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십년감수(十年感秀)_소설

 

 

소년

 

황정은

 

 

 

 


   머리맡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신경을 모은다. 밤새 딱딱한 목질에 짓눌려 목덜미의 감각이 둔하다. 오른쪽에서 무언가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소년은 그 방향으로 급히 머리를 돌린다. 눈꺼풀 속에서 빨간 점이 확 피어오른다. 쥐다. 소년은 생각한다. 쥐가 또 수챗구멍에서 기어나왔다.
   이 방은 늘 좁다. 세 사람이 간신히 누울 만한 크기의 방을 네 사람이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년은 문턱에 머리를 올려두고 잠을 잔다. 문턱 너머는 낡은 타일 바닥이다. 타일 바닥엔 구겨진 신발들이 흩어져 있고, 수챗구멍과 음식찌꺼기를 담은 바구니가 있고, 곳곳에 쥐똥이 흩어져 있다. 닷새 전쯤 잠에서 깨고 보니 정수리가 얼얼했다. 손끝으로 머리카락 속을 더듬었더니, 덜 마른 피가 손톱 밑에 묻어났다. 쥐다, 밤사이 수챗구멍에서 기어나온 쥐가 머리를 갉아먹은 것이 틀림없다고 소년은 생각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이제 정수리 바로 아래쪽에서 들려온다. 소년은 눈을 감은 채 하나, 둘, 센다. 셋을 세었을 때 이불 밖에 나와 있던 오른팔을 휘둘러 머리맡을 내리친다. 재빠르게 상체를 뒤집어 바라본다. 아무것도 없다. 소년의 오른손은 닳은 문턱과 물때 오른 타일의 중간쯤을 아프게 내리쳤을 뿐이다. 소년은 입술을 비튼다. 약삭빠른 놈. 이번에도 도망을 갔어.
   현기증이 난다. 도로 누우며 소년은 가쁜 숨을 쉰다. 소년의 눈 속에서 천장이 노랗게 팽창했다가 푹 꺼져들어간다. 벽지가 노란 것은 담배연기에 전 탓이다. 이 좁은 방 안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둘이다. 어머니도 담배를 많이 피우지만 압도적으로 담배를 피워대는 쪽은, 남자다. 구야가 기침을 하는 것도 남자가 담배를 너무 많이 피우기 때문이다. 소년은 칸막이를 노려본다. 빨랫줄에 맨 겨자색 천이 방을 두 개의 공간으로 나누고 있다. 그 건너편에서 남자가 코를 곤다. 어머니는 남자의 배 위에 허벅지를 올려놓은 채 잠들어 있을 것이다. 소년은 손등으로 눈을 비빈다. 어머니는 아름답다. 남자도 어머니가 아름다운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남자는 이 년 전에 소년의 방으로 들어왔다. 양말과 속옷 따위로 불룩해진 가방 하나만을 들고 있었다. 바닥이 반들반들해진 양말을 벗어 소년의 얼굴을 향해 던지며 남자는 킬킬 웃었다. 묵묵히 노려보는 소년에게 남자는 손을 펼쳐 보였다. 양쪽의 새끼손가락이 뭉뚝하게 잘리고 없었다. 남자는 대개 사나흘에 한 번씩 바깥잠을 자고 들어온다. 하루 종일 집 안에 있는 날이면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어머니의 가슴을 움켜쥐고 엉덩이를 주무른다.
   소년은 머리를 돌려 구야의 납작 눌린 뒤통수를 바라본다. 구야는 벽 쪽으로 몸을 바짝 붙이고 누운 채 잠들어 있다. 구야는 잠을 잘 잔다. 소년이 눈꺼풀 위에 손바닥을 얹고 “자”라고 말하면 곧 잠들어버린다. 소년은 좁은 창을 바라보며 시간을 가늠한다. 소리 죽여 자리에서 일어난다. 칸막이 너머의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우며 창가로 다가간다. 세탁한 지 오래된 이불이 소년의 발바닥에 달라붙어 부드럽게 발소리를 흡수한다. 소년은 어머니의 브래지어와 남자의 청바지가 나란히 걸린 옷걸이 밑에 선다. 칸막이 쪽을 흘끗 돌아본다. 칸막이 바깥으로 남자의 두꺼운 발가락이 비어져나와 있다. 소년은 남자의 바지 주머니에 조심스럽게 손을 밀어넣는다. 두툼한 돈뭉치를 꺼내든다. 지폐 사이에 빈 사탕 껍질이 물려나온다. 소년은 사탕 껍질을 이불 위로 털어내고 돈뭉치를 들여다본다. 수표 몇 장과 만원권이 스무 장 남짓, 천원권이 여섯 장, 오천원권이 한 장이다. 소년은 잠깐 망설인다. 만원, 천원, 오천원권을 각각 한 장씩만 남자의 바지 주머니 속에 되돌려놓고 나머지는 모두 제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소년은 방문턱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신발을 신는다. 부엌 바닥에 놓인 라면박스 속에서 소년의 기척을 알아챈 병아리들이 목쉰 소리로 종종거린다. 소년은 재빨리 다가가 라면박스를 두 팔로 안아든다. 구야의 병아리들이다. 병아리들의 집은 늘 뚜껑을 덮어둔다. 병아리들은 어두우면 밤인 줄 알고 잠을 잔다. 상자 속은 언제나 밤이다. 하루에 여섯 알의 아스피린을 먹는 소년의 어머니는 구야의 병아리들이 삑삑거리는 소리를 못 견뎌한다. 소년은 라면박스를 들고 어깨와 발끝을 도사리며 좁은 부엌을 지난다. 수포처럼 둥글게 페인트가 부풀어오른 합판문을 밀고 복도로 나간다. 복도 좌우로 똑같이 생긴 문들이 열댓 개쯤 마주 보고 늘어서 있다. 어른은 머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문 안쪽에 싱크대만으로 꽉 차는 부엌과 좁은 방 한 칸씩이 딸려 있는 집들이다. 소년은 자기 집 문 옆에 병아리들의 집을 내려놓는다. 상자 속에서 병아리들이 날개를 포닥인다. 이제 제법 자랐을 만도 한데 날갯짓 소리가 형편없이 가볍다. 소년은 먹이를 줘볼까 하고 생각했다가 그만둔다. 모이를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가 어머니나 남자를 깨우기라도 하면 곤란하다. 소년은 주머니에 든 돈을 만지작거리며 집 앞을 떠난다. 빠른 걸음으로 복도를 빠져나간다.
   푸르스름한 이끼 포자가 일 년 내내 떠다니는 듯한 건물 내부를 빠져나온다. 쏟아지는 빛에 눈을 제대로 뜨기 힘들다. 소년은 건물 입구에 서서 눈두덩을 주먹으로 문지른다. 흡, 하고 가슴을 부풀려 숨을 들이쉰다. 비탈진 골목길을 내려가 치킨집과 쌀집, 전파사가 있는 넓은 길로 나선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부어오른 얼굴이 따갑게 느껴진다. 머릿속이 멍하다. 머리를 흔들고 주먹으로 옆머리를 두드린다. 가슴을 크게 부풀려봐도 소용이 없다. 몸은 사라지고 머리만으로 둥둥 떠가는 것 같다. 병신. 소년은 세탁소 유리문 앞에서 머리를 기울이며 중얼거린다. 병신.
   횡단보도 앞에 선다. 씨르르– 소년의 머리 위 나뭇가지에서 매미가 울기 시작한다. 벌써 매미가 운다. 소년의 동네에서는 매미가 빠르게 자란다. 수챗구멍 속의 쥐도 상자 속의 병아리도 얼굴이 더러운 아이들도 빠르게 자란다. 소년은 머리를 흔든다. 매미 우는 소리에 따끔따끔 귀가 울린다. 매미, 매미, 매미, 매미, 매애애애– 아. 시끄러워. 소년은 외치는 대신 한쪽 발로 세게 바닥을 구른다. 윙 하는 소리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잘게 부서진다. 귓속에서 거짓말처럼 매미소리가 지워진다. 소년은 빠르게 눈을 깜박인다. 신호가 바뀐다. 소년은 횡단보도의 하얀 선만을 골라 밟으며 길을 건넌다.

 

   어두컴컴한 터널 안쪽에서 바싹 마른 먼지가 피어오른다. 미지근한 바람을 일으키며 수원행과 의정부행 전철이 동시에 들어온다. 소년은 제1승강장 안전선 끝에 아슬아슬하게 발끝을 걸치고 선다. 완만하게 속력을 줄이며 다가오는 전철을 바라본다. 두 개의 전철이 거대한 피스톤처럼 역사의 공기를 중앙으로 압축하며 밀려들어온다.
   기차에 치여 죽은 시체들은 피를 많이 흘리지 않아. 누군가의 목소리가 소년의 고막을 간질이고 멀어진다. 누구지. 누구지. 소년은 초조하게 한쪽 무릎을 떨며 생각한다. 건너편 문에 살던 마홍이 형의 목소리라는 걸 기억해내고 안도한다. 마홍이 형은 서울과 부산간을 오가는 기차 안에서 김밥을 팔았다. 지난 봄에 자기 방 안에서 면도칼로 팔을 긋고 죽었다.
   그렇게 조각조각 절단이 나는데도 말이야. 마찰열 때문일 거야. 뜨거운 바퀴 때문에 절단면이 순식간에 익어버리는 게 아닐까. 마홍이 형의 메마른 목소리가 바짝 귓전을 맴돌다 멀어져간다. 귀가 먹먹하다. 소년은 다갈색 때가 말라붙은 귀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수원행 전철에 오른다. 주말이라 사람은 적지만 빈자리가 없다. 소년은 출입문 근처 기둥을 잡고 선다. 손가방을 무릎 위에 얹은 중년 여자가 소년의 지저분한 바짓단을 흘깃거린다. 열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간다. 소년은 검은 유리창에 떠오른 얼굴을 들여다본다. 오른쪽 이마와 뺨이 광범위하게 부었다. 한쪽 눈이 찌그러져 보인다. 소년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땀이 밴 손가락에서 지폐 냄새가 난다. 어딜 갈까 하고 생각하니 막막하다. 돈을 쓸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돈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지만, 모두 써버리는 거다. 어젯밤의 복수다. 써버리는 액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남자는 분통이 터질 것이다. 하하. 소년은 차창에 떠오른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히죽 웃는다. 남자는 어제 끗발이 좋았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밥을 먹는 내내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넣고, 나머지 손으로는 어머니를 끌어당기며 끊임없이 입을 열었다. 이봐, 일주일에 하루만 오늘 같아도 우리 둘이 먹고살기는 문제가 없지. 입술 밖으로 밥풀이 비어져나와 턱에 달라붙고 밥상 위에도 떨어졌다. 소년은 숟가락을 밥상 위로 내던졌다. 플라스틱 국그릇이 엎어지고 남자의 이마 위로 뜨거운 국물이 튀었다. 남자는 먹던 밥그릇을 쥐고 소년의 얼굴을 후려쳤다. 병신. 소년은 중얼거린다. 병신. 유리창이 확 밝아진다. 소년의 얼굴이 지워진다. 전철 문이 벌어지고 사람들이 내린 뒤 그보다 많은 사람들이 올라탄다. 푸른색 원피스를 입은 계집아이 둘이 젊은 여자의 손을 잡고 전철에 오른다. 여자는 재빠르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나아가 빈자리에 계집아이들을 앉힌다.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손장난을 하고 놀다가 발을 까닥이며 노래를 부른다.
   세에계를 돌고 도올면 별처럼 많은 형제– 알고 보니 우리드을은 지이구마을 한 가족–

   소년도 그 노래를 알고 있다. 배가 쉴새없이 삐걱거렸다. 배를 타고 목이 콱 막힐 만큼 눅눅한 터널 속을 지났다. 전구 불빛으로 울긋불긋한 터널 속에 온통 그 노래가 울렸다. 소년은 그 배 안에서도 구야의 손목을 단단히 쥐고 어머니를 노려보았다. 형아, 손이 아파. 구야가 울었다.
   소년은 자신의 이름이 기록된 문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네 아버지로 짐작되는 남자가 몇 있었는데,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았어. 손에 쥐고 있던 화투로 모포 위에 엎어진 화투를 따악 때리며 소년의 어머니가 말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술집에 딸린 작은 골방 안에서 소년을 낳았다. 소년이 네 살이 되었을 무렵에 다시 임신을 하고 일을 그만두었다. 소년의 남동생을 낳고 아이를 구야라고 불렀다. 소년처럼 소년의 남동생도 성을 갖지 못했다. 건설현장 인부였던 구야의 아버지는 너무 무거운 등짐을 지고 오르다가 균형을 잃고 오층 높이에서 떨어졌다. 그는 이제 막 굳기 시작한 콘크리트 속에 박혀 있던 철근에 폐를 꿰뚫렸다. 분향소에서 비쩍 마른 그의 아내가 손톱으로 영정을 쥐어뜯으며 울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울지 않았다. 일 년도 되지 않아 손가락이 여덟 개인 남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남자가 들어오고서 얼마 후 소년의 어머니가 형제를 놀이공원에 데리고 간 일이 있었다. 소년은 어머니가 자신들을 그곳에 버리고 갈 것이라는 걸 알았다. 구야는 자꾸 솜사탕을 사달라고 졸랐다. 소년은 구야의 손목을 잡고 악착같이 어머니를 따라다녔다.
   차캉차캉. 전철이 어두운 터널 속에 분절음을 울리며 나아간다. 소년은 곧잘 전철을 탄다. 전철역들의 이름을 외우는 동안 글자도 배웠다. 전철은 간단한 놀이기구다. 어두운 터널 속을 가더라도 반드시 밝은 곳으로 떠오르는 순간이 있어 안심이 된다. 어디에 내리든 돌아가야 할 곳의 이름만 정확하게 알고 있다면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소년은 차창에 바짝 코를 붙인다. 뭉개지고 겹쳐진 지문들을 들여다본다. 하나하나에 코를 들이대고 냄새를 맡는다. 씁쓰름하고 비린 피냄새가 나는 것 같다. 마홍이 형의 방에서도 그 냄새가 났다. 사람들이 마홍이 형의 방 안으로 들어갔다. 소년은 문밖에 서 있었다. 방에서 나온 사람들이 소년에게 물었다. 네가 처음 발견했니? 소년의 운동화 앞코에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게 굳은 피가 묻어 있었다. 아직 선명한 붉은색이었다. 소년은 신발을 벽에 문질러 닦았다. 전철이 정차하고 사람들이 소년의 어깨를 밀치며 내린다. 네번째로 어깨가 밀렸을 때 소년도 그들을 따라 내린다. 전철이 움직인다. 소년도 같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점점 빠르게 걷다가 주먹을 쥐고 뛰기 시작한다. 전철이 묵직하게 꼬리를 끌며 또다른 터널 속으로 사라진다. 소년은 발을 멈춘다. 가슴속에 바퀴 소리가 꽉 찼다. 쿵쿵. 내 가슴속에서도 바퀴가 돈다. 소년은 웃는다. 내린 곳이 어디인지 알아보려고 뒤를 돌아본다.
   그때 내가 스물셋이었어. 어머니가 말했다. 놀이공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전철 안이었다. 등을 웅크린 사람들이 드문드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피로해 보였다. 소년은 전철 안에서도 구야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작은 무덤 꿈을 꾸었는데, 아직 잡풀도 돋지 않은 빨간 새 무덤이었어. 그 묘비에 새까만 미역이 둘둘 감겨 있었어. 끔찍한 꿈이었어. 그 꿈을 꾸고서 얼마 후에 임신한 것을 알았어. 너를 떼기가 무서웠어. 소년은 어머니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전철이 멈추고 출입문이 열릴 때마다 구야의 손목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구야는 그때마다 흠칫 놀라 얼굴을 들었다가 다시 졸았다. 소년은 어머니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언제든 어머니가 자리를 박차고 출입문을 향해 달리면 쫓아갈 수 있도록, 다리를 긴장시켰다. 하루 종일 화장실도 가지 않고 어머니를 쫓아다녔다. 바지 속에서 뜨거운 오줌이 새어나와 엉덩이와 허벅지와 전철 시트를 차례대로 적셨다. 어머니가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너를 낳자고 마음을 바꿔먹은 이유는, 순전히 꿈 때문이었어.

 

   여름맞이 브랜드 기획전 칠층 특별행사장, 수영복, 아동 스포츠웨어 기획판매, 27일은 쉽니다. 소년은 엘리베이터 옆에 붙은 광고전단지를 바라본다. 오렌지색 수영팬티를 입고 어깨에 빨간 튜브를 건 사내아이가 전단지 좌측면에서 웃고 있다. 소년은 사내아이가 입은 수영팬티를 바라본다. 깨끗한 무릎과 복사뼈, 가볍고 시원해 보이는 여름샌들, 도톰한 입술 속 가지런한 이빨들을 찬찬히 뜯어본다. 손을 뻗어 광고지 모서리를 뜯어낸다. 사내아이의 샌들이 잘린다. 다리와 아랫배도 뜯어낸다. 가슴 부분은 접착제 때문에 잘 뜯어지지 않아서, 손톱으로 몇 번이나 긁어낸다. 통통한 얼굴도 지그재그로 잘라낸다.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사람들이 밀려나온다. 빈 엘리베이터에 사람들이 오른다. 소년은 광고지를 뭉쳐 바닥에 내버리고 몸을 돌린다. 수입식품 코너를 지난다. 백화점 지하 일층 매장엔 음식재료를 튀기고 볶는 냄새가 안개처럼 들어차 있다. 가슴에 버튼이 달린 가운을 입은 남자가 갓난아기의 머리통만한 만두를 찜틀에서 들어낸다. 소년은 발을 멈추고 만두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본다. 배가 고프다. 주머니 속에서 지폐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며 해산물 코너를 지난다. 유제품 진열대를 지나 푸드코트 속으로 들어간다. 냉면 코너 앞에 선다. 국자로 육수를 떠서 면이 담긴 그릇 속에 붓던 여자가 소년의 등뒤를 턱으로 가리킨다. 표를 사가지고 와. 소년은 여자가 가리키는 대로 식권판매대로 다가간다. 냉면 값은 이천오백원이다. 주머니 속에서 대강 지폐를 골라내 계산대에 올려놓는다. 두 장이 만원이고 한 장은 십만원권이다. 만원짜리 한 장을 남기고 나머지는 도로 주머니 속에 밀어넣는다. 거스름돈을 내주며 계산대의 점원이 소년을 빤히 바라본다. 소년은 식권을 손에 쥐고 냉면 코너로 간다.
   구석자리에 앉아 냉면을 먹는다. 다음 일을 따져본다. 아예 집을 나올 생각은 없었지만, 돈이 이렇게 많으니까, 이대로 집을 나갈까 하고 생각한다. 별 갈등도 없이 마음이 그쪽으로 기운다. 이대로 집을 나가자. 가지고 있는 돈으로 당분간 먹고 자고 구경도 하면서 놀다가 취직을 하자. 돈이 많은 어른이 되어서 좁고 더러운 그 방으로 구야와 어머니를 데리러 가자. 남자는 필요 없어. 어른이 되어 집에 돌아가면 남자의 나머지 손가락들을 모조리 잘라 하수구 속 쥐에게 던져줄 것이다. 소년은 그런 생각을 하다가 겨자 덩어리를 씹고 혀를 내민다. 냉면그릇을 들고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는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층으로 오른다. 피혁 냄새와 화장품 냄새가 뒤섞인 일층 잡화 코너를 찡그린 얼굴로 지나간다. 이층부터는 느긋하게 구경한다. 잿빛 유니폼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점원들이 소년을 바라본다. 오층으로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 앞에 동화책을 늘어놓은 간이판매대가 서 있다. 소년은 하루 종일 집 안에서만 노는 구야를 잠깐 생각한다. 판매대 앞을 지나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소년은 텔레비전에서 방영해주는 동화의 세계를 믿지 않는다. 소원을 들어주는 요정이 있고 작은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주는 혈색 좋은 어머니가 있고 아이를 때리는 어른은 항상 벌을 받는 동화의 세계 따위, 거짓말이라는 걸 소년은 알고 있다.
   칠층 가전매장에서 걸음을 멈춘다. 또래의 사내아이들이 게임기 매장의 대형 텔레비전 앞에 모여 있다. 게임건을 장악한 아이들이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서 화면을 노려본다. 도끼를 쥔 좀비들이 화면을 향해 돌진한다. 아이들이 총을 쏜다. 방심하면 좀비들이 던진 도끼날에 찍혀 머리가 갈라진다. 구출해야 할 인질이 좀비들 뒤편에서 팔을 내젓고 있다. 헬프, 헬프. 파앙, 파앙. 소년은 조금씩 아이들 쪽으로 다가간다. 입을 헤벌리고 게임에 몰두하고 있는 아이들의 얼굴을 바라본다. 이 아이들 앞에서 돈을 내고 게임기를 산다면 근사할 것이다. 게다가 저것은 꽤 비싸 보인다. 소년은 가슴을 내밀며 진열대 앞으로 간다. 전시관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게임기를 눈으로 확인하고 고개를 들어 점원을 바라본다. 점원은 여직원과 말을 나누고 있다. 소년은 주먹으로 유리진열대를 콩콩 두드린다. 점원이 흘깃 이쪽을 돌아보다 시선을 거둔다. 그뿐, 다가오지도 이쪽을 다시 바라보지도 않는다. 소년은 주먹을 좀더 단단히 쥐고 진열대를 두드린다. 반응이 없다. 손바닥과 관자놀이에 차가운 땀이 불쑥 솟아오른다. 구겨진 운동화 앞코로 진열대를 걷어찬다. 점원이 비로소 얼굴을 굳히며 이쪽을 바라본다. 진열대로 다가와 소년을 내려다본다. 네. 말투가 깍듯하다. 소년은 진열대 안에 든 게임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사시게요? 점원이 오른쪽 눈썹을 치켜올린다. 딱딱한 가면 같은 얼굴이 소년의 얼굴 앞으로 바짝 다가온다. 박하 냄새와 헤어젤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점원이 속삭인다. 경찰을 불러서 잡아가라고 하기 전에 꺼져, 이 꼬마자식아.
   아저씨, 이거 멈췄어요. 화면이 안 움직여요. 게임건을 쥐고 신경질적으로 흔들어대던 사내아이가 외친다. 소년은 천천히 뒷걸음질로 물러난다. 점원과 아이들을 번갈아 노려보다가 몸을 돌린다.
   차츰 걸음이 빨라진다. 사람들 틈을 비집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른다. 손잡이를 주먹으로 꾹 누르고 사람들의 정수리를 내려다본다. 소년의 눈 속에서 풍경이 일그러진다. 서툰 붓질로 그려진 그림처럼 색깔이 여기저기서 뭉치고 번진다. 거친 손짓 한 번에 저 사람의 머리가, 이 사람의 어깨가, 저 사람의 허리가, 찢어지고 구겨질 것 같다. 소년은 양쪽 무릎에 힘을 주어 다리를 단단히 펴고 선다. 두부. 소년은 중얼거린다. 저 녀석도 이 녀석도, 두부라면 단번에 엉망으로 만들어버릴 텐데. 꼭 움켜쥔 주먹 속이 뜨겁다. 발목에 돋아난 소름이 등을 타고 정수리까지 확 번져간다. 아래층으로 내려간다. 쫓기듯 백화점 문을 나선다. 소년은 역전 광장에 서서 뒤를 돌아본다. 눈 속의 풍경이 빙글 돌아간다. 눈이 멈춘 뒤에도 머릿속의 풍경은 똑같은 속도 똑같은 방향으로 돌아가길 반복한다. 백화점 건물을 노려본다. 빳빳하게 당겼던 미간이 탁 풀어진다. 맥이 풀리고 목이 마르다. 소년은 도로에 바짝 붙은 가판대로 다가간다. 냉장고 속에서 콜라를 골라낸다. 가판대 뒤편에서 고양이가 머리를 내밀고 야웅, 하고 운다. 오물이 말라붙은 바닥을 사뿐사뿐 걸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고양이를 소년은 바라본다. 얼룩점이 박힌 동그란 머리 뒤쪽에서 몸과는 전혀 다른 생물인 것처럼 긴 꼬리가 출렁거린다. 고양이가 소년의 운동화에 뺨을 비비며 고륵, 목을 울린다. 소년은 고양이의 머리에 손을 얹는다. 고양이의 세모꼴 귀가 소년의 손바닥 밑에서 보드랍게 눕는다. 손바닥에 얇은 뼈의 진동이 느껴진다. 소년은 입술을 말아올려 웃는다.
   바지 주머니 속에서 지폐들이 버석 소리를 낸다. 소년은 흠칫 놀란다. 지금쯤 남자는 잠에서 깨어나 돈이 없어진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어느 쪽도 확실하지 않으므로 아버지를 알 수 없다는 어머니의 말을 소년은 믿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였지만 “그 자식이 양육비를 부치지 않아”라고 화를 내다가 자신을 골똘히 바라보던 어머니의 모습을 소년은 기억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악착같이 울어 보챈 끝에 네 아빠는 선원이었다는 신경질적인 대답을 들은 적도 있었다. 그 말 뒤에 바로, 트럭운전사였고 은행원이었고 그렇지 의사였는데 결국엔 선원이 되었어, 라며 조롱하듯 어머니는 말했지만 소년은 개의치 않았다. ‘선원’이라는 말을 소년은 반복해서 생각했다. 놀이 삼아 전철을 타기 시작하고 도심과 수도권을 복잡하게 관통하는 노선표에도 익숙해졌을 무렵에 가장 먼저 한 일이 인천행 전철을 타고 서쪽 끝까지 간 것이었다. 소년은 그곳에서 바다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바다가 있으면 그 바다에 길을 열어 다니는 배가 있을 것이고 배가 있다면 거기에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제물포를 지나 도원을 지나 인천에서 내렸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해가 질 때까지 인천역 주변을 맴돌다가 서울행 전철에 올랐다. 전철에 오르며 입술을 깨물었다. 다시는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고 또 사람들이 온다. 빈틈없이 차들이 이어지는 도로에서 아지랑이가 구불구불 피어오른다. 백화점 주차직원은 이제 막 여덟번째 하품을 했다. 챙이 넓은 자주색 카우보이모자가 그의 등에 매달려 대롱거린다. 연탄불에 떡과 옥수수를 구워 파는 여자는 네 개째의 연탄을 갈아내고 있다. 좀 전에 그녀의 등뒤로 스물네번째 128번 버스가 지나갔다. 스물다섯인가, 스물일곱일지도 모르겠다. 소년은 계단턱에 다리를 늘이고 앉아 생각한다. 나는 자랐다. 그때보다 키도 크고 그때보다 오랫동안 걸어다닐 수 있다. 지금 인천에 가면 바다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라는 것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찾으면 그 방에서 남자를 몰아낼 수 있을까. 남자를 몰아낸 다음에는 아버지를 어떻게 하나. 더도 말고 내 주먹이 남자의 주먹만큼 커질 때까지만 버틸 수 있으면 된다. 그 다음엔 남자도 아버지도, 필요 없다. 그런데 지금은 몇시쯤 됐을까.
   묘하게 부랑자가 많은 지역이다. 때 묻은 옷에 마구 헝클어진 머리를 한 사람들이 깨끗한 옷을 입은 사람들 틈에 병든 풀이나 짙은 그림자처럼 드문드문 섞여 있다. 소년은 그들을 알아본다. 그들도 소년을 알아본다. 그들은 화단에도 누워 있고 역전 패스트푸드점 입구에도 앉아 있다. 눈이 마주쳐도 그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구멍이 숭숭 뚫린 낚시조끼를 입은 남자가 보도에 웅크리고 앉아서 이를 닦고 있다. 노란 플라스틱 칫솔을 입에 물고 필사적으로 팔을 놀린다. 때 묻은 팔꿈치가 일정한 각도와 속도로 허공을 찌른다. 소년은 멍하니 그를 본다. 왜 길에서 이를 닦고 있는 거야. 이상해. 미친 게 틀림없어.
   구야의 기침이 걱정스럽다. 구야는 요즘 아침저녁으로 주먹을 입에 대고 기침을 한다. 기침을 할 때마다 얇은 가슴이 격하게 오르내린다. 구야가 기침을 해. 소년이 어제저녁 어머니에게 말을 했었다. 소년의 어머니는 윗옷을 벗고 벽에 걸린 반신거울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녀는 손바닥을 오므려 맨가슴을 받쳐올렸다. 구야가 기침을 한다니까. 병원에 데려가야 해. 거울에 비친 어머니의 얼굴을 노려보며 소년이 말했다. 소년의 어머니는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울상을 지으며 아스피린을 집어먹었다. 내 가슴이 네모꼴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 소년의 어머니가 중얼거렸다.
   어머니도 미치고 있는 걸까. 소년은 손에 쥐고 있던 빈 캔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 우그러뜨린다. 손등의 빨간 금이 벌어져 따끔하다. 목을 조였더니 고양이는 금세 발톱을 내밀었다. 문득 눈언저리가 환하다. 소년은 얼굴을 든다. 스물다섯번째 128번 버스가 신호대기에 걸려 서 있다. 저물녘의 햇빛을 받아 일곱 개의 창이 모두 붉다. 소년은 한동안 넋을 잃는다. 버스가 출발한다. 꽤 오랫동안 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백화점을 나와서는 줄곧 인근의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주변을 맴돌았다. 어느 쪽으로 방향을 잡아도 결국엔 백화점으로 길이 통해 있어 안심이 되었다. 백화점엔 돈만 있으면 살 수 있는 것들이 수두룩하다. 밤이 되어도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밝은 불빛이 있다. 여기라면 아직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소년은 주머니 속에서 지폐뭉치를 꺼낸다. 하루 종일 만지작거려 귀퉁이가 우글우글해진 돈을 가지런히 포갠다. 수표가 여섯 장, 만원권이 열여덟 장, 천원권과 동전이 몇 개. 아직은 괜찮다, 소년은 돈을 반으로 접어 주머니에 넣는다.
   음료수 깡통이 빈 소리를 내며 발치로 굴러온다. 소년은 고개를 든다. 노파가 서 있다. 옷인지 보자기인지 알 수 없는 천조각을 몸에 두르고 있다. 노파가 소년을 바라본다. 철심같이 빳빳하게 곤두선 머리카락들 틈으로 노파의 자그마한 두상이 드러나 보인다. 소년은 기척 없이 다가온 노파에게 질겁한다. 너무 가까이 서 있다. 소년은 계단에서 훌쩍 뛰어내려 물러난다. 얘야. 노파가 입을 연다. 검붉게 썩은 잇몸이 들여다보인다. 나 계란부침 해먹게 오백원만 다고.
   소년은 주춤 물러난다. 돈이 든 주머니에 깊숙이 손을 찌르고 고개를 흔든다. 네가 돈을 가지고 있는 걸 봤어. 난 지금 너무 배가 고프다. 오백원만 다고. 노파가 속삭이며 바짝 다가선다. 알록달록한 천조각 밑에서 노파의 손이 불쑥 나타난다. 소년은 놀란다. 길고 마른 손가락들이 억센 힘으로 소년의 어깨를 거머쥐고, 다른 쪽 손이 소년의 바지 주머니 속으로 푹 파고든다. 소년은 노파를 털어내려고 마구 몸을 흔든다. 노파의 손가락들이 도깨비바늘처럼 몸에 붙어 있다. 떨어지지 않는다. 소년은 숨을 헐떡인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손톱으로 노파의 팔을 잡아뜯고 다리로 종아리를 걷어찬다. 간신히 노파가 떨어져나간다. 소년은 몸을 돌려 달아난다. 아아. 노파가 외친다. 도둑이야! 저 도둑놈 잡아라!
   소년은 달린다. 턱 안에서 이빨들이 달각달각 소리를 낸다. 춥다덥다가슴이답답해진짜권총을구할수있는곳은어딜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다. 아. 시끄러워. 소년은 어금니를 악문다. 구토가 치민다. 진짜 권총이 있었다면 노파의 조그마한 머리에 대고 쏘았을 것이다. 한 발 두 발 세 발 네 발, 형체가 남지 않을 때까지 탄창을 갈아대며 쏘고 또 쏘고. 날이 빠르게 어두워지고 있다. 발을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 무겁게 가라앉은 어둠이 소년의 발등과 정강이에 차인다. 가슴이 꽉 조여올 때쯤에야 소년은 두 팔을 맥없이 늘어뜨린다. 퀭한 눈으로 뒤를 돌아본다. 악취가 피어오르는 공기 속으로 어둠이 서서히 상승하고 있다. 보도를 향해 설치된 에어컨 환풍기에서 더운 바람이 뿜어져나와 소년의 다리를 데운다. 소년은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여덟 단 계단을 네 걸음 만에 오른다. 좁은 복도를 여덟 걸음으로 지나 모퉁이를 돌고 거기서 다시 여섯 걸음을 걸어 이번엔 왼쪽으로 휘어진 모퉁이를 돈다. 키가 자랐다. 소년은 젖은 곰팡이 냄새가 피어오르는 벽 앞에서 중얼거린다. 그제는 건물 입구에서 집 앞 복도까지 열아홉하고도 반걸음이 걸렸는데, 오늘은 열여덟 걸음이다. 어제와 오늘 사이 벌써 한 걸음 반만큼이나 커버렸다.
   전구 불빛이 비좁은 복도에 부연 빛을 뿌리고 있다. 눈앞이 흐리다. 복도 가득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것 같다. 소년은 손등으로 세게 눈을 비빈다. 아침에 내다놓은 라면박스가 그대로 문밖에 놓여 있다. 그 곁에 조그만 그림자가 앉아 있다. 소년이 다가가자 고개를 든다. 자주색으로 부어오른 눈두덩 안쪽에서 가느다랗게 좁아진 눈이 소년을 바라본다. 형. 구야가 목소리로만 울먹이며 말한다. 병아리집 뚜껑을 누가 열어놨어. 소년은 박스 안을 들여다본다. 닭똥 냄새가 훅 올라온다. 물과 어둠에 퉁퉁 불은 메좁쌀이 바닥에 촘촘히 박혀 있다. 노랗게 질린 새의 발목이 중앙에 놓여 있다. 한 뼘 정도 떨어진 곳에 핏방울이 하나 동그랗게 번져 있다.
   모이를 주려고 나왔더니 이것만 남아 있었어. 푸르스름하게 멍이 든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머리를 문지르며 구야가 말한다. 콜록 기침을 하고 어깨를 뾰족하게 세운다. 눈이 왜 그래? 소년은 중얼거리듯 묻는다. 구야가 얼굴을 든다. 뭘 보고 있는 거야. 소년은 생각한다. 저렇게 부은 눈으로도 뭔가를 볼 수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구야가 다시 기침을 한다. 소년은 주먹으로 문을 밀치고 집 안으로 들어간다.
   운동화 밑창에 유릿조각이 밟힌다. 방문턱에 이르기도 전에 방바닥이 쿵쿵 울린다. 소년은 덥석 목을 잡혀 운동화를 신은 채 방으로 끌려들어간다. 벽을 향해 돌아앉아 등을 웅크리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얼핏 눈에 들어온다. 소리가 먼저 나고 얼굴이 돌아간다. 왼쪽으로 얼굴이 돌아갔다는 걸 느끼기도 전에 다른 쪽으로 얼굴이 확 젖혀진다. 이 새끼. 남자가 소년의 바지주머니를 뒤진다. 우악스럽게 구겨진 종이돈이 남자의 주먹에 쥐어져나온다. 남자는 돈을 들여다본다. 남은 것이 얼마 없다. 노파의 손가락은 도깨비바늘 같아서 잘 떨어지지 않았다. 녹냄새를 풍기는 뜨거운 입김이 소년의 얼굴에 닿는다. 단단한 팔로 목을 쿵 얻어맞는다. 등뼈가 흔들린다. 혀도 함께 흔들려 구토가 왈칵 솟구친다. 소년은 벽에 등을 기댄다. 이 새끼, 내 돈 어쨌어. 남자가 주먹을 치켜올리며 이를 부득 간다. 소년은 얼굴을 번쩍 들어올린다. 구야를 때렸지! 소년은 외친다. 한 번만 더 때려봐, 그땐 널 죽여버릴 거야. 남자의 충혈된 눈이 소년의 얼굴 윤곽을 따라 빙글 돌아간다. 소년의 입술이 뭉개진다.
   구야가 운다. 찰흙으로 엉성하게 빚어 만든 인형처럼 입을 짝 벌리고 있다. 시끄러워. 소년은 중얼거린다. 목소리를 내어 말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 입술을 움직였다는 느낌도 없다. 소년은 무릎 사이로 발가락을 내려다본다. 몸이 끄덕끄덕 앞으로 기울어진다. 벽이 등을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엄지발가락에 힘을 주어 버틴다. 발끝에서 반뼘쯤 떨어진 곳에 길쭉한 유릿조각이 떨어져 있다. 뭐가 깨졌지, 소년은 멍하게 생각한다. 눈을 왼쪽으로 움직인다. 늘 부엌 벽에 걸려 있던 대형 가위가 손잡이가 깨진 채 나뒹굴고 있다. 남자는 집을 나갔다. 한밤이나 내일 아침이 되면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올 것이다.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다가 흠칫 놀란다. 남자가 돌아온다! 눈을 움직여 어머니를 바라본다. 어머니는 다리를 벌리고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담배를 든 손가락이 덜덜 떨린다. 불규칙한 웨이브로 말린 파마머리를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목 뒤로 그러모았다가 다시 쓸어내린다. 몇 번이고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소년은 다리를 껴안고 있던 팔을 풀고 무릎걸음으로 어머니에게 다가간다.
   소년의 어머니는 소년을 바라보지 않는다. 입술을 오므려 담배를 물고 연기를 빨아들인다. 소년은 어머니를 본다. 저리 가, 라고 단호하게 중얼거리는 탁한 목소리를 듣는다. 어머니의 눈 속에서 올올이 풀려 사라지고 있는 담배연기를 소년은 들여다본다. 자신도 구야도 사라지고 없는 빈 눈이다. 소년의 머릿속에 노래가 울린다. 세에계를 돌고 돌면 벼얼처럼 많은 형제. 거대한 터널의 둥근 천장이 머리 위로 내려온다. 움직일 때마다 쉭쉭 소리를 내는 인형들이 터널 벽을 따라 일어난다. 축축하게 젖은 불빛이 인형들의 얼굴을 비추고 자신도 그들처럼 두껍게 얼굴이 굳어가는 것 같아 한 번, 두 번, 소년은 눈을 깜박인다. 소년은 천천히 엉덩이를 끌며 어머니의 곁에서 물러난다. 등을 기대고 있던 자리로 돌아가 눈을 번득이며 어머니를 지켜본다.


   마홍이 형이 그랬어.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무사히 자라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고. 안전하게 보호해줄 새장이 없으면, 병아리는 죽어. 뾰족한 이빨로 물어뜯겨도 끄떡없는 철창이 아니면, 병아리는 죽어. 네 병아리는 고양이한테 잡아먹혔어. 도둑고양이는 병아리들을 잡아먹어.
   내 병아리들을?
   그래, 네 병아리들을.
   전철이 들어온다. 소년은 구야의 손을 잡고 안전선 위에 선다. 머리칼이 어지럽게 흩날리며 이마를 때린다. 소년은 눈 속에 들어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잡아 뺀다. 예리하게 각막을 베인 느낌이 들어 몇 번이고 눈을 깜박인다. 구야를 내려다본다. 구야는 입을 다물고 있다. 소년에게 작은 손을 내맡긴 채 건너편 플랫폼 쪽으로 멍하게 시선을 던지고 있다. 소년은 막 플랫폼 안으로 빨리듯 들어오고 있는 전철을 가리켜 보인다. 저걸 타면 눈을 감고 오십까지만 세. 오십을 세고 나면 눈을 뜨고, 내려. 깨끗한 옷을 입은 어른을 골라 경찰에 데려다달라고 해. 그 사람들이 너를 안전한 곳에 데려다줄 거야. 이제부터는 거기가 네 집이야.
   전철이 멈춘다. 소년은 구야를 이끌고 전철에 오른다. 구석자리에 구야를 앉힌다. 구야가 발딱 일어나 소년의 뒤를 쫓는다. 소년은 구야를 끌고 다시 자리에 앉힌다. 도로 일어나려는 동생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누르고 험악하게 일그러진 눈으로 얼굴을 들여다본다. 세, 라고 속삭인 뒤 몸을 돌려 전철에서 내린다.
   출입문이 닫힌다. 때 묻은 사각유리창 너머로 소년은 구야의 얼굴을 바라본다. 구야는 형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 전철이 출발한다. 구야의 입이 작게 벌어진다. 소년도 입을 벌려 함께 숫자를 센다. 전철이 터널 안으로 끌려들어간다. 구야의 창백한 얼굴과 검은 눈을 단 창이 터널 속으로 사라진다. 전철의 마지막 칸이 사라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소년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한쪽 손으로 얼굴을 문지른다. 이마에는 줄줄 땀이 흐르는데 입 안은 자꾸 마른다. 소년은 빙글 몸을 돌려 걷기 시작한다. 눈으로 음료수 자판기를 찾는다. 공중전화박스 옆에서 자판기를 발견하고 다가간다. 동전을 투입구에 밀어넣는다. 두번째 동전을 손가락 끝에서 놓치고 제길, 욕을 한다. 허리를 굽혀 동전을 줍고 머리를 확 끌어올린다.
   이명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둔하고 강한 쇼크가 전류처럼 저릿하게 이마로 번져간다. 머리의 무게가 몇 배나 무겁게 느껴져 목을 버티고 있을 수가 없다. 소년은 자판기에 이마를 누르고 선다. 어른이되자어른이되기싫어매미매미더러운자식열차에치여죽은내가먼저별처럼많은잡아먹혀죽여하나둘모두해서육십팔만배가고파얼마얼마엄마. 끝없이 말이 떠오른다. 소년은 눈을 부릅뜬다. 카각카각. 금속성 마찰음이 귓속으로 말려들어간다. 소년은 발을 들어올렸다가 바닥을 향해 세게 내리친다. 한 번, 두 번, 소년의 귓속에서 소리가 지워진다. 소년은 발바닥 아래 단단한 지면에 멀미를 느끼고 손바닥으로 귀를 두드린다. 흡. 숨을 들이쉰다.
   전철이 들어오고 다시 빠져나간다. 소년은 자판기 투입구 속에 천천히 두번째 동전을 밀어넣는다. 좁고 어두운 터널 속으로 동전이 빨려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 『일곱시 삽십이분 코끼리열차』(문학동네, 2008)에 수록

 

 

   추천하며


   소년은 ‘어른이 되자’와 ‘어른이 되기 싫어’ 사이에 있는 존재다. 현실이 빠져나올 수 없는 악몽일 때 성장담은 어떻게 쓰일까? 소년은 어른을 경멸한다. 어른은 무책임하거나(어머니) 폭력적(어머니의 애인)이기 때문이고, 부재자(아버지)이거나 약탈자(거지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자란다. 소년이 경멸하는 세계와 가까워지고 있다는 말. 엄마에게 버림받지 않기 위해 끈질기게 엄마를 쫓아다니던 소년이 동생을 지하철에 태워 떠나보낸다. “저걸 타면 눈을 감고 오십까지만 세. 오십을 세고 나면 눈을 뜨고, 내려. 깨끗한 옷을 입은 어른을 골라 경찰에 데려다달라고 해. 이제부터는 거기가 네 집이야.” 그런데 이건 어른들이 무책임하게 버리려 했듯, 동생을 버리려는 짓이 아니다. 현실이 더 고칠 수 없는 악몽이라면 일단 거기서 빠져나와야 한다. 소년은 사랑하는 동생을 악몽에서 떠나보냄으로써 성장담의 마지막 임무를 완수한다.

(소설가_편혜영/문학평론가_노대원, 양윤의, 조연정)

 

 

   《문장웹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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