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7회

장편연재 7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9. 베이비, 미안해

 

뜨거운 여름이었어요. 목이 타 수시로 물을 마시지 않으면 숨도 쉴 수 없었어요. 몸이 금세 땀에 젖었고 옷도 후줄근해졌어요. 빈 물통들이 좁은 승합차 안 곳곳에서 통통 튀어 올랐어요. 겨드랑이부터 젖기 시작해 양 앞가슴 쪽으로 점점 퍼졌던 땀 얼룩도 생각나는군요. 사실은 그 여름을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들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던 땀줄기, 흙내 섞인 퀴퀴한 냄새들이 여기저기서 진동했어요. 마치 동물들이 떼 지어 시내 구경이라도 나온 것 같았죠. 정말 이상한 건 우리가 빌딩 앞에 도착해 승합차에서 내린 바로 그 순간, 갑자기 토네이도 같은 폭풍이 몰아치면서 계절이 초겨울로 변했다는 사실이었어요. 마술이었는지, 아니면 내가 살았던 평원이 말짱 다 거짓이었던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어요. 우린 얼어붙어 버렸어요. 자동차 타이어가 지나간 자리조차도 녹아내릴 것처럼 끈적거리던 한여름의 도시가 일순간 얼음장처럼 얼어붙어 버렸죠. 바로 그 얼어붙어 버린 자리에 우리의 혼이 있을 거라고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다음에 누군가 말했어요. 맞아요. 재수 없게도 우린 Z빌딩에 우리의 그 잘난 혼을 바친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건 우리가 원했던 일은 아니었어요. 하긴, 언제 내가 뭘 원하긴 했나요. 난 지금껏 뭘 원한 적이 없어요. 우리는 만화책 속 작은 네모칸 안에 갇힌 만화 주인공들처럼 도시 한가운데 꼼짝 못하고 서 있었어요. 우리는 일을 해야 했고 일을 하면 돈을 줬으니까요. 갑자기 느리게 움직이기만 하던 시계 초침이 째깍째깍 빨라지는 것 같았어요. 손끝, 발끝이 시려 호호 입김을 불어넣기도 하고 재채기가 날 것 같아 코끝을 연신 실룩였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어요. 이제 곧 무너질 빌딩 옥상 위로 차갑고 흰 구름 떼가 몰려오고 있었어요. 우리가 맨 앞에 서 있고 우리 뒤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있었어요. 적어도 몇 백 명은 되어 보였어요. 이상하게도 사람은 많은데 입을 열어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도 다들 표정 하나는 끝내 줬죠. ‘빨리 터져라, 빨리 터져라.’ 우리만 홑겹 작업복 차림이었고 구경 나온 사람들은 대부분 방한용 점퍼 차림이었어요. 아직 폭파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여학생들이 귀를 틀어막고 비명을 질러댔어요. “안 돼! 아직은 터지면 안 돼! 내 친구가 오거든 터지란 말야.”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한 남자가 고삐리들은 꺼지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여학생들은 순식간에 남자에게 달려들어 남자의 몸에 대롱대롱 매달렸어요. 남자를 금세 자빠뜨린 뒤 남자의 몸을 지지 밟고 다녔어요. “내 지갑 돌려줘, 내 머리빗 돌려줘, 이 나쁜 지지배들아.” 남자는 징징거리며 겨우 몸을 일으켰어요. 그리고 절뚝거리는 채로 앞으로 곧장 걸어가 여자애들 중 한 명의 머리를 뒤에서 잡아챘죠. 여자애가 길게 비명을 질렀고 마침 그때 폭파를 선언하는 팡파르가 울렸어요. 이미 Z빌딩 곳곳에 다이너마이트 덩어리들이 잔뜩 깔려 있었겠죠. 오래된 건물을 폭파하는 현장에 구경 가는 게 그 즈음의 유행이었던 모양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폭파되는 순간을 카메라에 담고야 말겠다고 렌즈를 들이댔죠. 잘나가는 금융 회사의 본사 건물들이 많기로 소문난 그 지역에 제일 먼저 지어진 최신식 건물이 Z빌딩이었다고 했어요. 영화 촬영 장소로도 많이 쓰였고 고급 음식점도 많았다고 했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건물 외벽에 그려진 선명한 모양의 검은색 해골들뿐이었죠. 그리고 폭파를 맡은 회사의 이름이 세로로 적힌 흰 플래카드 한 장. 20층 건물은 몇 초 만에 금세 무너졌어요. 처음엔 검은 연기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러나 굳이 설명을 하자면 건물 정중앙이 먼저 무너지고 좌측과 우측이 무너진 한가운데를 향해 주저앉는 순서였던 것 같아요. 알록달록한 옷을 입은 빼빼 마른 할머니가 슬리퍼를 신은 채 폭파된 건물 앞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어요. “내 거야, 저건 내 거라니까.” 할머니가 두 팔을 치켜들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악을 썼어요. “내가 저기서 돈을 벌어 식구들을 죄다 먹여 살렸다니까.” 무너진 건물에서 생긴 먼지가 점점 옆으로 퍼지다가 천천히, 생각보다 아주 천천히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그때서야 불꽃 축제 구경이라도 나온 것처럼 모두들 입을 벌린 채 “멋있다, 멋있다” 소리를 질러댔어요.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있는 사람들은 폭파를 맡은 건설 회사 직원들 몇 명뿐이었어요. 검은 연기는 한동안 무너진 건물을 에워싼 채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했어요. 그리고 아주 천천히 검은 연기가 주변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어요. 높은 빌딩들 사이의 빈 허공으로, 인터체인지 쪽으로 조금씩, 그러나 왠지 공포스럽게 움직였어요. 폭파를 맡은 건설 회사 임원들 중 한두 명이 박수를 쳤지만 따라 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먼지 구름은 아주 검었고 왠지 그 검은색은 사람을 말할 수 없이 공포스럽게 만들었어요. 아주 긴 시간이 흘렀어요. Z빌딩이 무너지는 현장에서 사람들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에 빠져드는 것 같았어요. 와, 하고 왔다가 결국 무너지고 나니까 실망스러웠겠죠. 사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니었잖아요. 그런데 나도 그랬어요. 아름다운 호수도 공원도 도시도 다 망가지고 무너지고 결국 가라앉고 말 거라는 상상, 드러난 호수 바닥 위에 죽어 나자빠진 물고기들이 즐비할 거라는 상상, 결국 도시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 되고 말 거라는 안 좋은 상상에서 벗어나기가 어려웠어요.  

처음엔 딱 세 달 동안이라고 했지만 기한은 점점 길어졌어요. 우리야 별로 나쁠 게 없었지만 감독을 비롯한 건설 회사 직원들은 연일 신경질만 냈죠. 아침부터 저녁까지 Z빌딩 폭파 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공주들의 성처럼 특이한 지붕을 한 여관으로 들어가 샤워부터 했어요. 씻어도 씻어도 짙은 회색 물이 계속 흘러나왔어요. 잘못 본 건지 모르지만 하수구로 빨려 들어가는 짙은 회색 물은 붉은색으로 보이기도 했어요. 너무 고단해서 텔레비전도 안 보고 맥주조차 마실 생각도 하지 않았고 밤 산책 따위는 꿈도 못 꿨어요. 팔다리가 금세 마비될 것처럼 부어올랐죠. 붉은색 장미꽃이 그려진 벽지를 조금만 쳐다보고 있으면 장미꽃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눈앞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했어요. 거짓말처럼 꽃 한가운데가 한껏 오므라들었다 펴졌다 했어요. 엄청 뚱뚱한 내가 장미꽃 줄기를 타고 하늘을 날기도 했고 장미꽃 줄기가 물속으로도 연결이 되어 갑자기 돌고래 귀를 잡고 삼백육십 도 회전도 했어요. 돌고래들이 삑삑 소리를 내며 신호를 보내는 동안 나는 부드럽고 따뜻한 물속을 마음껏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돌고래 엉덩이에 키스를 하기도 하고 돌고래가 토한 물로 샤워를 하기도 했죠. 그러다 어느새 잠이 깨 보면 내 몸은 함께 잠든 사람들의 대열에서 한껏 밀려나 문이 열린 화장실 문턱에 반쯤 걸친 재 잠들어 있었어요. 딱딱한 타일 바닥 위로 돈벌레들이 기어 다녔고, 녹슨 수도관 냄새, 들려오는 방향을 잘 알 수 없는 소음이 좁은 여관방을 꽉 채웠죠. 남자들은 머리통이 터질 듯이 코를 골았고 여자들은 상체를 잔뜩 웅크린 채 끙끙 앓았어요. 아침에 일어나면 닭들이 모이통으로 달려가듯이 하나같이 줄을 서 식당으로 갔어요. 밥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었죠. 누구도 우리에게 밥을 먹지 말라거나 조금만 먹으라는 말을 하지 않았어요. 밥을 먹고 나면 볼록 튀어나온 배를 내민 채 사방이 천막으로 가려진 폭파 현장까지 한 줄로 걸어갔어요. 폭파하던 첫날의 소란스러움, 끊임없이 피어오르던 검은 먼지 대신 크고 작은 시멘트 조각들, 휘어진 철근 잔해들, 사무실 집기의 흔적들 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손바닥만 한 곰 인형, 때가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리본 달린 손수건도 보였어요. 하늘 위를 날아가는 비행기 소리가 들릴 때, 폭우가 몰려오기 직전에, 자동차 충돌 사고가 일어나 그 소음이 하늘로 뻗어 올라갈 때 그럴 때만 우리는 하늘을 쳐다봤어요. 그리고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먼지, 먼지, 먼지들. 흰 먼지가 피부, 손톱 속, 눈썹 속, 하물며 똥구멍 속까지 다 들어찼어요. 온통 거대한 흰 먼지투성이였어요. 폭파된 건물 잔해들을 치우는 일은 미아미가 설계한 건축물들을 지어 올리는 일보다 더 악랄한 작업이었어요. 대형 크레인과 대형 트럭이 일차로 무너진 잔해를 여러 날에 거쳐 실어 갔어요. 뭔가 하나를 집어내면 또 하나가 나오고 또 하나를 집어내면 또 하나가 나오는 식이었죠. 끝이 없었어요. 나한테 남은 인생을 다 바쳐도 부서진 잔해들을 모두 치우기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그 세 달 동안 내 몸에서 십오 킬로그램의 체중이 빠져나갔고 허스키와는 단 한 번의 키스조차 하지 않았답니다. 허스키도 나도, 키스를 할 최소한의 기운조차 없었어요. 우리 모두가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냥 건물 잔해 덩어리들처럼 느껴졌으니까요.  

크리스마스 무렵이었어요. 맥줏집 앞 정문에 뚱뚱한 산타클로스 인형이 등장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곤 했죠. 덩치 큰 맥줏집 사장이 인건비를 아끼느라 직접 인형 속에 들어가 있다는 설이 맞는 것 같았어요. 웃을 일이야 없었지만 우리도 그리 나쁘지 않았어요. 밥도 먹었고 일자리도 있었고 무엇보다 집이 있었으니까요. 누구도 평원으로 돌아가자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까요. 여관의 장기 투숙객이 된 우리는 맥주를 시키는 손님에게만 갖다 주는 중국산 땅콩을 마음대로 까먹으며 사무실에 모여 앉아 훌라를 했어요. 모서리가 나달나달해진 카드를 내준 여관 조바 아줌마는 창 아래 놓인 일자 소파에 누워 코를 골며 잤어요. 어찌나 성격이 무던하신지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도 조바 아줌마의 초저녁잠은 절대로 깨울 수가 없었어요. 그 사이 술에 취해 몸을 못 가누거나 정신이 아주 말짱해 얼굴조차 들지 못하는 남녀 커플들이 비좁은 여관 복도를 통해 방으로 들어갔어요. 여관비는 아무나 받으면 되었고 키는 보관함에 걸려 있는 걸 꺼내 주면 그뿐이었어요. 자정이 좀 넘으면 인근 대학에서 박사 학위 공부를 하고 있다는 남자애가 나타나 조바 아줌마 대신 방 청소를 한다고 왔다 갔다 했어요. 청소가 끝나면 손가락 굵기만 한 녹음기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녹음된 소리들을 틀어 들려 줬죠. 주로 여자들의 신음이었어요. 귀를 찢을 듯한, 잡음이 심하고 자꾸 끊어지는 이상하게 과장된 여자들의 목소리가 한참 이어졌어요. 여자들 목소리가 다 끝나고 나서야 남자 목소리가 겨우 한 번 나오는 게 대부분이었어요. 누군가 노래를 불렀어요. 누구에게나 자기 인생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 나한테는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어깨를 으쓱거리며 부르던 노래의 가사는 아주 간단했어요. “요코하마, 요코하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아루이데모, 아루이데모.” 노래는 항상 그렇게 끝났고 또다시 “요코하마, 요코하마”로 이어지곤 했죠. “1968년 12월 발매 시작, 가수 이시다 아유미, 밀리언셀러 기록 보유.” 곧 박사 학위를 딴다는 대학원생은 노래 끝에 항상 설명을 달았고 그러면 또 누군가가 전염된 듯 다시 그 노래의 한 부분을 천천히 “블루라이트 요코하마”라고 발음하며 구성지게 부르기 시작했죠. 카드가 돌아가고 또 돌아가고 녹음기가 돌아가고 요코하마가 돌아가던, 바로 그 반복의 순간에 대학원생은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우리를 즐겁게 해준 대가를 요구했어요. “배운 새끼들이 더 무섭다”는 말은 그때 제일 많이 썼던 것 같아요. 그렇게 별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가볍게 기침을 하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부터 기침 소리가 이상하리만치 거칠어졌어요. 기침 소리 때문에 주변의 소요가 다 잦아들 만큼, 기침 소리는 매우 충격적이었어요. 모든 것들이 멈춰 버렸죠. 내가 잊지 못하는 순간이라고 말한 건 바로 그때를 말하는 거였어요. 기침을 하던 사람의 아래턱에 피가 묻어 나왔거든요. 사람들이 들고 있던 카드 조각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떨어졌어요. 놀란 우리가 동분서주하는 사이 작은 녹음기 속에 목소리가 담겨 있을지도 모를 한 커플이 얼굴을 숙인 채 살며시 여관 문을 밀고 빠져나갔답니다.

Z빌딩 폭파 현장에 환경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건 그로부터 며칠 후였어요. 모두 마스크를 쓴 채 외국인들 몇 명을 데리고 왔어요. 검고 커다란 가방 속에서 이상하게 생긴 기구들을 꺼내 펼쳐 놓고 잔뜩 분위기를 잡았죠. 무거운 계기판이 달린 측정기들인 것 같았어요. 그들은 우리들에게 설문지를 나눠 주면서 한껏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어요. “감기가 오래 가면 바로 병원에 가셔야 합니다. 저희 협회에 등록을 하시면 정밀 조사 대상자로 자동 관리됩니다. 폐에 석면섬유가 쌓이면 끔찍한 일이 생깁니다. 이십에서 사십 년의 잠복기를 거쳐 여러분을 죽게 만듭니다. 저희와 연대하여 정부를 상대로 싸워야 합니다.” “저 자식들 왜 저러지?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데?” 우리는 다 귀찮다는 듯 툴툴대며 설문지를 그냥 바람에 날려 버렸죠. 그때 폭파를 맡은 회사의 임원들이 여러 명 나와 강한 어조로 항의하기 시작했어요. 일하는 데 방해 말고 떠나 달라고 했죠. 우리는 사정도 모른 채 환경 운동 하는 사람들이 나눠 준 비타민 드링크제를 나눠 마시고 감독이 없는 틈을 타 그늘에 찾아 들어가 늘어지게 낮잠을 잘 판이었어요. 어쨌든 다음날 우리는 예상치도 않았던 아주 큰 액수의 돈을 받았어요. 돈 봉투가 얼마나 두툼한지 갑자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요. 자연스럽게 허스키와 나는 오랜만에 두 눈을 찡긋했어요. 아무에게도 이상한 말 따위는 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날 밤 사람들이 여관 사무실에 앉아 다 같이 훌라를 하는 틈에 우리는 도망쳤어요. 청소를 하는 대학원생이 옆방 벽에 귀를 댄 채 눈을 꼭 감고 있던 모습을 본 게 마지막이었어요. 우리는 씩 웃었죠. 우리 가방 속에 동료들 돈이 다 들어 있었거든요. 환경 운동하는 사람들이 나눠 줬던 종이는 다음날 우리가 밥을 먹으러 가는 상가 앞에서도 발견됐어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여러 개의 폐가 그려져 있고 알 수 없는 병명이 적혀 있고, 어쨌든 난 글씨를 다 잊어버렸더라구요. 그러나 단 한 글자는 읽을 수 있었어요. 시멘트!

많은 도시를 떠돌았어요. 그러다 자연스럽게 아무도 반겨 주지 않을 것이 뻔한 북쪽 도시로 간 거죠. 드문드문 집들이 몇 채 보이고 버스 정류장 앞에 서 있는 파출소와 건너편의 구멍가게 그리고 흰색 병원 건물이 다였어요. 허스키와 나는 병원 현관 입구에 앉아 빵을 먹고 있었어요. 허스키가 가방 속을 열어 보더니 볼을 부풀리며 한숨을 내쉬었죠. “돈이 조금밖에 없어, 가방이 홀쭉해졌다구.” 우리가 지나온 거리만큼 가방 속의 돈도 줄어들었어요. 흰색 병원 건물 이층에서 뭔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났어요. 허스키가 벌떡 일어났죠. ‘방 세 놓음’이라는 글자가 적인 나뭇조각이 흔들리고 있었어요. 허스키와 나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채 병원 문을 살짝 밀었어요. 중앙은 텅 비어 있고 사방의 벽은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운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어요. 오른쪽에 있는 문이 반쯤 열려 있었는데 병원 뒤쪽으로 넓게 펼쳐진 논이 한눈에 들어왔어요. 허스키가 진료실이란 팻말이 붙은 왼쪽 한구석 방으로 걸어갔고 나도 따라갔어요. 엄청나게 커다란 넓적다리가 보였어요. 넓적다리의 여주인공은 자고 있어서 얼굴을 볼 수가 없었죠. 의사는 등이 굽고 키가 큰 노인이었어요. 등을 굽힌 채 넓적다리 사이를 들여다보고 있었죠. 슬리퍼를 신은 노인의 발 앞에 스테인리스 통이 놓여 있어서 그 그림만으로도 오싹하더군요. “저…….” 허스키가 발을 구르며 입을 열었어요. “수술중인 거 안 봬! 밖에서 기다려.” 의사는 허스키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어요. 우리는 스펀지가 미어 터져 나온 갈색 소파에 앉아 쇠들끼리 부딪치는 소리, 종이 찢어지는 소리, 세면대에 수돗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병원 뒤쪽의 논 한가운데로 뛰어가는 개들이 제일 평화로워 보였죠. 의사는 진료실에서 나와 철제 책상 뒤에 놓인 의자를 빼고 앉아 글씨를 썼어요. 책상 서랍을 열고 등을 숙인 채 뭔가를 꺼내기도 했죠. 진료실 쪽에 누워 있던 여자가 그때부터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고개를 좌우로 돌리기도 하고 넓적다리를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입술을 물고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어요. “올라와요.” 의사가 말했죠. 우린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나무 계단을 지나 이층으로 올라갔어요. 천장이 너무 낮아 뚱뚱한 나에겐 정말 고역이었죠. 동그란 무늬가 연속해서 그려진 유리창으로 따뜻한 햇볕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동과 서, 양쪽에 방이 하나씩 있었는데 햇볕 때문인지 아늑하고 편안한 느낌이었어요. 허스키가 거실 한가운데 놓인 소파에 앉아 있는 의사에게 다가갔어요. “저희가 저기서 살아도 될까요?” 허스키가 동쪽에 있는 방을 가리키며 말했어요. “그래도 될까요 박사님?” 허스키가 다시 묻자 의사가 고개를 끄덕거렸죠. “이불은 사지 마. 이불은 아주 많아.” 박사가 우리의 등 뒤에다 대고 말했어요. 허스키가 뭔가 박사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 준 것 같았어요. 대나무 같던 노인네가 갑자기 이불까지 주겠다고 했으니까요. 허스키와 나는 시내로 나가 빨강색 플라스틱 그릇과 수저 두 벌, 그리고 물컵 두 개와 휴지통, 쌀 한 포대를 사가지고 돌아왔답니다. 우리는 신혼부부가 됐죠. 이십 킬로그램짜리 쌀을 방 한쪽 구석에 기대 놓자 마음이 편해졌어요. 허스키는 말이 많아졌죠. “나는 이제 몸에 좋은 음식만 먹겠어. 그런데 너, 뚱돼지 너가 돈을 많이 벌어 와야 내가 맛있는 걸 많이 사 먹을 수 있지 않겠니? 명심해” 박사는 저녁 내내 텔레비전을 보다가 밤이 깊어서야 이층으로 올라와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요. 이층 벽에 매달린 전화기가 아무리 울려대도 절대로 전화를 받지 않았죠. 깊은 밤, 자려고 누웠는데 쉽게 잠을 이루지 못했어요. 둘 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을 때 “아, 양고기 먹고 싶다”고 허스키가 말했어요. 정말이지 양고기 냄새가 몰려왔어요. 양고기가 먹고 싶었던 게 사실이었어요. 그뿐만이 아니었어요. 사실 난 평원에도 가고 싶었어요. 미아미가 지으려고 했던 건축물들이 어떤 지경에 이르렀는지 보고 싶었거든요. 수채화처럼, 질감이 단순하게 느껴지는 건축물로 변신해 눈앞에서 왔다 갔다 했어요. 미아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서 우리들끼리 사는 거, 세상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사는 것도 좋겠다 싶었죠. 결국 그 첫날, 허스키는 박사의 부엌 서랍에서 비닐봉지에 든 멸치를 찾아내, 멸치를 뜯어 먹고 난 후에야 잠이 들었답니다. 서랍 속에 바퀴벌레가 우글거렸다고 말했던 게 기억나네요.

종이공장에 다녔어요. 종이공장에서 하는 일이란 건 일도 아니었어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는 일이었죠. 굉장히 심심했어요. 그런 상태로 늙어 죽을 때까지 시간을 보낸다는 건 참을 수 없겠더라구요. 내가 그러는 동안 허스키는 동네 애들을 다 모아 놓고 노느라 바빴어요. 젖 먹이는 흉내도 내고 엄마라고 부르라고 시키기도 하고, 목욕도 시키고 밥도 해 먹이고 잠도 재웠어요. 아이들의 부모들은 일거리를 잡기 쉽지 않은 지방 소도시에 사는 죄로 사람을 죽이는 일만 아니면 무슨 일이든 닥치는 대로 하러 나갔어요. 대부분의 아이들이 혼자 있을 때가 많았죠. 나중엔 아이들 숙제까지 봐주더군요. 어느 날, 어쩌다 동네 아이들이 모두 다 집에 가고 우리 둘만 남은 날 밤 허스키가 말했어요. “우리도 아기를 낳자, 좋겠지! 넌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해.” 허스키는 그날부터 몸에 좋다는 음식을 사 오라고 사람을 달달 볶아댔어요. 밤이든 낮이든 눈만 마주치면 내 팔을 잡고 방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리고 놀라운 건 허스키가 결국 임신을 했다는 사실이에요. 그때는 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아스팔트를 걷고 또 걸어 집에서 멀리 떨어진 다리 위까지 올라가 소리를 질러댔죠. “야, 너희들 잘 들어. 자이언트, 마마, 난 당신들처럼 안 살아! 잘 보라구.” 다리 아래로 흘러가던 물을 내려다보던 허스키가 고개를 쳐들고 물었어요. “그게 누군데?” 정말 나한테 잘살 자신이 있었는지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바로 아래층에 외과 내과 산부인과 할 것 없이 모든 진료가 가능한 박사가 한 분 있었으니까요. 허스키는 동네 할머니들이 알려 주는 대로 태아에게 좋은 음식이란 음식은 다 찾아 먹었어요. 또 동네 초등학생에게서 동화책 한 권을 빌려와 매일 밤 아기에게 읽어 줬어요. 나도 읽어 주고 싶었지만 학교를 떠난 지가 너무 오래라 글자를 읽을 수가 없었어요. 그 대신 요코하마를 불러 줬죠. 그건 부를 수 있었으니까요. 배는 점차 불러 갔어요. 배가 볼록하게 올라갔는데도 허스키는 너무 많이 먹었어요. 종이공장에서 받는 급여로는 허스키가 먹을 것만 사기에도 돈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밤에 공장으로 들어가 박스를 훔쳐 내다 팔았어요. 나중에 공장장이 알게 돼서 돈을 좀 떼어 줬죠. 공장장도 좋아했어요. 작은 트럭을 공장 담벼락 아래에 대 놓고 재고로 쌓여 있는 것들을 몇 묶음씩 들고 나가 트럭에 실었어요. 박스를 잔뜩 싣고 도로를 달리던 순간에는 내가 정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아 기뻤죠. 저 멀리 막 떠오르는 평원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차를 세우고 담배를 한 대 물고 평원 쪽을 쳐다보기도 했죠. 감시원들이 낄낄거리며 산 아래를 내다보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요. 그 자식들을 향해 담배꽁초를 던져 버렸어요. 집에 들어가 보면 허스키는 이른 아침부터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어요. “너를 만나기 전까지 난 고기라고는 못 먹었었거든. 내가 이렇게 된 건 짐승 같은 너 때문이라구.” 그렇다고 하더라도 허스키는 정말 너무했어요. 자기 아버지가 머리 좋은 대학교수였기 때문에 자기가 낳은 아이는 누구보다 머리가 좋을 거라고 입이 찢어지게 자랑을 해대더군요. 어쩌면 나한테도 그런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에요. 나와는 다른 인생을 사는 아이를 낳고 싶다는 생각 말입니다. 길을 지나갈 때 동네 사람들이 으레 허스키에게 건네는 인사말에도 나는 진지하게 대답하곤 했어요. “외할아버지가 대학교수였답니다 어르신.” 그러면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로 허스키를 넘겨다보고는 아냐, 아냐 하는 얼굴로 자리를 떠났어요. 고기를 먹고 나면 과일을 찾고, 과일을 먹고 나면 또 고기를 찾고 허스키는 정말 너무 많이 먹었어요. 난 겁이 났죠. 어느 날 저 배가 풍선처럼 팡, 하고 터져 버리면 어쩌나, 걸어가다가 가랑이 사이로 옷도 입지 않은 아기가 똑 떨어지면 누가 받나, 모든 게 몹시 위태로워 보였어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배가 엄청 불렀는데도 허스키는 여전히 많이 먹고 여전히 즐겁게 놀다가 어느 날 밤 갑자기 방 한구석에 놓인 담요자락을 움켜잡고 공포스러운 비명을 질렀어요. 나는 박사를 불러왔고 박사는 멀리서 왕진을 오는 사람처럼 의료 기구가 담긴 가방을 들고 우리가 사는 방으로 들어왔어요. 허스키의 치마를 올리고 질 속에 손가락을 넣었어요. “옮겨.” 그리고 그 한마디뿐이었죠. 잠시 뒤에 허스키를 부축해 아래층의 침대에 눕혔어요. “박사님 뭐가 나와요.” 허스키가 제대로 된 말을 한 건 그게 마지막이었어요. 허스키의 엉덩이 아래로 물 같은 것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있었거든요. 허스키가 고개를 들어 다리 쪽을 내려다보려고 애썼어요. 영화를 본 적은 없지만 공포 영화를 보는 것과 똑같았어요. 백발이 성한 노인은 허스키의 가랑이 사이를 들여다보다가 표정도 없이 허스키의 얼굴을 쳐다보곤 했어요. 허스키는 애를 낳기 직전까지 죽어라 하고 엄마를 불러댔어요. 엄마라니, 난 기가 막혔어요. 병원 문 밖에 나가 담배를 피우다가 저 멀리서 사람이 걸어오면 괜히 달려가 “지금 애가 나오고 있어요”라고 말을 걸곤 했죠. 하늘이 높은 늦가을 아침이었던 것 같아요. 줄 지어 선 미루나무들이 보였고 철근을 가득 실은 트럭이 지나가기도 했죠. 군장을 한 군인들이 지나갔고 장의차도 지나갔어요. 그냥 평범한 하루였죠. 허스키가 숨이 넘어갈 듯 소리를 질러댔고 잠깐 동안 나는 들어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머뭇거렸어요. 허스키가 소리를 지르고 죽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허스키는 살아 있었어요. 박사의 손에 가위가 들려 있더군요. 박사는 곧 주홍색 덩어리를 한 손에 쥔 채 허스키의 배 위에 올려놓았어요. 나는 허스키의 옆으로 갔고 허스키의 배 위에 놓인 것을 볼 수 있었어요. 아기는 주홍색이었고 조금은 거무죽죽하면서 삐죽거리는 듯한 입술을 옴지락거리며 뭔가를 찾고 있었어요. “아들이다.” 박사가 말했고 나도 모르게 박사에게 꾸벅 절을 했던 것 같아요. 허스키는 두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충혈된 상태로 배 위에 있는 아기를 어루만지면서 깔깔거리고 웃어댔어요. “박사님 그런데 왜 애기가 안 울어요?” 허스키가 기운 없는 소리로 물었죠. 박사는 피가 튄 가운을 벗고 새 가운으로 갈아입으며 말했어요. “울겠지 곧.”

애는 울지 않았답니다. 울기는커녕 웃지도 않았죠. 어느 날 밤 박사가 날 불렀어요.  술집으로 갔죠. 술을 한 잔 따라 주며 마시라고 했어요. 연거푸 술을 세 잔 따라 주었어요. “니들 고향이 어디야?” 박사가 물었어요. “그건 왜 물으세요?” 내가 다시 물었죠. “저 애는 정상이 아니다. 고향으로 가든가 돈이 있으면 도시의 큰 병원으로 데려가. 언제 죽을지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 박사는 탁자 위에 술값을 놓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정말이지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더군요. 박사의 어깨를 잡았어요. “지금 무슨 얘길 하시는 겁니까? 애가 어떻다고 이러시는 거죠?” 박사는 내 얼굴을 돌아봤어요. “그걸 내가 어찌 아니? 그건 니들이 알겠지.” 박사가 나가고 나서 나는 빈 독에 물을 붓듯이 커다란 소주 됫병을 몸속에 털어 넣었죠. 나도 모르게 “커억, 커억” 한숨이 흘러나왔어요. “아이 진짜 어떤 개새끼가 트림을…….” 휴가 나온 군인들이었죠. 난 억울했어요. 사사건건 억울했죠. 평생 동안 억울했던 나는 군인들이 앉아 있는 드럼통 탁자를 뒤집고 얼굴에 피도 안 마른 군인 놈 둘을 술집 바닥에다 메다꽂고 사정없이 주먹질과 발길질을 해댔어요. 파출소 순경은 내 머리를 갈기며 말했어요. “내일모레면 쟤들처럼 군복 입을 새끼가 선배 군인들을 때려!” 어쨌든 난 오랜만에 몸을 풀어 시원했답니다. 허스키는 아기를 옆구리에 끼고 방긋방긋 웃으며 세상에서 제일 철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일주일쯤 지났을까 허스키가 겨우 허리를 세워 일어나 앉을 쯤이었던 것 같아요. “뚱땡아, 애가 이상해. 애가 숨을 못 쉬어.” 나를 돌아보는 허스키의 얼굴은 벌써 눈물 콧물 범벅이었죠. “빨리 일어나 병원 가게.” 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시내로 달렸어요. 우리 셋의 몸이 한 덩어리가 되어 달렸죠. 그런데 사실 난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그 순간 잘 알 수가 없었어요. 병원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병원을 지나쳐 온 것 같기도 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때 그 오토바이 위에서, 꼬맹이의 체온을 느꼈다고, 나도 내 자식인데 왜 사랑하지 않았겠느냐고 허스키에게 수백 번 말했지만 허스키는 끝까지 날 믿어 주지 않았어요. 허스키는 나 때문에 애가 죽었다고 말했어요. 어쩌면 허스키가 날 믿어 주지 않는 건 당연해요. 그건 다 뻥이었어요. 나는 병신 새끼를 낳고 싶지는 않았어요. 운전하는 내 뒤에 꼬맹이가 있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어요. 사실 얼굴도 기억나지 않아요. 허스키 가슴에 매달린 꼬맹이가 내 뒤에 있다, 그게 전부였고, 그게 우리가 함께한 처음이자 마지막 외출이었어요.

나는 조수 형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미친 듯이 찾아다녔죠. 나이트클럽은 거의 매일 갔고 그의 작은 동생들이 살던 계단 위 슬레이트집까지 샅샅이 뒤지고 다녔어요. 많은 일들이 떠올랐어요. 돌이킬 수 없는 많은 일들이 떠올랐고 몸이 아팠어요. 배를 만져 보면 내 배 한가운데서 주먹 덩어리만 한 것이 잡혔어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덩어리 때문에 나는 밤잠을 설치며 날뛰었죠. 밤에는 술을 마시고 아무 데서나 자고 아침이 되면 다시 도시를 이 잡듯이 뒤지고 다녔죠. 형도, 형의 차도, 형의 똘마니들도, 또 그의 동생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어요. 누구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죠. 허스키가 사는 집 박사님네 전화는 여전히 아무도 받지 않았답니다. 난 지나가는 사람들을 다 째려봤어요. 술 취한 자식들 지갑을 꺼내 도망쳤죠. 누구든 한 대 때리지 못해 몸이 근질근질했어요. C시가 북부 지역 개발의 중점 도시로 지정되었다는 뉴스를 본 건 그럭저럭 한 달가량이 지난 후였어요.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죠. 기존의 철도가 보수되고 길이 확장되고 최첨단 아이티 기술 단지가 조성될 거라고 했어요. 외국 관광객도 유치하고 국내 최고의 관광 도시를 만들겠다는 포부가 대단했죠. 나는 피식 웃다가 눈을 크게 떴어요. 연설을 하고 있는 키 작은 국회의원 옆에, 바로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이 매우 익숙했어요. 바로 조수 형이었고 난 그 순간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텔레비전을 통째로 들어 창문 밖으로 던져 버렸어요. 근처 공사장 인부로 한 달쯤 일을 했죠. 그냥 돌아갈 수는 없고 돈을 모아 허스키의 팬티라도 사다 주고 싶었죠. 술을 먹는 것도 지겹고 저녁마다 목욕탕에 갔어요. 정치판을 따라다니며 일하던 형들이 가득하던 목욕탕 안이 떠올랐죠. 욕조 안에는 언제 태어났는지도 알 수 없는 나이든 노인 둘이 앉아 소녀들처럼 몸을 씻고 있었어요. 이빨도 다 빠져 무슨 말을 해도 앙앙거리는 소리로만 들렸죠. 바로 그때 목욕탕의 새시 문이 드르륵 열렸고 한 남자가 들어왔어요. 뒤쪽 어깨에 새긴 나비 문신이 선명하더군요. 잘 발달된 근육, 뭔가를 발라 윤이 나게 빗어 넘긴 머리, 군살 하나 없는 몸매가 이색적이었어요. 가슴이 뛰었죠. 내가 한때 존경하고 사랑했던 사람이었으니까요. 나는 얼굴을 숨긴 채 의자를 깔고 앉아 몸을 씻고 있는 노인들한테로 다가갔어요. “어르신들, 저기 교도소에서 탈출한 놈이 들어왔어요. 난 형사예요. 빨리 나가세요.” 노인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 자리에서 굼뜨게 일어났어요. 도무지 노인네들 몸이 정신을 따라 주지 않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자식이 내 얼굴을 돌아볼까 나는 여전히 벽 쪽을 쳐다보고 있었죠. 노인들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뒤를 흘깃거리며 여전히 굼뜨게 걸어 나갔어요. 샤워중인 그 자식의 흰 엉덩이를 쳐다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답니다. 똑똑,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벽 쪽으로 열린 창으로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교차되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거든요. 비좁은 사우나실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한 번 더 확인했고 아무도 없는 냉탕 쪽으로 가는 척 몸을 일으켜 발을 옮겼습니다. 그리고 냉탕에서 뛰어나가 샤워기에 붙어 서 있는 그 자식의 목을 뒤에서 졸랐죠. 그때 나는 불이었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불, 자이언트의 아들, 병신 새끼를 낳은 병신 새끼. 그러나 조수 형은 나한테 당할 인간이 아니죠. 그 자식은 어느새 내 배 위에 올라탄 채 내 얼굴을 주먹으로 짓이기고 있었어요. 눈두덩이 가볍게 터졌죠. 벌떡 일어나는 동시에 그 자식 배 위에 내가 올라앉았어요. 머리통을 두 손으로 쥐고 딱딱한 타일 바닥에 짓이겨 버렸죠. 그 자식의 날씬한 복근이 허공으로 치켜올려졌어요. 그러더니 내 몸이 허공으로 붕 떴죠. 목욕탕 바가지 수십 개가 날아왔어요. 거울들이 깨져 튕겨 나오면서 내 허벅지에서 피가 흘렀죠. 그 자식은 긴 마포걸레 자루를 들고 와 나를 개 패듯 팼어요. 도망을 갈 수도 없었죠. 목욕탕은 너무 조용했고 뱃속에 있던 불덩어리가 터진 것 같았어요. 창자가 터졌는지 항문이 터졌는지 난 절뚝거리며 그 자식이 방금 빠져나간 탈의실로 달려갔어요. 그 자식은 막 옷을 꺼내려고 키를 돌리고 있었고 나는 체중계 옆에 서 있던 양철 캐비닛을 들어 그 자식에게 던졌어요. 캐비닛 뒤에 숨은 그 자식은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고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더 움직일 수가 없었거든요. 나쁜 새끼, 내가 기운이 빠진 사이 그 자식은 캐비닛을 살짝 밀고 나와 내 두 다리를 질질 끌고 목욕탕 안으로 데리고 갔어요. 좋은 음식만 먹었겠죠, 힘이 엄청났어요. 사지가 접히고 구겨진 채 나는 한증막 나무 바닥 위에 자빠졌어요. 그 자식은 나를 비좁은 한증막에 처넣고는 밖에서 못 나오게 지키고 서 있었죠. 그러나 난 발로 유리를 깼어요. 그 충격으로 그 자식이 냉탕에 빠졌죠. 나도 냉탕 속으로 들어갔어요. 물 때문에 계속 미끄러지기만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냉탕 욕조 턱에 머리를 부딪치고 말았죠. 정신이 멍해져 욕조 턱에 머리를 기댄 채 물 위에 떠 있었어요. 그 자식은 몇 초간 나를 살펴보더니 유유히 샤워를 했죠. 나비 문신이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데 나는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 자식이 날 돌아보며 말했어요. “니 애비랑 똑같구나.”

기물 파손 죄였어요. 벌금이 엄청 나왔고 영업 손실금도 내라고 했어요. C시 역사상 목욕탕 폭력 사건은 처음이라고 했죠. 나도 많이 다쳤기 때문에 겁에 질린 목욕탕 주인이 덜덜 떨었어요. 내가 나중에 또 찾아갈까 두려웠던 거죠. 돈 조금만 주고 그냥 가라고 했어요. 다시는 목욕탕 운영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며 자꾸 고개를 숙였어요. 터진 머리를 꿰매고 상처를 치료하는 동안 나는 시립 의료원에 있었어요. 난 주소지 불명인 사람으로 분류되어 있었어요. 밥도 많이 주고 공기도 좋고 산책할 공원도 있고 평생 병원에서 살면서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공부나 해보고 싶었죠. 왜 옛날 사람들이 말했잖아요. 감옥에서 수백 권의 책을 읽었다고. 그러나 그러기 전에 확인해야 했어요. 병원집 이층에 남겨 놓은 허스키, 죽도록 나만 따라다니겠다던 허스키에게 가 봐야 했죠. 난 정말 작은 팬티 세 개가 든 상자를 분홍색 포장지로 싸 들고 그곳으로 갔어요. 왠지 그곳은 전보다 더 정감 있고 따뜻하고 조용해 보였어요. ‘월세 놓음’이란 팻말이 붙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팻말은 없었어요. 그걸 떼버린 게 허스키였거든요. 슬쩍, 나무문을 밀었어요. 흰 간호사복을 입은 여자가 진료실에서 나오며 나에게 인사를 했어요. 빳빳하게 풀을 먹인 흰 머리띠, 잘록한 허리, 조금은 검은 듯한 얼굴, 영락없는 허스키였어요. 그 이층집에서 처음 봤을 때, 그때보다 허스키는 더 매력적이었죠. 우린 포옹을 했어요. 내 몸속 근육에 든 나쁜 기운들이 다 빠져나오는 것 같았어요. “나 취직했어.” 허스키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려왔죠. 가슴속에 돌아다니던 불덩이가 순간 배 아래쪽으로 쏙 내려갔어요. 난 허스키에게 말했죠. “이제 꼭 같이 다니자 어디라도.” 우리는 다시 안았어요. 그런데 허스키의 몸은 내 손에서 쏙 빠져나가 버렸어요. 난 오른쪽 문 뒤로 난 논을 내다보고 있었고 감정만, 기분만 그렇게 흘렀던 것이죠. 개들이 차가운 논 위를 열심히 내달렸어요. 여전히 진료실에는 넓적다리가 굵은 여자가 다리를 벌린 채 누워 마취가 깨길 기다리고 있었어요. “내가 자네라면 피임 기구를 몸에 넣겠네. 지겹지도 않나 매번.” 박사가 여자에게 말했죠. 여자는 대답했어요. “하기만 하면 들어선다니까요.”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올라가 허스키와 내가 살았던 방 앞에 섰어요. 방문을 열었죠.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어요. 방은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채 텅 비어 있었거든요. (다음호에 계속) 《문장 웹진/2009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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