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방패

십년감수(十年感秀)_소설

 

 

유리방패

 

김중혁

 

 

 

 

 
   우리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헝클어진 실뭉치를 풀었다. 간단한 일이다. 실의 한쪽 끝을 잡고 차근차근 매듭을 풀기만 하면 된다. 꼬여 있는 부분을 찾아낸 다음 그 속으로 실 끝을 통과시키면 매듭은 쉽게 풀린다. 우리는 각자 실뭉치 하나씩을 들고 덜컹거리는 지하철의 리듬에 맞추어 손끝에다 모든 감각을 모았다.
   지하철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작업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가끔 눈을 흘깃거리며 우리를 수상하게 보는 사람도 있었지만 수상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실로는 지하철을 폭파시킬 수도 없고 불을 지를 수도 없으며 사람을 죽일 수도 없다. 실은 그냥 실일 뿐이다. 열심히 매듭을 풀어보라고 파도타기 응원을 했으면 했지, 못 하게 말릴 일은 아니었다. 우리는 실뭉치에서 풀려나온 실을 길게 뻗은 지하철 의자 위에다 늘어놓았다. 풀어진 실이 늘어나면서 우리 사이의 간격은 더욱 넓어졌다. 녹색 의자 위에 파란색과 빨간색 실이 쌓여갔다.
   “이게 뭐야. 너무 쉽잖아. 아까는 왜 이렇게 안 됐을까?”
   부피가 반으로 줄어든 파란색 실뭉치를 들고 M이 물었다.
   “우리가 그렇지 뭐. 중요한 순간에 모든 걸 망치는 게 우리 특기잖아.”
   나는 빨간색 실의 매듭을 풀면서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M과 나는 두 시간 전에 서른번째 입사시험의 면접을 봤다. 오늘 역시 면접관으로부터 ‘됐으니까 그만 나가보세요’라는 얘기를 들었다.
   “이력서 특기 항목에다 그걸 적지 그랬어. 중요한 순간에 모든 걸 망치기. 불쌍해서 합격시켜줄지도 모르잖아.”
   “너는 취미란에다 친구 비아냥거리기라고 적지 그랬냐?”
   우리는 실뭉치에다 시선을 고정한 채 이런 얘기들을 주고받았다. 형편없는 오전이었고, 시시한 신세였다. 우리는 입을 잠그고 다시 실 풀기에 몰두했다.
   “이거 순환선인가?”
   “그럴걸.”
   “어쩐지 어지럽더라.”
   “순환선이라 그런 게 아니고 실타래를 너무 오래 들여다봐서 어지러운 거야. 좀 쉬자.”
   눈을 들어 창밖을 바라보았을 때 갑자기 지상의 풍경이 나타났다. 우리가 실타래에서 눈을 떼길 기다렸다는 듯 지하철이 덜컹거리며 지상으로 올라갔다. 환한 빛과 함께 낮은 건물들과 수많은 간판들이 콜라주 그림처럼 펼쳐졌다. 하나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누군가 이어붙인 듯한 그림이었다. 우리는 지하철이 다시 지하로 내려가길 기다리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깃줄이 지하철의 방향을 안내했다. 지하철은 계속 지상을 달렸다. 지하철 맨 뒤칸에 앉은 덕분에 창문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면 몸을 뒤틀면서 곡선을 질주하는 지하철의 옆모습이 보였다. 순환선이라는 게 실감났다. 두 곳의 역을 지난 후 지하철이 앞쪽으로 기울더니 창밖의 풍경들이 사라졌다. 창문이 거울로 바뀌었고, 풍경 대신 우리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는 다시 실타래를 풀었다.
   두 시간 전 면접관들의 웃음소리를 생각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M과 나는 언제나 입사시험을 함께 치렀다.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싶다는 생각이 큰 탓도 있지만 혼자서 시험을 친다는 게 불가능하게 여겨질 정도로 M과 나는 분리될 수 없는 사이였다. 우리는 동전의 앞면과 뒷면이거나 한 사람의 앞모습과 뒷모습이었다. M이 사라지면 나는 두께가 없는 종잇장처럼 변해버려서 혼자 서 있을 수조차 없을 것이다. 나 역시 M에게 그런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함께 치렀다. 백전백패, 승률은 제로였지만 혼자서 시험을 쳐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들지 않았다.
   우리는 면접시험도 함께 치렀다. 함께 치른 정도가 아니라 언제나 면접실에 함께 들어갔다. 동성애자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고, 신입사원은 한 명만 뽑을 거라는 답변을 하는 회사도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막무가내였다. 함께 면접을 봐야 우리의 진가를 보여줄 수 있다면서 인사담당자를 들볶았다. 가끔은 우리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회사도 있었지만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하는 담당자가 더 많았다.
   우리는 ‘면접시험의 역사를 새롭게 쓰자’라는 포부를 가슴에 품고 새로운 형식의 면접을 시도했지만 면접관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새로운 레퍼토리를 만든 만담 듀엣의 심정으로 면접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지만 시간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한번은 쫓겨나는 도중에 인사담당자에게 탈락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었다. 인사담당자는 우리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개그맨 시험이나 한번 쳐보세요”라며 등을 떠밀었다. “일단 재미는 있다는 거네?”라며 M이 웃었다.
   인터넷 기획회사의 면접을 볼 때는 둘이서 만담을 했고―면접관들은 한 번도 웃어주지 않았다―애니메이션 제작회사의 면접을 볼 때는 어설픈 마술쇼를 하기도 했으며―M이 소품으로 준비해둔 손수건에 불을 잘못 붙이는 바람에 천장에 붙어 있던 스프링클러가 작동됐다―영어교재회사의 영업직 사원 면접시험 때는 지하철에서 물건을 파는 행상의 모습을 재연하기도 했다. 그나마 가장 반응이 좋았던 것이 지하철 행상 재연이었다. 우리는 말도 안 되는 영어를 써가면서 영어교재 광고를 했는데, 면접관 한 명은 너무 심하게 웃다가 의자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말이죠, 저희가 만드는 책은 지하철에서 파는 것 같은 엉터리 교재가 아니랍니다, 라는 것이 인사담당자가 밝힌 탈락 이유였다. 우리는 면접 준비의 첫번째 원칙을 잊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회사에 대해 공부해둘 것. 우리는 열심히 면접을 준비했지만 영어교재를 파는 회사라는 사실만 알았을 뿐 어느 정도 수준의 책을 파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어제의 면접 준비 회의는 나름대로 철두철미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으면서 회사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은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컴퓨터게임 회사였고, 게임 기획자와 게임 테스터를 구하는 중이었다. 응모자격란에는 ‘기초적인 프로그래밍이 가능하신 분, 새로운 아이디어가 넘쳐나는 분, 상상력이 뛰어나신 분, 모든 게임에 자신 있는 분, 게임 하나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분’이라고 적혀 있었다. 응모자격에 해당되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지만 매일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입사지원서를 써냈다.
   “그래도 우리가 상상력은 좀 되는 편 아닌가?”
   M이 물었다.
   “그렇지. 아이디어도 많은 편이고……”
   내가 대답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력과 회사에서 원하는 상상력이 비슷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까지 입사지원서를 냈던 회사 중에서는 우리의 적성에 제일 어울리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상상력을 어떻게 보여주지? 마술쇼나 한번 더 해볼까?”
   “됐다. 회사 다 태울 일 있냐? 우린 허를 찌르는 거야. 상상력하고 전혀 상관 없는 면접을 준비해서 뒤통수를 치는 거지. 그게 오히려 점수를 더 딸 수 있을 거야. 다른 애들하고는 반대로 접근하는 거지.”
   “어떻게?”
   “요즘 신입사원들에게 가장 부족한 게 뭐겠어?”
   “지난번에 공부한 거잖아. 인내력과 애사심.”
   “바로 그거야. 우린 인내력을 보여주는 거야. 컴퓨터게임을 테스트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바로 인내력이니까.”
   “그걸 어떻게 보여줘? 이번엔 차력이라도 하자는 거야? 불에 달군 돌덩이 위에서 10분 버티기, 뭐 그런 거?”
   면접관 앞에서 실뭉치를 푸는 이벤트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것이다. 연습도 필요 없었다. 헝클어진 실뭉치를 푸는 일은 연습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끈기와 인내로만 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대사 몇 마디만 준비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저희들을 소개하는 대신 한 가지 보여드릴 게 있습니다. 컴퓨터게임을 테스트하는 일은, 엉킨 실뭉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단계 한 단계, 참을성 있게 실을 풀어나가면 언젠가는 모든 매듭을 풀 수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멋진 대사였다. 면접관들의 반응도 좋았다. 우리가 파란색 실뭉치와 빨간색 실뭉치를 종이가방에서 꺼낼 때 어디선가 낮은 탄성이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대기실에서 실뭉치를 너무 헝클어놓았다. 그리고 우리가 사온 실뭉치는 너무 컸다. 1분도 지나지 않아 우리들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3분이 흐른 뒤에도 상황은 나아지질 않았다. 5분이 흘렀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손바닥에 고인 땀 때문에 실이 더 엉켜서 5분 동안 30센티미터 정도의 실밖에는 풀어내질 못했다. M은 매듭을 푸는 대신 실을 마구 잡아당겼다. 그때 내가 한숨을 쉬었다. 뒤이어 M이 낮은 목소리로 “에이, 씨”라는 소리를 냈다. 그걸로 모든 게 끝났다.
   “됐습니다. 그만 하세요. 아이디어는 참 좋은데, 두 분 다 참을성이 부족하신 거 같군요. 실 푸는 연습을 더 하고 다시 한번 도전해보세요.”
   면접관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면접관들을 향해 실뭉치를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그들은 잘못한 게 없었다. 면접실 문을 열고 나왔을 때 땀에 푹 절은 우리 모습을 보고는 대기자 한 명이 “무슨 질문을 하길래 그렇게 땀을 흘려요?”라고 물었다. 그 녀석 얼굴도 한 대 쳐주고 싶었지만 잘못한 게 없는 놈이었다. 문제는 우리였다.
   “아까 네가 한숨을 쉬지 않았으면……”
   “그래서 내 탓이라고?”
   “아니, 내가 먼저 한숨을 쉬었을 거라고.”
   “네가 한숨을 먼저 쉬었으면 내가 에이 씨발, 했겠지.”
   백전백패하더라도, 우리는 그런 사이였다. 우리는 에어컨디셔너 시설이 잘 돼 있는 지하철을 탔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고, 너무 더웠다. 몸의 온도가 낮아지자 끝까지 실뭉치를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타래를 풀기 시작한 지 30분 만에 우리는 모든 실을 뽑아냈다. 지하철 의자에 빨간색과 파란색 실을 풀어놓으니 그 부피가 엄청났다. 녹색 천 위에 빨간색과 파란색 실이 어지럽게 펼쳐져 있는 광경은 보는 사람을 압도했다. 화가의 그림 같기도 했고, 내 마음 속의 풍경 같기도 했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길겠다.”
   “한 50미터 될까? 아니다, 100미터는 되겠다. 더 넘나?”
   “그럼 재보지 뭐. 지하철 한 량의 길이가 20미터니까 실을 들고 왔다갔다해보면 길이가 나오겠네.”
   “20미터인 건 어떻게 알아?”
   “저기 써 있잖아. 멍충아.”
   나는 지하철 문 위에 붙어 있는 안내판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지하철 한 량의 길이와 너비, 그리고 차량번호가 적혀 있었다. 혼자서 지하철을 탈 때면 멍하니 그 표를 읽곤 했다. 가끔은 차량번호를 외우기도 했다. 같은 지하철 같은 칸에 다시 타게 된다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았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하는 회사원들은 언제나 똑같은 지하철을 타겠지만, 그중에서 차량번호를 확인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가 타고 있던 칸에는 승객이 네 명뿐이었다. 실을 들고 왔다갔다하더라도 수상하게 여길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M이 파란색 실 끝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M은 투명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처럼 실을 꼭 붙들고 천천히 걸었다. 지하철 의자 위에 놓여 있던 실이 뱀처럼 몸을 뒤틀며 M을 따라갔다. 한쪽 끝에 다다른 M은 실을 꺾은 다음 반대쪽으로 걸었다. 하지만 실을 한쪽 끝에다 고정할 도구가 없었기 때문에 실은 계속 M을 따라왔다. 이래가지고서는 정확한 길이를 잴 수가 없다.
   “자꾸 실이 따라오네. 네가 저기 가서 붙잡고 있을래?”
   “반대편에선 누가 잡고 있을 건데? 아르바이트라도 한 명 쓰게? 그러지 말고 그냥 지하철 끝까지 쭉 걸어갔다가 오지 그래?”
   “그러면 되겠네. 자식, 진작 말해주지.”
   M은 실을 쥐고 다시 걸었다. 지하철 연결부분의 문틈에 실이 끼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잘 빠져나갔다. 실 몇 가닥은 너끈히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헐렁한 문이었다. M은 흔들리는 지하철의 리듬에 맞춰 비틀거리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나는 실이 꼬이지 않도록 두 손으로 조금씩 실을 풀어주었다. 연을 날리는 기분이었다. 이미 M은 내 시야에서 사라졌지만 먼 곳으로 걸어가는 녀석을 느낄 수 있었다. 파란색 실이 계속 M을 따라갔다. 5분쯤 지났을 때, 실 끝이 드러났다. 나는 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끝부분을 오른쪽 검지에다 돌돌 말았다. 더이상 실이 없다는 사실을 M이 알 수 있을까. 순간, 팽팽하게 실이 당겨졌다. 조금이라도 힘을 가하면 끊어질 것 같았다. 반대편 실 끝에 있는 녀석의 힘이 느껴졌다. 실이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 분 후 M이 통로문을 열어젖히며 나타났을 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야, 이거 정말 재미있다. 실 들고 가는데 사람들이 다 쳐다봐. 너도 한번 갔다 와봐. 사람들 표정이 희한하게 바뀐다니까.”
   “길이는 제대로 쟀어? 몇번째 칸까지 갔는데?”
   “몰라. 처음에는 세면서 걸어갔는데 사람들이 하도 쳐다보는 통에 잊어먹었지.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니까. 너 안 갈 거면 내가 한번 더 갔다 올까?”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M은 빨간색 실을 집어들었다. 도대체 뭐가 재미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만약 그게 흥분할 정도로 재미있는 일이라면 안 해볼 수 없었다. 나는 M에게서 실 끝을 빼앗아들었다. M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나를 위해 순순히 실을 넘겨주었다. 빨간색 실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통로문으로 역무원이 들어왔다.
   “이 실 아저씨 거예요?”
   역무원의 손에는 파란색 실뭉치가 들려 있었다. 우리가 30분 동안 풀어낸 실을, 역무원은 순식간에 원상태로 되돌려놓았다. 내 손에는 빨간색 실이 들려 있었다. 지하철 의자에는 빨간색 실이 가득 쌓여 있었다. 발뺌할 수는 없었다.
   “네, 그런데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양복을 입은 수상한 남자가 폭탄을 설치하는 것 같다고요.”
   “폭탄이요?”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누군가 파란색 실을 폭약의 도화선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지구 어딘가에는 컬러풀한 폭탄 도화선을 이용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바닥에다 이 실을 왜 까신 겁니까? 폭탄 설치하신 거 아닙니까?”
   “아이고 아저씨. 폭탄 설치한 사람이, 네, 제가 폭탄 설치했어요, 그러겠어요? 그나저나 왜 안 터지는 거냐? 곧 터질 때가 됐는데……”
   앉아 있던 M이 대화에 끼어들면서 말했다. 역무원은 우리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양복을 입은 두 남자와 파란색과 빨간색 실뭉치.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었다. M은 계속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같이 좀 가셔야겠는데요.”
   역무원은 지하철 의자 위에 놓여 있던 빨간색 실을 헝클어 쥐더니 선반 위에 있던 신문들을 모두 헤집고 의자 구석구석을 살펴보았다. 폭탄 같은 게 있을 리 없다는 사실을 역무원도 알 것이다. 누가 보아도 우리의 표정과 폭탄은 어울리지 않는다. 폭탄을 설치할 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폭탄으로 세상을 다 날려버리겠어!’라는 마음을 먹은 사람은 눈빛부터라도 다를 것이다. 우리의 눈빛은 폭탄보다 폭죽에 가깝다. 같은 칸에 있던 승객들은 폭탄이라는 얘기를 듣더니 모두 옆칸으로 옮겨갔다.
   “죄송합니다. 사실은 저희가 예술을 좀 하고 있었거든요.”
   나는 역무원에게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무원이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마치 태어난 이래로 ‘예술’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역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예술’이라는 단어를 발음한 기분이었다.
   “예술이라뇨?”
   역무원과 M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예술 모르십니까?”
   “폭탄 설치가 예술입니까?”
   “폭탄 같은 건 없어요. 저 친구가 장난이 좀 심해서…… 그 실을 보면 아시잖아요. 도화선 같은 게 아니고 그냥 보통 실이에요. 저희는 그저 일상에 찌들어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독특한 경험을 하게 만드는, 그런 퍼포먼스랄까, 이벤트랄까, 아무튼 그런 예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지하철 바닥에다 실을 깔아놓는 게 예술이라는 얘깁니까?”
   “조각나 있는 현대인의 마음을 하나의 실로 이어주고 싶다는 메시지가 담긴 이벤트라고 할 수 있지요. 현대인의 삶을 가장 잘 반영해주는 공간이 지하철이잖습니까.”
   M은 옆에서 계속 키득거리고 있었지만 역무원은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었다. 역무원은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예술’이라는 단어를 들었기 때문인지, 내 태도가 너무나 예의바르게 보였기 때문인지 역무원의 태도는 많이 수그러들었다.
   “무슨 얘긴지 알겠습니다만, 지하철에서는 그런 걸 하시면 안됩니다.”
   “그런 거라뇨?”
   “예술 같은 거 말입니다.”
   “아, 예, 예술요. 알겠습니다.”
   “여기는 공공장소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곳이잖습니까.”
   “예, 다른 곳을 찾아볼게요.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 실들은 제가 압수하겠습니다. 잠깐 주민등록증 좀 보여주시겠습니까? 아무래도 기록은 좀 해둬야겠네요.”
   역무원은 우리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하고는 다른 칸으로 옮겨갔다. 지하철이 역에 도착했을 때 우리는 내렸다. 처음 보는 역이었고 어느 지역에 붙어 있는 역인지도 몰랐지만 상관없었다. 역무원이 다시 돌아와, 마음이 바뀌었어요, 같이 좀 가셔야겠어요, 라고 말할 것 같았다.
   “야, 웃긴다, 예술이라니. 아쉬워서 어떡하냐? 넌 예술도 못 해보고, 나만 신나게 예술 해서?”
   M이 다시 키득거렸다. 아닌게 아니라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이었지만 실을 끌고 가는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가 궁금했다. 정말 평범한 일상에 찌든 사람들에게 독특한 경험이 됐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바지 올이 풀린 줄 알고 얘기해주는 사람도 있더라니까. 엉덩이라도 보여줄걸 그랬나?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어. 얼마나 웃기던지, 혼자서 얼마나 키득거렸다고……”
   우리는 집 근처까지 버스를 타고 와서 맥주 집에 들어갔다. 어찌나 땀을 많이 흘렸던지 양복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다. 맥주를 들이켜자 실 같은 액체가 온몸 곳곳으로 스며들었다. 눈을 감고 맥주를 느끼면 내 몸의 길이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다음 면접에 대해서 얘기를 나누었다. 이틀 후에는 주방용 전자저울을 만드는 회사에서 면접을 보기로 되어 있다. M과 얘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그리고 면접 횟수가 늘어날수록, 회사가 우리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회사를 평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재미있는 면접 스타일을 이해해주지 않는 회사에는 절대 들어갈 수 없다는 원칙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결국 손해볼 사람은 우리였지만 손해본다고 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시작했으니 끝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었다.
   “요리를 하나 만들어서 가면 어때?”
   맥주를 연거푸 마시고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른 M이 말했다. 빨간색 실을 삼킨 것 같았다.
   “엉터리 요리를 만들어서 면접관들에게 먹인 다음 ‘이번에 주방용 저울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됐습니다’라고 하자는 거지?”
   “자식, 눈치 하나는 진짜 빨라.”
   “어차피 떨어질 게 뻔하니까 설사약이라도 좀 집어넣을까?”
   “살 빠지게 해줘서 고맙다고 덜컥 합격시켜주면?”
   “주방용 저울을 파는 인생이 되는 거지 뭐.”
   “그건 마음에 안 들어.”
   “그럼 원서는 왜 냈어?”
   “주방용 저울을 이용해서 재미있는 면접을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럴 줄 알았다. 우리 이러다 결국 취직 못 하는 거 아닐까? 벌써 스물일곱이다.”
   “아직 스물일곱인데…… 시간이 지나면 뭐라도 되겠지.”
   “뭐가 될까. 우리가 잘하는 게 있긴 있나?”
   내 말에 M까지 시무룩해졌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맥주만 들이켰다. M과 나는 가지고 있던 돈을 모두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맥주를 시킬 때마다 그 가격의 돈을 탁자 왼쪽으로 옮겼다. 오른쪽에 있던 돈이 왼쪽으로 계속 이동해갔다. 돈이 다 없어지기 전까지 취해야 했지만 돈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니 취하질 않았다. 시간이 지나도 정신은 말짱했다.
   “이제 네 잔 남았다.”
   “왜 이렇게 안 취할까?”
   “한꺼번에 다 마셔버리자.”
   우리는 맥주잔을 손에 쥐고 한꺼번에 들이켰다. 다 마시고 나자 트림이 올라왔고, 어지러웠다. 그때부터 우리는 취했다. 우리는 탁자 위에 있던 돈이 다 왼쪽으로 옮겨간 후에 집으로 갔다.
   다음날 술에서 깨어났을 때는 토성의 고리처럼 내 머리 주변에 두통의 고리가 둘러져 있었다. 고리는 빙글빙글 돌면서 수시로 머리를 짓눌렀다. M 역시 나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우리는 짬뽕 한 그릇을 배달시켜서 국물만 계속 들이켰다. 짬뽕을 보고 있으니 어제의 면접이 다시 떠올랐다. 실을 닮은 짬뽕의 면발이 눈에 거슬렸다. 우리는 그릇을 문 앞에다 내놓고 방에 드러누워서 천장만 보았다. 할 말이 없었다. 다음날 있을 면접을 준비해야 했지만 둘 다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오후 3시쯤 휴대전화기로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두 달 전쯤 인터넷 신문사에 입사한 친구였다. 신문사의 합격통지를 받았을 때 녀석은 우리와 함께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얼마나 기뻤던지 내 볼에다 입을 맞추기까지 했다. M이 녀석을 꼬드겨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다. 돈은 물론 회사에 합격한 친구가 냈다. 그날 녀석은 휴대전화기와 지갑을 잃어버렸고, 어디에 처박혔는지 턱에 상처까지 났다. 녀석은 “너희들, 내가 취직한 게 샘이 나서 나를 때린 거 아냐?”라고 투덜거렸지만 그런 일을 부러워할 우리가 아니었다. 녀석이 합격한 곳은 인터넷 신문 쪽에서 유명한 회사였지만 월급은 짜고 일은 많기로 유명했다. 다음날, 녀석은 우리를 백화점으로 불러내더니 넥타이 하나씩을 선물했다. 면접을 잘 보라는 의미였다. 자신을 위해서는 양복 한 벌과 최신형 휴대전화기와 양가죽 지갑을 샀다. 그 친구는 백화점을 나서면서 “이제부터 내 인생의 멋진 후반전을 시작할 거야”라고 했다.
   “전반전에서 힘을 많이 뺐으니까 후반전에선 아마도 대량 실점을 할 거라고 생각해. 한 20 대 0 정도?”
   M의 빈정대는 말투에 기분이 상했던 것인지 녀석은 한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다. 내 생각에 스물일곱과 후반전이란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린 아직 1쿼터도 끝내지 않았다.
   “야, 혹시 말야, M하고 같이 있냐?”
   M 몰래 내게 할 말이 있는 것인지 녀석은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같이 누워 있지. 약 먹고 동반자살하는 중이었거든…… 취직도 안 되고 돈도 없고 술도 안 깨고 해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와서 정말 죽으려는 사람으로 오해받을 것 같았다. 나는 목에 낀 가래를 입 안으로 끌어올린 다음 다시 삼켰다.
   “농담하지 말고……, 아무튼 같이 있단 말이지? 그러면 M한테 어제 지하철 타지 않았냐고 물어봐줄래?”
   “바꿔줄 테니까 직접 물어봐. 아직은 살아 있는 것 같으니까.”
   “야, 알잖아. 껄끄러워하는 거. 그냥 지하철 탔는지만 물어봐줘.”
   M은 잠이 들어 있었다. 아니면 자기 얘기를 하는 걸 알고는 잠이 든 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하철은 탔지. 나하고 같이 있었으니까.”
   “같이 있었어? 그러면 혹시 파란색 실 들고 지하철 돌아다니지 않았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야, 맞구나. M이 맞지? 양복을 입고 있으니까 잘 모르겠더라고.”
   “어떻게 알았냐니까!”
   “인터넷에 사진이 떴어. 주소 받아적어봐.”
   나는 친구가 알려준 주소를 입력했다. ‘거리의 풍경’이라는 개인 블로그였다. 거기에 정말 M의 사진이 있었다. 양복을 입은 M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카메라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 뒤로 파란색 실이 가늘게 보였다. 언뜻 보면 실이라기보다는 사진 위에다 파란색 선을 합성한 것처럼 보였다. 사진은 모두 다섯 장이었다. 뒷모습을 찍은 사진에서는 파란색 실이 조금 더 자세하게 보였다.
   사진을 업로드한 시각은 다섯 시간 전이었는데, 사진 아래에 이미 200여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댓글의 수만큼이나 의견도 다양했다. 애인이 교통사고로 죽었는데, 애인을 잊지 못해 애인 옷의 올을 풀어헤쳐 끌고 다니는 사람 같다는 의견도 있었고, 실을 끌고 전국일주를 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으며, 사진 위에다 파란 선만 그어놓은 합성사진인 것 같다는 의견도 있었다. 나는 M을 깨웠다. M은 사진을 보자마자 웃기 시작했다. 댓글을 읽어내려가면서 점점 웃음소리가 커지더니 마지막 글을 읽고 나서는 방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야, 정말 상상력이 대단한 놈들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지? 마지막 글 봤어? 옆칸에 있는 겁 많은 애인의 썩은 이를 뽑기 위해서 실을 들고 걸어가는 회사원이란다.”
   M은 데굴데굴 방바닥을 굴렀다. 데굴데굴 방바닥을 굴러다닐 정도로 웃긴 글은 아니었지만 M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이렇게 다양한 의견을 남겼으니 신기할 만도 하겠다. 사진의 주인공이 내가 될 수도 있었다.
   “회사에서 지금 연락처 알아내려고 난리야. M이 무슨 거리의 예술가라도 된다고 생각하나봐. 도대체 파란 실은 왜 들고 돌아다닌 거래?”
   M의 웃음소리가 전화기를 타고 녀석의 귀에까지 들렸는지, 못마땅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녀석이 말했다. 녀석은 오래 전부터 M의 장난과 농담을 싫어했다. “난 네가 왜 그렇게 M이랑 붙어다니는지 이해를 못 하겠더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친구가 조금씩 싫어졌다. 그런 상황에서 ‘이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싫었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는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뭔가 한마디 해줘야겠다 싶었지만 말을 꺼내는 순간 친구 하나를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나는 녀석의 진지함을 좋아했고 호기심 많은 눈동자를 좋아했다.
   면접과 실에 얽힌 길고 긴 이야기를 해줄까 싶었지만 M이 너무 초라해질 것 같았다. 나 역시 초라해질 것 같았다.
   “사실은 우리 예술 한 거야.”
   “예술이라니? 너희들이 무슨 예술을 해?”
   “지하철 퍼포먼스. 조각난 현대인의 마음을 실로 이어준다, 뭐 그런 의미지.”
   “언제부터 그런 걸 했어? 너희들하고 예술은 정말 안 어울린다.”
   M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었다. 또 장난을 치고 있을 것이다. 사진 아래에다 뭐라고 적을지 궁금했다.
   “오래됐어, 네가 몰라서 그렇지. 얼마 전에는 버스에서도 예술을 했지.”
   “버스에서는 뭘 했는데?”
   나는 버스를 떠올려보았다. 버스에서는 뭘 할 수 있을까. 버스에는 운전사가 있고 의자가 있고 하차 벨이 있고, 손잡이가 있고……
   “의자 뒤에 붙어 있는 광고판에다 파란색 실을 잔뜩 넣어뒀지.”
   “거기다 실은 왜?”
   “사람들이 실을 가지고 뭘 할 수 있는지를 실험해본 거야.”
   “그걸로 뭘 하던데?”
   버스 의자에 앉아 파란색 실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았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송화기 부분을 손으로 가리고 M에게 물어보았다. M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뭔가를 입력하다가 ‘앞에 앉은 사람 목 조르기’라고 대답했다.
   “사람들 상상력이 부족하더라. 대부분 옆사람과 실뜨기를 하던데.”
   “너희들이 그런 걸 한다니까, 좀 놀랍다. 내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
   전화를 끊고 나서 M이 인터넷에 적은 글을 보았다. “이 남자는 파란색 실을 이용해서 지하철을 꽁꽁 묶어놓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요”라고 써놓았다.
   “약한데?”
   “약해? 아, 좀더 생각해봐야겠다. 상상력이 모자란가봐.”
   우리는 다시 방바닥에 드러누워서 파란색 실로 뭘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았지만 졸렸다. 잠에서 깨어났더니 저녁 7시였고 바깥은 어둑어둑해지고 있었다. 시간을 도둑맞은 느낌이었다. 모든 게 너무 빨랐다. 아직 1쿼터도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친구녀석의 말처럼 벌써 후반전이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모두들 경기장에서 열심히 뛰고 있는데 우리만 로커룸에서 잠을 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M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저금통에 있던 동전을 책상 위에 쏟았다. 그러고는 종류별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마치 도박장에서 카드를 돌리는 것 같은, 신중한 모습이었다. M은 동전 10개씩을 하나의 무더기로 만들면서 천천히 동전을 셌다. 하지만 틈날 때마다 저금통에 있는 돈을 썼기 때문에 M의 작업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M은 두 번쯤 동전을 셌다.
   “얼마나 남았어?”
   내가 천장을 보면서 물었다. 얼마가 남았는지 알고 싶었다기보다는 얼마나 비참한 신세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럭저럭 라면 한 박스는 살 수 있겠다.”
   “그러면 돈 없어지기 전에 얼른 라면이나 사놓자.”
   M은 동전을 양쪽 주머니에 나눠 넣고는 밖으로 나갔다. 혼자 조용히 누워서 M이 없는 삶을 생각해봤다. 잘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각자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지금 누워 있는 방이 침몰하는 배 같았다. 침몰하는 배 속에서 우리는 꼭 껴안은 채 살고 있었다. 우리 두 사람의 삶은 운동회 때의 이인삼각 같은 것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발 하나씩을 묶고 호흡을 맞춰 열심히 달려보지만 두 다리로 달리는 사람보다 느릴 수밖에 없다. 재미는 있지만 느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너무 뒤처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우리 발목에 묶여 있는 끈을 풀어야 할 것 같았다. M에게 얘기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어쩌면 내가 먼저 끈을 풀자고 하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M에게 어떻게 얘기해야 할지를 생각하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너희들 얘기 했더니 편집부장이 인터뷰해오래. 내일 시간 어때?”
   “내일은 면접 있는 날인데.”
   “오후엔 괜찮을 거 아냐. 5시에 보자.”
   “그런데 무슨 인터뷰야? 우리 인터뷰 같은 거 안 할 건데.”
   “편집부장이 제목도 벌써 붙여놨어. ‘파란 실의 상상력, 거리의 예술가들.’ 인터뷰 못 하면 내 목 날아가. 그래도 괜찮아? 좀 해주라.”
   “M한테 물어볼게.”
   “물어보긴 뭘 물어봐. 너희 둘은 부부나 마찬가진데. 5시에 회사로 와. 회사 근처에 있는 지하철역에서 촬영도 할 거니까 양복 꼭 입고 오고. 아, 면접 보니까 양복은 당연히 입겠구나.”
   전화를 끊고 다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파란 실의 상상력, 거리의 예술가들.’ 예술은 무슨 얼어죽을 예술이람. 모든 게 다 귀찮게 느껴졌고 몸을 움직이고 싶지도 않았다. 면접도 보기 싫었고 회사를 다니기도 싫었다. 누군가 내 머리채를 붙들고 어디론가 질질 끌고 갔으면 싶었다.
   “내가 뭘 사왔게?”
   M이 문을 열면서 소리를 질렀다. 천진난만한 표정이었다. M은 등뒤에서 칼을 꺼냈다. 플라스틱 칼이었지만 제법 정교하게 만든 것이었다.
   “멋지지?”
   “멋지네. 그런데 무슨 돈으로 샀어?”
   “이거 소리도 나.”
   M은 플라스틱 칼을 바닥에 내리쳤다. 췌엥,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칼과 칼이 부딪쳤을 때 나는 쇳소리였다. M은 플라스틱 칼을 들고 돌아다니면서 방 안의 물건들을 두드렸다. 책상에서도 췌엥, 소리가 났고 비키니옷장에서도 췌엥, 컴퓨터 자판에서도 췌엥, 모니터에서도 췌엥, 소리가 났다. 전쟁영화의 사운드트랙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누워 있는 내게도 칼을 내리쳤고, 내 몸에서도 췌엥, 하는 소리가 났다.
   “라면 안 샀어?”
   “참, 라면 사러 간 거였지. 어째 돈이 남더라.”
   “그리고 두 개는 있어야 칼싸움이라도 할 거 아냐.”
   “요 앞 삼거리에서 팔고 있는데 하나 더 사올까?”
   “됐다. 이 나이에 무슨 칼싸움이냐.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라면 사먹어야지.”
   “우리 나이가 어때서.”
   나는 M에게 인터뷰 얘기를 했다. M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인터뷰 같은 건 싫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였다. 똑같은 양복을 유니폼처럼 맞춰 입어야 하는 것 아니냐면서 M이 호들갑을 떨었지만 그럴 만한 돈이 없다는 것은 우리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우리는 삼거리로 나갔다. 요란한 불빛 아래 수많은 장난감들이 늘어서 있었다. 자동차도 있었고 기차도 있었고 총도 있었고 화살도 있었고 방패도 있었다. 대부분 조잡한 것들이었다. M이 칼을 고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우리는 플라스틱 칼을 하나 더 샀다. 그리고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방패도 하나 샀다. 방패를 처음 봤을 때 나는 그게 유리로 만든 것인 줄 알았다. 떨어뜨리기만 해도 깨지는 방패, 앞은 환하게 볼 수 있지만 적의 공격을 막을 수는 없는 방패, 매일매일 깨끗하게 닦아줘야 하는 방패…… 그런 생각들을 하니 재미있었다. 손을 댔을 때에야 그게 유리가 아닌 투명 플라스틱으로 만든 것이란 걸 알았다. 앞이 보이는 방패는 싸움을 할 때 쓸모가 많을 것 같다. 칼과 방패를 샀더니 라면 열 개 정도 살 수 있을 돈이 남았다. 제대로 된 칼싸움을 하려면 방패를 두 개 사야 했지만 그래도 라면 살 돈은 남겨두어야 했다.
   방패에서도 췌엥, 하는 소리가 났다. 칼에서 췌엥, 하는 소리가 나는 것은 어울렸지만 방패에서 소리가 난다는 것은 이상했다. 머리로 방패를 때려도 췌엥, 하는 소리가 났고 주먹으로 때려도 췌엥, 소리가 났다. 칼로 방패를 내려치면 췌췌엥, 하는 기이한 소리가 났다. 이상한 세트 상품이었다.
   “내일 면접 가기 싫다.”
   M이 길거리에 있는 난간에다 칼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왜?”
   나도 난간에다 칼을 내리치면서 물었다.
   “저울회사란 게 별로 마음에 안 들어. 넌 어때?”
   “마음에 안 들긴 마찬가지지.”
   “가지 말자.”
   “그러자 그럼.”
   우리는 칼로 난간을 내리치면서 걸었다. 길을 걷던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래도 우리는 난간을 내리쳤다. 길거리의 소음 때문에 췌엥, 하는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다. M이 내가 들고 있던 방패에다 칼을 내리치면서 말했다.
   “우리 예술가나 돼볼까? 재능이 있나봐. 내일 인터뷰를 계기로 본격적인 예술을 하는 거야.”
   “예술은 아무나 하냐? 그리고 우리가 예술이 뭔지나 알아? 장난도 예술로 쳐준다면 우리가 1등 먹겠지만…… 사실 인터뷰도 하기 싫어. 장난 한번 친 거 가지고 인터뷰한다는 게 웃기지 않냐?”
   “재미있잖아.”
   뭐가 재미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칼로 왼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내리쳤다. 세게 내리쳤지만 소리는 커지지 않았다. 자동차 소리와 화장품가게에서 틀어놓은 라디오 소리 때문에 우리들의 칼소리는 오히려 더 작게 들렸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사진 아래에는 벌써 500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M은 모니터 앞에 앉아서 열심히 댓글을 읽었지만 나는 너무 지쳐 있었다. 아직도 술이 덜 깬 것 같은 기분이었고 입 안은 까끌거렸다.
   다음날 우리는 늦게까지 잠을 잤다. 저울회사의 면접은 포기했다. 우리는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양복을 입고 인터넷 신문사로 향했다. 인터뷰를 한다는 게 두려웠지만 재미있는 경험을 하는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신문사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내가 예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어서 말야. 이분이 나 대신 인터뷰를 하실 거야. 예술전문기자시거든.”
   친구가 소개해준 예술전문기자는 우리에게 명함을 주었다. 명함에도 ‘예술전문기자’라고 적혀 있었다. 예술전문기자라는 직업이 있다는 게 신기했지만 우리도 예술가였기 때문에 애써 태연한 모습으로 인사를 했다. 우리는 예술전문기자와 사진기자와 함께 지하철로 향했다. 사진기자는 “오늘의 촬영 콘셉트는 자유로움입니다. 아시겠죠?”라고 얘기했지만 자유로운 사진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는 예술전문기자가 쥐여준 파란색 실을 들고 지하철 객실 안을 걸었다. 실이라기보다 밧줄에 가까운 굵기의 끈이었다. 사진에 제대로 나오려면 이 정도 굵기는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나도 자유롭지가 않잖아요. 밧줄에 묶여서 끌려가는 노예도 아니고……”
   M이 투덜거렸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그러면 아무렇게나 놀아보세요.”
   사진기자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M이 플라스틱 칼과 방패를 꺼내서 예술전문기자에게 보여주었다. M은 사진촬영에 필요할지도 모른다면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가방에 쑤셔넣느라 한 시간을 허비했었다.
   “이걸 들고 노는 걸 사진으로 찍으면 어때요?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걸로 뭘 하실 건데요?”
   “칼싸움이요.”
   “유치할 거 같은데요. 그냥 끈을 들고 걷는 걸로 하죠?”
   예술전문기자의 말을 무시하고 우리는 칼을 들고 일어섰다. 나는 방패와 칼을 들었고, M은 칼만 들었다. M이 나를 향해서 소리를 질렀다.
   “멍청한 녀석, 그따위 방패로 내 칼을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웃기는 소리 말아라. 그따위 플라스틱 칼로 내 유리방패를 깰 수 있을 것 같으냐? 유리방패 너머로 네놈이 움직이는 게 다 보인다.”
   우리는 칼을 부딪쳤다. 췌췌엥, 하는 소리가 객실에 울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소리가 컸다. 예술전문기자는 지하철 의자에 앉아서 입을 벌린 채 우리를 바라보았다. 재미있어서라기보다 너무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상대방을 정말 죽이기라도 할 것처럼 온 힘을 다해 칼싸움을 했다. 사진기자는 열심히 셔터를 누르긴 했지만 밝은 표정은 아니었다.
   먼 곳에 앉아 있던 꼬마 두 명이 우리 가까이로 왔다. 양복을 입고 칼싸움을 하고 있으니 신기해 보였던 모양이다. 두 꼬마는 열심히 우리들의 칼싸움을 구경했다. 꼬마들의 엄마인 것 같은 어른 두 사람이 우리 쪽으로 왔고, 췌엥, 하는 소리가 궁금했던 할아버지 두 분, 그리고 연인처럼 보이는 남녀가 우리 곁으로 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다.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면서 상대의 빈틈을 공격했다고는 하지만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느린 속도로 움직였기 때문에 실제로 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용에 가까웠다. 제일 먼저 우리를 발견한 두 꼬마는 엄마들의 손을 붙들고 “나도 저 칼 사줘”라면서 떼를 쓰고 있었다. 5분쯤 지났을 때 우리 주위에는 서른 명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들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예술전문기자의 얼굴이 밝아졌고 사진기자의 손놀림이 빨라졌다. 나는 M에게 고갯짓을 했다. 내 의도를 알아차린 M이 칼을 놓쳤다. 나는 지하철 의자에 놓아두었던 파란색 밧줄을 이용해 M을 묶었다. 아니, 묶었다기보다 밧줄을 M의 몸에다 걸쳤다. 때마침 지하철이 역에 멈춰 섰다. 우리는 칼과 방패를 지하철 객실에다 버린 다음 승강장으로 나왔다. 사진기자와 예술전문기자가 우리를 따라 밖으로 나왔다. 칼과 방패는 꼬마들에게 주는 선물이었다.
   “재미있었죠?”
   M이 자랑스럽게 말했고 예술전문기자가 웃었다. 우리는 인터뷰를 위해 커피숍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예술전문기자가 질문을 퍼부었지만 우리가 대답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질문이 너무 어려웠다.
   “브루스 나우만은 자신의 신체언어를 사진으로 기록하면서 예술에 대한 개념을 표출했는데요, 그런 장르에서 영향을 받지는 않으셨습니까?”
   “누구요?”
   “브루스 나우만은, 진정한 작가는 신비한 진실을 밝힘으로써 세상을 돕는다, 라고 했습니다. 작가로서 자신들의 행동에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는 평범한 진실을 밝혀 세상을 돕는다고 생각하는데요.”
   “평범한 진실이란 게 어떤 겁니까?”
   “재미있게 노는 거요.”
   대충 이런 식의 인터뷰였다.
   우리는 농담으로 모든 답변을 대신했다.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M은 “경제적으로 해결한다”고 대답했고, “왜 하필 실을 이용한 퍼포먼스를 하십니까”라는 질문에는 “워낙 실패를 자주 하다보니 거기에서 실이 풀려나온 것 같다”고 내가 대답했다. 예술전문기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힘겨워했다. 예술전문기자가 가장 관심을 보였던 이야기는 우리들의 면접 퍼포먼스였다. 할 얘기가 너무 없어서 우리는 면접 보았던 일들을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저희가 가장 좋아하는 건 면접장에서 노는 겁니다. 취직할 생각은 없었지만 면접을 자주 봤죠. 면접관들을 앞에 두고 마술쇼도 하고 만담도 하고 실을 이용한 이벤트도 했어요. 그거 정말 재미있습니다.”
   “실을 이용한 이벤트라뇨?”
   “면접관들을 앉혀두고 그 앞에서 헝클어진 실을 푸는 겁니다. 그 사람들이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는지 보는 거예요. 말하자면 회사원으로서의 인내력을 실험해보는 거죠.”
   “결과는 어땠어요?”
   “그 사람들, 참을성이 없어서 5분도 못 기다리더라구요. 제대로 된 사람을 뽑을 생각이라면 5분은 기다릴 줄 알아야 되는데 말이죠. 면접장에서 딱 5분 보고 그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웃기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딱딱하게 경직돼 있는 조직사회에 대한 야유를 예술적으로 표현하신 거군요. 면접 퍼포먼스는 얼마나 하셨어요?”
   “한 서른 번 했죠. 매번 다른 걸로.”
   우리는 신이 나서 면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면접에 대해서라면 할 말이 많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다, 라는 거짓말로 시작을 하고 보니 정말 우리가 예술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음날 인터넷 신문에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회를 체포한 지하철의 장난꾸러기들”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랐다. 우리가 칼싸움하고 있던 사진, 내가 M을 파란 밧줄로 묶은 사진,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칼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사진도 기사와 함께 올라와 있었다. 기사에는 우리의 면접 이야기가 가장 많았다.
   “그럴싸한데?”
   “역시 예술전문기자는 다르시네. 이렇게 기사로 보니까 우리가 정말 예술가 같다.”
   인터넷 신문에 기사가 오른 다음날부터 우리는 유명인사가 됐다. ‘거리의 예술가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제의도 왔고, ‘발상의 전환’이라는 과목을 맡아줄 수 있겠냐면서 대학에서 연락이 오기도 했다. 인터뷰 요청도 많았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요청을 거절하고 딱 하나만 받아들였다. 광고회사의 신입사원 면접관을 맡아달라는 제안이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면접이라면 자신 있었으니까. 물론 우리에게 응모자들의 합격여부를 결정하는 전권을 준 것은 아니었다. 면접관은 모두 10명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면접을 본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다.
   우리는 면접 전날 저녁을 먹으면서 회의를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점수를 받는 사람이었던 우리가 이젠 점수를 주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어떻게 하면 면접을 재미있게 볼 수 있을까, 우린 그 생각만 했다.
   “좀 전에 연락 왔는데 또 면접 맡아달라는 전화야.”
   “벌써 몇개째냐. 이러다가 우리 전문면접관 되는 거 아니냐?”
   “야, 그거 괜찮은데? 전문면접관, 우리 그거 하자.”
   회사는 많고 회사들은 늘 신입사원을 뽑는다. 일거리는 충분할 것 같았다. 좀더 노력한다면 전문면접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광고회사의 면접준비회의 끝에 폭죽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리는 면접이 진행되는 중간에 갑자기 폭죽을 터뜨렸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색색의 실이 응모자들 앞으로 쏟아졌다. 같이 앉아 있던 면접관들에게도 미리 얘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면접관들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응모자들은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소리를 지르는 친구도 있었고, 깜짝 놀라면서 식은땀을 흘리는 친구도 있었고, 의자와 함께 뒤로 자빠진 친구도 있었다. 우리가 폭죽을 터뜨린 이유는 얼마나 긴장하고 있느냐를 보기 위한 것이었다. 폭죽을 터뜨렸을 때 소리내어 웃는 친구에게 제일 높은 점수를 주었다. 긴장해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법이다.
   “다음 회사는 어디야?”
   “증권회사야. 어떤 이벤트가 좋을까?”
   “너 증권에 대해서 아는 거 있어?”
   “없지.”
   “그러면 면접자들한테 질문을 해보라고 하면 어떨까. 그 사람들이 질문을 하고 우린 대답을 하는 거야. 우리가 면접 많이 해봐서 알지만 질문 잘하는 것도 능력이잖아.”
   “그렇지. 재미있겠다.”
   면접관 일이 재미있었고, 면접에 대한 회의를 하는 게 재미있었다. 우리는 예전과 마찬가지로 기발한 이벤트를 많이 했다. 광고회사에서처럼 폭죽을 터뜨리기도 했고, 상자에다 잡동사니를 넣어놓고 한 가지를 뽑게 한 다음 그 물건으로 우리를 웃겨보라는 주문을 하기도 했고, 자신만을 위한 응원가를 만들어보라는 요구도 했다―물론 M과 나의 응원가도 불러주었다. 많은 면접자들이 우리의 질문과 이벤트를 재미있어했다. 우리는 면접관이라기보다 면접장을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면접을 봤더라면 우리도 진작에 회사원이 됐을 텐데,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는 면접관 일을 하면서, 태어난 이후 처음으로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일인가요? 라고 물어본다면 할 말은 없지만 후반전이 시작됐는데 혼자서만 로커룸에서 자고 있다는 생각은 더이상 들지 않았다. 우리는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지만 이제는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주는 입장이 됐다. 누군가의 방패가 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기뻤다. 그것이 플라스틱이나 유리로 만들어진 방패이더라도 말이다.
   스무번째였는지 스물한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였다. 웹 기획을 하는 회사의 면접이었는데, 어찌나 지원자가 많았던지 면접을 다 보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피곤했다. 지원자의 성격이나 대답에 따라 매번 다른 질문을 해야 했기 때문에, 또 우리가 준비한 이벤트를 모든 사람들에게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우리는 점점 지쳐갔다. 아이디어도 고갈되는 것 같았고, 무엇보다 갈수록 재미가 없어졌다. 겨우 스무 번밖에 면접을 보지 않았는데 벌써 재미가 없다는 게 이상했다. 우리는 버스 맨 뒷좌석에 나란히 앉아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에휴, 하여간 쉬운 일이 없어, 그치?”
   여전히 창밖을 내다보면서 M이 말했다. 내게 묻는다기보다 스스로에게 묻는 질문 같았다.
   “우리,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우리에게 어울리는 일이 아닌 것 같아.”
   나 역시 창밖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이라…… 매일 면접 보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자고? 그때도 재미있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더 나아.”
   “아니, 그보다 더 처음으로.”
   “대학교에 다시 입학하자고?”
   “더 처음.”
   M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보며 빙긋댔다. 그리고 말했다.
   “설마 같이 동반자살하고 다시 태어나서 만나자, 그런 건 아니지?”
   “아니지.”
   “그러고 보니 처음이 어딘지 잘 모르겠네. 어딘가의 갈림길에서 여기로 온 걸 텐데 말야.”
   “넌 꿈이 뭐였지?”
   “꿈? 새삼스럽게 꿈은 왜 물어본대? 유치하게스리……”
   M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풍경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를 기억해내려 애쓰는 것 같았다. 언젠가 M은 내게 정원관리사가 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여행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적도 있었고, 동물원의 사장이 되고 싶다고도 했다. 나는 어떤 것이 M의 꿈인지 모른다. 셋 모두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M이 버스 유리창을 활짝 열었다. 바람이 M을 지나 내게로 왔다. M은 창밖으로 고개를 반쯤 내밀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를 타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버스 뒤창문을 내다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진 전깃줄이 우리가 온 곳을 알려주고 있었다. 정확히 이름붙일 수 없는, 언제부터 언제까지라고도 말할 수 없는, 내 삶의 어떤 한 시절이 지나가는 중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 『악기들의 도서관』(문학동네, 2008)에 수록

 

 

   추천하며


   「유리방패」라는 즐거운 소설의 핵심과는 별로 상관이 없지만, 다음과 같은 부분을 만나면, 누구라도 이 소설을 마저 읽지 않을 수 없다. 예를 들면, “아까 네가 한숨을 쉬지 않았으면……”/“그래서 내 탓이라고?”/“아니, 내가 먼저 한숨을 쉬었을 거라고.”/“네가 한숨을 먼저 쉬었으면 내가 에이 씨발, 했겠지.” 하는 부분 같은 것. 이 소설은 등장인물의 탁월한 놀이 감각 덕에 발생하는 유머 감각이 빼어나 유쾌하고 즐거운 소설이기도 하지만 과하지 않은 공감과 ‘탓’을 돌릴 생각이 없는 청춘의 우정과 이해가 곳곳에 포진해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래서 김중혁 소설은 위로를 작정하고 쓰여진 어떤 글보다 위로를 던져 주고 정색하지 않고 말하는 덕분에 진심을 강요당하지 않아도 되어, ‘진심’으로 따뜻하다.

(소설가_편혜영/문학평론가_노대원, 양윤의, 조연정)

 

 

   《문장웹진 2월호》

 

 

 

kakao

댓글남기기

  Subscribe  
Notify o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