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딩이 가족사 외 1편

송경동

 

문딩이 가족사

 

 

 

이젠 양 무릎에 인공관절을 박고 포도시
막내여동생의 딸 셋과
소 네 마리를 키우며 사는, 칠순이 넘어
마침내 주도권을 쥐게 된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종종 ‘저 문딩이’가 된다

 

그 말을 배워 막내여동생의
세발배기 셋째 손녀 미연이가
어린이 집에 가서 씩씩하고 똘똘하게
여러 번에 걸쳐 말했단다
우리 할아버지는요… 문딩이예요

 

그 말을 전해들은 영민한 여동생이 안되겠다 싶어
시간이 날 때마다 가르쳤단다
미연아, 할아버지는 문딩이가 아니라 가브리엘이야, 알았지
워낙 영특한 아이라 효과가 있었는지
얼마 후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선생님들에게
다시 씩씩하게 할아버지 자랑을 하더란다
우리 할아버지는요… 문딩이가 아니라 가브리엘이에요

 

그래서 요 근래 온 집안이 협정을 맺어
문딩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있다고
이젠 저도 마흔이 되어간다는 여동생이
아직도 샛별처럼 초롱초롱한 눈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만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잊을 수 없던 상처들도 세월이 가면
이렇게 조금은 맑아지나보다

 

 

 

 

 

어떤 교조주의자에게

 

 

 

오,
당신은 나에 대해서
뭐가 그리 궁금하나요
나는 당신에게
내가 느낀 그 어떤 것도
말해주고 싶지 않아요
당신은 해방된 사람이 아니었으니까요
당신은 당신 안에만 집요하게 갇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난 더 이상 그 누군가의
스탈린주의적 편집증을 위해
그 무오류의 순결함을 위해
내 썩어가는 영혼을 까발려주기 싫어요
문득문득 나도 햇볕이 그리웠다는 이야기를
간혹 엉망으로 무너지고 싶을 때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당신에게 해주기 싫어요
나의 진정한 친구들이 누구였다고
당신에게 진술해주기가 싫고
당신이 얼마나 깨끗한 영혼인지를 위해
내가 얼마나 병든 영혼인지를 얘기해주고 싶지 않아요
그 모든 고백이 당신의 가슴께로 가지 않고
차디찬 머리로 갈 거니까요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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