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눈


숫눈

 

김주희

 


 

 

 

김주희-소설삽화

 

 

 

   벚나무 가지 끝에 사월의 바람이 매달려 있다. 허공의 뼈마디마다 오후의 햇빛이 달라붙어 있고, 노는 아이들의 웃음이 그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중이다. 중절모 쓴 노인은 벤치에 앉아 곧추세운 지팡이를 두 손으로 부여잡고 있다. 공원 위로 구름 한 점 없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펼쳐져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얼룩도 묻지 않은 숫눈처럼 깨끗한 하늘이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백지를 닮은 것도 같은.
   이른 봄날, 맞은편 공원을 보며 정류장에 서 있지만 방금 나는 버스를 떠나보냈다. 버스는 꼬리를 보이는가 싶더니 저 언덕 아래로 자취를 감추었다. 빛과 바람이 몸을 섞고 있는 이 사월의 허공처럼 내 마음은 빛 속에서 흔들리는 중이다.
   “바다에 가지 않을래?”
   그 전화는 내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사월에 처음 걸려왔다. 선생님의 목소리는 새벽 봄비처럼 쓸쓸했다. 친구도 오면 윤이 덜 외로울 거야. 너희 때는 생일에 부모보다 친구가 와주길 바라잖니. 나는 무어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애한테 친구라고 부를 만한 사람이 너밖에 없어. 이어서 선생님의 목소리가 침묵을 안쓰럽게 밀어냈다. 윤이 바다 근처에 있나요. 잠시 후 선생님은 낮은 목소리로 윤의 부고를 들려주었다. 선생님은 윤의 분골이 가라앉은 그 바다에 가자고 한 것이다. 배는 연녹색 사다리 탑처럼 표시된 17번 부표 근처에 잠시 머물렀다. 유골함을 넣은 바구니가 저기쯤에 떠 있었지. 선생님이 가리킨 곳에는 하얀 국화 두 송이가 무기력하게 바다에 둥둥 누워 있었다. 그 후부터 작년까지 벚꽃이 피면 선생님과 그 바다에 다녀왔다. 올해는 꽃샘추위가 이어지면서 벚꽃을 피우지 못한 나무들이 가지 끝마다 바람을 매단 채 수상하게 흐느끼고 있다.
   선생님은 내가 올 거라고 알고 있다. 오후 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가 오늘 댁으로 찾아가도 되겠느냐고 전화를 했다. 선생님은 환자처럼 힘없고 부드러운 음성으로 언제든 와도 된다고 말했다. 버스가 정차한 것과 거의 동시에 나는 망설임을 끝냈다. 맨 뒷좌석에 앉아 선생님에게 전할 말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버스가 출발하자 머릿속은 백지가 된 것 같았다. 도색만 바꾼 오래된 버스가 덜컹거리며 급정거할 때는 그 백지가 짓이겨진 듯 어지러웠다. 사실 어둠이 푸르스름한 빛으로 바뀔 때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잠들기 직전에는 환청처럼 어디선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누군가 부르는 내 이름 같은 건 곧 오토바이 공회전 소리에 묻혀 산산이 흩어졌다.
   나를 부르는 소리에 나른한 오수에서 황급히 빠져나오는 경험. 오늘 선생님에게 이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는 건 어떨까.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어지러운 봄날, 소년이었던 나는 국어 시간에 졸다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깨어났다. 선생님은 내 글에 가장 공감을 했다고 했다. 저번 수업시간에 봄날을 소재로 작문을 했을 때 나는 어머니를 성녀, 가장 완벽한 여인에 비유한 산문을 썼다. 구상을 하려고 창밖을 보는데 꽃비가 내렸다. 연약한 벚꽃이 바람결을 따라 눈처럼 흩날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선생님의 눈빛. 모든 것을 용서할 것 같은 투명한 눈빛이었다. 봄날의 착시현상일 수도 있는데, 순간 선생님에게서 성모의 이미지가 보였다. 나는 선생님의 이미지를 머릿속에 띄워 놓고 허구로 글을 썼다. 글 속에서 어머니는 벚꽃이 모가지를 떨어뜨리는 계절에 생을 마감했다. 그 당시 갓난아이였던 내가 소년이 되어 국어시간에 기억에도 없는 어머니를 성스럽게 여긴다는 게 내용이었다. 기억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어머니는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처럼 기억될 수 있노라고 소년의 치기를 부린 글이었다. 어머니가 없다는 것만 빼면 허망으로 가득한 글이기도 했다.
   그 후 계절과 상관없이 무거운 공기가 감도는 교무실에서 선생님은 봄꽃처럼 미소 지었다. 다가가니, 선생님은 가만 내 손을 잡으며 혹시 이게 경험을 바탕으로 쓴 거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나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글 제목이 숫눈이어도 좋겠다. 숫눈은 눈이 와서 쌓인 그대로의 깨끗한 눈을 말하거든.”
   선생님의 손이 내 손을 감싸 안았다. 태아였을 때 자궁의 질감을 떠오르게 할 만큼 부드럽고 따뜻했다. 처음으로 타인의 체온을 느낀 순간이었다. 그 후 나는 선생님의 눈에 좋은 학생으로 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기다리고 싶었다. 인사하고 싶었다. 두세 마디 대화라도 나누며 걸어 보고 싶었다. 욕구대로 행동하자 가을 무렵에는 선생님과 제법 가까운 사이가 됐다. 타인에게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서 처음으로 노력했다. 가끔 선생님 차를 얻어 타고 갈 수 있었던 건 내 노력 때문이었다. 할머니는 귀가 들리지 않으세요. 좁은 집 안에서 할머니만의 세상을 만들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고장 난 시계, 인형, 작은 탁자, 오래된 국어사전 등 마구 주워 오세요. 어렸을 때는 제가 주워온 아이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며칠 전에 하얀 국화를 주워 와서 사이다병에 꽂아 두었는데 아버지가 내다버렸어요. 아버지는 할머니가 오래 사시길 바라시거든요. 두 분을 볼 때마다 빨리 돈 벌고 싶어요.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손을 잡아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느 날 첫눈을 수태한 듯 잿빛으로 부푼 하늘 아래서 선생님이 말했다. 요즘은 아들보다 너랑 더 대화를 많이 하는 것 같다. 선생님의 아들이라면 승용차 안에서 사진으로 본 적이 있었다. 대시보드 위에 부착된 해바라기 모양의 액자 안에 바가지 머리를 한 소년이 새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들이에요? 선생님은 그렇다고 말했다. 열두 살 때지. 저때만 해도 표정이 많은 아이였는데. 선생님은 승용차 안에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윤은 나와 동갑으로 첫인상은 무미건조하고 서늘했다. 고등학교 입학식을 앞둔 2월의 끝자락에 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찾아간 패밀리 레스토랑에 윤이 나와 있었다. 아름다운 어머니마저 민망하게 만드는 무심한 표정. 윤은 그런 얼굴로 나를 아주 잠깐 바라보았다. 윤의 기준에서 어머니가 소개한 동갑내기는 메뉴판에 적힌 음식보다 가치가 떨어지는 품목이었다. 글재주가 좋고 긍정적이며 따뜻한 감성을 가진 친구다. 그날 그 자리에서 선생님은 윤에게 이런 내용을 주입시키려고 노력했다. 식사 도중마다 나에 대한 말을 의도적으로 던졌다. 윤은 어떤 대꾸 없이 포크질을 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어 보였다.
   선생님은 내가 윤의 친구가 되어 주길 바랐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를 가족식사 자리에 껴주고 아파트에 초대한 것이다. 선생님의 15층 아파트는 깔끔하고 쾌적했다. 베란다 창 너머로 산 중턱에 있는 낡은 빌라와 다세대 주택이 희미하게 보였다. 여기가 내 세계라면 얼마나 좋을까. 소파에 앉아 정갈하게 깎인 과일과 허브차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 아이와 친구가 됐으면 좋겠어. 선생님이 과일이 찍힌 포크를 건네주며 말했다. 윤은 내가 돌아갈 때까지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후 주말이면 종종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그 집에서 식사를 했다. 나중에는 선생님이 없을 때도 윤을 만나러 그 집에 갔다. 열대야 기간에는 거기서 지내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난 후부터는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다. 어쩌다 선생님의 전화를 받으면 아르바이트 중이라고 했다. 주말이면 갈빗집에서 숯불을 피워서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평일에는 밤 9시부터 새벽 3시까지 편의점에서 일했다. 생각 같은 건 할 틈이 없었다. 식당 뒷마당에서 숯불을 피우며 거리에 울려 퍼지는 캐럴을 주워들었다. 편의점에서 바코드스캐너로 상품 바코드를 찍거나 물품을 진열하다 보면 금세 새벽이 왔다.
   어제와 오늘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날 겨울 새벽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윤이 방금 죽었다는 사실도 모른 채 편의점 밖으로 나왔다. 내일은 윤의 생일이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내가 친구의 자격으로 그곳에 동행할 줄 알고 있을 것이다.
   사랑한다.
   내일도 선생님은 윤의 사이버분향소에 글을 남길 것이다. 어제와 오늘 아침 그랬듯이. 나는 일 년에 한 번 윤의 생일 전에 인터넷 분향소 카페에 들어가 본다. 윤의 고등학교 학생증 사진을 피해 선생님이 남긴 댓글을 본다. 선생님은 대답 없는 대상에게 사랑한다고 숨을 쉬듯이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아들의 입장이 되어 대답할 수 있다면. 나는 윤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그곳에서 행복해라. 한번은 이 말을 썼다가 지웠다. 사진 속 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사실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윤과 나 사이에.
   버스에서 내리자 바람이 얼굴을 향해 불어왔다. 마트에 들러 과일과 음료수를 산 후 편의점을 끼고 골목 안으로 천천히 걷는다. 올해도 저 집 담장 밖으로 목련 가지가 뻗어 있다. 처음 그 바다에 다녀와서 둘이 이 길을 걷다가 선생님은 저 하얀 목련 앞에서 멈추었다. 꽃잎이 생채기를 입었네. 살아 있으니까 이런 것도 생기는 거지. 선생님은 손가락으로 꽃잎의 상처를 어루만졌다. 오늘 윤한테 무슨 말을 했니. 선생님은 생채기 난 꽃잎에게 질문하는 듯했다. 아무 말도 못 했어요. 나는 숙제를 안 해온 학생처럼 떳떳하지 못한 목소리를 냈다. 선생님은 내 등을 가볍게 톡톡 두드려 주며 너는 잘 지내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번 윤의 생일에도 그 바다에 가실 거예요? 저도 같이 갈게요. 먼저 말해 줘서 고맙구나. 길마다 선생님과 나누었던 대화가 투명하게 새겨져 있는 느낌이다.
   선생님이 사는 집은 횡단보도를 건너 주택가 골목 안쪽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해 있다. 윤이 그렇게 된 후 선생님은 어머니가 머물고 있는 단독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처음 갔을 때 나는 불편할 만큼 과한 손님 대접을 받았다. 선생님의 어머니는 윤의 친구가 온다는 소식에 한상 가득 음식을 차려 놓았다. 선생님의 제자이면서 윤의 친구라고 소개된 나를 할머니는 애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를 통해서 손자의 그림자라도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윤에 대해 들려줄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었다. 윤과는 많은 말을 나누지 않았지만 같이 있으면 편했다고 했다. 이 늙은이를 데려가지. 왜 저승사자가 거기서 애 등을 떠밀어 가지고. 옆에서 선생님이 과일을 천천히 깎으며 애써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작년 겨울 새벽에 1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어. 검색해 보니 기사에는 윤이 2시 11분께 15층 베란다에서 투신했다고 나와 있었다. 윤은 두 장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 첫 번째 장에 열두 살 때 상급생에게 당한 폭력이 적혀 있다고 했다. 경찰은 유서 내용을 토대로 윤이 열두 살 때 당했던 폭력을 못 잊고 괴로워하다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느 정신과 전문의는 윤의 경우를 언급하며 학교 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심리 치료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른이 돼서 자살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선생님이 고등학생일 때부터 있었다던 벚나무 한 그루가 마당을 쓸쓸히 지키고 있다.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꽃샘추위 속에서 연둣빛 꽃눈이 부풀어 오른 상태로 잠들어 있다. 선생님 집에는 담장이 없다. 두 번째 방문했을 때 선생님은 구청의 지원을 받아 담장을 허물었다고 했다. 고양이가 제 집처럼 들어와 새끼를 낳았구나. 담장을 허물길 잘했어. 선생님은 스티로폼 상자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다가가서 보니 검은 고양이가 새끼 두 마리에게 젖을 물리고 있었다. 잘살아야 할 텐데. 나는 쭈뼛거리다가 선생님 옆에 웅크려 앉았다. 윤에 대한 신문기사를 찾아봤어요. 유서를 남겼다고 나와 있었어요. 제가 좀 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은 뭔가 생각하듯 좀 더 체구가 작은 새끼고양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유서를 보여주고 윤이 이 얘기를 한 적이 있는지 물어보려고도 했지. 지금은 보여주지 못하겠다. 혹시 그 유서가 네 마음을 어지럽게 해서 수험생활에 지장을 줄 수도 있잖니. 대학생이 되면 보여주시겠어요? 그래, 그렇게 하자. 대학생이 된 윤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 배에서 나온 자식인데도 그래. 네가 대학생이 된 모습이 보고 싶다. 잘살아 줄 수 있지. 당부가 아니라 의무로 들렸다. 선생님의 눈에 잘사는 것처럼 보여야 했다. 봄날의 지나간 대화는 이 마당 어디에도 머물러 있지 않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하늘을 바라보자 사월의 빛이 내 얼굴로 와락 달려든다. 곧 빛의 가면을 쓴 것처럼 애써 밝은 표정으로 현관문 손잡이를 잡는다. 슬쩍 잡아당겼을 뿐인데 현관문이 무기력하게 열린다. 선생님은 이번에도 문을 잠가놓지 않았다. 영혼이라도 들어오라는 듯.
   “저 왔어요. 문은 꼭 잠가 놓으세요. 요즘 세상 위험해요.”
   “대학생 됐다고 선생님을 가르치려고 드네. 여기 앉아.”
   2시 11분. 시침과 분침은 작년에 이어 이번에도 같은 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숫자판에 스누피 얼굴이 크게 그려진 저 시계는 윤의 방에 걸려 있던 것이다. 배터리가 빠진 시계에서 선생님의 마음이 머물러 있는 시각을 본다. 윤의 죽음 이후 선생님은 언제나 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9년 4개월 만에 개성공단 조업이 중단되었다는 기사 헤드라인과 북한이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할지 여부를 다룬 신문기사 군데군데에 눈물 자국 같은 게 나 있다. 작년 봄, 윤에게 가는 유람선 안에서 선생님은 씁쓸하게 말했다. 점심시간에 애 혼자 책상에 엎드려 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깨웠더니 애 얼굴이 핼쑥한 거야. 힘없는 목소리로 점심을 안 먹었다고 하잖아. 그때 내가 눈물을 흘린 거야. 애가 당황해서는 선생님 울지 마세요. 저 다이어트 안 할게요. 이러더라니까. 나도 이제 늙었나 봐.
   “나라 걱정하느라고 우신 거예요?”
   “별거 아냐. 내 나이 되면 눈물이 요실금처럼 나온다.”
   선생님은 희미하게 웃으며 망고주스와 과일이 든 쟁반을 테이블에 내려놓는다. 이제 선생님은 내 주방 출입을 철저하게 막는다. 손님은 가만히 앉아 있는 게 도와주는 거라며 나를 내쫓는다. 윤이 살아 있을 때 그 아파트에서 나는 아들마냥 냉장고 문을 열어 음식을 꺼내먹고 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라면도 끓여먹었다.
   “며칠 바람이 세차다 했더니 꽃잎이 피기도 전에 져버렸구나.”
   선생님의 시선이 유리창 밖 벚나무에 머물러 있다. 선생님은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아직 꽃이 핀 게 아니라고 말하려다가 관둔다. 꽃샘추위가 물러나면 꽃자루마다 환한 꽃을 달고 봄을 밝혀 줄 것이다. 그러면 선생님은 꽃은 져도 하룻밤 만에 다시 피어나는데 사람은 그러지 못해서 허망하다고 혼잣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할머니는 어디 가셨어요?”
   먼 데 걸려 있는 선생님의 시선을 이쪽으로 돌리기 위한 말이다.
   “종교인이 되셨지. 성당에서 회개하고 계실걸. 어제 새벽 내가 잠이 안 와 정종 한 병을 먹고 있는데 가만 그 모습을 보시더니만 당신이 지은 죄가 크대. 그 탓에 자식이 혼자 돼서 봄밤에 술을 마신다는 거야. 신한테 가서 죄를 용서 받으시겠단다. 다른 사람한테 싫은 소리 한번 못 하고 살아온 양반인데.”
   “신은 자기가 당한 일이 아니니까 쉽게 용서해 주는 거겠죠.”
   “신에게도 용서할 자격이 있지. 아들이 사람 손에 죽었는걸.”
   내가 시선을 돌린 곳, 거실 장식장 위에 윤의 사진이 액자에 들어 있다. 이 집 마당에서 찍은 것으로 유년의 끝에서 윤이 노란 고양이를 품에 안고 만개한 벚나무 아래서 웃고 있다. 선생님은 저 사진을 일부러 갖다 놓았겠지. 사진 속에서 윤은 결핍을 모르는 눈빛을 하고 있다. 내가 모르던 윤이다. 선생님과 윤이 살던 15층 아파트는 어른이 되어서도 내가 소유하지 못할 천공의 성 같은 것이었다. 윤은 손에 쥐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모르거나 모르는 척했다. 처음부터 윤과 나의 자리가 바뀌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무리 먹어도 기아에 시달리는 에리시크톤처럼 어디에 있어도 결핍만 느낄 거라면 일용직 아버지와 비탈길 중턱에 있는 지층 집에서 살아도 상관없는 거 아닌가. 내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윤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열일곱 살, 여름 한철만 같이 보낸 내가 알 리가 없는 것이다. 그때는 윤의 냉소나 우울증이 가진 자의 허영이라고 생각했다. 윤의 내면에는 어떤 풍광이 그려져 있었을까.
   “지금도 이게 궁금하니.”
   작년 바다가 보이는 횟집에서 선생님이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그 애가 남긴 유서야. 네가 대학생이 되면 보여준다고 했잖아. 약속 지켰다.”
   “이걸 제가 봐도 되는 건가요.”
   “윤은 해실해실 잘 웃던 아이였어. 해실아, 하고 부르면 엄마 내 이름은 그게 아니잖아 하고 안기던 아이였지. 이혼을 하고 어느 날 정신을 차려 보니 그 애는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열세 살 때였지. 사춘기려니 생각했어.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괜찮아. 읽어 봐. 이제 윤의 죽음도 가벼워질 때가 됐어.”
   윤의 유서는 두 장이었다. 유서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열두 살 여름에 당한 폭력을 어떤 이유로든 잊을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장소가 어디였는지는 밝히고 싶지 않습니다. 가해자는 어른이 아닙니다. 나 같은 열두 살도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그는 나보다는 어른입니다. 그는 내가 행복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열두 살은 행복이 뭔지 모르는 나이였습니다. 그 다음은 여름 밤낮으로 자행된 폭력이 여러 문장에 걸쳐 적혀 있었다. 가해자의 이름을 알려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장은 여기서 끝났다.
   윤이 이 일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을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유서로 죽음에 대한 명분을 만들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윤은 죽고 싶어 했다. 윤의 부고를 들은 후 한동안 죽음의 숨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귀가 먹은 할머니는 죽음을 이고 다니느라 등이 굽은 듯 보였다. 한번은 밥을 먹다가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곧 죽을 거지?”
   웃느라 구겨진 할머니 얼굴이 우스워 보였다. 나는 밥을 먹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르고 주름진 손이 내 손을 와락 잡으며 밥공기를 가리켰다. 죽으려면 우선 살아야 한다. 할머니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나는 죽음의 음성이라도 들은 것처럼 기겁했다. 그 당시 곧 죽을 듯 보였던 할머니는 내가 대학생이 되던 해 가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귀 먹은 할머니는 자동차 클랙슨 소리를 듣지 못했다. 폐지가 담긴 수레를 끌고 다른 날처럼 도로를 건너다 승용차에 치여 갑자기 죽은 것이다. 할머니 입학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방이나 구해라. 아버지는 상대방 보험회사에서 나온 돈을 내 앞에 내밀었다. 내 자취방 보증금은 할머니의 생명과 맞바꾼 돈이다.
   “얘, 꽃이 진 게 아니구나. 저 왼쪽 가지 안쪽에 말이야. 꽃이 몇 송이 피어 있어. 보이니.”
   “그러고 보면 선생님은 구석에 있는 것을 잘 찾아내시네요. 중학교 3학년 때 제 이름을 불러 주셨잖아요. 감사했어요. 그 순간이 제 인생을 바꾼 것 같아요.”
   “네 나이 때는 인생이 바뀌는 순간이 더 찾아올 거야. 좋은 쪽이길 바란다.”
   나는 찻잔을 내려놓고 테이블 끝을 응시한다. 아까 묻고 싶었다. 만일 선생님이 신이라면 인간을 용서할 수 있겠느냐고. 선생님은 남의 일처럼 가능하다고 대답할지 모른다. 아들을 죽음으로 내몬 가해자가 어느 날 나타나서 뒤늦게 용서를 구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용서하시겠어요? 두 번째 질문에 선생님이 어떤 대답을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좋은 소식인지 모르겠지만 저 28일에 군대 가요. 내일 전주로 내려가서 친척들에게 인사드리려고요. 당분간 거기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은 아들의 생일에 혼자 17번 부표가 떠 있는 바다로 찾아갈까. 앞으로 2년간 나는 동행하기 힘들 것이다. 사실 제대하고 난 후에도 과연 빠짐없이 찾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오늘 이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해야 할지 말지 망설이며 버스정류장에서 서성거렸다. 나는 마주 잡은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다. 초조할 때마다 나오는 동작이다. 곧 선생님이 두 손으로 내 손을 감싸 준다. 나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린다. 숨어 핀 연약한 벚꽃과 눈이 마주친다. 부끄러워 고개를 숙인다. 내 마음 바닥이 보이는 것 같다. 거기에 이런 질문이 있었다.
   선생님, 연약한 게 악하기까지 하면 뭐가 될까요.

 

   밖에는 온갖 죄인의 검은 뼈를 분골해서 뿌려 놓은 듯한 어둠이 펼쳐져 있다. 구역질이 난다. 나는 창을 열어 어둠 속으로 모가지를 내밀고 있다. 수상한 바람이 술기운으로 달아오른 뺨을 할퀴고 지나간다. 창을 닫고 구석진 자리로 가서 잔에 술을 따르며 수상한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후에 입대 소식을 알리자 선생님은 내 두 손을 잡아 주었다. 여전히 따뜻했다. 우리 아들 생일을 챙겨 줘서 고마웠어. 조심히 잘 다녀오라는 선생님의 당부를 듣고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오늘 어떤 고백을 하려고 했다. 그러지 못했다. 이때 선생님은 내 손을 잡아 주었다. 내 마음 같은 건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정말 수상한 체온이었다.
   선생님이 내 글을 칭찬한 점도 수상했다. 선생님은 아들과 동갑인 학생이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다 못해 신격화하는 내용에 끌렸던 건 아니었을까. 말로는 내 가족사를 보호해 주기 위해 아이들 앞에서 읽지 않겠다고 했지만 사실은 내 작문 수준이 공개할 만한 것이 못 되기에 그랬던 건 아니었을까. 술은 의심을 일깨운다. 선생님은 마당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기억하고 그것을 보여준 걸까. 작년 분골함이 바구니에 담겨 떠다녔다던 17번 부표 근처로 나 역시 하얀 국화를 띄웠다. 나는 더 이상 고등학생이 아니었다. 대학생이 되고 보니 진심이자만 가벼운 마음으로 윤의 명복을 빌 수 있었다.
   “모자간에 바닷바람 쐬러 나왔나 봐요?”
   선착장 부근에 있는 횟집에 들어가자 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자가 말했다. 한산해서 음산해 보이기까지 한 그 횟집에서 선생님은 내 팔짱을 꼈다.
   “이번에 대학생이 됐어요. 잘 자라 준 게 고마워서 겸사겸사 봄 마실 나왔어요.”
   선생님과 나는 바다가 보이는 통유리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날 선생님은 처음 내게 소주를 권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 선생님이 따라 준 술을 마셨다. 선생님이 초장이 찍힌 담백한 우럭회를 젓가락으로 내 입에 넣어 주었다. 날것 그대로의 살점을 씹을 때 나는 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선생님은 젓가락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통유리 너머 잔잔해서 죽어 있는 듯한 바다에 시선을 띄워 놓고 있었다. 그 다음 선생님은 내게 아들의 유서가 담긴 봉투를 내밀었다. 유서를 읽은 후 나는 조문하듯이 잠시 고개를 숙인 채로 있었다. 진심으로 윤의 죽음이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았다.
   작년 그 바다에서 돌아온 후에도 이렇게 소주를 마셨다. 그 후 그런 꿈을 꾸었다. 어두운 바다 위에서 부표탑만이 푸른 불빛을 뿜어내고 있다. 나를 태운 추모함은 그 부표 일대를 느리게 선회한다. 두 번째 선회를 마칠 때쯤 어둔 바다가 아가리를 크게 벌리며 나를 집어삼키려고 했다. 꿈에서 깨어났을 때 등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이 순간 부풀어 오른 어둠 앞에서 나는 운다. 사실 가장 수상한 것은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자궁에서 태어날 수 없다. 이미 늦었다. 방금 선생님의 자궁 속으로 들어가 생명을 만들 수 있다는 기괴한 생각이 눈을 떴다. 여름처럼 뜨겁게 슬퍼져서 눈물이 난다. 고백을 하고 싶은 봄밤이다.
   내 고백을 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사실 숫눈의 여인은 선생님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그날 교무실에서 처음 타인의 체온을 느낀 후부터 나는 진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당신, 그 글에서 나는 선생님을 당신이라고 부른다.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순결한 여인이며 따뜻한 어머니였다. 반면 나는 깨끗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도벽을 시작한 건 우리 집 사내 때문이었다. 어느 날 사내는 점퍼를 벗어던지고 술 냄새를 풍기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구석에 웅크려 앉아 바로 곯아떨어진 사내와 내팽개쳐진 점퍼를 동시에 혹은 번갈아 바라보았다. 곧 조심조심 걸어가 사내의 점퍼 주머니에 작은 손을 집어넣어 지폐를 만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내는 금방 취하고 뻗으면서도 늘 예민한 상태를 유지했다. 지폐를 쥐어서 빼내려는 순간에 갑자기 사내의 오른손이 내 뺨을 갈겼다. 나는 균형을 잃고 바로 쓰려졌다. 사내는 내 작은 몸을 흠씬 두들겨 때리면서 또 도망가려고 어떤 놈팽이와 도망가려고 이 말을 내뱉었다. 안 도망간다고 외쳐 봤자 먹히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아서 머리와 복부를 보호하는 것뿐이었다. 사내에게선 시궁쥐 냄새가 났다. 잠시 후 사내는 뒤로 물러나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보며 비틀거렸다. 바닥에 다시 쓰러지더니 잠들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저 어깨뼈를 부러뜨리고 정육점에 있는 육절기로 손발을 잘라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아버지는 순한 아기가 되어서 이 방바닥을 기어 다닐 텐데. 내 머릿속에서 댕강, 아버지의 수족이 잘려 나간다. 망나니처럼 칼을 쥔 사람은 나다. 댕강, 마지막으로 잘린 아버지의 성기는 작고 볼품없다. 집 밖으로 도망 나와서 흐흐흐 웃었다. 아버지의 성기를 자르는 상상만으로도 나는 바보처럼 해맑아진다. 댕그렁, 댕그렁, 성당의 종소리가 어둠을 은은하게 밀어냈다. 나는 어리고 약한 인간답게 종소리에 이끌려 성당 앞으로 갔다. 어둠 속에서 하얀 성모상이 보였다. 성모상이 내 상상을 들여다본 것 같았다. 성모상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는 듯한 그 순간에 나는 뒤돌아 비탈길을 내려갔다. 다음날 찾아가 보니 오후의 빛 속에서 성모상은 평범해 보였다. 성상 아래에 죄가 눈처럼 희어진다는 그런 문구가 적혀 있었다. 죄를 짓고 싶어졌다. 사내의 매질을 통해 중요한 사실을 알았다. 도벽은 상대가 나보다 약한 사람일 때만 가능했다. 기형 물고기처럼 등이 굽은 노파에게서 과자를 훔쳤다. 겁이 많고 어눌하게 말하던 그 아이와는 형제처럼 용돈을 나누어 가졌다. 노을이 걸린 저녁 노파의 슈퍼에 불이 난 건 내 탓이 아니다. 그 아이가 학급의 그림자처럼 지내다가 전학 간 것도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죄를 지으면 성모상 앞에 가서 조문하듯 꾸벅 고개를 숙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성모는 인간이 어떤 죄를 지어도 자백하면 용서한다. 어린 마음에 성모상에 발길질을 하기도 했다. 완벽한 어른, 어머니는 자기를 때리고 찌른 아이 같은 건 용서할 테니까. 창가에서 벚꽃을 바라보던 당신, 잿빛 공기가 감도는 교무실에서 가만 내 손을 잡아 주던 당신. 어린 시절 어둠 속에서 보았던 성모상이 여인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당신의 체온은 내 안에 고여 있던 겨울의 시간을 녹였다. 나는 새 것이 되었다. 그런 줄 알았다. 결핍에 중독된 당신의 아들을 만나기 전까지는.
   눈을 뜨니 택시는 일방통행로를 빠져나와 도로에 진입하고 있다. 승차한 후 등받이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방금까지 머릿속에 있던 말을 선생님에게 전할 수 없다. 이 짧은 봄밤에 어울리는 고백이 아니다. 윤의 부고를 전해들은 그 후부터 고백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 통화를 끝내고 걷다 보니 성모 조각상 앞까지 왔다. 뭔가에 이끌리듯이 유년시절 이후 발길을 끊은 그곳에 다시 서 있었다. 받침돌에 적힌 성경 문구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 구절을 마음속에 새기고 틈날 때마다 들여다보았다. 언제 어디서든 외울 수 있게 말이다.
   “너희의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아저씨, 이 말 어떻게 생각해요?”
   둥글게 휜 기사의 양 어깨를 바라본다. 짐의 종류와 죄의 무게를 가늠해 보려는 듯 한껏 눈을 찡그린 채로. 어쩌면 저 초로의 기사는 이런 말을 삼켰을지도 모른다. 저 새끼는 작년이나 올해나 변한 게 없네. 작년 이맘때 선생님 집 쪽으로 나를 태운 기사가 맞는다면 말이다.
   “학생 거 술 먹고 전도하지 마쇼. 나는 무교요.”
   “사실 저도 무교예요. 흐흐흐.”
   아무것도 모르고 그 무엇도 믿지 않는 것처럼 나는 웃는다. 웃음을 멈춘 건 차창으로 내 얼굴이 비스듬히 비쳤기 때문이다. 어두운 내가 웃는 나를 비웃고 있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다. 보지 않아도 내가 어디로 흐르는지 알 수 있다. 택시는 옥상 경관 조명이 화려한 뉴타운 아파트 단지를 옆에 끼고 주행 중이다. 아니 나는 모른다. 술기운이 사라지고 푸른빛이 거리에 얇게 깔리면 나는 가면을 쓰고 숨을 쉴 것이다. 그 전에 해야 할 말이 있다.
   친구가 되려고 했다. 주말이면 클래식이 흐르는 거실에서 아들의 친구처럼 앉아 있었다. 아니 번호표를 받고 친구 대기 상태에 놓여 있었다. 윤은 식사를 한 후 나 같은 건 뒤돌아보지 않고 자기 방으로 향했다. 나는 친구가 되어야 했으므로 따라가다가 윤의 서늘한 시선과 마주한 후 한 발짝도 가까이 가지 못한다. 이럴 때 선생님이 나타나 내가 무안하지 않게 거실로 이끈다. 선생님과 나는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 바흐의 미뉴에트 G를 들으며 차를 마신다. 어느 토요일 저녁에는 생상스의 백조 선율이 거실에 흐른다. 쇼팽의 녹턴 20번 피아노 선율이 빗소리와 함께 흐르던 토요일 늦은 오후였다.
   “태교 음악으로 많이 들었던 곡이야. 윤은 내 뱃속에 있을 때 이 음악을 좋아했지. 음악을 들려주면 손가락을 빨면서 잠이 들었어. 이렇게 배에 손을 대고 있으면 다 느껴졌단다.”
   나도 쇼팽의 야상곡이 가장 좋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닫힌 방 안에 있어도 윤은 선생님의 말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냈다. 빛이 쓰러지면 나는 집에 갈 준비를 했다. 엘리베이터의 금속 표면에 등을 기댈 때마다 박탈감이 느껴졌다.
   열일곱 살 여름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내에게 맞아 주었다. 아들로서 도리를 지킨 것이다. 술 취한 사내는 가엾게도 내가 자기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자랐다는 것을 모르는 듯했다. 나는 그 사실이 웃겨서 얼굴을 가리고 맞으면서 흐흐흐 웃었다. 귀먹은 할머니가 요의를 느끼고 깼는지 방에서 나와 그 장면을 보았다. 할머니는 원시인처럼 우스꽝스런 소리를 내뱉으며 사내의 팔을 잡았다. 사내가 할머니의 오른 귀를 세게 내리쳤다. 할머니는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할머니 귀가 먹은 게 저 인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순간 사내를 죽일 수도 있었다. 내가 벌떡 일어났을 때 할머니가 내 다리를 잡지 않았다면 말이다. 나는 사내의 가슴팍을 밀친 다음 밖으로 나갔다. 얻어터졌으니까, 그런 특별한 날이니 전화를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신호를 보냈다. 무슨 일이니. 중요한 일 아니면 나중에 통화하자. 급한 일이 생겼거든. 선생님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그날 그 시각 선생님은 아들과 함께 정형외과 응급실로 가던 중이었다. 주말에 찾아갔을 때 윤은 왼손 약지에 손가락 깁스를 하고 있었다.
   “차 문에 손가락이 끼었는데 인대가 손상됐다는구나. 길게 잡아 한 달 정도 손가락 부목 깁스를 하면 괜찮아질 거라는데 볼수록 속상해죽겠어. 아 참 그날 전화했지. 무슨 일로 전화한 거니.”
   “별일 아니에요. 잠이 안 와서요.”
   내가 십자기에 못 박힌 모습으로 찾아와도 선생님은 윤을 데리고 병원에 갔을 것이다. 윤은 멀쩡한 오른손으로 바게트 속살을 뜯으며 피식 웃었다. 내 생각을 읽었다는 듯이. 이 녀석과 나는 친구가 될 수 없다. 앞으로 15층 아파트, 천공의 성에 찾아오지 않을 작정이었다. 곧 여름방학이 시작되면 지방 친척집에 내려갈 거라고 말하려고 했다. 선생님이 내게 관심이 있다면 왕래하는 친척이 없다는 것을 눈치 챘겠지만.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일주일 전쯤 선생님은 방학 동안 아파트에 와 있으라고 했다. 당장 내일이라도 들어올 수 있겠니. 명령이 아닌 부탁의 화법이었다. 내 입장에서 네, 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선생님은 주로 병원에 있을 예정이라고 했다. 누가 아픈 거냐고 물어보지 못했다. 윤은 나 같은 건 관심 없다는 듯이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먹고 있었다. 선생님이 아픈 거라면 저 녀석이 저렇게 태연하게 수저질을 하고 있지 않겠지. 나는 윤을 보며 가족 중에 누가 아픈 거냐고 물어보았다.
   “외할머니가 마당에서 잡초 뽑다가 쓰러졌대. 의식불명이라지.”
   “너는 감정이 없는 새끼야? 남일 말하듯이.”
   “그럼 울면서 연극이라도 해야 하나. 네 역할에나 충실해.”
   “내 역할?”
   “살아 있는 감시카메라. 결벽증이 있는 엄마가 왜 널 여기로 끌어들였겠어. 나를 감시하라고 붙인 거야. 내가 또 손목을 그을까 봐. 친구 좋아하네. 하긴 네가 우리 엄마의 이중성을 어떻게 알겠느냐만.”
   윤이 일어났을 때 나는 주먹 쥔 손으로 복부를 가격했다. 윤은 의자와 함께 나뒹굴었다. 바닥에서 싸늘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보았다. 윤을 일으켜 세워 배를 때렸다. 윤은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다만 보이지 않는 곳만 때리는 내게 경멸의 시선을 보냈을 뿐이다. 그 후로 윤과 나는 한 달 남짓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는 선생님이 부재중일 때 이루어졌으며 우리가 대화중일 때는 거실 오디오에서 선생님이 즐겨 듣던 클래식이 높은 데시벨로 흘러나왔다. 먼저 대화를 거는 건 내 쪽이었다. 네 정신 수준은 열두 살에 머물러 있어. 너는 열두 살짜리 애새끼라고. 방문을 열고 윤의 등에 외친다. 그렇다고 해두자. 윤은 나를 쳐다보지 않는다. 엄마 덕분에 행복하다고 말해. 윤은 침묵한다. 이런 아파트에서 저런 엄마하고 살면서 행복하지 않다고? 윤의 등이 거슬렸다. 그 등은 내가 하찮다고 말하는 듯했다. 어차피 행복하지 않으니까, 내가 패도 상관없겠네. 의자에서 윤을 끌어내려서 주먹으로 때려눕힌다. 말해. 행복해 뒈지겠다고. 윤을 거실로 질질 끌고 나와 배를 발길질한다. 거실 오디오의 볼륨을 높인다. 윤이 태아였을 때 좋아했다던 쇼팽의 녹턴 20번이 흐른다. 애비가 널 떠나서 그래? 애새끼야. 애비 같은 건 없는 게 나아. 윤의 등을 발로 걷어찬다. 이어 윤을 바로 눕히고 나는 배 위에 올라탄다. 행복하다고 말해라. 윤의 눈가에 눈물인지 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것이 맺혀 있다. 너는 나를 몰라. 나에 대해 그런 말 할 자격 없다. 내 주먹은 윤의 얼굴을 향해 있다.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려다가 참는다. 보이는 곳에 상처를 만들고 싶지 않다. 시간은 뜨겁게 달구어져서 축축 늘어져 있다. 윤의 상체 위에 내 상체를 눕힌다. 아프지. 어서 아프다고 말해라. 나는 윤의 귓가에 대고 말한다. 너는 미쳤어. 윤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내려다본다. 하얗다. 꽃잎 같은 얼굴이다. 윤이 상체를 일으켜 내 얼굴을 향해 침을 뱉는다. 순간 내 야만성을 가까스로 감싸고 있던 껍질이 깨진다. 미친 새끼, 살아 있는 게 사치다. 발로 윤의 가슴을 짓밟는다. 어때. 불공평하지. 너는 맞고 나는 때리니까. 행복하다고 말해. 그러면 사과한다. 쇼팽의 선율이 바람 한 점 없는 뜨거운 여름 위를 흐른다. 언제까지 이럴 거냐. 윤이 가쁘게 숨을 쉬며 말한다. 너 같은 새끼들 다 밟아 줄 거다. 티셔츠 등짝이 땀으로 젖어 있다. 그 이유만으로 구석에 웅크린 윤에게 발길질을 한다. 네 엄마한테 일러라. 내가 말할까. 길어야 한 달, 손가락 부목 깁스를 푸는 데 걸리는 기간만큼만 이런 기형의 대화를 하려고 했다. 하지 마. 부탁이다. 내가 어떻게 할까. 여름방학이 끝나면 다시는 이 세계를 방문하지 않으려고 했다. 차라리 죽어. 이 짓도 모두 적고 내 이름도 적고 그러고 죽어. 이마에서 땀이 흘러내린다. 그러면 그만둘래?
   약속한다.
   “눈이 오기 시작하네. 밤에 눈이 내린다고 하더니만.”
   택시 창밖으로 작고 하얀 점들이 드문드문 어둠에 섞여 있다. 저 눈은 잘못 배달된 편지처럼 어떤 기별도 받지 못하고 바닥에서 녹을 것이다. 목적지까지는 한 정거장 거리가 남았다. 나는 저 길가에 세워 달라고 말한다. 봄밤은 춥지 않다. 저 사월의 눈이라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덮어 줄 것만 같다. 경찰과 정신과 전문의는 윤이 열두 살에 생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그런 선택을 내렸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나는 그 여름의 폭력을 잊지 않았지만 모르는 척했다. 고백하자면 윤의 죽음과 그것과는 관련이 없는 줄 알았다. 친구의 가면을 쓰고 일 년에 한 번 그 바다에 갈 수 있었다. 스무 살 봄, 유서의 첫 장에서 그해 여름 내가 가한 폭력과 마주했다. 그날 밤 술을 먹으면서 나는 의혹과 쓸쓸한 신경전을 벌였다. 왜 선생님은 아들의 생일에 나를 그곳으로 불러냈을까. 내가 모르는 무엇이, 두 사람 사이에서만 피어난 비밀의 꽃 같은 게 있지는 않을까. 그 둘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니까.
   많은 눈들이 점점이 흩어져 날린다. 나는 이제 돌아온 탕자처럼 빈 몸으로 저 환한 불빛을 바라본다. 선생님은 이 깊은 밤 누구를 기다리는 걸까. 거실 통유리에 노란빛이 들어차 있다. 저 유리 안의 빛이 내게 묻는다. 이제 말할 수 있는가. 나는 눈을 감았다가 뜬다. 꽃눈이 달린 벚나무 가지마다 하얀 눈이 내려앉아 있다. 그 어느 겨울날의 새벽처럼 눈발이 하얀 꽃비처럼 날린다. 윤이 마지막으로 남긴 것은 백지였다. 유서의 두 번째 장은 숫눈처럼 하얀 공백이었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이 마당에 펼쳐져 있다. 나는 저 하얀 길에서 윤의 대답을 본다.
   저 숫눈이 녹기 전에 내 이름을 적을 것이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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