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란 무엇인가 (제8회)

 

   장편연재_제8회

 

 

야구란 무엇인가

 

김경욱

 

 

 


 

   여관 근처 기사식당에서 돈까스와 된장찌개로 아이와 자신의 배를 채운 사내는 염소의 흔적이 끊긴 곳으로, 목사가 일러준 동네로 차를 몰고 돌아간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부동산중개업소 앞에 차를 세운다.

   불펜에서 꼼짝 말고 기다려.

   싫어.

   아이가 간밤에 무슨 꿈을 꿨는지, 꿈결에 무슨 낌새라도 챘는지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아빠는 선발투수고 진구는 구원투수잖아. 구원투수는 불펜에서 기다려야지.

   선발투수가 계속 던질 수는 없어.

   아이가 창밖을 바라보며 말한다. 사내는 말문이 막힌다. 혹을 떼려다 혹에게 보기 좋게 한방 맞았다.

   사내는 정신을 추스르며 반격을 쥐어짠다.

   진구가 투수 할 거야? 그럼, 너 혼자 내려야 돼.

   아빠도 내려야 해.

   왜?

   아빠는 코치야. 투수가 바뀔 때는 코치도 올라가.

   사내는 또다시 말문이 막힌다. 아이는 야구율법학자다.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부동산 사무실에 들어간다. 아이는 벽에 걸린 지도 앞에 얼굴을 들이민 채 꿈쩍도 않는다. 눈도 깜박하지 않는다. 지도와 눈싸움하는 것 같다. 사내는 부동산중개업자에게 인근 고물상의 위치를 얻어낸다. 큰물이 빠져나간 땅이 말랐는지 확인해 줄 비둘기를 수중에 넣는다.

   사내는 바퀴 달린 방주에 다시 올라타 창문 너머로 비둘기를 날린다. 비둘기를 따라간다. 비둘기가 오락가락한다. 내려앉을 곳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 좌고우면한다. 간선도로와 이면도로를 이리 기웃, 저리 갸웃한다. 부동산중개업자가 표지 건물로 일러준 편의점, 휴대폰대리점이 너무 많아 헷갈린다.

   아빠, 세븐일레븐에서 좌회전.

   부동산중개업자의 말을 다 듣고 있던 걸까. 아이가 큰 소리로 외친다.

   방주는 아이의 지시에 따른다.

   아빠, SK텔레콤에서 우회전.

   부동산 사무실의 지도를 머릿속에 담아 온 걸까. 아이의 목소리는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거침없다.

   아이의 지시대로 휴대폰대리점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서니 정말로 고물상이 나타난다. 하느님은 내비게이션의 갈비뼈를 꺼내 아이를 빚은 걸까. 사내는 아이가, 아이의 재주가 신기하다. 담임선생의 말대로 아이는 별나다. 별난 토끼, 별나라 토끼다.

   고물상에도 아이와 함께 간다. 야구율법학자의 말에 따르면 이번에는 사내가 구원투수고 아이가 코치다.

   고물상에는 고물이 많다. 산을 이루고 있다. 폐지 산, 고철 산, 플라스틱 산, 라디오 산, 텔레비전 산, 냉장고 산. 폐가전제품의 산이 가장 높다. 동생은 전기를 먹는 것이라면 뭐든 뚝딱 고쳤다. 죽지 않았다면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은 떼어 놓은 당상이었을 텐데. 금메달을 목에 걸고 무지개차, 아니 무개차를 타고 카퍼레이드도 했을 텐데. 어쩌면 우주인이 되어 달나라에 갔을지도 모르지. 세상을, 우주를 가졌을 텐데. 그러니까 살아만 있었다면. 사내는 라디오와 텔레비전과 냉장고 더미를 보며 쓰게 입맛을 다신다.

   고물상 사무실을 나서면서도 사내는 쓴 입맛을 다신다. 염소의 흔적을 찾지 못했다. 다른 고물상의 위치를 얻는 데 만족해야 한다. 첫 번째 비둘기는 마른 땅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간다.

   두 번째 고물상은 어렵지 않게 찾는다. 모두 인간 내비게이션 덕분이다. 아이는 사내가 묻지 않아도 자동으로 우회전, 좌회전, 직진을 또박또박 안내한다. 이 별난 아이가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온 동네를 장님처럼 더듬고 있었겠지. 아이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든다. 상을 주기로 한다. 주사위놀이판의 가르침과 같이, 죄를 지으면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아야 한다. 사내가 아는 정의란 그런 것이다. 의(義)의 열매와 죄의 열매를 한 바구니에 담지 않는 것, 의인의 목숨과 죄인의 목숨을 함께 거두지 않는 것. 주사위놀이판이라면 열두 칸 전진일 텐데. 사내는 고심 끝에 동고동락하던 야구 모자를 상으로 준다. 빨간 호랑이 면류관을 아이에게 넘긴다. 머리의 반쪽이 없어지는 기분이다. 아이에게 상을 주기는 난생처음이다.

   야구 모자를 쓴 아이와 방주에서 내린다. 이번에는 아이가 구원투수, 사내는 코치다. 스치기만 해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염소의 인상착의 앞에서 두 번째 고물상은 고개를 젓는다. 여기에도 염소의 흔적은 없다. 다른 고물상의 위치를 아이의 내비게이션에 입력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두 번째 비둘기도 마른 땅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간다.

   세 번째 고물상도 아이 덕분에 헤매지 않고 찾는다. 아이와 함께 차에서 내린다. 이번에는 사내가 구원투수고 아이는 코치다. 지금은 몇 회쯤일까? 고물상으로 걸어가며 사내는 부질없는 질문을 떠올렸다가 금방 지워버린다. 지금은 염소의 흔적에 집중해야 한다.

   고물 산이 다른 고물상보다 높고 험하다. 간밤의 비에 웃자란 잡초들이 고물 산자락에 녹색 띠를 두르고 있다. 가장자리의 녹색 띠 때문에 고물 산은 마구잡이로 나무를 베어낸 민둥산처럼 보인다. 사내는 플라스틱 민둥산을 기웃거리다가 오토바이에서 뜯어낸 바람막이를 집어 든다. 저 안쪽의 녹슨 컨테이너가 사무실이다. 포치까지 거느린 사무실이다. 두 개의 각목을 나란히 세워 고정한 검정 그물을 컨테이너 지붕까지 걸쳐 놓았다. 검정 그물에는 녹색 이파리를 엮어 놓아 야전 막사처럼 보인다. 플라스틱판을 집어 든 사내는 검은 물을 골똘히 품고 있는 크고 작은 웅덩이를 피해 사무실로 향한다.

   컨테이너 안은 시원하다. 에어컨이 맹렬한 소리를 내며 냉기를 토해 내고 있다. 고물상 주인은 의자 깊이 엉덩이를 파묻고 철제 책상에 발을 올린 채 신문을 펼쳐 읽고 있다. 빨간 해병대 티셔츠 소매 아래 드러난 팔뚝은 우락부락한 힘줄로 파랗다. 사내가 헛기침을 하자 짧고 흰 머리카락이 철사처럼 박힌 붉은 머리통이 신문 너머로 떠오른다. 혈색은 좋지만 주름이 자글자글한 얼굴이 딸려 올라온다. 꼬깃꼬깃한 붉은 색종이를 펼쳐 눈, 코, 입을 그려 넣은 것 같다. 쭈글쭈글한 붉은 눈두덩 밑에서 새까만 눈동자가 한번 찍히면 영원히 찍힌다는 구호를 외치며 날카롭게 빛나고 있다. 사내는 붉은 머리통 너머로 시선을 던진다. 스댕 1400원, 양철 깡통 1000원, 고철 200원, 물랭이 140원.

   이건 얼맙니까?

   사내가 묻는다.

   그건 투 스타가 몰던 오토바이에 붙어 있던 놈이야.

   일 킬로에 백사십 원 아닙니까?

   사내가 벽에 붙은 가격표를 보며 말한다.

   일반적으로 그렇단 말이지. 횟집 가격표에도 다금바리는 싯가라고 붙어 있거든. 그러니까 그 물건은 그냥 물랭이가 아니라 다금바리 물랭이란 말이지.

   고물상 주인은 노래 부르듯 말한다. 가물치처럼 튀어나온 입, 말하기 좋아하는 입이 열리면 노랫가락이 술술 흘러나온다. 사내는 주크박스의 입에 동전 몇 개를 넣기로 한다. 투 스타의 ‘물랭이’는 미끼일 뿐, 진짜 목표는 염소다. 큰 놈을 잡으려면 미끼도 커야 하는 법.

   얼마면 되겠습니까?

   한 장.

   사내는 지갑에서 5천 원 권을 꺼낸다.

   율곡 선생 말고 세종대왕.

   사내는 5천 원 권을 한 장 더 꺼낸다.

   두 명의 신하보다는 한 명의 왕이지.

   아, 네.

   사내는 만 원 권을 건네며 본론을 꺼낸다.

   고물상 주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수레바퀴에 유리를 얹은 탁자에 딸린 의자를 권한다. 자동차에서 떼어낸 의자다. 아이는 벽에 걸린 사슴 머리에 정신이 팔려 있다.

   할레루야. 선생이 앉은 자리에 교황께서 앉으셨소. 이 녀석들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하께서 방한 당시 탔던 차에서 뜯어냈단 말이지.

   주크박스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처럼 노래한다.

   아, 네.

   사내는 엉덩이를 슬쩍 들고 의자를 새삼 내려다본다. 의자에게 경의를 표한다. 고물상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피어난다.

   그래, 사람을 찾는단 말이지?

   고물상이 두 손을 마주 비비며 말한다.

   사내는 염소의 인상착의를 댄다. 한쪽 볼에 뱀처럼 똬리를 튼 화상 흉터, 라는 금화가 주크박스를 들썩이게 한다.

   알다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동 트기 무섭게 딸딸이 끌고 오던 노인네.

   사내의 눈동자에 불이 켜진다. 마침내 염소의 흔적을 찾았다. 세 번째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물고 왔다. 물 빠진 땅을 찾은 것이다.

   오늘내일한다던데…….

   주크박스가 이상한 소리를 낸다. 맛이 간 게 분명하다. 맛이 간 주크박스는 패야 한다. 오늘내일이라니. 누구 마음대로. 사내의 이목구비가 뒤틀린다. 맛이 간 것은 주크박스가 아니라 사내다. 눈앞이 깜박깜박하고 지지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텔레비전도 맛이 가고 라디오도 맛이 간다. 맞아도 싼 텔레비전이고 라디오다. 주크박스는 잘 돌아간다. 염소의 교통사고에 관한 노래를 들려준다.

   어두운 새벽길 육교 밑은 컴컴하지 사람은 시커멓지, 부랴부랴 브레이크 밟았지만 비는 내리고 길은 미끌미끌, 날아간 화살이요 엎질러진 물이라.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단 말이지.

   사내는 따귀라도 맞은 것처럼 볼이 화끈거린다. 고물상의 노래가 자신을 비웃고 질책하는 것 같다. 귀에 거슬린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어대는 소리다. 교황의 의자조차 가시방석이다. 100이 눈앞인데,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있는데 사악한 우연이 또 다른 뱀을 준비하고 있었다. 홀수면 뱀인 줄 알았는데 홀수든 짝수든 뱀이었다. 동생이 주사위를 던졌을 때 짝수가 나오길 간절히 빌었는데 멍청한 짓이었다. 동생은, 영리한 동생은 알고 있었던 거야. 미친 영리한 동생은 주사위가 속임수에 불과하다는 걸 꿰뚫고 있었던 거야. 짝수가 나와도 염소는 우리를 가만 두지 않았을 거야. 피를 보고야 말겠다는 눈빛이었어. 그것도 모르고 동생이 주사위를 삼키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멍청한 생각을 했어. 멍청한 새끼. 아둔한 새끼. 사내는 자신이 역겨워 견딜 수 없다. 싸구려 속임수에 놀아난 자신이 죽이고 싶을 만큼 구역질난다. 병원이 어쩌고 가족이 저쩌고. 주크박스가 불행에 또 다른 불행을 얹으며 노래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내는 도망치듯 자리를 뜬다. 방주로 숨어든다. 큰물은 아직 빠지지 않았다. 아직은 방주에서 내릴 때가 아니다. 큰물이 죄악으로 더럽혀진 세상을 쓸어버리기 전에는 내리면 안 된다. 사내는 바들바들 떤다. 심장은 불바다인데 머리꼭지는 얼음이라도 삼킨 듯 얼얼하다.

   아이가 뭔가를 들고 온다. 플라스틱판을 조수석에 들이민다.

   이런 쓰레기를 뭐 하러 가져와?

   사내의 외침이 불똥처럼 튀어 오른다.

   아빠가 만 원 주고 샀잖아.

   아이의 딱딱하고 차가운 대답이 사내의 반대쪽 뺨을 후려친다. 삐뚜름해졌던 눈과 귀가 제자리를 찾는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정신을 추스른다. 사내는 플라스틱판을 짐칸에 던진다. 투 스타의 오토바이라니, 세상에. 잠깐 눈 감으니 코를 베어간다. 그런데 무슨 병원이랬지? 라디오가 맛이 가는 바람에 정작 중요한 대목을 놓쳤다. 사내의 눈과 귀가 아이를 찾는다. 아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병원 이름이 뭐라고 했지?

   친구가 있는 병원?

   ‘친구’라는 말이 심장을 찌른다. 알고 보니 칼이 아니라 열쇠다. 맹꽁이자물쇠가 딸깍 열리고 심장에 갇혀 있던 불길이 얼굴을 드러낸다. 추적이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사고라니. 누구 마음대로 교통사고를 당한단 말인가. 염소는 나의 것. 염소에게는 교통사고를 당할 권리도 없다.

   그래.

   병원 이름을 얻어내기 위해 사내는 마지못해 대답한다.

   아이의 입에서 병원 이름이 곧장 튀어나온다. 염소가 눈 감기 전에 빨리 가야 한다. 사내의 심장이 조급해져 급하게 뛴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단 말이지. 고물상의 노래가 심장에 밟힌다. 사내는 서둘러 지도를 펼친다.

 

   지도와 아이의 도움으로 염소의 병원을 손쉽게 찾는다. 아이를 떼어 놓을 궁리를 하는데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린다. 아이는 병원을 경원한다. 의사, 간호사, 환자. 유니폼투성이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유니폼투성이지만 아이는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긴장의 털을 잔뜩 곤두세우고 있다. 병원이, 병원의 어떤 면이, 병원이 불러내는 어떤 기억이 아이의 솜털에 정전기를 일으키고 있다. 사내는 어머니를, 어머니의 죽음을 떠올린다. 어머니의 죽음이 새삼스럽다. 어머니를, 어머니의 죽음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온다. 죄책감에 떠밀려 짐칸을 돌아본다. 어머니의 오동나무 상자가 공구상자 밑에 깔려 있다.

   차에서 내린 사내는 짐칸 문을 열고 어머니를 공구상자 위에 올려놓는다. 아이는 병원을 노려보며 의자에 붙박여 있다. 이 고물차가 공장의 조립라인에서 사뿐사뿐 걸어 나올 때부터 조수석에 붙어 있었던 것 같다. 붙박이 조수다. 초창기의 차는 전면에 달린 레버를 돌려 시동을 걸도록 만들어졌는데 시동 레버를 돌릴 사람을 위한 자리가 바로 조수석이었다. 차에서 혼자 내리니 홀가분하지만 허전하기도 하다. 조수를 잃은 기분이다. 사내는 뒤를 돌아본다. 아이와 잠깐 눈이 마주친다. 아이의 눈빛에서 혼자 남겨질 거라는 두려움은 읽을 수 없다. 병원에는 뒷문이 없어서 달아날 구멍이 없다고 여기는 듯하다.

   사실 그것은 염소에 대한 사내의 생각이다. 아이의 시선이 사내의 머리 위로 옮겨간다. 사내에게 어떤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처럼 위쪽을 노려본다. 사내도 위를 올려다본다. 녹색 십자가가 새하얀 건물 꼭대기에서 무심히 펄럭이고 있다. 오늘내일이라니. 막다른 골목에 몰린 염소지만 눈앞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칼이 촘촘히 박힌 까만 상자는 텅 비었을지도 모른다. 사내는 염소의 건재를 간절히 바라며 걸음을 재촉한다. 늦장을 부리면 염소가 그새 달아날 것 같다.

   사내에게 병원은 언제나 미로다. 여기가 저기 같고 저기가 여기 같다. 마음이 급해서 더 복잡하고 거대한 미로다. 코너를 돌면 똑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발목을 낚아챌 것처럼 반질반질한 복도, 약품 냄새를 풍기며 머리를 어지럽히는 벽, 소리 없이 열리고 닫히며 유령 같은 사람을 토해 내는 문. 환자들도, 의사들도, 간호사들도 비슷비슷해서 이 사람이 저 사람 같고 저 사람이 이 사람 같다. 모두모두 추적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다. 허둥지둥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던 사내 앞에 중환자실이 나타난다. 벽에 내걸린 명단을 서둘러 살핀다. 염소의 이름은 없다. 사내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다시 허둥지둥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던 사내 앞에 안내 데스크가 나타난다. 안내원에게 다짜고짜 염소의 이름을 댄다. 염소를 어디에 감췄느냐고, 어서 내놓으라고 소리치고 싶은데 꾹 참는다. 안내원은 원무과에 가서 알아보라고 한다. 원무과로 달려간다. 반질반질한 복도를 일축하고, 약품 냄새를 풍기는 벽을 제치고, 소리 없이 열리고 닫히는 문을 따돌리고 원무과로 달려간다. 원무과에는 담당자가 없다. 담당자가 자리를 피해서 허탕 친다. 모두모두 한통속이 되어 염소를 감춘다. 믿을 것은 두 다리와 두 눈뿐.

   사내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간다. 입원실은 5층부터다. 엘리베이터는 6층을 지나 올라가고 있다. 사내는 비상계단으로 뛰어 올라간다. 5층부터 뒤진다. 병실 문 옆에 붙은 환자 명단을 일일이 확인한다. 염소가 없다. 6층에도, 7층에도 없다. 냄새를 맡고 달아난 걸까. 오늘내일한다지 않았나. 염소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30년 동안이나 미꾸라지처럼 요리조리 피해 다닌 염소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다. 8층으로 올라가는 다리가 후들거린다. 환자 명단을 일별하는 눈이 시큰거린다. 8층에도 염소의 이름은 없다. 염소가 쉽게 덜미를 내줄 리 없다. 9층으로 오르는 사내의 표정이 어둡다. 눈을 부릅뜨고 명단을 확인한다. 염소의 이름은 없다. 없다. 없다. 없다. 사내가 멈칫한다. 염소의 이름이다. 왼쪽 맨 아래 분명히 염소의 이름이 적혀 있다. 숨이 멎을 것 같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몸이 차가워진다. 손에 식은땀이 맺힌다. 병실 문이 열려 있고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내는 병실 안쪽을 들여다본다. 왼편 안쪽 구석 침대를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다. 염소의 침대를 둘러싸고 기도 중이다.

   어린 양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어린 양이 죄에서 일어나듯이 병상에서 일어나게 해주소서.

   용서라는 눈먼 칼이 사내의 애먼 뱃가죽을 찌른다. 용서라니. 인간이 죄를 짓는 것은 용서라는 말 때문이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은 제가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산 사람의 손과 발에 못을 박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었다. 사내는 용서라는 무책임한 말에 성난 얼굴로 돌아선다. 타락한 기도를 돌아보지 않는다. 5백만 명의 의인을 찾아내도 구할 수 없는 죄악의 도시가 유황불에 무너지고 있어서 돌아보면 소금기둥이 되기라도 할 것처럼. 대신 진짜 기도를 올린다. 저는 먼지와 재에 지나지 않는 몸이지만 감히 아룁니다. 약속한 의인 쉰 명에서 다섯 명이 넘친다고 죄악의 성읍을 내버려두시렵니까?

   사내는 염소의 상태를 염탐하기 위해 간호사실로 간다. 담당 간호사는 거구다. 코끼리다. 코끼리 간호사에게 염소의 상태를 묻는다.

   티에이 환자분이요? 보름째 코마 상태입니다. 라이프 서포트로 근근이 버티고 계세요.

   꼬마요?

   간호사가 얼굴을 붉힌다.

   의식불명 상태예요. 생명유지 장치로 근근이 버티고 있어요.

   이번에는 사내가 얼굴을 붉힌다.

   그러니까, 거시기 뭐냐, 식물인간이라는 뜻입니까?

   그런 셈이죠.

   사내의 얼굴이 새파래진다. 30년을 찾아 헤맨 끝에 겨우 덜미를 잡았는데 식물인간이라니. 식물염소라니. 염소가 죽음의 문턱에 드러누워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속임수 같다. 너구리는 궁지에 몰리면 죽은 척하지 않는가. 담당 의사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하지만 간호사는 난색을 표한다.

   실례지만 환자분과는 어떤 관계죠?

   의외의 반격에 사내는 당황한다. 섣불리 입을 떼지 못한다.

   가족분이시군요. 가족이 나타나면 연락 달라고 보험회사 직원이 명함을 남겼는데…….

   간호사가 말끝을 흐리며 책상 서랍을 뒤진다.

   거시기 아닌데요.

   하긴 가족분이 이제 나타나실 리 없겠지. 그럼 그 택시…… 기사분?

   아닌데요.

   택시기사라는 말에 사내의 미간이 좁아진다. 택시기사가 모든 것을 망쳐버렸다. 고물상의 노래가 귀에 거슬린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고물상은 택시기사의 입장에서 노래했다. 무단횡단이면 운전자에게 책임이 없다는 건가. 어쨌거나 가해자 아닌가. 염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택시기사를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누구도 염소한테 손 댈 수 없다. 하느님조차도. 동생을 데려올 수 없다면 염소도 데려갈 수 없다.

   그런데 택시기사도 찾아온 적 없습니까?

   매일같이 전화해서 환자분 상태를 확인했는데 며칠 전부터 연락이 뚝 끊겼어요.

   …….

   아! 교회분이시군요!

   아, 네.

   사내는 엉겁결에 고개를 끄덕인다.

   잠깐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간호사는 의사를 부르러 자리를 뜬다. 간호사가 의사를 데려온다. 담당 의사는 젊다. 젊다기보다는 어려 보인다. 사내는 의사에게 염소의 진짜 상태를 묻는다.

   뇌에 피가 고이고 고관절이 부서졌습니다. 뇌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사는 염소의 머리를 찍은 MRI 사진도 보여준다.

   깨어날 가능성은 있습니까?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뼈가 부서졌다면 고통이 엄청나겠군요?

   염려 안 하셔도 됩니다. 고통은 없습니다.

   고통이 없다고요?

   네. 코마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합니다.

   조금도 말입니까?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견딜 수 있는 고통만 주시나 봅니다.

   한 줌의 고통도 말입니까?

   걱정 마십시오. 고통은 전혀 없습니다.

   의사가 진통제처럼, 진통제의 하느님처럼 말한다. 사내의 표정이 햇볕 아래 진흙처럼 쩍쩍 갈라진다. 고통으로 일그러진다. 염소 몫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안은 것 같다. 말도 안 된다. 이것은 속임수다. 가증스런 속임수다. 풋내기 마술사의 엉터리 속임수다.

   의사가 자리를 뜬 뒤에도 사내는 염소의 MRI 사진을 뚫어져라 들여다본다. 속임수의 비밀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결연한 얼굴로 의심이라는 지푸라기에 매달리지만 소득은 없다. 염소의 병실에는 다시 가지 않는다. 마술이 속임수가 아닐까 봐, 속임수가 아니라는 결론과 마주할까 봐 두렵다. 이 모든 것이 협잡이고 술수라는 확신에 찬 의심 덕분에 겨우 병원에서 걸어 나온다.

   병원 앞 냉면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병원 뒷골목 여관에 방을 얻는다. 맨 위층에서 병원이 가장 잘 보이는 방을 고른다. 일단 사냥감을 시야에 두고 동태를 살피기로 한다. 마술의 속임수를 밝힐 시간을 벌기로 한다. 속임수가 틀림없다고 확신하면서도 속임수가 아닐까 봐 두렵다.

   오늘은 야구라는 진통제도 효과가 없다. 사내는 병원의 뒤통수가 내다보이는 창문 앞을 오락가락한다. 못 피우는 담배를 뻐끔뻐끔, 안 마시는 술을 홀짝홀짝. 사내의 숨결이 니코틴과 알코올의 이중주로 불콰해진다. 사내가 풍기는 빨간 두려움이 아이의 파란 불안을 자극한다. 아이는 집에 가자며 보챈다. 거미집에 들어앉아 진짜 집에 가자고 막무가내로 칭얼댄다. 가려면 혼자 가라는 호통을 가까스로 삼킨다. 진짜, 곧이곧대로, 혼자 나서고도 남을 대책 없는 토끼라는 사실을 사내는 취중에 기적적으로 떠올린다. 한여름 밤의 작은 기적에 사내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어서 귀를 닫고 입을 다문다. 지금은 눈앞의 적에 집중할 때. 눈앞의 적만도 벅찬데 등 뒤에 또 다른 적을 만들 수는 없다. 불을 끈다. 어둠이 아이의 칭얼거림을 거미집에 붙들어 맨다. 밤에는 불을 피우면 안 돼. 사냥감에게 위치를 노출시키거든. 사내는 창문 앞의 어둠에 붙어 앉는다. 염소의 병실이 손에 잡힐 듯하다. 병원의 십자가가 녹색 전기를 끌어 모으고 있다. 녹색의 적외선 과녁을 새까만 어둠에 새기고 있다. 한쪽 눈을 감자 과녁이 더 크고 분명해진다. 방아쇠를 움켜쥔 검지에 염소의 맥박이 느껴진다. 진통제라도 맞은 것처럼, 잠깐, 기적적으로 평안해진다.

 

   아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사내는 소스라치며 창문 앞에서 눈을 뜬다. 눈을 뜨자마자 전방을 확인한다. 병원은, 염소의 병실은 그대로다.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거죽을 씻고 내장을 비운 뒤 아침을 먹기 위해 여관방을 나선다. 사내는 카운터에 하루 더 묵겠다고 얘기한다. 맥도날드에서 아침의 허기를 해결한다.

   아빠랑 병원에 같이 갈래?

   사내가 냅킨으로 입 주위에 묻은 불고기버거의 흔적을 닦으며 묻는다.

   병원이라는 말에 아이가 움츠러든다. 아이의 손에 들린 치킨버거도 움츠러든다.

   불펜에 혼자 있어도 되겠어?

   아이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토록 떼어내려고 발버둥 쳤는데 함께 가겠다고 매달리지 않는 아이가 섭섭하고 야속하다.

   아이를 여관방에 데려다주고 사내는 병원에 간다. 문간에서 염소의 동태를 살핀다. 병실에는 차마 발을 들이지 못한다. 사냥감과 너무 가까워지면 사냥꾼이 위험에 빠진다. 염소는 마스크와 튜브를 매단 채 동태처럼 누워 있다. 간호사실에 가 코끼리 간호사를 붙들고 염소의 간밤을 체크한다. 염소는 간밤에도 식물이었고 오늘 아침에도 여전히 식물이다. 사내는 보호자 대기실에 죽치고 앉아 아침 드라마와 뉴스와 졸음으로 오전을 죽인다. 여관방에 돌아가 아이를 데리고 나와 중국집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불펜에 혼자 있어도 괜찮아?

   사내가 짬뽕 국물을 후루룩 마시고 나서 묻는다.

   아이는 자동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사내는 병원에 돌아가 염소를 먼발치에서 확인하고 보호자 대기실에 간다. 병구완에 지친 보호자들 틈에서 드라마 재방송과 담배와 하품으로 오후를 죽인다. 염소를 먼발치에서 확인하고 여관방으로 퇴근한다. 포테이토피자를 주문해 아이와 나눠먹으며 야구를 본다. 호랑이는 사자와 1승씩 주고받은 뒤 3연전의 결승전을 치르지만 오늘도 사내의 야구는 8회까지다.

   해의 뒤통수 너머로 달의 이마가 떠오르는 것처럼 뭔가가 반복된다. 알 수 없는, 저항할 수 없는 반복의 힘에 이끌려 사내는 어둡고 뜨거운 여름밤의 창문 앞에 몸을 접고 웅크린다. 창턱에는 졸음을 몰아낼 캔커피가 여벌의 탄창처럼 입을 앙다문 채 대기 중이다.

 

   아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창문 앞 사내의 월요일 아침을 흔든다. 병원은 눈앞에 그대로 있고 어제와 같은 하루가 눈을 뜬다. 맥도날드, 병원, 만리장성, 병원. 오늘은 야구가 없어서 아이를 데리고 근처 재래시장에 간다. 아이와 시장에 가기는 처음이다. 녹색의 아케이드 아래서 아이의 눈이 커진다. 낯선 행성을 탐사하는 우주인이다. 면도기, 면도거품, 흰 속옷, 양말, 세탁비누, 컵라면, 노란 것들(캐러멜, 바나나 맛 우유, 바나나, 노란 속옷, 노란 양말)을 사는 내내 아이는 사내 곁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혼잡한 구간을 지날 때는 사내에게 바짝 달라붙는다. 복잡한 골목 안에서 전기구이 통닭집이 튀어나온다. 사내가 전기구이 통닭을 처음 먹은 것은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동생이 난생처음 반 1등을 해서 아버지가 사온 것이다. 전기구이 통닭은 천국의 맛이었다. 1등만 해봐 맨날 거시기해 줄 것잉께. 아버지는 닭다리를 물어뜯는 동생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큰소리쳤다. 사내는 아이를 데리고 전기구이 통닭집에 들어간다. 전기구이 통닭을 한 마리 주문한다. 물렁물렁 핑크빛 닭이 쇠꼬챙이에 꽂혀 빙글빙글 돌며 전기를 먹고 바삭바삭 노릇노릇해진다. 아이는 숨을 죽인 채 낯선 행성의 신기한 연금술을 지켜본다. 노란 전기통닭을 냄새 맡고 찔러 보고 뜯어본다.

   먹어 봐. 켄터키 거시기보다 더 맛있을 것잉께.

   아이는 포크로 뜯어낸 살점에 눈을 대고 코를 대고 혀를 대고 이를 대고 다시 혀를 대더니 조심조심 씹는다. 낯선 행성을 탐색하고 분석하고 맛본다. 아이가 닭다리를 뜯어내 한 입 문다. 아이의 턱이 분주해진다. 턱의 박자가 점점 빨라진다. 노란 전기의 달콤한 맛이 입 주위로 퍼져 간다. 사내의 입가에 켄터키프라이드 할아버지의 미소가 걸린다. 죽은 아버지처럼 아버지 노릇을 한 기분이다.

   주말에 타이거즈가 잠실야구장에 와. 잠실야구장에 가.

   아이가 전기통닭에게 말한다.

   사내는 망설인다. 염소가 언제 깨어날지 모른다. 염소 곁을 떠나면 안 된다.

   잠실야구장에 데려다준다고 했잖아.

   아이가 전기통닭에게 소리친다.

   잠실야구장.

   아이의 목소리가 푸르스름해진다. 파란 토끼가 파란 목을 가다듬고 있다.

   알았어.

   일단 시간을 벌기로 한다. 주말은 아직 멀다. 사내의 삶은 주말과 멀어지기만 했다. 눈 뜨면 언제나 월요일 아침이었다. 막막하고 힘겹고 분주한 월요일 아침.

   여관방에 돌아와서는 엄마 노릇을 한다. 아이의 노래진 노란 속옷을 빨아 옷걸이에 걸어 둔다. 야구가 없어서 아이는 파브르 박사에게 가고 사내는 창문 앞, 초소로 간다.

   아이가 큰 소리로 『파브르 곤충기』를 읽는다.

   딱부리먼지벌레는 죽은 것처럼 나자빠져 더듬이는 십자가 모양으로 겹치고 못뽑이 턱은 딱 벌리고 다리는 접어 배에 얹은 채 꼼짝도 안 했습니다.

   아이의 목소리가 사내의 귀를 잡아당긴다. 딱부리먼지벌레에 대한 파브르 박사의 관찰이 사내의 귀를 잡아당긴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파리나 다른 벌레가 슬그머니 다가가 슬쩍 건드리면 죽은 척하던 녀석들이 얼른 일어나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이 누워 있는 테이블을 살짝 건드려 보았더니 역시 깨어나 달아났습니다.

   사내의 눈은 이제 아이 쪽을, 아이가 숨어 있는 거미집 쪽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의 목소리는 마침내 어떤 결론에 도달한다.

   나는 그제야 진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녀석들은 죽은 척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이나 위험 앞에서 잠깐 기절하는 것이었습니다.

   거미집에서 들려온 결론에 사내는 깜짝 놀란다. 사내는 거미집이 들려준 마술의 비밀을 되새김질하며 병원을 노려본다. 흰 벽에 못 박힌 십자가는 녹색 전기를 일찌감치 불러 모아 조만간 몰려들 어둠에 대비하고 있다. 유리창 주위로 어둠이 모여든다. 유리는 병원과 함께 어두워진다. 시간의 연금술이 유리 밑바닥에 어둠의 수은을 발라 사내의 이마와 눈과 코와 입과 턱과 귀가 떠오른다. 병원 위로 사내의 희끄무레한 얼굴이 겹친다. 병원의 녹색 십자가, 녹색 조준선이 사내의 이마에 찍힌다. 사내는 창에서 화들짝 떨어진다. 녹색 십자가가 일러준 녹색의 뜨거운 진실에 이마를 덴다.

   지난 30년 내내 사내는 쫓기는 기분이었다. 염소를 쫓을 때조차 그랬다. 심지어 염소를 쫓을수록 더 쫓기는 기분이었다. 사내는 사냥꾼이 아니라 사냥감이었다. 염소가 사냥꾼인가? 그렇다면 염소가 저 지경인 지금은 왜 쫓기는 기분일까? 어쩌면 평생 이런 기분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문득 화가 치민다. 사내는 창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채 녹색 십자가를, 녹색 전기 십자가를 노려본다. 해야 할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사내는 벗어 둔 옷을 다시 걸쳐 입는다. 와이셔츠를 입고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차려입는다.

   잠깐 병원에 다녀올게.

   아까 갔다 왔잖아.

   오늘은 더블헤더야.

   오늘은 더블헤더야.

   아이가 책 속의 죽은 척 누워 있는 딱부리먼지벌레에게 말한다.

   여관방을 나온 사내는 병원으로 간다. 죽은 척 누워 있는 염소에게 간다. 문간에서 병실 안쪽을 살핀다. 사내가 움찔한다. 웬 젊은 남자가 다른 환자들을 등진 채 염소의 보조 침대에 앉아 있다. 머리카락은 짧고 목은 굵고 어깨는 떡 벌어졌다. 교회 사람은 아니다. 병원에 처음 온 날 이후로는 구경도 못 했다. 게다가 교회 사람이라면 혼자 올 리 없다. 가족인가? 택시기사일지도 모른다. 사내는 젊은 남자의 뒷모습을 유심히 살핀다. 남자가 일어선다. 사내는 벽 뒤로 몸을 숨긴다. 구두 소리가 다가온다. 사내는 벽에 붙은 환자 명단을 살피는 척한다. 구두 소리가 복도로 나온다. 곁을 지나치는 남자를 슬쩍 본다. 눈매가 날카롭다. 몇 발짝 거리를 두고 남자 뒤를 따라간다. 남자가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건다. 사내는 발소리를 죽이며 뒤를 밟는다. 뒤를 밟는다는 생각에 심장박동이 거칠어진다. 심장이 뒤를 밟는 것 같다. 남자가 화장실로 들어간다. 화장실 안쪽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굵고 낮은 목소리다.

   여전합니다.

   보고하는 듯한 말투. 가족은 아닌 것 같다.

   사내는 화장실 앞에서 머뭇거린다.

   염소와 관련된 것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그냥 지나치면 안 된다. 사냥꾼의 목소리가 등을 떠밀어 사내는 화장실로 들어간다. 남자는 맨 안쪽 소변기를 차지한 채 통화 중이다. 사내는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부스로 들어가 귀를 세운다. 남자의 목소리가 낮고 은밀해서 무슨 말인지 어렴풋하다. 기사, 잠수, 합의금, 무연고, 수거. 이런 말들이 섞여 있다. 택시기사는 아니다. 보험회사 직원인가? 갑자기 말이 끊긴다. 조용해진다. 사내는 마른침을 삼킨다. 숨소리를 죽인다. 다시 소리가 들린다. 가래침 뱉는 소리, 물 내리는 소리, 가까워지는 구두 소리, 또 물소리, 멀어지는 구두 소리. 사내는 구두 소리가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부스에서 나와 화장실 밖으로 나간다. 저만치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다. 남자의 날카로운 눈매가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사라진다.

   사내는 염소의 병실로 돌아간다. 염소는 여전히 죽은 척 누워 있다. 다른 침대의 환자들도 딱부리먼지벌레처럼 미동도 없이 누워 있다. 병원 마술의 핵심은 이것이다. 산 사람을 죽은 척 누워 있게 하기. 어떤 방법을 쓰는 걸까? 최면술? 마취제? 어쩌면 바꿔치기일지도 모른다. 죽음의 상자 마술처럼. 사내는 조심조심 발소리를 죽여 가며 병실 한쪽 구석으로 간다. 병상 머리맡에 적힌 이름부터 확인한다. 염소가 맞지만 속단은 금물. 사내는 다른 환자들을 등진 채 보조 침대에 걸터앉는다. 천장이 멀어지자 심장의 박자가 빨라진다. 천장은 멀어지고 염소는 가까워지자 심장의 박자가 빨라진다. 그날 이후 염소를 지척에서 보기는 두 번째다.

   처음은 아버지가 화병으로 돌아가신 직후, 의정부에서였다. 방충망을 뜯고 염소의 머리맡까지 접근했다. 술 냄새가 진동했다. 방바닥에는 약봉지가 널려 있었다. 내과, 피부과, 신경정신과. 아무리 어깨를 흔들어도 무거운 잠에 짓눌린 염소는 거친 숨소리만 토해 냈다.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술과 약에 취한 무시무시한 잠에 빠져 있었다. 잠에 떨어진 심장에 칼을 들이댈 수는 없었다. 동생이 당한 대로 갚아 줘야 했다. 주사위에는 주사위, 칼에는 칼. 칼보다 주사위가 먼저였다. 목숨을 걸고 주사위를 던지게 해야 했다. 근처 만화방에서 염소가 깨어나기를 기다린 게 실수였다. 만화를 보다 깜박 잠든 게 실수였다. 머리맡에서 눈을 부릅뜨고 기다렸어야 했다. 허겁지겁 달려갔을 때 염소는 이미 온데간데없었다. 서랍장의 서랍은 죄 열려 있고 비키니 옷장도 텅 비어 있었다. 급히 짐을 꾸린 흔적이 역력했다. 귀신같이 낌새를 채고 달아난 것이었다.

   심장의 빠른 박자에 맞춰 심장께의 칼이 부들부들 떤다. 하지만 아직은 칼의 시간이 아니다. 사내는 심장과 심장께의 칼을 다독이며 숨을 깊이 들이마신다. 염소는 인공호흡기와 수액바늘과 심박측정기 센서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병든 식물이다. 플라스틱 마스크가 코와 볼과 입을 가리고 있어 진짜 염소가 맞는지 식별할 수 없다. 듬성듬성한 머리카락, 검버섯이 핀 이마, 쪼글쪼글한 목, 깡마른 팔. 염소가 아닌 것 같다. 늙은 칠면조 같다. 사내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마스크 너머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스크에 들러붙은 입김이 꼬리를 내리자 한쪽 볼에 똬리를 튼 뱀이 대가리를 쳐든다. 염소가 틀림없다. 사내는 양복상의 안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주사위를 꺼낸다. 주사위를 염소 손에 쥐어준다. 기절한 딱부리먼지벌레를 건드린다. 깨어나라고. 어서 정신 차리라고. 정신 차리고 주사위를 던지라고. 동생에게 강요했던 것처럼 주사위를 던져 보라고. 목숨을 걸고 던져 보라고. 홀수면 죽음이고 짝수면 저승이라고.

   염소는 꿈쩍도 않는다. 사내는 조용히 기다린다. 염소가 딱부리먼지벌레처럼 발끝부터 떨고 다리를 놀리다가 머리와 등을 젖히며 발딱 일어나기를 파브르 박사의 얼굴로 기다린다. 시간은 주사위처럼 구르고 창에는 주사위의 눈 같은 별이 뜬다. 별 하나(죽음), 별 둘(저승), 별 셋(죽음), 별 넷(저승), 별 다섯(죽음), 별 여섯(저승). 밤하늘은 거대한 주사위. 거대한 검은 주사위. 반짝이는 흰 눈이 박힌 거대한 검은 주사위. 염소는 여전히 꿈쩍도 않는다.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선다. 조급해 할 필요는 없다. 산 채로 잡았으니 복수는 시간문제일 뿐. 사내는 여관방으로, 염소의 병실을 감시하는 초소로 물러간다.

 

   지구의 반대편으로 물러갔던 해가 똑같은 하루를 물고 돌아온다. 아이는 새로운 생활계획이 담긴 노란 도화지를 벽에 붙여 놓았다. 기상, 세수, 맥도날드, 휴식, 독서, 만리장성, 휴식 및 낮잠, 독서, 도미노, 야구, 휴식, 취침. 사내는 아이의 생활계획표대로 기상하고 세수하고 맥도날드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아이를 여관방으로, 휴식과 독서로 데려다준다. 어둡고 좁고 퀴퀴한 휴식으로 들어가는 아이의 뒤통수에 사내는 짠해진다. 그래도 출근해야 한다. 여관을 나와 병원으로 출근한다. 넥타이까지 매니 진짜 출근하는 기분이다.

   병원에 출근해서 맨 먼저 하는 일은 눈도장 찍기. 사내는 염소의 병실 문 앞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본다. 죽은 척 누워 있는 환자들. 아니, 위험 앞에서 기절한 환자들. 사내의 심장이 무릎께까지 철렁 내려앉는다. 염소의 침대가 비었다. 염소가 없다. 다리가 없어서 걷지 못하는 식물이, 기절해서 죽은 듯 누워 있던 딱부리먼지벌레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내는 간호사실로 달려간다. 코끼리 간호사를 붙들고 염소는 어디에 있느냐고(어디로 빼돌렸느냐고) 묻는다. 간호사는 얼이 빠진 얼굴이다.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심장이 불길한 상상의 구덩이로 굴러 떨어진다. 누구 마음대로. 교통사고는 몰라도 죽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염소에게는 멋대로 죽을 권리가 없다.

   그게…….

   간호사의 얼굴에 곤혹스러워하는 빛이 스친다.

   어디 있습니까?

   사내의 눈썹이 파르르 떤다.

   저희도 몰라요.

   간호사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한다.

   모르다니, 대체 무슨 말이죠?

   아침 회진 준비를 위해 가보니 없었어요. 의식도 없는 상태인데 어떻게 된 노릇이죠?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엘리베이터 감시카메라에도 없고…….

   말도 안 돼.

   죽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지만 잠시뿐, 사내는 허탈함과 당혹감에 휩싸인다. 다 잡았는데 숨통을 움켜쥐었는데 또 놓쳐버렸다. 무릎이 휘청 꺾인다. 부당하다. 억울하다. 부당해서 억울하다는 느낌이 목구멍을 가득 채운다. 사내는 더듬이를 잃은 곤충처럼, 방향감각을 잃은 미친 곤충처럼 절망적으로 중얼거린다. 말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나한테 이럴 수는 없어.

   괜찮으세요?

   간호사가 놀란 얼굴로 묻는다.

   괜찮지 않지만 사내는 포기하지 않는다. 기절했던 딱부리먼지벌레가 정신을 차리고 달아났다면 찾아내야 한다.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야 한다.

   각별한 사이셨나 봐요.

   30년을…….

   사내는 말을 잇지 못한다. 30년을 하룻밤 새 잃은 기분이다. 주사위가 염소를 깨운 걸까? 주사위를 쥐어주지 말았어야 했다. 칼이 나설 기회를 주사위가 앗아갔다. 주사위가 기절한 딱부리먼지벌레를 깨워 칼이 영원히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달아나게 했다. 주사위. 주사위 때문이다.

   사내는 염소의 병실로 달려간다. 미친 듯이 염소의 침대를 뒤진다. 베개를 뒤집고 이불을 걷는다. 침대 밑도 꼼꼼히 살핀다. 서랍장도 뒤진다. 주사위가 없다.

   거시기는 어디 있죠?

   바로 옆 침대의 환자에게 따지듯 묻는다.

   거시기라뇨?

   백발의 유령 같은 환자가 눈을 크게 뜨고 묻는다.

   주사위는 어디 있죠?

   주사위요?

   환자의 눈이 더 커진다.

   사내는 주사위를 삼킨 벙어리처럼 입을 열지 못한다. 주사위가 사라졌다. 염소가 주사위를 갖고 사라졌다. 사내는 염소의 침대에 털썩 주저앉는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도 어금니 꽉 깨물고 버텼던 무릎이 무너진다. 주사위를, 동생의 주사위를 잃어버렸다. 하늘이 무너진 기분이다. 사내는 염소가 죽은 척 누워 있던 자리에서 꼼짝 않는다. 주사위가 없어서 옴짝달싹 못 한다. 100이 코앞이었는데 주사위를 잃어버렸다. 염병할 주사위가 없어서 염병할 99번에서 오도가도 못 하게 돼버렸다. 껍데기만 남은 기분이다. 썩은 지푸라기가 두개골과 심장을 가득 채운 것 같다. 청산가리를 빠뜨렸다고 발길을 돌린 게 실수였다. 청산가리 없이도 동대문에서 결딴냈어야 했다. 잠자는 사람의 배에 칼을 들이댈 수 없어서 기회를 날려버린 의정부는 또 어땠는가?

   후회의 꼬리를 물고 회한이 밀려온다. 물구나무선 채 썩어 가는 아버지. 아버지의 실망하는 표정, 타이거즈가 질 때면 짓던 표정이 보인다. 아버지를 어떻게 볼까? 마지막 순간까지 웃는 얼굴로 무서워한 동생. 동생에게 면목이 없다. 사내는 숨 죽여 운다. 아버지가 불쌍해서 운다. 동생이 불쌍해서 운다. 어머니가 불쌍해서 운다. 여자가 불쌍해서 운다. 아이가 불쌍해서 운다. 칼이 불쌍해서 운다. 청산가리가 불쌍해서 운다. 주사위가 불쌍해서 운다.

 

 

   《문장웹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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