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惡記) 11 ~ 16


악기(惡記) 3회

 

조연호

 

 

 

 

   11

 

      정화(淨化) 상자 속의 문제들은 이해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해되는 것이 해결을 위해 전달되는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거세되어 위로 올라가는 밤의 밀도이기도 했다. 주머니의 깊이는 손아귀가 노래를 갖출 때 가만히 그쳤다. 그렇게 한 주머니에 두 개의 손을 넣고 다닌 사람이 있었다.

 

      언어는 무의지체인 음악이 의지에 의해 음악 외부로 나아가려는 방향이다. 한 사람이 타인을 사랑한다는 것은 신을 향한 인격적 퇴행과 인간을 향한 초월적 고매 너머, 감싸 안던 사람이 또한 버려지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닫는 행위다. 포도주를 마시고 서로 뒤섞여 춤추는 염소 하체 분장의 봄 축제에, 땅을 구르며 대지의 여신이 깨어나기를 기다리는 때에, 술을 깬 광대 무리는 자기의 하체에 달린 거대 남근을 수치스러워하며 ‘발굽이 달린 것은 신의 수확기를 걷지 못한다’는, 자조 어린 두 손가락의 디튀람보스 송가를 부르겠지. 염소 발굽이 두드려 깨웠던 흙 한줌의 문드러진 사람이 내게도 있었다.

 

 

   12

 

      고유명사로서의 밤은 ‘모든 것에의 귀속’을 의미하는 하나의 부단한 명사에서 출발한다. 바깥을 타나토스로, 안쪽을 에로스로 처벌하려던 냉혹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일인칭 이전의 사람, 그는 본능 이후의 동물, 그는 자기를 처벌할 수 있는 최초의 덕을 가진 자, 이곳의 그가 타인에 이르고자 하는 이유 때문에 모든 곳에서 죽는다. 그가 비유하여 말하길 ‘첫 번째 시간이 마지막 순간으로 바뀌는 실타래’라 부른 것은 모든 선조들이 보여준 개척정신의 무모, 무도함이었다. 죽은 씨앗을 가르면 밤의 시계(視界)가 쏟아지고, 총체(總體)에 이르는 자신의 조각에 기뻐하는 또 다른 파편으로 뼈는 자랄 것이다. 나를 속이고 있는 달을 위로하는 한 그는 달의 공포다.

 

      짐승의 어두운 냉소 속으로 마술의 발은 어둡게 소화되어 가는데, 생각을 갖기 위해 개는 정강이를 무는데, ‘나는 나에 대한 의견이며, 의견인 한 실현이다!’라고 외쳤던 열등한 것이 성인의 피와 아동의 육(肉) 사이에 자라는데, 이 자의 희망은 등에 지고 온 어떤 저녁을 우리에게 풀어 놓으며 죽은 자에게 물건을 팔도록 신에게 명령받은 박물장수의 흉내를 인간의 자정까지 지속할 것인가? 열등한 채로 완성된 개는 가로등을 향해 잎처럼 자라는데, 완성된 채 열등한 빛은 낙원에서 쫓겨나 우리에게로 와서 질겨지는데, 주름을 담그면 그 보상으로 젊은 얼굴을 비춰 주는 수면에서 노파인 그 처녀는 짙게 가라앉은 앙금의 장미를 어떻게 어루만질 것인가?

 

      그러기 위해 우리가 점점 사라지는 피노키오의 코들이 있었다. 장미의 가시가 영원히 가닿고자 한 세계의 소박함은 신 전체가 인간에게 가진 분노의 전체 세계보다 크며, 신의 심장을 가둔 소실점에서 피가 흐르면 오, 사랑이여, 나는 나 외의 어떤 것으로부터도 찔려져 있었다. 이것이 긍휼의 말처럼 들린다면 초점은 아직 강도(强度)에 실패하지 않은 것이다. 얼굴 한복판엔 거짓말에 자라던 성기가 있었다. 오, 사랑이여, 나는 이제 소년 상(像)을 한 목각인형의 정시(定時)를 적는다; 신은 무가치에서 짜낸 사건의 유청(乳淸)이다. 나는 싹에 쓰인 위전(僞典)이다. 사람은 밤의 음소와 구분되기 위한 발성기관이다.

 

   13

 

      사랑의 모습을 하고 온 세계는 정죄의 세계로 이해될 수 있으며 행복들 간의 차이는 그것의 불행한 쓰임에 있다. 이 세계의 자복(自福)은 만과(晩課) 음악처럼 하나의 한 배가 되는 수, 열의 열 배가 되는 수, 백의 백 배가 되는 수… 그런 무한 속에 오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허물이 무한히 자유로워지는 것을 막고자 고안된 가장 단순한 형구(刑具)라는 것을 우리가 이르러야 할 죽음이 그 세련된 기교를 부모로부터만 상속받는다는 사실로 일깨워 준다. 점괘는 그것을 ‘세응(世應)’이라 불렀다. 그러자 사랑은 넓고 깊게 몸에 기억을 파묻는 새로운 철학이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심화는 또한 결정(結晶)이 많은 거울을 모든 광물의 스승이게 했다.

 

   14

 

      인간은 신에게서 불을 훔쳐왔지만 그 불은 신의 것처럼 인간의 몸을 덥히는 데 쓰이지 않고 인간의 정신을 밝히는 데 사용되어 왔다, 한낱 솥이나 방을 덥히는 데 사용되는 것처럼 자신의 정신을 데우기 위해. 그것이 인간과 만난 불의 최초의 불행이었다. 대지에게 말을 얻은 인간이 대지에 고하기를 “자궁 속의 햇빛을 지나 난 이제 뱃속으로 나아가리라. 자궁 속 햇빛을 걸을 뿐, 네 안에서 태어나 갇힌 채 다시는 태양 아래 서고 싶지 않다.” 하였다.

 

      하루 분량의 석양이 그것을 마주한 인간에게 주는 마무리의 안락처럼 정신도 물질의 방식으로 구체적 표상에게로 응집하며 휴식한다. 육체/정신의 분기(分岐)에 대한 이러한 만연한 저주가 충분히 옳은 것이며 유기체적 한계 내에서의 조건을 잘 설명하고 있다고 하여도, 현상과 본질이 나뉘지 않는 세계는 반대로 파열과 분열의 어떤 긴장상태도 인정하지 않는 정적(靜寂)의 세계이리라. 과연 시간은 침묵하는 것인가? 해마다 여름날이면 화로를 닦아 두는 이야기를 이야기꾼들은 되풀이한다, 소년 상의 목각인형을 불태울 뛰어난 정화 상자 이야기를. 발자국을 찾아 신발은 벽장으로 돌아가고, 반월(半月)의 계절을 잃는 이야기 속, 빼어난 것과 교묘한 것으로 꿈은 자신의 분노를 가려 나눈다. 신의 생리혈을 탐내는 아이들은 성(性)적 빈민들처럼 보이고, ‘달콤하기 위해선 얼마나 눈이 어두워야 하나?’ 오오 인간들, 그러나 그 애들의 질문에 연옥을 가져다줄 수 있는 자가 여기엔 없다.

 

      모조꽃 위에 얹은 그런 구름을 그린 것에 불과한 나날, 비어 있는 것은 원근법으로는 불가능하고, 내가 가진 옳은 것은 근원적으로 질이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든 죄인이었다. 사랑이 끝나 가자 그것은 첫 번째가 되고, 밤과 헤어질 동안의 손톱이 무연고(無緣故) 묘처럼 자랐다. 밤새 물방울처럼 직물에 매달린 직공(織工)은 다시 정화 상자마다 생기는 흰 물집들, 손 기술로 물건을 만드는 업으로서의 질환들.

 

   15

 

      목소리를 잃고 누워 죽음을 기다리며 그는 자신이 보게 될 삼위일체의 구체적 형상을 장녀에게 구술했다. 그것이 세속의 사랑이라는 것은 영원히 전달되지도 기록되지도 않았다. 악한 자는 자기를 신비롭게 했던 시인의 비극이 종국에 이르러 진짜 염원했던 비정상의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으로 부랑의 빛깔을 기억한다. “너는 나의 과거로부터 왔기 때문에 몽매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자신의 원천을 스스로가 낳았기 때문에 몽매한 것이다.” 그렇기에 저녁이면 나는 내게 꿀벌의 방황을 선물했다. 삼위일체의 부조물 위에 나 보호 노동자는 가장 어지러운 국가를 세웠었다. “노여움은 상처를 반성하지 않는 국가의 적이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상처를 반영하지 않는 국가 최후의 시민이다.”라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손을 그가 내 손에 포개 주었다. 아, 이것은 행복하구나, 사랑에 빠진 사람은 그러나 애도에 더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미성년 가까이, 신의 두문자(頭文字)를 따서 인간의 목을 쳤다.

 

   16

 

      무릎 꿇은 채 신의 긴 발바닥에 머리를 대고 잠든다. 신의 용서는 어린 여우의 혈(穴)만큼 붉었다. 개별은 별개를 주석한다. 표해(漂海)의 그대가 내 입술을 건질 때 물결은 밤과 도탄을 즐기고 개별은 별개를 주석한다. 정신이 영원에 대한 착오를 전제하는 한 우리의 육체가 실체인 것처럼, 검게 되는 한 밤은 죽음이 품위 있는 마무리가 되기를 바라는 가장 밝은 임종이다. 개별은 별개를 주석한다. 찬미할 대상을 고민하는 사람이 내 안에 많아질수록 빛은 우리가 아는 길로만 자신의 고통을 견습한다. 개별은 별개를 주석한다. 무릎 꿇은 내가 발명한 새로운 천사는 두 눈이 소실된 기형이었다. 그것이 거울이었다면 나는 생사(生死)를 잃은 노래가 얼굴을 되비췄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잘 오려진 겨울 언덕은 가는 손목을 흔들며 창문이 깨진 나무에 동조해 주었다. 초라한 소년의 도취는 번제물(燔祭物)에서 나와 다시 새끼주머니가 달린 밤에게 손가락을 보탠다. 이것이 저주이되 무관심한 자가 갖출 수 있었던 영원의 유한성이다.

 

      얼음이 녹자 남쪽 냄새가 바람개비를 몰고 온다. 잠든 그에게 내 바다의 마지막 음정(音程)을 낳고 털었다. 이 물갈퀴의 구실이야말로 또한 인간의 사랑에 가해지는, 정신으로는 도래하지 않을 앞선 시대의 첫 응대였다. 둘로 나눈 것 가운데 없어진 것은 거듭하고 허망은 번성했다. 개별은 별개를 주석한다.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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