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2회

장편 연재 2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3. 마마, 내가 부숴 버릴게

 

겨울이 되면서 제 머릿속은 차가운 얼음장이 들어찬 것처럼 꽝꽝 얼어 버렸어요. 길가의 나무들, 백 살이 된 동네 할머니가 어떻게 생로병사를 겪는지 살펴볼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동네 여자애들이 문턱이 부서져라 하루 종일 드나드는 피아노 학원의 담벼락 아래밖에는 제가 갈 곳이 없었어요. 따뜻한 햇볕 아래 서서 어지러운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답니다.

 

자이언트가 없어도 가게 바닥의 쇳물은 여전히 고여 있었습니다. 검게 빛나는 쇳물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긴 쇠막대기를 담가 보았습니다. 채 십 센티도 되지 않는 얕은 깊이였어요. 모든 일이 쇳물 때문에 일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으로 들어가 쇳물을 가릴 만한 무언가를 찾았습니다. 희고 긴 천이면 아무것이나 내다가 쇳물 위로 던졌습니다. 흰 천들이 금세 검은 물을 빨아들였어요. 아무리 천을 던져도 쇳물 웅덩이는 사라지지 않을 기세였죠. 자이언트의 러닝셔츠, 마마의 천 기저귀까지 모두 쇳물 웅덩이에 집어던져 넣고 말았습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매일 같은 말만 되풀이했어요. 이례적인 더위, 이례적인 추위! 언제 이례적이지 않은 날씨가 있었던가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말짱한 얼굴로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절망하곤 합니다. 어울리지도 않는 이상한 머플러를 두르고 집을 나간 마마의 가출 따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었어요. 여전히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시끄럽게 지껄였어요. 죽을 날 받아 놓은 노인처럼 방에만 앉아 있다가 가끔씩 문을 열고 마당을 내다봤어요. 그러다 어느 날 벌떡 일어났어요. 마루 위 처마 양쪽에 묶인 초록색 빨랫줄을 풀기 시작했죠. 그리고 그 줄로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꽁꽁 묶었습니다. 먼저 가벼운 라디오를 십자 모양으로 줄 앞쪽에 오도록 묶고, 무거운 텔레비전을 뒤쪽에 묶었죠.

길 위로 질질 끌고 갔습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음악 소리가 아스팔트 위로 통통 튀어 올랐어요.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아스팔트 위에 흰 줄을 남기며 연못까지 질질 끌려왔어요. 곧 음악 소리도 멈췄죠. 상자 갑처럼 작은 연못집 할아버지 집으로 갔어요. 집 담벼락에 할아버지가 신는 커다란 고무장화가 세워져 있더군요. 허벅지 끝까지 올라오는 장화를 겨우 꿰어 신고 물속으로 들어갔지요. 다행히 아직 물이 얼 정도의 강한 추위는 아니었어요. 텔레비전과 라디오도 제 줄을 따라 물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처음엔 먹잇감인 줄 알고 몰려들던 잉어들이 곧 도망을 치더군요.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처음엔 곧 가라앉을 듯 기우뚱거리다가 곧 물 위로 비스듬히 떠올랐습니다. 긴 막대기로 텔레비전과 라디오의 시신을 연못 한가운데를 향해 조금씩 밀었습니다. 조금씩 가운데로 흘러가다가 라디오가 먼저 꼴까닥 숨을 거두더군요. 그제야 그것들은 입을 닫았고 비로소 세상이 조용해진 것 같았습니다.

그 이전이었는지 이후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저는 가끔 바다가 나오는 꿈을 꾸었어요. 넓고 깊은 바다 한가운데로 우리 집과 성격 특이한 마마를 띄워 보내는 꿈. 냉장고도 띄워 보내고 책상도 띄워 보내고 의자도 띄워 보냅니다. 나무판 위에 멋진 가죽 팔걸이의자가 놓여 있고 그 의자 위에 마마가 앉아 있네요. 마마는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푸른 바다 저 멀리 떠내려갑니다. 그 꿈이 현실이 된 것처럼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후로도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버린 건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습니다.

동네 친구들 몇 명이 길옆에서 놀고 있더군요. 제가 지나가는 순간, 애들이 저를 향해 벌어진 입을 마음껏 놀리기 시작했습니다. “자이언트를 닮아 드디어 맛이 갔군.” “쟤는 피가 더러워서 어쩔 수 없어.” “저런 애들은 그냥 내버려 두는 수밖에 없어.” 한 녀석이 잠자던 개도 깨울 만큼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떠들고 있더군요. 저는 손에 고구마를 든 채 지껄여대는 그 녀석을 향해 즉시 돌진했어요. “더러운 피, 어디 한 번 맛 좀 볼래?” 순간 고구마를 먹고 있는 녀석의 입을 한 방 날렸거든요. 멋있게 보이려고 대사에 너무 신경을 쓴 탓일까요. 펀치가 너무 약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런데 녀석이 잽싸게 얼굴을 피하더니 이내 달려와 제 복부와 어깨에 연달아 발길질을 날렸어요. 제 주먹의 효력이 별것 아니었던 거죠. 키가 작은 탓에 그 녀석의 발길질은 거의 제 어깨에 닿았고 저는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사이코 새끼.” 애들이 합창으로 지껄였습니다. 제가 일어나려고 애쓰는 사이 애들은 저희끼리 어깨동무를 하고 혀를 날름거리며 자리를 떴습니다. 애들은 다 같이 공장 터로 몰려가고 있었죠.

화가 나서 씩씩거렸어요. 그때 어린애가 아장아장 길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저는 어린애에게 다가갔고 단숨에 고추를 확 잡아당겼습니다. 어린 녀석이 죽겠다고 울자 어디선가 금세 애 엄마가 나타나 저를 째려봤습니다. 피가 더러운 애라고, 그 여자도 자기 애한테 저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더군요. 제가 무슨 바퀴벌레나 도마뱀도 아니고, 사람들이 저한테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말귀도 못 알아듣는 애한테까지 말입니다. 허공에 대고 기다란 칼을 휘두르는 액션을 끊임없이 연습했어요. 그렇게 거기에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았죠.

반파된 벽돌 공장 터로 갔습니다. 큰길에서 멀찍이 떨어진 그곳은 건물 주변이 무릎 높이까지 올라오는 건조한 잡풀들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공장 건물은 절반 정도가 무너진 채 몇 년간 거기 버려져 있었어요. 남은 건물 벽은 검은색 낙서들로 가득 차 있었고 벽과 벽 사이에서 자라난 풀들은 허공을 향해 비스듬히 자라고 있었습니다. 건물 가까이 다가가면 매미 소리 같기도 하고 피리 소리 같기도 한 알 수 없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어요.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 소리를 느꼈는지는 잘 알 수 없는 일입니다만 저는 그 소리만 생각하면 지금도 온몸이 저릿저릿 떨려옵니다.

총싸움하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몇 명은 매복조처럼 공터 주변을 뛰어다니고 있었고 남자애들, 여자애들이 뒤섞인 또 다른 무리의 애들이 동그랗게 모여 서서 담배를 피우며 뭔가를 들여다봤습니다. 제가 다가가자 아이들은 머리통을 더 바짝 붙이고 제가 끼어들 틈을 만들어 주지 않았어요. 언뜻 보니 고구마를 먹던 녀석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공장 앞에서는 시내 쪽으로 나가는 길이 훤하게 뚫려 있었습니다. 갑자기 여자애들 몇 명이 건물 뒤편에서 앞쪽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여자애들은 거울과 화장품을 손에 든 채, 립스틱을 바른 입술을 계속해서 비죽거리며 잔뜩 인상을 쓰고 저를 쳐다봤어요. 학교 친구 한 명이 보였습니다. “나 그거 한 번만 발라 보자.” 여자애들이 제 말에 기가 막힌다는 듯 허리를 뒤로 넘기며 웃었습니다. 저는 거울을 보며 정성껏 립스틱을 발랐어요. 그동안 여자애들은 귀에 매달린 커다란 링 귀고리를 만지작거리며 화장하는 저의 얼굴을 쳐다봤죠. 여자애들과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워 참을 수가 없었어요. 높낮이가 들쑥날쑥한 벽돌 더미 위를 단숨에 뛰어 공장 뒤쪽 편으로 날아갔습니다. 바로 거기에 고구마 자식이 애들 몇 명과 같이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군요. 드디어 상대를 만난 것이었어요.

저는 최대한 흥분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숨을 가라앉히려고 애썼습니다. 애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동안 공장 뒤편으로 넓게 펼쳐진 배추밭 쪽으로 시선을 주는 여유까지 부렸습니다. 애들은 모두 네 명이었습니다. 저는 다짜고짜 무리 사이로 돌진, 고구마에게 서툰 이단 옆차기를 선물했습니다. 애들의 대열이 흩어지고 고구마가 뒤로 나동그라진 순간 저는 고구마의 배 위에 잽싸게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힘이 센 고구마는 저를 한 번에 밀쳐 내고 한 방 갈기더니 커다란 운동화발로 짓눌렀습니다. 메이커라고 자랑을 해대던 운동화가 굉장히 위협적으로 느껴졌어요. 한번은 다리에, 한번은 어깨를 스쳐서 얼굴을 제대로 맞았습니다. 얼굴이 찢어졌는지 살갗이 따끔거렸지만 벌떡 일어나 다시 고구마에게 돌진했습니다. 동생이 형한테 대롱대롱 매달린 것처럼 보였을 테지만 그렇다고 멈출 수는 없었어요. 고구마는 뒤로 나동그라져 두 팔로 땅을 짚고 상체를 세운 채 저를 노려봤습니다. 순간 저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저는 고구마의 배 위에 올라타는 동시에 뒷주머니에 있던 칼을 잽싸게 꺼내 머리 위로 치켜들었습니다. “와아.” 아이들 사이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어요. 칼끝이 뾰족한 과도를 보자 고구마는 눈과 입이 가늘게 찢어지며 온몸에 힘을 주고 용트림을 해대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마의 몸은 나무 장작처럼 굳어 갔습니다. 옆에 서 있던 아이들도 잔뜩 겁에 질려, 무슨 소린지 알 수 없는 헛소리를 지껄여 대기 시작했어요.

공터가 한층 어두워졌습니다. 귓가를 때리는 소리가 좀 더 강렬해졌어요. 소리 때문에, 찌를 수도 없었고 찌르지 않을 수도 없는 기분에 빠져들었어요. 그때 공터 앞쪽에 있던 애들이 소란스럽게 몰려왔습니다. 그리고 제게 주문했어요. “찔러 봐. 빨리 해봐.” 고구마의 얼굴은 하얗게 변해 가고 있었어요. 그 녀석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는 땀에 젖은 제 손의 힘도 점차 풀려 갔습니다. 내리찍으려고 손에 힘을 주던 순간이었습니다. 제 머리통은 둔중한 힘에 얻어맞고 돌쩌귀 위로 나동그라졌습니다. “사이코 새끼.” 고구마의 친구가 저를 때린 뒤 비웃는 듯 웃으며 말하더군요. 거기 서 있던 모든 애들이 한마디씩 하며 저를 놀렸습니다. 몸을 일으킨 고구마가 다가와 커다란 운동화발로 제 머리를 가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팔뚝으로 얼굴을 가린 채 칼이 어디에 떨어졌을까를 고민했을 뿐입니다.

녹신하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한쪽 눈이 잘 떠지지 않았습니다. 눈알이 빠져 버린 것 같아서 계속 눈을 깜박거렸지요. 그때 누군가 제 배를 힘껏 차고 머리통을 뒤로 잡아당겼습니다. “너 화장 했냐?” 내 머리통을 뒤로 잡아당긴 손길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눈앞은 온통 어둠과 실룩거림과 이상한 소리들 천지였습니다. “야, 이 새끼 입술 좀 봐.” 애들이 모두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이 병신 새끼 좀 봐.” 눈과 코와 입에서 끊임없이 뭔가 쏟아져 나왔죠. 배는 아예 감각이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팠구요. ‘맞다가 세월 다 가는군.’ 제 감회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먼 훗날 차를 타고 벽돌 공장 근처를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뭔가 복잡한 일에 휘말려 있을 때라 풍경 따위를 감상할 처지가 아니었을 겁니다. 공장 부지는 깨끗하게 밀어 버린 채로 텅 비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그곳이 반파된 공장이 있던 터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릴 수 있었죠. 빨리 달리라고, 옆에서 운전하는 녀석의 머리통을 갈겨 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북쪽 도시가 몰라보게 발전할 거라고 했던 어른들의 얘기는 말짱 거짓말이었습니다. 길 위에 서 있으면 금세 숨이 막혀 오는 게 느껴졌어요. 시민들은 스카프로 입을 가리거나 마스크를 쓴 채 미세 먼지가 날아오는 쪽에다 대고 욕을 해댔습니다. “이것도 축복이라고 우리한테 겨우 미세 먼지나 내려 주다니.” 저녁 무렵이 되면 음식 쓰레기와 폐기물들로 시내 한복판의 교차로는 엉망이 되었죠. 길을 지나갈 수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설탕과 방부제가 듬뿍 든 음식들이 지천이었어요. 자고 일어나면 어제 시민들이 먹었던 음식 재료가 인간은 먹을 수 없는 화학 물질 덩어리이거나 동물의 폐기물로 만들어진 것으로 판명 나곤 했습니다. 그래도 시민들은 윤기 흐르는 얼굴을 옆에 있는 사람의 어깨에 기대고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식당으로 몰려갔어요. 하지만 동전도, 지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어린이는 부패한 음식조차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눈을 굴려도 할 일이라고는 없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북쪽 도시일 뿐이었으니까요.

버스 정류장 앞에서 졸고 있는 노점상의 사과를 훔쳐 먹었어요. 건어물 노점상의 멸치도 훔쳐 먹었죠. 때로는 번데기도 훔쳐 먹었어요. 입속에 멸치를 가득 넣고 껌처럼 될 때까지 아작아작 씹었어요. 그렇게 멸치든 뭐든 남의 살을 씹어대지 않으면 화가 풀리지 않았어요.

대낮에는 시장을 뱅글뱅글 돌았어요. 어디로 나가든 시장 길은 다시 시장과 통하게 되어 있더군요. 배추를 파는 노점상들, 끄덕끄덕 졸고 있던 달러 장수들이 제 얼굴을 빤히 쳐다봤어요. “뭐 줄까 꼬마야?” 그들이 저에게 물어봤어요. 저는 세게 고개를 저었어요. 노점상들 입에서 ‘막걸리’, ‘생명보험’, ‘얼굴 로션’ 같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왔어요. 모두들 그 말에 대해서 한마디씩 하는 사이 저는 또 그들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어요. 식당 옆 담벼락 아래에 모여 앉아 사람들이 먹다 버린 음식을 천천히 먹고 있는 거지들도 보였어요. 몸속에서 스산한 한기가 생겨 저 혼자 마구 돌아다녔어요. 배고픈 것도 잊은 채로요.

시내버스 터미널에 앉아 시간을 죽였죠. 누구든 버스에서 내려 뚜벅뚜벅 걸어 돌아올지도 모르잖아요. 기적이란 게 있기도 하니까. 버스 배차 간격에 따라 시간이 뭉텅뭉텅 잘려 나가기 시작했어요. 손톱 밑에 낀 때를 파내고 콧등을 만지고 양말을 고쳐 신었죠. 휴가 나온 군인, 보퉁이를 든 할머니, 책가방을 든 학생들이 몸을 웅크린 채 터미널을 오갔어요.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고 한숨이 터졌죠. 무슨 연극 무대 같았어요. 똑같은 사람들이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것만 같고 버스들도 다 실제로는 움직이지 못하는 고물 차량들 같았지요. 아무도 저에게 말을 걸지 않았어요. 버스에 차 시간과 도착지가 적힌 안내판이 붙으면 사람들이 마구 몰려들어 버스에 올라탔어요. 저도 승객들을 따라 승강장으로 나갔죠. 버스가 떠나고 난 승강장 바닥은 차가운 무덤처럼 텅 비어 있었어요.

건어물과 생선을 파는 시장을 뱅글뱅글 돌고 있을 때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죠. 철물점 문 앞에 서서 비를 피하고 있었어요. 비닐 천막 위로 후두둑거리며 비가 떨어져 내렸어요.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어떤 사람이 오토바이를 후진해 제 앞으로 오더군요. 그리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저를 빤히 쳐다봤어요. “따라와.” 그 사람이 저한테 말했고 저는 묵묵히 따라갔어요. 자이언트의 가게에서 기계를 훔쳐 내다 팔았던 그 조수 형이었어요.

만두 가게로 데려갔어요. 막 청소를 끝낸 식당 바닥은 스케이트장처럼 물이 흥건했어요. 제 머리통만한 만두를 열 개쯤 시켜 주더군요. 형은 점퍼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어요.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천천히 라이터로 불을 붙였죠. “부모 원망할 거 없다.” 고작 만두 몇 개 사 주면서 싸구려 인생 강의를 하려 드는 줄 알았어요. 갑자기 식욕이 딱 떨어지더군요. 하지만 형은 그 후로는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피웠어요.

형은 저를 중앙로의 한 관공서 건물 2층에 차려진 선거 사무실로 데리고 갔어요. 거긴 딴 세상처럼 활기에 넘쳤어요. 인쇄된 팸플릿, 포스터들, 소형 책자들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어요. 인쇄 기름 냄새가 속을 확 뒤집더군요. 끊임없이 뭔가를 배달하러 온 사람들이 들락거렸고 사무를 보는 누나들은 쉴 새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를 받느라 입술이 꼬일 지경이라고 툴툴댔어요.

형들 몇 명이 신문을 뒤적거리고 앉아 있더군요. 그중 한 형이 조수 형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치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어요. 또 다른 형이 자연스럽게 구두를 벗어 형 앞으로 내밀었구요. “저기 형님, 제가 얘 좀 데리고 있어도 될까요?” 조수 형이 고개를 숙인 채 그 방에 있는 형들에게 물었어요. 그러자 한 형이 저에게 다가왔어요. 제 머리를 쓰다듬고는 책상으로 가 바로 전화기를 들었어요. “니 맘대로 해 새끼야.” 실실 웃으며 말하는 형님이라는 사람의 표정은 음침하면서도 정확해 보였어요. “저 애 아버지가 그 자이언트 자식인데…….” 형이 거듭 말했어요. “그 돼지새끼, 철공소 그 돼지새끼?” 전화번호를 계속 눌러대는 형님을 향해 바로 맞췄다는 뜻으로 조수 형이 고개를 흔들었죠. “니 맘대로 해 새끼야. 지금 그런 게 뭐가 중요해.” 전화기를 내려놓는 그 형님의 입속에서 은색 아말감이 반짝 하고 빛났어요. 형들과 같이 자장면을 먹었어요. 전화를 받던 누나 한 명이 제 자장면 그릇 위에 단무지를 하나씩 올려놓아 주었죠. 저는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누나의 젓가락에 묻은 자장면 소스를 제가 먹을 단무지에 고스란히 발라 주는 꼴이었거든요. 형들은 정말 채 1분도 안 되어 한 그릇을 다 비우고 사무실 밖 계단에 모여 서서 담배를 피웠어요.

오후 두 시쯤 되자 국회의원 후보라는 사람이 나타났어요. 그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는 전화통을 붙들고 수다를 떠는 것밖에는 없었어요. “뽑아 줘야 한다, 밀어 주셔야 한다.” 그는 간간이 껌을 씹다가 텔레비전을 보기도 했어요. 저는 혼자 킥킥거렸지요. 흰머리는 뽑아 줘야 하고, 때는 밀어 줘야 하니까요. 물론 중간 중간 화장실에도 갔지만 국회의원 후보의 일은 기본적으로 수다였어요. 수다, 또 수다.

밤이 되어도 저는 잠들지 않았어요. 형들을 따라다니며 얻어먹는 밤참 재미가 쏠쏠했어요. 형들과 같이 있으면 어디에 가든 대접을 받았죠. 말을 할 때마다 환하게 웃는 속눈썹이 긴 누나들도 자주 만날 수 있었고, 하다못해 길거리 노점상들도 형들한테는 아주 잘해 줬어요. 어떤 때는 언제 잠드는 줄도 모르고 잠이 들어 깨어나 보면 형들 숙소인 적도 있었어요. 낮에는 형들이 시키는 대로 약국에 뛰어가 속 풀이 약을 사다 주고 구두닦이에게 구두를 가져다 줬어요. 국밥집으로 뛰어가 머릿수만큼 식사 주문을 미리 했죠. 형들이 고향으로 보내는 소포 꾸러미를 들고 우체국으로 가 대신 부쳐 주기도 했어요. 지방 출장을 가는 형들을 위해 기차역에 가 차표도 사다 주고 형들이 시키는 잔심부름은 뭐든 다 했어요. 제가 편했을 거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하루 중 편하게 앉아 쉰 적이 거의 없었거든요.

미션이 떨어졌어요. 형들이 모시는 의원님 후보를 공공연히 비방한다는 이유로 지역 유지인 한 영감님이 운영하는 식당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일이었어요. 형들은 저녁을 일찍 먹고 위가 어느 정도 비었을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몸이 둔하면 일을 제대로 끝낼 수 없다면서 자꾸 담배만 피워댔습니다.

밤이 왔어요. 형들은 봉고차에서 내려 각목을 들고 식당으로 들어갔어요. 저도 형들이 하는 대로 각목을 하나 들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뜻밖에도 자이언트를 만났답니다. 계절이 바뀐 지 오래였지만 자이언트는 여전히 건강해 보였어요. 늘 그렇듯 계절감도 없이 자이언트는 여태 그 러닝셔츠 차림으로 육중한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죠. 깜짝 놀란 저는 손에 들었던 각목을 길바닥에 던져 버렸어요.

붉은색 플라스틱 통에 든 무김치를 바닥에 엎은 건 자이언트였는데 순식간에 무김치 더미 위에 자빠진 것도 자이언트였어요. 의욕이 앞서 나자빠지는 줄도 몰랐던 거죠. 자이언트는 탁자와 의자 사이를 오가며 식당 측 대표라고 나온 젊은 청년과 편을 먹고 우리 형들을 상대로 싸움을 시작했어요. 형들이 번갈아 가며 자이언트의 어깨 위를 각목으로 내리쳤어요. 처음엔 움찔했지만 자이언트는 곧 두 형을 잡아 양쪽 겨드랑이에 한 명씩 끼고 목을 졸라 버렸어요. 또 다음 형들이 다가오자 자이언트가 이번엔 식당 구석에 세워져 있던 대걸레를 들었어요. 형들이 든 깔끔한 각목에 비해 자이언트의 대걸레는 형들을 정신없게 만들기에 충분했어요. 둘 다 또 금세 걸레에 얼굴을 맞고는 침을 뱉으며 뒤로 물러났죠.

그 사이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자이언트 뒤에 서서 우왕좌왕하던 청년이 급습한 형들에게 몰매를 맞았어요. 청년은 결국 방구석까지 끌려 들어가 방석들 사이에 고개를 처박고 널브러졌죠. 놀라운 건 그 틈에도 의연히 식당 한구석에 앉아 식사를 하고 있던 그 집 여주인이었어요. 맥주잔에 맥주를 따라 가며 눈앞에 있는 음식들에 젓가락질을 했어요. “정치패들 따라다니다 인생 말아먹은 인간은 당해도 싸.” 여주인이 남편을 향해 소리치며 혼자서 맥주를 들이켰어요. “아니 체대 나온 놈이 저런 돼지 하나를 못 이기냐. 학교에 갖다 준 등록금이 아깝다 이놈아.” 영감이 방석 더미에 고개를 박고 다리를 버둥거리는 청년에게 소리쳤어요. 형들이 청년의 멱살을 잡고 물었죠. “너 체대 나왔냐? 응? 너 체대 나왔어?” 체대 나온 덕에 그 형은 몇 대 더 맞고는 아예 실신을 해 버렸답니다.

다음은 자이언트 차례였어요. 자이언트는 이상한 쇠줄 같은 걸 들고 형들을 향해 흩뿌리듯 던졌어요. 작은 체인이 연결된 긴 쇠줄과 자이언트는 이상하게 잘 어울렸답니다. 형들 세 명이 문 앞에 서 있고 두 명이 먼저 자이언트와 붙었어요. 저는 문밖에 서서 창에 고개를 박고 자이언트를 쳐다봤어요.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안의 상황을 살피던 다른 형들의 얼굴도 표정이 몹시 안 좋았죠. 탁자며 의자는 이미 다 벽 쪽으로 밀려 부서져 버린 뒤였고 벽에 붙은 있던 거울이며 액자들만 말짱했어요. 형들은 전열을 가다듬는 듯 잠깐 시간을 갖는 것 같았어요.

형들은 짧게 깎은 머리칼을 손끝으로 일으켜 세웠어요. 검은 양복, 검은색 장갑까지 옷매무시도 한 번 더 가다듬었어요. 한 형은 앞에서 한 형은 뒤에서 자이언트를 가격했어요. 쇠줄만 아니어도 괜찮았을 텐데 자이언트가 식당 바닥에 한 번씩 내리칠 때마다 소름끼치는 소음이 들렸어요. 한 형이 쇠줄에 맞고 어깨가 툭 꺾여 버렸어요. 문 앞에 있던 다른 형이 뒤에서부터 달려오며 자이언트를 향해 정면 돌진했죠. 자이언트는 형의 몸을 통째로 잡아서는 저만치 밀려나 있는 탁자들 틈으로 패대기를 쳤어요. 또 한 명의 형이 뒤에서 각목을 들고 달려갔어요. 그때, 식당 밖에 있던 형들이 식당 뒤의 주방 쪽으로 움직이는 게 보였어요.

건물 뒤로 돌아간 형들이 자이언트의 등 뒤를 향해 조심조심 걸어오는 게 보였어요. 자이언트의 몸은 땀범벅이었고 머리카락은 물기로 번쩍거렸어요. 뱃살은 다 드러나 있고 신고 있는 검정 슬리퍼도 그렇고 자이언트의 모습은 기괴해 보였어요. 뒤에 있는 형들이 달려가기 전에 앞에 있는 형이 달려들었어요. 뭐라고 해야 하나. 자이언트는 일단 형이 주먹질하게 둔 다음 형의 몸을 꽉 잡고는 형의 등을 한 손바닥으로 내리쳤어요. 사람들은 그걸 태권도라고 부르지 않고 ‘당수’라고 불렀었어요. 그 내리치는 순간의 자이언트는 정말 거인 같았어요. 포효라고 할까, ‘야얏’ 하는 그 소리는 정말 크고 우렁찼답니다. 잠깐 형들이 겁에 떠는 사이 자이언트는 여유를 부리며 술까지 마셨습니다. 그리고 형들을 향해 소리쳤죠. “와, 오라구.” 그리고 주인 영감을 향해 소리쳤습니다. “형님, 제가 형님 체면은 살렸습니다.” 그때 뒤에서 달려든 형들이 각목으로 자이언트의 어깨를 내리쳤습니다. 자이언트가 몸을 숙인 사이 앞에서 달려든 형들이 자이언트를 끓어 앉혔죠. 꿇어앉는 순간의 그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지붕이 내려앉는 줄 알았으니까요. 순간 저는 눈을 감고 말았습니다. 자이언트가 저를 본 것 같았거든요.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심장이 벌렁거리는 자이언트에게 걸려 봐야 좋을 게 없으니까요. 죽어라 달렸어요. 뒤는 아예 돌아보지도 않고 무조건 달렸어요. 미세 먼지에 가려져 물병 속처럼 불투명해진 시내가 거짓말처럼 발밑에 펼쳐져 있었죠. 저는 숨을 헐떡거렸어요. 어디선가 자이언트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건 사실 저의 숨소리였어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제 몸 하나하나, 행동 하나하나도 자이언트를 닮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어느 순간 자이언트가 했던, 순식간에 등을 내리치던 당수 동작을 저도 모르게 따라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이언트의 자식이라는 걸 부지불식간에 깨닫게 되었던 것이죠.

조수 형이 저를 데리고 자기네 집으로 갔어요. 인근 고등학교의 담벼락을 끼고 돌아 가파른 언덕길 위로 올라갔어요. 각도가 거의 수직인 계단을 다 올라선 형은 시내를 한 번 내려다본 뒤 초록색 철 대문 안으로 들어갔어요. 작은 세숫대야가 놓인 수돗가가 있고 바로 쪽마루와 방이었어요.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저보다 어리거나 좀 큰 아이들 대여섯 명이 화들짝 놀라며 책과 노트를 눈 밑으로 끌어당겼어요. 애들은 많은데 집 안이 들판처럼 고요했어요. 조수 형은 노트 하나를 말아 쥐고는 거기 있는 아이들의 머리통을 차례대로 한 대씩 갈기기 시작했어요. “공부하랬지 자식들아.” 맞는 이유는 그거였지만 제가 볼 때는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윗방 문이 열리며 기운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왔냐?” 두 노인의 상반신만 보였어요. 나란히 누운 두 노인은 아픈 것 같았죠. 그때서야 마마가 했던 말이 떠올랐어요. 꼴은 그래도 자존심이 보통 아닌 애라고 했던 말, 마마가 준 돈을 박박 찢어 마루에 뿌렸던 조수 형의 행동 말입니다.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여자애가 커다란 솥을 수건으로 감싸들고 방으로 들어왔어요. 몸은 마르고 얼굴은 어려 보이는데 하는 짓은 숙련된 간호사처럼 능숙한 누나였어요. 손에 밥그릇을 든 아이들에게 차례로 밥을 퍼 줬죠. 반찬이라고는 달랑 무말랭이 무침과 감자볶음, 식용유를 잔뜩 바른 구운 김이 다였죠. 밥을 흘리는 애들을 다 챙기고 식사 후에 물 마시는 것까지 동생들을 다 챙겼어요. 게다가 누나는 윗방의 노인네들까지 챙기느라 나중에서야 식은 밥을 먹었어요.

밥을 먹고 난 애들은 모두 각도를 달리해 앉은 채 자연스럽게 책을 읽었어요. 조수 형만 아이들 틈에 사지를 쭉 뻗고 누운 채 천장만 쳐다봤죠. 윗방 환자들은 식사 후의 노곤함 때문인지 금세 코 고는 소리를 냈어요.

주변은 짙은 파랑색으로 어두워지고 있었어요. 형은 집 밖으로 나가 계단 끝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담배를 피웠죠. 올망졸망한 아이들은 수돗가에 앉아 양치질을 하고 걸레를 빨고 물을 칠해 머리를 빗었어요. 부엌일도 같이 하고 지붕 밑에 널은 빨래도 걷어 개켰어요. 아이들은 도무지 아이들 같지 않았어요. 고아원 아이들이 막 잠 잘 준비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죠.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애들은 누군가의 눈치를 보느라 눈 돌아가는 소리가 팍팍 났어요.

며칠 후 형네 집은 쑥대밭이 되었어요. 중학생 누나가 집을 나가 버렸거든요. 형이 저를 데리고 간 곳은 북쪽 도시의 경계에 있는 산 밑의 한 마을이었어요. 북쪽 경계에 있는 산은 너무 높고 험해서 감히 아무도 올라가려고 하지 않았죠. 그런데 그 산 중턱에 평야가 있고 그곳에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어요. 산으로 올라갈 사람들을 모집하는 사람들이 산 아래 마을에 캠프를 열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기는 했어요. 그들이 갑자기 시내 일원에 퍼져 무작위로 시민들을 끌고 가고 있다고 했거든요.

제가 다니던 학교 앞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고 버스는 계속해서 북쪽으로 달려갔어요. 어느 순간 버스가 빠르게 우리 집 앞을 지나갔어요. 심장이 두근거렸지요. 형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인 채 자고 있었어요.

중학생 누나는 캠프장처럼 넓은 그 공터의 천막 안에서 이상한 남자들 사이에 앉아 웃고 있었어요. 두 갈래로 땋아 내린 머리에 알록달록한 스웨터를 입은 채 손에는 컵을 들고 있었죠. 동생들에게 밥을 차려 주고 걸레를 빨 때보다는 한결 나아 보였어요. 형은 천막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누나의 멱살을 잡았어요. 누나는 끽 소리도 내지 않고 따라 나왔고 그때 천막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나와 형 주변을 에워쌌어요.

‘우리들만의 도시 건설’, ‘우리들만의 이상향’, ‘꿈의 도시’ 같은 단어들이 공터 여기저기에 매달린 플래카드 위에서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어요. 얼굴 전체에 긴 수염이 난 한 남자가 저벅저벅 걸어 나와 형 앞에 섰어요. “이 학생은 자기 스스로 우리와 함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한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을 방해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 형은 남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화가 뻗쳐 누나의 머리채를 낚아채 그대로 땅바닥에 처박아 버렸어요. “뭐가 어째 이 개자식들아. 여기서 한 시간 안에 사라지지 않으면 다 폭파시켜 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형은 누나와 저를 한 팔에 하나씩 끼고 그 공터 아래의 언덕길로 내려가려고 했어요. 그때였어요. “내 맘야 오빠. 내 맘이라구. 난 학교도 그만둘 거야.” 누나가 쓰러진 채 말했어요. 형은 화가 뻗쳐 천막을 떠받치고 있던 지지대 하나를 뽑아 사람들을 향해 겨눈 채 누나에게 말했어요. “너 입 안 닥쳐, 이런 정신 나간 자식들한테 밥해 주고 몸 대주라고 기름밥 먹어 가면서 돈 번 줄 알아 이 미친년아.” 천막 안에 있던 사람들이 거의 다 밖으로 나왔어요. 드문드문 국적을 알 수 없는 외국인도 있었어요. 그들은 무슨 일이냐는 듯, 두 팔을 벌리고 형과 누나를 쳐다봤어요. “저 사람들, 그런 사람들 아냐.” 누나는 뒤를 돌아보며 그 사람들에게 신의를 표하는 동시에 형에게 박박 대들었어요. 그때 수염 달린 남자가 형에게 다가와 형의 손을 잡으려고 했어요. “우린 나쁜 사람들이 아닙니다. 동생분의 의지를…….” 형은 순간 더 이상 화를 참지 못했고 결국 머리 뚜껑이 열려 버렸어요. 주먹 한 방을 날렸는데 수염 난 남자가 그대로 기절해 버렸거든요. 그대로 두었다간 누구 하나 죽어야 끝날 것 같았어요.

평지로 나오자마자 형은 택시를 잡았어요. 택시 뒷좌석에 누나와 나를 밀어 넣고 앞자리에 앉아 창문을 열어 놓은 채 줄곧 담배를 피웠어요.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형은 양복 윗옷을 벗어 벽에 걸고 푸닥거리를 시작했어요. 누나 보라는 듯이, 올망졸망 앉아 있는 어린애들을 닥치는 대로 패 버렸어요. 어떤 애는 코피가 나고 어떤 애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또 어떤 애는 벽에 꼭 달라붙어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어요. 모두들 겁에 질려 달달달 떨고 있었고 아무도 형을 제지할 수 없었어요. 그날 밤 저는 집에 가고 싶어졌어요.

집으로 갔습니다. 제가 해놓고 나간 그대로 가게 문은 닫혀 있었어요. 그런데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에서 환한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는 거예요. 보통은 밤중에 마당 불을 그토록 환하게 켜 두지는 않았거든요. 마당에 밥상이며 그릇들이 나뒹굴고 있었어요. 벌써 한 판 벌어진 뒤였던 것이죠.

마마는 방 한구석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어요. 제가 어찌나 조용히 들어갔던지 사람이 들어가는 줄도 모르더군요. 동네 어른들 두 명이 자이언트의 몸을 꼭 붙잡고 있었어요. “아들도 왔으니 이제 그만 해. 자네 이러면 안 되네. 자네가 계속 이러면 우리가 자네를 동네에서 추방시키겠네.” 한 노인이 자이언트에게 말했어요. 자이언트의 뒤에는 그 무시무시한 낫이 놓여 있었습니다. 또 한 노인이 말했어요. “애 엄마가 돌아왔잖아. 그럼 이제 용서해야지. 안 돌아오면 어쩔 텐가, 돌아오지 않았나?” 그 말끝에 제일 흥분한 사람은 다름 아닌 마마였어요. “난 돌아온 게 아니랍니다 어르신, 애를 만나러 왔어요.” 마마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흰 머리띠를 황홀하게 쳐다보고 있던 순간, 자이언트가 마마의 어깨를 냅다 발로 찼어요. 마마는 울지도 않았어요. “큰 도시로 갈 거예요.” 마마의 그 말끝에 저도 덩달아 소리를 질렀습니다. “나도 따라갈 거예요.”

마마는 자이언트가 기운이 빠진 사이 제 옆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서 제일 이상한 얼굴로 제 얼굴을 쳐다봤습니다. “많이 컸네.” 마마가 저에게 말을 건넸어요. 마마의 얼굴엔 한바탕 검은 그림자가 덮여 있었습니다. 십 년쯤은 늙은 것 같았죠. 저는 마마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눈을 감았습니다. “정말 많이 컸다. 청년 같아.” 마마가 또 말했습니다. 자이언트가 술병을 입에 대고 벌컥벌컥 소리를 내며 마시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갑자기 우리 집이 활기에 넘치는 걸 보고 있자니 눈물이 다 나려고 했지요. “너희 둘 다 오늘 여기서 죽어!” 자이언트가 우리에게 명령했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저는 코를 흠흠거리며 마마의 냄새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잠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내내 따뜻했습니다만 저는 한바탕 오줌을 싼 채 잠자리에서 깨어났습니다. 자이언트도 없었고 마마도 없었습니다. 옷가지들로 덮어 놓은 쇳물 구덩이만 제단처럼 변해 있더군요. 모두 다 사실이 아니었던 겁니다.

 

*

시의 외곽으로 나가는 시외버스를 탔습니다. 시와 시를 가르는 경계 표지판이 구름 아래 떠 있었어요. 다음날은 조금 더 멀리 나가고, 그 다음날은 또 조금 더 멀리 나갔어요. 시의 이름이 바뀌는 순간 지나온 도시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다 사라지고 없으면 좋겠다, 주문을 외웠어요.

지붕도 대문도 땅바닥을 향해 낮게 엎드린 듯한 고요한 마을이 보였어요. 머리에 무거운 짐을 잔뜩 인 아주머니가 버스가 간 방향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갔어요. 저도 그냥 따라 걸었어요. 마을 입구인 듯한 꺾어진 길이 보이고 아주머니는 그 오른쪽 길로 돌아갔어요. 저도 아주머니를 따라 오른쪽 길로 돌았어요. 어디선가 깍깍, 까마귀 소리가 들렸지만 아무것도 동요하지 않았어요. 어른들이 고요한 논바닥 위에서 짚단을 날라다 세모 모양으로 세우고 있었어요.

아주머니는 한참을 가다가 천천히 주저앉아 머리 위의 짐을 내려놓았습니다. 윗옷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더군요.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이고 길 건너편 산자락을 덮고 있는 나무숲을 쳐다봤어요. 저도 아주머니가 쳐다보는 길 건너편 산자락을 쳐다봤어요. 그 반대편 산자락 아래 저와 똑같은 시간을 사는 또 다른 사내아이가, 이쪽 산자락을 쳐다보며 앉아 있을 것만 같았죠. 아주머니 역시 여전히 말없이 산자락만 쳐다보더군요.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멀쩡한 아스팔트를 파낸 뒤, 파낸 흙을 바로 옆 아스팔트 위로 태연하게 옮겨 놓고 있는 군인 아저씨들을 만났어요. 그들이 서로 무슨 말인가를 했는데 도무지 우리말이 아닌 듯 한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주머니는 야트막한 언덕길로 올라가기 시작했죠. 저는 좀 더 빨리 걸었습니다. 아주머니의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죠. 저는 비로소 입을 열었어요. “담배 하나만 주세요.” 제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아주머니는 색색거리는 소리를 내며 앞을 향해 걷기만 했습니다. 저는 그 새를 참지 못하고 아주머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고 아주머니는 머리에 짐을 인 채로 왼쪽으로 천천히 돌아 제 얼굴을 봤습니다. 무거운 짐 때문에 아주머니의 가느다란 목덜미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습니다. “담배 하나만 달라니까요.” 햇빛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지만 저는 화를 내듯 그렇게 말해 버렸어요. 아주머니는 아무 말 없이 큰 눈동자를 굴리며 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했어요. 저는 슬슬 겁이 났습니다. 순간 아주머니가 다시 천천히 몸을 돌려 가던 길로 가려고 했어요. 저는 화가 났습니다. 겨우 담배 한 개비를 가지고, 치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주머니는 천천히 걸어갔습니다. 저는 발밑에 돌멩이를 집어 아주머니의 등 뒤로 던졌어요. 처음에 던진 건 미처 목표물에 닿지 못했지만 두 번째 돌멩이는 등의 정중앙을 맞히고 말았답니다. 순간 아주머니가 천천히 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저를 빤히 쳐다보고만 있었습니다.

저는 뒷걸음질 쳐서 아주머니로부터 멀어졌습니다. 점점 걸음걸이를 빠르게 했습니다. 뒤를 돌아보았죠. 아주머니는 다시 아까처럼 짐을 들고 산길을 오르고 있더군요. 저는 잔뜩 약이 올랐습니다.

갑자기 저는 아주머니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천천히 달리다가 두 다리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마음만은 깊은 물속에서 곤히 잠든 것처럼 평온했습니다. 그리고는 그 길을 다 달려가 아주머니의 등에 칼을 꽂았습니다. 그게 저의 첫 번째였습니다. 어쩌면 살 깊은 곳까지 찌르지는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아주머니를 찔렀습니다. 아주머니는 그 자리에서 앞으로 고꾸라졌고 머리 위에 있던 양동이에서 콩이며 팥, 조, 수수알들이 든 비닐봉지가 터져 바닥에 흩어졌습니다. 저는 무조건 달렸습니다. 아주머니가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아주 나중에서야 했지요. 가다 돌아보니 군인들이 삽을 내려놓은 채 담배를 피우며 키득거리고 웃고 있었어요.

해가 질 무렵에 다시 시내로 들어왔어요. 기름 냄새에 속이 확 뒤집혔어요. 무슨 이유에서인지 치밀어 오르던 화가 좀 가라앉더군요. 자동차 클랙슨 소리들, 점멸하는 황색 신호등, 자전거와 오토바이, 음악 소리, 요란한 간판 불빛들이 번쩍거리며 저를 따라왔습니다. 너무 시끄러워서 눈조차 뜨고 싶지 않았지만 왠지 저는 머릿속이 시원해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어요.

봄 방학 중인 초등학교 운동장은 선거 유세로 활기가 넘쳐났습니다. 형들은 후보가 가는 곳마다 줄을 지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죠. 물론 바로 뒷줄에는 선거 운동원들이 따라다녔지만 그들은 그냥 흰 장갑만 낀,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이 고용된 사람들일 뿐이었습니다. 봄 방학이 끝나면 곧 선거일이 다가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국회의원 후보가 팔을 치켜들기만 해도 환호성을 지르며 북쪽 도시의 시민들이 어느 도시의 시민들보다 편안하고 안락하게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연단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사람들이 전부 몇 명이나 될까 세고 있었습니다. 학교 건물 안쪽, 그러니까 애들이 그린 그림이 붙어 있는 교실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그때 더 이상 학생이 아니었으니까요. 후보가 단상에 올라가 목소리를 높여 연설하는 동안 형들은 부동자세로 선 채 허공을 쳐다봤습니다. 박수 소리가 몇 번 들리는 동안 저는 하품을 하면서 미루나무 꼭대기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노란 풍선을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해드리겠습니다” 후보는 계속해서 강조했습니다. “확실하게 밀어 주십시오.” “기필코 약속을 지키겠습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형들과 같은 검은색 양복을 입은 남자들이 각목을 든 채 교문 입구에서부터 떼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경쟁중인 상대편 후보 쪽 사람들이었습니다. 단상에 서 있던 후보의 마이크가 삑삑거리고 운동장에 모여 서 있던 시민들은 순식간에 다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습니다. 검은색 양복을 입은 형들만 동그랗게 서 있었고 저는 그 가운데서 조수 형을 찾느라 열심히 눈을 굴렸어요.

각목을 든 상대들 중 몇이 먼저 동그랗게 원을 그리고 서 있는 형들에게 달려갔습니다. 처음엔 균형 있게 싸우는 것 같았지만 각목들이 금세 둥그런 대열을 깨 버렸습니다. 태권도라든가 개인 격투기 실력이 있지 않고서는 피할 곳도 없는 운동장에서의 싸움은 어쩌면 싱거워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먼지 나는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건 거의 우리 형들이었고, 각목패들 중에는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각목패들 수가 너무 많았습니다. 하늘 위로 새들이 떼 지어 날아갔고 어디선가 신경질적으로 자동차 경적이 울렸습니다. 그때 저만치 학교 철 대문 너머로 경찰차들이 보였습니다. 저는 무조건 형들을 향해 뛰어갔습니다. “경찰이야, 경찰.” 제가 너무 크게 소리를 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형들도, 상대편 사람들도 모두들 흩어져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도 죽어라 달릴 뿐이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경찰에 잡혀간 몇몇 형들은 후보의 노력으로 금세 풀려나 현장으로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틀 뒤가 선거일이었고 형들이 돕는 후보가 당선될 것이 너무 확실했기 때문에 그런 소요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던 것입니다.

선거 바로 전날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형들과 함께 공중목욕탕에 갔습니다. 오후가 되면 물이 더러워진다면서 모두들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서둘렀죠. 고요한 온탕 안에 앉아 시조를 외듯 알 수 없는 소리를 읊조리던 할아버지들이 떼로 몰려온 청년들의 단체 입수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더운 물이 욕탕 밖으로 콸콸 넘치고 비어 있던 샤워 꼭지 부스마다 청년들이 한 명씩 들어가 더운 물을 틀었습니다. 조금은 썰렁하던 목욕탕 안은 이내 청년들의 활기로 가득 찼습니다. 할아버지들은 잇따라 헛기침을 해대며 절대로 물속에서 나오지 않고 버틸 기세였지요.

늘 입고 다니는 검은색 양복과 목까지 올라오는 검은색 티셔츠를 벗은 형들의 몸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먼지 나는 운동장에 서서 인상을 잔뜩 구긴 채 멍청하게 앞만 바라보던 형들은 사실 아주 어리고 예쁜 청년들이었습니다. 단단하고 우아한 허리의 굴곡에서 시작된 선 하나가 엉덩이에서 미끄러져 넓적다리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늘 맞고 또 때리고 매로 단련된 형들이지만 애들처럼 장난치고 웃느라 목욕탕에서만큼은 싸우는 일을 잊은 듯했습니다. 공중으로 수건이 마구 날아다녔고 형들의 웃음소리가 까르르 들려왔어요.

지금도 저는 가끔 그 겨울, 목욕탕에서 보았던 형들의 벗은 몸을 떠올리곤 합니다. 물론 그 사이 수많은 여자의 몸을 봤지만 왠지 여자들의 몸은 형들의 몸에 비해 순수하지 못하다는 편견을 갖게 되었으니까요.

조수 형이 저한테 다가왔어요. 심장이 두근거렸습니다. 형은 제 머리도 감겨 주고 타월에 비누를 묻혀 온몸에 비누칠을 해주었답니다. 제 손을 잡고는 들어가기 싫다는 뜨거운 물속으로 억지로 데려가 자리를 잡아 주었어요. 자기가 나오라고 할 때까지는 나와서는 안 된다고 말하더군요. 일찍 나오면 때가 밀리지 않는다면서 환하게 웃었어요. 마치 마마나 진짜 형처럼 말하더군요.

잠시 후 형은 검은 털투성이에 엄청나게 큰 그곳을 손으로 가리지도 않고 제가 앉아 있는 온탕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어요. 형의 몸에 매달려 흔들리는 그것 때문에 저는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형은 찬물에 적셔 온 흰 수건을 반듯하게 접어 머리 위에 올려 주고 자기 머리 위에도 올렸어요. 물은 너무 뜨거웠어요. 감전 당한 것처럼 살갗이 찌릿찌릿하게 조여들었죠. 형은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어요.

형들은 길고 단단한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흔들며 온탕 안을 종횡무진했어요. 터질 것 같은 양쪽 가슴팍은 굉장히 커 보였고 종기 자국이 잔뜩 난 엉덩이는 희고도 탄탄해 보였습니다. 형들은 샤워 꼭지 밑에 서서 희고 뜨거운 수증기를 끊임없이 피워 올리며 몸 구석구석을 씻었습니다. 형들의 얼굴이 유리알처럼 반짝반짝 빛났어요.

저는 온탕 안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입수했어요. 팔과 다리를 일자로 편 채 따뜻한 죽음의 느낌을 즐기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물속에서 라디오 소리가 들렸답니다. 아 라디오 귀신이다! 저는 연못에 버린 라디오 귀신에게 붙들려 정신이 아득해졌습니다. 온몸을 버둥거리며 허우적댔어요. 그때 형이 제 머리채를 잡아당겼고 저는 가까스로 방향을 찾아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때 온탕 한구석에 앉아 있던 한 할아버지가 시조를 외우듯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오누나!”

더운 열기가 얼굴과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어요. 그 열기가 제 몸에 마술을 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순간 제 몸이 사방으로 찢어지며 키도 근육도 그림자도 통째로, 한꺼번에 자라나고 말았으니까요. 그건 정말 이상한 경험이었어요.

목욕탕에서 나온 형들은 줄지어 시장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난전을 여럿 지나 달걀이 잔뜩 담겨 있는 커다란 양은 함지박 주위로 둘러섰습니다. 순간 달걀을 파는 아주머니의 얼굴은 환하게 펴졌으나 저는 코를 틀어막고 말았습니다. 양계장에서 채 부화하지 못하고 비틀어진 병아리의 몸뚱이가 형들의 손바닥 위에 형체를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소름이 끼치고 구역질이 났습니다. 형들은 흉물스런 곤달걀에 소금을 꾹 찍어 입속에 털어 넣었어요. 그리고 한참을 우적우적 씹었어요. 널찍한 함지박 한가운데가 움푹 들어가기까지 형들은 쉬지 않고 곤달걀을 입속에 까 넣었습니다. 제 손바닥 위에 놓인 곤달걀은 털도 있고 몸이 반쯤은 부화되어 제법 병아리의 형체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뭐하냐 너? 야, 목욕하고 나니까 진짜 시원하다.” 한 형이 빨리 먹으라고 제 머리통을 갈기며 말했지요. 순간 소금을 찍은 곤달걀이 제 입속으로 쏙 들어왔고 목이 꽉 막혔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문장 웹진/200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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