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중(2013) Corazon Limpio - 김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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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razon Limpio

 

김성중

 

 


여행 경로: 아바나-카마구에이-바야모-산티아고 데 쿠바-바라코아-트리니다드-산타클라라-비냘레스

 

 

   1. 노베르트 징크스

 

   3주간 쿠바 전역을 여행했다. 쿠바는 길쭉한 고구마처럼 생긴 섬나라인데 나는 미리 약속해 둔 길동무와 합류하기 위해 중부 지역부터 여행을 시작해 동쪽 끝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트리니다드로 올라와서 서쪽으로 올라갔다.
   1월 말까지 소설 마감을 하느라 피 마르는 전쟁을 치르고(열네 시간의 시차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알다시피, 마감 일분일초의 세공질은 보다 나은 소설로 도약할 엄청난 집중력이 생길 수밖에 없는 골든타임인데 이걸 열네 시간이나 앞당기다니 미칠 노릇 아닌가? 알다시피, 이건 말도 안 되는 핑계다. 막판까지 지우개똥을 생산할 수밖에 없는 비루한 실력을 탓해야지 뭘 어쩌겠나) 배낭을 꾸려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달려갔다. 야간 버스에 몸을 싣고 잠을 청하기 위해 의자를 뒤로 젖히니 ‘아아, 시작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을 떠나온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마도) 내 인생 최고로 긴 배낭여행, 라틴아메리카 여정은 카마구에이행 버스에서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전에 아바나에서 만났던 철학과 대학생 Y와 재회했다. 우리는 카마구에이, 바야모, 산티아고 데 쿠바까지 세 도시를 함께 했는데 여행 초반이어서 그런지 만나는 곳마다 색다르게 느껴졌다. 카마구에이에서는 거미줄 같은 골목을 쑤시면서 동네 참견하고 다니던 것이 재밌었고, 바야모에서는 비보이 댄스를 추는(살사 댄스가 아니라!) 마이클과 노베르트를 만나 연습실에 구경 갔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쿠바에서 나는 ‘노베르트 징크스’라 불러도 좋을 만큼 줄줄이 노베르트를 만났다. 아바나에서 스티브 바이를 좋아하는 일렉트릭 기타리스트 노베르트를 만난 것을 시작으로 비보이 노베르트, 카사 주인 노베르트, 비시 택시(자전거 택시)를 모는 노베르트 등등. 이 이름이 흔한 건가?
   노베르트들은 하나같이 친절했다. 뭐, 다른 쿠바노들도 마찬가지로 말이다. 예쁜 여대생과 함께 다녀서 그런가 외모 칭찬을 듣지 않는 날이 없으니 나중엔 공주병에도 권태가 올 지경. 동양 여자를 보면 ‘신기하게 생겼네’라는 말을 ‘예쁘게 생겼네’로 표현하는 것 같다. 뚱뚱하든 말랐든 착 붙는 옷을 즐겨 입는 쿠바 사람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그야말로 여자는 여성성을 왕창 뽐내고, 남자는 남성성이 시키는 대로 그 꽁무니를 열심히 쫓아다닌다. 햇빛에 달구어진 골목길에는 사람을 포함해 싱싱한 동물들(?)이 가득한데, 나는 풍경에 홀려 까맣게 타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2. 혁명의 발자국을 따라서

 

   쿠바를 여행하다 보면 ‘26’이라는 숫자와 ‘7’이라는 숫자 그래피티를 자주 만난다. 이것은 혁명의 신호탄과도 같은 1953년 7월 26일 ‘몬카다 병영 습격 사건’을 의미한다. 미국의 꼭두각시인 바티스타 정권에 맞서기 위해 반란군을 조직한 피델은 산티아고 데 쿠바 외곽에 있는 몬카다 병영을 공격한다. 이 공격은 부분적으로만 성공했고 대부분 사살되거나 체포되어 무서운 고문을 받았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바뀐 실내로 들어가면 당시의 사진들, 온통 피로 젖어 꾸덕꾸덕해진 군복들, 고문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 박물관에는 누선을 건드리는 사물들이 많다. 고문 도구의 전시물 가운데 야베(열쇠)라고 적힌 쇠막대기를 Y가 발견했는데, 안내인에게 물어본 결과 교회 열쇠라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교회 열쇠가 고문 도구로 변한 것이 너무도 먹먹하여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기억이 난다.
   한편 감옥에서 나온 피델은 멕시코에서 자금을 확보해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으로 들어가 게릴라 부대를 양성하는데, 이 과정에서 훈련을 담당한 대령이 최우수 학생으로 뽑은 사람이 체 게바라다.
   그 자취를 밟기 위해 시에라 마에스트라 산으로 올라갔다. 과연 야자수 산맥이 울울창창해 파르티잔(빨치산) 양성소가 되기에 최적의 조건으로 보였다. 산 깊숙이 들어가서 지프차를 바꿔 타고 올라간 후, 거기서부터 다시 서너 시간가량 산을 타며 당시의 건물을 돌아보는 것이 우리의 일정이다. 햇빛이 뜨거워지고 산이 깊어지자 금세 숨이 찬다. “우린 죽어도 게릴라 노릇은 못 할 거야” Y와 나는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헉헉거리며 올라갔다. 이윽고 너른 들판이 나오고 첫 번째 박물관이 나온다. 거기서 또다시 가파르게 올라가면 피델이 육 개월간 머물렀다는 나무 오두막집이 등장한다.
   위장술 때문에 이 집은 재미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우선 집에 문이 없다. 벽 전체를 통째로 열어야 들어가게 되어 있다. 또 마룻바닥을 열면 크지 않은 은닉처가 나온다. 이 와중에도 시원한 맥주는 마셨다는 증거로 자그마한 냉장고도 있다. 이외에도 한쪽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이층짜리 도서관도 있고 신문사와 라디오 방송국도 있다. 젊은 이상주의자들이 모여서 어떤 나날을 보냈을지 떠올리면 혁명을 낭만적으로 상상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 많은 젊은 죽음들. 산타클라라에 갔을 때 나는 체와 동지들이 안장된 무덤(말하자면 납골당 같은 형태로, 이름이 적힌 작은 판 옆에는 매일매일 바뀌는 카네이션이 한 송이씩 꽂혀 있다. 체의 무덤은 다른 이보다 조금 크지만 별도의 장식 없이 조명으로 별 모양 하나만 더 만들어 놓아 인상적이었다)과 야외에 보다 넓게 조성된 무덤들의 생몰연대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간혹 오래 산 사람도 있지만 거개가 너무 젊었고, 십대들도 적지 않았다.
   여기서 무덤 얘기로 살짝 빠지자면 내가 본 무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콤파이 세군도 할아버지의 무덤이었다. 산티아고 데 쿠바의 공원묘지에서 발견한 그 무덤에는 기타가 새겨져 있고 주위로 치자꽃 무늬가 돋아 있다. 이곳은 ‘죽음 아파트’라고 해야 할까, 가족들이 층층이 묻혀 5층짜리 무덤도 있다고 하는데, 세군도 할아버지는 유유자적 홀로 묻혔다. 팬들이 다녀간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꽃잎이 아직 시들지 않았다.

 

 

   3. 레게머리를 풀다

 

   산티아고 데 쿠바에서 레게 머리를 했다. 하고 싶어 한 것이 아니다. 달랑 한 가닥을 했는데 이거 푸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그 사연은 이렇다.
   산티아고는 동쪽에서 가장 큰 도시로, 아바나와는 경쟁적 관계였다고 한다. 원래 쿠바의 첫 수도이기도 하고, 혁명이 이곳에서 시작되어 서쪽으로 갔으니 전통적인 환락가였던 아바나와는 여러모로 다를 수밖에. 사람들의 모습 역시 자메이카 영향이 강하게 느껴진다. 확실히 흑인이 많고, 말에도 사투리가 묻어(끝을 더 웅얼거리는) 알아듣기 힘들었다.
   제2의 도시이자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에 왠지 부산처럼 느껴지는 이곳에서 12년간 머리를 자르지 않았다는 에스탈린을 만났다. 쿠바노답지 않게 술과 담배와 고기를 전혀 하지 않는 이 아저씨는 머리가 허리를 넘어 엉덩이를 덮는다. 우리에게 산티아고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을 보여주겠다며 안내를 했는데, 한참 언덕으로 올라간 끝에는 가슴 아픈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재작년 태풍 샌디의 영향으로 대규모의 달동네 게토가 형성된 것이다. 에스탈린은 야경이 가려져서 유감이라고 하는데, 남들은 집이 날아간 마당에 할 소리가 아니지 않은가.
   사회주의 국가라고 하나 가난한 나라인 쿠바에서 빈민가를 본 것은 아바나와 산티아고 데 쿠바, 두 군데였다. 즉 가장 큰 대도시 두 군데만 슬럼가가 형성된 것이다. 다른 지방들은 산동네라고 해도 그렇게 못 사는 느낌이 아닌데(오히려 지방 주택들이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대도시 슬럼가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잠깐 쉬어가자고 하고 나무 밑에 앉아 불빛을 보고 있는데 에스탈린이 내 머리 일부를 레게로 만들어주겠단다. 꼭 시가만 한 굵기로 마구 헝클어서 비비 꼬는 식인데, 흑인 머리야 그렇게 해도 풀리지 않고 폼이 나지만 내 머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할 리 없지 않은가. 에스탈린이 땀을 뻘뻘 흘려 가며 20분에 걸쳐 최대한 헝클어 한 가닥을 기어이 완성했는데, 나중에 숙소 거울에 비춰보고 암담했다. 이건 예쁘지도 멋있지도 않고 이상하기만 하잖아? 게다가 두피가 당겨 죽겠는데 이걸 어떻게 풀지? 그래도 해준 성의를 봐서 산티아고에서는 이 머리를 하고 다녔다. 도시를 떠나자마자 트리트먼트를 처덕처덕 바르고 눈알이 빠지도록 한 가닥 한 가닥씩 풀어 겨우 원상복구 했다.
   Y가 떠나고 난 후 ‘바라코아’라는 쿠바 동쪽 끝 마을에 갔는데, 전혀 비슷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강릉이나 해남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람들도 유난히 착해서 이곳에서는 계속 뭔가를 받기만 한 것 같다. 혼자 다니니까 누군가가 자꾸 안내를 해주고, 해변에서 조개껍데기를 줍고 있으면 내가 주운 조개로 즉석에서 목걸이를 만들어준다. 또 다른 누군가는 코코넛 오일을 주고, 누군가는 야자수에 올라가 코코로코(직역하면 미친 야자수? 약간 술맛이 나는 열매다)를 따서 마시라고 준다. 해변에는 나 외에도 호주에서 온 법대생 크리스티안이 있었는데, 그날 만난 쿠바 친구들과 함께 센트로의 클럽에 놀러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떠나올 때 터미널까지 마중 나와서 초콜릿까지 쥐어주는 등, 온통 따뜻한 호의만 받은 곳이라 떠나오기가 싫었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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