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장편연재 최종회

장편연재 8회(최종회) 

크리스마스에는 훌라를

 

 

 

강영숙

 

 

 

 

 

10. 크리스마스에는 싸우지 않기

  

정말이지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단다. 그 인간이 돌아온대! 그 인간이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야 나한테 돌아온다는 사실을 너도 알아야 하는데. 언제 헤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이런 호들갑조차도 그 인간에게는 과분하지. 어쨌든 잇몸에 마취 주사를 맞고 뭉치 솜을 악문 채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뭉근한 통증을 견디고 있을 때처럼 기분이 이상했어. 그렇다고 이토록 이상한 소식을 전해 줄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처음엔 나 혼자 ‘긴급 뉴스 긴급 뉴스’라고 외치며 겅중겅중 뛰어다녔다. 나는 사실 얼마 전에 홀연히 북쪽 도시로 돌아왔단다. 어느 날 내 귀에서 피가 났거든. 피는 곧 멈췄지만 계속 귀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어. 그래서 어느 날 마음속에 커다란 저장고를 만들었지. 그리고 그 도시에서 있었던 일들을 작은 종이에 적어 넣어 저장고 속에 담아 두었단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더 이상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 피가 멈췄단다. 자이언트도 너도 찾지 않았어. 혼자 살아갈 생각이었거든. 한번은 시립 의료원에서 너를 닮은 사람을 본 것도 같았어. 시장 골목 저쪽으로 휙 사라져 가는 자이언트도 본 것 같았지. 어떤 날은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람 같다가 또 어떤 날은 모든 사람이 다 모르는 사람이었어. 도시는 점점 가라앉고 있었어. 빨강색 립스틱을 발랐지. 빨강색 립스틱은 그 옛날 나를 태웠던 불길을 다시 타오르게 만들었단다. 환하고 뜨거운 불이 나를 태워 죽이려고 했었지. 그 환하고 붉은 불줄기가 눈앞에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어. 그때 나는 불이었단다. 깊은 밤중이었어. 길을 걸어가는데 너무 어두워서 내 몸에서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그 길은 아주 깜깜하고 죽을 듯이 고요했어. 그 밤에 내가 그 길을 혼자 걸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 난 정말 겁도 없이 쏟아져 내릴 듯 떠 있는 별 무리를 올려다보며 걸었지. 난 대단한 여자였어, 그렇게 무서운 길도 혼자 걸었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네 엄마라는 여자는 훌륭한 사람은커녕 세상에 쓸모 있는 사람도 아니고, 정말이지 일개 늙은 여자에 지나지 않는단다. 세포부터 차곡차곡 늙어 가고 있는 중인 그런 여자 말이야. 쓸모 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 건 그렇다 해도 운전면허라도 있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지금 운전면허 따위를 화제로 올릴 때가 아니라는 거 너무 잘 안다. 그런데 왜 난 내 인생에서 제일 억울한 게 바로 그 운전면허일까. 누가 나에게 지금이라도 운전면허를 주고 내가 운전만 할 수 있다면 내 남은 인생을 다 걸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짝짝이가 된 늘어진 엉덩이밖에는 가진 게 없는데 못 걸 것도 없잖아. 어쨌든 그 인간이 단숨에 내 몸을 질질 끌고 내려와 어두운 밭고랑에 처박았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몸의 등 쪽이 단번에 움푹 파인 밭고랑의 진흙에 찰싹 달라붙어 버렸어. 화가 나서 그랬을까.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환하고 뜨거운 불줄기를 따라다녀서인지 아프질 않았어. 자이언트를 떠났다고 해서 그 불줄기가 내게서 떠난 건 아니었단다. 운명처럼, 내 꼬리뼈 뒤를 따라다니며 중요한 순간마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활활 타올랐어. 내가 새로운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질 때마다 내 등 뒤에서 타올라 내 운명을 태워  버리는 식이었지.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불은 꺼졌고 그때부터 나는 통증에 시달렸어.

기억나니? 그 인간이 미친개처럼 두 발로 나를 마구 찰 때마다 넌 딸꾹질을 했지. 입도 열 수 없을 지경으로 사람을 몰아붙일 때마다 나는 어깨를 들썩거리는 너를 쳐다보며 ‘딸꾹, 딸꾹’ 소리를 들었지. 자이언트는 얼굴, 배, 가슴 할 것 없이, 물이 펄펄 끓는 무쇠 솥 안에 들어갈 순서가 정해진 미친개처럼 나를 마구 때렸단다. 정말 남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고 그냥 인간 개였어. 그 인간은 뚝뚝 끊어지는 듯한 비명을 어두운 하늘로 내뱉으며 킹콩이나 화가 난 곰처럼 발광을 해댔어. 맞는 건 난데 왜 비명은 자기가 질러댄 걸까? 몸이 채 오그라들지도 못하고 뻣뻣한 막대기처럼 굳어 버린 나를 끝도 없이 팼단다. 어두운 밭고랑 위 여기저기서 희고 환한 불이 마구 타올랐지. 나는 눈을 뜨지도 못하고 감지도 못하고 불빛이 움직이는 방향만 쳐다봤어. 짙은 밤이었단다. 내가 그때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거라는 걸 예견했다면 얼마나 좋았겠니. 그토록 처절하고 비참하지는 않았을 텐데. 그 인간은 밭고랑 속을 파내는 데는 이골이 난 사람 같았어. 사람 하나가 누울 정도의 홈이 생기자 스티로폼 박스 안에서 썩고 있는 생선을 던져 버리듯 가차 없이 나를 그 속에 던져 넣었어. 두 번째 충격이 가해지자 내 몸이 마치 소금에 절여진 풀떼기처럼 팍삭 오그라들었다. 그러자 드디어 그 인간은 나를 그 차가운 밭고랑에 파묻었단다. 흙 묻은 인형이나 마네킹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가는 사람처럼 태연한 표정으로 나를 그대로 둔 채 손을 털고 일어났다. 어디 밭고랑뿐이었겠니. 난 그 후로도 여러 번 자존심이 구겨진 채 여러 남자들의 손에 의해 어딘가로 처박히곤 했단다. 밭고랑에서야 달빛만이 그 일을 알고 있었지만 도시에서는 그렇지 않았어. 길거리에서, 술집에서, 어두운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당하는 꼴을 쳐다봤어. 경멸하는 눈빛이었지. 물론 나도 더 이상 참고 있지는 않았다. 나중엔 내가 파묻기도 했으니까. 살다 보면 그런 때가 아주 많아. 누군가를 확 묻어 버리고 싶을 때. 너도 한 번쯤 어두운 밭고랑 위를 혼자서 떠도는 미친 불을 상상해 보는 게 좋겠다. 한쪽 하늘은 파랗게 밝아오고, 또 한쪽 하늘이 동시에 붉게 어두워지는 무렵이 되어서야 내 심장은 벌렁거림을 멈추고 잠잠해졌어. 그 밭고랑 위에 앉아서 저 먼 산기슭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째려봤어. 입속에 자꾸 마른 침이 고였지. 아무 말이나 술술 입술 밖으로 쏟아져 나오려고 했어. 손으로 얼굴을 비볐는데 피가 묻어나더라. 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어. 어쩌면 그때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지도 몰라. 그 어두운 길을 다시 걸어 올라갔지. 밤보다 더 어두운 새벽길은 드라이아이스를 얹은 듯 촉촉하게 젖어 있었어. 얼마나 추웠는지, 너무 추워서 등이 휘어질 것 같았고 입술이 달달 떨리고 무릎이 딱딱하게 굳어 버렸어. 그래도 그 순간의 전투력 하나는 끝내 줬지. 그러나 사실 얼굴에 피었던 마마 자국처럼 그때의 일들은 다 잊었단다. 그 후로 더 지독한 일들이 훨씬 더 많이 일어났으니까. 대도시는 이곳 북쪽 도시보다 훨씬 더 냉정했단다.

 

*

 

4층 중환자 병동의 병실 창 너머로는 도로를 메운 자동차들이 보인다. 병원 현관 쪽의 잎 떨어진 나무들이 세트로 한꺼번에 후드득 몸을 떨곤 하지. 하필이면 그 인간은 이 늦은 저녁 시간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어. 낮에 오다가 차가 막혀 길에 서 있으면 환자에게 위험한 상황이 올 수도 있다고 했어. 아무래도 쉽게 손을 쓸 수가 없을 테니까. 지금 너가 내 옆에 있다면 우리는 그 인간 욕을 바가지로 해대면서 낄낄거리고 같이 웃을지도 몰라. 우리가 다시 만난다면 내가 널 앉혀 놓고, 살아 있는 동안은 다시 하기 힘든 우리 가족들의 얘기를 주제로 일장 연설을 할지도 모르지. 그러나 너무 짧고 강렬했던 걸까. 미안하지만 너와 자이언트에 대해서는 별로 할 얘기가 많지 않아. 시퍼런 강물 속으로 뛰어 들어가 빠져 죽어 버린 한 동네 살았던 언니. 서커스인지 악단인지를 따라 집을 나갔다가 돌아와 거의 정신 나간 사람처럼 허공만 쳐다보던 어떤 오빠. 일찍 죽은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을 보살피다 진짜 병에 걸려 죽어 버린 내 친구까지, 난 그런 사람들 얘기가 더 하고 싶어, 난 그래 정말.

이 이상한 일은 어느 지방 공무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로부터 시작됐단다. 내가 북쪽 도시로 돌아온 걸 도대체 어떻게 안 걸까. 정말 생뚱맞은 전화였지. 전화 중간에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통화 대기음이 나왔는데 그 지역 특산물이라는 마늘 광고를 엄청나게 해댔단다. 공무원이 말했어. “연고자 추적을 했고 가족들을 찾았다. 곧 돌려보내야 할 것 같은데 받으시겠습니까.” 똑똑한 이 엄마는 순간 내가 받을 것이 거액의 유산이라도 되는 줄 알았어. 손사랫짓을 치며 인상을 쓰다가 잠깐 멈칫했지. 그러다 나는 그 자리에서 대답했다. “네 받을게요. 받아야죠.” 받을 게 병이 잔뜩 든 그 인간의 몸뚱이라는 걸 알았다면 당장 사양한다고 말했겠지. 임야 몇 평, 지적 사항은 어떻고 소유주는 어떻고 뭐 그런 소리들이 이어져 나올 줄 알고는 목소리를 깔고 아주 교양 있는 태도로 물었지. “시가로 얼마나 되는데요?” 그렇게 말한 나는 초긴장 상태로 공무원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단다. “글쎄요. 이런 경우는 얼마나 될까. 1999년 8월에 뇌출혈이 왔고, 그 즉시 우측 마비와 언어 장애가 시작, 2002년 뇌경색으로 양측 마비가 오셨거든요. 도대체 얼마나 나갈려나?” 요즘 공무원들은 정말이지 유머도 풍부하지. 나는 무슨 근거로 그 인간이 유산을 남겼을 거라는 생각을 한 걸까. 이럴 때 보면 나도 이젠 정말 맛이 간 것 같다.

해가 질 무렵에 비가 흩뿌렸어. 하늘은 다른 때보다 푸르렀고 공기는 차고 대기는 투명해졌어. 어쩌다 황사가 없는 겨울 하늘을 보게 되었을 때의 즐거움을 너는 모를 거야. 이젠 겨울에도 황사가 온다, 난 정말 황사는 싫은데. 몸속에 먼지가 켜켜이 쌓일 것 같잖아. 내 몸이 먼지에 갇히는 기분, 정말 좋지 않지. 늘어진 검은 자루 같은 내 몸이 병실 창 안에 갇힌 채 안타깝다는 얼굴로 병실에 있는 나를 넘겨다보고 서 있단다. 나는 이제 늙은 것 같아. 가만히 서 있으면 귓속에서 그런 소리들이 왕왕 들려왔어. 그래 나는 맹렬하게 늙어 가고 있는 중이지. 얼굴 한가운데를 차지한 이마의 굵고 깊은 주름 세 개를 보는 것도 이젠 낯설지 않아. 압도적인 젊은 층의 지지로 당선됐던 전직 대통령의 얼굴 주름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나는 내 운명을 대통령과 같은 수준으로 포장하곤 했단다. 얼굴 윤곽을 전체적으로 망가뜨리는 흰머리칼 때문에 순간순간 뿌옇고 바보 같은 얼굴로 변하기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이젠 익숙해졌어. 기침만 조금 세게 해도 오줌이 나오지만 다들 그런다니 어쩔 수 없잖아. 나는 수분이 모두 빠져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차근차근, 속속들이 늙어 가고 있는 것 같아. 기회가 되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도 한번 가 보고 싶었어. 그런 것 말고도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그림도 그려 보고 싶었고 다리를 한껏 벌린 채 연주하는 첼로도 배워 보고 싶었어, 프랑스나 이태리 같은 멋진 나라에도 가 보고 싶었어. 무엇보다 자동차를 운전해 보는 게 꿈이었는데.

너에 관한 얘기는 어린 내가 미군들한테 초콜릿을 받아먹으려고 새까만 손을 흔들며 트럭을 따라 뛰던 때부터 시작돼야 하는 건지도 몰라. 트럭은 너무 빨리 달리고 고무신은 자꾸 벗겨지던 그 여름날의 초콜릿 맛은 정말 끝내 줬어. 미군들은 무서웠지만 초콜릿은 먹어도 먹어도 늘 부족했어. 망친 내 인생은 그때 먹었던 그 달콤한 초콜릿 맛과 함께 시작됐어. 최초엔 달콤했지. 그게 아니라면 위로 아이들 다섯을 낳고 갓난쟁이인 나를 낳은 너의 외할머니가 눈동자가 뒤집히며 죽던 광복 후의 또 다른 어느 여름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지도 모른다. 벼를 키우고 밭을 갈고 소를 기르고 아이들을 낳는 일로 일생을 보낸 너의 외할머니, 박기춘, 박춘기, 난 그 이름도 정확히 모르고 자랐어. 학교도 못 다니고 평생 일만 했던 우리 엄마는 머리에 기름을 발라 쪽을 찐 아주 깔끔한 여자였다고 해. 그 시골에서도 늘 깔끔하고 단정하게 옷을 입는 키가 아주 큰 편에 속하는 여자였대. 우리 아버지는 엄마가 죽은 후에도 재혼하지 않았어. 정말 신기한 일이었지. 아버지는 벽장 상자 안에 엄마가 쓰던 머리빗이며 동정은 뜯어져 나가고 없는 한복 한 벌을 넣어 두고 가끔 꺼내 보곤 했었어. 그런데 사실 그것도 모르는 일이야. 누가 아니? 아버지에게 귀여운 애인이 있었을지 모르잖아. 난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친척들이 얘기해 준 것도 일부에 지나지 않으니까. 사람들은 자신에게 일어난 시시콜콜한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두지 않아. 필요하면 모두 다 기억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서 말이야.  

아주 추운 겨울이었다. 얼마나 추웠으면 방바닥 위에 둔 그릇 속의 물 표면이 살짝 얼 정도였어. 나는 양말을 두 켤레씩 신고 살았단다. 너를 낳고 삼일 만에 부엌으로 나갔던 날이 기억나. 연탄 냄새 때문에 핑핑 도는 머리를 잡고 미역국을 끓였어. 그 인간은 첫아이를 낳았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매일 술을 마셨어. 나중엔 그걸 핑계로 술을 먹고 있는 것뿐이라는 걸 알게 됐지. 일도 안하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근 십오일 동안 술만 마셔댔어. 너의 이름조차도 동네 아저씨들과 같이 술을 마시다가 떠오른 글자들로 만들어 가지고 들어왔단다. 물론 내가 일언지하에 거절했어. 너를 낳던 순간의 고통은 알록달록한 색깔을 빌어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동네에서 산파가 달려오고 산파가 이불 요 위에 나를 눕히고 내 배를 덮어 주기 위해 알록달록한 카시미론 담요를 쫙 펴들었어. 그 널찍한 담요를 본 순간부터 나는 마술처럼 착한 엄마로 변했단다. 나라는 사람은 착하다고 말하기에는 힘든 구석이 많은 사람이었어. 솔직하기는 했지만 결코 착하지는 않았어. 진통이 거듭되면서 엉덩이 한가운데 딱딱한 것이 걸려 절대로 빠져나오질 않는 거야. 그 딱딱한 덩어리가 바로 너였다. 소리를 지르고 똥을 눌 때처럼 힘을 주고 눈을 부릅떠도 몸 한가운데 걸려 절대로 빠져나오지 않았어. 발바닥이 닳도록 발버둥을 치고 숨을 고르고 쌍욕을 해대고 정말이지 머리 꼭대기에서 별이 뱅글뱅글 돌았어. 기운이 다 빠질 만큼 몸서리를 치고 나서야 꽤나 커다란 덩어리를 낳아 놓았지. 내 생애에 가장 순하고 착했던 감정을 유지한 순간이 있었다면 너를 낳고 난 직후 갓난쟁이인 네 옆에 누워 있던 그 순간이었어. 그런 여자들 모습을 보고 천사를 닮았다고, 기본적으로 여자들은 다 위대한 모성을 타고난 것처럼 추켜세우는 건 사실 좀 웃기는 일이야. 그런 순간에는 기운을 너무 뺀 나머지 누구나 착해지지 않을 수가 없거든. 남편과 아빠가 없는 한밤중에 너와 나는 찬바람이 부는 방 한구석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단다. 너의 꼼틀거리는 손가락질, 발가락 움직임 하나마저도 너무나 심오한 우주의 신호 같아서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지. 그러니까 사실은 다른 이야기들로는 우리 가족의 출발을 설명할 수 없어. 내 얘기를 들어줄 너, 내 대화 상대인 너가 세상에 태어난 날부터 시작됐다고 말하는 게 좋겠어. 그 모든 평화는 술에 취한 그 인간이 문고리를 확 잡아당겨 여는 순간에 끝나곤 했지. 그 인간은 발 냄새가 나는 양말을 벗어 던지고 젖을 빨고 있는 네 얼굴 옆에 술 취한 얼굴을 대고 남아 있는 내 한쪽 젖을 빨았단다. 넌 아마 아직 눈의 초점도 맞지 않아 네 아빠의 얼굴이 잘 보이지도 않았을 거야. 본다고 해봐야 술집 여자들의 값싼 립스틱이 얼룩덜룩 묻은 지저분한 얼굴이었지.  

시간이 좀 지나고 나면 좁고 추운 방 안에 그 인간의 코 고는 소리가 진동을 했어. 반은 곰 같기도 하고 반은 돼지 같기도 한 그 인간의 머리를 내가 꽈당 밀쳐냈어. 그리고 나는 막 잠든 너의 작은 몸에 코를 대고 네가 숨을 쉬는지, 안 쉬는지 바짝 긴장해서는 집중하며 들으려고 애썼지. “죽지 마, 죽지 마.” 난 너가 또 죽을까 봐, 너로부터 꼭 일 년 전에 내 옆에 너처럼 고요히 누워 있다 어느 날 마른 북어처럼 죽어 버린 아이처럼 너도 죽어 버릴까 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나는 아이가 그 인간이 술을 마시고 들어와서 내뿜는 오염된 숨소리 때문에 죽었다고 믿고 있었거든. 그렇지 않고서야 말랑말랑 고무 인형 같던 아기의 돌연사를 어떻게 설명해. 나쁜 공기 때문이 아니었다면 그럴 이유가 없거든. 그 아이를 묻은 산기슭에 가 봤다. 겨우겨우 그 자리를 찾았는데 글쎄, 흙에 찌든 아기 배내옷이 남아 있는 거야. 혹시 살아나서 산을 걸어 내려간 건 아닐까. 누군가 데려간 건 아닐까. 딴 동네에서 잘 크고 있는 걸 아닐까. 한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거야. 그 인간이 코를 심하게 골면 골수록 너의 숨소리는 들리지 않았어. 나는 타이밍을 잘 맞춰서 너의 숨소리를 들어야 했단다. 어느새 그 인간의 코 고는 소리가 잦아들고 멀리서 새벽 기차 소리가 들려올 무렵이 되어서야 너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들렸어. 그때가 되면 나도 안심하고 잠들 수 있었어. 숨소리, 숨소리, 살아 있다는 싸인, 나한텐 그게 제일 중요했어. 북쪽 소도시의 반듯반듯한 논가의 대로변에 지어진 작은 슬레이트 집, 멀리서 폭풍우가 몰려올 때면 구름 한켠에 섞여 함께 날아가 버리고 말 것 같던 그 집, 깊은 연탄아궁이가 달린 그 서쪽 집 맨 끝 방, 원피스에 분홍 리본을 맨 공주들이 수없이 그려진 벽, 그 집 지붕 위로 던져 올린 너의 작고 흰 이빨들, 너무나 작고 귀엽던 그 이빨들은 벌써 공기 중에 흩어져 버렸겠지. 난 내가 낳은 아이들이 죽는 걸 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더 이상 아무도 낳지 못했어.

 

*

   

구급차 한 대가 병원 입구에 도착했다. 나는 괜히 병실 복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어쩔 줄 모른다. 예의상 고개를 내밀고 내려다봤지. 구급대원들이 차 뒷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침대를 들어내 차 오른쪽의 이동 침대로 환자를 옮기고 있었어. 침대 위에 묶인 물건이 어렴풋이 보이는 순간이었지만 나는 순간 질끈 눈을 감아 버렸어. 그러나 이내 현실로 돌아왔지. 그 인간은 벌써 도착하고 말았는걸! 바로 저 인간이군! 나도 모르게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고 침을 뱉었어. 그 침이 침대 위에 제대로 떨어졌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이건 그 숱한 밭고랑 폭력에 대한 처절한 복수의 시작에 불과하다고 나는 중얼거렸어. 머릿속이 또 뜨거워지기 시작했지. 저 인간을 믹서에 넣고 갈아 마실 생각이었어. 그게 아니라면 돈을 받고 시체 구입 업자에게 넘겨 버리거나. 뼈와 살이 낱낱이 해체 당하도록 만들 작정이었어. 그것도 아니면 눈을 뜨고 있는 동안은 계속해서 잘못했다고 빌게 만들 작정이었거든. 어쨌든 난 근사한 복수를 생각하고 있었어. 머릿속이 자꾸 뜨거워지면서 마음이 들썩이는 걸 감출 수 없었단다. 간이 의자에 앉아 병실 문과 바닥 사이에 난 문틈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겁이 좀 났지. 잠시 후 문틈으로 그림자가 어른거렸어. 드디어 ‘여우가 나타났다’고 나는 중얼거렸어. 그리고 드르륵, 병실 문이 밀렸단다. 벌렁벌렁하던 심장이 이내 터질 것 같았어. 꽃다발이라도 준비해 둘 걸 그랬나, 아주 오랜만에 만나는데, 아주 잠깐 동안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어. 병원 직원 두 명이 이내 침대를 밀고 들어왔고 간호사들이 잰 걸음으로 따라 들어왔어. 환자는 비닐 침낭 속에 죽은 듯이 누워 있었어. 속이 들끓는 나에 비해 그 인간은 아무 생각이 없어 보였어. 도무지 온도가 맞지 않는 거지.   

환자 밑에 홑이불을 먼저 깔았어. 그리고 세 사람의 남자들이 홑이불 끝을 말아 쥐었어. 서로 호흡을 맞춰 하나, 하나, 하나 둘 구령을 외쳤어. 환자는 침대 위로 옮겨졌고 한 남자가 비닐장갑을 끼고 비닐 침낭의 지퍼를 조심스럽고도 정확하게 열어젖혔어. 감춰졌던 한 세계가 열리듯 드디어 그 인간의 상반신이 드러났단다. 그러나 환자는 시건방지게 여전히 미동도 안했어. 흰색 가운 양쪽 주머니에 볼펜이며 문구류를 잔뜩 집어넣고 다니는 간호사가 환자에게 다가가 볼따구니를 꼬집으며 말을 시켰어. “할아버지, 눈 좀 떠 보세요. 눈 좀 떠 보라니까요. 자꾸 눈 감고 계시면 진짜 영 못 깨어난다니까요. 말들 지겹게 안 들어 진짜. 눈 떠요 빨리!” 환자가 예의상 손이라도 조금 치켜들고 흔들기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미동도 안했어. 그때 간호사가 날 쳐다보며 물었단다. “할아버지 원래 저렇게 고집이 센가요?” “뭐, 그냥! 그냥 뭐.” “할아버지를 살리고 싶으시면, 죽었다 생각 마시고 자꾸 뭐든 얘기를 거세요. 기적적으로 깨어난 환자들이 나중에 깨어나서 다 그래요, ‘니가 지껄이는 소리를 다 듣고 있었다’고.” “그래요? 그러지 뭐. 그런데 저 사람이 내가 아는 그 사람이 맞나요?” 내 말을 이해할 리가 없는 간호사가 피식 웃었어. 그건 그렇고, 늙으면 말을 할 때 정확한 단어 선택을 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져. 정작 할 말이란 혀끝에서만 맴돌고 머리는 저만치 뒤에서 소리를 치며 따라오는 꼴이란다. 왜 이렇게 귀가 아픈 걸까. 난 갑자기 혼란스러워졌어. 또 귀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어. 중환자실로 옮기기 직전의 일종의 특수 병실이라고 해야 하나. 수많은 줄이 매달린 기계 장비들이 그 인간의 머리 위에 주렁주렁 매달리기 시작했단다. 환자는 완벽하게 죽은 것 같았어. 내가 알던 그 인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어. 그 인간과 헤어진 것이 1978년이었단다. 그 다음 해인가 컬러텔레비전을 봤지. 1964년에 그를 만났고 함께 보낸 시간은 겨우 14년뿐이었다. 포옹을 하거나 키스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환자를 향해 감히 다가갈 수도 없었어. 엄숙해 보이기도 했지만 아무런 감정 없는 단백질 덩어리에 더 가까웠어. 환자와 그 인간의 거리가 전혀 좁혀지지 않아 좀 당황했지만 특유의 그 싸늘한 느낌만은 익숙했어. 간호사는 피부가 아주 두툼해 보이는 그 인간의 손등에 주사바늘을 찔러 넣었어. 정맥에 제대로 꽂힌 주사바늘을 빼내고 얇은 튜브로 수액이 들어가도록 조치했지. 그는 제 입으로는 밥도 약도 떠먹을 수 없는 죽어 가는 인간에 불과했어. 나는 슬슬 두려워졌어. 이게 뭐 하는 짓인지. 이봐요, 도대체 얼마나 오래 누워 계실 작정인가? 누구나 이런 상황에선 이 같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지 않겠니. 또 다른 의사가 급히 들어왔어. 의사와 간호사가 비닐장갑을 끼고 도뇨관을 바꿔 끼워 넣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어. 요도로 들어가는 튜브를 소독했어. 옆에서 보기에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환자는 미동도 안했어. 의식이 전혀 없었거든. 어쨌든 지금은 새 걸로 바꿔 끼운 저 소변 비닐에 오줌이 차오를 것이고 그걸 비우는 것도 바로 내가 할 일이라는 거 아니겠니, 맙소사! 간호사들이 나가고 병실 안은 일제히 조용해졌단다. 나답지 않게 얌전히 발뒤꿈치를 올리고 침대 머리맡으로 다가갔지. 얼굴을 내려다봤어. 다행히 숨이 붙어 있긴 했단다. 입술 주변이 약간씩 실룩거리며 흔들리는 게 보였어. 순간 장난기가 발동했단다. 손가락으로 오른쪽 아래턱을 끌어내렸어. 찍, 검은 물 한 줄기가 입가로 흘러내렸어. 그냥 손을 떼기는 억울해서 이번엔 왼쪽 아래턱을 끌어내렸다. 아까보다 더 많은 양의 검은 물이 입가로 흘러내렸어. 아래위로 입을 벌리면 검고 동그란 벌레가 제 몸을 똑똑 잘라 먹으며 기어 나올 것 같았다. 말할 수 없이 역겹고 지저분한 채로, 아무리 죽어 가는 인간이라지만 결코 누구한테도 다시는 사랑 받기 어려운 몰골로 그 인간은 누워 있단다. 바로 내 눈앞에 말이다.

쳐다보고 있으면 쳐다볼수록 화가 났어. 그 인간은 도무지 알아보기 힘들 만큼 변해 버렸단다. 갑자기 불어오는 강풍을 맞은 것 같았어. 진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내 눈 속의 풍경이 삼백육십 도 변했다. 먼저 바위투성이의 건조한 사막이 보였어. 그리고 금세 병실 안으로 사막에서 부는 모래 바람이 날아들었단다. 한 번도 가 보지 못했지만 이집트나 어디 저기 아랍에 있다는 부서지다 만 성전의 이미지가 떠올랐어. 허물어진 건물 벽, 반쯤은 지워진 벽화처럼 그 인간은 몹시도 황폐해 보였다. 윤기라고는 없는 황색 설탕 색깔 같은 피부 위에 보라색 검버섯이 양배추꽃 모양으로 박혀 있었다. 손에 잡히지도 않을 만큼 남은 머리카락은 정수리는 휑한 채 머리통 아래로만 삐져나와 있단다. 마치 작은 싱크대 커튼처럼 말이야. 싱크대 커튼이라니 정말 우습지 않니? 난 혼자 킬킬거리고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단다. 다행히 숨이 붙어 있긴 했지만 어쩌면 복수할 기회조차 오지 않을 거라는 아주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이 인간은 이제 더 이상 나를 패지도 못하고, 뽀뽀는커녕 눈도 맞추지 못하는 주제가 되어 버렸단다. 그리고 그런 주제에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나한테 돌아왔단다. 도대체 세상 일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니? 넌 그럼 언제 돌아와 이 인간의 면상을 보고 인사를 나눌 수 있을까.  

내가 누굴 원망하겠니? 물론 원망하자면 저 인간과 연애를 했던 수많은 여자들을 원망해야겠지만 쳐다보면 쳐다볼수록 원망의 대상이 자꾸 달라졌다. 자꾸만 불특정한 것들을 원망하게 됐어. 젊은 아이들 말대로 너무 후진 세상에 태어난 우리들 잘못이라는 생각도 했지. 그랬다간 또다시 세상은커녕, 결과에 대한 생각 없이 아랫도리를 함부로 놀린 그 인간 본인, 오로지 그 인간 본인의 잘못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았지. 난 전화를 걸었어. “지금 거신 전화는 잘못 거신 전화입니다. 번호를 다시 확인하시고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구청 노인복지회관 전화번호 하나도 올바르게 적어 놓지 못한 내 눈과 귀가 한심했다. 한 시간 전, 간호사들이 비닐 침낭의 지퍼를 내리고 그 인간을 꺼내 놓던 순간, 그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 인간을 다시 꽁꽁 싸서 택배로 부쳐 버리고 싶었다. 내가 뭔가에 홀린 게 아니라면 오래전에 쫑난 남편의 화장터 뒷심부름을 자청해서 맡다니, 이게 말이 되는 얘기니? 내 신년 운수로 보면 나는 내년에 결혼할 운수였어. 내 인생의 마지막 결혼일 텐데 말이다. 나는 저 인간과 헤어진 뒤로 아직까지 한 번도 결혼에 대한 기대를 버린 적이 없었어. 끈질기게 결혼을 원했지. 그런데 이게 무슨 냄새일까. 냄새가 나기 시작했단다. 그 인간의 왼쪽 머리맡에 붙어 있는 여러 개의 줄과 깜빡거리고 있는 기계 장치를 중심으로 침대 주변을 여러 차례 뱅글뱅글 돌았지. 어디서 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분명 익숙한 냄새였어. 할 수 없이 이 잘난 내가 그 인간의 푸른색 이불을 한 손으로 잡고 걷어치웠단다. 어찌나 떨리던지, 몇 겹의 이불 속에 감춰진 그 인간의 하체는 아우슈비츠가 따로 없었어. 피부는 수분이라고는 없이 갈색 미세 주름이 찰싹 달라붙은 채로 고착되어 있었어. 기저귀를 차고 있기는 했지만 관으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아우슈비츠의 엉덩이에서 똥 냄새가 날 리는 없었어. 제 입으로 음식을 못 먹은 지 꽤 오래라고 들었거든. 예감이 좋지 않아 화장실로 들어갔어. 왜 모든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일어나는 건지. 범인은 그 인간이 아니라 바로 나였단다. 왜 그랬는지 속옷을 버리고 말았네. 이런 종류의 절망감은 당해 본 사람만이 알아. 시도 때도 없이, 장소 상황 구분 못하고 쏟아지는 배설물 처리의 문제는 직접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이 얘기하는 건 무의미해. 샤워를 하고 양치질을 하고 로션을 발랐어. 그런데도 똥 냄새가 코끝에서 떠나질 않는 거야. 또 손을 씻고 로션을 바르고 또 씻고 또 바르고. 병원 생활 첫날인데 벌써 몇 달은 된 것처럼 느껴졌어. 스트레스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밖에는 위로할 말이 없었다. 똥오줌 못 가리는 게 재앙이지 뭐가 재앙이니. 그래도 난 아직 포기할 수 없단다. 복수도, 재혼도, 운전면허도 그 어떤 것도 말이다. 특히 재혼은…….  

혼자서 끊임없이 생각한단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저 인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병실은 조용해. 가습기 소리, 옆방의 벽이 울리는 소리, 위쪽 소아병동에서 들리는 아기 울음소리, 간호사들의 통굽 샌들 소리, 휴게실 쪽에서 들려오는 텔레비전 소리. 팬히터가 도는 소리까지도 모두 다 들리지. 모든 소리들이 별천지에서 들려오는 소리처럼 부조화스럽게 웅웅거려, 도무지 현실감이라고는 없이 말이다. 난 혼자서 카드를 꺼내 놓고 저 인간 한 장, 나 한 장 돌리고 있단다. 그러다 깜빡 졸다 깨어나면 카드 낱장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어. 한때 정말 마음에 드는 어떤 남자한테 팔려 있었던 때가 있었어. 저 인간과 이혼한 후였고 정말 마음에 드는 남자 딱 한 명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때였어. 좋은 남자를 만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는 절대 모를 거야. 그 남자의 아내가 직장으로 찾아와 머리채를 잡았어. 난 또 불을 봤던 거야. 절대로 그 남자와 헤어질 수가 없었어. 정말로 심장이 아프고 온몸이 아팠어. 낮에는 머리채를 잡히고 밤에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남자와 통닭을 먹고 김밥을 사먹고 여관방을 전전했어. 화를 가라앉게 만들려면 어느 정도 당해 주는 것도 필요했어. 차도 자주 마시고 나중엔 그 여자랑 친해지기까지 했어. 그러는 한편으로 남자를 열심히 만났지. 잘만 꼬시면 남자가 내 편으로 홀딱 넘어올 것 같더라니까. 그런데 그들은 그런 일을 겪으면서 부부 사이가 더 단단해져 갔어. 나는 남자를 만나 따졌지. “당신들 부부 사기단이지. 내가 당신들을 보란 듯이 경찰에 처넣겠어.”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남자의 행방은 내 손에 닿지 않았어. 여자도 마찬가지였지. 헤어진 그때 그 순간부터 세상의 모든 소음들이 다 귀로 들어오기 시작했어. 아주 작은 소리까지도. 귀를 잘라 버리고 싶었어.

불쑥 담당 의사가 들어왔단다. 자기 볼일 보러 가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뭘 사러 마트에 들른 사람처럼 차트도 없이 나이 어린 의사들도 데리고 오지 않고 혼자 왔단다. 좀 있다가 간호사가 따라 들어와서 분홍색 파일을 침대 위에 올려놓으며 나에게 찬찬히 읽어 두라고 했어. 의사는 정말이지 상식적인 말밖에는 못하네. ‘상태를 지켜보자, 지금으로서는 할 말이 없다, 보호자가 신경을 많이 써야 한다’는 그렇고 그런 따위의 싱거운 조언들……. 조금이라도 상태가 나빠지면 중환자실로 바로 옮겨야 한다나. 간호사가 수액을 바꿔 주고 나갔어. 병원 복도는 센서 등만 혼자서 깜박거리고 쥐 죽은 듯 고요해. 병실 문안을 왔다가 조용히 빠져나가는 수녀님들, 복도에 모여 서서 작은 목소리로 웅성거리는 환자 가족들, 저 복도 구석에 서서 창밖을 내다보며 울고 있는 여형제들. 발걸음이 나도 몰래 휴게소 옆의 기도방으로 향했어. 세 명쯤이 저 앞에 차려진 제단을 향해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어. 지나치게 조용한 방이었어. 오죽하면 내 앞에 앉은 간병인 여자는 고개를 박고 자고 있단다. 나도 뭔가 기도를 하긴 했어. 아무래도 오늘의 기도 주제는 돌아온 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겠지. 그런데 내 기도의 제목은 금세 바뀌고 말았단다. ‘배설물을 제대로 가리게 해주십시오. 이런 인생은 절대로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직 제 인생은 그렇게 될 수 없습니다.’ 나는 간절하게 기도했어. 그때였단다. “C병동 408호, 환자 보호자 분 빨리 병실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나를 부르는 소리인 줄 몰랐어. 참 이상한 이름도 있군, 하며 계속해서 기도를 했지. 그러다 문득 일어나 슬리퍼가 벗겨질 만큼 급하게 달려갔단다. 병실 앞에 가운을 입은 의사들이 잔뜩 모여 서 있었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뭔가 일이 일어난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았다. 나는 그 의사들의 맨 뒷전에 물러서서 의사들이 조용한 가운데 나누는 짧고 알 수 없는 말들만 듣고 있었어. 들어봐야 금세 빠져나가고야 마는 말들. 그 인간은 중환자실로 옮겨졌단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의료진들이 떼로 나타나 십수 명이 그 인간의 침대에 달라붙어 옮기는 일을 도왔단다. “아주머니,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지금 환자가 숨을 제대로 못 쉬네. 전에도 기관 절개를 한 적이 있는데 다시 목 부위를 깊게 뚫어 플라스틱 관을 넣어야 됩니다. 우리가 다 잘할 테니까 걱정 말고 기다리소.” 머리가 이쪽저쪽으로 마구 눌린 의사는 편안한 반말로 나를 안심시키며 어깨까지 다독거려 줬단다. 쥐 죽은 듯이 평화스러운 얼굴로 누워 있던 그 인간은 얼굴이 검게 변한 채 편안한 호흡이 어려운 듯 가슴 부분을 위로 올린 채 얼굴을 외로 꼬고 헉헉거렸다. 하고 있는 꼴이라니, 정말 눈 뜨고 봐줄 수가 없었어. 어디서 뭘 하며 굴러먹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참 궁금했단다. 장시간 이동에 피곤해져서 잠깐 잠이 들었던 걸까. 상태를 이해할 수 없었어. 그래도 박수를 치고 싶었지. 아직 죽지는 않았잖아. 살아 있는 거잖아. 나는 갑자기 할 얘기들을 조목조목 메모해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어. 그 인간의 호흡이 가빠지는 만큼 내 호흡도 가빠지고 있었으니까. 중환자실 면회 시간이었어. 침상별로 구석구석, 삼삼오오 모여 서서 침통한 표정으로 환자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어. 아무도 입을 열어 말하거나 울거나 웃지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환자를 내려다보기만 했단다. 의사들이 달라붙어 있는 침대에서 저만치 뒤로 물러서서 의사들 등 뒤로 환자복을 거의 벗은 그 인간의 몸뚱이를 봤어. 예전 몸뚱이의 채 반의 반도 안 돼 보였어. 가끔씩 다리를 버둥거리기도 하고 아주 약하게 손가락으로 침대 위를 튕기기도 했어. 엄청난 거구에 일 년 내 양말도 신지 않고 고무 슬리퍼만 신고 다니던 사람이었는데 너무 작아져서 도무지 옛 추억이 떠오르질 않았어. 갑자기 옛날에 만났던 어떤 남자 생각이 났다. 몸이 아주 컸지. 정말 내가 그 남자를 만났던 건 순전히 저 인간 때문이었어. 두 번째 만났을 때 그 남자가 길을 가다가 술이 취한 채 나를 안았는데 무슨 성벽을 끌어안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 만리장성이 나를 감싸 주면 세상이 두려울 게 없을 것 같았거든. 전방의 시야를 다 가리는 대단한 덩치였어. 울타리가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지. 거의 매일 만났어. 그런데 만나면 만날수록 말이 많아지고 덩치에 비해 소심하기 짝이 없었어. 나중엔 거의 지지배들처럼 쫑알거렸어. 헤어지자고 말하려고 만났을 때 벽 잡고 징징 우는 모습을 봤는데 정말 안타까웠단다. 왜 나는 늘 만나는 남자마다 저 인간과 비교했을까, 여러 남자를 만났지만 머릿속에 낱낱이 입력된 건 저 인간뿐이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왜 매번 비슷한 선택을 하는 걸까. 뚱뚱하고 성질 나쁘고 돈도 없는 인간들 말야. 내 인생은 도대체 누가 짜 준 걸까. 그 인간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내가 묻어 버렸단다.  

의사들이 줄 지어 서서 병실을 나갔다. 중환자실은 죽음을 기다리는 널찍한 홀이다. 벽에 작은 침대를 붙이고 누운 환자들은 죽어 가는 벌레처럼 그냥 침대에 붙어 있다. 나는 그 인간을 내려다보고 서 있단다. 말라빠진 팔 끝에 달린 손을 만져 봤다. 손톱 끝이 마모돼서 손톱이 아주 작아 보였단다. 미동도 안 했단다. 그나마 살아 있는 게 있다면 그 옛날의 얼굴 골격. 살덩어리의 유무와 관계없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골격 말이다. 머리 위에 매달린 복잡한 의료 기구들만큼이나 그 인간의 인생은 복잡해 보였다. 그래봐야 여자들 몇 명 더 때렸겠지. 무슨 세상을 바꾸는 일에 밑돌 한 장 얹었겠니. 아주 옛날 일이란다. 하도 동네 사람들을 때리고 다녀서 내가 딱 한 번 충고를 한 적이 있었어. “그 힘을 좀 좋은 일에 쓰면 좋지 않아? 불쌍한 사람을 도와준다거나 뭐 그런 일 말야. 힘없이 당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 좀 도와주면 어때서.”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넌 짐작할 수 있을 거야. 우린 가족이었으니까. 눈앞의 밥상이 마당으로 날아가고 내가 아까운 밥상을 쳐다보고 있는 사이 내 머리 위로 둔중한 무엇인가가 쾅, 하고 떨어져 내렸단다. 얇은 이불 아래로 삐져나온 발이 보인다. 발톱은 새까맣게 변한 채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의 널찍한 허공들을 매달고 있었어. 제일 비참한 건 목이었다. 기관 절개한 부위가 등을 오싹하게 만들었단다. 검은 구멍이 보였어. 생명의 외부와 내부를 이어 주는 검은 구멍 속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기다란 막대기나 손가락을 넣어 후비적거리고 싶었어. 그 부위 하나만으로도 자이언트의 상태는 짐작이 갔어. 눈을 돌려 다른 침대를 봤다. 다른 침대의 사람들도 죽어 가고 있었어. 그 인간도 죽어 가고 있었지. 나도 죽어 가고 있었지. 그러나 나는 이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 뭐든지. 저 인간을 죽일 수도 있지 않겠니. 혹시 너, 나중에 나타나 왜 혼자 죽였냐고 따지진 않겠지? 손바닥으로 저 인간의 손바닥을 맞잡는다. 미동도 없다. 한참을 맞잡은 채로 망가진 단백질 덩어리를 내려다보고 서 있다. 나도 곧 저 인간처럼 되겠지, 그러나 아직은 그런 얘기를 하기엔 이르지. 어쩌지 난 이제부터 시작인데, 이 인간을 야금야금 갉아먹을 시간이 왔단다. 자 내가 주는 카드를 받지 그러니 이 자이언트 새끼야, 니 목숨은 내 손에 있단다. 그리고 나는 너도 내 옆에 와 앉아 있다고 생각한다. 자 아들아, 너도 마마가 주는 카드를 한 장 받아라. 그리고 둘 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잘 들어. (연재 끝)  《문장웹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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