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반부의 별빛 아래서


남반부의 별빛 아래서

 

김성중

 

 

 

 

 

      에콰도르에서는 운동화가 없어졌다. 페루에서는 DSLR 카메라가 사라졌다. 내 배낭은 세 번 바뀌었으며 그때마다 작아지고 가벼워진다. 더 크게 사라지는 것은 여행에 대한 욕심,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려던 욕망은 옅어지고 그 사이로 안개같이 부연 시간들이 스며온다. 좋은 곳에서 낮잠 자고 좋은 꿈꾸기 정도가 유일한 욕망이랄까.

 

 

   키토에서의 낮잠

 

      남반부의 첫 나라, 키토는 낯선 인상으로 다가왔다. 쿠바와 멕시코를 거쳐 온 나는 어디서나 들리는 음악과 밝은 사람들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런데 산으로 둘러싸인 이 고도의 도시는, 오후면 구름이 몰려와 어둑어둑해지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내성적인 표정을 짓고 있으며 자국 화폐보다 달러를 더 많이 쓰고 있다. ATM을 찾아 카드를 넣어 본 후, 모든 기기에서 달러가 인출되는 것에 아연실색했다. 고공의 인플레로 나라가 한 번 거덜 난 뒤에, 아예 달러와 자국 화폐를 섞어 쓰는 것으로 통화정책이 전환되었다는 것이다. 달러 가치가 떨어지면 저절로 에콰도르 돈의 가치도 떨어지는데, 한 나라의 화폐를 다른 나라의 화폐에 의지한다니 남미의 높은 인플레의 후유증을 짐작할 수 있다.
   사흘간 카우치 서핑을 한 마르가리타의 집을 떠나 구시가지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호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하루 5달러밖에 안 하는 수크레 호스텔에 오래 머문 것은 심한 감기에 걸렸기 때문이다. 한낮에 호스텔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으면 창밖으로 그레고리안 성가가 들려왔다. 키토의 구시가지는 바실리카 대성당을 비롯해 수많은 성당을 품고 있는데, 때마침 산타세마나(성주간) 기간이라 도시 전체에 종교색이 한층 더 짙어진 것이다.
한 차례 아픈 데다 신발까지 잃어버리자 한시라도 빨리 페루로 떠나고 싶다. 적도를 비롯해 몇 군데만 눈뒤짐한 후 서둘러 페루로 내려갔다.

 

 

   산타크루즈 트레킹에서의 낮잠

 

      리마의 호스텔에서 Y를 만났다. 그에게는 된장과 고추장이 있고 우리 중엔 요리사가 있으니 두 사람은 즉시 호스텔 부엌으로 향했다. 밥을 짓고 된장국을 끓이고 야채를 볶아 먹다 보니 어느새 밥상이 술상으로 바뀌고 다음날 밤에 도착한 O와 그 다음날 아침에 도착한 U까지 길동무가 다섯으로 불어났다.
   리마 센트로에서 세비체(생선회와 비슷한 요리)를 먹고 산크리스토발 언덕에서 전망을 내려다본 후, Y를 와라즈로 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식사 도중 얘기가 이상하게 흘러 정신을 차려 보니 다섯 명 모두 와라즈행 밤 버스를 타고 있었다. 사흘 연속 끓여먹은 된장국의 힘인가, 이상하게 헤어지기 싫어 제각각 떠나온 사람들이 각자 여행 일정을 모두 바꿔 즉흥적으로 짐을 싸버린 것이다. 가장 나중에, 즉 당일 아침에 합류한 U는 선금을 지불한 호스텔 침대에 등짝 한 번 못 붙여 보고 동행했으니 여행이 아니면 이렇게 갑자기 계획을 바꾸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이 사람과 있으면 재밌겠다’ 싶은 감이 들 때는 과감하게 결단을! 이건 나처럼 사람 좋아하는 캐릭터들에게는 꼭 필요한 센서랄까.
   여행 내내 저렴한 호스텔만 전전했는데, 그중 최고는 와라즈의 카롤리나 아줌마 호스텔이다. 씻는 곳이 많은 데다 뜨거운 물이 철철 나오고 아침에는 조금씩 메뉴를 달리한 식사가 포함된 데다가 옥상에 마음껏 빨래를 널 수 있고, 아줌마에게 세탁비를 약간 내면 9개월간 캠핑으로 다져진 한 친구의 점퍼 찌든 때까지 쏙 빼준다.

 

      산타크루즈 트레킹을 떠나기에 앞서 소로체(고산병 약)를 나눠 먹고 작은 봉고에 올랐다. 각자의 짐은 당나귀가 들어 주니 물병과 간식만 들고 종일 걷다가 저녁에는 텐트에서 잔다. 해발 4750m의 정상까지 가려니 아픈 다리보다 숨이 찬 것이 더 큰 문제다. 첫날 멋모르고 맨 앞에서 오르막길을 오르다가 혼쭐이 난 후, ‘하-후(날숨 하, 들숨 후) 호흡법’을 자체개발해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걸었다.
   산타크루즈 트레킹은 나흘 내내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어 특히 좋았다. 첫날은 마을과 밭을 지나 산으로 올라가고, 둘째 날은 산을 계속 타다 정상을 찍고 넘어간 후, 셋째 날은 내려오면서 호수를 지나가고 마지막 날은 넓은 팜파 지역을 가로질러 버스까지 돌아오는 구성이라 지루할 틈이 없다. 지그재그로 계속 바위산을 올라가며 몬타(정상)까지 올라가는 둘째 날의 길이 가장 가팔랐는데, 막상 산을 오르자 확 트인 평야와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치맛자락처럼 여러 겹으로 드리워진 산줄기 사이로 물길이 휘어져 돌아가는 풍경이 거대하면서도 아기자기해서 잠깐 드러눕지 않을 수 없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번 여행 내내 멋진 곳이 나오면 잠시라도 누워서 눈을 감아 보는 버릇이(사정이 허락하면 낮잠도) 들었다는 소리다. 설산에 눈부셔 하며 일어나는 순간은 춥고 달콤했다.
   그러나 트레킹 최고의 순간은 호수나 산을 마주할 때가 아니다. 저녁에 식당 텐트에 모든 팀원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그날의 수프를 뜨는 순간이 단연 최고! 아보카도 넣은 빵과 과자 부스러기로 끼니를 때우며 종일 걷다가 하루의 일정을 마친 후 가이드가 끓여 준 수프를 한 숟갈 떠 넣으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소박하면서도 호사스러운 기분이 들어 모두들 “으으윽……” 하는 사자후를 토해 내기 마련이다. 이어지는 로모 살타도(야채를 넣은 소고기 볶음)나 파스타도 정말 맛있다. 일찌감치 식사를 하고 나오면 밖에는 남반부에서만 볼 수 있는 별들이 엄청나게 돋아 있다. 잔별처럼 돋는 행복을 잠시 만끽하다 너무 추워서 텐트로 기어 들어가면 이내 꿈 없는 잠이 기다리고 있다.
   투어 팀은 묘한 구성이다. 이스라엘인 다섯, 한국인 다섯, 이 홍해바다 갈라지는 인적 구성에 불운하게 낀 중국인 한 명, 이렇게 이루어져 있다. 중국인 젠은 복수라도 하듯(그건 아니겠지만) 트레킹 내내 씻지 않고 옷을 딱 한 번 갈아입었는데 때문에 함께 텐트를 쓴 O는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둘째 날에 비가 내려서 모두들 비를 맞으며 하산한 탓에 옷과 등산화에서 꿉꿉한 냄새가 올라오는 마당이니 말이다.
나는 옆 텐트의 이스라엘 여자 셋이 더 인상 깊었다. 셋 다 레즈비언인데 놀랍게도 모두 연인관계다. 그중 나이가 많고 덩치가 좋은 언니가 두 동생의 옷과 간식을 배낭 가득 지고 다니고, 외모가 여성스러운 둘째는 상냥한 편이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웃는 소리가 기괴하기 짝이 없는 막내는 장난기가 많은 편인 것 같다. 모두 같은 자리에 코 피어싱을 한 이 세 사람은 ‘섹슈얼한 자매애’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계곡물은 너무 차가워서 세수와 양치질은 해도 차마 머리까지 감을 순 없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도저히 더는 견디지 못하고 머리를 감았는데, 차고 맑은 물에 머리를 집어넣으니 비록 심장마비에 걸릴 지경이나 정신은 번쩍 들었다. ‘재세례파 운동’ 왜 또 이런 말이 떠오르나 몰라. 중세의 한때를 풍미했던 이단이 왜 굳이 물에서 세례를 다시 했는지 절로 터득할 만큼 상쾌했다.

 

   마추픽추에서의 낮잠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하는 일이 있다. 일단 짐을 풀고 지도나 계획 없이 대충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다. 숙소에서 광장까지 거리 따위를 가늠하다가 조금씩 멀리 나가 ‘동네 냄새’를 들이마시는 일은 말하자면 갤러리에 들어서면 도슨트의 설명을 거절하고 그림부터 둘러보는 것과 비슷하다,
쿠스코에서도 그랬다. 페루 냄새가 물씬 풍기되 상대적으로 물가가 비싼 이곳에서 하루 10솔(4천 4백 원)짜리 호스텔을 발견한 후 동네 마실부터 나왔다. 로컬버스를 타고 산동네 위로 올라가다가 이순신 장군처럼 생긴 석상 하나 보고 내려와 학교 구경 하다가, 대학을 발견하면 괜히 구내식당 한번 들어가 보고, 대학 앞 맛집에 들러 점심특선 먹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돌아온다. 이런 것은 기록으로 남기면 이렇다 할 것 없으나 통과하면 만족도가 높은 시간이다.
   카사 인 호스텔에는 히피 같은 남미 여행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온종일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하며 놀고, 이따금 아르바이트로 만든 팔찌나 직접 그린 그림을 팔러 나간다. 시끄럽거나 무례한 친구들이 아니어서 숙소 마당에 어영부영 함께 어울릴 때가 많은데, 무수한 파티 중 특히 인상적인 파티가 두 번 있었다. 한번은 리나 아줌마 생일 때였고(피자와 술이 넘쳐났다) 다른 한번은, 왜 그랬는지 모르겠으나 아르헨티나 애들이 삼십 명쯤 우르르 몰려온 날이었다.
   우리는 저녁 무렵부터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사와 마당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얘기에 빠져 있다 고개를 들어 보니 점점 더 많은 사람이 호스텔 마당으로 들어와 모조리 가지고 나온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그중 광대 복장을 하고 얼굴에 가짜 코까지 붙인 한 친구가 털썩 앉은 채 바닥에 흘린 아이스크림을 숟가락으로 퍼먹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약간 남은 아이스크림 통을 건네주자 그 친구는 티스푼 하나로 거기에 모인 모든 사람, 서른 명에게 한 입씩 아이스크림을 떠먹이기 시작했다. 종래에는 우리까지 물이 된 아이스크림을 받아먹었는데, 내 것을 내가 얻어먹는 기묘한 체험이 신선하게 여겨졌다.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떠먹은 것은 파티의 시작이었고, 저글링, 외발자전거, 비보이, 그리고 많은 악기들(기타, 젬베, 멜로디언, 트럼펫, 그리고 내가 도저히 알 수 없는 악기들)이 사방에서 연주되었다. 이윽고 오렌지주스에 섞은 럼이 양동이째로 등장했다. 종이컵을 들고 알아서 떠먹는 것인데 의외로 이 친구들이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는다. 겨우 1~2솔씩밖에 걷지 않아서 그런가 술은 금방 동이 났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흥이 떨어지지 않는 것 또한 보기 좋았다.
   리나의 호스텔에 머무는 내내 이 아르헨티나 히피들(많은 사람 중 내가 식별할 수 있는 것은 다니엘라와 헤로니모와 호세밖에 없어 그냥 덩어리진 전체로만 기억에 남는다)의 연주와 그림과 노래가 끊이지 않았는데, 적당하고 자연스럽게 내내 즐기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호스텔에서 적당히 쉬었으니 이제 마추픽추를 보러 갈 때다. O와 U와 페루인 수산나와 나, 이렇게 넷이서 마추픽추가 있는 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떠났다. 버스는 몇몇 산골마을을 거쳐 비포장 산길을 달렸는데 거대한 산 중턱에 가르마를 타놓은 것처럼 가느다란 벼랑길을 인상적…… 이라고 말하기엔 너무 공포스러웠다. 능숙한 운전자가 아니라면 낭떠러지로 직행할 벼랑길을 온종일 타고 내려서 ‘이드라’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아구아스까지 두 시간가량 기찻길을 따라 걸어 마침내 어두워질 무렵에 도착했다. 기차를 타면 쉽게 가겠지만 우리는 되도록 걸어가기로 했다.
   다음날 버스를 사절하고 다시 아구아스부터 마추픽추 입구까지 한 시간가량 가파른 계단을 또 걸었다. 이렇게 줄창 걷는 것이 고되기는 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 끝에 만나는 마추픽추는 그야말로 산 복판에 있어 제아무리 유적에 관심 없는 사람일지라도 ‘도대체 왜 여기에 이런 도시를 만들었을까? 왜? 왜?’ 하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경이롭다.
   “잉카 이 돌덕후들!”라는 탄식을 여행 블로그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 너무 웃겨서 기억을 해뒀다 여기 와서 써 먹었다. 흙을 섞어 고정시킨 돌들이 얼마나 정교한지 징글징글할 정도다. 남미는 어디에나 산이 많고 돌이 흔하니 건축자재로 쓰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나, 페루 사람 자체가 워낙 돌을 좋아하는 것 같다. 숙소에서 만나 우리와 함께 온 수잔나는 틈만 나면 멋진 돌 앞에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했는데, 그녀가 돌을 감상하는 모습은 마치 예술품을 감상하는 모습과 비슷했다. 그래서 잉카인들이나 그 후손이나 돌 좋아하기는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수꾼 전망대’는 가장 높은 곳에 있는데, 놀랍게도 이 유적을 발견한 하이램 빙엄은 이 깎아지른 절벽을 기어 올라와 이곳을 발견했다고 한다. 쿠스코의 한 식당에서 만나 소주를 사준 한 아저씨의 말에 따르면, ‘돌아다니기 좋아하는 빙엄이 운 좋게 상원의원 딸과 결혼해 사교계 생활 좀 하다가, 역마살이 돋아 여행을 다니면서 돈 떨어지면 아내에게 편지를 쓰고, 다른 여행자들은 다 돌아가도 이 사람은 돈이 많으니까 계속 남미 깊숙이 들어왔다가 사람들이 자꾸 저 위에 집이 있다고 하니 한번 올라왔다가 마추픽추를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그 절벽을 올라와 마추픽추를 처음 발견했을 때 빙엄은 얼마나 놀랐을까? 이 한 방으로 고고학계의 스타가 되고 본인도 상원의원을 두 번이나 지냈다는 빙엄의 말년은 몹시 불우했다는데 각설하고, 마추픽추를 더욱 신비하게 보이기 위해 50여 년간 마치 한 번에 지어진 도시처럼 사람들에게 전파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상도에서 우르르 올라온 단체 관광객을 인솔하는 한국 가이드 아저씨 말에 따르면(인사한 후 설명을 약간 귀동냥했다), 마추픽추가 한 번에 지어졌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한다. 입구부터 귀족 거주지나 태양의 신전까지 내려오는 동안 제각각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으며 안으로 갈수록 정교해져 ‘앞의 건축양식이 아반떼 수준이라면 뒤의 건축양식은 에쿠스 수준’이라나.
   귀동냥은 이쯤하고, 신전 모퉁이에서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러고 나니 버릇대로 잠이 솔솔 온다. 나와 내 친구는 계단식 밭 구석의 푹신한 풀밭에 올라가 삼십여 분간 낮잠을 자기로 했다. 나는 스카프로 온몸을 돌돌 말고 그대로 누워서 꿀 같은 단잠을 잤다.
   자고 일어나 눈을 뜨니 능선 없이 고봉으로 치솟은 산들과 발아래의 신전, 어슬렁 풀을 뜯는 야마가 자기 전과 똑같이 고대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때보다, 건축물을 하나하나 찾아가 콘도르 신전인지 기술자 거주지인지 확인할 때보다, 마추픽추에 훨씬 깊게 들어온 느낌이다. 나는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이어폰을 꽂고 이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노래를 찾기 위해 잠시 고민한 후 플레이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남미에 도착한 이후 최고의 순간이 나에게 도래했다. 은총처럼.

 

 

   《문장웹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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