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1회

장편연재 1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1. 자이언트, 내가 때려 줄게

 

자이언트가 마마의 몸을 한 손으로 잡아 벽으로 밀어붙였어요. 마마는 시멘트벽에 찰떡처럼 달라붙었다가 땅 위로 풀썩 쓰러졌죠. 우는 줄 알았는데 실실 웃고 있었어요. 자이언트는 마마의 머리채를 잡고 얼굴이 허공으로 향하도록 잡아당겼어요. 마마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죠. “이게 실실 쪼개네.” 자이언트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어요. 마마는 마른 갈대 잎을 입술로 불 듯 푸푸 바람을 내뿜으며 대답했어요. “푸푸, 그래 쪼갠다 이 돼지새끼야.” 순간 자이언트가 마마의 뺨을 갈겼습니다. 저는 마마의 목이 똑 부러졌으리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마는 실실 웃었어요. 입으로는 웃으면서 눈물을 흘렸어요.

자이언트는 원래 힘이 세서 망치질 한 번에 나무 대문도 부수고 웬만한 낡은 자동차도 풀썩 내려앉게 만들었던 사람이죠. 어느 날 무슨 연고로 그곳을 지나갔는지 알 수 없는 한 외국인 남자가 고장 난 자동차를 고쳐 준 아버지에게 그런 별명을 붙여 주었죠.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자이언트’라고 말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다 아버지를 자이언트라고 불렀어요. 하루는 자이언트가 과묵한 입을 열어 저에게 말했어요. “너도 날 자이언트라고 불러.”

용접을 끝낸 쇳덩어리에 망치질을 하고 있는 과묵한 표정의 자이언트 뒤에 서서 저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답니다. ‘나도 어느 날 저 망치에 맞아 죽을 거야.’ 같이 술을 마시다가 시비가 붙은 동네 어른을 천장으로 들어 올려 한 손으로 잡고 뱅뱅 돌려 겁을 준 건 비교적 가벼운 일화였어요. 휴가 나온 군인이 동네에서 술을 먹다 술집 아가씨들을 때렸는데 그때 자이언트가 나타나 군인을 녹신하게 만들었죠. 군인은 자이언트 다리에 매달려 살라 달라고 애원했대요.

자이언트는 울퉁불퉁한 길 위로 마마를 질질 끌고 갔어요. 에스키모인이 포획한 고래 꼬리에 구멍 두 개를 내 갈고리에 꿰어 얼음판 위를 질질 끌고 가는 것 같았어요. 몇 겹씩 둘러싸인 높은 산들은 건너편에 서 있는 산들만 마주 본 채 미동도 안 했죠. 어디선가 반짝 하고 헬리콥터 불빛이 보이기도 했지만 어둠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만큼은 아니었어요.

자이언트는 단숨에 마마를 어두운 밭고랑에 처박았어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마마의 몸이 단번에 움푹 파인 밭고랑의 진흙에 찰싹 달라붙어 버렸어요. 그때 바람이 불었고 어디선가 돼지 냄새가 훅 끼쳤어요. 불안했죠. ‘오늘밤 마마가 죽겠군.’ 나는 끙끙거렸어요. 그런데 우리의 마마는 하나도 아프지 않은 사람처럼 행동했어요. 계속해서 자이언트의 품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자이언트를 자극했죠.

갑자기 자이언트의 비명이 들렸어요. 세상에서 제일 입이 무거운 남자였던 자이언트가 갑자기 탁한 저음으로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어요. 그 비명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겠죠. 물론 저는 자이언트를 이해했어요. ‘얼마나 살기 힘들었으면 그랬을까. 당신이 수첩에 끼적거린 메모도 봤어. 당신은 늘 죽고 싶다고 썼지. 그래도 좀 살살 하지 그랬어.’ 제가 청소년이었다면 멋지게 충고를 날렸겠죠. 그러나 이죽거리는 말들은 화만 지필뿐 아무 소용이 없어요. 그랬어요. 마마가 자이언트의 샅을 한 손으로 꽉 잡고 놓아 주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자이언트가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죠. 마마의 목소리가 제가 서 있는 곳까지 전달되어 오는 것 같았어요. “영원히 놓아 주고 싶지 않아. 이건 원래 내 소유잖아.”

저도 자이언트의 그곳을 만져 본 적이 있어요. 자이언트가 공중목욕탕의 나무 의자에 누워 자고 있을 때 열대 과일처럼 보였던 그곳에 저도 모르게 손을 댔죠. 쭈글쭈글해 보였지만 짙은 갈색에 너무 크고 물컹거렸죠. 제가 두 손으로 그곳을 맞잡고 주물럭거려도 자이언트는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어요.

마마는 잔뜩 독이 올라 손아귀 양옆으로 터져 나올 듯 부풀어 있을 자이언트의 그곳을 꽉 잡고 놓아 주지 않았어요. 자이언트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댔어요. 그리고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졌죠. 하늘에는 곧 쏟아져 내릴 듯한 별들이 잔뜩 떠 있었어요.

자이언트가 미친개처럼 두 발로 마마를 차기 시작했어요. 얼굴, 배, 엉덩이 할 것 없이, 물이 펄펄 끓는 무쇠 솥 안으로 들어갈 운명인 미친개처럼 마마를 마구 때렸어요. 자이언트는 뚝뚝 끊어지는 듯한 비명을 어두운 하늘로 내뱉더군요. 화가 난 킹콩 같았어요. 독약을 주워 먹은 곰처럼 지랄 발광을 해댔죠. 마마는 몸을 마음대로 오그라뜨리지도 못하고 뻣뻣한 막대기처럼 굳어 버렸어요.

특별한 도구 없이도 자이언트는 차가운 십일월의 밭고랑 속을 잘도 파냈어요. 분명 밭고랑 속에 사람을 파묻어 본 적이 있는 실력이라고 저는 확신했죠. 자이언트는 사람 하나가 누울 정도의 구덩이를 팠어요. 그리고 스티로폼 상자 안에서 썩고 있는 생선을 내다 버리듯 가차 없이 마마를 그 속에 던져 넣었죠. 또다시 큰 충격이 가해지자 마마의 몸은 마치 소금에 절여진 배추처럼 팍삭 오그라들었어요. 자이언트는 드디어 마마를 그 차가운 밭고랑에 파묻었어요. 그리고 마마에게 말했죠. “시끄럽게 하면 죽어.” 자이언트는 흙 묻은 인형이나 마네킹을 쓰레기통에 버리러 나온 사람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손을 털고 일어났답니다. 시원하게 볼 일을 끝낸 듯 코도 풀고 가래도 뱉었지요. 그리고 자이언트는 그 즉시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애인에게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애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자이언트를 방해한 죄로 밭고랑에 파묻힌 마마는 숨이 막혀 죽을 운명에 처했죠. 내가 구해 줘야 했어요. 마마에게 달려갔죠. 자이언트가 몇 분 만에 해놓은 일이 어린 저로서는 태산을 옮기는 것만큼이나 어려웠어요. 저는 중얼거렸죠. “돼지새끼, 자이언트 돼지새끼.” 어차피 몸 쪽 흙은 파낼 수도 없었어요. 마마의 상반신이 드러나기까지 저는 정말 혼신의 힘을 다했어요. 그래도 마마는 움직이지 않았어요. 저는 주먹으로 마마의 얼굴과 가슴을 마구 때렸답니다. 아무리 때려도 움직임이 없었어요. 저는 아무 노래나 막 불러댔어요. 제자리에서 겅중겅중 뛰기도 했죠. 나중엔 소리 내어 울기도 했던 것 같아요.

얼마 후 깨어난 마마가 캑캑 기침을 했어요. 숨을 편하게 쉬게 하려면 구덩이에서 빼내야 했어요. 겨우 상체를 일으켜 세웠죠. 마마의 어깨를 안아 주었어요. 마마가 내 귀에 대고 말했어요. “저기, 저기 희고 환한 불 좀 봐.” 차고 검은 허공뿐이었는데 마마는 헛소리를 했어요. “저길 봐, 저기 희고 환한 불을 보란 말이야.” 마마는 제 어깨에 턱을 걸친 채 계속 중얼거렸어요. 저는 순간적으로 마마로부터 몸을 떼어 내고 마마의 얼굴을 향해 소리를 쳤죠. “불은 없어.” 봉제 인형의 어깨처럼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은 마마의 어깨가 축 늘어졌어요. 순간 마마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그 자리에 벌렁 누워 뱅글뱅글 돌기 시작했어요. 난 마마가 죽을까 봐 무서웠어요. 그래서 마마의 배 위에 올라타 온 힘을 다해 마마의 두 팔을 눌렀어요. 그때 저도 검은 밭고랑 위에서 타오르는 희고 환한 불빛을 봤죠. 그때 마마가 저에게 말했어요. “불이야 불. 불이 날 태워 죽이려고 해.”

불빛이 움직이는 방향을 쳐다봤어요. 신기하게도 희고 환한 불줄기들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어요. 제 작은 몸에 마마의 팔 한쪽을 둘러 무게중심을 이동한 채 밤길을 걷기 시작했답니다. ‘언제나 집에 도착할 수 있을까.’ 저는 정말이지 두려웠습니다. 몸에서 땀이 흘렀고 두 다리는 금세 풀려 버렸지요. 따뜻한 주홍빛 불을 켜고 달려오는 자동차를 기대했지만 길 위는 여전히 깜깜했어요. 정말 누군가 도와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러나 잔인하게도 어두운 밤길에 우리를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마의 몸은 동물 가죽처럼 축 늘어져서는 자꾸만 앞으로 고꾸라질 듯 중심을 잃으며 저의 시야를 방해했어요. 중심을 잡을 새도 없이 다시 늘어지고 그러면 또 중심을 잡고, 제가 어린아이인 것이 정말 한스러웠어요.

결국 우리는 집으로 갔지요. 만약 집이라는 목표가 없었다면 우린 길거리에서 얼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수건을 적셔 마마의 몸을 닦아 주었어요. 열에 들뜬 마마의 몸은 수시로 작은 북처럼 통통 튀어 올랐다가 가라앉았습니다. 몸 곳곳이 상처투성이었어요. 왼쪽 손 검지손톱이 정중앙에서 가로 방향으로 부러져 빨간 속살이 드러나 있고 허벅지는 붉은 멍 천지였지요. 마마는 까만 흙먼지가 낀 손가락을 빨며 아이처럼 서서히 잠이 들어갔습니다.

몸은 피곤한데 잠이 오지 않았어요. 마마의 화장대 앞에 앉았죠. 오랜만에 빨강색 립스틱을 발랐어요. 저는 가끔 자이언트와 마마 둘 다 집을 비웠을 때 화장놀이를 했답니다. 밖에 나가 아이들과 노는 것보다 방 안에 틀어박혀 화장놀이를 하는 게 훨씬 마음 편했답니다. 립스틱을 발랐죠. 대낮의 열기가 꽉 들어찬 방 안에서 문을 꼭 닫은 채 립스틱을 바르고 마마의 브래지어를 둘렀어요. 엉덩이를 한쪽으로 쏙 내밀고 이마 위에 난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움켜쥐고 거울을 봤죠. 그러면 어느 순간 내 페니스가 번데기 부풀 듯 부풀어 올라 돌덩어리처럼 변했답니다. 그러나 그날 저의 페니스는 여름날의 뜨거운 대낮에 그랬던 것처럼 철없이 장난 칠 기분이 아니었어요.

마마는 아직도 불을 보고 있었어요. 헛소리를 하면서 팔을 내젓고 다리를 버둥거렸죠. 방 안의 흰 벽에서도 불이 타오르고 있었어요. 나는 무서웠어요. 그래서 립스틱을 더 진하게 발랐습니다. 어떡하든 저는 두려움을 잊어야 했고 자이언트에게 가야 했어요.

여전히 한밤중이었답니다.

길을 걸어가는데 너무 어두워서 제 몸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밤에 그 길을 혼자 걸어갔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저는 정말 대단한 어린이였습니다. 그렇게 무서운 길도 혼자 걸었던 저는 지금에 와서는 훌륭한 사람은커녕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냥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스팔트 위를 떠다니는 검은 비닐봉지, 쓰레기통 앞의 비둘기, 편의점 앞의 무가지 신문 정도, 그런 정도의 존재감을 지닌 사람이 바로 저니까요. 어쨌든 미래의 저는 그렇게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일에 대해서 기억하지 못할 만큼 바보는 아니랍니다.

한쪽 하늘은 파랗게 밝아 오고, 또 한쪽 하늘이 동시에 붉게 어두워졌지요. 막 아침이 오려고 했어요. 그때서야 제 심장도 벌렁거림을 멈추고 잠잠해지더군요. 겹겹이 둘러싸인 산 위로 떠오르는 주홍색 아침 해를 봤어요. 그리고 다짐했죠. ‘한 번에 성공해야지.’ 입속에 자꾸 마른 침이 고였어요. 아무 말이나 마구 쏟아져 나오려고 했고 저도 모르게 팔을 내밀고 무슨 말인가를 하면서 걸어가고 있었죠. 자이언트와 함께 극장에서 보았던 홍콩 액션 영화의 장면들이 떠올랐어요. 한바탕 싸움이 일어나기 직전, 깡패들은 오토바이에 기름칠이나 하면서 농담 따먹기나 했죠. 저에게도 그런 식의 심리적인 여유가 필요했어요.

밤보다 더 어두운 새벽길은 드라이아이스를 얹은 듯 촉촉하게 젖어 있었어요. 얼마나 추웠는지, 너무 추워서 등이 휘어질 것 같았어요. 입술이 달달 떨리고 무릎이 잘 안 펴졌죠. 그래도 저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어요. 왜 사람에게는 뒤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게 존재하는 걸까요. 곧장 앞으로만 가야 하는 상황, 달려가 매달린 종을 쳐야 하는 상황 말입니다.

돼지농장 마을이라고 부르던 그 동네에 자이언트의 애인이 살고 있었어요. 인물도 별로 볼 게 없는 평범한 여자였어요. 솔직히 인물로 따지면 마마가 월등 나았어요. 난 마마의 몸이 좋았어요. 이목구비도 뚜렷했고 무엇보다 마마의 몸에서는 여자들만이 가진 굴곡 그리고 특유의 냄새가 느껴졌어요. 돼지농장 여자가 그다지 예쁘지도 않으면서 사람을 끌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면 어떻게 생겼는지 저도 한 번 보고 싶었죠. 게다가 자이언트가 위에서 내리 누르면 찌부러지고 말 것처럼 몸이 아주 작아 보였거든요. 스치면서 보는 것이 아니라 제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어요. 한 번도 그 얼굴을 똑바로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찍 일어난 할아버지들이 마당에 비질을 하다 놀라 저를 쳐다봤어요. 지난밤에 바람에 휩쓸려 왔던 그 냄새의 진원지가 바다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더군요. 마을 입구에 늘어선 거대한 돼지우리는 기분 나쁜 돼지 냄새를 풍기며 해안가의 방갈로들처럼 일렬로 서 있었어요. 돼지우리 앞쪽으로 오물이 내려가도록 파 놓은 수로가 보였죠. 모든 악취는 그곳에서 나고 있었어요.

그 무렵, 밥상에서 밥을 먹을 때 자이언트의 몸에서 나던 그 시큼한 냄새가 바로 돼지우리 냄새라는 걸 깨닫게 됐죠. 세상일은 원인과 결과가 꼭 맞춘 거울처럼 드러나게 되어 있는 것인가 봐요. 마마의 불행은 그 돼지 냄새의 기미를 알게 된 것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곧장 그 마을로 걸어 들어갔어요. 짖어대는 개도 없고 길을 방해하는 닭들도 없었어요. 잎 떨어진 나무 몇 그루와 빈 음료수병이 남아 있는 벤치가 보였어요. 음료수병 앞으로 다가갔죠. 생각해 보니 몹시 목이 말랐어요. 병을 거꾸로 들고 속의 것이 혀 위로 내려오길 기다렸어요. 입속에 찝찔한 맛이 돌았어요. 담뱃재 냄새도 나고 침 냄새도 났죠. 공터에 시소 두 개가 보였어요. 저는 시소 한켠에 앉아 기지개도 켜고 목 운동도 하며 농장 마을에서의 새벽 시간을 느긋하게 즐겼죠.

규격품처럼 모두 다 똑같은 모양과 크기로 지어진 집들이 서 있는 골목에서 저는 그 집을 단번에 찾아냈어요. 안방 창문이 바깥 베란다와 연결이 되어 있었죠. 비스듬히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가 마루문을 열었죠. 할머니와 어린애가 머리를 맞댄 채 부엌방에서 자고 있었어요.

안방 문이 덜컹거리며 열리더군요. 베란다 창으로 숨어서 보고 싶지 않았어요. 제대로 보고 싶었기 때문에 방문을 열었어요. 황금색 이불 속에 누워 있는 자이언트와 그의 애인이 보였습니다. 정말 지저분한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반쯤 드러난 자이언트의 상반신은 여러분이 짐작하시는 대로 저 마을 입구의 돼지우리에 있는 돼지들과 모양새가 그리 다르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이번엔 옆에 누운 돼지 애인에 대해서 말씀드릴까요. 소금에 절여진 오이장아찌, 살이 오르다 만 초록색 옥수수, 어린 제 눈에 비친 자이언트의 애인은 딱 그 정도였어요.

자이언트와 그의  애인은 쿨쿨 자고 있었어요. 저는 그들의 머리 쪽으로 몸을 돌렸어요. 어디선가 흙냄새가 났습니다. 자이언트가 밭고랑에서 묻혀 들어온 흙냄새가 진동하고 있었죠. 막상 자이언트의 애인을 내려다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혼자서 얘기를 지어내게 되더라구요. 황금색 이불 속에 있는 여자를 가능한 불쌍한 사람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여자의 남편은 돼지농장에서 일했다.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빗길에 미끄러졌다. 정작 돼지들은 탄력 있는 비곗살에 멍은 들었을지언정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오이장아찌의 남편만 죽었다. 차에서 나온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아무 데로나 도망을 쳤다. 돼지들은 신났다…….’

그때였어요. 옆방에서 자고 있던 어린애가 잠에서 깨어나 저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엄마, 저 형아 입술 좀 봐.” 어린애가 한 손으로는 자기 생식기를 만지며 또 한 손으로는 저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상상의 힘으로는 불을 막을 수 없었지요. 제가 성인이었다면 그 상황에서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들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어린애였습니다. 앞으로 나가는 것 말고는 잠시도 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 없는 어린애였습니다. 저는 손에 들고 있던 밥그릇만한 돌멩이를 여자의 머리통 위로 던졌어요.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건 제가 한 게 아니라 불이 한 겁니다. 불이 한 일인 겁니다.

사방이 너무 조용했어요. 자이언트와 그의 애인은 참으로 고단해 보였습니다. 어린애가 앵앵거리며 울기 시작했죠. 그때서야 여자가 “으응” 소리를 내며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어린애가 있다고 생각되는 쪽을 쳐다보며 말했죠. “아가 이리와 예쁘지. 엄마가 안아 줄게.” 여자가 눈을 비비며 머리통을 쳐들고 일어나려고 했어요. 저는 그게 저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하마터면 여자의 품속으로 파고 들어갈 뻔했습니다. 여자는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피를 눈가에 비벼 바르며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죠. 어린애는 엄마의 눈을 가리키며 울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번쯤 어두운 밭고랑 위를 혼자서 떠도는 미친 불을 상상해 보십시오. 머릿속에 불을 가진 사람들은 마마 말고도 아주 많습니다. 마마에게만 있는 특이한 현상은 아니었습니다.

자이언트와 함께 본 액션 영화의 끝 장면은 늘 이런 식이었습니다. 깡패 형들이 피투성이가 된 셔츠의 단추를 풀고 어딘가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운다! 그러고 보면 제가 본 많은 남자들이 큰일을 끝낸 후에는 꼭 담배를 피웠습니다. 저도 큰일을 끝낸 사람처럼 마마가 파묻혔던 밭고랑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린애였기 때문에 담배를 가지고 있지 않았어요. 돼지농장은 아까와 달리 돼지들의 울음소리로 부산했습니다. 저는 돼지 울음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마을에서 벗어났죠.

저 위쪽에서부터 달려오던 트럭 운전사가 하필이면 제 앞에다 담배꽁초를 던지고 쌩하니 달려갔습니다. 아직 불꽃이 살아 있는 담배꽁초를 입에 물었죠. 입 안이 쓰고 따갑고 몹시 불편했습니다. 역겨웠다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었죠. 제 인생의 첫 번째 담배는 그렇게 찾아왔고 무서움을 가시게 하는 데는 담배만한 것이 없다는 지독한 편견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번개처럼 집으로 돌아갔죠. 마마는 여전히 자고 있었습니다. 이불을 다 걷어 내차서 오자로 벌어진 동그란 두 다리가 보였습니다. 입가엔 흰 거품이 말라붙어 있었고 눈가는 퉁퉁 부은 채 노란 눈곱이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살이 차가웠어요. 팔과 손, 얼굴과 목, 어깨와 배를 만져 주었습니다. 자꾸 만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란 없었어요.

마마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고 방 안을 휘 둘러봤어요. 일기라도 쓸까 생각했죠. 뭔가 끼적거리고 싶어졌거든요. 그러다가 화장대 의자에 앉았습니다. 입술에 빨강색 립스틱을 발랐죠. 아주 천천히 한 번, 두 번 덧바르는 심정으로 차분하게 발랐습니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죠.

거울 속에 있는 제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잘했어, 잘한 거야.’ 혼자 칭찬까지 했습니다. 목구멍으로 담배 냄새가 올라왔어요. 잇몸에 마취 주사를 맞고 뭉치 솜을 악문 채 뭉근하게 부풀어 오르는 통증을 견디고 있는 것처럼 몸이 으스스 떨렸어요. 겨울이 너무 길다고 생각했죠.

그때였어요. 쿵쿵쿵쿵. 자이언트의 발소리였어요. 자이언트가 대문 앞에 도착했어요. 제가 립스틱을 지우려고 마마의 손수건을 손에 든 순간 자이언트가 방 문고리를 확 잡아당겼어요. 마마는 자고 있었고 저는 손수건을 든 채 입을 다물고 자이언트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자이언트의 손과 이마와 가슴팍에 묻은 피를 봤어요. 저는 생각했어요. ‘여자랑 키스도 못 해보고 오늘 죽는군.’ 그때 갑자기 자이언트가 방 한가운데에 철퍼덕 주저앉았죠. 그리고 담배를 피웠습니다. 저는 그때까지도 놀란 가슴이 벌렁거려 자이언트가 들어온 방향만 내내 바라보고 있었어요. 저는 그러면서 또 생각했지요. ‘내가 죽는다면 담임선생님이 문안을 와 주실까?’

 

*

그날 자이언트는 저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마마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개도 잡지 않았고 고양이도 죽이지 않았습니다. 길고 긴 겨울 내내 저는 얼음판 위에서 축구를 하며 놀았습니다. 자이언트는 한동안 돼지농장 마을에 가지 않는 것 같았어요. 돼지농장 마을에서 내려오는 폐수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만나 격렬하게 싸운 일이 있었는데 그때도 자이언트는 회의장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밤 저는 문 하나로 막힌 윗방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빛이 들지 않아 자다 깨면 거의 암흑인 그런 방이었습니다. 양 백 마리를 세는 것도, 할머니의 구수한 옛날 얘기를 떠올리는 것도 불가능할 만큼 깜깜했습니다.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그 방에서 저는 마마의 목소리를 들었죠. 처음엔 그냥 옆집 아기가 칭얼거리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곧 이상한 소리로 변했죠. 자이언트와 마마는 변종 짐승들이 내는 듯한 비명을 질러대며 벽에 부딪치고 방문에 부딪치고 옷장에 부딪치며 바깥으로 튕겨 나갈 것처럼 한 덩어리가 되어 날뛰더군요. 꽤 긴 시간 동안 저는 침묵했습니다.

잠시 후에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죠. 저는 벽에 기대어 앉았습니다. 두 다리를 세우고 앉아 두 팔을 무릎 위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두 팔에 묻었습니다. 저도 모르게 슬퍼져서 다시는 고개를 쳐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세상에 그런 짐승들이 있다는 건 엄청난 충격이었죠.

겨우내 자이언트는 러닝셔츠만 입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다 외출할 때는 러닝셔츠 위에 미군들이 입는 쑥색 점퍼 하나를 걸쳐 입었습니다. 들어오면 다시 미군 점퍼를 벗고 러닝셔츠 차림이 되었지요. 자이언트는 혀가 없는 사람처럼 마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복종했습니다. “밥 먹어.” 마마가 등 뒤에 가 서서 말하면 곧 손을 털고 가게에서 방으로 들어가 밥을 먹었습니다. “더 먹어.” 마마가 말하면 내려놓은 수저를 다시 들어 올려 밥을 더 먹었죠. 지는 해를 쳐다보며 마마가 “문 닫지”라고 말하면 함석으로 만든 문짝 열 개를 차례차례 들고 와 쇳물 웅덩이가 있던 가게를 완벽하게 가렸습니다. 마마가 무슨 약을 먹인 건지도 몰랐어요. 자이언트는 완전히 바보 천치가 다 된 것처럼 보였으니까요.

저희 집이 어떻게 생겼었는지 얘기하고 싶네요. 북쪽 소도시의 반듯반듯한 논가의 대로변에 지어진 작은 슬레이트집이었어요. 집들이 기차처럼 대로 양편에 일렬로 늘어서 있었어요. 채 일 킬로미터도 안 되는 길이였죠. 터널처럼, 댐처럼 배후도 없이 집들만 덩그마니 지어져 있었죠. 저희 집은 시내에서 진입하다 보면 오른쪽 첫 번째 집이었고 시내로 나가다 보면 왼쪽 마지막 집이었어요.

앞쪽에 자이언트의 생업인 가게가 매달려 있다는 게 다른 집들과 다르다면 달랐죠. 자이언트는 거기서 하루 종일 리어카를 고치고 때로는 자동차도 고치고 또 때로는 철 대문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는 인사조차도 하지 않았죠. 만화책을 보거나 수첩에 뭔가를 끼적거리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아무 데로나 가 선 채로 오줌을 누었죠.

가끔 페인트 통을 열어 놓고 저에게 아주 중요한 결정을 내리게 하기도 했죠. “골라” 그러면 저는 푸른색이나 초록색 아니면 밤색 중에서 하나를 찍었죠. 그러면 다음날 제 친구는 제가 고른 색깔로 칠한 대문을 열고 자기 집으로 들어갔어요. 제가 어떤 중요한 결정에 관여하고 있다는 느낌, 자이언트는 제게 그런 특별한 느낌을 주기도 했네요.

자이언트를 도와 일을 하러 오는 조수들조차도 자이언트를 닮아 몹시도 입이 무거웠어요.늘 말 대신 행동이 먼저였죠. 그중 기억에 남는 조수가 한 명 있었어요. 자이언트에게 머리통을 맞고는 가게 안에 있는 쇳덩어리 기계들을 다 들고 도망을 쳤었죠. 자이언트가 나중에 그 집에 찾아갔는데 일고여덟 명쯤 되는 고만고만한 동생들이 방 안에 앉아 꼬물꼬물 놀고 있었답니다. 그리고 한구석에 병든 부모 두 사람이 사이좋게 누워 있더래요.

같이 찾아간 마마가 문 밖에 서 있는 자이언트 대신 조수에게 돈을 꺼내 주며 말했대요. “돼지고기라도 사다 동생들 실컷 먹여라.” 고맙다거나 미안하다는 말도 없이 조수는 그 돈을 박박 찢어 마마를 향해 뿌리고는 방문을 닫아 버렸답니다.

마마의 얘기를 들은 후 저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주요 지명 피의자 수배’라고 써진 전단을 보면 왠지 모든 용의자들이 다 그 조수와 비슷하게 생겼다는 느낌을 가지곤 했었어요. 이런 편견은 결국 그 조수를 철창 안으로 들어가게 만들었죠.

우리 집에 우리만 살지는 않았어요. 가난한 사람들 몇 세대가 방 하나씩을 쓰며 같이 살았죠. 아이들이 있는 집은 저희 집처럼 윗방이 있었죠. 같은 집에 산다고, 다 가난하다고 특별히 사이가 좋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추운 지방 사람들은 그랬던 것 같아요. 말도 잘 안 했고 인사도 잘 안 했죠. 길고 긴 추위 때문인지 사람들은 뱃속에 각자 이상한 생물을 하나씩 넣고 비대해질 때까지 키워 가는 느낌으로 살아가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비밀이 많았죠. 고집도 세고 술도 아주 많이 마시고 늘 눈을 두리번거렸어요. 다들 너무 뜨겁거나, 차갑거나 그 중간이 없었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폭풍우를 만나면 저 멀리서부터 우리 집을 쳐다보며 막 뛰기 시작했어요. 어느 순간 비구름에 섞여 날아가 버릴 것 같았거든요. 강한 모래 바람이 불기도 했어요. 그러면 우리 집은 모래가루로 이루어진 점묘의 세계처럼 불확실해 보였어요. 언제든 사라질 것처럼 두려웠죠. 뜨거운 여름에는 녹아내릴 것 같았고 대규모 군사 훈련이 벌어지면 탱크에 치여 박살날 것 같았죠. 연탄아궁이가 달린 그 집 서쪽 맨 끝 방, 그 방에 원피스에 분홍 리본을 맨 공주들이 수없이 그려진 벽이 있었어요. 물론 제가 그린 공주들은 아녜요. 우리는 도배를 안 하고 이사를 왔을 뿐이었죠. 마마는 제 이빨들을 뽑아 그 집 지붕 위로 던져 올렸어요. 너무나 작고 귀엽던 그 이빨들은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겠죠.

 

 

2. 마마, 내가 구해줄게

 

봄이 되고 마마는 건강해졌어요. 갑자기 수다스러워졌고 충동적으로 변했죠. 제가 놀다 들어오면 수건을 목에 두른 후 제 손도 씻겨 주고 얼굴도 씻겨 줬어요.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마는 옷을 입혀 주거나 뭔가 다독거려 주는 행동 후에는 꼭 그 말을 했어요. 저는 지금도 그 말을 생각하면 가슴이 뒤집어지며 환장할 것처럼 흥분합니다. 우리는 마마의 말처럼 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마마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거였어요. 응당 그래야 했지요.

검은 팥이 든 찐빵도 쪄 주고 노릇노릇 구운 부침개도 만들어 줬어요.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국물이 하얀 콩국수도 만들어 줬죠. 마마는 가끔 제가 묻지도 않았는데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요. 자신의 기원에 대해서 말이죠. 누구나 그랬던 것처럼 마마의 기원도 농촌이었습니다. 마마는 검은콩을 입속에 던져 넣고 오래 씹어 먹으며 말했습니다.

“우리 가족들의 얘기는 어린 내가 미군들한테 초콜릿 받아먹을려고 새까만 손 흔들며 트럭을 따라 뛰던 때부터 시작해야 해.” 트럭은 너무 빨리 달리고 고무신은 자꾸 벗겨졌던 모양입니다. 미군들은 무서웠지만 그 여름날의 초콜릿 맛은 정말 끝내 줬다고 마마는 말했습니다. 늘 부족해서 더 먹고 싶었다고 했죠. 그 말을 듣던 순간 저는 결심했습니다. ‘나중에 커서 돈을 벌면 초콜릿을 잔뜩 사다 안겨야지.’

마마의 얘기는 곧잘 길게 이어졌습니다. “그게 아니면 언제지? 위로 아이들 다섯을 낳고 갓난쟁이인 나를 낳은 너의 외할머니가 눈동자가 뒤집어지며 죽던 광복 후의 또 다른 어느 여름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몰라. 벼를 키우고 밭을 갈고 소를 기르고 아이들을 낳는 일로 일생을 보낸 너의 외할머니, 난 그 여자의 이름도 모르고 자라났어.”

마마의 어머니는 평생 학교도 못 다니고 논밭에서 일만 했다고 합니다. “평생 일만 했지만 머리에 기름을 발라 쪽을 찐 아주 깔끔한 여자였대.” 그러면서 마마는 자기가 쪽찐 머리라도 한 듯 가리마 부분을 꼭꼭 누르며 쓰다듬었습니다. ‘키가 크다’고 했던 부분에서는 목을 길게 빼기도 했죠.

마마의 아버지는 할머니가 죽은 후에도 재혼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엄마가 죽었는데도 재혼 안 했다. 저 인간 같으면 날 죽이고라도 하겠지.” 마마는 아버지가 벽장 상자 안에 넣어 둔 엄마의 물건들, 머리빗이며 동정이 뜯기고 없는 한복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마마는 아버지에게 애인이 없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에게도 귀여운 애인이 있었을 거야.” 마마가 한 ‘에게도’라는 단어에 묻어 있는 의심을 저는 이해할 수 있었죠.

어떤 날은 화장대 앞에 앉아 화장을 하다가 저에게 일어나 가까이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손에 들려 있던 기다란 솔로 제 눈 위에 파란색 아이섀도를 그려 넣어 주었죠. 엄지손가락으로 눈썹 위를 고루 문질러 주고는 제 어깨를 잡아 거울 앞에 세우고는 깔깔거리고 웃었습니다. 마마의 기분이 좋아 보여서 저는 그 순간 너무나 궁금했던 한 가지 상식에 관해 질문했습니다. “엄마, 갓난애들은 어디서 나와?”

마마는 그때 이상하게도 흰색 면바지를 자주 입었었는데 그때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두 다리를 벌리고 왼손잡이인 제 손을 잡아 자기의 허벅지 사이에 갖다 대고 눈을 커다랗게 뜨며 말했습니다. “바로 여기.” 마마의 그곳엔 살짝 습기가 배어 있는 것도 같아서 저는 그만 움찔하고 말았죠.

‘고통’이란 단어는 그 발음만으로도 새로웠습니다. 마마는 저를 낳던 순간의 고통에 대해서 얘기해 주었죠. “너를 낳던 순간에 나는 무더기로 뜬 별을 봤어. 동네에서 산파가 왔지. 그 여자가 오자마자 요 위에 나를 눕혔어. 그리고 알록달록한 카시미론 담요를 쫙 펴 들었어. 때가 오종종한 사각형의 그 널찍한 담요는 색깔이 예뻤어. 그 순간부터 나는 마술처럼 착한 엄마로 변했지.” 마마는 세 살 위의 언니와 싸웠던 얘기를 하면서 자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죠. “난 언니의 천기저귀를 들고 동네에 돌아다니며 언니가 생리를 시작했다고 소리를 질러댔어. 착하지 않은 여자는 애를 낳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너를 못 낳았겠지.” 돌이켜보면 마마는 솔직한 사람이었어요. “진통이 거듭되면서 엉덩이 한가운데 딱딱한 것이 걸려 절대로 빠져나오질 않았어. 그 딱딱한 덩어리가 바로 너야.” 그러면서 마마는 손가락으로 내 콧잔등을 간질였어요. “소리를 지르고, 똥 눌 때처럼 힘을 주고 눈을 부릅떠도 몸 한가운데 걸려 절대로 빠져나오지 않았어.”

저는 마마가 애 낳는 장면을 상상했어요. 발바닥이 닳도록 발버둥을 치고 숨을 고르고 쌍욕을 해대고 머리 꼭대기가 뱅글뱅글 돌아 정신 못 차리는 마마를 떠올렸죠. “기운이 다 빠질 만큼 몸서리를 치고 나서야 덩어리가 쏙 빠져나와.” 마마는 자기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착했을 때는 저를 낳고 난 직후 갓난쟁이인 제 옆에 누워 있던 순간뿐이었다고 고백했어요. “그 순간엔 말이지, 누구나 너무 지쳐서 착해지지 않을 수가 없거든. 그렇게 누워 있는 여자들을 보고 모성애 가득한 어쩌고 하는 건 착각이야.”

그날 밤 저는 깜깜한 방에서 애 낳는 연습을 했습니다. 마마의 넓적다리 한가운데 조금은 살짝 들어갔던 그곳을 만졌던 왼손의 기억이 남아 있었죠. 왼손을 코에 대고 흠흠거려 봤어요. 딴딴한 것이 뱃속에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덩어리야, 덩어리야’ 라고 부르며 애를 낳으려고 애썼죠. 저는 그때 남자인 저도 아이를 낳는 줄 알았어요. 언젠가 마마가 다시 기분이 좋아지면 남자의 그곳이 어떻게 열려 아이가 나오는지 물어 보리라 다짐했죠.

그런데, 기억이란 질서정연하게 연대기적으로 떠오르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부터 말씀드릴 일이 밭고랑 폭력 이전의 일이었는지 이후의 일이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으니까요. 어느 날은 행복하지 않다가 줄곧 행복했던 것인지, 다 뭉뚱그려 통째로 행복하지 않았던 것인지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어느 날 대낮에 자이언트가 가게를 비우고 사라졌습니다. 한여름의 대낮이었던 것도 같고 얼음이 꽝꽝 언 한겨울의 대낮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가게는 비어 있었습니다. 잠시 후 시내에 나갔다 돌아온 마마가 바구니를 마루에 던져 놓고 자이언트를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마마는 가게 안의 물건들이 발끝에 채여 나동그라지는 걸 보고도 챙길 정신이 없었어요. 매우 급해 보였습니다. 또 불이 들이닥친 것이었죠.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게 앞에 쌓인 카바이드 더미를 무너뜨리며 놀고 있었죠. 카바이드 더미에 뽀글뽀글 구멍이 생겼던 게 기억나는 걸 보면 더운 여름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저는 그 안에 벌레가 있는 줄 알았어요. 벌레나 잡아야겠군, 생각했죠.

그때였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스테인리스 강철들이 한꺼번에 와장창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제 머릿속으로 또다시 그 십일월, 밭고랑의 냉기가 스산하게 지나갔습니다.

저는 단숨에 달려갔습니다. 군인들이 자주 가던 동네 술집 누나들의 숙소였습니다. 저희 집처럼 앞에 가게가 있고 뒤쪽으로 방이 있었는데 문 앞에 걸린 발이 뜯겨 나가고 없었습니다. 마마가 그 방 안에서 홀딱 벗은 술집 여자와 엉켜 몸싸움을 하고 있었죠. 돼지농장 여자에 비하면 훌륭한 몸매였습니다. 방 입구에 얌전히 놓인 신발 두 켤레는 자이언트와 여자의 것이었어요. 그것을 보자 저도 적개심이 생겼습니다. 마마가 이기길 바랐습니다. 저는 방 앞에 쪼그리고 앉아 신발 두 켤레를 강아지처럼 물어뜯으며 중얼댔습니다. ‘개돼지 자이언트새끼, 개돼지 자이언트새끼, 개돼지 자이언트새끼.’ 여자의 유방 위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어요. 마마의 꽃무늬 원피스는 세로로 쭉 찢어진 채 대책도 없이 너덜거렸죠.

몹시 더웠습니다. 아마도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겨울에도 여름에도 늘 때렸기 때문에 제가 또 헷갈린 것이겠지만 몹시 더운 때였던 것 같습니다.

한낮이었지요. 사람들은 밥을 먹고 난 후 코를 후비거나 얼굴에 신문지를 덮고 낮잠을 잤습니다. 마마는 또다시 자이언트에게 질질 끌려 나왔죠. 이번엔 뜨거운 아스팔트 위였습니다. 마마의 흰 면바지는 금세 흙투성이가 됐죠. 목덜미가 자이언트의 손에 잡힌 마마는 꼼짝도 못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하나 둘 집에서 나와 구경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눈에 봐도 마마는 얼굴이 구겨진 휴지 조각처럼 변해 절대로 눈을 뜨지 않았죠.

자이언트는 마마를 질질 끌고 가게까지 갔습니다. 모든 일이 너무나 빨리 진행되고 있어서 저는 무서웠습니다. 잠깐 자이언트가 바지춤을 끌어올리는 사이 지혜로운 마마가 아스팔트 쪽으로 도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딱 두 발짝 만에 다시 붙들렸죠. 마마는 가게 안으로 던져졌습니다.

가게 바닥에는 자연적으로 생긴 작은 쇳물 웅덩이가 있었어요. 언제나 금가루가 떠 있는 듯 빛났습니다. 늘 쇳물이 고였죠. 자이언트가 아무리 그걸 막으려고 해도 늘 물이 솟아나는 신기한 곳이었죠. 자이언트는 마마를 안아 바닥으로 던졌습니다. 쇳물 웅덩이에 고개를 처박은 채 옆으로 자빠진 마마는 쇳물이 입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머리를 흔들며 애쓰고 있었죠.

사람들이 가게 앞으로 몰려왔습니다. 누군가 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죠. “우리 집에 가 있자.” 저는 거칠게 머리를 빼냈습니다. 순간 자이언트가 쇠막대기를 집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이언트는 쇠막대기로 마마의 등을 후려쳤습니다. 마마는 또 쇳물 웅덩이 속에 고개를 처박고 쓰러졌죠. 자이언트는 손을 탈탈 털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자꾸 느는 게 보였죠. 사람들이 더 이상 마마를 구경할 수 없게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잠시 후 자이언트가 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가게 밖으로 뛰쳐나갔답니다. 뭘 찾는지 어디론가 저벅저벅 걸어가더군요. 저는 그 사이 가게 앞 벽면에 세워진 함석 문을 들어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까지 한 번도 내 힘으로 들어 본 적 없는 문이었지만 그렇게 무겁지만은 않았습니다. ‘문을 닫으면 사람들이 마마를 보지 못할 거야.’ 제 생각은 오로지 그것뿐이었어요. 문틀에 잘 맞지도 않고 이음새도 성긴 그 상태 그대로 저는 문을 옮겨다 놓았어요. 무대만 가릴 수 있다면 다른 소원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미친개 같은 자이언트가 곧 나타났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떼로 달라붙어 손에 든 것을 빼앗으려고 했지요.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문을 옮겨 닫았습니다. 그 순간의 얼굴을 봐 둔다고 해봐야 부자간에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활처럼 휜 낫이 저 멀리 아스팔트 위로 댕그랑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게 보였습니다.

어두운 가게 안은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음지처럼 서늘한 기운이 넘쳐났습니다. 저는 마마의 허리를 뒤에서 잡아 일단 쇳물 웅덩이에서 간신히 꺼냈습니다. 제 머릿속에는 아스팔트 위로 날아간 활처럼 휜 낫이 자꾸만 떠올랐죠. 마마는 저를 붙잡고 중얼거렸습니다. “머리에 구멍이 난 것 같아.” 틀린 말은 아니었습니다. 마마의 머리에 붉은 구멍이 보였습니다.

마마를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이불을 펴고 마마를 눕혔어요. 아무런 소음도 없는 조용한 여름 한낮이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마마는 큰 병에 걸린 것처럼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온 힘을 집중해 얕은 숨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일어났더니 저녁 무렵이었습니다. 잠이 든 것도 모르고 한참을 잤지요. 마마도 자이언트도 어른이라고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배가 고파 기다시피 부엌으로 갔죠. 양은 냄비 테두리에 말라붙은 어묵 볶음을 먹었어요. 더 먹을 것이 있나 찾아봤지만 눈에 띄는 것이 없었죠. 참기름 들기름 병이 보여 뚜껑을 열고 입속에 부어 넣었죠. 그리고 물을 마시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죠.

점차 밤이 깊어 갔어요. 팔다리가 아팠고 열이 나기 시작했어요. 언젠가 담임선생님을 따라 같은 반 친구네 집 병문안을 갔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담임선생님은 길고 흰 손을 내밀어 친구의 이마와 볼 그리고 손을 여러 차례 만져 주었죠. 그 손길, 희고 따뜻해 보이는 반복적인 손길 하나만으로도 제 친구는 금세 병이 나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누군가 지금 날 좀 만져 줬으면.’ 저는 혼자 중얼거리다가 천장을 올려다봤습니다. 벽 모서리, 옷장 아래의 빈틈, 내 책상 아래의 네모난 어둠, 허기, 그런 것들만 제 주변에 남아 있었습니다.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무 할 일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떠오르지 않았지요. 그때였습니다. 누군가 밖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제 이름을 부르며 집 안으로 뛰어 들어와 빨리 나오라고 소리쳤습니다.

마마는 자이언트에게 잡혀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흰 면바지는 또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고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이었어요. 팔은 뒤로 묶여 있었고 마마의 가방은 땅바닥에 놓여 있었습니다. 도장, 동전 지갑, 손수건, 수첩, 거울 같은 것들이 마당에 널브러져 있더군요.

자이언트는 하필이면 마마를 데리고 남의 집 마당에 가 지랄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자고 있는 사이에 누워 있던 마마를 끌고 갔던 것일까요. 저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거든요.

자이언트는 술이 떡이 된 채로 낫을 들고 돌아다녔습니다. 러닝셔츠만 입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은 동물원이 집 주소지인 그 어떤 짐승을 연상케 했습니다. 거기 모여 있는 대여섯 명의 동네 사람들은 미친개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오들오들 떨고 서 있었죠. 극성을 떠는 건 모기들뿐이었어요.

저는 옆에 서 있는 어른의 팔을 흔들며 말했습니다. “경찰을 불러 주세요.” 어른은 대답했습니다. “이런 일에 무슨 경찰이냐.” 다음 어른을 붙잡고 또 말했습니다. “경찰 좀 불러 주세요. 사람 죽어요.” 갸름한 옆얼굴이 어디서 많이 본 여자였죠. 바로 돼지농장 여자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자리엔 자이언트와 붙어먹은 술집 여자도 나와 서 있었습니다.

자이언트는 술병을 마루턱에 올려놓고 앉아 술을 벌컥벌컥 마셨습니다. 그러다 생각났다는 듯 마마에게 다가가 한 방씩 날렸습니다. 발로 차고 따귀를 갈기고 머리를 쥐어뜯었습니다. 마마는 눈을 꼭 감은 채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돼지농장 여자가 마루에 앉아 있는 자이언트 옆으로 다가가 친절한 얼굴로 옷을 입히려고 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낮에 붙어먹은 술집 여자가 공중으로 몸을 날려 돼지농장 여자와 한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마마가 보는 앞에서 나뒹굴었습니다. 마마는 턱을 치켜든 채 눈을 꼭 감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만 있었죠.

미친개는 이제 그 여자들도 때렸습니다. 따귀도 동시에 두 손으로, 발길질도 두 발로 동시에 하는 특이한 매질이었죠. 몸이 작은 여자들은 흙바닥에 나뒹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습니다. 한 여자를 질질 끌고 가 수돗가에 던졌어요. 그리고 또 한 여자를 질질 끌고 가 개집 앞에다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마마를 끌고 가려고 했어요. 바로 그때였습니다. 저는 문 밖에서 들리는 자동차 엔진 소리와 집 안으로 비춰 드는 불빛을 봤습니다. 누군가 제 마음을 읽어 경찰을 부른 거라고 생각했죠. 낯선 남자들이 들이닥쳤지요.

자이언트는 잠깐 마루에 걸터앉으려고 했었죠. 그때 자이언트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건 말쑥한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들이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본 것과 질적으로 다른 판이 바로 그 앞에서 벌어지기 시작했죠. 남자들 중 한 사람이 자이언트에게 말했답니다. “요즘이 어떤 시국인데 쬐꼬만 동네를 쑥대밭을 만드냐, 이 버러지새끼야.” 한 손으로 주먹을 날렸는데 자이언트는 안방 마루 옆에 놓인 요강에 가 자빠졌습니다. 저는 ‘버러지새끼’라는 단어에 전율했지요. ‘자이언트 개돼지새끼’보다 훨씬 세련되고 훨씬 강력한 욕이었으니까요. 또 다른 남자가 자이언트를 마루에서 끌어내려 마마가 앉아 있는 마당으로 패대기쳤어요. 그리고 말했죠. “너 이번 선거판 흐리면 죽을 줄 알아.” 남자는 쓰러져 있는 자이언트의 몸을 옴짝달싹 못하게 두 팔로 잡고 발로 얼굴을 다부지게 밟았죠. “데리고 자는 여자들을 패는 건 아니지!” 저는 그때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 말은 지금까지 제가 들어온 어떤 말보다도 강력한 화약이었고 징벌이었고 날내 나는 생생한 언어였죠.

남자들은 자이언트를 개 패듯 팼어요. 코 부위가 완전히 빨개서 코가 내려앉은 것 같았죠. 칼에 찔린 것 같기도 했어요. 나중엔 뱃속에서 뭔가 미어져 나왔는데 창자가 터진 것 같았어요. 어느새 구경하던 사람들은 몇 명 남아 있지 않았어요. 동네 개들만 목청 높여 짖어댔죠. 곧 자동차 시동이 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들은 차로 뛰어갔습니다. 저는 밖으로 나가 그들이 타고 가는 차를 쳐다봤어요. 커다란 이름이 써진 플래카드가 차 뒤에 붙어 있었죠.

저는 마마 뒤로 다가가 팔목을 묶은 줄을 풀어 줬습니다. 마마는 그때까지도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어요. 저는 마마의 귀에 대고 말했습니다. “도망 가, 빨리 도망 가.” 그러나 마마는 어깨를 잘 움직이지 못했죠. 자이언트가 마루 아래 댓돌 옆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었어요. 마마는 몸을 일으킨 뒤 자이언트를 돌아봤어요. 그때 자이언트의 하체가 꿈틀거렸고 저는 마마의 엉덩이를 힘껏 떠밀며 말했어요. “빨리 가 제발.”

기역자집은 방이 여러 개였고 마당이 넓었습니다. 논 쪽을 막은 시멘트 담장 위로 달이 보였습니다. 저는 개집 뒤 창고에 숨어 있었죠. 막 꿈틀거리고 일어나 달을 쳐다보는 자이언트를 주시했습니다. 개집 안에 있는 개 역시도 자이언트가 하는 짓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앉아 있었죠. 정강이에서 땀이 나고 눈이 빠질 듯 아팠습니다. 자이언트는 미친개처럼 집 안을 겅중겅중 뛰어다니며 아무 방문이나 활짝 열고 뛰어 들어갔다가 다시 뛰쳐나왔습니다. 집 뒤의 화장실과 부엌까지 다 뒤진 자이언트는 코가 사라진 듯 얼굴 한가운데가 빨갛게 뭉개진 채 단번에 장독대로 몸을 날렸죠. 장독 뚜껑을 치켜들고 수돗가 시멘트 바닥 위에 내동댕이치고는 자기 배를 잡고 꿇어앉았습니다. 저는 안방 댓돌 밑에 떨어져 있는 낫만 쳐다보고 있었죠. 낫만 아니라면 모든 게 곧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자이언트는 아직도 뭔가 찾고 있었어요. 자이언트는 다시 벌떡 일어나 수돗가에 있는 플라스틱 양동이를 번쩍 들어 시멘트 담장 쪽으로 던졌습니다. 물이 담긴 양동이는 철퍼덕 하고 장독대 위로 떨어지면서 와장창 장독을 부쉈지요. 진한 간장 냄새가 진동했어요. 자이언트는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쳐들고 부엌을 쳐다봤습니다. 러닝셔츠는 다 찢어졌고 바지는 그냥 엉덩이에 걸쳐만 있었죠. 자이언트는 부엌으로 뛰어 들어가 커다란 칼을 가지고 나왔어요. 저는 눈앞에 있는 고물 농기구 아래로 쏙 들어가 완전히 몸을 숨겼죠. 자이언트는 칼을 들고 구령에 맞춰 가며 마룻바닥을 난도질하고 있었습니다. 자이언트의 발자국에 파인 마당은 피와 오물로 끈적거렸고 산산 조각 난 것들은 겅중거리는 자이언트의 발길에 차여 저 혼자서 공중으로 날아다녔습니다. 저는 고개를 쳐들지 못하고 눈만 내놓은 채 낫만 쳐다봤습니다. 자이언트는 낫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마를 죽이고 저를 죽인 뒤 결국은 자기 몸도 갈라 온통 피 천지를 만들고 나서야 끝날 기세로 자이언트는 낫을 찾아 날뛰고 있었다니까요.

집으로 가 대문을 걸었습니다. 마마는 방에 있었어요. 긴 무명천을 턱으로부터 돌려 감아 정수리 부분까지 단단히 감싼 채 뭔가를 분주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릎에 구멍이 난 흰색 면바지를 벗어 던지고 다른 바지를 꺼내 입었습니다. 그 지경에 마마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밥 먹었니?” 저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난 후 마마의 얼굴에 남아 있는 쇳물을 닦아 내려고 마마의 얼굴을 만졌습니다. 낮에 묻은 쇳물이 이제 거의 피부처럼 착색되어 있었죠. 마마의 얼굴은 부드러운 갈색으로 뒤덮여 있어 제가 모르는 딴 사람 같았습니다. “얼굴색이 이상해. 닦아 줄게” 그러자 마마가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방학이 언제야?” “아마 다음 주쯤.” 나는 흰 면 수건으로 마마의 얼굴을 자꾸만 닦았고 마마는 저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습니다.

갑자기 마마가 벌떡 일어나 머리 위에 스카프를 둘렀습니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여자들처럼 세련되고 예뻐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가방을 든 채 저에게 말했습니다. “시내에 볼일이 있어. 금방 올게. 나 어디 갔느냐고 물으면 모른다고 해.” 저는 마마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습니다. 하늘은 너무 높았고 공기는 뜨거웠으며 물기 한 점 없는 날씨였습니다. 저만치 아스팔트 옆 공터에서 놀고 있는 친구들이 보였죠. 왠지 저는 그 친구들에게 달려가 무리에 낄 수가 없었습니다. 저만치 시내 쪽으로 걸어가는 마마의 뒷모습이 보였죠. 담배 생각이 간절했습니다.(다음 호에 계속)《문장 웹진/2009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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