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6회

 

장편연재 6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그날은 내가 열일곱 살이 되는 날이었죠. 나는 열일곱 살짜리 노인이었어요. 날씨가 아주 맑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침 일찍 눈을 뜨지 못했어요. 겨우 몸을 일으켜 일어나 앉았을 때 나는 마침내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특별히 비빌 언덕도 없는 사람이 나였죠. 그러나 모든 게 너무 치사했어요. 그나마 그 잘난 평원 위에서조차도 점점 밀려나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손바닥은 마른 돌 표면처럼 버석거리고 머리카락은 옥수수수염처럼 힘없이 늘어지고 피부 표면은 더 검고 두꺼워졌어요. 천막 한 귀퉁이에 매달려 간당거리는 거울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자꾸만 화가 났어요. 누군가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 다시 태어나고 싶었어요. 일 년을 살다 죽어도 미친 평원 같은 곳엔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죠. 그렇다고 가서 살고 싶은 다른 장소가 떠오르는 것도 아니었어요. 몸이 너무 무거웠죠. 몸이 땅에 질질 끌리는 기분이었거든요. 몸 어딘가가 병들어 가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믿었어요. 그래도 매를 맞지 않으려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라도 일어나 밖으로 나가야 했어요. 운전기사와 같이 펌프카를 끌고 작업 지시가 내려진 현장으로 갔어요. 같이 작업했던 열 명 정도의 남자들이 부루퉁한 얼굴로 모여 있었어요. 감시원들 들으라고 죽는 소리부터 했죠. “비닐이나 천막도 없이 이 정도 쳤으면 괜찮게 친 거죠.” 모두들 고개를 내저었어요. 그래서 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바락바락 우겼어요. “그럼 들어가서 직접 확인해 보시든가.” “뚱땡아 다시 하라면 잔말 말고 다시 해라 응!” 감시원 하나가 주먹을 쥐어 보이며 윽박질렀어요. “오, 오히려 비가 오면 강도가 더, 더, 좋아, 진다구요.” 운전기사가 입술을 덜덜 떨며 겁에 질린 채 말했죠. “너는 주둥이 닥치고, 어쨌든 뚱땡이 니가 책임지고 다 다시 쳐.” 감시원들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며 담배를 피워 물었어요. 그 순간 사람들이 날 쳐다봤어요. 사람들은 왜 나를 쳐다본 걸까요? 민망하게도 그 순간 거기 있던 사람들이 다 날 쳐다봤어요. 내가 무슨 시멘트 전문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건축 전문가도 아니고 더군다나 날씨 따위를 어떻게 해줄 수 있는 해결사도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그 순간, 내가 뭔가 해야 한다면 하겠다고 마음먹었죠. 운전기사가 운전석에 앉아 펌프카를 작동시키기 시작했어요. “아 참, 그게 아니라니까요. 표면에 모래 자국이 좀 나긴 했지만 문제없다구요. 가까이 가서 한번 들여다보면 알 텐데 진짜. 사람 말을 이렇게 못 믿다니 정말.” 내가 설득조로 말하면서 세 명의 감시원들 등을 조금씩 앞으로 밀었어요. 골탕을 먹일 생각이었죠. 시멘트 강도 확인을 해보라는 내 권유에 못 이겨 감시원들이 타설 작업 구간의 중간쯤에 가 섰어요. 나는 그때 운전기사에게 사인을 보냈고 운전기사는 겁을 집어먹은 채 내 얼굴을 뚫어져라 내려다봤어요. 난 다시 사인을 보냈고 붉은 파이프에서 죽처럼 뭉개진 시멘트가 물처럼 쏟아져 나와 감시원들의 등을 휘갈기기 시작했어요. “묻어 버려”라고 내가 소리쳤죠. 침묵으로 소리쳤어요. 목소리를 내지 않아도 표정만 보고도 우리는 서로 다 알아들었어요. “진짜 시멘트로 묻어 버리라는 거야?” 운전기사가 다시 침묵으로 질문했어요. “진짜, 다 묻어 버려.” 내가 다시 침묵으로 소리쳤어요. 우리는 혀가 굳어 버린 사람들처럼 절대로 소리 내서 웃지 못했죠. 하지만 속이 시원해졌어요. 못할 일이 없을 것 같았죠. 녹음이 짙은 평원 위로는 벌써 잠자리들이 날아다니고 있었어요. 다른 일꾼들은 몹시 놀라 심하게 어깨만 들썩거렸어요. 눈이 마주쳤다가는 나중에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도 감시원들 쪽을 쳐다볼 수가 없었죠. 끔찍하게 목구멍이 아파서 침도 넘어가지 않고 말을 할 수도 없었어요. 그러면서도 몹시 통쾌했어요. 그래서 계속해서 깔깔대고 웃었어요. 소리를 억누른 채 웃음을 참으려니까 어깨가 흔들리고 머리까지 흔들렸어요. 감시원들의 몸이 온통 짙은 회색으로 물들었어요. 머리카락부터 발끝까지 온통 짙은 회색이었어요. 저는 그때부터 회색에 대한 공포를 갖게 되었어요. 회색은 단단해 보이고 고집스러워 보였어요. 시멘트 줄기는 부드러운 천처럼 허공을 휘저으며 뿌려졌어요. 시멘트 줄기에 휘둘리는 감시원들의 몸이 종잇장처럼 휘어졌다 펴졌다 했어요. 감시원들은 눈이 보이지 않자 얼굴을 비벼대며 천지사방으로 뛰어다녔죠. 그들이 시멘트 줄기를 피해 도망 다니느라 공사장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어요. 발이 미끄러지고 눈이 보이지 않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던 거죠. 계속해서 비가 내렸어요. 나는 아수라장이 된 공사장과 빗줄기가 떨어져 내려 파이는 땅바닥을 번갈아 내려다봤어요. 그 순간 저 아래 뱃속에서부터 정말로 이상한 질문 하나가 떠올랐어요. 갑자기 자기 동생을 찾아오라고 나한테 시켰던 조수 형의 목소리가 왕왕거리며 들려왔어요. 형의 얘기가 진심이었을까 의심스러웠죠.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고 향수 냄새를 풍기는 형의 얼굴 뒤로, 성질이 더럽던 자이언트 뒤에 쭈그리고 앉아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쇠를 갈아대던 조수 형의 얼굴이 겹쳐 보였답니다. 자기 동생도 또 나도 허스키도, 다 그 자식이 산으로 올려 보낸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그 자식이 우리를 보스에게 팔아먹은 거죠. 갑자기 그랬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요. 사실 그러고도 남는 자식이었어요. 옛날에 마마가 “눈이 무서운 애”라고 말했었거든요. 다음날 어린애들 다섯 명이 또 산으로 올라왔어요. 그리고 며칠 후 노인들, 남자들, 여자들 몇 명이 또 산으로 올라왔어요. 꾸역꾸역 올라왔죠. 다들 어떻게 알고 올라오는지 신기할 지경이었어요. 처음 올라올 때의 소란스러움, 밝은 색 옷들, 자유스러운 몸동작 등은 점차 시간이 가면서 모두 동일한 색깔의 칙칙하고 어두운 분위기로 변해 버렸죠.

며칠 후 나이 든 할머니 한 명이 죽었어요. 높이 뻗어 올라간 각주형 탑 아래 구획들 사이의 고랑 틈에 등을 보인 채 끼여 있었죠. 손바닥에 돌멩이 하나를 꼭 쥐고 있었어요. 각주형 탑 위에 올라갔다가 앞을 보며 떨어져 죽은 것 같은 모양새였어요. 얼굴이 정확히 땅 정면을 향하고 있었거든요. 땅을 팠어요. 희다 못해 분홍색으로 센 머리카락, 열 몇 살 아이들만큼 되어 보이는 작은 체구, 양말도 신지 않은 발이 드러났죠. 그때 저만치서 셰퍼드를 끌고 내려오는 감시원들이 보였어요. 죽은 사람을 또 개들이 알아서 어딘가로 끌고 가게 할 작정이었던 거죠. 누구라도 죽으면 그냥 구덩이에 묻거나 숲에 끌어다 버리는 게 평원의 절차였어요. 감시원들이 한참 동안 할머니 시신을 내려다보고 서 있더군요. 그러더니 감시원 중 하나가 부츠 신은 발로 할머니의 몸을 툭툭 찼어요. 그리고 아주 잠깐 쭈그리고 앉아 할머니를 내려다보더니 벌떡 일어나면서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들어 뒤로 향하며 말했어요. “야, 빨리 치워 버려.”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 아저씨가 뒤에서 감시원의 허리를 발로 찼어요. 감시원의 모자가 벗겨지면서 바닥에 나동그라졌죠. 주변에 서 있던 감시원들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허리춤에서 칼을 꺼냈어요. 무서울 때는 먼저 공격하는 게 상식이죠.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기다리는 사이에 당하거든요. 아저씨가 재빨리 감시원의 발을 걸었는데 하필이면 감시원의 머리가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어요. 금세 주변에 서 있던 감시원들이 모여 발을 건 아저씨를 발로 짓밟았어요. 감시원은 제대로 다친 것 같았어요. 한참만에야 젓가락 굵기 만 한 피가 시멘트 바닥에 흘러내리더군요. 남자들 몇 명이 죽은 할머니 시신을 머리 쪽과 다리 쪽에서 동시에 들고 천막으로 올라갔어요. 나는 그 아저씨를 ‘이소룡’이라고 불렀어요.  

보스를 만나야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를 만나려면 어차피 아침 학습 시간이 되어야 했고 아침까지 기다리기로 했어요. 초여름 날씨는 오후가 되면서 점점 더 뜨거워졌어요. 물론 그러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해가 사라져 버렸죠. 뭐라고 지껄이는지 듣고 싶었는데 아침 학습 시간이 되어도 보스는 나타나지 않았어요. 하루가 지나갔죠. 밤이었어요. 감시원들 눈을 피해 몇 명의 남자들과 함께 보스가 있는 캠프로 갔어요. 현관에서부터 개들이 짖어댔어요. 감시원들이 총을 겨누며 턱을 치켜들고 꺼지라고 말했어요. 난 어렵사리 용건을 말했어요. 죽은 사람의 시신을 제대로 처리해 주면 좋겠다는 게 우리들이 말한 내용의 다였어요. 감시원들이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눈 채 숲 한가운데로 몰아갔어요. 숲을 지나 평원의 끝에 다다랐어요. 여덟 개의 철탑이 보이는 곳에 도착했죠. 우리더러 평원 끝 난간에 가서 서라고 하더군요. 눈앞이 맑지 않고 뭔가 수상한 기운이 돌면서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감시원들의 얼굴은 새까맣고 반짝거리는 쥐새끼들처럼 보였죠. “다른 사람들 다 보내고 나만 잡아가요!” 정말이지 나답지 않게 용기를 냈던 겁니다. 그렇게 멋진 말을 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는데 나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아하! 너 뚱돼지! 그러자, 그러지 뭐 너 하나면 충분하지!” 대열에 서 있던 네 명의 남자들이 감시원들 쪽으로 물러가 섰어요. 그러자마자 감시원들이 저한테 바로 총을 겨눴어요. 아주 짧은 시간이었어요. 뭔가 나에게 날아왔고 난 그 자리에 쓰러졌어요. 뒤로 쓰러져 평원 아래로 한없이 굴러 떨어졌죠. 몸이 단단한 둔덕에 부딪쳤고 머리가 깨져 달아나 버리고 말 것처럼 아팠어요. 저 위에서 감시원들이 나를 내려다보며 깔깔거리고 웃고 있었어요.

 

 

8. 우리는 양고기를 먹었다

 

하늘이 파랬어요. 내가 세상에서 본 파란색 중 제일 기분 나쁜 파란색이었어요. 나는 밤새 손톱이 빠지도록 언덕을 기어 올라갔어요. 경사가 몹시 가팔라 기어 올라간 거리보다 더 많이 굴러 떨어져 내렸죠. 무릎과 팔꿈치가 다 까졌어요. 나중엔 발바닥마저도 작살이 났죠. 얼굴은 덤불에 긁히고, 굴러 떨어질 때 받은 충격 때문에 온몸이 성한 데가 없이 너덜너덜해졌어요. 나는 갑자기 어린애들처럼 질질 짜기 시작했어요. 모든 게 굉장히 무서웠어요. 주변이 온통 다 파란색이어서 금방이라도 귀신이 튀어나올 것 같았어요. 나중엔 겁이 나서 그런 건지 아파서 그런 건지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더라구요. 나중엔 혼자서 실실 웃었어요. 어떻게 해서 평원 위까지 올라갈 수 있었는지 신기할 지경이었어요. 한밤에 보는 건축 현장은 끔찍하게 무서웠어요. 모두 다 회색이었고 저 먼 나라의 벌판에 있는 성곽이나 요새를 달랑 들어다 옮겨 놓은 것 같더라구요. 구획들 사이의 빈틈에 흰 연기 같은 것들이 들어차 있었어요. 무서워서 오줌을 쌀 것 같았어요. 평원의 어느 지점은 아주 파랗고 어느 지점은 안개투성이고 또 어느 지점은 아주 붉거나 아주 희거나 그랬던 것 같아요. 그때 고기 냄새가 났어요. 기름기가 잔뜩 밴 달짝지근한 냄새였어요. 냄새가 너무 강해 코가 막힐 정도였어요. 사방을 둘러봤죠. 천막 쪽에서부터 나는 냄새였어요. 사람들은 두 척의 배 앞에 장작불을 피우고 커다란 쇠 철판 둘레에 모여 서 있었어요. 주홍색 불길이 활활 타올랐죠. 사람들이 꼬치를 하나씩 들고 철판 주변에서 물러섰어요. 그리고 먼 곳을 쳐다보며 꼬치에 끼운 고기를 먹고 있었어요. 긴 꼬치 끝을 입속에 넣고 다부지게 고기를 빼먹더군요. 기름이 타들어 가는 냄새 때문에 내장이 뒤집힐 것 같았죠. 철판 밑에서 지글거리는 불의 움직임이 무서웠어요. 천막 주변은 용광로처럼 환했어요. 커다란 빈 술병들이 휙휙 넘어졌어요. 잔뜩 마신 사람들은 혀가 풀려 입으로 거품을 뿜어내면서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얘기를 혼자서 지껄여댔어요. 어떤 사람들은 심하게 기침을 했죠. 목을 길게 뺀 채 목을 쥐고 기침을 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결국 먹던 고기를 다 토했죠. “어, 뚱땡이 왔네. 너 어떻게 왔니?”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감시원들이 나한테 물었어요. “기어서 왔죠.” 난 삐딱하게 대답했어요. 그때 누군가 내 손에 꼬치 한 개를 쥐어 주더군요. “먹어라 양고기다. 너 양고기 먹어 봤냐?” 감시원 중 누군가 친절하게 일러 줬죠.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입속에 들어간 고기는 두 번쯤 씹은 후 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너무 맛있었죠. 술도 마음대로 마셨어요. 종이컵에 술을 따라 고기 한 점과 같이 목으로 넘겼어요. 행복해지더라구요. 그렇게 한참을 먹었어요. 산언덕을 기어오르던 일 따위는 다 잊어버릴 정도로 내 입놀림에만 집중하고 있었죠. 감시원들은 우리가 먹는 모습을 보며 아주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어요. 우리야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재미있는 일이 일어났다는 표정이었어요. 주인이 보는 앞에서 말없이 고기를 뜯어먹고 있는 개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답니다. 내 발바닥 앞에 쌓여 가던 쇠꼬챙이를 보고 있으려니까 다시 서글퍼졌어요. 내 마음속에서 누군가 지껄이더군요. ‘이럴 땐 그냥 고기나 실컷 먹어.’ 사실 그러고 싶었어요. 고기나 실컷 먹고 자고 또 일어나는 거죠. 단순한 생활도 나쁘지 않아요. 잡념도, 희망도 없는 상태가 가장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하얀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우스꽝스러운 흰 월계관을 쓴 여자들이 나타났어요. 전과 달리 여러 명이었죠. 허스키도 거기 서 있었어요. 손에 횃불 같은 걸 들고 서 있었고 모두들 손을 뻗어 불빛을 한가운데로 모아들고는 배 앞으로 모였어요. 나도 모르게 커다란 목소리로 욕을 했죠. “어, 저런 미친.” 왜 그런지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어요. 미치게 답답했죠. 좀 있다 할머니의 시신이 들것 위에 들려 나타났어요. 누가 그랬는지 할머니 머리카락에 꽃을 꽂았더군요. 또 누가 그랬는지 할머니 발에 색깔이 거의 회색이 되어 버렸지만 상태가 괜찮은 운동화도 신겨 놓았구요. 사람들은 모두 할머니 시신 주위에 앉아 불을 피우고 밤을 새웠어요. 말은 안 했지만 그게 제사였던 것 같아요. 나는 밤새 고기를 씹으며 잠들지 않고 깨어 있었어요. 어느 순간에 잠이 들었는지 귀신들린 것처럼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죠. 고기를 실컷 먹은 탓인지 중간에 깨지도 않고 푹 잤죠. 아침에 일어나니 허무하더군요. 아침이 올 때까지 깨어 있겠다고 밤새 이를 갈며 참았는데 허무하게 자 버리다니. 나는 사람들을 붙들고 계속 물어봤어요. “할머니 어디 있어?” “할머니를 어떻게 한 거야?”라고 계속해서 질문했죠. 사람들은 태연하게 자신에게 배당된 구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뿐이었어요.  

녹음이 점점 더 짙어 갔죠. 진한 풀 냄새, 꽃향기가 코끝을 따라다녔어요. 새들은 통통하게 살이 오르는  중이었죠. 그때 나는 소리 나는 나무에 미쳐 있었어요. 어느 날 일을 하다가 어떤 나무에 기대어 앉았는데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어요. 주변에는 계곡이라고는 없었거든요. 나무에 귀를 가까이 댄  순간에서야 알게 되었죠. 귀를 대고 있으면 저절로 눈이 감겼어요. 두껍고 딱딱한 나무껍질이 탁 깨지면서 시원한 물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죠. 신기했어요. 내가 매일 나무 앞에 들러붙어 있으니까 어떤 사람이 말했어요. “저기 더운 나라 아프리카에 가면 커다란 항아리를 엎어 놓은 모양으로 생긴, 여러 개의 팔이 사방으로 뻗은 가지를 달고 있는 이상하게 생긴 나무가 있대. 어떤 사람들은 그 나무의 속을 파내고 거기 들어가 산대. 그게 바오밥이라나.” 정말 나도 그 바오, 뭐라는 나무를 파고 안에 들어가 살고 싶었어요. 일하다 쉬는 시간이 되면 나무 밑에 기대앉아 나무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게 다였어요. 내가 나무에 빠져 있는 사이, 계절은 재빨리 여름으로 접어들고 있었죠. 어느새 평원 위는 요새처럼, 별천지처럼 미아미의 계산대로 미아미의 그림대로 완성되어 가고 있었어요. 공용 시설 구획들 몇 개의 기본 터가 완성되자 평원 위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특이한 형상으로 변화했죠. 심지어 벼랑을 파서 땅 깊숙한 곳에 건물을 들인다고 했던 구획마저도 이미 벼랑 속에서부터 뻗어 올라온 석순 모양의 기둥 여러 개를 완성해 놓았더군요. 곡물 창고나 비밀 창고로 써도 좋을 만큼 완벽해 보였죠. 사실 광활한 사막 한가운데 있는 비밀 군사 조직의 요새처럼 보이는 공용 시설 구획에 들어간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감탄까지 했어요. 건물 하나하나의 높이가 다 다르고 어둠과 빛, 안과 밖이 도무지 예상할 수 없는 형태로 지어진 구획은 그 자체로 충격적이었어요. 길을 잃기도 쉬웠죠. 모여 있기는 하되 다 다르고, 다 다르되 멀리서 보면 한 덩어리였어요. 밤에는 어둠에 가려져 높이 솟은 기둥 끝만 보였고 낮에는 또 건물들 자체의 그늘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었어요. 정말 요새 같았죠. 어쩌면 미아미가 정말 대단한 철학자이자 건축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연 그랬을까요? 그렇다면 내 청춘을 조금 바쳤다한들 별로 아까울 건 없었겠죠. 멍청한 운전기사가 매일 부르는 노래처럼, 너를 마지막으로 나의 청춘도 끝이 났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죠. 그럼 할머니는 대체 어디로 갔을까요, 나는 수시로 할머니 생각을 했어요.

웃기는 일은 따로 있었어요. 어느 아침, 미아미의 학습이 있었는데 그 자식 옆에 허스키가 앉아 있었어요. 나는 화가 나서 침을 뱉으며 허스키를 째려봤어요. 머리에 월계관을 쓴 이상한 여자들과 같이 앉아서 미아미가 앉으면 저희도 앉고 미아미가 일어서면 자기들도 일어서고, 일거수일투족이 다 인형처럼 똑같았어요. 그러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허스키가 자주 없어지곤 했다는 데 생각이 미쳤어요. 그리고 이런저런 상상으로 나도 모르게 머리 뚜껑이 열려 버렸어요. 미아미는 허공을 쳐다보며 연설 중이었어요. 내가 헉헉거리며 미아미를 향해 돌진해 가는 동안 미아미 뒤에 서 있던 감시원들이 나를 향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어요. 소리를 치지 않으면 겁이 나서 감시원들을 물리칠 수 없을 것 같았죠. “미친, 미아미 개새끼, 너 거기 가만히 있어.” 소리를 치며 감시원들의 방어벽을 뚫었죠. 미아미가 벌떡 일어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모아 뒤로 넘겼어요. 그때 아주 웃기는 일이 일어났어요. 미아미의 학습을 듣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미아미에게로 몰려가 그를 에워쌌죠. 그는 푸른 섬에 핀 흰 꽃처럼 사람들 속으로 안전하게 숨어 버렸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미아미를 좋아했던 게 틀림없어요.

며칠이 지나갔을 겁니다. 보스의 캠프에서는 아침부터 연기가 솟아나고 있었어요. 돌로 쳐 죽이든지 불을 내 태우든지 이 지겨운 평원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모두 끝장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난 움직일 수 없었어요. 평원의 모든 사람들, 모든 개들이 나만 쳐다봤어요. 며칠이 지나고 나서 나는 자루가 사라진 숲에 있는 그 공장 일꾼으로 지명되었어요. 처음 감시원들의 눈을 피해 살짝 보러 갔을 때와는 분명 뭔가 달랐어요. 사람들의 움직임이 커진 것 같았어요, 이유는 기침 때문이었죠. 벨트에서 운반된 작은 조각들이 담긴 자루를 어깨에 지고 날랐어요. 모두들 아무 말도 안 하긴 처음에 봤을 때와 마찬가지였죠. 붉은 흙이 드러난 좁은 숲길을 수십 번씩 오갔어요. 어깨가 내려앉을 것처럼 아팠고 얼굴은 열이 나 몹시 뜨거웠어요. 흙색 동굴 안 사람들은 거기 영원히 퍼질러 앉아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기다리겠다는 얼굴 표정이었어요. 자기 눈앞의 손과 머리 사이만큼의 세상만 내려다보고 있었지요. 사람들이 평원에서 거의 떠나고,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운전기사와 내가 떠나던 날 우리는 동굴로 갔었어요. 나는 왠지 그 붉은 흙색 동굴 안에 있던 사람들이 걱정스러웠어요. 모두들 평원을 떠나는데 눈 씻고 봐도 동굴 안에서 일을 하고 있던 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거든요.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거기 똑같이 앉아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며 작은 상징물들을 제작하고 있었어요. 우리가 “빨리 다 떠나요”라고 목청 높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의자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했죠. 우리가 동굴의 문을 열고 사람들을 강제로 일으켜 세워 문 밖으로 내보내야 했어요. 몇 사람은 다시 동굴로 뛰어 들어오기도 하고 또 몇 사람은 숲으로 달아나기도 했어요.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여자들의 소식을 듣지 못했어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평원에서 있었던 일 따위는 다 잊어버리고 난 후에 그 여자들 소식을 들었죠. 잡지사 기자들, 정확한 직업을 잘 알 수 없는 사람들, 학자들 뭐 그런 사람들이 날 찾아왔었어요. 그 여자들은 모두 한꺼번에 어떤 지역에 있는 공장에 취직해 일을 했다고 말했어요. 사람들이 뭘 물어봐도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했지요. 하루 종일 잡담도 않고 일만 하는 사람들이라 생산성 하나는 최고였다고 했죠. 다른 사람들처럼 개인 집을 갖지도 않고 공장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공장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고 했어요. 나는 도피 생활 중에 그 여자들이 일시에 햇볕이 환한 길 밖으로 뛰쳐나오며 환호성을 지르는 환영을 보기도 했죠. 그러나 여자들은 모두 같은 병으로 고통 받다가 죽었다고 했어요. 그 말을 전해준 기자라는 사람이 손수건을 든 손으로 자기 목을 가리키며 인상을 쓰더군요. 끔찍한 기침 때문에 모두들 고통스러웠다고 말했죠.

밤에는 다시 건축 현장에 투입됐어요. 날씨가 뜨거워지면서 온도가 아주 낮은 밤의 몇 시간을 제외하곤 하루 종일 더웠어요. 더운 낮 동안에 일이 계속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자체 전력 시설을 이용해 밤에도 일을 하게 만들었어요. 생각해 보면 그때 평원 위에 있던 우리는 굉장히 이상한 일들을 하고 있었어요. 제일 이상한 건 미아미였지만 사실 우리도 그에 못지않았던 것 같아요. 미아미는 위로 뻗어 올라가는 건물만 지으려고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지하로 파고들어 가는 건물의 건축도 시도했어요. 집이라고는 한 채도 보이지 않는 벌판 위에 일정한 간격으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순간을 보고 싶다고 말하곤 했죠. 사람들이 땅속에도 들어가 살게 만들겠다고 했어요. 땅속에다 공장도 짓고 병원도 짓고 학교도 짓겠다고 했어요. 외부의 침입을 받지 않는 생산 시설이 있어야 우리들만의 세상을 이끌어 갈 수 있다고 했죠. 땅속은 기온이 낮아 몸이 저릿저릿하도록 차가웠어요. 땅속에만 들어가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어요. 그러다 밖으로 나오면 또 등이 따끔거릴 만큼 더웠죠. 땅을 파낸 흙을 담아 바깥으로 내오는 리어카 위에 오들오들 떨며 흙 대신 사람들이 실려 나왔어요.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죠. 감기에 걸린 것처럼 기침을 하거나 고열에 시달렸어요. 목을 손으로 틀어쥐고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도 보였죠. 날이 바뀌고 또 날이 바뀌고, 아픈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감시원들 중 누구도 아픈 사람들을 걱정해 주지 않았어요. 해가 지고 밤이 되었어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보스의 캠프로 갔죠. 입구에서 술에 취해 해롱거리는 두 놈을 돌로 쳐 납작하게 만들었죠. 석회석이었던 것 같아요. 보스의 캠프는 입구부터 이상한 향내와 석회석을 바른 장식물들 때문에 구역질이 났어요. 순간, 미아미가 어쩌면 생각보다 더 악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도 성큼성큼 걸어갔어요. 방들이 여러 개 있었어요. 어떤 방에서는 비디오테이프가 혼자 돌아가고 있었어요. 영어를 모르니 무슨 소린지 알 수 없었지만 유명한 테러범들에 관한 영화인 것 같았어요. 우체국이 나오고 우편물이 나오고 관공서 건물처럼 보이는 건물 안에서 폭발물이 팡팡 터졌어요. 수갑을 찬 머리가 긴 남자의 얼굴이 계속 나오는 비디오였어요. 높은 나무에 올라가 계속해서 아래로 떨어지기를 시도하는 사람만 나오는 비디오를 틀어 놓은 방도 있었어요. 미아미는 비디오광이었던 것 같아요. 인기척이 들리는 쪽으로 갔어요. 창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널찍한 창이 있는 방에 검은색 가죽 소파가 있고 그 소파에 내가 아는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어라, 이게 누구야. 순간 저는 깜짝 놀랐어요. 미아미와 조수 형이 같이 앉아 술을 마시고 있더군요. 형은 저를 보고도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었어요. 그냥, 엊그제 시내에서 만났을 때랑 똑같은 얼굴로 말했죠. “잘 지내지? 바쁜 모양이구나.” 너무나 일상적이고 아무렇지도 않은 말에 저는 순간 경기를 일으킬 뻔했어요. 형은 그러면서 제 몰골을 한 번 훑어보고는 막 자기 입술에서 뗀 술잔을 넘겼어요. 내가 술잔을 받으며 말했죠. “산 속에서 바쁠 게 뭐가 있겠어, 형은 어때?” 나는 형의 술을 한 잔 받아 마셨어요. 그리고 바닥에 놓여 있던 술병을 들어 탁자 끝에 대고 작살을 낼까 말까 고민했죠. “형은 뭐하는 사람이야?” 내가 형에게 물었죠. “형, 사람 팔고 사는 인간들 밑에서 일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향해 술병을 휘두르고 싶었어요. 눈치가 이상했는지 석회를 바른 저 안쪽 벽에서 형이 데리고 다니는 애들이 저벅저벅 걸어 나왔어요. 그리고 허스키가 가정부로 고용된 듯한 이상한 몰골로 커다란 접시를 들고 나왔어요. 보스는 두 손을 마주잡은 채 눈동자를 깜빡거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난 그냥 형이 주는 술을 몇 잔 받아 마셨어요. 형이 말하더군요. “내가 잘 얘기할 테니까 여기서 잘 지내고 있어. 나중에 나 하는 일 좀 도와주고. 저분 아주 훌륭한 분이니까 말 잘 듣고.” 그렇게 술이 몇 잔 오간 뒤에 나와 허스키 그리고 조수 형이 밖으로 나왔어요. 형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른 채 보스의 대형 천막 앞까지 함께 걸었어요. 뒤에서 허스키가 흰옷을 휘날리며 따라왔죠. 형은 영악하게도 감시원들이 보고 있는 앞까지만 따라와 나를 배웅했어요. 보스의 천막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리던 형은 다시 나를 불러 세웠어요. “아 참, 나 얼마 전에 사장님 만났다. 여전하시더군!” 그리고 형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 표정을 하고는 보스의 천막 쪽으로 걸어갔어요. 나는 터덜터덜 걷고 있었어요. 타닥타닥, 내 뒤에서 나를 따라 걸어오고 있는 허스키의 발짝 소리가 들려왔죠.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정말 궁금하기도 했거든요. 나를 낳아준 사람들, 나를 키워준 사람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정말 궁금했거든요. 한 가지는 분명했어요. 자이언트가 아직도 북쪽 도시에 살아 있다는 것, 살아 꿈틀거리고 있다는 건 분명했어요. 소풍 나온 어린애처럼 허스키가 등 뒤에서 달려와 팔짱을 끼었어요. 너무 화가 나서 허스키를 발로 차 버렸어요. 그래도 화가 안 풀려 목덜미를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 수차례 머리통을 갈겨 버렸어요. 허스키는 울지도 않고 떠들지도 않고 맞기만 했어요. 그게 더 기분 나빴어요. “거기서 뭘 했는지 얘기해 봐. 지껄여 보라구.” 제가 악을 써도 허스키는 그냥 맞기만 했어요. 허스키의 머리카락에 미아미의 천막에서 나던 향내가 달라붙어 있었어요. 허스키의 머리카락을 잡아 아래로 당겨 얼굴을 들게 만들었어요. 어둠 속이었지만 허스키의 얼굴이 또렷이 보였어요. 허스키 또한 나이답지 않게 폭삭 늙어 버렸더군요. 순간 허스키가 나에게 말했어요. “뚱땡아 우리 지금 도망가자. 우리 여기 더 있다간 시멘트 속에 파묻혀 죽거나 땅속에 파묻혀 죽을 거야.” 순간 저는 사방을 둘러봤어요.  보스의 천막 쪽에서는 여전히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죠. 감시원들이 왔다 갔다 했어요. 평원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의 산들이 거대한 장막처럼 눈앞을 가렸던 것 같아요. 도저히 성공할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도 나는 허스키의 손을 잡고 숲 속에 있는 흙색 동굴 쪽으로 움직였어요. 그 동굴 끝에 서 있는 작은 트럭이 떠올랐거든요. 트럭은 분명 동굴 뒷길로 달려 경사가 높은 산언덕을 하염없이 내려가곤 했어요. 나는 아무 근거도 없이 그 트럭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풀이 무성하게 자란 숲 한가운데로 몸을 낮춘 채 움직였어요. 허스키는 찍 소리도 안 하고 내 뒤를 따라왔어요. 한밤중인데 놀랍게도 흙색 동굴 입구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어요. 사람들이 밤에도 일을 하고 있다면 분명 감시원들이 지키고 있을 테고 그럼 들킬 게 뻔하니까요.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어요. 숲 저쪽의 동굴이 끝나는 지점에 서 있는 트럭 뒤꽁무니가 보였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남모르게 도망칠 수는 없을 것 같았어요.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일어섰어요. 허스키에게도 일어서라고 했죠. 얼굴은 온통 뜨거운데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어요. 나는 태연하게 흙색 동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손을 들었죠.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어요. 감시원들은 벽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어요. 그녀들은 또 아무 말 없이 태연하게 일을 하고 있었어요. 나는 허스키와 함께 작고 흰 상징물들이 산더미처럼 높이 쌓여 있는 동굴 중앙의 공터로 갔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루에 그것들을 담았죠. 흰 자루가 벽 앞에 차곡차곡 쌓여 가고 있을 때였어요. 한 여자가 기침을 하기 시작했어요. 목을 잡고 몸을 숙인 채 기침을 했죠. 감시원들이 몸을 뒤척이기 시작했어요. 여자는 드디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몸을 기댄 채 온힘을 다해 기침을 쏟아내기 시작했어요. 순식간이었어요. 여자가 벽을 잡고 쓰러지면서 토한 피가 흰 벽에 묻었죠. 기계처럼 앉아 있던 여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어요. 엉덩이를 들썩이다가 벽에 붙은 여자 쪽으로 몰려갔어요. 당연히 감시원들도 잠에서 깨어나 여자 쪽으로 걸어왔어요. “야 뚱땡아, 니가 저 여자 좀 천막으로 데려가라.” 졸지에 난 감시원 하수인이 되어 허스키와 함께 여자를 양옆에서 부축한 채 숲으로 나왔어요. 조금은 서늘한 바깥바람 탓인지 여자의 기침은 좀 잦아든 것 같았어요. 걷고 있는 도중에도 여자는 기침을 참느라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곤 했어요. “집이 어디세요?” 내가 물었어요. 여자는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나는 다시 물었어요.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여자는 또 내 말에 대꾸도 하지 않았어요. “사람이라도 죽였나요? 여기서 왜 이렇게 살아요?” 좀 버릇없게 물었어요. 여자는 그냥 걷기만 했어요.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죄인처럼 사느냐구요?” 내가 다그쳤어요. 여자는 발걸음을 멈췄죠.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어요. 나는 그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숨죽이며 기다렸어요. 순간 그 여자의 한마디로 폭풍우가 내리고 세상이 뒤집어지길 바랐는지도 모르겠어요. “어쩌지 인형을 두고 왔어. 내 인형.” 여자가 말했어요.   

다음날 밤 우리는 배가 터지게 양고기를 먹었어요.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그건 형이 가져온 선물이었어요. 고기를 다 먹고 나자 새벽녘이었어요. 앞에 앉은 사람 얼굴을 쳐다보면서 우리는 깔깔거리고 웃었어요. 얼굴은 검은 그을음투성이었고 고기 기름이 묻어 번쩍거렸어요. 그로부터 한 시간 후쯤 미아미의 학습이 시작됐어요. 그건 내가 들은 미아미의 마지막 학습이었어요. 나중에 미아미가 경찰에 잡혔을 때 경찰은 미아미가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했다는 걸 밝혀냈다고 했어요.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그날 미아미의 얼굴은 온통 납빛으로 부어올라 있었어요. “여러분은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마 그렇게 믿고 싶으시겠지만 인간은 선하지 않습니다.” 미아미의 학습은 또 인간이 선하지 않다는 얘기로부터 시작되었어요. “이제 곧 무시무시한 일들이 벌어질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눈앞에서 벌어질 무시무시한 일들을 목도하되, 이 평원에서 저와 함께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살아갈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수만 장의 밑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세상에 누구도 나처럼 우리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사람은 없을 겁니다. 제가 수만 장의 밑그림을 그리는 동안 얼마나 외로웠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은 제 외로움을 짐작도 못하십니다. 저 혼자서 부패한 이 커다란 세상을 떠받치고 있다는 걸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지만 저 먼 대도시에서, 동지들이 저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자 여러분 이제 끝이 보입니다. 여러분들이 구축한 저 위대한 세상을 보십시오. 여러분들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미아미는 길고 느리게 박수를 치며 학습장에서 빠져나갔어요. 그리고 그날 밤 교육 부장이란 여자가 천막이란 천막은 다 돌아다니며 도시로 일을 하러 나갈 사람을 모집했던 것입니다. “지금 도시에서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어요.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도시로 가실 분은 내일 새벽 배 앞으로 모여 주세요.” 교육 부장이 나가고 나서 천막마다 웅성거림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나로서는 더 생각할 것도 없었어요. 평원 위에서 내보내 준다는데 여기보다 더한 곳으로 데리고 간다고 해도 겁날 게 없었죠. 새벽이 되어 허스키와 나는 손을 꼭 잡고 배 앞으로 가 섰어요. 남자들 몇 명이 더 배 앞에 모여 있더군요. 평원 위의 사람들 얼굴에 생기가 돌고 뭔가 들떠 보이기 시작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어요.

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두 소형 승합차에 탔어요. 들고 갈 짐도, 하물며 모자 같은 것도 필요 없다고 했어요. 옷차림도 그대로였고 흙먼지 묻은 신발도 그대로 신은 채였죠. 승합차가 도시의 편편한 도로로 나가기까지 울퉁불퉁한 내리막길을 지나고 논밭을 따라 휘어지는 좁은 비포장도로를 여러 시간 달렸어요. 산 아래 세상은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외계인의 마을처럼 아주 작고 조용한 것처럼 느껴졌어요. 정작 차가 아스팔트 위로 달려 나가자마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그 부드러운 속도에 눌려 잠이 들고 말았죠. 잠자는 동안 내내 시퍼런 바닷물 위를 지나가는 꿈을 꾸었어요. 물이 너무 깊고 차가워 보였고 목 끝까지 들어차는 물을 도무지 이길 수가 없었어요. 나는 바다에 가 본 적이 없어서인지 무슨 일만 생기면 늘 꿈속에서 바다를 봤어요. 실제로 바다를 처음 봤을 때, 생각했던 것보다 밋밋해서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남아 있어요. 승합차는 C시로 가지 않았어요. 나는 목을 빼고 밖을 내다봤지만 C시로 가지는 않았어요. 국도변을 끊임없이 달릴 뿐이었죠. 누군가 소변이 마렵다고 말했지만 참으라고 했어요. 학교가 일찍 끝났는지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아스팔트 위로 걸어 나오고 있었어요. 노란 얼굴에 불만 가득한 표정들이었어요. 등에는 무거워 보이는 배낭이 걸려 있었고 한쪽 손에는 하나같이 신발주머니를 들고 있었어요. 배가 고팠어요. 허스키는 침을 흘리며 세상모르고 자고 있었죠. 허스키의 팔을 꼬집었어요. 교육 부장이 우리에게 빵과 음료수를 나눠 주더군요. 끔찍하게 크고 아주 단 크림빵이었어요. 혀를 깨무는 줄도 모르고 빵을 맛있게 먹었죠. 승합차 앞 창문으로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아스팔트의 열기가 보였어요. 우리는 도무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들처럼 차 안에서도 어쩔 줄 모르고 허둥거렸어요. 우리는 도시 한가운데 있는 긴 다리를 건너고 강변을 지났어요. 승합차는 도시의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이글거리는 여름 해가 도시 안쪽 깊숙한 곳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 같았어요. 사람들도 빌딩들도 모두들 저만치 물러나 있는 것처럼 보였죠. 갑자기 커다란 괴물이라도 출몰할 것 같은 분위기였어요. 그러면서도 도시 전체가 뜨거운 유리 공처럼 출렁거렸죠. 드문드문 천막을 치고 공사 중인 높은 빌딩들도 보이고 작고 낮은 집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높다란 산동네도 보였어요. 상점가가 밀집한 곳을 지날 때 허스키는 창문에 바싹 붙어 앉아 바깥 구경을 하느라 신이 나 있었어요. 손가락으로 상점을 가리키며 “어 저거, 어 저기”라고 하면서 말이 많아졌어요. 그때 누군가 큰소리로 물었어요. “우리가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그때 보니 용감한 우리의 이소룡 아저씨가 거기 계셨어요. 그때 앞자리에 앉은 감시원 한 명이 귀찮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 대신에 담배를 한 개비씩 돌리기 시작했어요. 창문을 다 열었죠. 한껏 끓어오른 도시의 공기가 한꺼번에 와락 밀려들어왔죠. 현기증이 날 것 같았어요. 그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울 즈음 우리는 온통 시멘트로 둘러싸인 도시 한가운데에 내려졌어요. 해가 너무 강해서 모두들 건물 입구의 그늘로 몰려가 줄을 지어 앉았죠. 내 눈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어요.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자들의 발걸음이 가볍게 이어졌어요. 똑같은 양복을 입은 수십 명의 남자들도 보이고 버스와 택시 그리고 자동차들도 보였죠. 갑자기 벌레가 된 것처럼 몸을 움직이기가 어려웠어요. 겨우 눈만 깜박이며 멍청하게 도로를 쳐다보고 있었죠. 우리는 곧 교육 부장의 안내를 받아 그 건물 안쪽 깊숙한 곳에 있는 밥집으로 안내되었어요. 식사를 하며 즐겁게 얘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입술을 새빨갛게 칠한 아주머니들이 우리의 가슴 앞으로 양념을 넣어 무친 콩나물과 시금치나물, 무나물과 잡채 그리고 생선구이를 갖다 주었죠. 냄새가 좋았죠. 아주머니 한 사람이 우리 앞에 와 서서 배를 내밀고 밥 비비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며 시범을 보였어요. 커다란 그릇에 밥을 쏟아 넣고 된장찌개 국물을 넣고 나물을 넣고, 마지막에 고추장을 넣고 들기름을 듬뿍 넣었죠. “이렇게 해서 먹는 거야.” 아주머니가 수저에 묻은 밥알을 밥그릇에 툭툭 털며 우리에게 말했죠. 우린 미친 사람들처럼 밥을 먹었어요. 도무지 양념 맛 구경을 할 수 없었던 우리에게 그 밥은 밥이 아니라 꿈이었어요. 그런데 그 집에서 먹은 그 밥은 소화가 되지 않고 아주 오래 남아 있었어요. 그날의 일 때문이었겠지만 아주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우리는 밥을 먹은 후 다시 차에 올라탔어요. 그리고 잠시 후에 어떤 건물 앞에 도착했어요. 그 건물은 화려하고 높은 주변 건물들 사이에서 촌스럽고 낡아 보였어요. 5층짜리 건물로 전에는 쇼핑센터로 썼다고 했어요. 창문들은 굳게 가려져 있었고 누군가가 현관 입구에 스프레이로 해골을 그려 놓았더군요. 흰 줄도 죽죽 그어져 있는 아주 오래된 건물이었어요. 나는 그 순간까지만 해도 내가 왜 그곳에 갔는지 전혀 알지 못했어요. 다만 건물 중앙에 걸어 놓은 플래카드를 읽었죠. 그날은 그 건물이 폭파, 해체되는 날이었어요. 작업복을 입고 전기선을 들고 왔다 갔다 하는 남자들이 보였죠. 사람들이 구경을 하겠다고 몰려오고 있었어요. (다음 호에 계속) 《문장 웹진 6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