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야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철야

 

   송경동

 

 

 


   천장 있는 곳에서
   일해 보는 게 소원이던 시절
   발전기 내리고
   쓰러져 잠든 새벽이면
   작업선들도 곤했다

 

   전기선 위에 그라인더선
   그라인더선 위에 절단기선
   절단기선 위에 알곤선
   알곤선 위에 용접홀다선
   용접홀다선 위에 체인블록 쇠줄
   체인블록 쇠줄 위에 물 먹은 동앗줄
   물 먹은 동앗줄 위에 수평호스
   수평호스 위에 사게보리 실까지
   얽히고설켜
   잠든 모습이 착했다

 

   하늘 위에서 보면
   작업장 이곳저곳 쓰러져 누운
   우리 모습이 또 그렇게
   칡넝쿨마냥 얽혀 보였을 것을
   깊은 잠들에 빠져
   우린 우리의 얽힌 모습을
   볼 수 없었다

 

— 『꿀잠』(삶이 보이는 창, 2006)에 수록

 

 

   추천하며


   그들은 철야를 한다. ‘천장이 있는 곳’에서 일해 보는 게 ‘소원’이었으나 길고 고단한 노동 뒤에 역시 ‘천장이 없는 곳’에서 잠이 들었다. ‘소원’이라고 하였으니 천장이 없는 작업장에서의 노동이 어떠한 것인가를 함부로 짐작키 어렵다. 그 작업장에서 밤샘 노동을 하고 새벽에 잔다. 기절하듯 쓰러져 잔다. 작업선들이 얽히고설켜 잠든 모습과 노동자들이 얽히고설켜 잠든 모습이 하나의 장면으로 겹쳐진다. 하늘에서 보면 마치 “칡넝쿨마냥” 얽혀 작업선과 노동자가 구별되지 않을 것만 같다. 하지만 이들의 동일성은 얽히고설켜서, 지쳐서 쓰러져 잠든 모습 속에만 있지 않다. ‘생산수단’과 ‘노동력’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은 동일하게 상품으로, 자본의 가치 증식에 복무하는 상품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가치는 증식하지만, 인간의 가치는 증대되지 않는다. 그들의 노동은 길고 그들의 노동은 곤하다. 칡넝쿨마냥 엉켜버린 것은 비단 이들의 잠든 모습뿐이겠는가. 그들은 언제쯤 상품이 아닌 진정한 인간의 얼굴로 잠들 수 있을 것인가.
   작업장의 소음이 고된 고요 속에 묻힌 새벽, 천장도 없는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이 이곳저곳에 쓰러져 누웠다. 그들의 얽힘은 거칠지만 그들의 얽힘은 이렇게 서정적이다. 노동자이며 시인인 송경동에 의해 고달픈 노동의 현장이 ‘서정적인 진실’로 기록되었다. 2연의 작업선들을 한 줄 한 줄 따라 읽으니 이 시를 쓴 시인이 곧 노동자인 줄을 알겠다. 시집의 표사에서 백무산 시인은 송경동이 “‘나의 시’를 놓아 줌으로써 시가 그들의 것이 되도록 하고 있다”고 썼다. 시와 정치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시가 노동자의 것이 되도록 하는 일이 지금의 우리에게서 얼마나 먼가, 하는 생각을 한참을 하였다.

 

(문학평론가_고봉준, 김나영, 김영희, 양경언)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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