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제2회)



서울(2회)


손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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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가 기침을 할 때마다 코끝에서 콧물이 푸르르 소리를 내며 튀었다. 새벽이 다가올수록 개의 숨소리는 가팔라졌다. 담요 속에서 개는 이따금 경련을 일으켰고 고개를 쳐들어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소년은 끓인 물을 적당히 식혀 개의 입에 대주었다. 개는 몇 번 혀를 내밀어 핥아먹었다. 동생은 한 팔로 개를 감싼 채 그 옆에 누웠다. 동생이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형, 뭐라도 해봐.”
   소년은 배낭에서 아스피린을 꺼냈다. 아스피린 두 알을 집게손가락과 가운뎃손가락으로 겹쳐 잡은 뒤 개의 입을 벌려 목구멍으로 던지듯 밀어 넣었다. 소년은 개가 뱉어낼 수 없도록 주둥이를 손으로 잡았다. 개는 저항이라도 하듯 한두 번 몸을 꿈틀거리기는 했으나 그예 순순히 아스피린을 삼켰다. 소년은 다시 물그릇을 개 주둥이 앞에 놓아 주었다. 소년은 개의 주둥이를 잡았던 손을 잠시 내려다본 뒤 수조에 물이 차오르듯 짐칸을 채우는 아침의 청량한 기운을 느끼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게 효과가 있을까?”
   “그래, 있을 거야.”
   “죽지는 않겠지?”
   “운이 좋다면.”
   모녀가 먼저 잠들었다. 동생은 자다 깨다를 반복했지만 정오 무렵에는 가볍게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졌다. 소년은 격벽에 등을 기대고 두 다리를 뻗은 채 졸았다. 소년은 옆으로 스르르 기운 윗몸을 바로 세울 때마다 실눈을 뜨고 개를 보았다. 늦은 오후 개의 숨소리가 평온해진 것 같았다. 평온하다 못해 죽은 듯했다. 소년은 눈을 크게 떴다. 횡격막이 오르내리지 않았다.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떨리는 손을 뻗어 개의 가슴팍을 만졌다. 소년은 한참 동안 그렇게 있다가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죽은 듯이 잠든 개의 눈곱을 떼어 주고 한 시간 정도 개의 몸을 부드럽게 문질러 준 뒤 소년도 그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네 마리의 새끼를 품었다가 이제는 푹 꺼져버린 개의 뱃구레에 상처처럼 돋은 젖꼭지가 보였다. 개의 몸에서는 어미의 냄새가 났다. 시큰하면서도 달큰한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뚜껑을 연 분유통에 코를 갖다 댄 기분이었다. 십 분 뒤에 소년은 발작하듯 기침을 하는 개의 뒤를 따라 짐칸을 나섰다. 동생과 모녀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레 짐칸의 문을 닫았다. 소년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나이프를 만진 뒤 다시 외투의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권총을 확인했다. 개는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절룩이며 어디론가 갔다. 소년은 개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고 눈으로만 개를 뒤쫓았다. 가까운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무너진 건물과 파헤쳐진 도로를 씻어 내린 빗물이 한낮의 태양에 조금씩 증발하면서 대기에는 시멘트 냄새와 흙냄새가 섞였다. 햇빛은 강렬하지 않았지만 비온 뒤라 더 눈부셨다. 저 멀리 양재IC 너머가 소란스러웠다. 소년은 그쪽에서 마주쳤던 노인을 잠깐 떠올렸다. 소년은 고속도로 가장자리에 앉은 개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어쩌면 빗속에서도 개는 그처럼 제 새끼들이 묻힌 곳을 지켰을 거다.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는 비를 온몸으로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오후가 기울었다.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들 무렵 개는 앉은 자리에서 구토를 했다. 개의 주둥이로 멀건 토사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개는 눈을 껌벅이다 숨을 몰아쉬더니 그 자리에 엎드린 채 조용히 눈을 감았다. 소년은 잠시 망설였다. 짐칸 안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생의 헬멧이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도 들렸다. 소년은 허리를 굽힌 채 부서진 차들 사이를 조심스레 빠져나가 개에게 다가갔다. 개가 눈동자를 굴려 소년을 보았다. 내버려두라는 뜻인 것만 같았다. 소년은 다시 망설였다. 저 멀리 어느 건물 위로 수없이 많은 실루엣이 바닥에서 솟은 것처럼 나타났다. 기괴한 소리가 함성처럼 퍼졌다. 소년은 개 옆에 잔뜩 웅크린 채 그 실루엣들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 소년은 자신을 부르는 동생의 부주의한 목소리를 들은 것 같았다. 소년은 입술을 깨물고 한쪽 손을 개의 몸 아래 집어넣었다. 차갑고 딱딱한 개의 몸에 손이 닿자 소년은 진저리를 치며 몸을 떨었다. 팔에 힘을 주어 개를 들어 올리자 개의 몸이 옆으로 활처럼 휘었다. 무거웠다. 소년은 두 팔로 감싸 안고 개의 허리를 무릎으로 받친 뒤 숨을 골랐다. 소년은 개를 품에 안은 채 절룩거리며 관광버스 짐칸으로 향했다. 짐칸으로 돌아갈 때까지 소년과 개는 서로를 줄곧 바라보았다. 개의 눈에 원망의 빛이 떠올랐다. 소년과 개는 말없이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따뜻한 물에 미숫가루를 타 마시는 걸로 식사를 마친 그들은 소리 없이 찾아오는 밤을 맞으며 또다시 길고 긴 어둠과 대면할 준비를 했다. 용변을 해결하고 각자 짐칸 안에 자리를 잡은 뒤 손전등에 의지해 손톱과 발톱을 깎거나 굳은 몸을 주무르면서 시간을 보냈다. 소년은 스스로 상처를 소독한 뒤 동생 옆에 다리를 길게 뻗고 앉았다. 소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아스피린을 서너 번이나 헤아리다 두 알을 골라 개에게 먹여 주었다. 소년이 개의 몸을 주무르자 소녀도 그 옆에 앉아 소년처럼 개를 주물렀다. 개를 주무르던 소년과 소녀의 손이 잠시 스치기도 했으나 어두웠기 때문에 동생과 여자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소년은 소녀의 시선이 동생을 향한다는 걸 알았다. 소녀는 기침이 멎은 뒤로 생기를 되찾았다. 이따금 시무룩해지면서 슬픔에 잠기기는 했으나 훌쩍이지는 않았다. 어두웠지만 소년은 소녀의 얼굴을 표정까지 그려낼 수 있었다. 살이 내려 홀쭉해진 두 뺨에 광대뼈가 도드라졌지만 짙은 눈썹 아래 적당한 두께로 쌍꺼풀이 진 두 눈이 그 얼굴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콧날이 날카로워서 고분고분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슬며시 웃을 때면 부드럽게 거친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고 얇은 두 입술이 맞닿아 하나의 선을 그리면 명상에 잠긴 것처럼 보였다. 몸이 나아졌지만 말을 아낀 탓에 무언가에 감탄하며 탄식하듯 내뱉는 음성만으로도 소녀의 내면을 엿본 기분이 들곤 했다. 소녀의 어머니는 선이 굵은 얼굴이었으므로 소년은 소녀가 아버지를 좀 더 닮았으리라 짐작했다.
   소년은 다리에 통증이 느껴지면 개를 주무르던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주무르기도 했다. 자정 즈음에 누군가 가까운 곳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여럿이었다. 여자는 짐칸의 문에 바투 다가앉아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남쪽으로 멀어져 갔다. 새벽이 가까웠을 때 소년이 입술을 깨물자 소녀가 슬그머니 소년의 종아리에 손을 댔다. 소년은 다리를 움찔 떨긴 했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소녀는 잠시 기다렸다가 소년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확신이 생기자 조금씩 손에 힘을 주어 소년의 다리를 주물렀다. 소녀의 손이 상처 부근을 지나자 소년이 나지막하게 신음을 흘렸다. 소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소년의 무릎을 더듬은 뒤 허벅지에 손을 올려놓았다. 조금 뒤 소녀는 소년의 허벅지를 부드럽게 주물렀다. 통증은 가셨지만 소년의 몸은 뻣뻣하게 굳었다. 소년은 고개를 돌려 동생 쪽을 보았다.
   아침이 되어 모두 잠자리에 들었지만 소년은 잠들지 못했다. 졸음이 해일처럼 밀려왔으나 가쁘게 숨을 쉬는 개의 눈동자에 고인 슬픔 혹은 체념이 잠으로 빠져드는 소년의 멱살을 잡았다. 소년은 전날처럼 등을 기대고 앉은 채 개를 살폈다. 잠으로 미끄러졌다가 빠져나올 때마다 실눈을 뜨고 개와 동생을 보았다. 소녀도 보았다. 그런 소년을 여자가 이따금 눈을 뜨고 보았다. 오후가 되자 개의 숨소리가 평온해졌다.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기어가 개의 가슴팍을 오래도록 내려다보았다. 개는 정말로 평온했다. 무엇이 개를 죽음 직전에서 구해 줬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스피린이 아닌 건 분명했다.


   소년의 눈앞에 죽음이 다가왔다가 사라진 적이 있었다. 소년은 초등학교 사학년이었고 동생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때였다. 아버지와 동생이 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소년은 아버지의 몸에서 풍기는 옅은 술 냄새를 맡았다. 동생은 겁에 질린 얼굴이었다. 초겨울이었으므로 추위에 질린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평소와 달리 수다스럽고 다정한 아버지가 두려웠다. 아버지는 소년과 동생을 좌우에 거느린 채 비칠비칠 학교 근처 아파트 단지로 걸어갔다. 소년은 도망가고 싶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이렇게 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꼭대기 층에 닿았을 때 울리던 알람은 불길하게 경쾌했다.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타인처럼 낯설었다. 어쩌면 그것이 아버지의 본색인지도 몰랐다. 아버지를 따라 소년과 동생은 아파트 옥상에 올랐다. 고원처럼 바람이 불었다. 바람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년을 스쳐 지나갔다. 자, 이제 우리 좀 더 좋은 세상을 보러 가는 거다. 아버지의 갈라진 음성을 바람이 흩뜨렸다. 소년은 그보다 더 비열한 아버지를 본 적이 없는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소년과 동생의 뒷덜미를 왼손과 오른손으로 잡은 뒤 오랜 노동으로 단련된 팔뚝에 힘을 불끈 주어 들어 올렸다. 그때 소년은 아파트 주차장을 내려다보았고 그곳이 머나먼 미래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공간이 시간으로 느껴질 때의 기분은 멀미가 날 때와 비슷했다. 그러나 소년은 그때까지도 정확히 아버지가 무얼 하려는지 알지 못했다. 아파트 옥상에서 두 아들을 던져버릴 수 있을 만큼 냉혹한 인간이 아버지일 수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죽음이 이처럼 예고도 없이 찾아올 리는 없다고 믿었기 때문인 듯했다. 소년의 운동화 끝이 옥상에서 떨어질락 말락 할 때 아버지의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는 소년과 동생을 내려놓은 뒤 전화를 받았다. 소년은 고모와 통화하는 아버지의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에 당혹스러워하는 기색이 떠오르는 걸 보았다. 소년은 옥상에 벗어두었던 책가방을 멨다. 동생이 소년의 뒤를 따랐다. 그날 마음속에서 아버지를 지우지는 않았다. 그날이 떠오를 때마다 그날의 의미를 곱씹으며 세월을 보내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아버지가 지워져 있었을 뿐이다. 팔 년 가까이 소년과 동생은 그 일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처음으로 그 일을 언급한 건 지난겨울이었다. 중환자실 면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소년과 동생은 버스나 지하철을 타지 않고 다리를 걸어서 한강을 건넜다. 바람은 차갑고 날카로웠으며 아파트 옥상에서 불던 그날의 바람처럼 무례했다. 형, 기억나? 아파트 옥상에서 아빠가 우릴 던져버리려고 했던 날 말야. 그날 고모가 곗돈을 탔다며 빌린 돈 삼백만 원을 갚겠다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우린 오래전에 저 세상에 가버렸겠지. 어른이 되면 아빠를 내 손으로 죽이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그날이었던 같아. 그런데 막상 아빠가 저렇게 되고 나니까 견딜 수 없이 무서워. 내가 앙심을 품어서 그렇게 된 것만 같아. ……형은 어때? 소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았으나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었다. 동생의 죄책감을 나눠가지고 싶지 않았다. 고모한테서 전화가 오지 않았더라도 아버지는 우릴 던지지 못했을 거야. 동생은 한참 뒤에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소년이 눈을 떴을 때는 밤이었다. 여자는 소년의 이마를 짚었던 손을 떼었다. 소년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걱정하지 말거라. 개는 몸이 한결 좋아져서 밖에 나갔단다.”
   “걱정한 거 아니에요.”
   “걱정해야 돼. 적어도 네 자신을 말이다.”
   “제 동생은요?”
   “형, 나 여기 있어.”
   소년과 동생은 여자가 건넨 딱딱한 빵을 오래 씹어 먹었다. 소년과 동생은 짐칸에 웅크리고 앉은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소년은 어지러웠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동생이 물소리가 들린다고 말했다. 형, 우리 발밑으로 거대한 강이 흐르는 것 같아. 소년이 그럴 리가 없다고 하자 바로 이 근처로 지하철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여자가 상기시켜 주었다. 지하철이 다니는 지하도는 아닌 게 아니라 거대한 수로가 되었을 거였다. 정말 그 소리가 들리니? 소년이 묻자 동생이 헬멧 쓴 머리를 끄덕였다. 소년은 동생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 내려놓았다. 밤이 깊었다. 가까운 곳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그들은 숨을 죽인 채 귀를 곤두세웠다. 누군가를 타이르는 듯한 말소리가 들렸다. 기침 소리도 들렸다. 그 소리는 가까워졌다가 멀어지곤 했으나 그들이 머문 버스 근처를 떠나지는 않았다. 조금 뒤에 개가 낑낑대며 문을 긁어댔다. 소년은 동생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나 동생은 소년의 손을 뿌리치고 문으로 다가갔다. 소년은 나이프를 꺼내 쥐었다. 동생이 문을 열자 개가 짐칸 안으로 들어왔다. 나이프를 쥔 손을 뻗자 억센 손이 소년의 손목을 쥐었다. 소년의 몸이 짐칸 밖으로 끌려 나갔다. 소년의 이마에 총구가 닿았다.
   “사람이냐? ……사람이 맞구나.”
   노인은 소년을 일으켜 세웠다.
   “우리 만난 적이 있지 않니?”
   “그때도 제게 총을 겨누셨죠.”
   “다음에는 안 그러도록 하마.”
   “다음은 없을 거예요.”
   노인은 소총을 어깨에 걸고 허리를 숙여 짐칸 안을 들여다보았다.
   “안녕하시오.”
   “안녕하세요.”
   “좀 들어가도 되겠나?”
   “자리가 좁아서요.”
   “잠깐이면 된다네.”
   “들어오세요.”
   짐칸에 들어간 노인은 소총을 옆에 내려놓고 소년의 동생 발치에 앉은 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맙구나. 여기로 나를 데려다줘서.”
   노인은 여자와 소녀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짐칸에 들어온 소년은 문을 닫고 동생 옆에 앉았다. 노인은 모녀 쪽을 향해 말했다.
   “되도록 빨리 짐을 꾸려서 나와 함께 떠나세.”
   “무슨 말씀이세요?”
   노인은 주머니를 뒤져 반지를 꺼내 여자에게 건넸다.
   “부군이 보고 싶어 한다오.”
   여자가 소녀를 끌어당겨 안았다.
   “제 남편 반지가 맞습니다만, 그이는 죽었습니다.”
   “아니, 살아 있다네. 조금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는데 저 너머가 그리 안전하지 않아 은신처를 옮기느라  일이 걸렸지. 그날 밤…… 이마트 근처에 숨었다가 날이 밝을 무렵 자네 부군을 구해왔다네. 서두르게나.”
   “네, 알겠습니다.”
   여자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여자가 짐을 꾸리는 동안 소년도 배낭을 꾸렸다. 조금 뒤 여자는 배낭을 멨고 소녀는 이불과 옷가지를 싼 보퉁이를 들었다.
   “아주머니,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함께 가지 않을래?”
   “괜찮습니다.”
   “넌 치료와 휴식이 필요해.”
   “동생이 고집만 부리지 않았다면 벌써 떠났을 거예요.”
   “동생보다 네 고집이 대단한걸.”
   “형, 함께 가자.”
   소년은 동생 쪽이 아닌 소녀 쪽을 보았다. 소녀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눈길이 맞부딪혔다. 노인은 다리를 저는 소년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노인은 소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전등을 켜고 상처를 살폈다. 노인도 여자와 똑같이 말했다. 소년도 수긍했다.
   “하지만 가야 해요.”
   소년은 동생을 앞세워 남쪽으로 길을 잡았다. 개가 형제보다 앞서 갔다. 노인과 모녀가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동생은 걸으려 하지 않았다. 소년이 뒤에서 밀어도 동생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형, 형이 죽기 전까지는 나도 죽지 않는다고 했지?”
   “그래.”
   “그런데 형은 곧 죽을 것만 같아.”
   “……알았어.”
   소년은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은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밤공기는 눅눅했다. 세상이 어둠 속에 푹 파묻힌 것만 같았다. 하늘은 먹장 같았고 드문드문 보이는 불빛은 윤곽이 흐릿했다. 소년은 손등으로 눈두덩을 문질렀다. 눈이 따가웠다.

 

   형제와 모녀는 노인을 따라 고속도로를 벗어난 뒤 비탈을 올라 흙길을 걸었다. 만남의 광장 남쪽에서 청계산 자락을 끼고 서쪽을 바라며 갔다. 근처의 쓰레기차 집하장에서 풍겨온 악취를 맡으며 걸었다. 노인은 신중했기에 일행은 아주 느릿느릿 움직였다. 노인은 등이 조금 굽었고 숱이 없는 머리에 털모자를 눌러썼다. 이따금 털모자를 벗을 때마다 건성드뭇한 머리통이 드러났다. 노인은 빈틈없이 주위를 살피며 오른손을 이용해 신호를 내렸으나 소녀의 물음에는 다정하게 대답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소년은 노인이 젊은 시절부터 중년까지 국기원에서 사범노릇을 한 뒤 이십여 년 식당을 운영하다 처분하고 노후를 보내다가 소일거리 삼아 목동사격장에서 관리인으로 일하기도 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소년 때문에 쉬어가야 했다. 소년은 오래도록 불을 응시한 것처럼 눈이 뜨거웠다. 소년이 자리를 잡고 앉자 그 옆에 동생이 바투 붙어 앉았다. 소년은 동생에게 수통을 내밀었다. 동생이 고개를 젓자 소년은 수통 뚜껑을 열고 물을 두어 모금 마셨다. 신음과 비명이 아득했다. 소년은 손바닥에 물을 조금 붓고 개 앞에 내밀었다. 개가 소년의 손바닥을 핥았다. 어디선가 길게 비명이 울렸다. 엎드렸던 개가 벌떡 일어나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굉음이 들렸다. 기아자동차 옥상에 위태롭게 걸렸던 헬기가 추락하여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곳에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컸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노인이 소년 옆으로 다가왔다.
   “네가 다친 걸 알았다면 그렇게 잡아당기지는 않았을 거다. ……미안하구나.”
   “괜찮아요. 저라도 그랬을 테니까요.”
   “네 손을 믿어서는 안 된다.”
   “칼을 믿었던 거예요.”
   “거기에 약점이 있어. 네가 가장 신뢰하는 곳에 너의 가장 큰 약점이 있는 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넌 칼을 쥔 네 손을 믿었고 그렇기에 그 손을 제압당하자마자 순식간에 힘이 풀렸던 거야.”
   “가장 믿었기 때문에 가장 방심했다는 말이군요.”
   “똑똑하구나.”
   “하지만 믿지 않고서 무얼 할 수 있죠?”
   “방법은 하나야. 칼을 쥐면 네 몸 전체가 칼이 되어야 한다.”
   “알겠어요.”
   “하지만 네 진짜 약점은 그게 아니지.”
   “제 동생을 보지 마세요.”
   “알았다.”
   산자락의 비탈면을 오른 그들은 터널로 이어지는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이르렀다. 화장터가 있는 반대편 남쪽 자락의 서울추모공원으로 통하는 전용터널이었다. 터널 입구 주변의 절개지가 어둠 속에서도 희번덕거렸다. 터널을 관통하는 바람소리는 가느다란 휘파람 소리를 연상시켰다. 조립식 컨테이너 박스 문 앞에 선 노인이 모녀에게 손짓을 했다.
   “너희는 여기서 잠깐 기다리렴.”
   “알겠어요.”
   소년은 동생과 함께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양곡유통센터를 비롯해 물류센터들이 모인 지역이 발아래 있었다. 양재대로 건너편의 아파트 단지가 을씨년스러웠다. 그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은 한층 더 선명해서 다른 소리들과 구분할 수도 있었다. 몸집이 크고 날렵한 동물들이 구조물들에 부딪히며 뛰어다니는 듯한 소리도 들려왔다. 멀리서 희미한 말 울음도 들려왔다. 그런 소리를 삼키며 아주 가까운 곳에서 흐느낌이 들려왔고 소년과 동생은 서로를 잠깐 마주보았다. 소년은 여자의 남편이면서 소녀의 아버지인 사내가 죽은 거라고 생각했다. 소년은 다리에 통증을 느꼈다. 바위에서 내려와 땅바닥에 앉아 두 다리를 폈다. 그러면 통증이 한결 숙지근해졌다. 한밤의 임종은 예사롭고도 고즈넉했다. 여자와 소녀는 숨죽여 흐느꼈고 간간이 탄식하듯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가냘프고 낮은 울음들이야말로 어떤 소리보다 전염성이 강하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형, 내가 죽인 건 아니지?”
   “누구? 아버지 말야?”
   “아니, 저 아저씨.”
   “그래, 넌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내가 죽인 것 같아.”
   “넌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그런데 …… 조금 슬퍼.”
   “우리는 저 사람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상관이 있어”
   “조금 있지. 네가 슬퍼하니까.”
   소년은 바위를 짚고 일어섰다. 소년은 동생에게 손을 내밀었다. 동생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가야 해.”
   소년은 동생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동생의 손을 놓고 두어 걸음 걷던 소년이 무언가에 발이 걸리기라도 한 듯 쓰러지면서 뒹굴었다. 소년의 다문 입술 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소년에게 다가간 동생이 손을 내밀었다. 소년은 동생의 손을 잡고 일어섰다.
   “형도 사실은 떠나고 싶지 않은 거야.”
   “다리가 아파서 그래.”
   “여기까지는 잘 왔잖아.”
   “여기까지였지.”
   소년은 동생에게서 얼굴을 돌렸다. 서울 도심을 헤치고 지나온 날들이 떠올랐다. 여기까지는 잘 왔지만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지 소년은 자신이 없었다. 컨테이너 박스에서 나온 노인은 문을 닫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노인은 소총을 내려놓고 담배를 꺼내 물었다. 노인이 담배연기를 빨아들일 때마다 담뱃불이 밝아졌다 잦아들었다. 야행성 맹금류의 울음이 들려왔다. 노인은 소년에게 담뱃갑을 내밀었다.
   “담배 피울래?”
   “괜찮아요.”
   “괜찮지 않아. 세상이 변했으니까.”
   “어르신이 제게 담배를 권할 만큼이겠죠.”
   “담배를 거절할 만큼 무례해진 것도 변한 거란다.”
   “변하지 않는 것도 있어요.”
   “넌 원래부터 세상 따위와는 상관없이 살았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세상이 저를 상관하지 않았죠.”
   “그게 그거다.”
   “그건 그게 아니에요.”
   “그게 그것이 아닌 것도 그거다.”
   노인과 형제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컨테이너 박스에서는 여전히 낮은 흐느낌이 들려왔고 이제 그 소리는 원래부터 밤이 품고 있던 소리처럼 익숙해졌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걷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식료품과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쓴 사람들의 형체가 터널 앞 도로에 나타났다가 그보다 짙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노인은 외려 이곳이 안전하다고 말해 주었다. 지닐 수 있을 만큼 식료품과 생필품을 가진 사람들이기에 이곳에서 멀리 떠나려고 하지 다른 사람을 약탈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인은 지난겨울 이 근처를 배회하며 견뎠다. 은신처마다 탄약과 식료품을 숨겨 두고 될 수 있는 한 가벼운 차림으로 떠돌았다. 소년은 노인이 이 근처를 배회하며 살았다기보다는 이곳에서 멀어지지 않기 위해 살았던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 노인은 이따금 북쪽으로 고개를 돌려 서울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고 자신이 내쉰 한숨에 놀란 사람처럼 굴었다. 인기척은 산 위로 이어졌다. 산길을 오르면서 그들의 숨이 가팔라지는 걸 알 수 있었다. 부식거리가 든 장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돌아온 어머니도 단내 나는 숨을 쉬곤 했다. 소년은 가만히 방에 누워 부엌에서 어머니가 도마 위에 피망, 감자, 무, 고추, 양파, 대파 따위를 놓고 써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곤 했다. 마늘을 다질 때의 경쾌한 소리도 듣기 좋았다. 냄비에서 국이나 찌개가 끓으며 뚜껑이 달그락대는 소리며 밥솥에서 밥물이 흘러내리는 소리는 마음을 고요하게 진정시켜 주었다. 밥 익는 냄새는 형체도 없건만 방 안을 가득 채웠고 손으로 만지면 질감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 냄새를 들이쉬며 눈을 감으면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난 들판에 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오래된 추억이었다. 그 추억이 선명하게 떠오르는 이유는 너무나 드물어서 잊지 않기 위해 자주 꺼내 들여다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단 한 번의 날카로운 입맞춤이 오랜 세월 동안 이어진 부드러운 입맞춤보다 뚜렷하게 기억되는 것처럼. 소년의 기억은 어머니가 죽었던 날에 이르렀다. 그날 소년과 동생도 모녀처럼 울었다. 눈물이 나오기는 했지만 오래 흘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뒤에 소년과 동생 모두 목이 쉬었다.
   밤은 깊어갔다. 날짐승이 홰를 치는 소리와 성대가 멀쩡한 사나운 개들의 울부짖음이 아련하게 들려왔다. 어디론가 사라졌던 개가 산 위쪽에서 나타났다. 개는 소년과 동생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노인은 연달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 냄새가 차분하게 번져 갔다. 밤공기에 스며든 담배연기는 잠깐 푸르게 빛나기도 했다. 이윽고 흐느낌이 잦아들면서 컨테이너 박스가 조용해졌다. 노인은 담배꽁초를 바닥에 비벼 끈 뒤 가볍게 기침을 했다. 문이 열렸다. 먼저 나온 사람은 소녀였다. 소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소녀를 가로막았다. 소녀가 손에 나이프를 쥐었다고 믿었다. 소녀는 빈손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소년은 소녀가 손에 나이프를 쥔 것만 같았다. 아니 소녀가 한 자루의 칼이었다. 그러니까 어딘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이를테면 심장으로 나이프를 쥐었는지도 모른다. 소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생도 마찬가지였다. 노인이 소녀를 안았다. 소녀는 가만히 있었다. 노인의 품을 벗어나려 하지도 않았고 그 품에 기대려 하지도 않았다. 소년은 소녀 역시 새롭게 태어나는 거라고 생각했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새롭게 태어났다. 더러는 괴물이 되었고 더러는 소녀처럼 혹은 저 개처럼 이전과 전혀 다른 존재이면서 이전과 무관하지 않은 새로운 존재로 태어났다.

 

   “형, 저 애가 나를 미워할까?”
   “아니, 너를 미워하지 않아.”
   “나를 미워하는 게 분명해.”
   “너를 미워했던 건 분명해.”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그때의 그 아이는 이미 여기에 없으니까.”

 

   그때의 소년도 여기에 없었다. 그때의 동생도 여기에는 없었다. 서울 시내 어느 곳에 허물처럼 벗어두고 왔다. 두고 온 옛 소년과 동생은 서울을 유령처럼 방황할 것이었다. 음산한 신음과 비명들 사이에서 허깨비처럼 걸으며 갈팡질팡할 것이었다. 죽지도 않고 사라지지도 않을 것이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해도 두고 온 소년과 동생은 먼지에라도 깃들어 그곳을 배회할 것이었다. 언젠가 소년과 동생이 돌아가 옷을 입듯 다시 자신들을 뒤집어쓰길 바라며 영겁의 세월을 찰나처럼 견딜 것이었다.


   그들은 사흘째 그곳에 머물렀다. 대낮이면 숨소리조차 죽인 채 지냈다. 이제는 정말 더 남쪽으로 내려가는 수밖에 없는 듯했다. 부기가 가라앉기는 했지만 소년은 여전히 다리에 힘을 주기가 어려웠다. 이불로 덮어 둔 사체에서 부패가 진행되었다. 날이 온화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소년은 왜 여태 그곳에 남아 있어야 했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었으나 답은 분명하지 않았다. 여자가 시체를 묻고 싶다고 했을 때 소년이 깨달은 건 지난 사흘이 장례의식을 치를 때와 비슷한 일종의 애도의 시간이었다는 것뿐이었다. 여자는 현실을 납득한다는 듯한 얼굴이었고 그래서 메마르고 푸석한 얼굴인데도 윤이 났다. 소녀는 침착하게 어머니를 도와 이불로 감싼 아버지의 시체를 통째로 끈으로 묶었다. 단단히 조인 부분에서 살이 허물어지기라도 한 듯 다시 끈을 풀어 묶어야 했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자 노인은 군인들이 참호로 쓰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로 그들을 이끌었다. 노인이 손전등을 구덩이 아래로 들이밀었다. 그리 깊지 않았으나 바닥이 진흙탕이었다. 빗물이 고였다가 어디론가 스며들기를 반복하면서 바닥을 진창으로 만들었다. 그 위로 군복과 철모가 삐죽 솟아 있었다. 소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까운 곳에 다른 참호는 없었다. 교통호도 없이 고립된 참호에서 최후를 맞은 서넛의 군인들은 어디로 갔을까. 노인은 참호에 이미 시체가 한 구 있다고 말하면서 모녀에게 의향을 물었다. 여자는 잠시 머뭇거렸으나 소녀는 단호하게 괜찮다고 대답했다. 이 구덩이에서 죽은 군인은 아마도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이곳으로 기어 들어왔을 거였다. 세상이 어떻게 변해버렸는지를 알지 못한 채 철수를 알리는 전령과 자신을 치료해 줄 위생병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면서 죽었을 거였다.
   그들은 사내의 시체를 구덩이에 넣고 주변의 흙을 맨손으로 긁어모았다. 개는 경계라도 서듯 구덩이 근처를 맴돌았다. 첫 흙을 던져 넣자 여자와 소녀가 주저앉았다. 여자는 구덩이 속으로 팔을 뻗으려 했고 소년은 그런 여자의 허리를 안았다. 비쩍 마른 여자의 몸에서 시큼한 땀 냄새가 났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따스했다. 십 분이 지난 뒤 그들은 다시 잡석이 섞인 흙을 긁어모았다. 소년은 동생에게 컨테이너로 돌아가라고 말했지만 동생이 그 말을 따라 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다. 완벽하게 매장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듯했다. 삼십 분이 흘렀다. 겨우 시체의 윤곽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구덩이를 채웠다. 여자와 소녀가 다시 눈물을 흘렸다. 오 분 뒤에 그들은 다시 흙으로 구덩이를 채웠다. 반 넘게 채운 뒤 그들은 잠시 숨을 골랐다. 휴식을 취하자 모녀는 생기를 되찾았다. 삼십 분이 지났다. 소년은 구덩이 근처에 있던 동생을 소녀가 스치듯 지나가는 걸 보았다. 동생은 휘청거리다 구덩이에 처박혔다. 소년은 구덩이로 뛰어 들어갔다. 발이 푹 빠졌고 그 아래 물컹한 게 닿았다.
   “괜찮아?”
   “괜찮아.”
   소년은 동생을 구덩이 밖으로 밀어냈다. 소녀가 나지막하게 깔깔댔다. 무구하면서도 섬뜩한 웃음이었다. 소년은 소맷자락으로 헬멧의 윈드 쉴드를 닦아 주었다. 노인과 여자가 괜찮으냐고 묻자 동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녀가 그 앞으로 와서 장난스럽게 동생의 헬멧을 툭툭 쳤다. 소녀의 행동에는 악의가 없었다. 고단한 일상에 간간이 찾아오는 소소한 기쁨을 마주 대하듯 부드럽게 들떠 보였다. 동생은 다친 곳이 없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외려 더 열심히 흙을 모으는 듯했다. 한 시간 삼십 분 뒤에 그들은 봉분 없이 평평한 무덤을 완성했다. 시체를 매장하는 서너 시간 동안 소년은 마음속으로 무언가를 세웠다가 허물기를 반복했다. 개와 노인이 앞장을 섰다.

 

   “나를 미워하는 게 분명해.”
   “너를 미워했던 그 아이는 지금 여기에 없어.”
   “어느 날 눈을 떴는데 눈앞에 칼이 있었어. 형의 칼보다 조금 더 짧았어.”
   “네가 꿈을 꾼 거야.”
   “퍽 길고 긴 꿈이네.”
   “아주 긴 꿈이지.”
   “깨어나고 싶어.”
   “꿈속에 머무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컨테이너 박스로 돌아간 그들은 아직 새벽이었지만 잠들 준비를 했다. 소년은 철제 캐비닛으로 구획된 공간에 동생과 앉았다. 개는 옆에 엎드린 채 고개를 제 다리에 파묻었다. 다리에 먹먹한 통증이 찾아왔다. 소년은 동생의 헬멧을 벗기고 물에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 주었다. 동생은 소년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소년은 헬멧 안쪽에 들러붙은 흙을 털어내고 턱 끈에 묻은 흙도 세심하게 털어냈다.
   “손 줘봐.”
   “괜찮아.”
   “괜찮다면 줘봐.”
   “형 손도 그렇잖아.”
   소년은 피 묻은 동생의 손을 닦아 주고 소독약을 발라 줬다. 소년의 손이 떨렸다.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손전등 빛이 소리 없이 파닥거렸다. 소년은 동생의 머리에 헬멧을 씌웠다. 캐비닛 옆으로 소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소녀는 아무 말 없이 소년과 동생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형제는 장난기가 가신 소녀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소녀가 말했다.
   “……고마워.”

 

   그들은 노인이 따준 옥수수 통조림을 데워서 나눠먹은 뒤 자리에 누웠다. 노인이 문 앞에 웅크리고 앉자 소년이 다가갔다. 소년이 소총을 건네받자 노인이 두 다리를 쭉 뻗고 누웠다. 모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었다. 멀리서 수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인간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미명이 찾아들었다. 소년은 모녀에게 곱씹을 슬픔이 있다는 사실이 조금 부러웠다. 어쨌든 모녀는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사내의 마지막을 지켜주었으니 그 슬픔은 견딜 만한 슬픔일 거였다. 소년은 한 번도 피붙이의 임종을 지켜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소년과 동생이 잠들었을 때 세상을 떠났고 아버지는…….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살았을 리는 없다. 세상이 이렇게 변해버리기 전에 이미 이 세상이 아버지를 해치워버렸다. 소년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려는 듯 아버지는 이미 죽어 가던 중이었다는 사실을 되풀이해서 떠올렸다. 임종을 지킬 기회가 있다면 아마도 동생의 경우일 뿐이라는 걸 소년은 잘 알았다. 그런 생각은 억누른다고 해서 억눌러지는 게 아니었다. 소년은 괴로웠다. 동생의 죽음을 연상시키는 것들에서 멀어지려 할수록 그 생각은 끈질기게 고개를 쳐들었다. 소년은 곱씹을 슬픔이 없었다. 지나간 슬픔을 꺼내 보아도 다가올 앞날의 불안이 그 슬픔을 잠식해 버렸다. 폐허가 된 서울도 소년만의 슬픔은 아니었으므로 곱씹는다는 것 자체가 우습게 여겨졌다. 그러나 소년은 폐허가 된 서울의 쓸쓸함을 잊지 않았다. 누가 진정으로 서울이 폐허가 되었음을 기꺼이 슬퍼해 줄 것인가. 아무도 없었다. 까무룩 잠이 든 소년은 새로 태어난 서울을 한 번 더 꿈꾸었다. 소년의 팔이 헐거워지자 품 안의 소총이 옆으로 기울었다. 소년은 예전의 서울로 이루어졌으나 예전의 서울은 아니면서 또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서울이었으나 폐허가 된 서울과 전혀 무관한 서울도 아닌 새로운 도시를 맨발로 거닐었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발바닥으로 점자블록을 느끼며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다. 선형 점자블록을 따라 걷던 소년은 점형 점자블록에 닿았다. 지압판을 밟고 선 듯한 느낌이었다. 점형 점자블록 앞에 횡단보도가 있었고 건너편에 동생이 있었다. 소년은 눈을 떴다. 횡단보도와 동생은 없었다. 소년의 눈앞에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만이 도사리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날카롭고 기다란 칼날이 쑤욱 솟아올랐다. 칼날이 솟으면서 벌어진 어둠의 틈으로 공간이 빨려 들어가며 소년을 둘러싼 공간이 소년을 죄어 왔다.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렸다. 컨테이너 내부 벽에 맞닿은 총구가 미끄러지면서 내는 쇳소리였다. 대낮이었다. 노인은 소년에게 소총을 건네받았다. 소년은 모녀의 발아래 쪽으로 돌아가 캐비닛을 지나 동생 옆에 자리를 잡고 누웠다.

 

   저녁이 되어 모두 잠에서 깨어났을 때 소년은 자신의 몸이 이상해졌다는 걸 알았다. 관광버스 짐칸에서 지낼 때보다 다친 다리가 눈에 띌 만큼 부어올랐다. 분명히 상처는 거의 아물었는데 왜 그런지 알 수 없었다. 노인은 소년의 다리를 살폈다.
   “전에도 이런 걸 본 적이 있다. 딱지가 앉았어도 속으로는 곪은 거야. 상처를 다시 째서 고름을 긁어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해.”
   그들은 옥수수 통조림을 먹었다. 소년은 한 숟가락밖에 먹지 못했다. 노인은 외과 의사였던 사람이 은신한 곳을 안다고 했다.
   “거기에는 약품도 충분히 있을 거야. 다녀오자꾸나.”
   “혼자서는 안 돼요.”
   “하지만 거긴 다른 사람들도 꽤 있어.”
   “상관없어요.”
   “그 사람들은 상관이 있다고 여길 거다.”
   노인은 동생 쪽을 보았다. 소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럼 가지 않겠어요.”
   “다리를 잘라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끔하게 자를 수만 있다면 괜찮아요.”
   “겁이 난 게로구나.”
   “동생과 함께 가겠어요.”
   “알겠다.”
   “약속해 주세요.”
   “약속하마.”
   “무얼요?”
   “무엇이든.”
   “한 가지면 돼요.”
   “말하지 않아도 안다.”
   모녀도 그들과 동행했다. 일행은 희미한 달빛을 의지해 산을 탔다. 그들은 소년 탓에 서너 번이나 쉬어야 했다. 소년은 자리에 앉아 쉴 때마다 외투 안주머니에 든 권총을 확인했다. 개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그들이 휴식을 취할 때면 나타났다. 개는 그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아는 것만 같았다.

 

   “만약에 말야.”
   “왜 그래, 형.”
   “만약이니까 말야.”
   “만약은 없어.”
   “내가 다리를 쓸 수 없게 된다면 날 버리고 가.”
   “그래, 알았어.”
   “돌아보지 말고 가야 해.”
   “알았다니까.”
   “혹시 내가 널 붙잡는다면 이걸로 날 쏘아버리고 가.”
   소년은 처음으로 동생의 손에 권총을 쥐어 주었다. 동생은 권총을 만지작거리다 소년에게 건네줬다.
   “기억해? 잊지 않았지?”
   “뭘?”
   “지난번에 광화문 사거리 지나올 때 점자 가르쳐줬잖아.”
   “기억해.”
   “3은 뭐야?”
   동생이 소년의 손바닥에 점자 3을 찍었다.
   “잊으면 안 돼.”


   저수지 근처의 레스토랑 건물은 비교적 멀쩡했다. 네 가족이 한데 어울려 머물렀다. 열댓 명쯤 되었다. 총과 식량도 넉넉했고 비록 근처의 트인 길만 오갈 수 있을 뿐이었지만 멀쩡한 트럭도 한 대 있었다. 문과 창문은 안전하게 이중 장치가 설치되었고 침대도 있었다. 의사는 과묵했다. 의사는 소독한 수술칼로 소년의 오른쪽 다리 종아리와 정강이 사이를 길게 찢었다. 피고름이 는질는질 흘러내렸다. 의사는 겸자로 살갗을 벌린 뒤 핀셋 끝에 집은 솜뭉치로 피고름을 긁어냈다. 소년은 두어 번 까무러쳤다. 하지만 소년은 정신이 들 때면 구석 탁자 앞에 웅크린 동생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의식은 가물거렸지만 노인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그 아이의 헬멧을 벗기고 싶다면 너희들이 쓴 살가죽부터 벗어야 할 거다.”
   소년 또래이거나 한두 살 많아 보이는 사내 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 사내 녀석들은 소년보다 체격이 좋았다. 소녀에게 농담을 걸고 이런 저런 걸 묻기도 했다. 치료를 마친 의사는 수술도구를 거칠게 쟁반에 내려놓았다. 소년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소녀가 붕대를 감고 난 뒤였다. 소년이 의사에게 꾸벅 인사를 했지만 의사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몸을 기울여 노인에게 몇 마디를 속삭였을 뿐이다. 소년은 맹견퇴치기를 사례로 내놓았다. 의사는 더러운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힐끔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소독에 필요한 도구와 붕대, 약품을 담은 주머니를 쥐었다. 그들이 레스토랑 건물을 빠져나올 때 사람들이 모녀에게 이곳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했지만 모녀는 고개를 저었다.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 곳까지 돌아가는 길은 올 때보다 멀게 느껴졌다. 소년보다 동생이 힘들어했다. 동생이 무수한 적대적인 시선을 감당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걸 소년은 잘 알았다. 동생은 똑똑하고 자존심이 강하며 고집이 셌다. 사람들은 형을 닮아서라고 했다. 두 번째 휴식을 취한 뒤에 노인이 소년 앞에 등 돌린 채 무릎을 꿇었다. 소년은 뒤로 물러섰다. 노인은 소년 앞으로 다가가 다시 등을 돌렸다.
   “날이 새기 전에 가야 한다.”
   노인의 등에 업힌 소년이 말했다.
   “……고맙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우니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
   “약속을 지켜주신 거요.”
   “나도 그 녀석들 살가죽을 벗길 마음은 없었다.”
   노인의 숨이 가팔라졌다. 노인에게 소총을 건네받은 여자가 앞장을 섰다. 노인은 힘을 줘 소년을 추슬러 업었다.
   “의사를 미워하면 안 된다.”
   “알아요. 저를 치료해 줬잖아요.”
   “그 녀석들도.”
   “그건 잘 모르겠어요.”
   “눈앞에서 부모가 죽는 걸 본 녀석들이야.”
   “우리도 그리 다르지 않아요.”
   “세월이 흐르면 다시 예전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냥하게 될 거다.”
   “지금도 충분히 그렇잖아요.”
   “네 말이 맞구나.”
   그들은 등산로를 횡단하기 전에 잠시 숨어야 했다.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멀어진 뒤에 출발했다.
   “잘 참더구나.”
   “기절했던 거예요.”
   “잘 기절했더구나.”
   “어르신도 잘 참으셨어요.”
   “너희들을 내 손주라고 말했지만 믿는 것 같지는 않더라.”
   “정말 제 할아버지면 좋겠어요.”
   “진심이냐?”
   “거짓말이 이토록 쓸모없던 때가 없었잖아요.”
   “그래, 무슨 말을 해도 진심이 아닌 말이 없게 되어버렸지.”
   “진심이세요?”
   “거짓말이야.”
   “그건 진심이군요.”
   “내가 용서를 빌어도 되겠니?”
   “예, 할아버지.”
   노인은 컨테이너 박스가 보이는 곳에서 소년을 내려 주었다. 개는 소년의 발치를 맴돌았다. 모녀와 동생은 컨테이너 문 앞에서 노인과 소년을 기다렸다. 노인이 울먹였다.
   “내가 네 동생을 볼 때마다 얼마나 죽이고 싶어 했는지 넌 모를 거다.”
   “알아요.”
   “정말이냐?”
   “……저도 그랬으니까요.”
   노인은 소년을 품에 안았다. 소년의 눈에서 흘러내린 눈물이 노인의 가슴팍을 적셨다.

 

 

   《문장웹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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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나무

한 문장, 한 문장 진하게 읽게 되는 손홍규 작가님의 글.
매회 감동이에요.

자몽 3호

이번 화에서는 유독 동생에게 궁금증이 많이 생겼어요. 어떤 인물일지 저 나름대로 추리는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알쏭달쏭한 상태네요. 그리고 감각적인 표현들이 인상깊었어요. 피고름이 는질는질하다는 대목에서 저는 '는질는질'의 뜻은 몰랐지만 무슨 느낌인지는 알거 같았거든요. '짙은나무'님 말마따나 곱씹게되는 문장들이 많아서 좋습니다^^

보름달8호

어린 소년이 동생과 살기에는 너무 힘든 서울인 것 같아요ㅠㅠ '폐허가 된 서울'을 상상할 수록 소설 속 인물들의 마음이 아프게 느껴집니다..개인적인 바람이라면, 결국은 다들 행복해졌음 좋겠는데..같은 글을 읽은 다른 분들은 어떠실지도 궁금하네요.

자몽 3호

저도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지만 소설의 분위기가 너무 무겁고 절망적으로 다가오네요ㅜㅜ 이런 환경에서도 소년이 희망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릴로32호

아직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는데 그래서 더 긴장되고 몰입하게되네요! 정말 많은 것들이 궁금하지만, 그래서 더 다음편이 기다려져요~

나는26호

영화'설국열차'에서 꼬리칸 사람들이 먹을것이 다떨어진 후에 서로를, 그중에서도 가장 어린 아이부터 잡아먹기 시작했던 장면이 떠오르네요!

햇님18호

노인과 소년의 알듯 모를듯한 대화.. 그치만 마음으로 무언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아요. 사람이 사람을 사냥한다는 말이 폐허가 된 공간속에서 먼지같은 존재 같네요.

국문17호

굉장히 직설적인 대화내용인데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슬프게 느껴집니다. 소년과 동생이 살기에 너무나 암담한 서울, 얼마나 더 힘든 상황이 펼쳐질지 상당히 긴장되네요

미소48호

여전히 헬멧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않았지만 동생에게 꼭 있어야할 것만같은 느낌이 듭니다..후에 어떻게 수수께끼가 풀릴지! 하나 둘씩 엮어져가는 인물들사이에서 이야기가 조금씩전개되어 가는게 흥미롭네요! 간접적으로 현재 더욱더 살기힘들어지고 잃어가는 서울을 암시하는것같기도해요!

자몽 3호

저도 그렇게 느꼈어요 폐허가 아닌 지금의 서울도 각박하고 인간미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종종 있는데 재앙을 맞지 않고도 폐허화되어가는 현실의 서울과 완전히 무너진 소설 속의 서울 중에 어느 것이 더 폐허일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더라고요

행복한46호

상황이 잘 그려지지는 않지만 묘사와 대화를 통해 소년과 노인의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해보려합니다. 가장 신뢰하는 것이 약점이 된다는 사실.. 인상적이네요

자몽 3호

노인의 저 한 마디가 혹시라도 후에 소년이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것의 복선이 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