사실은 동생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떤다. 동생은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말을, 아버지를 배신하는 말을 하고 있다. 사내의 머릿속 외딴 변소의 벽 한구석에 새겨진 낙서를 큰소리로 떠벌리고 있다.

   성. 동생이 암호를 확인하듯 소리친다. 사내는 자신의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갑자기 뉴튼이라는 위인이 떠오른다.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우주의 법칙을 깨달았다는 사람. 사내는 궁금하다. 뉴튼은 똥을 누지 않았던 걸까. 사과를 보고 깨달았다면 똥을 누면서도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성, 거기 있어? 동생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사내는 목소리를 한껏 깔고 대꾸한다. 나, 여기 있어. 사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동생은 자기도 학교에 가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러니 애당초 동생을 떼어 놓고 교회에 갈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낮이든 밤이든. 교회가 아니라 교회 할아비라도.

   교회는 환하고 따뜻하고 달콤했다. 크림빵도 환하고 따뜻하고 달콤했다. 크림이 닿는 곳마다 살살 녹아내렸다. 입술이 혀가 목구멍이 뇌가 새하얗게 녹아내렸다. 그냥 크림이 아니라 생크림이라 했다. 죽은 크림이 아니라 살아 있는 크림. 천국의 존재를 증명하는 맛. 천국이 없다면 그런 맛이 존재할 수 없었다. 크림빵 하나의 믿음, 크림빵 하나의 소망, 크림빵 하나의 사랑. 개중 으뜸은 크림빵이니라. 사내는 세 봉지를 단숨에 해치웠다. 동생의 입술도 크림 범벅이었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높은 목소리로 천국의 영광을 찬미하는 합창을 했다. 크림빵 봉지처럼 투명하고 말쑥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크림빵처럼 환하고 따뜻하고 달콤하게 노래했다. 아, 크림빵 봉지 같은 아버지들. 하늘의 아버지를 찬양하는 지상의 아버지들. 하지만 사내는 따라 부를 수 없었다. 모두 모르는 노래였다. 동생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입만 벙긋거렸다. 사내는 창피하고 조마조마하고 두려웠다. 노래를 모른다는 사실이 창피했고 거기 있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까 봐 조마조마했고 크림빵을 뱉어내라고 할까 봐 두려웠다. 무엇보다 짠하고 서글픈 뭔가가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크림빵과는 결코 관계없는 그 무엇. 사내는 동생의 손을 잡아끌고 도망치듯 교회를 빠져나왔다.

   목사도 회사원이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생이 물었다. 왜? 넥타이를 매고 있잖아. 그럼, 교회도 회사야. 와! 목사는 교회사원이네. 동생은 능청스러운 얼굴로 소리쳤다. 교회사원이라니. 사내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아이의 머릿속에는 전파사가 들어 있는 게 분명해. 반짝반짝, 입을 열면 알전구가 튀어나와. 동생의 말은 교회에서 보았던 크리스마스트리의 알전구처럼 반짝였다.

   때로는 너무 반짝여서 탈이었다. 동생이 그새를 못 참고 작은 누나에게 자랑한 것이다. 작은 누나가 아는 것은 오래지 않아 세상이 알게 됐다. 평소와 달리 동생이 밥알을 깨작거리자 어디 아프냐고 엄마가 물었고 기다렸다는 듯 작은 누나의 입이 발동을 걸었다. 교회에 가서 크림빵을 얻어먹었대요. 세 봉지나 먹었대요. 내일도 갈 거래요. 매일매일 가고 싶대요. 넥타이를 맨 아저씨들이 노래 부르는 것을 보러 또 갈 거래요. 교회사원들의 노래를 배우러……. 아버지가 숟가락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고자질의 노래를 부르던 작은 누나의 입이 얼어붙었다. 숟가락도 젓가락도 밥상도 얼어붙었다. 아버지의 눈꺼풀이 콧방울이 입술이 목울대가 부들부들 떨었다. 품안의 압력을 견디지 못하는 얇고 작은 그릇의 뚜껑처럼 떨어댔다.

   이 거지 새끼들. 아버지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씩씩거리며 부엌으로 달려갔다. 우당탕 소리가 들리더니 방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손에는 기름통이 들려 있었다. 이 거지 새끼들, 오늘 다 같이 죽자. 기름통 뚜껑을 돌리는 아버지의 손도 부들부들 떨었다. 아부지, 잘못했어요. 아부지, 잘못했어요. 동생이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붙들고 매달려 간신히 불바다는 면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미 창백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지글지글. 아버지 몸속의 기름이 조용하지만 격렬하게 타오르는 기운이 느껴졌다.

   벗어라. 아버지가 명령했다. 사내의 두 손이 충직한 형리처럼 아버지의 명령을 따른다. 스웨터가 사내의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대열에서 이탈한다. 행운을 빌어, 친구. 열외를 허락받은 모범생처럼.

   몽땅. 아버지의 목소리는 여전히 지글거린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라간 것처럼 두 발이 번갈아 뛰어오른다. 코르덴바지와 내복과 양말이 차례로 사내에게서 떨어져 나간다. 사흘째 신고 있는 두툼한 나일론 양말이 방바닥에 나란히 서 있다. 양말 신은 투명인간이 저기 서 있다. 동생이 키득거린다. 이럴 때 동생은 살짝 돈 것 같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라니. 사내의 굳은 입매는 감히 미소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한다.

   나가라. 내 집에서 나가라. 아버지가 싸늘하게 말했다. 사내는 팬티 차림으로 쫓겨난다. 너도. 아버지가 동생을 노려보며 말했다. 아부지, 잘못했어요. 동생은 웃으면서, 아니 울면서 싹싹 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동생도 아버지의 뜨거운 기름에 흙을 끼얹지는 못한다. 그래도 기름은 끓는점을 때리고 살짝 가라앉았다. 동생의 옷은 여전히 동생의 몸에 걸려 있다.

   사내는 팬티 차림으로 집 밖에 나선다. 꽝꽝 얼어붙은 골목길을 맨발로 쩍쩍 달린다.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뛴다. 불빛이 없는 곳을 향해 달린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달아난다. 투명인간이 되고 싶다. 동생이 허겁지겁 따라온다. 동생은 어디든 따라온다. 울 때도 웃는 것처럼 보이는 미친 동생은 어디든 따라온다. 태양이 있을 때도 달이 있을 때도. 저기 꽁꽁 얼어붙은 달을 머리에 이고 미친 동생이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수확이 끝난 들판에는 살얼음이 끼었다. 굶주린 추위가 먹잇감을 발견하고 득달같이 달려든다. 어깨를 할퀴고 장딴지를 베어 물고 코를 물어뜯는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돈다. 추위 때문이 아니다. 어둠 때문도 아니다. 팬티가 더럽다. 팬티가 너무 노랗다.

   미친 동생이 넝마를 들고 온다. 성, 이거 입어. 동생이 넝마를 건넨다. 어디서 난 거야? 입김에게 체온을 빼앗긴 사내가 이를 딱딱거린다. 입속의 난쟁이 야경꾼이 단조로운 일에 매인 사람들 특유의 뚱한 냉정함으로 딱딱거린다. 저기. 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에는 허수아비가 벌거벗은 채 서 있다. 허수아비에게는 팬티가 없다. 애당초 그럴 필요가 없다. 허수아비에게는 거시기가 없어서 허수아비의 뼈대는 십자가다.

   급히 집에 가봐야겠습니다, 사장님.

   팀장의 불그스름한 머리가죽이 땀을 흘려 그러잖아도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더 휑뎅그렁하게 만든다. 땀의 나라에 사는 일벌들은 다른 일벌의 땀에 더 민감해진다. 사내는 팀장의 머리가죽이 흘리는 땀 때문에 초조해진다. 충분히 땀을 흘리지 않아서 불행의 눈에 띈 것만 같은 기분. 다른 일벌들 사이에서 뭔가 색다른 면을 드러내 버린 것 같은 불안.

   교회에 불이라도 났나, 목사님?

   자신의 농담이 흡족한 듯 팀장의 입이 헤벌쭉 벌어진다. 성적인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성 앞에선 수컷의 허세로 콧구멍이 커지고 콧잔등에 주름이 진다. 팀장이 새시 공사 건수를 물어 왔을 때 짓곤 하는 표정이다. 삼겹살집에 데리고 가 맘껏 주문하라고 할 때의 얼굴이다. ‘사장’이나 ‘부장’이라고 부르라고 할 때도 짓던 표정이다. 팀장은 다섯 일벌의 사장님이자 부장님이자 형님이다. 팀장은 아파트를 ‘벌집’이라고 불렀다.

   어머니가 많이 아프십니다.

   사내는 아이의 말을 그대로 옮긴다.

   그럼, 가봐야지. 어서 가봐. 여기 일은 걱정 말고.

   어차피 내일은 쉬는 날이지만 팀장은 노예를 해방시키는 영주처럼 말한다.

   고맙습니다.

   사내는 고개도 숙인다.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했다. 두 마디만 잘 하면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다고.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규칙은 있다. 한 번에 하나씩. 팥죽에는 설탕과 소금을 같이 넣지 않는 법. 그러면 단맛도 짠맛도 사라진다. 사내는 늘 궁금했다. ‘고맙습니다’는 설탕일까 소금일까.

   사내는 다시 붉은 양탄자를 밟으며 노래방을 빠져나간다.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남자애가 빠져들 듯 텔레비전을 주시하고 있다.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사내는 애써 텔레비전을 외면한 채 밖으로 나간다.

   여름의 긴 밤이 외설스럽게 밝아 오고 있다. 전기라는 수액을 빨아올린 콘크리트 나무들이 하얗고 노랗고 빨간 꽃들을 펑펑 피워낸다. 에디슨이 처음 발명한 전구에 쓰인 필라멘트는 판지였다. 판지 쪼가리는 진공의 유리알 속에서 3백 시간이나 타올랐다. 아이에게 사준 세계위인전집에서 본 것이다. 사내는 빛나는 전구를 처음 본 사람처럼 휘둥그런 눈으로 주위를 둘러본다. 놀라운 마술을 목격한 사람처럼. 아이는 50명의 내로라하는 위인들 중에서 에디슨을 가장 좋아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사내가 에디슨을 좋아한 이유는 달랐다. 에디슨이 없었다면 야구를 낮에만 해야 했을 것이다. 에디슨은 모든 밤의 아버지다.

   사내는 노래방 건물 뒤편으로 돌아갔다. 저기 어둠을 머금은 무심한 건물 외벽 아래 엎드려 있는 차가 사내를 기다리고 있다. 1995년식 봉고. 아이가 태어나기도 전에 만들어진 골동품. 전에 사내가 따라다니던 새시 시공업자가 체불된 넉 달치 임금 대신 넘긴 물건이다. 당시 시세로는 잘 쳐줘도 두 달치에 불과했지만 사내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빈손보다는 운전대를 쥐는 게 나았다.

   사내는 봉고에 올라타 시동을 걸고 무심하고 어두운 외벽에서 덜덜거리며 떨어져 나왔다. 차는 힘겹게 걸음을 뗀다. 매해 매해가 폐차 직전이다. 아니, 매일 매일이 폐차 직전이다. 엔진오일이 새고 에어컨 가스가 새고 냉각수가 새고 배터리 전기가 샌다. 새지 않는 건 기름뿐이다. 그런 식으로 벌써 3년을 사내와 함께했다. 연비도 꽝이고 수리비도 엄청 들어가지만 차마 버리지 못했다. 차는 풍 맞은 노인처럼 골골거리다가도 사내의 마음이 폐차장 근처에만 가면 산삼이라도 달여 먹은 듯 벌떡 일어나곤 했다. 14만 킬로미터를 달리는 동안 영혼이 깃든 것인지도 모른다. 자동차라는 물건이 처음 나왔을 때 마차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코너를 돌 때 이렇게 외치곤 했다. 워워. 무엇 때문인지 사내는 이 얘기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것이라면 뭐든 사내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최초의 전구, 최초의 자동차, 최초의 비행기, 최초의 우주인, 최초의 달 착륙. 아이를 위해 사준 세계위인전집의 위인들은 대부분 최초로 무엇을 발명하거나 최초로 어딘가에 발을 디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술사였다. 짠 하고 검은 장막을 걷으면 전구가 자동차가 비행기가 남극이 북극이 달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내가 성경을 재미삼아 읽은 것도 그 때문이다. 인류의 최후를 예언한 그 책에는 ‘최초’가 차고 넘쳤다. 최초의 낮, 최초의 밤, 최초의 하늘, 최초의 땅, 최초의 노동, 최초의 휴일, 최초의 남자, 최초의 여자, 최초의 죄, 최초의 살인, 최초의 홍수 등등. 게다가 최고의 마술사도 등장한다. 예수야말로 최강의 마술사다. 물을 포도주로 만들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고 물 위를 걷고 앞날을 내다보고 무덤에서 탈출한다. 마술사들은 모두 예수의 제자다. 사내에게 성경은 마술에 관한 책이다.

   사내는 뒷골목을 빠져 나가 큰길로 합류한다. 차가 많다. 흰 전조등과 붉은 미등이 서로 어긋나며 흘러간다. 사내는 흰빛의 강에 섞여든다. 섞이자마자 흰빛은 사라지고 붉은빛만 가득해진다. 어느 방향이든 머리는 흰빛 꽁무니는 붉은빛이라는 사실이 인생에 관한 예기치 않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 같다. 이를테면 달의 뒷면 같은 것. 인생의 수수께끼 같은 것. 집에서는 결코 답을 찾을 수 없는 것. 길 위에서만 겨우 어림짐작할 수 있는 것.

   도로는 좁고 커브가 많다. 곳곳이 공사 중이다. 아파트, 사무실, 상가, 학교, 교회. 공사현장은 발 빠른 짐승을 잡기 위해 파놓은 덫처럼 검고 우묵하고 조용하다. 반쯤 내려진 창문 틈으로 바다 냄새와 흙냄새와 녹아내린 아스팔트 냄새와 죽은 태양 냄새가 난다.

   바다 냄새가 희미해질수록 시야를 가로막는 붉은빛도 뜸해진다. 액셀에 얹힌 발목에 힘이 들어간다. 피스톤과 크랭크와 몇 가닥의 축으로 얽힌 기계장치는 도로의 급소에 연결된 듯 슬쩍슬쩍 건드릴 때마다 도로는 부리나케 등 뒤로 달아난다. 도로가 달아난 만큼 사내는 앞으로 튕겨진다. 도로는 계속 달아난다. 하나가 달아나고 다른 하나가 달아나도 여전히 달아난다. 천재지변을 감지하고 달아나는 겁에 질린 개구리 떼처럼 풀쩍풀쩍 뛰어간다. 시야의 빗각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뜸해지고 어둠이 만연한다. 어둠 속에서 흙의 기운이 강성해지고 산 냄새가 진동한다.

   길이 확 넓어지는가 싶더니 도시의 관문이 나타난다. 다시 붉은빛들이 어둠 위로 떠올라 강을 이루며 좁은 수문 앞에서 소용돌이친다. 사내의 발이 브레이크 페달을 누른다. 널찍한 페달을 통해 관성의 투정이 고스란히 발바닥에 전해진다. 차가 쿨럭거린다.

   빛으로 뒤덮인 톨게이트는 천국의 문 같다. 천국에 가려면 기름을 단단히 채워야 한다. 천국에는 주유소가 없을 테니까. 사내는 연료계를 확인한다. 기름은 가득 차 있다. 어디선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들린다. 여름밤에 웬 귀뚜라미? 귀뚜라미 소리가 아니라 휴대폰 소리다. 사내는 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낸다. 모르는 번호를 보자마자 사내는 붉은 제복을 입은 소방관을 떠올린다. 그제야 급히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떠올린다. 어머니. 사내는 어머니를 잊고 있었다는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낀다. 속죄라도 하는 기분으로 황급히 전화를 받는다.

   예감은 적중했다. 사내의 집으로 출동한 소방관이었다. 소방관이 사내의 신원을 체크했다. 이름을 묻고 주소를 확인하는 목소리가 조심스럽다. 자신보다 더 불행한 사람을 대할 때의 조심스러움. 소방관은 사내의 신원을 확인한 뒤 잠시 침묵한다. 사내도 섣불리 입을 열지 못한다. 전화기 저쪽은 좋지 않은 소식을 만지작거리는 낌새다. 그 와중에도 차는 관문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간다. 전화기 저쪽에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귀가 끈적거린다. 천국의 관문을 지키는 천사가 통행료를 요구한다. 천국행치고는 지나치게 싸다. 바늘구멍이 낙타 통과하기다. 사내는 전화기를 귀와 어깨 사이에 끼우고 지갑을 꺼낸다. 마침내 소방관이 입을 연다.

   모친께서…….

   잠깐만요.

   사내는 서둘러 통행료를 건넨다. 좋은 소식을 사려는 것처럼.

   뭐라고요?

   사내가 다시 물었다.

   모친께서 사망했습니다. 저희가 출동했을 때 이미 사망 상태였습니다. 지금 병원으로 이송 중입니다.

   소방관의 말이 심장에 차갑게 박힌다. 대리석 심장의 뜨거운 외피에 비문처럼 새겨진다. 모친께서 사망했습니다. 심장에서 발화한 불 때문에 폐는 연기로 자욱하다. 숨을 쉴 수 없다. 기이하게도 속은 불덩이인데 몸은 차가워진다. 귓불이 이마가 손목이 팔꿈치가 발목이 차갑다. 전파에 실려 온 어머니의 죽음이 관자놀이에 들어앉아 차갑게 굳는다. 부화를 기다리는 알처럼 단단하고 고집스럽다. 얼음을 씹어 먹은 것처럼 정수리가 아프다.

   사내는 한 번도 죽은 어머니를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아이의 심상치 않은 전화도 어머니의 죽음을 예고하지는 못했다. 어머니는 낳고 기르는 존재이지 늙고 죽는 존재가 아니다. 실제로 어머니는 병원 신세를 진 적조차 없었다. 어지간한 병은 그냥 앓았다. 어머니는 말하곤 했다. 고뿔은 병원에 가면 일 주 만에 낫고 병원에 안 가면 칠일 만에 낫는다. 치질로 고생할 때도 어머니는 두꺼비를 잡아다 짓이겨서 항문에 붙였다. 어머니가 방귀를 낄 때면 두꺼비 소리가 났다.

   사내는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려 애쓴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 죽음이 어머니의 얼굴을 데려갔다. 두꺼비라도 삼킨 듯 속이 메슥거린다. 사내는 핸들을 급히 꺾어 차를 갓길에 댔다. 소방관과의 통화는 어떻게 마무리되었나. 뭔가에 정신이 팔려 있던 것처럼 사내는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머릿속에 뿌옇고 축축한 막이 드리워진 느낌이다. 사내는 종이에 끼적인 낙서를 지우는 것처럼 자신의 머릿속을 연필로 까맣게 칠한다. 모든 흔적을 지워버리려는 완강한 팔놀림이다. 하지만 사내의 바람을 비웃듯 새까만 먹지 위로 흰 글자가 떠오른다. 앞장에 꾹꾹 눌러쓴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것은 병원 이름이다. 소방관이 일러준 병원. 어머니의 죽음을 최종적으로 확인하고 공식화할 백의의 기관. 장례식장이 딸린 큰 병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항문을 틀어막고 대장부터 위장까지 쥐어짜는 것 같다. 사내는 조수석을 돌아본다. 주유소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휴대용 티슈, 신용카드 영수증, 야구모자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조수석 아래 처박혀 있는 검정 비닐봉지가 눈에 띈다. 사내는 조수석 쪽으로 허리를 굽혀 비닐봉지를 집어 올린다. 주둥이가 매듭으로 봉해져 있다. 매듭이 완강하다. 사내는 손톱을 세워 겨우 매듭을 해결한다. 안에는 음료수 캔이 담겨 있다. 부라보콘 껍질도 있다. 공사현장에서 갈증을 달래기 위해 먹고 남은 것들이다. 부라보콘은 사내의 몫이었다. 음료수를 먹으면 금방 오줌이 마려워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늘 그 아이스크림만 고집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맛이 익숙해서다. 사내는 음료수 캔과 아이스크림 껍질을 다 꺼내기도 전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기다렸다는 듯 기도가 열리고 내부의 어둠 속에서 뭔가가 치밀어 올랐다. 첫 펌프질의 감질 맛 나는 결과물처럼 구역질이 목젖을 몇 번 간질이더니 시큼한 액체와 완결되지 못한 소화의 증거물인 작은 알갱이들이 입에서 쏟아져 나온다. 펌프 주둥이를 박차는 지하수처럼 콸콸 쏟아진다. 노래방에서 마신 폭탄주와 저녁에 먹은 삼겹살과 소주와 된장찌개가 걸쭉하게 흘러내린다. 어머니의 항문을 지키던 두꺼비 떼가 쏟아진다. 사내는 두꺼비를, 어머니의 죽음을 낳는다. 위액까지 전부 쏟아진다. 목구멍의 막이 벗겨진 것처럼 쓰리다. 눈물이 핑 돈다. 우는 것은 아니다. 울음은 태어나는 것들의 몫. 뭔가를 낳고 우는 사람은 없다. 그것이 죽음일지라도. 허물만 남은 사내의 팔이 비닐봉지의 주둥이를 꼼꼼한 매듭으로 봉한다.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이 담기기라도 한 듯한 손놀림이다.

   사내는 다시 핸들을 잡고 액셀을 밟는다. 갈 길이 멀다. 어머니의 얼굴을 한시라도 빨리 봐야 할 것 같다. 어머니의 얼굴은 여전히 떠오르지 않는다. 날이 밝기 전에 어머니의 얼굴을 봐야 할 것 같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낯선 길 위에서 미적거리는 것은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마음이 급해진다. 이제 어머니의 죽음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결코 끌 수 없는 불이지만 발을 동당거린다. 그 기세에 눌려 액셀이 납작 엎드린다. 봉고가 화들짝 놀라 곧게 뻗은 어둠의 트랙으로 뛰어든다. 백미러가 톨게이트를 통째로 집어삼킨다. 사내는 톨게이트를 천국의 문이라고 생각한 자신이 원망스럽다. 그 불경한 연상 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만 같다. 얼토당토않은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은 어둠의 힘이 너무 세다. 당분간 어둠은 점점 더 강해질 것이다. 사내는 어둠을 똑바로 바라볼 기력조차 없다. 그래서 앞차의 미등만 노려본다. 액셀은 허리를 펼 새가 없고 봉고는 숨 돌릴 새가 없다.

   노랗고 파랗고 빨갛고 검은 어둠이 미친 말처럼 힝힝거리며 지나간다. 저 미친 말 같은 어둠 속에는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논이 있고 밭이 있고 과수원이 있고 축사가 있고 집이 있고 교회가 있고 절이 있고 무덤이 있다. 휴게소도 있다. 휴게소도 지나간다. 갈증도 허기도 요의도 입을 꽉 다문 사내에게 감히 말을 붙이지 못한다. 사내는 태양이 진 쪽으로만 달린다. 김해, 마산, 가야, 함안, 진주, 화개, 사천, 성내, 광양, 승주, 곡성, 옥과, 창평이 형광표지판에 담겨 법정최고속도로 휙휙 사라진다.

   마침내 목적지가 나타난다.

   어머니가 이제 막 죽어 누워 있는 곳.

   동생이 죽어 누워 있는 곳.

   아버지가 죽어 서 있는 곳.

 

(다음 호에 계속)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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