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와〉 사람

십년감수(十年感秀)_시

 

  나무 〈와〉 사람

 

   이순현

 

 

 


   1

 

   나무
   사람

 

 

   2

 

   나무의 깊이를 다 끌고
   잎사귀들이 사라지고
   기슭을 찰랑이던 바람이
   싸늘하게 불어간다
   물이 마르면 욕망도 마른다
   줄기 어디를 짚어 보아도
   맥이 잡히지 않는 나무

 

 

   3

 

   나무 아래에 있는
   사람이 위를 올려다본다

 

   자잘한 가지 사이로
   짙푸른 바닥

 

   동체가 은빛 나는 비행기
   나무를 헤엄쳐간다

 

 

   4

 

   나무 / 사람
   사이에
   〈와〉

 

   안개처럼 떠 있다

 

   중력을 받지 않는다

 

   나무 〈와〉 사람
   따로따로

 

   있다

 

 

   5

 

   모든 사이에
   〈와〉
   굴복시킬 수도
   추방할 수도 없는

 

   실존의 발원지

 

— 『내 몸이 유적이다』(문학동네, 2002)에 수록

 

 

   추천하며


   이순현의 시를 읽으며, 시인이 사물과 세계를 ‘그것 그대로’ 존중하는 방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를테면 사물과 사물을 시인의 특정한 관념 아래 유기적으로 통합하지 않고, 각 사물의 존재와 그것들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방식에 대해서 말이다. 이순현은 사물과 세계에 집착된 자신의 의도와 관념을 최대한 소거한 채, 사물이 지닌 그대로의 ‘자연성’과 사물들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를 바라보고 묘사하려 한다.
   나무가 있고 사람이 있다. 나무와 사람. 이들은 자신에게 부착된, 시인의 특정한 서정을 대변하기 위해 이곳에 있지 않다. 이때에 <와>는 나무와 사람을 연결하여 특정한 맥락으로 의미화하지 않는다. <와>는 사물과 사물을 엮어 의미를 생성해 내는 고정점이 아니며, 의미의 고정점이 없으므로 나무와 사람 사이에는 좀처럼 맥이 잡히지 않는다. 이순현의 세계에서 <와>는 사물과 사물 사이에 “안개처럼 떠 있다”. 그것은 어떤 중심의 인력에 의해서도 당겨지지 않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무와 사람은 특정한 관념으로의 의미화 혹은 특정한 세계로의 맥락화에 복무하지 않은 채, 다만 “따로따로/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따로따로”의 존재론은 어떤 불화의 표지와도 무관하다. 이곳은 시인에 의해 구성된 동일성의 세계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성으로 미만한 세계이며, 그리하여 모종의 불화로도 일치로도 포섭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함께 있지만 그 함께 있음에는 어떤 질서도 위계도 없다. 사물과 사물 사이에, 나무와 사람 사이에 <와>가 있다. 모종의 서정의 메커니즘과는 무관하게, 어떠한 권력의 표지와도 무관하게, 그리하여 특정한 맥락에 의한 일치도 불화도 없이 무연하게 존재하는 <와>라는 장소. 그 장소가 시인에 의해 이렇게 보증될 때 안개처럼 떠 있는 그곳이 바로 “실존의 발원지”다. 한 편의 시를 마치 시론처럼 읽었다.

 

(문학평론가_고봉준, 김나영, 김영희, 양경언)

 

 

   《문장웹진 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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