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방들에서 보내는 편지


낯선 방들에서 보내는 편지
멕시코(멕시코시티-푸에르토 바야르타-과나후아토)

 

김성중

 

 

 

 

 

   쿠바에서 멕시코로 날아오자 흑백 TV가 컬러 TV로 바뀐 것 같다. 자본주의의 화면, 대형 간판과 광고영상과 다국적기업의 심벌들이 커다랗게 떠오르는 화면, 나에게 익숙한 화면으로 말이다. 한인 민박집에서 첫날 여장을 풀자 뜨거운 물이 콸콸콸 나오는 게 ‘아깝다’는 생각부터 든다. 쿠바에서 묵은 아나의 카사에서는 딱 오 분만 더운물이 나왔기 때문에 나는 빨리 샤워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멕시코는 계획에 없던 나라라 완벽한 백지 상태로 왔다. 환율도 모르기 때문에 돈을 써도 얼마를 쓴 건지 모른다. 어디를 가야 할지도, 오늘 밤 어디에 배낭을 내려놔야 할지도 알 수 없다. 시끄러운 멕시코시티의 복판에 선 나는 공중에 커다란 물음표를 하나 걸어 놓은 채 기체 같은 마음으로 공란을 바라본다.
이 공란을 채운 것은 음식과 사람, 그리고 수많은 방들이다.

 

 

   1. 새로운 길동무

 

   지금까지 나는 극히 일반적인 배낭 여행자였다. 가이드북을 보고 여정을 짜고, 호스텔에 가서 짐을 내려놓은 뒤 사람들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다음 장소를 물색하는 식의. 그런데 내 길동무들은 그렇지 않다. 감각적이고, 생존력이 강했다. 생존력이 강하니까 감각에 완전히 의지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국과 멕시코 전역을 8개월간 돌고 쿠바에 내려왔다가 멕시코가 그리워서 다시 돌아온 A. A의 배낭은 90리터짜리다. 텐트를 비롯해 캠핑장비가 완벽하게 들어 있고, 흘러드는 곳에 흥얼흥얼 말뚝을 박고 지내다가 떠난다. 미국 여행 3개월간 100만 원도 쓰지 않은 이유는 아껴서라기보다 필요한 돈이 그것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A는 일종의 홍반장 같은 인물로 두루두루 재주가 많고 결이 단순하다.
   Q는 멕시코에서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스페인어에 능하다. 발랄하고 변덕스러운 생기가 넘치며 시무룩한 순간이 오면 긴 속눈썹을 다물고 잠을 청한다. 남미에서 거꾸로 올라왔기 때문에 여행에 지쳐 있기도 한 상태여서 멕시코에서 다시 원기를 회복한 후 다른 대륙으로 건너갈 예정이다. 두 사람 모두 돌아가는 비행기표 따위는 지니지 않은 장기 여행자들이다.
   이들이 어떻게 나를 ‘주워’ 갔는지 알 수 없으나…… 어쨌거나 이 친구들이 길동무가 되면서 내 여행은 전과 달라졌다. 남들 다 가는 박물관은 패스, 투어 프로그램은 절대 사절, 숙소는 무조건 카우치 서핑, 그 외 시간은 동네 마실 다니듯 흘러 다니기. 해변에서는 반드시 낮잠 자기. 뭐 이런 식이다. 현으로 치면 느슨해진 것 같기도 한데 여행의 강도는 올라갔다.

 

 

   2. 카우치 서핑을 하다

 

   여행자가 한 척의 배라면, 그날 머무는 방은 항구와 같다. 카우치 서핑이란 여행자들이 현지 사람의 집에 무료로 기거하는 것인데, 커뮤니티 웹이 있어 ‘방을 찾는 사람’ ‘방을 빌려주는 사람’들이 교류한다. 이렇게 자기 집의 한 곳을 개방하는 사람은 대체로 본인도 카우치 서핑으로 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거나, 다른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다. 하루에 얼마 돈을 내고 쓰는 호스텔이 아니라 머무는 동안 공간을 함께 나누는 형태여서(휴지도 치약도 음식도, 시간의 일부도 나누는 형태여서) 내게는 낯설고 놀라운 경험이었다.
   내가 처음 머문 곳은 페드로네 집이었다. 그에게는 작업실처럼 쓰는 옥탑 방이 하나 있는데 통째로 우리에게 내주었다. 이층침대 하나, 커다란 침대 두 개가 귀퉁이에 놓여 있고 티브이와 소파가 놓여 있는데 벽에는 술병들이 가득하고 소파에 앉자 분필가루 같은 먼지가 뽀얗게 올라온다. 내 눈이 동그래졌는지 페드로가 “수시오(더러워)?”라고 묻는다. 나는 “노 아이 프로블레마!(문제없어)”라고 씩씩하게 대답한다. 공짜로 재워 주는데 군소리는 무슨.
   좀 지저분하긴 해도 우리는 이내 페드로와 그의 집이 맘에 들었다. 채광 때문에 지붕 일부만 투명 슬레이트로 마감을 했는데 길쭉한 천장창으로 비행기가 날아가는 모습이 보였고 낡은 대로 운치가 있어 극단적으로 좋게 보자면 영화 〈중경삼림〉 세트장 같기도 했다. 우리가 ‘포돌이’라고 별명을 지어 준(뜻을 묻는 페드로에게 한국말로 ‘귀여운 남자’라는 뜻이라고 둘러댔다) 페드로는 멕시칸답지 않게 조용한 성격에 무척 순한 데다, 금융계에서 일한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입성(방울달린 털모자에 색목도리)을 하고 아침마다 올라와 오늘은 뭐 하니, 필요한 거 없니, 라고 물어봐 주면서 멕시코시티에 머무는 내내 저녁마다 어울렸다.
   두 번째 카우치 서핑을 한 곳은 푸에르토 바야르타에 있는 K의 집이다. K는 미국에서 엔지오 단체에 있다가 멕시코로 건너와 남자 친구와 함께 지내면서 투어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이다. 궁극적으로는 다시 활동가로 돌아가겠지만 현재는 건전한 히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 두 사람은 해변도시를 돌며 상점의 지도를 만들어 팔았다. 그중 하나를 보여줬는데 일러스트가 특히 예쁘고 지도의 만듦새도 좋았다. ‘지도를 만들어 팔며 해변도시를 돌아다니는 커플’이라는 조합이 멋지게 느껴져서 속으로 소설 캐릭터로 만들어 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다 좋은데 방이 원룸이다. 실내가 넓은 편이어서 우리는 대가족처럼 함께 기거했다. K와 아드리안이 출근하면 우리는 술렁술렁 해변에 가거나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다 저녁에 퇴근한 두 사람과 함께 밥이나 술을 먹었다. K의 방은 바깥이 아무리 더워도 늘 시원했고, 화장실에 문 대신 커튼만 걸려 있어 주의를 다소 기울여야 했고, 조도가 낮은데 묘하게 편안했다. 위치는 아주 좋아 해변에서 오 분 거리이고, 버스들도 전부 가깝게 다닌다.
   푸에르토 바야르타의 해변을 처음 본 내 감상은 촌스럽게도 “〈CSI 마이애미〉 같아!”였다. 그림 같은 넓은 해변에 호텔과 리조트가 빼곡하고 수없이 많은 미국인들이 돌아다닌다. 우리에게 호객을 하는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샌프란치스코에서 왔니? 아니면 캘리포니아?” 이렇게 물어 온다. 동양인에게 으레 “중국인? 일본인?” 이렇게 묻기 마련인데 얼마나 미국계 아시아인이 많으면 이렇게 물어 올까? A는 “비대한 그링고들의 살에 바른 오일 냄새가 진동하는 해변이여……”라고 냉소적으로 말했으나 관광객을 피해 버스를 타고 먼 해변으로 가면 근사한 곳이 수없이 나온다.
   세 번째 머문 집은 과나후아토의 페르난다네 아파트. 정확히 말하자면 페르난다 남자 친구의 아파트다. 카우치 서핑 글을 올린 사람은 페르난다인데, 그녀의 남자 친구가 거의 페리(줄여서 이렇게 불러 달라고 했다)와 함께 살기 때문에 방이 비어 머물러도 좋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아파트는 남자 셋이 사는 곳으로, 옆방은 콜롬비아에서 온 카를로스와 후안이 쓰고 있었다. 거실에서 우리끼리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자정 넘어 갑자기 두 청년이 들이닥치더니 부지런히 요리를 하면서 틈틈이 마리화나를 피워댔다. 조그만 파이프에 웬 약쑥 같은 것을 꾹꾹 눌러 담기에 뭔가 싶었는데 마리화나였다. 나로서는 처음 보는 장면인데 너무나 자연스러워 감히 놀라는 표정을 짓지 못했다.
   과나후아토는 산 중턱에 파스텔 블록처럼 색색으로 칠한 집들이 인상적인 작은 마을이다.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종교색이 짙다. 그래서 마초이즘도 강하고 게이들에게 유난히 적대적인 문화라는데, 술집 〈안티구아〉의 주인 롤로는 그렇지 않다. 〈안티구아〉에서는 롤로의 친척 공장에서 공수해 오는 메스칼(테킬라와 증류 방식은 비슷하나 도수가 더 높은 술)을 한 잔을 10페소(900원)에 파는데, 작은 세라믹 잔 위에 오렌지 조각을 올려 준다. 오렌지를 한 모금 물고 잔을 쭉 들이켜면 혀와 식도가 ‘시원하게 타들어가는’ 느낌이 드는데, 나는 테킬라보다 롤로네 집 메스칼이 훨씬 좋았다. 롤로는 5월에 한국에 여행을 올 예정이라 우리 테이블에서 함께 어울렸는데, 술을 잘 먹는 사람에게는 공짜로 술을 더 주는 바람직한 습관이 있었다.
   과나후아토에서 만난 또 다른 인상적인 친구는 한국 식당을 하는 M이었다. M은 대학 2학년 때 중퇴를 하고, 친구와 둘이서 사업계획서를 만들어서 부모님께 보여드린 후 2년 치 등록금을 미리 타내 멕시코에 가게를 차렸다. 현지 식당과 비슷한 가격으로 불고기, 제육볶음, 비빔밥, 카레 등을 만들어 파는데 내가 보는 동안에도 멕시칸들이 많이 사먹고 테이크아웃도 심심찮게 이어졌다. 승승장구하다가 건물 전체가 보수에 들어간 작년 ‘11월의 난’(M과 동업자가 이렇게 이름붙인 사건으로 가게 정문과 창문까지 나무로 봉해 놓아 모두들 문 닫은 줄 알고 단골이 끊겼다고 한다)에 치명타를 맞고, 지금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너무 열 받아서 가게 창문에 로사리오(묵주)를 잔뜩 걸어 놨다니까요.” M은 독실한 기독교인인 것 같은데, 액운을 물리치는 부적처럼 묵주를 창문마다 걸어 놓았다니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문장웹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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